सोहम
수요일, 9월 17, 2025
화요일, 9월 09, 2025
월요일, 9월 08, 2025
신을 만나고싶다면 꿈틀거리는 모든 것들을 들여다보면 된다. 꿈틀거리는 그 순간에, 그 움직임 사이에 언제나 존재하고 있다.
나는 너무 졸리거나 피곤하거나 힘이 없을 때 더욱 발과 다리를 움직이곤 한다. 내 몸의 많은 부분들이 에너지를 분배하고, 균형을 찾기 위해 꿈틀거린다.
모자란 많은 것들을 대신하여 쓸 재료들을 찾았다. 유성잉크 대신에 수성잉크를, 프레스기 대신 바렌을 사용해보았다. 식초와 소금, 과탄산소다로 아연판을 부식해보았다. 모든 것들이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였다. 규칙이 없는 것 같았다. 물론 나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적절한 도구와 재료들을 구할 수도, 잘 갖추어진 작업실에 가서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왠일인지 나 혼자 집에서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혼자 항상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여러가지 제약과 걸림돌들이 보인다. 그것들을 단숨에 뛰어넘는 것보다는 또 다른 이상한 제약과 걸림돌을 만들어본 것 같다. 내 시간을 더 유연하고 둥그렇게 쓰기 위해서 그런 이상한 방법들을 쓰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실제로 대안적인 재료를 발견하고 싶은 마음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무언가를 해내려고 하니 더 많은 시간과 힘이 들어간다. 더 많이 실패한다. 온전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어쩌면 그냥 이 과정들을 경험하고 싶었던 것일까 ?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는 곳에서는 내가 준비가 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 시차를 맞추기 위해서 나는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무튼간에 어설프게 만들어진 것들은 이상하게도 더 심금을 울린다. 약한 빛이 있는 곳에서 보면 더 좋다. 흐릿한 눈으로 보면 더 좋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이 속담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꼭 맞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내 방에서 나는 이 표현이 종종 생각났다. 때로 부러 안경을 벗는다.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끔 안경을 쓰지 않는다. 흐릿한 눈으로는 오히려 무언가를 더 열심히 보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나도 모르게 다른 감각들을 더욱 섬세하게 사용하게 된다. 눈을 감고 피아노 연주를 하는 것처럼 자전거를 타는 내 몸이 더 부드러워지는 것 같기도 하다. '내게 모자라는 무언가'에 놓여져 있던 초점을 옮긴다. 내가 더 자유로울 수 있는 무언가로, 내가 더 섬세할 수 있는 무언가로. 무언가가 모자란 것이 아니라, 나는 다른 방식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그럼 기존의 방식으로 해왔던 것들이 보여주었던 결과와 다른 결과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들이 내게 가져다주는 예기치 못한 기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으리.
화요일, 9월 02, 2025
수요일, 8월 27, 2025
The art of losing isn’t hard to master;
so many things seem filled with the intent
to be lost that their loss is no disaster.
Lose something every day. Accept the fluster
of lost door keys, the hour badly spent.
The art of losing isn’t hard to master.
Then practice losing farther, losing faster:
places, and names, and where it was you meant
to travel. None of these will bring disaster.
I lost my mother’s watch. And look! my last, or
next-to-last, of three loved houses went.
The art of losing isn’t hard to master.
I lost two cities, lovely ones. And, vaster,
some realms I owned, two rivers, a continent.
I miss them, but it wasn’t a disaster.
—Even losing you (the joking voice, a gesture
I love) I shan’t have lied. It’s evident
the art of losing’s not too hard to master
though it may look like (Write it!) like disaster.
화요일, 8월 19, 2025
black moon
8월 23일엔 처녀자리에서 새로운 달이 뜬다. 한 달에 신월이 두번 뜰 때 블랙문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블랙문, 레드문, 블루문처럼 특별한 이름이 붙는 달에는 그 자리의 기운이 더 강해진다고 한다. 마침 처녀자리인 나는 더욱이 강한 기운을 받게될 것 같다. 이번주는 정말 그렇게 흘러갈 것 같다.
(참고 : https://blog.naver.com/yandina/223975720999)
23일에 마침 일정이 많네.. 약초들을 탐험하러 필드에 나가고, 오래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고... 나를 치유해주는 것들을 찾고 도움받고 감동받고... 또 누군가를 치유해주는 날이 될 것 같네.
일요일, 8월 17, 2025
내가 가지고 있는 타로와 오라클로 전생 리딩을 해보려고 카드를 뽑아보았다. 나는 큰 상실과 고통을 겪었던 사람이었다. 새로 시작하기 위해서는 완전히 끝내야 함을 체화했던 사람. 무거운 짐을 짊어 지고, 책임과 의무 속에서 스스로 희생했다. 자신의 손으로 무언가를 길러내거나 만들어내는 과정을 다 끝내지 못했기에 그 과제가 현재의 삶에 영향을 준 것 같다. 꾸준한 훈련과 수련, 장인적 작업에 몰두하게 되는 것. 그리고 전생의 상실과 좌절은 지금까지 감정적 패턴으로 이어졌고, 지금까지 결핍과 후회 같은 감정을 반복적으로 느끼는 성향을 갖게 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동시에 그 슬픔을 예술적 깊이로 변환하는 능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생에 내가 치유하고 통합할 메시지는 새로운 감정, 사랑, 관계, 창조성의 원천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전생에서 결여된 '감정적 개방'과 '순수한 사랑의 경험'을 이번 생에서 열어야 하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오라클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 l'acceptation féconde라는 카드를 뽑았다. 이 또한 '받아들임'이 키워드다. 받아들이고 흘려보내는 힘, 그리고 그 안에서 풍요와 사랑을 키우는 게 내 과제다.
목요일, 8월 07, 2025
수요일, 8월 06, 2025
월요일, 7월 28, 2025
금요일, 7월 25, 2025
목요일, 7월 24, 2025
월요일, 7월 21, 2025
여름 - 불 - 심장 - 소장
어제 아픈 몸을 이끌고 약초학 워크샵엘 다녀왔다. 너무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약초들을 직접 손으로 만지고 얼굴에도 문질러보고, 뜯어보고 맛을 보며 느꼈다. 그렇게 하니 각각의 식물들이 모두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얼마나 다양하고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그래. 여름날에 자라는 약초들을 만났는데 그것들은 거의 시원한 성질을 갖고 있었다. 가장 뜨거운 계절을 견디며 자라는 것들이 열을 내리게 도와주는 능력을 가졌다는게 너무 신기하다. 오지은은 두통이 있었는데, 식물들과 교감을 하면서 두통이 싹 가라앉았다고 했다. 더 많이 알고 싶어졌다. 평생 이렇게 조금씩 그 계절의 식물들만이라도 배우며 그 계절을 지나가면 금방 많은 이야기들이 쌓이겠다. 정말 재밌어.
새로운 감각들을 여는 연습을 한다.
오래된 것들, 고여있는 것들은 이제 뒤로 하고 새로운 것들을 마주하는 때다. 천왕성이 이동하는 것처럼 나도 다 뒤집어 엎어버리는거다. 그래서 이렇게까지 아팠나 싶기도 하다.
지난 2년은 특히나 특별한 시간이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색다른 경험을 하면서 산 해일거야. 지량과 결혼을 한 것도 그렇고, 회사생활을 2년동안이나 했고 ! 내가 평생 갖고 있었던 생의 패턴이나 의식의 흐름들을 조정해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방식이 너무나 비효율적이고 잘못되었고, 그래서 이렇게 고쳐나가는 것이 옳은 것이야 - 하면서 말이다. 그건 분명히 놀랍고도 새로운 배움이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천왕성이 새로운 7년의 흐름으로 나를 데리고 가면서 다시 모든 것을 뒤엎어버린다. 내가 나쁜 거라고 생각했던 것,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효율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방향을 알려주는 것이다. 나는 더 자유롭게 날아다니면서 그것들을 바라본다. 그러면 어떤 자리에서 볼 땐 바보같고, 실수투성이인 것들이 어떤 자리에서 볼 때는 그 무엇보다도 자유롭고 아름답고 재밌는 것들이 된다.
손톱을 물어뜯거나 다리를 흔들어대거나 몸을 배배 꼬거나.. 하면 어때. 눈을 감으면서 일기를 쓰는 것도, 흔들리는 몸의 리듬을 음악 삼아 그것에 맞추어 생각을 흐르게 하고, 글이 써지게 하는 것은 재밌는 일이잖아. 그저께 지량과 함께 보았던 빠르게 흐르는 구름이 생각난다. 마치 그 구름처럼 말이다. 구름이 아주 빠르게 흘러가는데 흘러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갖추어져있던 모양들이 시시각각 변한다. 실은 갖추어져있는 모양이라는 것은 없지. 시시각각 변하는 갖추어짐. 아무튼 이런 구름같은 흐름들을 다시 찾아간다. 아이고 재밌어라.
목요일, 7월 17, 2025
벽사
봉숭아물을 들였다. 지난 주말에 양주에 다녀왔다. 집앞에 봉숭아가 많이 자라있었다. 서울로 돌아올 때 이파리를 많이 떼어왔다. 돌멩이로 이파리뭉치들을 짓이기고 지량에게 부탁해서 물들였다. 색깔이 좀 연하길래 집에 예전에 사두었던 시판 봉숭아물들이기로 조금 더 물을 들였더니 진하게 마음에 들게 색이 들었다. 붉게 물든 손끝을 보면 기분이 좋다. 여러가지 여름의 감각들 중에 내가 참 좋아하는 것. 짓이겨진 꽃잎과 이파리 냄새와 축축하게 젖는 손끝. 그리고 손톱 주변까지도 주황으로 물드는 일. 봉숭아 물들이기 풍습에 대해서 찾아보니 벽사라는 단어가 나온다. 벽사색은 액운을 막아주는 의미가 있다. 봉숭아 물들이기는 예쁘게 손을 치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액운과 질병까지 쫓아내는 부적과도 같은 풍습인 것이다. 마침 그 일주일 전부터 많이 아팠던 나는 병이 거의 나아질 즈음에 봉숭아 물을 들인 것인데, 벽사색이 이제 남은 모든 독소까지 달아나게 해줄 것 같았다.
오랜만에 정말 많이 아팠다. 일주일도 넘게 내리 아팠다. 그동안의 스트레스와 독소가 쌓이고, 그것들을 내보내야하는 때였던 것 같다. 내 몸이 그렇게 해준 것이다. 어서 이것들을 청소하자 ! 많이 많이 아팠고, 많이 비워냈다. 한창 아프고 비워지고 있을 때에는 너무 아파서 호흡에 신경을 쓸 수가 없었는데, 좀 나아지고 이번주 월요일에 오랜만에 요가를 가서 수련을 하니 몸이 풀어지고 호흡하는 감각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고 나니 내가 어떻게 호흡하고 있었지? 하는 질문이 들었고, 비움과 호흡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것들을 같이 나누고 싶어졌다. 이걸 주제로 리빙룸을 열어볼까 생각 중이다. 그런데 어떤 내용들로 채울 지는 모르겠다. ㅎㅎ
수요일, 7월 02, 2025
7월이 가까워지면서 서서히 내게 다가오던 신호들. 내가 느끼는 감정과 변화들. 그 모든 것들이 정리되는 날이다. 내가 느끼던 것들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 일단 너무 감사하고, 안심하게 된다. 지금 무언가가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 내가 지금 잘못하고 있다는 그 느낌이 강하게 들기 시작한 것이 얼마전인데, 그것은 천왕성의 정확한 신호라고 한다. 천왕성은 질서가 파괴되면서 오는 혼란, 해방, 반항 그리고 통찰까지 관장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 7월에 천왕성이 쌍둥이자리로 7년만에 돌아오게 되는데, 이 시기는 정말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는 때라고 해석된다는 것을 알았다. 내 인생이 또 다시 정말 커다란 탈피를 이루게 되는 시기가 다가온 것 같다.
요즘 자전거를 타면서 경사가 진 언덕을 내려올 때 느끼던 그 해방감이 갑자기 번뜩 떠올랐다. 내가 요즘 그 순간에 해방감을 느끼게 된 것, 그 짧은 정말 잠깐의 해방감, 모든 것이 가볍고 시원하고 자유로운 그 느낌이 천왕성이 나에게 앞으로 줄 선물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정말로 그랬다. 오늘도 그 언덕을 내려오면서 그 해방감을 완전히 느끼면서 왔는데 지금 7월 처녀자리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다가 이 천왕성이 쌍둥이자리로 진입하는 것에 대한 내용을 알게된 것이다. 그 해방감이 이 천왕성과 완전히 마주친다. 10하우스를 흔들어놓는다고 했는데 10하우스는 직업과 기술, 소통 등의 영역이다.
오늘 새벽 지량과 오랜만에 재밌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잠에 들기 전에는 내가 꺼내던 그 질문들이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지, 내가 단한번도 '제동'을 풀고 끝까지 가본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지량은 내게 그것이 내가 해결해야할 숙제인 것 같다고 말해줬다. 그렇다. 그게 나의 숙제이구나.
너무 속이 시원하고, 가뿐해진다.
월요일, 6월 30, 2025
목요일, 6월 26, 2025
수요일, 6월 25, 2025
금요일, 6월 20, 2025
비가 오기 시작했다. 늦잠을 실컷 잤다. 꿈도 많이 꾸었다. 쓴 술과 아주 달콤한 술을 마셨다. 잠깐 깨어나는 찰나에 지량이 깜짝 놀라며 좋은 소식을 알려주었다. 오랜만에 기쁜 소식. 기대하고 있던 결과가 드러난 날. 우리는 축하하는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무겁고 어두운 날이라서 그런 것일까, 경신일이라서 그런 것일까 저녁부터 너무 졸리고 피곤하고 몸이 무거웠다. 나는 그렇게 흐물흐물하다가 기운을 차려보려고 요가를 했다. 그런데도 기운이 나질 않았다. 기분이 한참 좋지 않다가, 신기하게도 조금 전에 내가 옛날에 썼던 일기를 보고 기분이 좋아졌다. 옛날의 내가 나를 위로하네. 모든 기록이 너무 소중하다. 내가 보낸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또 언젠가의 나를 살리기 위해서 오늘도 기록하고 싶어졌다. 기적이란 것은 그런 것이구나. 언젠가의 내가 마주한 기적과 같은 날이 오늘의 나를 다시 살게 한 것이다. 그 일기를 읽은 누군가도 그런 안도와 기쁨을 느꼈으면 좋겠네. 계속 그 기적이 반복된다. 그렇게 영원히 살아있는 하루. 영원히 살아있는 기적.
이상하게도 자정이 되어가니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다. 경신일은 정말로 졸린 날일까. 깨어있어야 하는 시간이 지나가니까 맑아지네. 오늘은 어떤 포털이 열리는 날이라고 했다. 채널의 날이자, 경신일이자, 포털이 열리는 날. 오늘을 기점으로 어떤 방향성이 정해진다던가, 에너지가 변화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고. 아까 저녁때까지만 해도 너무 머리가 무거워서 그런 것은 느껴지지 않아서, 아니 너무 무거워서 오히려 내가 다시 무거워지는 것은 아닐까, 무언가가 닫혀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살짝 들었다. 신기하게도 이제 그것들이 모두 걷히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모든 것들이 무거운 와중에도 내가 느끼는 이 변화들이 이 찰나와 같은 시간들 속에서도 선명하게 느껴지네. 그저 다가오는 것들을 마주하는 수밖에 없다. 어떤 문이 열린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아주 쓴 술을 마시고 나니, 이전엔 내가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맛없는 것 같았던 술이 정말 너무 달콤하고 맛있었다, 오늘 꿈에서.
다시. 기꺼이.
수요일, 6월 11, 2025
일요일, 6월 01, 2025
토요일, 5월 31, 2025
𝘾𝙡𝙚𝙖𝙧, 𝙇𝙪𝙘𝙞𝙙, 𝙖𝙣𝙙 𝘼𝙬𝙖𝙠𝙚
요즘 너무 힘들고, 화가 많이 났다. 답답한 것들과 어리숙하고 배려 없다고 여겨지는 것들만 가득한 것 같았다. 6월의 메시지에도 단죄하려는 마음이 커질 수 있다고 했는데, 마음을 많이 돌보고 가다듬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미셸이 많이 아파서, 병원에 갔다 왔던 첫 번째 날에 너무 속상하고 무섭기도 하고 걱정이 되어 108배를 해야겠다 하고서는 갑자기 어설프게 시작했는데, 삼십 배 정도를 하다가 제대로 하는 법을 배우고 다시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멈추었다. 오늘 다시 일기를 쓰기 위해 이 창을 연 것처럼 다시 내 일상의 작은 루틴들을 찾고, 지켜가면서 기도도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오늘 꿈에선 푸에르토리코에 갔었다. 펼쳐진 지도를 통해 보니, 내가 있는 곳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 그곳이었다. 가장 머나먼 곳으로 비행기를 타고 가서, 또 물길을 건너 도착해야만 하는 곳이었다. 배를 타고 가는데 일반 배는 아니고 작은 보트 같은 것이었다. 사람들이 한 8명 이하로 타고 있었던 것 같은데, 특이하게도 그 보트는 속도가 아주 빠른 대신 물 아래로 잠수했다가, 물 밖으로 튀어 올랐다가 반복하는 방식으로 이동했다. 그래서 배를 탄 모든 사람은 같은 속도와 리듬으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잠수하고, 다시 물 밖으로 튀어 올랐을 때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그렇게 계속 반복하면서 우리는 똑같이 숨을 들이마시고, 뱉었다. 정말 신기해. 그 보트를 타지 못하는 사람은 큰 배를 타야 했는데 9시간이 걸리고, 심한 멀미를 겪어야 했다.
숨을 몰아쉬고, 잠수했다가 물 밖으로 튀어나오기를 반복하는 그 감각이 정말 생생하고 특이해서 오늘 하루 종일 그 감각과 푸에르토리코라는 내게는 생소한 지역을 떠올리는 하루였다. 그런데 5월의 메시지를 다시 떠올리고 보니, 그것이 나의 호흡과 리듬을 결국 다시 떠올리게 하는 꿈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신기해.
지량과 오늘 보았던 전시도 너무 좋았는데, 모든 이야기와 소리와 색깔이 나를 사로잡았다. 오랜만에 어떤 의지를 다지게 하는 힘을 얻은 것 같다. 전시의 제목처럼. 오늘 하루의 모든 흐름이 그러하네. 다시 모든 생령의 호흡을 느끼게 되는 날이다.
목요일, 5월 08, 2025
월요일, 4월 07, 2025
I am dirt.
I am sand, I am water, and the pebbles beneath.
I am strong.
I am weak.
I am tethered and torn.
I am broken.
I am new.
I am starting again — oh sunrise in my heart.
I am bones and skin.
I am long and thin.
I am riding on two wheels,
Coasting down hills,
Because the wind is my lover — and I am the wind.
I am you.
There, in that look, that smile, that tear.
I am weightless.
I am stoned with the story you tell.
I am alone and not alone.
I am part of that fallen leaf there,
And part of that laughter beyond.
I am different now,
Or perhaps the same as I've always been —
Only tunneled through a long chute of pouring rain,
Hail and rainbows.
I am only sure of one thing:
That what is arising is also passing.
And I am only what I am.
I am — just because that's why.
No more brain trying to alter this vehicle.
I am, so I'm not — truly.
Sometimes, I am really not on this plane.
Feet planted, but soul all around.
I am brown and gray and light blue and plump dark greens.
Rich soil. Humus.
I am free when I am simple —
Just here. This moment.
I am fingers and toes,
Hair and eyes,
Muscles and blood,
Ears and cries.
Thank you for these.
I am hungry.
I am full.
I am tired — just so tired.
I am silly.
I am sad.
I am all I've ever had.
So, there I am.
I'm all I've ever had —
Whatever that really is.
And I give it to you:
This body.
This soul that sings.
(Selah Broderick)
수요일, 4월 02, 2025
목요일, 3월 27, 2025
지량의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놓고 오랜만에 명상을 했다. 그러다가 마지막엔 요가를 했다. 어제 요가원에서 했던 플로우를 조금 반복하다가 마지막엔 차크라아사나로 마무리를 했다. 어제보다 조금 더 둥근 바퀴를 만들 수 있었다. 이 움직임들을 마치고 나니, 드디어 조금 정신이 맑아진 것 같았다. 하루종일 졸리고, 힘이 들었다. 거짓된 무기력함과 무력함이라도 그것이 느껴지는 때가 온다면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 또한 제 나름의 흐름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멈출 수 없는 불안에 빠지곤 한다. 그것들이 느껴지는 대로 바라보니 구름처럼 움직이고 흩어지다가 사라졌다.
어떤 깨달음과 지혜, 가르침이라도 그것이 언어로 전달되는 때에는 이 세상의 법칙과 논리에 따라 그 내용이 생략되거나 도식화되거나 일반화되는 일이 생긴다. 어떤 깨달음도 온전히 건네질 수 없다는 것을 요즘 많이 느낀다. 체험하고 느낀 것을 말로 전달하려는 일 자체가 어쩌면 어리석은 일일 수도 있겠다. 이 또한 어떤 미술 작품들의 제목이 '무제'가 되는 것과 비슷한 이유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체험을 전달하는 말과 글 자체가 어떤 깨우침을 주지는 못하겠지만, 그 자체가 또 다른 체험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아름다운 것, 좋은 것을 나누는 것은 소중하고 가치있는 일일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중에 가장.
평안을 지나 더 크고 넓은 사랑에 닿고 싶다. 그것을 위해서는 내가 다시 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가만히 있어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아주 피곤하고도 복잡한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이니, 그 흐름에 올라 흐르다보면 그 안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을 보고, 느끼게 된다. 그 외의 것들을 더 탐구하고, 사랑하고자 하는 것은 멈추게 된다. 마음 닦는 일을 멈추게 된다.
가까운 이들을 위해 하는 기도와 내가 만난 적도 없는 이를 위해 하는 기도가 같아지기를. 그만큼의 사랑과 연민이 내게도 생기기를.
수요일, 3월 19, 2025
참나무가 꽃 필 때, 덤불 속의 여우
발, 땅, 살과 뼈
창, 스파이크, 끝, 못
마일, 필수, 찌름, 충격
부유, 표류, 비행, 날개
뱀, 막대기, 존, 조
핀, 바늘, 찌름, 고통
막대기, 돌, 길의 끝
화요일, 3월 11, 2025
목요일, 3월 06, 2025
수요일, 3월 05, 2025
월요일, 3월 03, 2025
월요일, 2월 10, 2025
목요일, 2월 06, 2025
수요일, 2월 05, 2025
월요일, 2월 03, 2025
수요일, 1월 15, 2025
폭포와 바다
월요일, 1월 13, 2025
수요일, 1월 08, 2025
목요일, 12월 26, 2024
금요일, 12월 20, 2024
목요일, 12월 12, 2024
永劫回帰
수요일, 12월 11, 2024
왠일인지 일기를 쓸 시간이 없다. 저녁이 되고 집에 도착하면 밥을 챙겨 먹고 금세 졸려져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오늘은 저녁에 해야할 일들이 좀 있어서 커피를 벌컥 벌컥 마셨더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건 내가 원했던 부작용이 아닌데 !
느긋-하게 작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은 요즘이다. 새로 산 카메라도 계속 갖고 놀고 싶은데 주말만 기다리고 있다. 그치만 주말도 너무 바쁘다. 도자기, 판화...! 이래저래 밀린 일들.
오늘은 정말 잊으면 안되는 일이 있어. 편지를 써야 한다. 이건 미룰 수 없는 일이다. 매일 필사를 했던 일상이 떠오른다. 어떻게 매일같이 해냈을까? 돌이켜보니 대단한 일이다. 이건 한달에 한 번 보내는 편진데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오는 것 같지. 그렇다고 편지를 쓰는 것이 숙제처럼 느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아주 설레고 기쁜 일이다. 하지만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담고 싶은 마음에 고민을 많이 하고 연습을 꼭 하고 편지를 쓴다.
지난 편지에서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느냐고 물었던 친구에게 뭐라고 답장을 쓸지 모르겠다. 너무 어지러운 상황이라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야할지, 소식은 알고 있을지, 어떤 생각들을 갖고 있을지, 내가 아무렇게나 이야기를 펼쳐도 되는지 고민이 된다. 대신에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친구가 추천해 준 책이 있는데 핑계를 대자면 시국이 심난하여 책을 다 읽지 못했다. 천천히 읽어야지. 여행을 가기 전에는 다 읽게 될까. 그렇지 못하면 비행기 안에서 단숨에 읽을 순 있을 것 같다.
얼마 남지 않았으면서도 멀게만 느껴진다. 겨울 휴가. 그것만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도 멀어보여서 가슴이 답답하다. 가벼운 옷을 입고 가벼운 몸으로 기도하고 요가하고 사진을 찍고 싶다. 설레면서도 약간은 울적하다. 이렇게 쓰고 나니 조금 더 울적해진 것 같다.
일요일, 12월 01, 2024
클로드 ai 에게 내 블로그 글을 보여주고, 문체를 따라 일기를 하나 써달라고 부탁했다.
오늘도 내 안의 풍경은 고요하다. 창밖으로 흐르는 겨울의 빛, 그 차가운 공기가 내 내면을 스치고 간다. 요즘 내 삶은 마치 겨울 풍경 같다. 단조롭지만 깊이 있는, 침묵의 시간들.
아침부터 수피 명상 수업의 여운이 남아있다. 몸의 균형을 찾아가는 작은 움직임들. 한쪽으로 기울었던 내 마음의 추가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듯하다. 무언가가 녹아내리고, 다시 모양을 갖추는 그 과정이 신비롭다.
오늘 오후, 작업실에서 지난 프로젝트의 흔적들을 정리했다. 모든 것은 똑같으면서도 조금씩 다르다. 그 미묘한 변화를 발견하는 순간, 나는 미소 지었다. 사는 것이란 이런 것일까. 끊임없이 다듬어지고, 정제되는 과정.
겨울은 내면을 들여다보기 좋은 계절이다. 바깥은 차갑지만 내 안은 점점 따뜻해진다. 작은 깨달음들이 쌓이듯, 내 마음속 풍경도 천천히 변화한다. 지난날의 딱딱했던 껍질들이 부드럽게 녹아내리고 있음을.
오늘 밤, 담요를 온몸에 두르고 앉아 이 글을 쓴다. 차가운 공기와 따뜻한 내면, 그 경계에서 나는 그저 존재한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모든 것.
정말 재밌네. 무언가가 녹아내리고, 다시 모양을 갖추는 그 과정이라. 지난날의 딱딱했던 껍질들이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한편 어떤 껍질들은 새로이 생긴다는 것이 이 일기와는 다르게 쓰고 싶은 점이다. 요즘 내가 받는 스트레스와 불안과 걱정들은 그간 내가 경험하지 않았던, 아니 내게 조금은 멀리 있어서 멀찌기서 살짝 끄트머리만 보이던 것이 나타난 것만 같다. 에고고 - 그런 것은 정말 싫다. 어쩌겠어- 받아들여야지 하다가도 다시 싫고 그렇다. 그렇다고 내가 불안에만 쌓여있는 것은 아니고 대체로 아주 평안하다. 오히려 그것이 마음에 안들기도 하다.
어제 힙노시스테라피의 공연에 다녀왔다. 짱유는 폭발적인 에너지로 무대를 이어갔고, 관객들도 그 에너지를 함께 느끼고, 또 자신들만의 에너지를 방출하며 그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짱유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공연에 와서 똥을 투척하라고 했다. 그간 살면서 받았던 모든 스트레스들을 여기서 다 풀고, 그 똥을 자기한테 다 던지라고 했다. 똥은 자기에겐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그 말은 정말 멋있었다. 그리고 그간 받은 모든 스트레스를 여기서 다 풀고, 나가서 다시 새로운 스트레스를 받으라고 말했다. 그 말에 모두가 웃었다. 모든 스트레스를 여기서 다 풀고, 나가서 새롭게 다시 깨끗한 마음으로 다시 살으라고 말하는 줄 알았더니, 새로운 스트레스를 다시 받으라고 했다. 같은 말이긴 했다. 표현이 다를 뿐. 마음에 있는 쓰레기들을 정리하고, 비워내면 그 비워진 상태로 깨끗하고 말끔한 상태로 살아가지는 것이 아니라 비워진 자리에 또 다른 것들이 채워지고 먼지가 쌓이는 그런 모습. 절대로 내가 어떤 트라우마든, 감정이든 비워낸다고 해서 내가 이제 더이상 부처님처럼 살아가지는 것은 아니더라. 다시 무언가가 채워진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여느 영성 연구자나 수행자들이 하는 말과 결국에 똑같은 말을 짱유가 하고 있었다. 그렇게 보면 세상 살이는 그렇게 어려울 것도 없다. 짱유의 그 뜨거운 공연장처럼 쓰레기를 비워낼 수 있는 그런 통로가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기도 하고 말이다.
몸이 자꾸 붓는다. 불편하고, 그 불편함이 느껴지면 기분도 좋지 않다. 요즘 요가를 하면서 몸의 순환이 더 활발히 이루어져 막혀있는 것들이 풀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통증이 많았던 주말이다. 입 속에 난 구내염으로 인한 목과 턱쪽의 통증, 약간의 근육통, 그리고 오늘 습한 날이라 그런지 관절마다 느껴지던 뻐근함과 통증. 스트레스로 인한 것들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요즘 내게 새로이 쌓이고 있는 쓰레기들일까. 요즘은 통 명상을 하지 않았다. 조금 더 일상 속에서 틈틈이 아주 짧게 하고 있기는 하지만, 깊이 들어가진 못했던 것 같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요가든 명상이든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그리고 유난히도 출근하기 싫다는 마음도 함께다 !
금요일, 11월 29, 2024
고양이들을 보고 왔다. 미셸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나를 반겨준다. 그것이 참 감사하다. 감동적인 고양이. 까미유를 만나는 것은 매일이 다르고 새롭다. 까미유는 어릴 때 나랑 헤어지게 된 것이니까 나랑 충분하게 애착형성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까미유랑 어떨 때는 참 가까운 것 같다가도 어떨 때는 아주 멀다. 그게 항상 가슴이 아프다. 지난 번만 해도 까미유가 내 머리와 얼굴을 핥아주었는데 오늘은 내게서 거리를 유지하는게 느껴져서 서운하고 서글펐다. 미안해. 아른거리는 까미유의 얼굴. 보고싶은 고양이들. 모든 순간 우리 고양이들이 그립다.
고양이들이랑 놀고 있는데 편지가 도착했다. 월말이 되면 받는 편지가 있다. 한달에 한번씩 편지를 주고 받는 친구가 생겼다. 지난 편지보다 글씨가 더 예뻐졌다. 내게 보내는 말들에 관심과 애정이 생긴 것 같아 괜히 뿌듯하고 기쁘다. 편지 마지막에는 내가 항상 '세라 드림'이라고 남기듯이 똑같이 '00 드림'이라고 써 있었다. 원래 마지막에 그런 걸 남기는 친구가 아니었는데, 내가 쓴 편지들에 영향을 받는 것일까. 모든 사람들에겐 좋은 어른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들에겐 어머니가 필요해-라는 노래가 있는데 그게 어쩌면 이와 같은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쓰는 말투와 글씨체가 누군가에게 보고 배울만 한 것이 된다는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생각한다. 그런 어른이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 모든 어린 시절에는 그게 필요하다.
내가 맺고 있는 모든 관계 속 내 역할에 대해서 떠올려보게 된다. 까미유에게, 새로 사귄 친구에게, 오래된 친구에게 나는 어떤 모습과 어떤 역할을 하고 있지. 점차 내가 관계 속에서 나눌 수 있는 것들이 내가 살아온 시간만큼 많아지고, 풍성해지는 것 같은데, 얼마 전에 그런 것들도 결국엔 내 마음과 몸이 건강하고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있었다. 너무 피곤했던 날에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누군가가 있었는데 말이 하나도 나오질 않았다. 다른 날의 나였다면 해주고 싶은 말과 질문들이 많았을 것 같은데 말이다. 어쩌면 이것을 위해서라도 내가 계속 건강하게 에너지를 유지하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직 그것을 위해서만이라도. 글을 쓰면서는 이런 말이 튀어나온다. 사실 아무런 동기나 이유없이 나를 건강하게 가꾸고, 나를 사랑하는 일은 쉽지는 않다. 적어도 나에겐 말이다.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조금 더 친절하기 위해서 나는 내 건강을 신경쓴다. 그런데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는 단순히 내가 아프지 않은 상태를 넘어서서 건강해야 한다.
이런 저런 마음들이 약간 바빠진 것일까 하는 질문이 들기도 한다. 또 그냥 알아차리고 바라보는 수밖에 없지.
수요일, 11월 06, 2024
따뜻한 맬팅초코와 니들엔젬의 껍질. 5도의 아침. 손에는 부숭부숭한 갈색털실로 만들어진 워머를 끼고 초록이 가득한 니트들을 입고. 너무 춥구 손은 따뜻하구. 이런 모든 조화가 기분 좋은 아침.
어제 일을 일찍 마치고 나왔더니 컨디션이 확연히 다르다. 저녁에 집에 도착해서 몇가지 일들을 하고도 밤이 늦지 않아서 참 좋았다. 매일 이 정도의 리듬만 유지하더라도 훨씬 좋을 것 같간 생각을 했다. 어제는 생각이 많았다. 정리할 것도 많고. 어찌저찌 집중을 하여 글도 써보았다. 마음을 다하였는데도 왠일인지 어제는 아침부터 느끼던 약간의 창피함이 하루종일 나를 사로잡은 것 같았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사실 창피함이다. 이 세상에 벌거벗은 채 내던져지는 기분. 어느 구석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 요즘은 이런 마음이 잘 없었다. 오랜만에 아주 살짝 그런 기분을 느낀다. 그럴 때 나는 머리를 흔들어제끼거나 혼잣말을 하곤 한다. 겨울이 다가오니까 많은 것들이 조금씩 변화하는 것 같다. 해가 짧으니까 슬프다. 너무 일찍 밤이 온다. 이럴 땐 모든 세상이 그냥 일찍 자고 덜 활동하는 것이 좋을까, 그럼에도 이전처럼 더 활동하는 것이 활력에 더 좋을까. 궁금해. 어쨌거나 어떤 모습이라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지금 내가 힘쓰는 것처럼 우울해지지 않기 위해 무력해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좋을까. 무엇이 더 좋을까를 생각하지 않을 순 없을까. 여러가지 격차들이 생기고. 그 사이에서 미슥미슥 소화가 안되는 것 같다. 몰라 몰라. 그냥 그 차이와 사이를 다 느껴보는 것은? 어제 쓴 글이 그런 말들이었다. 가치 판단을 하지 말아보자. ㅎㅎ 요가 선생님이 항상 해주시는 말씀. 목근육이 잘 풀어지지 않은 것 같아도, 숨이 깊게 쉬어지지 않는 것 같아도. 그냥 그대로 느끼기. 가치판단 하지 않기. 아무래도 너무 습관적인 나의 가치 판단. 그러네. 나는 모든 것을 결정하고 한가지만 받아들이거나 느껴야만 할 것 같은 압박을 종종 느끼는 것 같다. 내가 물흐르듯이 유연한 사고와 마음을 가질 땐 그렇지 않지만 갑자기 요 며칠 그런 압박들이 내게 돌아온 것 같다. 그냥 그 압박도 느끼고 흘려보내고, 결정한 것도 그대로 흘려보내고, 결정하지 못하는 것은 하지 못한 채로 흘려보내보아야지.
화요일, 11월 05, 2024
목요일, 10월 31, 2024
일요일, 10월 27, 2024
이제 집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춥다. 차가운 공기가 몸을 움츠리게 만든다. 날이 추워지면 나는 집에서 분홍색 플리스를 즐겨 입는다. 지금도 몸을 한껏 움츠리고 있다가 입고나니 바로 따스하다.
요즘은 매일 매일이 너무 바쁘다. 매주 꽉 채워진 일정들과 해야할 일들. 바쁜만큼 머리와 마음이 단순해지는 것 같다. 다채롭고 복잡스럽게 무언가를 떠올리고 볼 여유가 없는 것이 조금 서운하다. 그래서 오늘은 일기를 쓰기로 했다. 그치만 딱히 떠오르는 말들은 없다. 바쁘지만 모든 것들이 단조롭다. 그것이 싫으면서도 좋다. 그래도 요즘 금요일마다 수피 명상 수업을 듣고 있어서 덕분에 새로운 것을 배우는 시간이 있기는 해서 좋다. 요가도 하고, 세마 의식을 하며 몸을 움직이기도 하고. 몸의 균형이 한군데로 쏠렸다가, 다시 그 균형을 흐트러뜨리고 정렬하는 것을 반복하는 나날들이다.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우는 삶이구나 그래도 항상. 그리고, 한편 다시 집중하고 발전하고자 할 작업이 떠오르는 시기기도 하다. 그래서 단조로운 것을 경계하게 된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집중하고 싶은 것에 오롯이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오늘은 오지와 11월에 있을 공연에 필요한 작업물을 설치하기 앞서 약간의 준비를 마쳤다. 우리의 것들이 하나씩 생겨난다. 모든 것은 똑같지만 그 똑같은 것들이 계속 조금씩 더 깎이고, 정제되고, 말끔해지고, 정확해지고, 세밀해진다. 그것을 지켜보는 것이 재밌다. 사는 것은 그런 것인가보다. 요즘 그런 생각이 든다.
목요일, 10월 17, 2024
금요일, 10월 04, 2024
설레는 선물과 시작하는 10월. 새로운 인연들이 다가온다. 이미 알던 인연들에게는 새로운 전환들이 찾아왔다.
세이지를 샀다. 캐나다에서 샀던 세이지묶음은 너무 예쁘고 아까워서 쓰질 못해서 태울 수 있도록 3개를 더 샀다. 하나는 지량을 줬다. 하나를 태워 정화했다. 많은 것들이 맑아지고, 허물을 벗어 또 새로운 겹들로 세상을 마주하길. 새로운 인연들을 더 진심을 다해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지. 몸과 마음을 정돈하고, 머리를 맑게 깨우고 싶다.
10월을 시작하는 주간에 휴일이 많다. 오랜만에 우리집으로 들어오는 오전과 낮의 햇살을 느낄 수 있어서 너무 좋다. 포근하고 따스하고 예쁜 우리집. 지량과도 오랜만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일을 다니기 이전에는 정말 자주했던 일이었는데, 오늘 오랜만에 열띤 토론을 벌였네. 나의 상태에 대해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것.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대해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것. 그런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이야기들은 어디로까지 뻗어나갈 수 있을까.
일요일, 9월 29, 2024
La druidesse de la générosité
금요일, 9월 20, 2024
목요일, 9월 19, 2024
월요일, 9월 16, 2024
목요일, 9월 12, 2024
So Ham.
언제 이 세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더 초연해질까. 원리와 방법을 이해해가고는 있지만 아직 과정에 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식당 줄을 서 있었다. 귀여운 막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기특하고 현명하고 용감한 막내.
나도 더 용감하고 잔잔해지고 싶다. 나는 그런 소망을 가지고 있다. 여러가지를 해내고 여러가지를 보면서 하루를 보냈다. 유채님도 만났다. 먼 타국에서 만나는 친구들은 더욱 반갑다. 함께 오늘 저녁까지의 순간을 나누었고 우리는 모두 완전히 지친 채로 집에 돌아왔다.
내일은 조금 더 따뜻한 남쪽으로 이동한다. 조금 더 편안하고 따뜻하게 지내야지.
수요일, 9월 11, 2024

아름다운 빛깔의 날. 습기와 햇살이 많은 날의 색. 구름과 텅빈 하늘의 색. 들꽃의 색. 공원의 색. 고양이의 색.
옆집의 고양이와 아침에 빵을 사오는 길에 마주치곤 인사를 나누었다. 에펠탑 근처에서는 검은 고양이를 만나서 한참을 쓰다듬으며 놀았다. 항상 충만함을 주는 고양이. 사랑과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고양이.
오늘은 명소를 찾아다니는 날이었다. 몽마르뜨 언덕은 여러번 가보았지만 오늘은 처음으로 몽마르뜨 뮤제에 갔다. 정원이 참 예쁘거든. 한참 앉아서 오랜만에 누아제뜨도 마시고 키슈도 먹고 사진도 찍으며 정원에서의 시간을 보냈다.
쉴새 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예쁘고 바쁜 것들을 마주했다. 추억이 계속해서 새로운 시간과 만나고 겹쳐진다. 한참을 즐겁다보면 나는 어느샌가 모든 에너지가 추욱 빠져 있다. 그럴 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지. 로저 이노의 노래와 아이들의 말소리 웃음소리 양치하는 소리와 겹쳐지고 나는 거의 잠에 들었다.
화요일, 9월 10, 2024
월요일, 9월 09, 2024
일요일, 9월 08, 2024
토요일, 9월 07, 2024
금요일, 9월 06, 2024
나머지 짐들을 싸고, 금방 우리는 집을 나섰다. 가타쯔무리에 들려 우동을 먹었다. 언제나의 나는 냉우동을 먹지만 오늘은 왠지 날이 흐리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서 찬면에 뜨거운 국물 조합으로 가케우동을 먹었다. 오늘따라 어찌나 맛있던지 우리는 게눈 감추듯 순식간에 그릇을 비웠다. 싹싹. 운이 좋게도 우리는 오늘의 마지막 손님이었다.
가타쯔무리 근처에 바로 지량이 좋아하는 로스팅 카페가 있다. 증가로커피공방. 지량은 원두와 따뜻한 커피 한잔을 샀다. 베리류의 산미가 그득한 커피를 마시며 우리는 공항으로 떠났다.
공항으로 가는 길 동안에 우리는 서로를 미리 그리워했다. 공항에는 금방 도착했다. 나는 짐을 부치고 지량과 잠시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서로를 계속 부둥켜 안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지량은 내가 없는 집을 정말 서운하게 여긴다. 그런 모습이 정말 사랑스럽고 귀엽고 고맙다. 우리가 점점 시간이 갈 수록 곁에 있는 서로의 존재에 익숙해지고, 길들여져 가는 것이 좋다. 서로가 곁에 있음이 얼마나 즐거운지를 안다.
지량과 헤어지고 나는 탑승구로 향했고, 금방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노이즈캔슬링이 되는 이어폰을 귀에다가 꼽으니 편안했다. 가끔 나는 예전엔 어떻게 살았나 싶을 정도로 이 기능에 감사하곤 한다. 종종 끝없는 소음에 지칠 때가 있는데 그것들로부터 조금은 떨어져 공간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신기하다. 없던 거리가 생긴다.
비행기 안에서는 할 것이 별로 없다. 좁은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잠을 자거나 음악을 듣거나 비행기에 있는 게임을 한다. 나는 오색 크리스탈들이 무작위로 펼쳐져 있는 퍼즐판에서 같은 색의 크리스탈 세개를 일렬로 맞추는 고전 게임을 좋아한다. 이 비행기에서 기록된 최고 점수를 내가 갱신했다. 더 큰 점수를 내고 싶었지만 시간에 쫓기다가 끝나고 말았다.
난기류도 조금 만났다. 비행기를 타는 일은, 아니 어쩌면 사는 일은 내가 지금 당장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일과도 같다. 그것은 두려운 일이 아니라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생의 한 부분이다. 언제 어떻게 일어나도 사실 이상할 것은 없는. 나는 난기류를 만날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죽음의 순간을 상상한다. 언젠가는 두려워했던 적도 있었지만 이제 두렵지 않다.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나도 두렵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생에서 마주하는 다른 모든 일들과 다를 것이 없는 하나의 일. 무엇이 좋고 나쁘다고 여기지 않아도 되는. 그냥 낮과 밤 같은 것. 음과 양.
이런 생각을 하면서 비행기 안에서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기를 쓴다. 9530m의 고도에서 쓰는 일기다. 이번에 여행을 하는 동안 매일 그날의 일기를 쓰기로 마음 먹었다. 여행이 끝난 후에 다시 읽어보면 너무 재미있을 것 같다.
곧 하노이에 도착한다. 하노이에서 파리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탄다. 내일부턴 파리에서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화요일, 8월 06, 2024
일요일, 7월 21, 2024
일요일, 7월 07, 2024
일요일, 6월 30, 2024
a word of wisdom
으음~ ~ ~ 따라다라라라. 흥얼거리는 소리. 비오고 난 다음날의 공기. 시원하고 촉촉한 바람. 모기장도 열고 창문을 활짝 열어 모든 것을 받아들이자.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응원을 하고 응원을 받고. 상쾌한 일요일 아침을 보냈네! 감기에 들어 컨디션이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상쾌하다. 너른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야지. 너른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사랑해야지.
오늘은 6월의 마지막 날이네. 7월이다. 7월 8일은 마야력에서 새해다. 또 다른 새해가 다가온다. 또 다른 연말을 맞이하는 지금. 지나온 꿈들을 돌아보고 정리해야지. 올해 상반기를 돌아보는 일이자, 또 다른 한 해를 돌아보는 일이 되겠구나. 계속해서 오늘은 정말 그런 날이다. 이 바람이 너무 시원하고 맑게 느껴진다. 내 살결을 감싸는 이 촉감이 참 좋네.
금요일, 6월 28, 2024
화요일, 6월 25, 2024
토요일, 6월 22, 2024
yestermorrow
우리의 삶은 매일같이 더 자연스럽다. 모든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면서도 당연한 것이다. 우리가 서로 만나게 된 것은 너무나도 기적같은 일이지만 또한 그래야만 했던 일이다. 우리의 삶이 서로 만났을 때 우리는 우리의 삶을 서로에게 적응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다투고, 포기하고, 배웠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만나기 전에 우리는 이미 서로의 삶을 살고 있었다. 우리는 이미 우리였다. 우리는 이미 배웠으며, 이미 다투었고, 이미 모두 배웠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당신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공간에 가득한 소리를 느끼다가 나는 문득 이 공간에 가득찬 당연함을 인지한다. 그리고 그것을 생각한다. 이 자연스러움을. 내가 들이마시는 숨은 당신이 내뱉은 숨이며, 당신이 들이마시는 숨은 내가 내뱉은 숨이다. 우리는 서로의 숨 속에서 자신을 이룬다. 우리는 서로를 통해 자신을 이룬다. 이 공간에 당신이 만드는 소리가 가득하다. 몸을 움직일 때 나는 소리, 웃을 때 나는 소리와 코에서 나는 숨소리, 당신의 컴퓨터에서 나는 소리도. 그 모든 소리 안에 내가 있다. 나는 언제나 그 소리 안에 존재하고 있다. 나는 그 소리다.
공간을 느끼자, 당신을 느낀다. 오늘은 이미 자연스러워져 있었고, 내일은 이것이 더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오늘은 내일이에요. 어제 누군가에게 '오늘은 내일이예요'하고 말했다. 그는 나에게 당연하게 '오늘은 내일인가요?'하고 물었다. 그것은 그냥 흘러가는 날짜를 말하는 것과 같았다. 오늘은 23일이에요. 오늘은 23일인가요? 어제는 내일이에요.
this is tomorrow.
일요일, 6월 09, 2024
수요일, 5월 29, 2024
토요일, 5월 25, 2024
오랜만에 기가 쪽! 빠진 날. 이번주가 유난히 피곤하고 고되긴 했지만, 오늘은 그 고됨의 끝에 온 것 마냥 쭈욱 힘이 빠져버렸다. 집에 도착하기를 간절히 바랐네 오랜만에. 주말의 홍대는 정말 모든 것들로 가득하다. 소리도 너무 많고, 너무나 많은 에너지들과 접촉하느라 기가 잔뜩 쓰였네.
덕분에 집에 와서 일기를 쓰게 되었네. 우리집의 고요함이 너무나 그리웠다. 감사해라. 고요함을 느끼기 위해 지나온 소란스러움. 요즘 내 머리 속이 포화상태가 되어가는 것 같다. 다시 또 비워지기 위해서... 나에게 또 모든 것들이 들어오고 지나가고 통과하는구나. 힘들지만 어쩔 수 없지. 받아들여야지. 그리고 또 비워내야지. 게워내야지.
금요일, 5월 10, 2024
return to joy
빛과 바람이 완벽한 시간. 지량의 피아노 소리도 너무 아름다워. 모든 아름다운 순간들은 그 즉시 만끽해야 해. 모든 것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이동하고 있는 중이니까. 아름답다고 한마디 던졌던 순간과 지금의 빛과 소리는 또 달라져 있다. 새들이 날아간다. 세상은 조금 더 어두워졌다. 해는 막 산 뒤로 넘어갔다. 아직 산너머 동네는 아름다운 빛이 가득하겠지. 오늘 낮까지만 해도 너무 졸리고 피곤했는데, 집을 청소하고 쓰레기도 버리고, 할 일들을 하고 나서 그런 것일까, 마음도 아주 편안하고 기분이 좋다. 마음도 정돈이 되었는가보다. 어제 뽑은 카드가 계속 생각난다. return to joy. 기쁨으로 계속 돌아가야지.
금요일, 4월 26, 2024
the rhythm changes
집에 돌아오는 길에 정말 오랜만에 카마시 워싱턴의 the rhythm changes가 나왔는데, 재작년 4월이 떠오르면서 상쾌하고 기뻤다. 사랑하는 지량을 만났던 시간이 떠오르기도 했고, 오늘 친구와 친구의 연인을 보면서 큰 사랑과 편안함을 느끼고, 믿음을 느끼고, 두 얼굴에 서로의 얼굴을 담고 있는 것을, 서로의 시간을 담고 있는 것을 보면서 즐거웠네. 촬영을 하면서 하나둘씩 모인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너무 즐거웠어. 귀여워. 모두 사랑해. 우리 혜빈이와 용우 너무 축복해. 지은이, 문주, 윤슬, 가현이, 세희. 모두 사랑해.
수요일, 4월 24, 2024
밤 열한 시. 이즈음에 꼭 새벽녘에 꾸었던 꿈이 잘 떠오른다. 오늘은 버스에 앉아서 버스의 승객들을 찍는 사진작가를 만난 꿈을 꾸었다. 꽤 나이가 있고, 작품 활동을 많이 해온 유명한 작가였어서, 그 작업이 이제는 약간 허울만 남은 작업이 아닐까 하고 혼자 짐작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내가 탄 버스에 그 작가가 있었다. 나는 그 사람보다 앞에 앉아있었다. 아마 나도 사진에 찍힐 수 있는 자리였다. 나는 가운데 자리에 앉아있었다. 살짝 그가 어떻게 작업을 하는지, 어떻게 그 동네를 사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는 동네 친구인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다가 울었다. 그 눈물을 보자, 언제나 그 마을버스를 타고 마을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 모습을 찍는 그 작업이 순수하게 느껴졌다. 나는 내가 지레짐작하던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아 졸려. 잠이 쏟아지려고 할 때, 지난 꿈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이 시간이 아닌 저 시간에 닿고 있어서 겹쳐지는 현상인 걸까. 재밌다.
일요일, 4월 21, 2024
나의 장례식이 열린다. 우리 엄마가 보인다. 엄마는 온몸으로 울고 있다. 너무나 가엽고 불쌍하고 귀엽게 울고 있다. 내가 많이 보아왔던 모습이다. 가여운 우리 엄마는 나에게 연신 미안하다고 내가 불쌍하다고 말을 한다. 내가 아픈 것을 잘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한다. 나는 엄마의 귀에다가 대고 ‘엄마 이제 다 괜찮아, 다 괜찮아. 정말 괜찮아.’라고 말한다. 아빠가 다가온다. 아빠는 뜨거운 얼굴로 눈물을 흘리며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모든 말들도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미안하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눈물을 흘린다. 나는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 아빠. 나는 아빠의 귀에다가 대고 말한다. “아빠, 나는 이제 괜찮아. 고마워 말해주어서.” 나는 마음이 편안하다. 그리고 내 동생들이 들어온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내 동생 오지은. 지은이도 눈물을 흘리며 정말 너무나도 슬픈 표정으로 내 앞에 선다. 나는 같이 눈물이 나온다. 너무너무 눈물이 난다. 내 사랑하는 동생 지은이. 너무너무 사랑하는 내 동생 지은이. 지은이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몇 번이고 다시 살 수 있었고, 너무나 재미있고, 언제나 위안이 되었다. 지은아 고마워. 나는 지은이에게 말한다. 너무너무 사랑한다고, 너무너무 고마웠다고, 정말 정말 보고 싶다고. 그리고 그 옆에는 쪼르르 우리 귀여운 고양이들이 함께 있다. 미셸과 까미유. 나는 고양이들을 보며 가장 눈물이 많이 흐른다. 가여운 우리 아기들, 내가 우리 아기들보다 먼저 죽었네. 미안해. 더 많이 놀아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너무너무 사랑해. 너희들 덕분에 나는 사랑을 배웠어. 정말 정말 그 귀엽고 보드라운 털을 수천 번 더 쓰다듬고 싶고, 안아주고 싶고, 사랑스러운 향기를 맡고 싶다. 내가 다시 살 수만 있다면 미셸 몸에 내 얼굴을 파묻고 미셸과 함께 서로를 느끼고, 사랑을 느끼던, 내 몸과 마음이 온전해짐을 느끼던 그 어느날의 풍경으로 다시 가고 싶다. 하지만 이제 그럴 수가 없다는 사실이 가장 슬프구나.
그리고 이제 나의 반려자, 지량이 보인다. 지량은 너무나 슬퍼하고 있어. 나는 가슴이 너무 아프다. 지량에게 너무 미안하다. 하지만 지량도 내게 미안해한다. 지량은 내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운다. 우리가 함께 있는 시간이 이렇게 짧을 줄 몰랐다. 나는 지량을 안아주고 지량에게 괜찮다고 말을 한다. 지량이 너무 심하게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너무너무 사랑해.
가족들과 친구들을 모두 만났다. 모두 나에게 생전에 내가 듣기 좋아했던 말을 해주었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쏟아내기도 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듣는 것이 좋았다. 그 모든 것을 듣자 나는 편안해졌다.
관 속에 뉘인 나는 이제 화장터로 왔다. 이제 곧 불이 켜질 것이고, 나의 육체는 정말로 사라진다. 우리 엄마가 너무 심하게 울고 있다. 가여운 우리 엄마. 가족들이 우리 엄마를 안아주고 있다. 고양이들은 영문을 모른채 함께 있다. 하지만 함께 있어서 나는 더 행복하다. 이제 불이 켜진다. 내 몸이 서서히 사라진다. 나의 머리카락이 다 사라지고, 살결이 모두 사라지고. 이제 나는 뼈만 남았다. 그리고 이제 이 뼈들도 가루가 되었다. 나는 이제 가루가 되어 예쁜 그릇에 담긴다.
가루가 된 나를 가족들이 물이 있고, 풀도 있는 아름다운 풍경에 데리고 가서 뿌려준다. 나는 공기 중에 흩어진다. 나는 이제 정말 모든 먼지들과 바람과 하나가 되어 세상을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나는 너무나 자유롭다. 편안하다. 나는 더 멀리 멀리 날아 태양에 가 닿는다. 너무나 밝고 뜨거운 태양에 가 닿는다. 나는 태양의 한 조각이었다. 그게 본디 나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모두 다 본디 이 태양의 이 따스함의 한 조각이었음을 안다. 우리 엄마, 아빠, 지은이, 지량, 미셸, 까미유…. 모두가 결국에는 태양의 조각들로 돌아와 나와 하나가 됨을, 나와 원래 하나였음을 우리는 하나임을 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자 나는 이제 정말로 이 세상에 조금이나마 남겨둘 뻔한 아쉬움과 미안함이 모두 덜어진다. 아쉬울 것이 없었고, 슬퍼할 일도 아니었구나. 모든 존재가 다 나였고, 다 우리였다. 내가 너무 사랑하던 존재들도, 내가 미워하던 존재와 내가 용서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존재까지도.
나는 완전하게 죽고, 태양의 한 조각이 되자, 내가 이 모든 것을 깨닫게 되자 태양은 나에게 또다시 돌아갈 기회를 준다. 나는 다시 내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나는 그러자 본디 태양의 한 조각인 내가, 이 뜨겁고도 밝은 존재인 내가 이 세상에서 다시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알았다. 나는 이 밝음과 뜨거움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전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태어난다. 다시 내 몸이 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고, 내 몸에 숨이 가득해진다. 나는 다시 태어났다. 나는 태양의 한 조각임을 기억한 채로 다시 돌아왔다. 나는 더 밝고 더 아름답고 사랑이 가득한 존재임을 안다. 나는 다시 태어났다.
금요일, 4월 19, 2024
해의 사람
오늘 내가 좋아하는 부숭부숭하고 알록달록한 예쁜 털실들을 꺼내 꼬아서 뭔가를 만들었다. 화분을 꾸미고 싶었는데 한참 걸려 만들었건만 화분에 맞지 않았다. 지량에게 줬다. 아무 생각 없이 막 시작했는데, 오랫동안 앉아서 만들었다. 밝은 햇빛을 느끼면서. 나는 그 느낌이 좋아서 계속 해가 떠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지량은 더 길어질 거라고 말해주었다. 프랑스에 있을 때를 생각했다.
나는 해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일기를 쓴다.
난 요즘 활기를 되찾았다. 스트레스를 주는 것들이 몇가지 있지만, 꽤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작업만 잘된 다면 아주 정말이지 완벽할 것 같은 나날들이다. 하지만 꼭 그것이 완벽을 이루어주는 것은 아닐거야. 쓰고 나니 그렇다. 저녁이 되고 힘이 쭉 빠져서 저녁을 먹고는 넋을 잠깐 놓고 있었는데, 감자칩을 먹고 다시금 힘을 내는 중이다. 주절주절- 다 끄집어내고, 풀어내는 일기를 언제든 쓰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넋을 놓고 있었던 것치고는 꽤 손가락이 잘 움직여주고 있다. 요즘 말을 할 때, 주저하게 되는 부분이나 끊기는 부분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마음과 머리의 논지가 명확해지고 있는 것 같아서 기뻐졌다. 열심히 말을 꺼내고 만들어내고 싶어. 나는 다시 할 수 있을 거야. 나는 언제든 다시 할 수 있어.
화요일, 4월 16, 2024
토요일, 4월 13, 2024
수요일, 4월 10, 2024
화요일, 4월 02, 2024
쓰고 싶은 말들이 가끔씩 한마디씩 혹은 한 단어씩 혹은 한 이미지씩 있었다. 조각인지 뭉텅이인지 모으기가 힘들어서 한동안 아무것도 쓰지는 못하였다. 오늘은 그나마 손가락을 움직일 수가 있어서 써보기로 한다. 하지만 이 문장을 쓰자고 바로 또 한 이십 분 동안 다른 곳을 배회하다가 돌아왔다.
오늘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생각과 사진을 펼쳐 보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는데….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킨 것은 '극복'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장애와 관련한 교육 영상을 볼 일이 있었는데, 장애를 무의식적으로 부정적인 단어와 연결 지어 표현하는 것을 지양할 수 있도록 적절치 못한 표현을 짚어주고 있었다. 흔히들 쓰는…. 표현 "'장애를 극복하고' ---을 해낸다."와 같은 말을 예시로 설명하고 있었다. 사실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갑자기 그 설명에 깊이 공명했다. 장애는 질병과 같이 고쳐져야 하는 어떤 상태가 아니라 고착된 한 특성이므로, '극복한다'라는 표현과 함께 쓸 수 없는 말이었다.
그 설명을 들으며 나는 내가 주기적으로 겪는 어떤 상태를 떠올렸다. 나는 활기차고 밝고 명랑하게 지내다가도, 어떤 기간에는 느리고 어둡고, 힘이 없어진다. 내가 이제껏 '정상적인', '원래의' 나의 상태로 지내다가 아주 어쩌다가 내가 힘들고 지치게 되면, 우울의 시기가 찾아온다고 표현하곤 했는데, 그래서 나에게 찾아오는 그 우울의 상태는 항상 너무나 힘들고, 나뿐만 아니라 모두를 힘들게 하고 반드시 극복해야만 하는 어떤 상태였고, 그것은 나의 질병이었다. 때문에 그 시기의 나는 나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요즘 가장 두렵고도 괴롭고 싫은 것은 내가 오늘 나의 우울을 치료한다고 하더라도, 다시 언젠가 또 지친 몸에 우울이 찾아올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지금껏 살아온 날들이 너무 힘들었기에, 그 괴로운 시기를 몇 번 겪고 나니까 그것들을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다시 치료가 필요해지는 상태를 말이다. 이상하게 이번에 치료를 진행하는 중에 갑자기 내가 많이 힘들어졌다. 3월 한 달 동안에. 급격히 약간 힘겨워진 것 같다. 어찌저찌 약간 지친 나를 가누어보려고 했는데, 3월은 그러다가 금세 지나간 것 같다. 3월의 모든 꿈도 그러하고. 아무튼, 이 상태는 나에게 극복되어야 할 상태였다. 이때의 나는 내가 아니고, 이 상태의 내가 하는 생각과 말은 크게 중요하거나 어떤 효력이 있지도 않다고 생각했고 말이다.
그치만 우울의 상태가 찾아오는 시기를 예측하거나 대비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것이 어떤 뚜렷한 형태와 규칙을 갖는 것도 아니긴 하지만, 평생 내가 그것을 몇 번이고 마주해왔다면, 평생 몇 번이고 마주할 수 있는 질병이라면, 그것이 질병이라 할지라도 어쩌면 그것은 내가 가진 어떤 한 특성일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나를 이루는 어떤 특성이지 않을까. 힘이 쭉 빠져서 슬프고, 무감하고, 바보 같고, 불안한 내가 사는 그 시기도 온전한 나를 이루는 한 부분이지 않을까. 그럼 내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이 나의 상태를 극복해야 하는 상태가 아니라, 내가 가진 하나의 특성으로 받아들이고 그 특성에 맞게 나를 잘 다루어가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바로 지난 일기에만 해도 내가 '극복'이라는 단어를 썼더라. 근데 무언가를 언제나 극복해야만 하는 건 아닌가 봐. 내가 겪는 폭력적이고 비관적인 사고와 감정의 상태도 나의 한 부분일 뿐이었다. 고치고 뜯어내어 없는 것으로 만들 것은 아니었다. 나는 수많은 모습의 나로 이루어져 있고, 그 중에 나를 살리고 싶은 나와 나를 죽이고 싶은 나도 있을 뿐이다. 그 각각의 파동들이 나에게 다가올 때 나는 그들에 맞는 움직임으로 살면 되는 것이야. 힘이 없을 때는 힘없이 지내다 보면 다시 힘이 나는 시기가 오겠지. 그걸 도와주는 약이 있을 수도 있고, 선생님이 있을 수도 있고, 친구가 있을 수도 있고... 이렇게 생각하니 또 우울이 찾아오면 어쩌지-하는 두려움은 이제 가벼워졌다. 극복해야 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가벼워지네. 요즘 포켓몬고에 빠진 나를 지량은 그냥 그렇게 빠져있도록 내버려둔다. 그 상태가 평생의 상태가 아니니까, 빠져있다가 다시 또 다른 것으로 빠지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아니까. 지량이 하는 말들이 그런 말이었다. 극복해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는 것.
신기하게도 내가 어제인지 그제인지... '연약한'이라는 말에 대해서 또 곰곰이 생각하며, 하고 싶은 말이 조금씩 튀어나올 것 같았는데, 오늘 공명한 이 내용들과 닿아 드디어 이어졌다. 아마 울고 있는 나를 위로해 주고자 지량이 한 말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원래 강한 사람이라고. 그랬어.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내 이름을 떠올렸다. 내 이름은 세라야. 강해지라고 아빠가 그렇게 지었대. 세지라고. 세라. 그래서 나는 그래 맞어 나 원래 강한 사람인데 내가 왜 그러지- 하는 생각에 잠시 빠졌다가, 바로 내가 평생 잊지 못하는 친구의 말 하나를 또 떠올렸다. 내가 너무 유리 심장이라 망할 것 같다고 했던 말. 나는 그 말이 평생 원망스러웠고, 내가 연약하고 내가 소심하다고 느껴질 때 종종 그 말을 떠올리곤 했다. 그건 나를 다시금 강하게 움직이게 하는 어떤 원동력이 되기도 했지만, 때로 나 자신을 자책하는 말로 맴돌기도 했다.
그걸 나는 또 하루 종일 생각했다. 근데, 연약한 것은 꼭 죽나? 연약한 것은 꼭 망할까? 아니야. 연약한 것도 산다. 연약한 것도 다 해낼 수 있어. 연약한 것도 연약한 방식으로 살어. 연약한 것이 누군가를 구할 수도 있고, 사랑할 수도 있어. 그래서 나는 늘 연약한 것들을 위해 소리치는 사람이 되고 싶기도 했고, 그렇게 소리치는 생명들을 사랑하기도 했고 말이다. 장루이 선생님이 내 작업을 보며 'précaire'라는 단어를 알려주셨다. 그건 '연약한'이라는 뜻의 불어 단어다. 내 사진들에서 연약함을 보셨다. 그게 장면들이 녹아내리고 뭉쳐져서 그런 연약하고도 여리여리한 색감과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기도 했지만, 실제로 그것들을 통해 나는 모든 것들을 그렇게 연약하게 바라보고 싶기도 했고. 아무튼, 그 말을 듣고 나는 또 내 사진이 아니라 연약한 나 자신이 떠올라 눈물을 흘려버렸는데, 장루이쌤이 정말 당황해하셨다. 장루이쌤은 내 사진 속에서 연약함을 보시는 거지, 내가 연약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해주셨고, 또 연약하다는 뜻의 그 단어가 나쁜 것이 아니라고 거듭 말씀해주셨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아는데 그냥 눈물이 났다. 너무 웃겨. 그 날의 단어가 오늘 드디어 이어진다. 나의 이야기로. 오늘 나의 발견으로.
연약한 것은 연약해서 망하거나 죽는 게 아니야. 모든 것이 죽듯이 죽고, 모든 것이 살듯이 살어. 연약한 것은 연약하게 살면 돼. 강한 것은 강하게 살면 되고 말이야. 너무 웃기게도 나는 바로 또 포켓몬들을 떠올린다. 아아- 그래서 내가 포켓몬고를 하게 된 것인가 봐. 진짜 진짜 보기에도 강하고, 실제 능력치도 강력한 포켓몬들이 있는가 하면, 정말 이런 애가 어떻게 살아가지-싶을 정도로 연약하고 아무와도 싸우지 못할 것처럼 생긴 포켓몬들이 있다. 꼬지모같은 애들. 나뭇가지가 웃고 있는데 아무도 해치지 못할 것처럼 생겼어. 너무 하찮아서 귀여운 아이. 그런 애들이 많다. 하지만 모두가 각자의 특성으로 각자의 방식으로 살고 싸운다. 게을킹은 게으름으로 싸우고, 질뻐기는 오물을 던지면서 싸운다. 그러고 보니까 정말 웃기네. 포켓몬고를 내가 갑자기 시작하게 된데도 이유가 있었나 봐. 너무 웃겨. 불현듯 시작하여, 힘이 쭉 빠진 기간 동안 급격히 많이 했는데, 그 각자의 능력치와 특성들을 보는 게 요즘 나의 재미였거든. 하여간... 참 이런 내가 웃겨.
천혜향 두 개를 와라라 먹고 시작한 일기를 쓰다가 하나를 더 먹었어. 천혜향 세 개로 쓴 일기.
화요일, 3월 05, 2024
너무 많이 생각하기. 너무 많이 말하기.
너무 많이 생각해서 너무 재밌지만 때로는 불안해지기도 하는 것과 필요한 것만 떠올리고 조리있게 생각하고 말하는 것 중에 무엇이 더 좋을까. 너무나 재미있지만 가끔은 꼭 우울해진다면 그냥 그렇게 사는 편이 나으려나. 평안하지만 너무 평안한 나머지 무감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무래도 재미가 없지? 그것은 아무래도.. 그렇지?
요즘 그런 꿈을 꾸었고, 그런 생각들에 빠졌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데, 그것들을 정리하고 적응하고 극복하고 그렇게 충분히 천천히 느낄만한 그런 시간이. 그치만 혼자 그것을 지나갈 만한 시간을 갖는 게 지금 내게 적정한지도 모르겠고, 부담스럽기도 하고, 다른 것들로 내 시간과 공간을 채워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기도 하여 어찌저찌 중간의 것들을 택하며 중간의 길을 가고 있었는데 하여간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어떤 말과 화는 꼭 나를 겨눈 것 같았어. 맞지. 세상은 나의 거울이니까.
생각하지 않고 성찰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은 나쁜 걸까? 모르겠다. 내가 무감해지는 것이 우울인지, 우울의 치료로 인한 부가적 효과인 건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의사는 그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지? 그런 경우에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 건지 모르겠다.
계속 일기를 쓰고 싶었다. 영 분위기가 맞지 않아서, 기력이 고르지 않아서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마침 시무룩해지니까 일기를 쓸 수 있었다. 오늘은 바가바드기타 필사를 처음으로 빼먹었다. 34일째인 오늘. 지난 번 요가수트라 필사 명상을 하면서 한번 겪은 생각과 마음들이라 그런지, 이번에는 필사를 빼먹게 되더라도 크게 마음이 동요하지 않는다. 오늘도 그래서 열두시가 넘어가는 것을 그냥 무덤덤하게 지켜보았다. 오늘 회사에 1분 지각을 한 것과 비슷했다. 오랜만에. 필사 명상을 빼먹는 것에 크게 마음이 동요하지 않게 된 것도 있지만, 전보다 필사 명상을 하는 일이 훨씬 수월하게 느껴지게 된 것도 변화다. 글씨 쓰는 것이 편안하고 편하고, 자연스럽다.
매일 내가 쓰는 구절들은 마치 일기처럼 오늘 내가 알아야 할 내용을 전해준다. 매일 크리슈나가 내게 해주는 말이다. 마침 오늘도 그런 말씀이었다. 자신에 의해 자신을 높이고 자신을 비하하지 말지어다. 자기야말로 자기의 친구이며 자기야말로 자기의 적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 자신을 비하하려는 생각을 하려고 하던 참에 내 손이 그 구절을 쓰게 되었다. 정말 웃기게도 오늘 어쩌다가 침착맨이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자꾸 진다는 누군가에게 언제나 그렇듯 흘러나오는 자연스럽고도 즉각적인 말을 내뱉은 것을 보았는데, 그게 꼭 크리슈나가 하는 말 같아서 생각이 났다. 자기와의 싸움이니까 이긴 것도 나라는 말이었다. 너무 웃긴데 감탄스러웠다. 정말.
아빠랑 어렸을 적에 우리나라의 명산을 다니곤 했는데, 힘들게 산을 오르던 어느 날에 아빠가 내게 등산을 하는건 자기와의 싸움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던 그 순간을 종종 떠올린다. 무언가 힘든 것을 하고 있을 때에 힘든 하루를 지나가고 있을 때에 가끔 떠오른다. 산을 오르는 것은 나를 걷는 것과 같은 것이구나. 나를 오르는 것. 나를 걷는 것.
오랜만에 일기를 쓰니까 너무 좋네. 말라카이트도 너무 좋고. 로저와 브라이언 이노 형제들 앨범 중에 mixing colors라는 앨범을 한창 듣던 때가 있었는데, 오늘 오랜만에 그 앨범에 들어있는 malachite가 흘러나왔고 새삼스럽게 너무 좋았다. 새롭기도 했고. 집에 와서 윤슬이가 선물해 준 말라카이트를 만지작거리고, 그 반짝이고 만질만질한 표면 위에 비추는 빛을 바라보았다. 일랑일랑 향을 맡고, 다시 초록빛의 앨범을 들으며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일기를 쓰는데, 마음이 좋아졌다. 다행이다. 다행.
토요일, 2월 17, 2024
우리집에 콘트라베이스가 생겼다. 현님의 콘트라베이스. 우리가 종종 즉흥 연주를 하고, 음악을 만드는 걸 보고, 우리에게 콘트라베이스를 맡기면 재밌게 잘 갖고 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그래서 우리집에 빌려주러 현님이 왔는데, 우리가 콘트라베이스를 만지고, 소리를 내는 걸 보고 현님이 너무 기뻐했다. 나도 오랜만에 너무 신나고 기뻤다. 어제랑 오늘 지량과 한번씩 함께 연주를 했다. 지량은 피아노를 치고, 나는 콘트라베이스를 치고. 연주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바로 소리에 몰입하게 된다. 그 진동이 나를 아주 편안하게 만들어주고, 계속해서 그 소리를 듣고싶게 만든다. 아아아. 재밌어.
햇살이 가득한 오후. 아주 따스하고 창문을 열어두어 햇살과 바깥 공기가 함께 느껴진다. 먼지 일어나는 소리들도. 공양이가 내 다리 위에서 꾹꾹이를 하고 편안함을 느끼고 나는 잠이 솔솔 오고. 그때 갑자기 느껴지는 이 느낌. 정말 너무나 오랜만에 느껴지는. 내가 살았던 어린 시절의 어떤 순간들 계절들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것은 어떤 감각인지 명확하게 설명되긴 어렵다. 맡아지는 냄새같기도 하고, 어떤 기분같기도 하고, 어떤 인상 혹은 어떤 빛깔의 정도, 이 모든 것이 합쳐진 여러가지 가지 감각의 총체같기도 하고 말이다. 이런 것도 플래시백일까 어떤 사건이나 사람, 기억이 떠오르는 것은 전혀 아닌데, 어떤 시기의 총체적 느낌 어떤 시간의 감각이 느껴지는 것이다. 이 따뜻하면서도 시원한 공기. 햇살은 따뜻한데 아직 피부에 닿는 공기는 공기는 차가운 그런 시간.
모든 기억들이 마치 일어나지 않았던 일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는데 오직 그것은 기억이라는 형태로만 떠올려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느껴지는 착각. 그러나 오늘과 같이 마주하는 이런 순간에 나는 내가 살았던 그 모든 시간들이 실재하였음을 알게 된다.
목요일, 2월 01, 2024
터키의 밤은 굉장히 아름다워. 아야 소피아 성당과 블루모스크가 마주고보고 있고 유럽의 불빛과 아시아의 불빛이 한데 섞여 있거든. 터키에 있으면서 너의 생각이 많이 났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랑 터키는 많이 닮은 것 같았거든. 모든 것들이 혼재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모든 개체가 각각의 빛과 멋을 잃지 않고 있는 모습이랄까?
월요일, 1월 22, 2024
어딘가에, 누군가에 우리의 신체가 위치해 있지 않으면서 함께 존재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전혀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내가 했던 말이다. 오늘 꿈에서.
아침부터 귀찮음과 분노, 불만 등이 떠올랐다. 그것들이 쉬지 않고 밀려들려고 하자 그 감정들을 받아들이고, 사랑의 에너지로 다시 전환하기 위해 명상을 했다. 머리가 복잡해지고, 마음이 괴로워지는 이유는 내가 현존하지 않음으로써 일어나는 일들이다. 내가 귀찮다고, 괴롭다고 생각하는 일은 현재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니었고, 분노의 감정 또한 내게 현재 직접적으로 일어난 상황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왜 그곳에 가있지? 나는 현재 지금 여기에 있는데-하고 생각을 생각을 하다가 현존하기 위해 호흡하기 시작했다. 현재의 호흡에 집중하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었다. 그러면서 이 버스 안에 있는 모두의 두려움과 고통, 짜증스러움을 들이마시고, 내 안에서 그것들을 정화시커 오직 따뜻하고 편안한 숨으로 다시 내뱉었다. 그렇게 정화된 숨을 다른 이들이 들이마쉴 수 있도록. 그렇게 호흡하다가 오늘 꿈 속의 말이 떠올랐다.
내가 현재 위치하고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 닿거나 존재할 수 있는 방법. 오늘 아침처럼 내가 현존하지 않음으로써 일으킬 수 있는 고통도 있었지만, 그 방법을 다르게 사용한다면 나는 버스 안에서도 내 동생의 방에 들어가 동생을 쓰다듬고, 미셸과 까미유가 누워있는 곳에 가서 그들을 어루만질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생생하게 떠오르는 내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곳에 닿아 그들을 어루어만지고, 아픈 곳을 주물러주었다.
그러고 보니 나를 괴롭히는 상황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도 아니고 내가 지나왔거나 혹은 일어나지 않은 그러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네. 존재하지 않는 것에 닿으려고 했던 것이니, 실재하지 않는 괴로움을 내가 만들어낸다는 것이 그로구나. 반대로 내가 내 동생과 고양이에게 닿는 일은 현재 그들이 있는 곳으로 내가 정말 가 닿는 일이었다. 정말로 닿아 내가 사랑을 줄 수 있는 체험.
화요일, 1월 09, 2024
maha vakya
일요일, 1월 07, 2024
일요일, 12월 31, 2023
지난여름, 지량과 뉴욕을 여행하며 느낀 것. 그 복잡함과 더러움, 폭력성을 바라보다가 그것들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얼마나 내가 더 크게 용서해야 하는지, 더 크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배웠던. 그렇게 더 큰 사랑을 배우기 위해서는 더 큰 역경을 건너야 한다는 것을. 복잡하고 밀도가 높은 서울에서 산 나의 나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겪은 폭력과 고통. 그 사이에서 내가 살고 지나야 했던 과정들이 있었음을 이제는 애쓰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보리수 아래 앉아서 명상하고 있는 누군가가 그 안에서 넘어서고 있는 두려움과 고통의 상상이었을지도 몰라. 그것을 하나 넘으면 큰 안도가. 그리고 더 큰 고통을 넘으면 그보다 더 큰 안도가 있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두려움을 한 꺼풀씩 벗겨내고 나면 더 가벼워진 나를 본다. 본래의 순수한 내가 있음을 알게 된다. 서울에 있다가 방콕에 오니 내가 이 세상과 연결되어 있음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진다. 눈으로 보이는 모든 것들이 눈을 감으면 모두 사라지는 것이 왜인지를. 당연하여 인식한 적이 없던 그 현상을 인지하니 세상을 이루는 것들은 내가 눈으로 인식하고 있는 저 전깃줄도, 벽도, 빨래 더미도, 사람들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눈을 감으니, 그것들이 모두 보이지 않았다. 내 눈이 보는 것이 진정으로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의식적으로 내가 닿으려고 하지 않아도 나는 이미 연결되어 있었다. 이 땅의 일부로 존재하는 나를 느낀다. 이 땅이 나임을 느낀다.
아주 많이 덜컹거리는 작은 버스를 타고 있다. 버스를 타고 있는 내 몸이 거세게 흔들릴 때마다 내 안에 있는 물이 떠올랐다. 덜컹일 때마다 흔들리는 물결과 이리저리 튀는 물방울. 그것은 참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했지만 이내 곧 그걸 지켜보다가 흔들리는 몸 안에서도 고요하게 담겨 있는 물을 그려볼 수 있었다. 언제 어디서라도 고요하게 존재하는 그러나 여전히 유연하고 부드러운 물을 본다. 이 고요한 물을 기억하며 서울에서 살 생각을 한다. 나무 자세, 브륵샤 아사나를 하는 이유를 요즘 들어 많이 생각했는데, 그것을 오늘 더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집중한다면 한 발로도, 정수리로도 이 땅 위에 곧게 설 수 있음을. 그렇게 울퉁불퉁한 땅 위를 걸어도 고요한 물을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