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12월 20, 2024

갑작스럽게 맞이한 쓸쓸함. 오늘 아주 오랜만에 여유로운 하루를 맞이했다. 준비되지 않은 여유로움이라 쓸쓸했다. 정신은 꽤 맑다. 잠을 아주 많이 잤다. 맑지만 아무 것에도 흥미를 느낄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다. 텅 빈 느낌. 아무리 텅 빈 느낌이었어도 그래도 지량이 있으면 항상 나는 어떤 안정감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벌써 보고픈 내 사랑. 나에겐 긴 겨울방학이 되겠군. 막막하고 심심한 겨울. 그래도 판화하는 날이 있어서 너무 다행이야. 내일은 판화 스튜디오 가는 날. 아무 것에도 흥미를 느낄 수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판화 작업만큼은 재밌어서 다행이야. 그리고 사진도 계속 계속 찍고 싶다. 재밌는 풍경이 펼쳐지지 않는 것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말이다. 겨울은 여러모로 아쉬운 계절이다. 언제나 여름인 것보다는 나을까? 여름이 있고 겨울이 있는 것이? 모르겠다. 
이렇게 말해놓고 조금전 엄마랑 친구들이랑 잠시 떠들었더니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심심하고 쓸쓸하다고 써놓은 글자가 무색해질만큼. 히히 벌써 쓸쓸하지 않아. 시끄럽고 웃긴 것들을 봐야지. 

목요일, 12월 12, 2024

永劫回帰




오늘은 잠을 많이 설쳤다. 지량이 감기에 걸린 것 같다. 속상해라. 집에서 작업만 열심히 했는데 오히려 그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졌나 ? 그런데 나도 오늘 아침에 일어나는데 목이 간지러워서 소영이가 준 독일 목캔디를 두 알 먹었다. 그러니 좀 가라앉았다. 

괜시리 머리가 맑을 때 일기가 쓰고 싶어서 창을 켰다. 안경은 쓰지 않고 있다. 일하기 싫다는 뜻이다. 어제 밤에 jonah yano 앨범을 들으며 편지를 썼다. 오랜만에 맘에 드는 앨범을 발견해서 좋다. heavy loop는 종종 듣게 될 것 같다. 예전에 엽서 가게에 가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샀던 꼬마와 눈사람이 있는 설경이 담긴 카드에 썼다. 귀여워. 친구가 그 카드를 보고 기뻐할 모습이 상상된다.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지만 항상 약간은 수수께끼를 내듯이 편지를 쓰게 되는 것이 간질간질하면서도 재밌다.

일기를 쓰면서 이 노래를 첨부하려고 제목을 다시 보는데 한자로 영겁회귀라고 쓰여있었네. 요즘은 이 말을 잘 쓰지 않지만 내가 한동안 빠져있었던 단어다. 모든 것이 더욱 가벼워졌다. 심각하지 않은 것이 좋다. 영원회귀든 카르마든 무어든. 

어떤 것의 효과인지는 모르겠지만 머리가 맑아서 기분이 좋다. 오늘 아침은 ! 그래서 이리저리 굴러가는 아무렇게나의 일기를 쓴다. 한달에 한번씩 보내는 편지처럼 내가 블로그에 쓰는 일기가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느껴진다. 하긴 초등학교 때에도 일기장에 이름을 붙여 친구에게 편지를 부치는 것처럼 쓰곤 했었다 . 여러명이 있었다. 안네의 일기를 감명깊게 읽고 난 후 그런 식으로 일기를 썼던 기억이 있다. 내 첫번째로 이름을 지어주었던 일기장 이름도 키티다. 지금 여기에 쓰고 있는 일기는 더 많고 다양한 친구들에게 쓰는 편지다. 누군지 모르지만 내 친구들, 모든 이름들 안녕.

수요일, 12월 11, 2024

왠일인지 일기를 쓸 시간이 없다. 저녁이 되고 집에 도착하면 밥을 챙겨 먹고 금세 졸려져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오늘은 저녁에 해야할 일들이 좀 있어서 커피를 벌컥 벌컥 마셨더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건 내가 원했던 부작용이 아닌데 ! 

느긋-하게 작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은 요즘이다. 새로 산 카메라도 계속 갖고 놀고 싶은데 주말만 기다리고 있다. 그치만 주말도 너무 바쁘다. 도자기, 판화...! 이래저래 밀린 일들. 

오늘은 정말 잊으면 안되는 일이 있어. 편지를 써야 한다. 이건 미룰 수 없는 일이다. 매일 필사를 했던 일상이 떠오른다. 어떻게 매일같이 해냈을까? 돌이켜보니 대단한 일이다. 이건 한달에 한 번 보내는 편진데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오는 것 같지. 그렇다고 편지를 쓰는 것이 숙제처럼 느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아주 설레고 기쁜 일이다. 하지만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담고 싶은 마음에 고민을 많이 하고 연습을 꼭 하고 편지를 쓴다. 

지난 편지에서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느냐고 물었던 친구에게 뭐라고 답장을 쓸지 모르겠다. 너무 어지러운 상황이라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야할지, 소식은 알고 있을지, 어떤 생각들을 갖고 있을지, 내가 아무렇게나 이야기를 펼쳐도 되는지 고민이 된다. 대신에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친구가 추천해 준 책이 있는데 핑계를 대자면 시국이 심난하여 책을 다 읽지 못했다. 천천히 읽어야지. 여행을 가기 전에는 다 읽게 될까. 그렇지 못하면 비행기 안에서 단숨에 읽을 순 있을 것 같다. 

얼마 남지 않았으면서도 멀게만 느껴진다. 겨울 휴가. 그것만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도 멀어보여서 가슴이 답답하다. 가벼운 옷을 입고 가벼운 몸으로 기도하고 요가하고 사진을 찍고 싶다. 설레면서도 약간은 울적하다. 이렇게 쓰고 나니 조금 더 울적해진 것 같다. 

일요일, 12월 01, 2024

클로드 ai 에게 내 블로그 글을 보여주고, 문체를 따라 일기를 하나 써달라고 부탁했다. 


일요일, 12월 2, 2024

오늘도 내 안의 풍경은 고요하다. 창밖으로 흐르는 겨울의 빛, 그 차가운 공기가 내 내면을 스치고 간다. 요즘 내 삶은 마치 겨울 풍경 같다. 단조롭지만 깊이 있는, 침묵의 시간들.
아침부터 수피 명상 수업의 여운이 남아있다. 몸의 균형을 찾아가는 작은 움직임들. 한쪽으로 기울었던 내 마음의 추가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듯하다. 무언가가 녹아내리고, 다시 모양을 갖추는 그 과정이 신비롭다.
오늘 오후, 작업실에서 지난 프로젝트의 흔적들을 정리했다. 모든 것은 똑같으면서도 조금씩 다르다. 그 미묘한 변화를 발견하는 순간, 나는 미소 지었다. 사는 것이란 이런 것일까. 끊임없이 다듬어지고, 정제되는 과정.
겨울은 내면을 들여다보기 좋은 계절이다. 바깥은 차갑지만 내 안은 점점 따뜻해진다. 작은 깨달음들이 쌓이듯, 내 마음속 풍경도 천천히 변화한다. 지난날의 딱딱했던 껍질들이 부드럽게 녹아내리고 있음을.

오늘 밤, 담요를 온몸에 두르고 앉아 이 글을 쓴다. 차가운 공기와 따뜻한 내면, 그 경계에서 나는 그저 존재한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모든 것.


정말 재밌네. 무언가가 녹아내리고, 다시 모양을 갖추는 그 과정이라. 지난날의 딱딱했던 껍질들이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한편 어떤 껍질들은 새로이 생긴다는 것이 이 일기와는 다르게 쓰고 싶은 점이다. 요즘 내가 받는 스트레스와 불안과 걱정들은 그간 내가 경험하지 않았던, 아니 내게 조금은 멀리 있어서 멀찌기서 살짝 끄트머리만 보이던 것이 나타난 것만 같다. 에고고 - 그런 것은 정말 싫다. 어쩌겠어- 받아들여야지 하다가도 다시 싫고 그렇다. 그렇다고 내가 불안에만 쌓여있는 것은 아니고 대체로 아주 평안하다. 오히려 그것이 마음에 안들기도 하다. 

어제 힙노시스테라피의 공연에 다녀왔다. 짱유는 폭발적인 에너지로 무대를 이어갔고, 관객들도 그 에너지를 함께 느끼고, 또 자신들만의 에너지를 방출하며 그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짱유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공연에 와서 똥을 투척하라고 했다. 그간 살면서 받았던 모든 스트레스들을 여기서 다 풀고, 그 똥을 자기한테 다 던지라고 했다. 똥은 자기에겐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그 말은 정말 멋있었다. 그리고 그간 받은 모든 스트레스를 여기서 다 풀고, 나가서 다시 새로운 스트레스를 받으라고 말했다. 그 말에 모두가 웃었다. 모든 스트레스를 여기서 다 풀고, 나가서 새롭게 다시 깨끗한 마음으로 다시 살으라고 말하는 줄 알았더니, 새로운 스트레스를 다시 받으라고 했다. 같은 말이긴 했다. 표현이 다를 뿐. 마음에 있는 쓰레기들을 정리하고, 비워내면 그 비워진 상태로 깨끗하고 말끔한 상태로 살아가지는 것이 아니라 비워진 자리에 또 다른 것들이 채워지고 먼지가 쌓이는 그런 모습. 절대로 내가 어떤 트라우마든, 감정이든 비워낸다고 해서 내가 이제 더이상 부처님처럼 살아가지는 것은 아니더라. 다시 무언가가 채워진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여느 영성 연구자나 수행자들이 하는 말과 결국에 똑같은 말을 짱유가 하고 있었다. 그렇게 보면 세상 살이는 그렇게 어려울 것도 없다. 짱유의 그 뜨거운 공연장처럼 쓰레기를 비워낼 수 있는 그런 통로가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기도 하고 말이다. 

몸이 자꾸 붓는다. 불편하고, 그 불편함이 느껴지면 기분도 좋지 않다. 요즘 요가를 하면서 몸의 순환이 더 활발히 이루어져 막혀있는 것들이 풀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통증이 많았던 주말이다. 입 속에 난 구내염으로 인한 목과 턱쪽의 통증, 약간의 근육통, 그리고 오늘 습한 날이라 그런지 관절마다 느껴지던 뻐근함과 통증. 스트레스로 인한 것들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요즘 내게 새로이 쌓이고 있는 쓰레기들일까. 요즘은 통 명상을 하지 않았다. 조금 더 일상 속에서 틈틈이 아주 짧게 하고 있기는 하지만, 깊이 들어가진 못했던 것 같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요가든 명상이든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그리고 유난히도 출근하기 싫다는 마음도 함께다 !

금요일, 11월 29, 2024

고양이들을 보고 왔다. 미셸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나를 반겨준다. 그것이 참 감사하다. 감동적인 고양이. 까미유를 만나는 것은 매일이 다르고 새롭다. 까미유는 어릴 때 나랑 헤어지게 된 것이니까 나랑 충분하게 애착형성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까미유랑 어떨 때는 참 가까운 것 같다가도 어떨 때는 아주 멀다. 그게 항상 가슴이 아프다. 지난 번만 해도 까미유가 내 머리와 얼굴을 핥아주었는데 오늘은 내게서 거리를 유지하는게 느껴져서 서운하고 서글펐다. 미안해. 아른거리는 까미유의 얼굴. 보고싶은 고양이들. 모든 순간 우리 고양이들이 그립다. 

고양이들이랑 놀고 있는데 편지가 도착했다. 월말이 되면 받는 편지가 있다. 한달에 한번씩 편지를 주고 받는 친구가 생겼다. 지난 편지보다 글씨가 더 예뻐졌다. 내게 보내는 말들에 관심과 애정이 생긴 것 같아 괜히 뿌듯하고 기쁘다. 편지 마지막에는 내가 항상 '세라 드림'이라고 남기듯이 똑같이 '00 드림'이라고 써 있었다. 원래 마지막에 그런 걸 남기는 친구가 아니었는데, 내가 쓴 편지들에 영향을 받는 것일까. 모든 사람들에겐 좋은 어른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들에겐 어머니가 필요해-라는 노래가 있는데 그게 어쩌면 이와 같은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쓰는 말투와 글씨체가 누군가에게 보고 배울만 한 것이 된다는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생각한다. 그런 어른이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 모든 어린 시절에는 그게 필요하다. 

내가 맺고 있는 모든 관계 속 내 역할에 대해서 떠올려보게 된다. 까미유에게, 새로 사귄 친구에게, 오래된 친구에게 나는 어떤 모습과 어떤 역할을 하고 있지. 점차 내가 관계 속에서 나눌 수 있는 것들이 내가 살아온 시간만큼 많아지고, 풍성해지는 것 같은데, 얼마 전에 그런 것들도 결국엔 내 마음과 몸이 건강하고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있었다. 너무 피곤했던 날에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누군가가 있었는데 말이 하나도 나오질 않았다. 다른 날의 나였다면 해주고 싶은 말과 질문들이 많았을 것 같은데 말이다. 어쩌면 이것을 위해서라도 내가 계속 건강하게 에너지를 유지하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직 그것을 위해서만이라도. 글을 쓰면서는 이런 말이 튀어나온다. 사실 아무런 동기나 이유없이 나를 건강하게 가꾸고, 나를 사랑하는 일은 쉽지는 않다. 적어도 나에겐 말이다.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조금 더 친절하기 위해서 나는 내 건강을 신경쓴다. 그런데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는 단순히 내가 아프지 않은 상태를 넘어서서 건강해야 한다. 

이런 저런 마음들이 약간 바빠진 것일까 하는 질문이 들기도 한다. 또 그냥 알아차리고 바라보는 수밖에 없지. 

수요일, 11월 06, 2024

따뜻한 맬팅초코와 니들엔젬의 껍질. 5도의 아침. 손에는 부숭부숭한 갈색털실로 만들어진 워머를 끼고 초록이 가득한 니트들을 입고. 너무 춥구 손은 따뜻하구. 이런 모든 조화가 기분 좋은 아침. 

어제 일을 일찍 마치고 나왔더니 컨디션이 확연히 다르다. 저녁에 집에 도착해서 몇가지 일들을 하고도 밤이 늦지 않아서 참 좋았다. 매일 이 정도의 리듬만 유지하더라도 훨씬 좋을 것 같간 생각을 했다. 어제는 생각이 많았다. 정리할 것도 많고. 어찌저찌 집중을 하여 글도 써보았다. 마음을 다하였는데도 왠일인지 어제는 아침부터 느끼던 약간의 창피함이 하루종일 나를 사로잡은 것 같았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사실 창피함이다. 이 세상에 벌거벗은 채 내던져지는 기분. 어느 구석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 요즘은 이런 마음이 잘 없었다. 오랜만에 아주 살짝 그런 기분을 느낀다. 그럴 때 나는 머리를 흔들어제끼거나 혼잣말을 하곤 한다. 겨울이 다가오니까 많은 것들이 조금씩 변화하는 것 같다. 해가 짧으니까 슬프다. 너무 일찍 밤이 온다. 이럴 땐 모든 세상이 그냥 일찍 자고 덜 활동하는 것이 좋을까, 그럼에도 이전처럼 더 활동하는 것이 활력에 더 좋을까. 궁금해. 어쨌거나 어떤 모습이라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지금 내가 힘쓰는 것처럼 우울해지지 않기 위해 무력해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좋을까. 무엇이 더 좋을까를 생각하지 않을 순 없을까. 여러가지 격차들이 생기고. 그 사이에서 미슥미슥 소화가 안되는 것 같다. 몰라 몰라. 그냥 그 차이와 사이를 다 느껴보는 것은? 어제 쓴 글이 그런 말들이었다. 가치 판단을 하지 말아보자. ㅎㅎ 요가 선생님이 항상 해주시는 말씀. 목근육이 잘 풀어지지 않은 것 같아도, 숨이 깊게 쉬어지지 않는 것 같아도. 그냥 그대로 느끼기. 가치판단 하지 않기. 아무래도 너무 습관적인 나의 가치 판단. 그러네. 나는 모든 것을 결정하고 한가지만 받아들이거나 느껴야만 할 것 같은 압박을 종종 느끼는 것 같다. 내가 물흐르듯이 유연한 사고와 마음을 가질 땐 그렇지 않지만 갑자기 요 며칠 그런 압박들이 내게 돌아온 것 같다. 그냥 그 압박도 느끼고 흘려보내고, 결정한 것도 그대로 흘려보내고, 결정하지 못하는 것은 하지 못한 채로 흘려보내보아야지. 

화요일, 11월 05, 2024

기억을 잊고 언어를 잊고 모든 것을 잊고 나는 바보가 된 것 같다. 내가 무얼할 수 있을까-라는 말이 정말 오랜만에 튀어나왔다. 왜 그렇게 나는 그 말을 많이 하면서 살았을까. 해야한다면 무얼 해야하는 것이며, 왜 그래야만 했던 것일까? 누가 그러라고 했지. 그런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전에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했지만, 내가 경험하는 것이 결국에는 무로 귀결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 나는 내가 할 말을 잊었다. 이유도 잊었고. 그래야만 한다는 것은 없었으니까. 단편적인 어떤 감상과 깨달음이 무심하게 경험되었다. 
선생님께 내가 너무 무감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럴 수 있다고 했다.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이 조화롭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너무 예민하게 올라왔던 것들을 둥글게 누르는 식의 치료인거니까. 그걸 선택하는 거라고 했다. 삐죽삐죽하고 아프지만 그냥 그렇게 사는 것과 그것이 너무 힘드니까 둥그렇고 납작하게 누르는 것. 더 편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내가 덜 힘든 것. 나는 무엇이 덜 힘들까? 감정적으로는 평안하지만 모든 것들이 그저 그렇게 둥그렇고 납작하게 느껴지는 삶.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고 큰 에너지가 소모되지만 모든 것들이 특별하고 크고 비극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삶. 그건 내게 너무 어려운 선택권이다. 결국엔 더 편해지고 싶었지만, 무감해지는 내가 바보같아서 그게 싫다. 그치만 너무 힘들어져도 바보가 된다. 너무 힘들어지면 기억이 사라지고, 말이 느려지고, 말을 잃게 된다. 지금은 힘들진 않지만 다채로운 언어가 만들어지진 않는다. 어떻게 해도 언어가 사라지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한다. 

목요일, 10월 31, 2024

일찍 눈이 떠졌다. 왜일까. 몇 번이고 깼고, 꿈도 열심히 꿨고. 몇 번이고 깨는 바람에 그냥 일찍 일어나버렸다. 그러고 보니 오지네 집에서 잘 준비를 해야 했기에 일찍 일어난 것이 도움이 되었다. 몇 가지 간단한 짐들을 챙기고 일찍 나와서 빵 오 쇼콜라도 사 먹었다. 너무 맛있어. 아침에 먹는 빵 오 쇼콜라는 내게 순수한 즐거움이다. 히히 그러고 블로거에 들어왔다. 통계를 종종 들여다본다. 누군가가 들어온 흔적이 숫자로 남는데 그것을 보면 내 글을 읽은 것이 누굴까 항상 궁금해진다. 내 친구들일까, 모르는 사람일까, 어떻게 이 글을 찾았을까... 아무도 흔적을 남기고 가진 않기 때문에 숫자만 남는데, 내가 예전에 쓴 일기들의 조회수가 올라갈 때 나도 오랜만에 들여다보지 않았던 일기들을 클릭해서 읽어본다. 오늘은 미로에 대한 일기를 읽었다. 나는 봄을 맞아서 한껏 상승된 에너지를 느끼며 개운하게 하루를 보낸 것 같았다. 지금과는 또 사뭇 다른 분위기의 나다. 모든 것들을 더 새롭게 느끼고 있는 나처럼 보인다. 지금의 나는 편안함에 더욱 익숙해졌다. 신비롭다고 느껴졌던 것들도 더 이상 내게 신비로운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 되었다. 그 미세한 변화들이 느껴지는 것이 재밌다. 일기를 읽는 것은 그런 즐거움이 있다. 시시각각 변하고 움직이고 있는 나의 순간들을 언제고 다시 돌아가 볼 수가 있다. 마침, 오늘의 일기에 어울리는 노래가 흘러나와서 기분이 좋다. 잠을 설치긴 했지만, 너무 마음이 들떠서 잠을 설친 것이라고 느껴도 될 것 같다. 저번 주까지는 너무 힘들고 무기력함이 심했는데, 이번 주부터는 다시 에너지가 돌아온 것 같다. 너무 쉽게 두려움을 느끼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다시 내가 어떤 무기력하고 저하된 에너지 상태를 맞이하게 될까 봐 종종 나의 상태를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경계를 하게 되는데 조금 더 느슨하게 나를 바라봐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는 길에는 혀를 입안에서 굴리며 나름의 마사지를 해보았다. 가만히 있으면 딱딱하게 굳는 혀와 얼굴의 근육들이 부드럽게 풀리는 것을 느꼈다. 오늘은 그런 딱딱해지는 것들을 부드럽게 푸는 날인 것 같다. 왠지 상쾌해! 

일요일, 10월 27, 2024

이제 집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춥다. 차가운 공기가 몸을 움츠리게 만든다. 날이 추워지면 나는 집에서 분홍색 플리스를 즐겨 입는다. 지금도 몸을 한껏 움츠리고 있다가 입고나니 바로 따스하다. 

요즘은 매일 매일이 너무 바쁘다. 매주 꽉 채워진 일정들과 해야할 일들. 바쁜만큼 머리와 마음이 단순해지는 것 같다. 다채롭고 복잡스럽게 무언가를 떠올리고 볼 여유가 없는 것이 조금 서운하다. 그래서 오늘은 일기를 쓰기로 했다. 그치만 딱히 떠오르는 말들은 없다. 바쁘지만 모든 것들이 단조롭다. 그것이 싫으면서도 좋다. 그래도 요즘 금요일마다 수피 명상 수업을 듣고 있어서 덕분에 새로운 것을 배우는 시간이 있기는 해서 좋다. 요가도 하고, 세마 의식을 하며 몸을 움직이기도 하고. 몸의 균형이 한군데로 쏠렸다가, 다시 그 균형을 흐트러뜨리고 정렬하는 것을 반복하는 나날들이다.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우는 삶이구나 그래도 항상. 그리고, 한편 다시 집중하고 발전하고자 할 작업이 떠오르는 시기기도 하다. 그래서 단조로운 것을 경계하게 된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집중하고 싶은 것에 오롯이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오늘은 오지와 11월에 있을 공연에 필요한 작업물을 설치하기 앞서 약간의 준비를 마쳤다. 우리의 것들이 하나씩 생겨난다. 모든 것은 똑같지만 그 똑같은 것들이 계속 조금씩 더 깎이고, 정제되고, 말끔해지고, 정확해지고, 세밀해진다. 그것을 지켜보는 것이 재밌다. 사는 것은 그런 것인가보다. 요즘 그런 생각이 든다. 

목요일, 10월 17, 2024

아침부터 함박웃음을 지었다. 걸음에 집중을 하면 일어나는 일들일까.
어제 요가원에서 발가락을 움직이는 훈련을 했는데, 정말 내가 잊어가고 있던 감각들을 다시 느끼느라 거의 충격에 가까운 놀라움이 있었다. 선생님께선 원래 발가락도 하나하나 다 움직일 수 있는 부위라고 하셨다. 움직이지 않고 살다 보니 다 잊게 되는 거라고 하셨다. 발을 땅에 대고 서서 엄지발가락만 들었다가, 엄지발가락을 내리고 나머지 발가락을 들어 올리는 연습을 번갈아 가면서 했다. 처음엔 손가락이 같이 길을 잃은 듯 움직이고, 헷갈렸다. 발바닥의 아치가 많이 무너져있었다. 이 발가락 운동을 통해 발바닥 가운데의 아치가 살아나고, 원래 발이 서 있을 때 올바른 모양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그려볼 수 있었다. 아직 멀었지만, 어제의 놀라운 깨달음을 기점으로 발가락 운동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리고 아침에 되어 금세 발가락과 발바닥에 대해서는 잊고 핸드폰을 보면서 길을 걷고 있었다. 핸드폰을 보다가 갑자기 발의 감각을 느껴보니 내가 또 평소와 같이 엄지발가락에 더 힘을 주면서 길을 걷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온 발바닥으로 바닥을 밟으면서 걷는 게 아니라 또 무너진 발바닥이 느껴졌다. 내 엄지발가락 아래에 항상 굳은살이 생기는 것이 이 탓이었다. 내 걸음걸이가 이상한 걸까 자주 생각하곤 했었는데, 내가 온 발바닥으로 걷고 있지 않았구나, 하고 알았다.
걸음에 집중하며 걷기로 했다. 핸드폰은 보지 않고 오롯이 걷는 순간에는 걷는 발바닥과 다리, 몸을 느끼면서 걸었다. 몸이 무너지는 것은 역시 언제나 현재 그 순간의 나를 잃고 살 때에 나타나는 증상인 것이구나. 걸을 때는 온전하게 걷는 몸을 느끼며 걸어야 하고, 앉아있을 때에는 앉아 있는 몸을 계속해서 느껴야 하는 구나. 그런 것들을 다시금 알아차리며 나는 올바른 자세로 걸었다. 걷는 감각을 처음으로 그렇게 섬세하게 느껴본 것 같았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들이 그렇게 많이 쌓였는데 아직도 처음으로 느끼는 감각들이 있구나- 요가를 하면서 그런 것들을 배운다. 무너져가던 것들을 다시 세우고, 틀어지던 것들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몸을 정렬한다. 몸은 계속 쓰는 것이기에 계속 무너지고, 계속 비틀어지고, 굽지만, 그 굽어진 감각들을 느끼고, 다시 펴고, 일으켜 세운다. 걸을 때에 걷는 감각에만 집중을 하자, 그것은 또 다른 명상이었다. 그렇게 몸의 감각을 알아차리는 것. 땅바닥에 닿는 발의 부위를 하나하나 느끼는 것. 근육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느 부위의 근육이 함께 움직이는지가 느껴졌다. 걷는 것 하나로도 이렇게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
걷는 것에 집중하자, 버스를 기다리며 서 있는 순간에도 올곧게 서서 버스를 기다리게 되었다. 누가 내 어깨를 톡톡 쳤다. 뒤를 돌아보니, 어떤 사람이 내 머리칼에 있는 브레이즈 한 가닥을 들어 올린다. 아마 내 머리에 실 가닥이 묻어있는 줄 알고 떼어주려던 것 같았다. 꼭 표정이 그랬다. 그런데 그 실 가닥을 들어 올리는데 내 두피로부터 그것이 이어져서 떨어지지 않는 것 아닌가. 진짜 너무 그 당황스럽고 약간은 놀란 표정이 잊히지가 않는다. 나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모든 순간을 있는 그대로- 그 순간의 것만을 느끼면서 살다 보면 재밌는 일들이 일어난다. 나는 그 사람의 착각이 좋았다. 그 착각은 웃음을 불러일으켰다. 땅바닥만 보거나 핸드폰만 보고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지. 나는 그 멀대같은 사람의 표정을 계속 떠올리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마 그 사람은 너무 민망했을 터이지만, 나는 즐거웠다. 내가 순간에 지은 함박웃음만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 사람도. 그리고 그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도 그 함박웃음이 퍼져나가기를 그 순간에 바랐다. 그 귀엽고도 사소한 착각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 누구에게도 해를 가하지 않지만, 잠깐 즐거울 수 있는 그런 착각 말이다.
아무튼 오늘의 아침을 발가락과 머리카락으로 맞이하여 난 기분이 좋다. 이미 벌써 하루를 다 산 것 같은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금요일, 10월 04, 2024

설레는 선물과 시작하는 10월. 새로운 인연들이 다가온다. 이미 알던 인연들에게는 새로운 전환들이 찾아왔다. 

세이지를 샀다. 캐나다에서 샀던 세이지묶음은 너무 예쁘고 아까워서 쓰질 못해서 태울 수 있도록 3개를 더 샀다. 하나는 지량을 줬다. 하나를 태워 정화했다. 많은 것들이 맑아지고, 허물을 벗어 또 새로운 겹들로 세상을 마주하길. 새로운 인연들을 더 진심을 다해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지. 몸과 마음을 정돈하고, 머리를 맑게 깨우고 싶다.

10월을 시작하는 주간에 휴일이 많다. 오랜만에 우리집으로 들어오는 오전과 낮의 햇살을 느낄 수 있어서 너무 좋다. 포근하고 따스하고 예쁜 우리집. 지량과도 오랜만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일을 다니기 이전에는 정말 자주했던 일이었는데, 오늘 오랜만에 열띤 토론을 벌였네. 나의 상태에 대해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것.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대해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것. 그런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이야기들은 어디로까지 뻗어나갈 수 있을까. 

일요일, 9월 29, 2024

La druidesse de la générosité

Donnez de votre temps et apportez votre aide pour un monde meilleur.

내가 이 세상에 가져올 수 있는 도움. 나 자신이 올바르게 설 것. 나 자신을 위로하고, 나 자신에 가장 관대할 것. 왜 지금 관대함을 떠올리는 순간에 그 생각이 날까? 그때의 나를 용서해 주라는 의미일까? 왜 그렇게 나를 미워하고 벌줬을까? 내게 일어나는 모든 불행과 고통은 내가 지은 죄에 대한 벌이라 여겼던 지난날들이 믿어지지 않는다. 지금은 죄와 벌 따위는 생각지 않는다.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알았다.
세상에 보이는 아픔들, 두려움, 고통, 모두 내가 내 내면의 마음이 보여주는 거울이었음을 안다. 나 스스로에게 더 관대해지자 세상이 비극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해결해야 할 일들은 물론 있지만 그것이 이 세상을 정의하지는 않는다.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은 언제나 존재한다. 밝은 면만 보는 것도 방법은 아니다. 그냥 그 밝음과 어둠이 혼재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 된다.
내게 일어나는 나쁜 일이 내 삶을 그대로 고정하지 않는다. 그것이 나를 정의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모든 것이다. 나는 빛이고, 그림자다. 그림자는 그림자다. 무언가를 더 크게 생각할 것도 없지. 너무 모든 빛에 압도될 필요도, 과분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아주 평안했다. 이번 여행은. (2024.9.22)

여행 마지막 날 뽑았던 오라클과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썼던 메모. La druidesse de la générosité . 관대함을 떠올리는 순간에 함께 떠오른 기억. 신기하게도 여행이 끝나자 떠올렸던 그 기억과 연관된 인연과 연락이 닿았고, 나는 다시 오랜만에 올라오는 감정에 휩싸이다가, 이제 그걸 다시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뽑았던 카드가 하려던 말이 그것이었을까. 나는 아직 더 나를 사랑하고 더 용서해야 하는가 보다. 아마 그런 과제가 내게 남아있었던 것 같다. 참 이 우주의 원리가 신기해.

오늘은 꿈에 엘로디 집을 가는 버스를 잘못 탔다. 더 지도를 살펴보면서 맞는 버스를 기다리면 되는 것이었는데 웬일인지 마음이 급하여 정류장으로 오는 버스를 대충 탄 것 같다. 나는 무임승차를 했다. 핸드폰으로 구글맵을 보는데 표시해 둔 엘로디네 집에서 멀어져서 나는 황급히 버스를 내렸다. 내리니 엘로디집에서 한참 멀어졌고, 그 동네는 마르세유에서 내가 절대 가지 않는 동네였다. 북부 쪽. 치안이 좋지 않기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나는 겁이 났다. 그런데 예상외로 동네가 좋아 보였다. 날씨가 좋았고, 밝은 느낌이었다. 왠지 팬시한 가게들이 많았다. 멋진 서점, 귀엽고 맛있는 빵집들. 나는 빵집 한곳에 들러 바게트도 하나 샀다. 긴 바게트였다. 그 빵집엔 한국인들도 오곤 했는지 한국어도 쓰여 있었다. 모든 게 의외였다. 그래도 길에 집이 없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였는데, 내가 실제로 마르세유에서 종종 보았던 누군가와 참 닮은 사람이 있었고, 그는 칼을 들고 있었다. 왕좌의 게임에 나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스스로에게도 위협이 되고, 남들에게도 위협이 되는 칼의 모습이었다. 나는 걸어서 엘로디네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꿈을 쓰다 보니, 날씨가 좋았고 밝은 느낌이 났는데, 그 전에 비가 왔었다는 사실이 생각이 났다. 그 전에 비가 내렸고, 나는 내가 쓰고 있던 우산을 상점에 잠시 내려놓았을 때 누군가가 훔쳐 가는 현장을 발견했다. 나는 소리를 쳤다. 나는 그 사람이 들었던 우산인지, 내가 전에 쓰던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비슷한 우산 하나를 들었고, 그걸 펼쳤는데 우산은 고장이 난 것 같았다. 잘 고정이 되지 않았다. 도로는 침수되었고, 땅이 푹 꺼져서 모두 모래에 몸이 빠져버린 것처럼 젖은 도로에 빠져버렸다. 목만 동동. 인도는 대신 딱딱하게 남아있었다. 길을 걸을 수 있었다. 나는 인도로 걸었다. 그러다가 아마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탄 것 같다.

오늘 이 꿈 이야기를 지량에게 하면서 내 무의식 속의 두려움들에 대해 이야길 나눴다. 내 안에 있는 두려움들. 내가 잘못 내려서 가게 된 막세이의 무서운 동네처럼, 막상 그 두려움에 들어서서 보면 사실은 별것 아니었던 것들일 수도 있어. 아마 그런 이야기를 보여주는 여정이었던 것 같다. 오늘의 꿈은. 그리고 나서 일기를 쓰려는데 여행에서 돌아오기 전에 썼던 메모와 뽑았던 오라클이 여기까지 이어지는 것 같았다. 내 무의식 속에 있는 두려움을 직면하고, 그 두려운 상황의 한가운데에 들어서는 것.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한 관용과도 이어지는 이야기였다. 적어도 내가 발견한 이야기로는 그렇다. 내가 깨달은 관용이란 그런 것이었다.

금요일, 9월 20, 2024


안시를 떠나 다시 파리로 돌아왔다. 오늘은 소영의 생일이고 파리에 도착해 소영을 만났다. 이틀 동안 파리에서 함께다. 하루는 지나가고 있다. 피곤하여라. 파리에 와서 혼자 사운드배스를 들었던 요가원에서 오늘 애들이랑 같이 또 다른 사운드배스 수업을 들었다. 오늘은 북과 입으로 내는 소리를 들으며 몸의 균형을 찾았다. 싱잉볼을 들었던 날보다는 집중이 덜 했지만.. 이런 저런 걱정이 드는 까닭도 있었기에.. 하지만 마지막엔 차분해지며 고개가 양쪽으로 돌아갔다가 중심을 찾았다. 내가 있는 자리를 계속 인지하는 것이 오늘은 조금 힘들었지만, 새로운 연습이기도 했다. 북의 리듬이 내 몸의 리듬을 서서히 안정화하는 과정을 바라보는 것은 또 다른 새로운 경험이었다. 


목요일, 9월 19, 2024



완전한 빛 안에 존재하며, 조금 더 차분해지고 조금 더 겸허해진다. 완전한 빛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제는 꼭 황홀경처럼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일까 생각을 하며 걷다가 dream이라는 글자를 길에서 마주쳤다. 그리고나선 계속 꿈결을 그리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이 모든 것은 꿈처럼 가볍고, 깨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인 거야-하고 생각을 한다. 아무리 내가 수백번 죽어도 나는 한번을 살아 있다. 완전한 빛 안에서. 황홀하지 않아도 부드러우면서 살아있는 꿈. 호수에서 수영을 하다가 뭍으로 나와 땅을 밟았다. 완전한 빛을 내뿜는 태양이 위치를 바꾸는 동안 나는 그 변화하는 모든 빛을 느끼며 수면의 안과 밖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음을, 언제나 우리는 완전한 빛 안에 존재하는 꿈이자 살아있음을, 다시 본다.




월요일, 9월 16, 2024

파리에서 매일같이 일기를 쓰다가 막세이에 와서는 완전히 잊었다. 편안하고 느긋하다. 

엘로디 집에 도착하여 빵과 치즈와 와인을 많이 먹었다. 와인은 많이라고 하기엔 하루에 한잔이지만 말이다. 오랜만에 만난 엘로디와 다미안은 더 얼굴이 좋아보인다. 쁠랜느 근처에 새로 이사 온 둘의 집은 너무 귀엽고 알록달록하다. 두 사람이 좋아하는 것들이 곳곳에 붙어있어 즐겁다. 해골바가지와 세리그라피, 사진들. 재밌어. 

그토록 가고싶었던 까시에도 다녀왔다. 엘로디 차를 타고 코코라는 친구도 함께. 즐거운 여름의 끝자락이다. 물에는 정말 잠깐 들어갔다가 나왔다. 해는 뜨겁지만 물은 너무 차가웠다. 내일은 해변에 들어가봐야지. 

4년만에 온 막세이는 조금 변해있었다. 조금은 더 정돈된 것 같았고, 관광객도 더 많은 것 같았다. 조금 더 평화로워진 느낌이었다. 내가 조금 더 편안해져서 인건지, 막세이가 변한 것인지 모르겠다. 아름다운 이 곳에 얼른 지량과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이다. 보고싶은 내 사랑. 

목요일, 9월 12, 2024

So Ham.

언제 이 세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더 초연해질까. 원리와 방법을 이해해가고는 있지만 아직 과정에 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식당 줄을 서 있었다. 귀여운 막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기특하고 현명하고 용감한 막내.

나도 더 용감하고 잔잔해지고 싶다. 나는 그런 소망을 가지고 있다. 여러가지를 해내고 여러가지를 보면서 하루를 보냈다. 유채님도 만났다. 먼 타국에서 만나는 친구들은 더욱 반갑다. 함께 오늘 저녁까지의 순간을 나누었고 우리는 모두 완전히 지친 채로 집에 돌아왔다. 

내일은 조금 더 따뜻한 남쪽으로 이동한다. 조금 더 편안하고 따뜻하게 지내야지. 

수요일, 9월 11, 2024

 



아름다운 빛깔의 날. 습기와 햇살이 많은 날의 색. 구름과 텅빈 하늘의 색. 들꽃의 색. 공원의 색. 고양이의 색. 

옆집의 고양이와 아침에 빵을 사오는 길에 마주치곤 인사를 나누었다. 에펠탑 근처에서는 검은 고양이를 만나서 한참을 쓰다듬으며 놀았다. 항상 충만함을 주는 고양이. 사랑과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고양이.

오늘은 명소를 찾아다니는 날이었다. 몽마르뜨 언덕은 여러번 가보았지만 오늘은 처음으로 몽마르뜨 뮤제에 갔다. 정원이 참 예쁘거든. 한참 앉아서 오랜만에 누아제뜨도 마시고 키슈도 먹고 사진도 찍으며 정원에서의 시간을 보냈다.

쉴새 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예쁘고 바쁜 것들을 마주했다. 추억이 계속해서 새로운 시간과 만나고 겹쳐진다. 한참을 즐겁다보면 나는 어느샌가 모든 에너지가 추욱 빠져 있다. 그럴 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지. 로저 이노의 노래와 아이들의 말소리 웃음소리 양치하는 소리와 겹쳐지고 나는 거의 잠에 들었다. 

화요일, 9월 10, 2024

애들이 드디어 파리에 왔다. 공항에도 마중을 나갔다. 내가 좋아하는 빵집의 빵오쇼콜라를 맛보여주고 새로운 숙소에 왔다. 새로운 동네. 내가 좋아하는 공원이 바로 코앞에 있다. 오늘 설렁 설렁 동네를 돌아다니고자 했지만 걷고 걷다보면 항상 더 멀어져 있다. 파리에선 항상 그렇다. 조금만 더 가면 무언가 있고, 또 조금만 더 가면 무언가 있으니까. 계속 계속 걷다가 또 재밌는 것들을 발견하고 그러다가 어느새 센에 와있고 그렇다.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보고 돌아다니느라 많이 피곤해졌다. 막내는 바로 곤히 잠들었다. 

월요일, 9월 09, 2024

새벽에 통 잠을 제대로 못잤다. 오늘은 더욱 흐리고 비가 아침부터 내렸다. 새벽부터 내내 깨어있다가 아침이 되고 빵집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부슬비가 점점 많이 내려서 공원에 가려던 계획은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빵을 먹고 쉬었다.

쉬다가 다시 외출을 했다. 빈티지샵에도 갔다가 차도 한 잔 마셨다. 아무래도 근데 너무 릴랙싱이 되는 차를 마신 것 같았다. 안그래도 날씨처럼 추욱 쳐지는 날이었는데 내 에너지는 더 땅으로 낮게 가라앉은 것 같았다. 혹은 어제 너무나 큰 상승을 경험했기 때문인 걸까. 내가 왜 이럴까 생각을 하다가, 다시 돌아와 그냥 내 상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상기해냈다. 힘이 없고 말이 잘 안나오면 뭐 어때. 오늘은 그런 날인거지. 그런 내가 나는 가끔 창피하다. 어제 뽑은 오라클을 생각했다. 나는 나 자신을 버리지 않을만큼 나를 사랑한다. 

어제 뽑은 오라클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걸 사려고 좀 오늘 고생을 해버렸다. 왠지 모르게 예상했던 상황이긴 했다. 헤매임과 피로, 창피함, 두려움 등을 느끼기 위한 또 다른 간단한 수행이었으리라. 

내가 6년 전 처음으로 타로덱을 산 곳이 파리에 있다. 그 가게를 오랜만에 찾아 갔는데, 가게가 정리 중이었다. 오라클은 물론 사지 못했지만 그곳이 사라지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이미 나는 피로했지만 왠지 모를 오기가 생겨, 더 먼 동네로 신비한 책들과 크리스털을 판매하는 상점엘 갔는데 거기서도 내가 원하는 오라클을 찾진 못했다. 그리고 그곳에선 아주 약간 기분이 이상해지는 상황이 하나 있었다. 

가게를 나와서 그 일이 머릿 속을 떠나질 않았다. 오늘은 이상한 날이었다. 오랜만에 반복적으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래도 오라클은 금방 그 근처에 있던 프낙에서 살 수 있었다. 나는 그 오라클을 발견하고는 정말 감사하다고 입밖으로 소리를 내서 인사했다. 마음을 다하여서 말이다. 이미 다리도 너무 아프고 너무 지쳐있었다.
 
밥을 먹으러 이제 또 다시 머나먼 우리 동네쪽으로 돌아오기로 했다. 옆동네에 도착했는데 내 숙소가 있는 동네와는 또 분위기가 다른 것 같았다. 오늘 나의 상태가 모든 사소한 부분들을 극대화하여 받아들이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근방에 꽤 유명한 공원이 있어서 홀로 길을 가는데 너무 길도 휑하고 날씨도 별로여서 그런지 가슴을 졸였다. 길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은 거의 이민자들이고 남성이었다. 나는 괜히 무서워서 공원에 들어가지 못했다. 공원을 들어서는 문 앞에도 가는 길도 왠지 다 두려웠다. 나는 두려움을 한참 마주하다가 숙소가 있는 동네쪽으로 가기로 했다. 무섭지 않은 길로. 그러면서 나는 다시 한번 어제의 오라클을 떠올렸다.

자기 존재감. 다른 사람의 사랑 혹은 미움으로 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나 자체로 존재하며, 사랑이라는 것을 다시 떠올렸다. 내가 마주했던 두려움들을 다시 들여다보니 그것은 그들이 나와 다르다는 생각으로부터 오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들이 슬프고 그런 생각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슬펐다.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과도 같다. 나는 길을 걸어가며 내가 그들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다. 그는 나다. 그들은 나다. 나는 그들이다. 나는 그들이다.

이 세상을 진정 나의 거울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그 상태에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다. 온전한 그 상태에. 모든 두려움을 벗고 자유로이 말하고 자유로이 존재하는 상태에. 




일요일, 9월 08, 2024

기분 좋게 일어나 흐린 아침의 하늘을 맞았다. 깨고 나서도 조금 더 누워있었다. 그러고보니 어딘가를 가기 위해서, 무언가를 하기위해서 벌떡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아주 달콤하네. 

아침으로 맛있는 빵오쇼콜라를 먹고 싶어서 지도를 살펴보다가 기대가 되는 빵집 하나를 발견했다. 인기가 많은 빵집이었다. 사랑스러운 빠띠셰가 사람들을 맞이했다. 나는 빵오쇼콜라 하나와 카페 알롱제를 주문했다. 사랑스러운 빠띠셰는 고맙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c’est moi라고 연신 대답했다. De rien 대신 쓸 수 있는 말인데 그 표현은 내게 익숙한 표현이 아니었다. 

Merci. 
C’est moi.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내가 그걸 하는 일이 당연해’ 혹은 ‘(그런 일을 하는게) 그게 바로 나야’ 하는 뜻이 아닐까 하고 넘겨 짚어보았다. 나도 이제부터 이 표현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 파리에 있는 준호랑 메시지를 주고 받다가 그 이야길 했는데 준호는 그게 ‘내가 할 말이야’ 같은 뜻이라고 했다. 

Pardon. 
C’est moi. 

이렇게도 쓸 수 있다고 했다. 누군가 죄송하다고 해도 ‘내가 죄송해요’하고 말하는 것이다. 고맙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고마워.’ 사소한 말들에서 세상에 대한 사랑을 느낀다. 





카페인과 달콤함으로 인해 들뜬 마음으로 거닐다 작은 공원에 들러 햇살 아래에 앉아 있었다. 




미래언니를 만났다. 막세이에서 함께였던 우리는 오늘 파리에서 서로를 만났다. 언니가 참여하고 있는 재불한인작가들의 전시도 보고 같이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셨다. 들른 카페에선 내가 정말 예전에 아주 잠깐 알았던 사람을 마주쳤다. 미래언니와 아는 사이였는데, 심지어 오늘 내가 본 전시에도 그의 작품이 있었다고 했다. 아주 잊은 누군가였는데, 이름과 얼굴을 보자마자 알았다. 너무 신기하고 반가운 잠시였다. 그는 날 기억하지 못했다. 그것도 그 나름대로 좋았다. 시간이 얼굴에 보였는데 그게 멋졌다. 

그러고보니 오늘 미래언니와 이야기를 하면서도 미래언니의 얼굴을 가까이서 들여다보았다. 언니의 말과 생각들 언니의 시간들이 얼굴에 들어 있었다. 그래서 언니의 말하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계속 언니의 얼굴을 쳐다보게 되었다. 

언니랑 헤어지고는 오늘 오후 일정으로 생각해둔 한 요가원의 사운드 배스 세션을 예약했다.



집에서 잠시 쉬다가 나오니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다. 비를 맞으며 요가원에 도착했고 아주 차분하고 평온한 분위기의 공간에 들어섰다. 나는 바로 안도했다. 세션 시작 전에 오라클카드 하나를 뽑았다. 

나는 나 스스로를 버리거나,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만큼 나 자신을 사랑한다. 나는 다른 이들의 사랑을 느끼고 환영한다.

나는 이미 충만함을 느끼며 자리에 누웠다. 머리에 수많은 말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 모든 것들도 이제는 그저 지나가도록 내버려둘 수 있다. 계속 지나가는 말들과 두근거리는 머리. 각각의 차크라를 정돈해주는 싱잉볼의 진동을 지날 때마다 내 머리속 말들이 조금씩 고요해지고, 떠오르는 문장들보다도 현재의 진동을 오롯이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머리가 고요해지고 가슴이 고요해지고 배가 고요해지고 다리가 고요해졌다. 내 상승하는 에너지가 조금씩 균형을 잡았다. 얼마전 희수작가님이 우리집에 와서 해주셨던 레이키가 생각났다. 물처럼 흐늘거리는 형태로 존재하는 내 오라가 잔잔하고 균형을 잡아가는 그 과정을 다시 오늘 더욱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세션의 마지막즘엔 정말 놀라울 정도로 내 몸의 에너지가 고요하게 정렬하는 과정을 물리적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정말 깨끗하고 맑아진 몸을 느낄 수 있었다. 가볍고 행복하게 밖으로 나왔는데 회색 고양이가 정원에 앉아있었다. 너무 사랑스러워 잠시 인사를 나누었다.

밖으로 나와 république 광장을 지나는데 모든 것들이 사랑과 충만으로 가득한 것 같았다. 비는 그쳐있었다. 모든 것이 씻겨내려간듯 시원하고 가벼웠다. 사실 레퓌블리크 광장을 지나갈 때면 여러가지 감정이 든다. 어쩔 땐 투지가 느껴지는데, 가장 큰 것은 두려움이다. 길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좀 있다. 거기에 대해서라면 여러가지 두려움이 있다. 세션을 끝내고 나오는 길에 여전히 누워있는 누군가를 보며 나는 이전에 느꼈던 불안과 두려움 대신 사랑을 느꼈다. 그 누구도 버리지 않는 사랑. 어디에 있어도 어떤 형태로 있어도 우리는 사랑 그 자체야.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느꼈다. 그들도 내가 지나갈 때 사랑을 느끼길 바랐다. 모두가 안도를 느끼길 바라며 내 충만한 마음을 더욱 부풀렸다. C’est moi. 




토요일, 9월 07, 2024


열심히 무빙워크 위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내 팔을 잡아당겼다. 지퍼락같은 것을 주섬주섬하는데 순간 이상한 것일까봐 겁이 났다. 그런데 그가 내게 쥐어준 것은 antifasciste 스티커. 내 가방에 달린 종차별반대 뱃지를 보고 준 것이었다.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일어난 일이 이렇게나 아름답고 귀엽다니. 그 친구는 스티커를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금요일, 9월 06, 2024

일어나 사과 하나를 지량과 나누어먹었다. 귀여운 곰돌이 밤꿀도 맛을 보았는데 너무 맛있었다. 아주 살짝 쌉싸름하면서 달콤하고 진한 맛이 좋았다. 아까워서 못먹겠는 그런 꿀이다.









나머지 짐들을 싸고, 금방 우리는 집을 나섰다. 가타쯔무리에 들려 우동을 먹었다. 언제나의 나는 냉우동을 먹지만 오늘은 왠지 날이 흐리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서 찬면에 뜨거운 국물 조합으로 가케우동을 먹었다. 오늘따라 어찌나 맛있던지 우리는 게눈 감추듯 순식간에 그릇을 비웠다. 싹싹. 운이 좋게도 우리는 오늘의 마지막 손님이었다.










가타쯔무리 근처에 바로 지량이 좋아하는 로스팅 카페가 있다. 증가로커피공방. 지량은 원두와 따뜻한 커피 한잔을 샀다. 베리류의 산미가 그득한 커피를 마시며 우리는 공항으로 떠났다.

공항으로 가는 길 동안에 우리는 서로를 미리 그리워했다. 공항에는 금방 도착했다. 나는 짐을 부치고 지량과 잠시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서로를 계속 부둥켜 안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지량은 내가 없는 집을 정말 서운하게 여긴다. 그런 모습이 정말 사랑스럽고 귀엽고 고맙다. 우리가 점점 시간이 갈 수록 곁에 있는 서로의 존재에 익숙해지고, 길들여져 가는 것이 좋다. 서로가 곁에 있음이 얼마나 즐거운지를 안다.

지량과 헤어지고 나는 탑승구로 향했고, 금방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노이즈캔슬링이 되는 이어폰을 귀에다가 꼽으니 편안했다. 가끔 나는 예전엔 어떻게 살았나 싶을 정도로 이 기능에 감사하곤 한다. 종종 끝없는 소음에 지칠 때가 있는데 그것들로부터 조금은 떨어져 공간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신기하다. 없던 거리가 생긴다.



















비행기 안에서는 할 것이 별로 없다. 좁은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잠을 자거나 음악을 듣거나 비행기에 있는 게임을 한다. 나는 오색 크리스탈들이 무작위로 펼쳐져 있는 퍼즐판에서 같은 색의 크리스탈 세개를 일렬로 맞추는 고전 게임을 좋아한다. 이 비행기에서 기록된 최고 점수를 내가 갱신했다. 더 큰 점수를 내고 싶었지만 시간에 쫓기다가 끝나고 말았다.











난기류도 조금 만났다. 비행기를 타는 일은, 아니 어쩌면 사는 일은 내가 지금 당장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일과도 같다. 그것은 두려운 일이 아니라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생의 한 부분이다. 언제 어떻게 일어나도 사실 이상할 것은 없는. 나는 난기류를 만날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죽음의 순간을 상상한다. 언젠가는 두려워했던 적도 있었지만 이제 두렵지 않다.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나도 두렵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생에서 마주하는 다른 모든 일들과 다를 것이 없는 하나의 일. 무엇이 좋고 나쁘다고 여기지 않아도 되는. 그냥 낮과 밤 같은 것. 음과 양.










이런 생각을 하면서 비행기 안에서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기를 쓴다. 9530m의 고도에서 쓰는 일기다. 이번에 여행을 하는 동안 매일 그날의 일기를 쓰기로 마음 먹었다. 여행이 끝난 후에 다시 읽어보면 너무 재미있을 것 같다.
곧 하노이에 도착한다. 하노이에서 파리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탄다. 내일부턴 파리에서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화요일, 8월 06, 2024

act
라는 단어를 cat으로 잘 못 봤다.

일요일, 7월 21, 2024

마지막으로 남긴 일기를 읽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어쩌면 잠에 드는 것은 한꺼풀 더 깨어나는 일이다.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일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일이다. 더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는 일은 더 밝은 곳으로 나가는 일이다.

떠오르는 마음들을 달래주기 위해 전보다 덜 복잡한 단계를 거친다. 조금 더 빨리 나는 떠오르는 마음을 마주하고, 그들의 근원에 가 닿고, 해소하는 법에 익숙해졌다. 지난 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나는 다른 방법이 필요치 않아졌다. 훨씬 간단하다.

일요일, 7월 07, 2024

피로하고 평화로운 주말을 보냈다. 끈적끈적 노곤노곤한 몸을 개운하게 씻었다. 로리의 새 앨범을 틀어놓고는. 아주 좋더군. 기분이 좋아서 씻고 나가면 평화로이 일기를 써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오랜만에 일랑일랑의 향도 온몸에 묻히고 책상에 앉아 일기를 쓴다. 약간은 붕 떠있었을 몸과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크게 도움이 되는 듯하다. 책상 위에 올려져있던 백수정을 잠시 바라보았다. 무지개빛이 보였다. 깨어진 수정의 단면으로 보이는 무지개. 컴퓨터 배경화면-꿈을 꾸고 있는 크리슈나 그림-의 빛이 비추었다. 파랑과 노랑, 분홍. 예뻐라. 꿈을 꾸는 듯이 살고 싶어라. 파랑과 노랑 그리고 분홍의 빛으로. 꿈 속에서처럼 우리의 말들은 앞뒤가 맞지 않지만, 모두가 이해하는 것처럼 그렇게 말하고 싶어라. 모든 규칙과 법칙이 무력화되는. 우리에겐 아주 여러겹의 삶이 있어. 깨어있다고 여겨지는 삶이 선명한 만큼, 내 유체가 자유로이 떠다니는 삶도 더 선명하면 좋겠네.

일요일, 6월 30, 2024

a word of wisdom

으음~ ~ ~ 따라다라라라. 흥얼거리는 소리. 비오고 난 다음날의 공기. 시원하고 촉촉한 바람. 모기장도 열고 창문을 활짝 열어 모든 것을 받아들이자.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응원을 하고 응원을 받고. 상쾌한 일요일 아침을 보냈네! 감기에 들어 컨디션이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상쾌하다. 너른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야지. 너른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사랑해야지.

오늘은 6월의 마지막 날이네. 7월이다. 7월 8일은 마야력에서 새해다. 또 다른 새해가 다가온다. 또 다른 연말을 맞이하는 지금. 지나온 꿈들을 돌아보고 정리해야지. 올해 상반기를 돌아보는 일이자, 또 다른 한 해를 돌아보는 일이 되겠구나. 계속해서 오늘은 정말 그런 날이다. 이 바람이 너무 시원하고 맑게 느껴진다. 내 살결을 감싸는 이 촉감이 참 좋네.

화요일, 6월 25, 2024

토요일, 6월 22, 2024

물 속의 생에선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지? 물 속의 생에선 해가 지고, 해가 뜨는 일이 없잖아. 내가 만약에 물 속에 살고 있었다면 해는 수면 위에서만 뜨고 지는 것이었겠네. 하지만 땅에 있다고 해서 해가 땅으로 지고, 땅에서 뜨는 것도 아니다. 사실 해는 이 땅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있지. 우리 사이의 공간은 무한히 멀다. 하지만 그 무한함으로부터 조금만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는 우리는 하나의 몸이다. 무한함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 수록, 우리 밀도는 더 높은 단단한 하나의 점이다. 우리 사이에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하나의 몸덩이다. 그치만 하나의 몸덩이 안에 무한한 공간이 있다. 무한한 거리가 있다. 무한히 팽창하는 사랑들이. 혹은 하나의 묵직한 사랑. 뭉쳐진 사랑.

yestermorrow

우리의 삶은 매일같이 더 자연스럽다. 모든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면서도 당연한 것이다. 우리가 서로 만나게 된 것은 너무나도 기적같은 일이지만 또한 그래야만 했던 일이다. 우리의 삶이 서로 만났을 때 우리는 우리의 삶을 서로에게 적응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다투고, 포기하고, 배웠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만나기 전에 우리는 이미 서로의 삶을 살고 있었다. 우리는 이미 우리였다. 우리는 이미 배웠으며, 이미 다투었고, 이미 모두 배웠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당신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공간에 가득한 소리를 느끼다가 나는 문득 이 공간에 가득찬 당연함을 인지한다. 그리고 그것을 생각한다. 이 자연스러움을. 내가 들이마시는 숨은 당신이 내뱉은 숨이며, 당신이 들이마시는 숨은 내가 내뱉은 숨이다. 우리는 서로의 숨 속에서 자신을 이룬다. 우리는 서로를 통해 자신을 이룬다. 이 공간에 당신이 만드는 소리가 가득하다. 몸을 움직일 때 나는 소리, 웃을 때 나는 소리와 코에서 나는 숨소리, 당신의 컴퓨터에서 나는 소리도. 그 모든 소리 안에 내가 있다. 나는 언제나 그 소리 안에 존재하고 있다. 나는 그 소리다. 

공간을 느끼자, 당신을 느낀다. 오늘은 이미 자연스러워져 있었고, 내일은 이것이 더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오늘은 내일이에요. 어제 누군가에게 '오늘은 내일이예요'하고 말했다. 그는 나에게 당연하게 '오늘은 내일인가요?'하고 물었다. 그것은 그냥 흘러가는 날짜를 말하는 것과 같았다. 오늘은 23일이에요. 오늘은 23일인가요? 어제는 내일이에요. 

this is tomorrow.

일요일, 6월 09, 2024

어제는 아침부터 비가 거세게 내렸다. 비를 뚫고 판화 작업실에 가서 작업을 하고,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도 마쳤다. 아직 끝마치지 못한 어제의 판화 작업이 약간 아쉬웠지만 그렇기에 다음주를 또 다시 기대하며... 작업을 끝내고 오지와 만나 밥을 먹었다. 건강한 밥을 먹구, 인사동에 도착해 수많은 인파 속에서 약간은 피로를 느꼈지만, 이내 곧 친구들을 만나 즐거워졌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우리는 밖을 걸으며 그 날씨를 만끽하고 멋진 상점을 우연히 발견해 들러 각자가 발견한 귀중한 것들을 샀다. 윤슬이는 사진집을 사고, 혜빈이는 멋진 원피스를 사고, 나는 귀여운 헤어핀과 팔찌를 샀다. 너무 각자의 것들이 각자에게 잘 어울리고 사랑스러웠네. 
우연히 만난 친구들과 반갑게 길에서 인사를 하고, 어제의 가장 커다란 이벤트 강백수 아티스트의 공연을 보러 이들스에 갔다. 우리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과 감정에 휩싸여 행복했다. 음식과 술을 마시며 듣는 라이브 공연이라니. 강백수님의 음악은 너무나도 일상적이고도 소소한 표현들로 이루어져있어 모두에게 웃음과 감동을 안겨주었다. 나는 눈물도 찔끔 흘렸다. 그의 음악을 들으니 문주와 그의 형제가 살아왔을 시간들이 너무나도 느껴져서 나는 온전히 그에 공명했다. 그리고 문주를 따뜻하게 너무나 꼬옥 안아주고 싶었다. 오지와 함께 문주를 힘껏 안아주었는데 문주는 그 사랑을 느꼈는지 아침에 우리에게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감동스러운 메시지를 남겨주었다. 정말 귀여워. 
아침부터 기분이 너무 좋아. 날씨도 좋고. 어제 새로 산 수정들을 꺼내어 정화하기로 했다. 정화하는 김에 오랜만에 모든 수정들도 꺼내어 창문 앞에서 은은한 햇살과 바람을 함께 쐬어주며 팔로산토를 태워 정화해주었다. 수정을 정화하니 나의 몸과 에너지가 개운해지는 기분이 들어 이 넘치는 사랑과 감정을 어찌할 수가 없어 일기를 쓴다. 오늘 내게 다가온 수정들을 앞에 두고 일기를 쓰고 있다. 
우리의 어제와 오늘에 사랑과 순수함이 넘쳐흐른다. 어찌 그렇게도 모두가 사랑스럽고 아름다울까. 모든 것은 그것을 느낄 수 있는 때에 만끽해야지. 이 감정이 사라지지 않기를 계속해서 느낄 수 있기만을 바라지만, 그런 바람과 소망 혹은 집착이 될 수도 있는 그런 마음보다는 겸손하게 현재 내 앞에 나타난 것들에 감사하고 그것들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느껴야지. 

수요일, 5월 29, 2024

요즘은 거의 매일같이 큰 에너지를 들이고, 마주하며 지낸다. 오늘 일을 끝내고 나서 너무 힘이 없었는데, 저녁을 먹고나니 힘이 조금 났다. 별 것 없는 탄수화물 폭탄ㅎ 
힘을 많이 써선지 기분도 약간은 가라앉고, 기력이 쇠한 것 같은 오후 시간을 쭉 보냈는데, 별안간 이런 저런 갈래로 갈라지는 길을 수없이 가다가 방금 전에 막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죽기 전에 꼭 읽어야겠다는 다짐이랄까 목표를 마음에 새겼다. 그걸 적으러 왔다. 그냥 그렇게 거대한 체험 자체를 한다는 것 자체가 갑자기 재밌게 느껴졌다. 살아 있는 동안의 무언가를 해내고 싶다는 마음을 갖는 일이 내겐 드문데, 좋네. 그렇게 사람들은 사는 걸까 ㅎ ㅎ ㅎ 
물론, 살아 있다는 것, 살아야 한다는 것, 죽고 싶다는 것, 죽을 것 같은 마음... 이러한 균형을 잡지 못한 의식, 자아에 치우친 의식들이 우리를 늘 사로잡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그럴 수도 있으니까. 때때로 힘들 수도 있으니까...! 그럴 때에 반짝이고 떠오르는 무언가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어야 해!"

토요일, 5월 25, 2024

오랜만에 기가 쪽! 빠진 날. 이번주가 유난히 피곤하고 고되긴 했지만, 오늘은 그 고됨의 끝에 온 것 마냥 쭈욱 힘이 빠져버렸다. 집에 도착하기를 간절히 바랐네 오랜만에. 주말의 홍대는 정말 모든 것들로 가득하다. 소리도 너무 많고, 너무나 많은 에너지들과 접촉하느라 기가 잔뜩 쓰였네. 

덕분에 집에 와서 일기를 쓰게 되었네. 우리집의 고요함이 너무나 그리웠다. 감사해라. 고요함을 느끼기 위해 지나온 소란스러움. 요즘 내 머리 속이 포화상태가 되어가는 것 같다. 다시 또 비워지기 위해서... 나에게 또 모든 것들이 들어오고 지나가고 통과하는구나. 힘들지만 어쩔 수 없지. 받아들여야지. 그리고 또 비워내야지. 게워내야지. 

금요일, 5월 10, 2024

return to joy

빛과 바람이 완벽한 시간. 지량의 피아노 소리도 너무 아름다워. 모든 아름다운 순간들은 그 즉시 만끽해야 해. 모든 것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이동하고 있는 중이니까. 아름답다고 한마디 던졌던 순간과 지금의 빛과 소리는 또 달라져 있다. 새들이 날아간다. 세상은 조금 더 어두워졌다. 해는 막 산 뒤로 넘어갔다. 아직 산너머 동네는 아름다운 빛이 가득하겠지. 오늘 낮까지만 해도 너무 졸리고 피곤했는데, 집을 청소하고 쓰레기도 버리고, 할 일들을 하고 나서 그런 것일까, 마음도 아주 편안하고 기분이 좋다. 마음도 정돈이 되었는가보다. 어제 뽑은 카드가 계속 생각난다. return to joy. 기쁨으로 계속 돌아가야지. 

금요일, 4월 26, 2024

the rhythm changes

오늘은 친구의 프리 웨딩 촬영을 해주었다. 아침부터 모여서 뚝딱거리는 몸을 천천히 풀고, 점점 우리는 즐겁고 편안해졌다. 사랑과 웃음이 넘쳐났네. 누군가의 모습을 찍어주면서 오랜만에 느낀 행복과 뿌듯함. 이건 정말 소중하고 감사한 일이구나. 누군가의 소중한 시간을 계속해서 꺼내볼 수 있는 무언가로 기록을 해준다는 것이! 즐겁고 감사했다. 날씨도 너무 아름다웠고...! 정신없고 조금 피곤하기도 했지만 그 모든 것이 즐거웠다네. 시간은 유형의 것이구나.
집에 돌아오는 길에 정말 오랜만에 카마시 워싱턴의 the rhythm changes가 나왔는데, 재작년 4월이 떠오르면서 상쾌하고 기뻤다. 사랑하는 지량을 만났던 시간이 떠오르기도 했고, 오늘 친구와 친구의 연인을 보면서 큰 사랑과 편안함을 느끼고, 믿음을 느끼고, 두 얼굴에 서로의 얼굴을 담고 있는 것을, 서로의 시간을 담고 있는 것을 보면서 즐거웠네. 촬영을 하면서 하나둘씩 모인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너무 즐거웠어. 귀여워. 모두 사랑해. 우리 혜빈이와 용우 너무 축복해. 지은이, 문주, 윤슬, 가현이, 세희. 모두 사랑해.

수요일, 4월 24, 2024

갑자기 일기를 쓰는 일이 신성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일기를 쓰는 일이 아니라, 쓴 일기를 다시 읽는 일. 일기를 쓰고 있는 다른 날의 나를 그대로 만날 수 있는 시간이다. 시간은 직선이라는 착각 속에서 희미해지는 감각이 다시 보드랍고 유연한 공간에서 생생해진다.

밤 열한 시. 이즈음에 꼭 새벽녘에 꾸었던 꿈이 잘 떠오른다. 오늘은 버스에 앉아서 버스의 승객들을 찍는 사진작가를 만난 꿈을 꾸었다. 꽤 나이가 있고, 작품 활동을 많이 해온 유명한 작가였어서, 그 작업이 이제는 약간 허울만 남은 작업이 아닐까 하고 혼자 짐작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내가 탄 버스에 그 작가가 있었다. 나는 그 사람보다 앞에 앉아있었다. 아마 나도 사진에 찍힐 수 있는 자리였다. 나는 가운데 자리에 앉아있었다. 살짝 그가 어떻게 작업을 하는지, 어떻게 그 동네를 사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는 동네 친구인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다가 울었다. 그 눈물을 보자, 언제나 그 마을버스를 타고 마을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 모습을 찍는 그 작업이 순수하게 느껴졌다. 나는 내가 지레짐작하던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아 졸려. 잠이 쏟아지려고 할 때, 지난 꿈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이 시간이 아닌 저 시간에 닿고 있어서 겹쳐지는 현상인 걸까. 재밌다.

일요일, 4월 21, 2024

나는 이제 죽는다. 온몸에 힘이 빠진다. 숨이 빠져나가고, 모든 긴장이 덜어지고. 아아. 사실 난 언제나 죽는 것이 두렵지 않았어. 죽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던 나날도 있었고, 혹은 죽어도 이제 여한이 없을 만큼 행복한 순간에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지. 그런데 이제 내가 정말로 죽는구나. 마음이 가벼워지고, 몸이 점점 가벼워진다. 나는 이렇게 가벼워지고 싶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었나 봐. 이런 마음을 읽을 내 가족들에게 미안하지만,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크기도 했던 것 같아. 그렇게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숨이 모두 빠져나가자 나는 이제 죽었다.

나의 장례식이 열린다. 우리 엄마가 보인다. 엄마는 온몸으로 울고 있다. 너무나 가엽고 불쌍하고 귀엽게 울고 있다. 내가 많이 보아왔던 모습이다. 가여운 우리 엄마는 나에게 연신 미안하다고 내가 불쌍하다고 말을 한다. 내가 아픈 것을 잘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한다. 나는 엄마의 귀에다가 대고 ‘엄마 이제 다 괜찮아, 다 괜찮아. 정말 괜찮아.’라고 말한다. 아빠가 다가온다. 아빠는 뜨거운 얼굴로 눈물을 흘리며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모든 말들도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미안하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눈물을 흘린다. 나는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 아빠. 나는 아빠의 귀에다가 대고 말한다. “아빠, 나는 이제 괜찮아. 고마워 말해주어서.” 나는 마음이 편안하다. 그리고 내 동생들이 들어온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내 동생 오지은. 지은이도 눈물을 흘리며 정말 너무나도 슬픈 표정으로 내 앞에 선다. 나는 같이 눈물이 나온다. 너무너무 눈물이 난다. 내 사랑하는 동생 지은이. 너무너무 사랑하는 내 동생 지은이. 지은이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몇 번이고 다시 살 수 있었고, 너무나 재미있고, 언제나 위안이 되었다. 지은아 고마워. 나는 지은이에게 말한다. 너무너무 사랑한다고, 너무너무 고마웠다고, 정말 정말 보고 싶다고. 그리고 그 옆에는 쪼르르 우리 귀여운 고양이들이 함께 있다. 미셸과 까미유. 나는 고양이들을 보며 가장 눈물이 많이 흐른다. 가여운 우리 아기들, 내가 우리 아기들보다 먼저 죽었네. 미안해. 더 많이 놀아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너무너무 사랑해. 너희들 덕분에 나는 사랑을 배웠어. 정말 정말 그 귀엽고 보드라운 털을 수천 번 더 쓰다듬고 싶고, 안아주고 싶고, 사랑스러운 향기를 맡고 싶다. 내가 다시 살 수만 있다면 미셸 몸에 내 얼굴을 파묻고 미셸과 함께 서로를 느끼고, 사랑을 느끼던, 내 몸과 마음이 온전해짐을 느끼던 그 어느날의 풍경으로 다시 가고 싶다. 하지만 이제 그럴 수가 없다는 사실이 가장 슬프구나.
그리고 이제 나의 반려자, 지량이 보인다. 지량은 너무나 슬퍼하고 있어. 나는 가슴이 너무 아프다. 지량에게 너무 미안하다. 하지만 지량도 내게 미안해한다. 지량은 내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운다. 우리가 함께 있는 시간이 이렇게 짧을 줄 몰랐다. 나는 지량을 안아주고 지량에게 괜찮다고 말을 한다. 지량이 너무 심하게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너무너무 사랑해.

가족들과 친구들을 모두 만났다. 모두 나에게 생전에 내가 듣기 좋아했던 말을 해주었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쏟아내기도 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듣는 것이 좋았다. 그 모든 것을 듣자 나는 편안해졌다.

관 속에 뉘인 나는 이제 화장터로 왔다. 이제 곧 불이 켜질 것이고, 나의 육체는 정말로 사라진다. 우리 엄마가 너무 심하게 울고 있다. 가여운 우리 엄마. 가족들이 우리 엄마를 안아주고 있다. 고양이들은 영문을 모른채 함께 있다. 하지만 함께 있어서 나는 더 행복하다. 이제 불이 켜진다. 내 몸이 서서히 사라진다. 나의 머리카락이 다 사라지고, 살결이 모두 사라지고. 이제 나는 뼈만 남았다. 그리고 이제 이 뼈들도 가루가 되었다. 나는 이제 가루가 되어 예쁜 그릇에 담긴다.

가루가 된 나를 가족들이 물이 있고, 풀도 있는 아름다운 풍경에 데리고 가서 뿌려준다. 나는 공기 중에 흩어진다. 나는 이제 정말 모든 먼지들과 바람과 하나가 되어 세상을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나는 너무나 자유롭다. 편안하다. 나는 더 멀리 멀리 날아 태양에 가 닿는다. 너무나 밝고 뜨거운 태양에 가 닿는다. 나는 태양의 한 조각이었다. 그게 본디 나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모두 다 본디 이 태양의 이 따스함의 한 조각이었음을 안다. 우리 엄마, 아빠, 지은이, 지량, 미셸, 까미유…. 모두가 결국에는 태양의 조각들로 돌아와 나와 하나가 됨을, 나와 원래 하나였음을 우리는 하나임을 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자 나는 이제 정말로 이 세상에 조금이나마 남겨둘 뻔한 아쉬움과 미안함이 모두 덜어진다. 아쉬울 것이 없었고, 슬퍼할 일도 아니었구나. 모든 존재가 다 나였고, 다 우리였다. 내가 너무 사랑하던 존재들도, 내가 미워하던 존재와 내가 용서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존재까지도.

나는 완전하게 죽고, 태양의 한 조각이 되자, 내가 이 모든 것을 깨닫게 되자 태양은 나에게 또다시 돌아갈 기회를 준다. 나는 다시 내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나는 그러자 본디 태양의 한 조각인 내가, 이 뜨겁고도 밝은 존재인 내가 이 세상에서 다시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알았다. 나는 이 밝음과 뜨거움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전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태어난다. 다시 내 몸이 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고, 내 몸에 숨이 가득해진다. 나는 다시 태어났다. 나는 태양의 한 조각임을 기억한 채로 다시 돌아왔다. 나는 더 밝고 더 아름답고 사랑이 가득한 존재임을 안다. 나는 다시 태어났다.

금요일, 4월 19, 2024

해의 사람

해가 지고 나니 쭈욱 에너지가 빠져 버렸다. 정말이지 나는 해가 떠 있을 때에 더욱 에너지가 활발한 사람인가 보다. 나는 해가 떠 있는 동안에 중요한 것들을 하고, 식사를 하는 것이 좋다고 했는데, 요즘 그 내용을 더욱 체감하는 것 같다.
오늘 내가 좋아하는 부숭부숭하고 알록달록한 예쁜 털실들을 꺼내 꼬아서 뭔가를 만들었다. 화분을 꾸미고 싶었는데 한참 걸려 만들었건만 화분에 맞지 않았다. 지량에게 줬다. 아무 생각 없이 막 시작했는데, 오랫동안 앉아서 만들었다. 밝은 햇빛을 느끼면서. 나는 그 느낌이 좋아서 계속 해가 떠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지량은 더 길어질 거라고 말해주었다. 프랑스에 있을 때를 생각했다.
나는 해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일기를 쓴다. 
난 요즘 활기를 되찾았다. 스트레스를 주는 것들이 몇가지 있지만, 꽤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작업만 잘된 다면 아주 정말이지 완벽할 것 같은 나날들이다. 하지만 꼭 그것이 완벽을 이루어주는 것은 아닐거야. 쓰고 나니 그렇다. 저녁이 되고 힘이 쭉 빠져서 저녁을 먹고는 넋을 잠깐 놓고 있었는데, 감자칩을 먹고 다시금 힘을 내는 중이다. 주절주절- 다 끄집어내고, 풀어내는 일기를 언제든 쓰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넋을 놓고 있었던 것치고는 꽤 손가락이 잘 움직여주고 있다. 요즘 말을 할 때, 주저하게 되는 부분이나 끊기는 부분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마음과 머리의 논지가 명확해지고 있는 것 같아서 기뻐졌다. 열심히 말을 꺼내고 만들어내고 싶어. 나는 다시 할 수 있을 거야. 나는 언제든 다시 할 수 있어.
아침마다 일어나서 수리야나마스카라를 해야지. 하고 싶다는 마음은 늘 있었지만, 일기에 쓰며 한번 다짐해 본다. 태양의 기운을 듬뿍 받아서 저녁까지 에너지를 골고루 써야지.

화요일, 4월 16, 2024

4월 16일


아스파라거스 수아베올렌스

유칼립투스

박쥐란 

토요일, 4월 13, 2024

이불 속에 들어갔다. 문득 준비하고 있는 전시와 관련해서 줄 하나를 꼬았다. 이불을 덮는 것. 이불 속의 나를 만나는 것. 작업 생각이 문득 떠오르긴 했지만, 금방 그것을 흘려보내고, 다시 나는 내가 가기로 한 시간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이불 속에 있는 나를 만나러 가는 일은 어렵지 않다. 내가 이불 속에 덩어리진 채로 보이는 것은 그래도 어렵지 않은가 보다. 지난 명상에서 나를 만나러 갔을 때에는 아무런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어떻게 소리가 전달되는지, 어떻게 마음이 전달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무언가 나를 거부하고 밀어내는 느낌은 아니었으나 아직 완전히 닿지 않은 것 같았다. 오늘 다시 그 상태를 느끼다가, 나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여전히 나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나에게 말을 걸기 위해 이런저런 방식들을 고민하다가, 어쩌다 보니 무엇을 원하는지 들을 수 있었다. 내게 '언니가 어떻게 좀 해봐'라고 내가 말했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 이불을 박차고 나와 엄마에게 가서 말했다.

엄마, 지금은 밤이야. 너무 늦었어. 너무 시끄럽고, 무서워. 나는 잠을 자고 싶어. 편안하게.

엄마는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하지만 아빠가 힘들게 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듯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아빠에게도 뭐라고 나는 말을 해야 했다. 하지만 아빠가 만나지지 않는다. 아빠의 얼굴이 나타나지 않는다. 항상 엄마 너머로 어떤 목소리 혹은 어떤 이미지로만 아빠가 존재한다. 그러고 보니 내가 중곡동에 살던 시절에 집에서의 아빠 얼굴이 정말 많이 없다는 것이다. 이 일지를 쓰는 동안 갑자기 몇 가지 기억이 떠오르긴 해서 다행이라 여겨진다. 아무튼, 어떻게 좀 해보라는 말을 건넬 아빠가 명상하는 동안에는 떠오르지 않았고, 만나지지가 않았다. 나는 아빠에게 수화기 너머로 말하듯 말했다. 우리가 너무 힘들다고, 어떻게 좀 해보라고. 어디에 있는 거냐고. 나타나라고. 아무튼 오늘은 내가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었다. 말을 할 수 있었고. 이것이 다른 시간의 나와 대화하는 법인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불 속의 나는 항상 답답하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덥다. 이불 밖 켜진 불빛이 느껴진다. 소리가 들린다. 이불 밖에서 나는 잠들어 있지만, 이불 안에서 나는 깨어있다.

약 30분간 시간을 보냈다. 오늘은 왠지 누워서 온몸의 가지들을 완전히 이완하면서도 명료한 의식으로 명상을 할 수 있었다. 싱잉볼 소리를 듣는 동안에는 나도 모르게 자연스레 목이 꺾이었는데, 아마도 목의 앞부분에서 무언가가 정화되는 것 같았다. 목 근육들이 조금 부드러워진 것 같다. 30분간 시간을 보내고, 오늘 이불 속의 나와의 만남은 여기서 정리되는 것이 느껴졌다. 다음에는 아마 더 많은 것을 말하거나 해낼 것 같다. 그리고 아마 또 다른 시간 속에 존재하게 될 것임을 느낀다.

수요일, 4월 10, 2024

용서를 배우기 위해서, 핍박받고 차별당하는 현실을 체험했어.
요즈음 그런 생각을 했다. 핍박받고 차별당하며 느낀 두려움과 분노의 감정들, 그것들을 해소하고 정화하기 위해서 그런 현실을 체험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용서를 배우고 양보를 배우기 위해, 자비를 배우기 위해 그런 현실을 창조한 것이라고.
지나가는 차들이 걸어가는 사람들과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꼭 차로 받을 것처럼 지나가고, 꼭 위협하는 것처럼,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너무나 화가 나는 한편, 얼마나 조급하고 좁은 마음들이 저런 행동을 하게 하는 것일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내가 지나온 모든 화가 나는 현실들이 어쩌면 내가 진정으로 이 생에서 용서를 배우기 위해서 창조된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감정을 느끼는 것이 가장 큰 목표가 아니라 말이다. 감정을 느끼고, 온전히 그것을 느끼고 분노가 사라지고 나면 그때 우린 용서를 하게 될 거야. 그것이 어쩌면 결국에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인 거야.
기쁜 것도 슬픈 것도 느끼지 않는 상태란, 모든 것에 무감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일어난 그대로 받아들이고, 떠나보낼 수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겠지.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 바가바드기타에서 일어나는 일. 그것이 그런 말일 거야. 지겨웠던 구절들이 지나가고 밭과 밭을 아는 것에 대해서 배운다. 

화요일, 4월 02, 2024

천혜향 두 개를 와라라 먹었다. 너무너무 상큼하고 너무너무 맛있어. 달콤해. 참으로 만족스러워. 일기를 쓰려고 했는데, 마침 천혜향을 먹고 너무 만족스러워 이 문장으로 일기를 시작한다.

쓰고 싶은 말들이 가끔씩 한마디씩 혹은 한 단어씩 혹은 한 이미지씩 있었다. 조각인지 뭉텅이인지 모으기가 힘들어서 한동안 아무것도 쓰지는 못하였다. 오늘은 그나마 손가락을 움직일 수가 있어서 써보기로 한다. 하지만 이 문장을 쓰자고 바로 또 한 이십 분 동안 다른 곳을 배회하다가 돌아왔다.
오늘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생각과 사진을 펼쳐 보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는데….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킨 것은 '극복'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장애와 관련한 교육 영상을 볼 일이 있었는데, 장애를 무의식적으로 부정적인 단어와 연결 지어 표현하는 것을 지양할 수 있도록 적절치 못한 표현을 짚어주고 있었다. 흔히들 쓰는…. 표현 "'장애를 극복하고' ---을 해낸다."와 같은 말을 예시로 설명하고 있었다. 사실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갑자기 그 설명에 깊이 공명했다. 장애는 질병과 같이 고쳐져야 하는 어떤 상태가 아니라 고착된 한 특성이므로, '극복한다'라는 표현과 함께 쓸 수 없는 말이었다.
그 설명을 들으며 나는 내가 주기적으로 겪는 어떤 상태를 떠올렸다. 나는 활기차고 밝고 명랑하게 지내다가도, 어떤 기간에는 느리고 어둡고, 힘이 없어진다. 내가 이제껏 '정상적인', '원래의' 나의 상태로 지내다가 아주 어쩌다가 내가 힘들고 지치게 되면, 우울의 시기가 찾아온다고 표현하곤 했는데, 그래서 나에게 찾아오는 그 우울의 상태는 항상 너무나 힘들고, 나뿐만 아니라 모두를 힘들게 하고 반드시 극복해야만 하는 어떤 상태였고, 그것은 나의 질병이었다. 때문에 그 시기의 나는 나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요즘 가장 두렵고도 괴롭고 싫은 것은 내가 오늘 나의 우울을 치료한다고 하더라도, 다시 언젠가 또 지친 몸에 우울이 찾아올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지금껏 살아온 날들이 너무 힘들었기에, 그 괴로운 시기를 몇 번 겪고 나니까 그것들을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다시 치료가 필요해지는 상태를 말이다. 이상하게 이번에 치료를 진행하는 중에 갑자기 내가 많이 힘들어졌다. 3월 한 달 동안에. 급격히 약간 힘겨워진 것 같다. 어찌저찌 약간 지친 나를 가누어보려고 했는데, 3월은 그러다가 금세 지나간 것 같다. 3월의 모든 꿈도 그러하고. 아무튼, 이 상태는 나에게 극복되어야 할 상태였다. 이때의 나는 내가 아니고, 이 상태의 내가 하는 생각과 말은 크게 중요하거나 어떤 효력이 있지도 않다고 생각했고 말이다.
그치만 우울의 상태가 찾아오는 시기를 예측하거나 대비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것이 어떤 뚜렷한 형태와 규칙을 갖는 것도 아니긴 하지만, 평생 내가 그것을 몇 번이고 마주해왔다면, 평생 몇 번이고 마주할 수 있는 질병이라면, 그것이 질병이라 할지라도 어쩌면 그것은 내가 가진 어떤 한 특성일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나를 이루는 어떤 특성이지 않을까. 힘이 쭉 빠져서 슬프고, 무감하고, 바보 같고, 불안한 내가 사는 그 시기도 온전한 나를 이루는 한 부분이지 않을까. 그럼 내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이 나의 상태를 극복해야 하는 상태가 아니라, 내가 가진 하나의 특성으로 받아들이고 그 특성에 맞게 나를 잘 다루어가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바로 지난 일기에만 해도 내가 '극복'이라는 단어를 썼더라. 근데 무언가를 언제나 극복해야만 하는 건 아닌가 봐. 내가 겪는 폭력적이고 비관적인 사고와 감정의 상태도 나의 한 부분일 뿐이었다. 고치고 뜯어내어 없는 것으로 만들 것은 아니었다. 나는 수많은 모습의 나로 이루어져 있고, 그 중에 나를 살리고 싶은 나와 나를 죽이고 싶은 나도 있을 뿐이다. 그 각각의 파동들이 나에게 다가올 때 나는 그들에 맞는 움직임으로 살면 되는 것이야. 힘이 없을 때는 힘없이 지내다 보면 다시 힘이 나는 시기가 오겠지. 그걸 도와주는 약이 있을 수도 있고, 선생님이 있을 수도 있고, 친구가 있을 수도 있고... 이렇게 생각하니 또 우울이 찾아오면 어쩌지-하는 두려움은 이제 가벼워졌다. 극복해야 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가벼워지네. 요즘 포켓몬고에 빠진 나를 지량은 그냥 그렇게 빠져있도록 내버려둔다. 그 상태가 평생의 상태가 아니니까, 빠져있다가 다시 또 다른 것으로 빠지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아니까. 지량이 하는 말들이 그런 말이었다. 극복해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는 것.
신기하게도 내가 어제인지 그제인지... '연약한'이라는 말에 대해서 또 곰곰이 생각하며, 하고 싶은 말이 조금씩 튀어나올 것 같았는데, 오늘 공명한 이 내용들과 닿아 드디어 이어졌다. 아마 울고 있는 나를 위로해 주고자 지량이 한 말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원래 강한 사람이라고. 그랬어.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내 이름을 떠올렸다. 내 이름은 세라야. 강해지라고 아빠가 그렇게 지었대. 세지라고. 세라. 그래서 나는 그래 맞어 나 원래 강한 사람인데 내가 왜 그러지- 하는 생각에 잠시 빠졌다가, 바로 내가 평생 잊지 못하는 친구의 말 하나를 또 떠올렸다. 내가 너무 유리 심장이라 망할 것 같다고 했던 말. 나는 그 말이 평생 원망스러웠고, 내가 연약하고 내가 소심하다고 느껴질 때 종종 그 말을 떠올리곤 했다. 그건 나를 다시금 강하게 움직이게 하는 어떤 원동력이 되기도 했지만, 때로 나 자신을 자책하는 말로 맴돌기도 했다.
그걸 나는 또 하루 종일 생각했다. 근데, 연약한 것은 꼭 죽나? 연약한 것은 꼭 망할까? 아니야. 연약한 것도 산다. 연약한 것도 다 해낼 수 있어. 연약한 것도 연약한 방식으로 살어. 연약한 것이 누군가를 구할 수도 있고, 사랑할 수도 있어. 그래서 나는 늘 연약한 것들을 위해 소리치는 사람이 되고 싶기도 했고, 그렇게 소리치는 생명들을 사랑하기도 했고 말이다. 장루이 선생님이 내 작업을 보며 'précaire'라는 단어를 알려주셨다. 그건 '연약한'이라는 뜻의 불어 단어다. 내 사진들에서 연약함을 보셨다. 그게 장면들이 녹아내리고 뭉쳐져서 그런 연약하고도 여리여리한 색감과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기도 했지만, 실제로 그것들을 통해 나는 모든 것들을 그렇게 연약하게 바라보고 싶기도 했고. 아무튼, 그 말을 듣고 나는 또 내 사진이 아니라 연약한 나 자신이 떠올라 눈물을 흘려버렸는데, 장루이쌤이 정말 당황해하셨다. 장루이쌤은 내 사진 속에서 연약함을 보시는 거지, 내가 연약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해주셨고, 또 연약하다는 뜻의 그 단어가 나쁜 것이 아니라고 거듭 말씀해주셨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아는데 그냥 눈물이 났다. 너무 웃겨. 그 날의 단어가 오늘 드디어 이어진다. 나의 이야기로. 오늘 나의 발견으로. 
연약한 것은 연약해서 망하거나 죽는 게 아니야. 모든 것이 죽듯이 죽고, 모든 것이 살듯이 살어. 연약한 것은 연약하게 살면 돼. 강한 것은 강하게 살면 되고 말이야. 너무 웃기게도 나는 바로 또 포켓몬들을 떠올린다. 아아- 그래서 내가 포켓몬고를 하게 된 것인가 봐. 진짜 진짜 보기에도 강하고, 실제 능력치도 강력한 포켓몬들이 있는가 하면, 정말 이런 애가 어떻게 살아가지-싶을 정도로 연약하고 아무와도 싸우지 못할 것처럼 생긴 포켓몬들이 있다. 꼬지모같은 애들. 나뭇가지가 웃고 있는데 아무도 해치지 못할 것처럼 생겼어. 너무 하찮아서 귀여운 아이. 그런 애들이 많다. 하지만 모두가 각자의 특성으로 각자의 방식으로 살고 싸운다. 게을킹은 게으름으로 싸우고, 질뻐기는 오물을 던지면서 싸운다. 그러고 보니까 정말 웃기네. 포켓몬고를 내가 갑자기 시작하게 된데도 이유가 있었나 봐. 너무 웃겨. 불현듯 시작하여, 힘이 쭉 빠진 기간 동안 급격히 많이 했는데, 그 각자의 능력치와 특성들을 보는 게 요즘 나의 재미였거든. 하여간... 참 이런 내가 웃겨.

천혜향 두 개를 와라라 먹고 시작한 일기를 쓰다가 하나를 더 먹었어. 천혜향 세 개로 쓴 일기.

화요일, 3월 05, 2024

조리있게 말하기. 조리있게 생각하기.
너무 많이 생각하기. 너무 많이 말하기.
너무 많이 생각해서 너무 재밌지만 때로는 불안해지기도 하는 것과 필요한 것만 떠올리고 조리있게 생각하고 말하는 것 중에 무엇이 더 좋을까. 너무나 재미있지만 가끔은 꼭 우울해진다면 그냥 그렇게 사는 편이 나으려나. 평안하지만 너무 평안한 나머지 무감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무래도 재미가 없지? 그것은 아무래도.. 그렇지?
요즘 그런 꿈을 꾸었고, 그런 생각들에 빠졌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데, 그것들을 정리하고 적응하고 극복하고 그렇게 충분히 천천히 느낄만한 그런 시간이. 그치만 혼자 그것을 지나갈 만한 시간을 갖는 게 지금 내게 적정한지도 모르겠고, 부담스럽기도 하고, 다른 것들로 내 시간과 공간을 채워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기도 하여 어찌저찌 중간의 것들을 택하며 중간의 길을 가고 있었는데 하여간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어떤 말과 화는 꼭 나를 겨눈 것 같았어. 맞지. 세상은 나의 거울이니까.
생각하지 않고 성찰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은 나쁜 걸까? 모르겠다. 내가 무감해지는 것이 우울인지, 우울의 치료로 인한 부가적 효과인 건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의사는 그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지? 그런 경우에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 건지 모르겠다.
계속 일기를 쓰고 싶었다. 영 분위기가 맞지 않아서, 기력이 고르지 않아서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마침 시무룩해지니까 일기를 쓸 수 있었다. 오늘은 바가바드기타 필사를 처음으로 빼먹었다. 34일째인 오늘. 지난 번 요가수트라 필사 명상을 하면서 한번 겪은 생각과 마음들이라 그런지, 이번에는 필사를 빼먹게 되더라도 크게 마음이 동요하지 않는다. 오늘도 그래서 열두시가 넘어가는 것을 그냥 무덤덤하게 지켜보았다. 오늘 회사에 1분 지각을 한 것과 비슷했다. 오랜만에. 필사 명상을 빼먹는 것에 크게 마음이 동요하지 않게 된 것도 있지만, 전보다 필사 명상을 하는 일이 훨씬 수월하게 느껴지게 된 것도 변화다. 글씨 쓰는 것이 편안하고 편하고, 자연스럽다.
매일 내가 쓰는 구절들은 마치 일기처럼 오늘 내가 알아야 할 내용을 전해준다. 매일 크리슈나가 내게 해주는 말이다. 마침 오늘도 그런 말씀이었다. 자신에 의해 자신을 높이고 자신을 비하하지 말지어다. 자기야말로 자기의 친구이며 자기야말로 자기의 적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 자신을 비하하려는 생각을 하려고 하던 참에 내 손이 그 구절을 쓰게 되었다. 정말 웃기게도 오늘 어쩌다가 침착맨이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자꾸 진다는 누군가에게 언제나 그렇듯 흘러나오는 자연스럽고도 즉각적인 말을 내뱉은 것을 보았는데, 그게 꼭 크리슈나가 하는 말 같아서 생각이 났다. 자기와의 싸움이니까 이긴 것도 나라는 말이었다. 너무 웃긴데 감탄스러웠다. 정말.
아빠랑 어렸을 적에 우리나라의 명산을 다니곤 했는데, 힘들게 산을 오르던 어느 날에 아빠가 내게 등산을 하는건 자기와의 싸움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던 그 순간을 종종 떠올린다. 무언가 힘든 것을 하고 있을 때에 힘든 하루를 지나가고 있을 때에 가끔 떠오른다. 산을 오르는 것은 나를 걷는 것과 같은 것이구나. 나를 오르는 것. 나를 걷는 것.
오랜만에 일기를 쓰니까 너무 좋네. 말라카이트도 너무 좋고. 로저와 브라이언 이노 형제들 앨범 중에 mixing colors라는 앨범을 한창 듣던 때가 있었는데, 오늘 오랜만에 그 앨범에 들어있는 malachite가 흘러나왔고 새삼스럽게 너무 좋았다. 새롭기도 했고. 집에 와서 윤슬이가 선물해 준 말라카이트를 만지작거리고, 그 반짝이고 만질만질한 표면 위에 비추는 빛을 바라보았다. 일랑일랑 향을 맡고, 다시 초록빛의 앨범을 들으며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일기를 쓰는데, 마음이 좋아졌다. 다행이다. 다행.

토요일, 2월 17, 2024


 

우리집에 콘트라베이스가 생겼다. 현님의 콘트라베이스. 우리가 종종 즉흥 연주를 하고, 음악을 만드는 걸 보고, 우리에게 콘트라베이스를 맡기면 재밌게 잘 갖고 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그래서 우리집에 빌려주러 현님이 왔는데, 우리가 콘트라베이스를 만지고, 소리를 내는 걸 보고 현님이 너무 기뻐했다. 나도 오랜만에 너무 신나고 기뻤다. 어제랑 오늘 지량과 한번씩 함께 연주를 했다. 지량은 피아노를 치고, 나는 콘트라베이스를 치고. 연주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바로 소리에 몰입하게 된다. 그 진동이 나를 아주 편안하게 만들어주고, 계속해서 그 소리를 듣고싶게 만든다. 아아아. 재밌어. 

햇살이 가득한 오후. 아주 따스하고 창문을 열어두어 햇살과 바깥 공기가 함께 느껴진다. 먼지 일어나는 소리들도. 공양이가 내 다리 위에서 꾹꾹이를 하고 편안함을 느끼고 나는 잠이 솔솔 오고. 그때 갑자기 느껴지는 이 느낌. 정말 너무나 오랜만에 느껴지는. 내가 살았던 어린 시절의 어떤 순간들 계절들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것은 어떤 감각인지 명확하게 설명되긴 어렵다. 맡아지는 냄새같기도 하고, 어떤 기분같기도 하고, 어떤 인상 혹은 어떤 빛깔의 정도, 이 모든 것이 합쳐진 여러가지 가지 감각의 총체같기도 하고 말이다. 이런 것도 플래시백일까 어떤 사건이나 사람, 기억이 떠오르는 것은 전혀 아닌데, 어떤 시기의 총체적 느낌 어떤 시간의 감각이 느껴지는 것이다. 이 따뜻하면서도 시원한 공기. 햇살은 따뜻한데 아직 피부에 닿는 공기는 공기는 차가운 그런 시간. 

모든 기억들이 마치 일어나지 않았던 일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는데 오직 그것은 기억이라는 형태로만 떠올려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느껴지는 착각. 그러나 오늘과 같이 마주하는 이런 순간에 나는 내가 살았던 그 모든 시간들이 실재하였음을 알게 된다. 

목요일, 2월 01, 2024

 

터키의 밤은 굉장히 아름다워. 아야 소피아 성당과 블루모스크가 마주고보고 있고 유럽의 불빛과 아시아의 불빛이 한데 섞여 있거든. 터키에 있으면서 너의 생각이 많이 났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랑 터키는 많이 닮은 것 같았거든. 모든 것들이 혼재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모든 개체가 각각의 빛과 멋을 잃지 않고 있는 모습이랄까?


스무살때였을까. 정모가 이스탄불에서 써 준 카드가 있다. 가끔 이 카드를 떠올리는데, 너무 아름답고 맘에 드는 말이 적혀있어서ㅎ 얼마전에 오래된 편지들이 가득한 박스를 정리했다. 평생동안 정리하지 않았던 것들을 요즘 정리하고 있다. 편지함에서 정모가 써 준 카드를 계속 읽고 싶어서 잠시 꺼내두었다. 너무 아름다워. 계속 소중히 간직해야지. 나를 이런 모습으로 떠올려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감사하고 아름다워. 

월요일, 1월 22, 2024

눈을 감고 어떤 장소를 떠올려보세요. 지금 있는 방 혹은 당신의 집 혹은 익숙한 어딘가, 그냥 지금 떠오르는 어딘가. 천천히 그 장면을 떠올렸다면 구석구석을 살펴보세요. 아마 볼 수 있을 겁니다. 어느 구석에 무엇이 위치해 있는지 어떤 느낌인지. 그것이 바로 당신이 그곳에 있지 않으면서도 닿는 방법입니다.

어딘가에, 누군가에 우리의 신체가 위치해 있지 않으면서 함께 존재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전혀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내가 했던 말이다. 오늘 꿈에서.

아침부터 귀찮음과 분노, 불만 등이 떠올랐다. 그것들이 쉬지 않고 밀려들려고 하자 그 감정들을 받아들이고, 사랑의 에너지로 다시 전환하기 위해 명상을 했다. 머리가 복잡해지고, 마음이 괴로워지는 이유는 내가 현존하지 않음으로써 일어나는 일들이다. 내가 귀찮다고, 괴롭다고 생각하는 일은 현재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니었고, 분노의 감정 또한 내게 현재 직접적으로 일어난 상황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왜 그곳에 가있지? 나는 현재 지금 여기에 있는데-하고 생각을 생각을 하다가 현존하기 위해 호흡하기 시작했다. 현재의 호흡에 집중하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었다. 그러면서 이 버스 안에 있는 모두의 두려움과 고통, 짜증스러움을 들이마시고, 내 안에서 그것들을 정화시커 오직 따뜻하고 편안한 숨으로 다시 내뱉었다. 그렇게 정화된 숨을 다른 이들이 들이마쉴 수 있도록. 그렇게 호흡하다가 오늘 꿈 속의 말이 떠올랐다.

내가 현재 위치하고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 닿거나 존재할 수 있는 방법. 오늘 아침처럼 내가 현존하지 않음으로써 일으킬 수 있는 고통도 있었지만, 그 방법을 다르게 사용한다면 나는 버스 안에서도 내 동생의 방에 들어가 동생을 쓰다듬고, 미셸과 까미유가 누워있는 곳에 가서 그들을 어루만질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생생하게 떠오르는 내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곳에 닿아 그들을 어루어만지고, 아픈 곳을 주물러주었다.

그러고 보니 나를 괴롭히는 상황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도 아니고 내가 지나왔거나 혹은 일어나지 않은 그러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네. 존재하지 않는 것에 닿으려고 했던 것이니, 실재하지 않는 괴로움을 내가 만들어낸다는 것이 그로구나. 반대로 내가 내 동생과 고양이에게 닿는 일은 현재 그들이 있는 곳으로 내가 정말 가 닿는 일이었다. 정말로 닿아 내가 사랑을 줄 수 있는 체험.

여기에 있으면서도 그곳에 닿는 일은 사랑의 체험이구나. 

화요일, 1월 09, 2024

maha vakya

1. 브라흐만 사트얌 자간 미트야(Brahman Satyam jagan Mithya) - 절대인 브라흐만은 참이며 세상은 참이 아니다.
2. 에캄 에바드비티얌 브라흐만(Ekam Evavitiyam Brahman) - 브라흐만은 하나이며 둘이 아니다.
3. 프라그얌 브라흐만(Pragryam Brahman) - 브라흐만은 최상의 지혜이다.
4. 탓뜨밤 아시(Tattvam Asi) - 그것은 그대이다.
5. 아얌 아트마 브라흐만(Ayam Atma Brahman) - 참나인 아트만과 절대인 브라흐만은 같다.
6. 아함 브라흐마스미(Aham Brahmasmi) - 나는 절대인 브라흐만이다.
7. 사르밤 칼비담 브라흐만(Sarvam Khalvidam Brahman) - 모든 이것은 브라흐만이다.

자비를 배우기 위해 분노를 경험했고, 치유되기 위해 병들었다. 더 치유받아야 하는가봐. 보살핌을 받아야하는 가봐.

일요일, 1월 07, 2024

일요일, 12월 31, 2023

버스를 타고 후아힌에 가고 있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너무나 가깝게 느껴졌다. 하늘이 너무 가깝고, 무한한 사랑을 느끼는 것이 너무나 수월하다. 움츠러든 심장을 펴고 세상을 받아들이고 세상을 느끼는 것이 아주 쉽다. 그러다가 서울을 떠올렸고, 내가 서울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이유를 알았다. 내가 왜 아시아인으로 태어났는지, 그 중에서도 왜 서울에서 태어났는지. 내가 어릴 적에 늘 그곳을 떠나고 싶어 했던 이유도. 그러나 이제는 내가 어디에 살아도 상관없음을 알게 된 이유도. 오히려 내가 그곳에 있어야 하는 이유도. 모두 다 알겠다. 마주하는 이들이 아름다운 미소와 인사를 건네는 곳에서는 사랑을 느끼는 일이 너무나도 쉽다. 금방이라도 가슴에 사랑이 가득해지고, 그것을 유지한 채로 사는 것이 참으로 쉽다. 

지난여름, 지량과 뉴욕을 여행하며 느낀 것. 그 복잡함과 더러움, 폭력성을 바라보다가 그것들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얼마나 내가 더 크게 용서해야 하는지, 더 크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배웠던. 그렇게 더 큰 사랑을 배우기 위해서는 더 큰 역경을 건너야 한다는 것을. 복잡하고 밀도가 높은 서울에서 산 나의 나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겪은 폭력과 고통. 그 사이에서 내가 살고 지나야 했던 과정들이 있었음을 이제는 애쓰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보리수 아래 앉아서 명상하고 있는 누군가가 그 안에서 넘어서고 있는 두려움과 고통의 상상이었을지도 몰라. 그것을 하나 넘으면 큰 안도가. 그리고 더 큰 고통을 넘으면 그보다 더 큰 안도가 있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두려움을 한 꺼풀씩 벗겨내고 나면 더 가벼워진 나를 본다. 본래의 순수한 내가 있음을 알게 된다. 서울에 있다가 방콕에 오니 내가 이 세상과 연결되어 있음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진다. 눈으로 보이는 모든 것들이 눈을 감으면 모두 사라지는 것이 왜인지를. 당연하여 인식한 적이 없던 그 현상을 인지하니 세상을 이루는 것들은 내가 눈으로 인식하고 있는 저 전깃줄도, 벽도, 빨래 더미도, 사람들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눈을 감으니, 그것들이 모두 보이지 않았다. 내 눈이 보는 것이 진정으로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의식적으로 내가 닿으려고 하지 않아도 나는 이미 연결되어 있었다. 이 땅의 일부로 존재하는 나를 느낀다. 이 땅이 나임을 느낀다.

아주 많이 덜컹거리는 작은 버스를 타고 있다. 버스를 타고 있는 내 몸이 거세게 흔들릴 때마다 내 안에 있는 물이 떠올랐다. 덜컹일 때마다 흔들리는 물결과 이리저리 튀는 물방울. 그것은 참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했지만 이내 곧 그걸 지켜보다가 흔들리는 몸 안에서도 고요하게 담겨 있는 물을 그려볼 수 있었다. 언제 어디서라도 고요하게 존재하는 그러나 여전히 유연하고 부드러운 물을 본다. 이 고요한 물을 기억하며 서울에서 살 생각을 한다. 나무 자세, 브륵샤 아사나를 하는 이유를 요즘 들어 많이 생각했는데, 그것을 오늘 더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집중한다면 한 발로도, 정수리로도 이 땅 위에 곧게 설 수 있음을. 그렇게 울퉁불퉁한 땅 위를 걸어도 고요한 물을 기억한다.

일요일, 12월 10, 2023

궁금한 것이 있어 타로를 뽑았다. 편안한 것 같은데, 약간 동시에 불안하고도 불편한 알 수 없는 느낌이 오랜만에 생겨 카드를 뽑아보았는데, 아주 긍정적이고 힘이 느껴지는 메시지들을 마주했다. 나를 더 믿기로 했다. 지금 내게 다가온 현실에 충실하며, 내 상태를 솔직하게 마주하며, 기꺼이 모든 것들을 느끼고 해내기로. 소영이가 내게 선물로 준 이 카드가 나랑 아주 잘 맞는 것 같다.

멀리 떨어져 있는 윤슬이를 생각하며 현재의 상태를 보기 위해 카드를 뽑았다. 윤슬이를 떠올리고, 느끼며 카드를 뽑았다. 아름다운 메시지들이 나왔다. 윤슬이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다. 너무 신기하게도 무언가 심장을 누르는 느낌이 나서 이게 무얼까 하고 명상을 잠깐 하고 왔다고 했다. 내가 보낸 레이키를 받았나보다. 너무 신기해서 오지랑 윤슬과 나는 서로 레이키를 보냈다. 모두가 서로에게 보내는 부드럽고 따스한 에너지와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잠시 이렇게 우리를 어루어만지는 이 에너지들만으로도 이렇게 편안하고 온전해질 수가 있구나. 너무나 놀랍고도 신기해. 어쩌면 내가 윤슬이를 생각하며 뽑은 카드들이 우리의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던 것일까. 3개의 컵이 나왔고, 사랑과 풍요가 가득한 커뮤니티의 모습이 있었다.


일요일, 11월 26, 2023

삼야마

지량과 다른 작가들이 있었다. 셋이서 삼각형을 이루듯 둥그렇게 앉아있었다. 수카사나의 자세로 바닥에. 그들은 눈을 감고 공간에 대한 삼야마를 실행하고 있었다. 공간에 대한 삼야마를 시작하자 그들은 지금 여기 이 자리에 앉아있지만, 다른 공간에 동시에 존재하고 이동할 수 있었다. 한 작가는 그곳에 있는 것들을 지금 현재의 공간으로 가져오는 일을 해냈다. 입 속에서 뭔가가 나왔다. 이 공간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삼야마를 통해 도달한 어딘가서 존재하는 것을 입을 통해 꺼내오고 있었다.

지량은 하늘 위로 높이 올라가 공중에서 이동을 하고 있었다. 우리의 신체는 여전히 이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삼야마를 통해 어디서든 존재할 수 있었다. 지량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지량이 바라보는 것도 내가 바라보는 것이었다. 지량의 시야가 나의 시야였다. 그렇게 공중을 이동하며 나는 매트릭스를 떠올렸다. 그 모든 것들이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틈을 발견했다. 그 틈은 삼야마를 통해 모든 곳에 존재하고 모든 곳을 이동하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통로였다. 마치 천장에 있는 귀퉁이 같은 곳이었다. 나 말고도 다른 영혼들이 오가는 통로였고, 나는 그곳에서 누군가와 부딪히거나 마주치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피해 갔다.

그리고 삼야마를 실천하고 있던 나는, 온세상에 흩어져 있던 나와 똑같이 생긴 무한한 나 자신이 지금 내가 있는 이 곳으로 모이고 있음을 보고 있었다. 똑같은 나들이 무수한 나들이 한데로 모이고 있었다. 그렇게 모이고 있는 무수한 나를 바라보고 있으니, 현재의 나, 이것을 인지하고 있는 나가 진정 삼매에 빠져들었을 때에 현재의 나를 잊게 될까 봐 어떤 것이 나인지 알 수 없게 될까 봐 갑자기 두려워졌다. 나 자신을 잃게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 두려움에 나는 잠시 멈추어 정신을 차려 현실의 나로 깨어나려고 했다. 그것은 내게 중요한 일이었다. 지금 현재의 내가 있음을 잊지 않는 것.

그리고 이후부터는 거의 정말 내가 그 체험을 한듯, 깨어있음과 이 체험을 느끼는 상태의 거의 중간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언어화된 사고로 이 현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도중에 멈추었던 것은, 그렇게 현재의 내가 무수한 나 무수한 우주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어 다시 현재의 나의 주파수를 찾지 못했을 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조현병과 같은 상태가 될 수 있음을 이해하게 되면서, 그것의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그렇게 마주할 수 있는 수많은 우주를 감당할 수 없을 때, 혹은 다시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과 두려움이 클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 상태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엔 그 두려움에 나를 내맡긴 채 무한한 내가 모여 어떤 것이 나인지 알 수 없는 상태를 경험해야만 함을 알았다. 그래야 그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다시 삼야마에 집중하기로 했다.

11월 19일의 꿈
혹은 삼야마를 실행하고 있던 순간

너무 신기해서 그 체험을 곱씹고, 지량과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리고 오늘 다시 글로 이 체험을 남기니 정리되는 이야기들이 있다.

सो ऽहम्


주말이지만 일찍 눈이 떠졌다. 아무래도 불편함과 통증이 몸에 느껴지는 탓에 더 일찍 일어난 듯하다. 특히 몸의 오른쪽이 많이 아프고 균형이 잘 맞지 않는 것이 느껴져서 거실에서 요가를 하기 시작했다. 통증이 느껴지고 부드럽지 않은 몸의 부위를 더욱 느끼면서 집중하면서 그것이 풀어지고 더 편해지는 데에 집중을 했다. 한동작 한동작 더 오래 머무르고, 필요하다면 정말 영원히 그 자세에 머무르기라도 할 것처럼 그렇게 머무르니 조금씩 풀어지는 몸을 바라볼 수 있었다. 이게 가능하구나. 그렇게 거의 한시간이 넘게 고요하게 내 몸에 집중하며 천천히 아사나를 반복했다. 등을 대고 몸을 뉘었을 때 바닥에 닿는 내 등과 어깨의 면적이 더욱 균일해지고 내 머리가 곧게 하늘을 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이 가능하구나. 이것이 요가구나. 오늘은 정말 새로운 것을 배우고 느낀 날이야. 몸이 너무 아프고, 잠을 제대로 못잤지만 그 덕에 통증을 더욱 제대로 바라보고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운 것 같다. 정말 신기하고 감동적이야.
이전에는 약간은 의무적으로 요가를 하곤 했다. 몸과 마음의 균형이 맞지 않아서 이것이라도 해야한다는 약간의 불안한 마음과 조급함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요가를 시작하더라도 어떤 시퀀스를 따라가면서 정해진 시간동안 수련을 하곤했는데, 오늘은 아무 것도 없이 영원과 하루를 묵상하며, 천일야화를 떠올리며 아사나에 집중했다. 그렇게 나만의 호흡과 나만의 수련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모두의 몸이 다름을 그렇기에 모두의 호흡법이 다르고, 모두의 유연함이 다르고, 모두의 고통이 다름을 느끼는 요즘이다. 온 몸으로 호흡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모두의 몸이 다른데 어떻게 모두가 복식호흡을 하고 혹은 모두가 흉식호흡을 할 수 있을까. 어찌 그렇게 생각하며 지내왔을까. 배와 갈비뼈 가슴 그리고 손끝, 발끝까지 모두 내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을 느낄 수 있는 통로임을. 얼마전, '소함'이라는 만트라를 배웠는데, 마침 새로운 내 요가원에서 지난 시간 '소함' 만트라를 마음 속으로 외며 우짜이호흡을 했다. 
소-함-
i am that. 이라는 의미다. 나 자신이 이 현실 자체이자, 우주임을 말하는 것이다. 내 몸이 이 우주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이 모든 우주와 이 모든 세상을 내 몸에서 느낀다. 들이마실 때 차갑게 느껴지는 숨과 내쉴 때 따스하게 느껴지는 숨. 그렇게 정화되는 세상과 정화되는 나의 몸. 차가움과 따스함이 균형을 이루는 우주. 
더욱 부드러워진 몸과 마음을 느끼며 큰 감사를 느낀다.

토요일, 11월 04, 2023

세라
세라를 왜 썼지.
오늘 서촌에 종일 있었다. 나가기 전 뽑았던 타로카드 세 장, 그리고 카드를 섞으며 떨어진 월드 카드. 완전히 그런 하루를 보냈다. 10개의 지팡이를 안고 힘들게 가려는 사람. 지나간 것을 붙들려는 마음. 안 그래도 내가 원래 들고 가려던 작품보다 뭘 더 들고 가야 할까 하고 예전에 오지랑 만들었던 대정전의 밤을 들고 갈까 고민이 되어 카드를 뽑아본 것이었다. 그 카드를 보고 대정전의 밤은 놓아두고 나갔다. 지량도 없구 혼자 택시 타고 가야 하는 상황이라 어젯밤에도 욕심부렸던 짐을 이미 던 상태이기도 했다. 그치만 여전히 그래도 너무너무 많기는 했다. 공간도 괜찮았고, 처음 만나는 작가님들의 작품들이 모두 좋아서, 그리고 나누는 이야기들도 그렇고 다 재밌게 그래도 하루를 보냈다. 일찍부터 나가서 오후부턴 급격히 피곤해지긴 했다. 오전에는 아주 많이 떠들고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했다. 항상 그러다가 나 혼자 지치더라. 너무 웃긴데, 근데 그냥 너무 평생의 나 같네. 아무튼, 아쉬웠던 것은 내가 준비해 간 것을 정말 많이 팔지 못했단 사실. 근데 그런 마켓을 카페 같은 공간에서 하루 연다는 게 어떤 건지도 알고, 경험해본 적도 몇 번 있으니 잘 알기도 하여, 당연히 그럴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도 아쉽더라. 그냥 요즘 약간 아쉽다고 느끼는 것들이 많아서 마음이 더 그렇게 뭉쳤던 것 같아. 가온이랑 오지가 저녁때 와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정리하고 함께 식사했다. 집에 돌아오니 열 시였다. 택시 타고 집 앞에 내려서, 아침에 들고 나온 짐을 거의 그냥 그대로 들고 대문 앞에 섰는데,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이런 걸 하지 않아야지. 혼자 되내며 집으로 들어왔다. 너무 힘들고, 무겁고, 그러나 팔리지도 않고, 그러니 내 것은 좋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말이야. 그리고 내가 계속 팔고 있는 것들이 내가 만든 지 꽤 된 작품이라는 사실이 갑자기 너무 지긋지긋하면서, 아침에 뽑은 카드가 떠올랐다. 내가 계속 옛날을 이고 가는 것 같아서, 그 카드에 그려진 그림이 너무 나 같았다. 자기 몸집보다 큰 지팡이 열 개를 이고 가는 모습. 지긋지긋해. 이제 다 없애버리고 싶어! 뭔가 이런 마음이 갑자기 들었다. 칼리의 명함을 갑자기 어떤 지갑 속에서 발견해 오랜만에 보고는, 뭔가 정화하고 싶은 무의식이 꺼내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시작된 버리기. 처음엔 모든 것들이 다 꼴 보기 싫었다. 책상 위에 있던 세븐틴 단체 사진도 치워버리고, 이안이가 준 도마뱀 자리도 바꾸고, 내 돌멩이가 모여져 있는 곳에 있는 맘에 안 드는 것들 몇개를 골랐다. 내가 주운 돌멩이가 아닌 것들, 너무 오래된 지금은 쓰지 않는 내 핸드폰 번호가 적인 조개껍데기, 지량이 어머니 물건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작은 장식들 등. 뭔가 내게 그리 닿지 않았지만 올려져 있던 것들을 치웠다. 그리고 양주에서 가져온 편지박스를 열어서 버리고 싶었던 것들을 골라 버렸다. 너무 싫어서, 그러나 내가 받은 어떤 것들도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던 탓에 아직 내 박스 안에 있지만 평생 열어보지는 않았던, 그런 것들을 꺼내고, 어떤 편지들은 읽어보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써놓고 보내지 않은 편지들도 발견했다. 아빠에게 썼던 크리스마스카드 한장과 엄마에게 썼던 편지. 나는 항상 내 가족에게 자랑스럽다는 말이 적혀있었다. 대학생이 되면 1등도 하고 장학금도 받을 거라고. 나는 나 자신에게, 엄마에게, 아빠에게, 동생에게 자랑스럽고 싶다는 말이 쓰여있었다. 진짜 불쌍해. 오지에게 이걸 말하니, 얼마나 오랫동안 자신으로 살지 않은 것이냐고 했다. 난 계속 엄마로 살았다. 그 전에 발견한 건 성과 문학 시간에 쓴 나의 아주 내밀한 에세이였다. 글의 말미에 가서는 엄마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는 '엄마란 정말 이상한 존재다. 이 세상에 나 자신보다 소중한 것을 가진 사람.' 이라고 쓰여 있다. 그 말 뒤에는 나는 정말 남편에게 사랑받으며 살고 싶다고, 엄마처럼 참으며 살고 싶지 않다고 쓰여 있다. 정말 웃긴데 정말 슬퍼. 나는 그 에세이를 쓰면서 엄마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고 했다. 엄마는 당연히 나와 내 동생이라고 했고. 그러면서 나는 너무 슬퍼하고 있다. '엄마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이 자기 자신이었던 시절이 너무나 짧지 않은가...' 김윤아 교수님은 이 구절에 밑줄을 쳐 놓으시고는 '딸이 다 컸네요. 엄마한테 이 얘기해주세요.'라고 쓰셨다. 지금 근데 그 구절을 읽으니, 가장 소중한 것이 나랑 오지라고 하는 말은 결국에는 본인 자신이라고 답한 것과 다름없음을 안다.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 우리를 돌보는 것이...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돌보는 일인거지. 그것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제 알겠다. 그게 제대로 된 돌봄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한참 그렇게 버리고, 읽고 하다가 윤슬이랑 오지랑 열심히 또 떠들고. 그런데 모르는 사람에게 갑자기 메시지가 왔다. 마켓에 갈 수가 없는데, 내 사진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구매하고 싶은데 온라인으로도 구매할 수 있는지 묻는 메시지였다. 그걸 보면서, 내가 오늘 대문 앞에 서서 다시는 이런 것은 하지 않겠다 다짐했던, 나는 힘들기만 했다고,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었다고 느꼈던 마음이 떠올랐다.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시간은 없구나. 아무것도 아닌 것은 없어. 정말 오늘은 이상하고 이상하고 이상한 날이야. 정말 정말 심각한 동시성의 날이야.

그리고 버리려고 쌓은 것들을 가위로 자르고 손으로 찢었다. 찢으면서 마음속으로 아주 작은 소리로 웅얼웅얼하던 것들을 꺼내면서 하기 시작했다. 진작에 했어야 했던 말들. 원망의 말들, 미워하는 말들, 이해하기 전에 먼저 느꼈어야 했던 마음들을 말로 했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걸 시작하자마자 속이 시원해지면서, 절대 꼴도 보기 싫었던 그것들이 그렇게 특별하지도 그렇게 내게 큰일들이 아니었던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너무 힘들었는데, 너무 힘들었다는 말을 내뱉으니까 이제 안힘들어지더라. 정말 신기해. 그리고 마지막엔 그냥 웃기기도 했다. 그걸 열심히 찢느라 엄지손톱 옆에 건조한 피부가 살짝 찢어져서 피가 나고 있었다. 핏방울이 한방울 달린 채로 그걸 찢고 있는데, 그 편지 안에서 오래된 대일밴드 하나가 나왔다. 물론 그걸 쓰진 않았는데, 정말 웃긴 순간이었다.

이렇게 일기를 구구절절 쓰고 있는 나를 보니, 정말 또 비워내는 시기임을, 돌보는 시기임을 느낀다. 나에게 또 찾아온 시간이구나. 아. 정말 신기해. 그것들을 다 찢고, 쓰레기통에 넣고, 마지막에는 내가 사랑하는 쌍둥이가 준 편지들이 모여있는 서류봉투를 읽기 시작했다. 그건 너무 읽고 싶어서 마지막 오늘의 순서로 남겨둔 것이었다. 너무나 웃음이 터져 나오는, 사랑스럽고 귀엽고 고마운 말들. 항상 나에게 아름다운 축복의 말들과 칭찬과 사랑의 말을 아끼지 않았던 내 쌍둥이 예닮이. 대개는 항상 서로 쌍둥이라 불렀는데, 어떤 시기에는 나를 엄마라고 불렀다 예닮이는. 예닮이는 언제나 한결같이 나에게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야기했고, 나를 위해 기도해주었다. 그걸 읽으니, 내가 평생 들었어야 했던 말들, 내가 내 가정 안에서 들어야 했던 말들, 내가 나 자신에게 해야 했던 말들을 예닮이가 다 해주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정말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예닮이를 알게 되고, 서로 정말 아끼고 사랑하는 쌍둥이가 되었구나. 그리고 서로에게 정말 자기 자신이 진작에 들었어야 했던 말들을 해주고 있었음을 깨달았고, 정말 그 사랑스러운 말들을 보면서 펑펑 울었다. 정말 오랜만에 정말 정말 정말 펑펑 울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그렇게 많이 하고, 예쁘다고 칭찬해주는 말을 서슴없이 기꺼이 그리고 기쁘고 즐겁게 할 수 있게 해준 것이 그리고 보니 예닮이다. 정말 천사야 예닮이는. 천사 예닮이. 그래서 우리가 만났구나. 그래서 우리는 서로 만난 것이구나. 그래서 우리는 서로 사랑했구나. 그렇게 나는 예닮이를 느끼며,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들과 감정들, 약속들을 떠올리며 엄청 웃고, 또 울고, 걱정도 되고, 잘 지내고 있는 건지. 많이 힘들어하고 있을까. 내가 예닮이 기도를 너무 안하고 있었네. 예닮이를 위해서 기도해야지. 그런 생각을 했다. 정말 너무 많이 울었어. 생일축하를 예닮이에게 몇 번이나 받은 걸까. 너무 많은 생일 축하 편지가 있었다. 너무너무 축복받았어 나는. 고마워 내 사랑 내 쌍둥이 예닮이. 얼른 아침되어서 예닮이에게 메시지 보내고 싶어.

정말 오랜만에 새벽 4시가 넘었다. 이제는 너무 졸려. 자야지. 그리고 내일은 푹 쉬어야지. 지량이 너무너무 보고싶다. 나는 정말 정말 마음껏 사랑하고 싶다고 그렇게 어릴 적부터 바라왔어. 내 사랑하는 사람에게 너무 사랑받고 싶다고 쓰인 에세이 마지막 문단을 보고는 내가 지금 그렇게 사랑하고 있음을, 그렇게 사랑받고 있음을 알았고, 그것이 정말 기쁘고 감사했다. 정말 놀라운 감사였다. 내 사랑 지량이 너무 고맙고 너무 보고싶다. 그리고 바로 지금. 이 오늘의 일기를 쓰면서 사실은 내가 언제나, 지금까지 늘 그렇게 사랑하고 사랑받는 삶을 살아왔음을 느낀다.

수요일, 10월 25, 2023

사르바르타이카그라타요흐 크샤요다야우 치따스야 사마디파리나마흐

모든 곳으로 집중하는 것은 마음의 성향이다. 한곳으로 집중하는 것 또한 마음의 성향이다. 모든 것의 소멸은 마음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것은 마음이 집중될 때 일어나는 것이다. 마음은 그 양쪽을 다 수용한다. 마음이 사라짐과 나타나는 것을 집중하는 것이 바로 초월 의식의 변형인 사마디 파리나마인 것이다. 

사마디 파리나마는 마음의 다양성과 한곳의 집중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다. 모든 점은 마음의 특성이며, 한 점 또한 마음의 특성이다. 모든 점의 소멸이 마음의 사라짐이며, 한 점의 나타나남은 마음의 나타남을 말한다. 

<이사 우파니샤드>에서는 "참나 안에서 모든 것을 보며, 모든 창조물 안에서 참나를 보며, 그 어떤 이도 증오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일요일, 10월 15, 2023

화요일, 10월 03, 2023

후회스러운 결정들을 하고 괴로워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사진을 보다가. 너무 너무 싫고 괴로웠는데 돌이켜 볼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 지금은 재미있을 뿐이네. 모두 별 일 아니었어. 
노래가 좋게 들리는 날. 일기는 한 줄 쓰고, 사진 한 장 찾고, 떠들었다가, 다시 돌아왔다가. 실수를 해도 상관이 없는 상황과 장소라면 역시 이런 감각들이 좋아. 상황에 걸맞는 상태들이 있지. 
다리에는 왜 힘이 들어가게 될까. 정말 알 수가 없어.  

일요일, 9월 24, 2023

아주 천천히 요가를 했다. 히말라야 시더 인센스 스틱을 피워놓고 창문을 열어놓고. 시원한 가을 저녁의 바람과 사람들의 목소리가 창을 통해 들어왔다. 주말 저녁을 보내는 사람들의 목소리인가.
천천히 차례차례. 서두르지 않고 동작들을 해나가는 것이 참 좋다. 왜 무언가에 쫓기듯 하던 때가 있었을까. 수련을 하고 싶기는 하지만 내 몸의 무기력한 근육들과 무기력한 마음들이 그것을 끌고 갈 힘이 없지만, 어쨌거나 해나가야 했기 때문일까. 이제는 그런 마음들이 작아지는 것을 느낀다. 중요하지 않은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쓰여지는 에너지들이 줄어드니 진짜로 내가 써야 할 내가 쓰고 싶은 곳에 에너지를 쓰게 되는 것 같다. 걱정할 거리가 아니었던 것들을 걱정하며 때로 건강을 해치기도 했고, 마음을 다치기도 했고.
사바사나를 하는 몸이 아주 편안하고 편편했다. 사바사나를 할 때는 왜 몸을 꼼지락거리지 않는 것일까? 가끔 하던 생각이었다. 몸을 꼼지락거리고 싶은 충동이 전혀 일지 않고 고요하게 누워있을 수 있다. 결국엔 몸의 모든 부분들의 긴장이 풀어졌기 때문인 걸까. 어느 곳에 불필요한 에너지가 쓰이고 있거나, 억지로 어떤 에너지를 끌어 써야 할 때 내가 몸을 움직이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일까. 너무 졸리지만 깨어있으려고 하니까 하지 불안이 심해지는 것을 느꼈던 날이 있다. 정확히 답을 알 수는 없지만 요즈음 그런 발견을 하고 있다.
사바사나 자세로 누워있으니, 요가의 처음부터 끝. 그게 어떤 것이 되었든 간에 그 시퀀스들이 우리가 사는 하루의 모습, 인생 전체의 모습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의 이곳저곳이 열리고, 움직임과 흐름이 자연스러워지고, 그렇게 에너지가 상승했다가 점차 잠잠해졌다가, 온몸의 구석구석 힘을 빼고 완전히 땅에 기댄 몸. 뉘인 몸. 송장 자세. 송장으로 가는 생. 내 생의 모습도 요가를 하는 것처럼 계속 더 자연스럽게 만들고 싶다. 마음을 어둡고 어지럽히는 것들을 하나씩 정돈하고, 편안해지기. 요동치는 파동을 진정시키기.
눈을 감고 일기를 쓴다. 음악을 틀어놓고. 아아 좋다.

오늘은 남의 집 리빙룸에서 공연을 감상했다. 호스트의 연주와 예지님의 연주. 오래되고 아름다운 집에서의 소리들. 졸림들. 흔들림. 사람들이 누군가의 집에 모여 저마다의 영감을 떠올린다. 저마다의 이야기와 저마다의 감상들. 나는 식물을 많이 키우고 싶단 생각을 했다. 오래된 나무 색깔과 어울리는 식물들. 화분들. 그것들이 악기와 함께 놓여 있을 때의 아름다움. 그것들이 우리에게 주는 편안함. 그 편안하고 포근한 집의 느낌이 좋아. 아무것도 뚝딱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어느 것도. 아아 눈을 감고 아무렇게나 쓰는 일기가 좋구나.

내일부터는 일을 시작한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공간에서 정해진 업무를 한다. 새로운 루틴을 시작하는 하루다. 내가 나만의 자연스러움으로 하루하루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어. 어떠한 목표도 어떠한 목적도 그것이 나 자신 그 자체는 아니다. 그것이 없어도 나는 나야.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나는 그대로 나야.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나는 나 그대로 언제나 아름답다. 

화요일, 9월 19, 2023

여러 가지 감각과 감정이 돌아옴 혹은 재생됨을 느낀 날
갖가지 소식이 내게 전하는 메시지, 잊고 있던 소식이 끌어내는 어떤 욕망, 새로운 주제와 호기심

내가 현존하고 있는 세상을 바라볼 것
너무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멀어지지도 파고들지도 말고 말이다. 
끊임없이 벽과 구멍에서 돌아다니며 깨달은 것들이 다시금 더 밝고 분별이 가능한 차원에서 지혜로 완성된다.
나는 아주 천천히 그것들을 배우고 있어. 깨달았다고, 다 알았다고 여겼던 것들을 거듭 깨끗하고 순수한 형태로 다시 배우고, 깨닫는다. 그렇게 지속적으로 더 넓고 밝은 차원의 것으로 진화할 수 있는 것이 신기하고 또 감사해. 나에게 다가온 모든 인연과 가르침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지. 이 모든 경험을. 

토요일, 9월 02, 2023

9월이 되었다. 8월에 일기를 다시 많이 쓸 것 같았는데,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도통 일지 않아서 써지지를 않았다. 그리고 아주 아주 솔직한 마음들을 이제는 이곳에 쓰지 못하게 되기도 하여, 찾아올 마음이 안 들기도 했다. 앞으로 나 혼자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내 개인 메모에 써두어야지.

요즘 명상 필사를 하면서 계속 들었던 궁금증이 있었는데, 어제 오지와 이야기를 하다가 오지도 같은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중증 우울증과 명상을 통해 모든 고통과 탐욕 등 모든 감정이 사라진 고요한 상태가 되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는 거지-하는 생각. 괴로운 생각들, 부정적인 모든 잡념도 사라지고, 세상에 대한 욕심도 모두 사라진 상태를 경험했는데, 그래서 무언가를 내가 이생에서 이루어야겠다는 열망이나 의욕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 마음은 평온하고 말이다. 정말 무언가가 꺾인 느낌이 아니라, 그저 그런 모든 것들이 결국에는 환상이라는 것을,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런데 그것이 명상을 통해 도달한 그 해탈의 경지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다. 결국엔 모든 욕심과 감정들의 파도가 사그러드는 그런 상태. 무언가에 도취한 상태도 모두 지나서 드는 그런 마지막의 고요한 순간 말이다. 그것의 두 가지가 차이가 있을까. 현대 사회에서 중증 우울증이라고 불리는 그 상태가 지극히도 비생산적인 상태이기 때문에 이 상태를 치료해야 할 상태로 보는 것은 아닐까. 암튼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이번에 내가 느낀 상태는 여러모로 생소했기 때문에. 오지도 내가 그간 지나온 우울증의 형태와는 너무 달라서 알아채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나조차도 그랬고. 모든 감정을 생생하게 느끼는 상태를 모두 지나고 모든 것이 평평해지고 무의 상태를 경험하는. 요가의 궁극적 목표가 모든 자기 신체와 정신을 통제할 수 있는 신과 합일된 상태가 되어 죽음에 이르는 것이라면. 지금까지 그것이 물리적 죽음이라 생각했는데, 오지가 최근에 생각했다는 대로 그것이 물리적 죽음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새로 해보기도 한다. 아마 그럴 것 같다. 자주 이 질문들을 떠올릴 것 같다. 요가수트라 필사를 다 마치고 나면 또 새로운 질문과 깨달음이 있을지도.

요가수트라 필사 명상을 한 지는 63일이 지났다. 

토요일, 8월 19, 2023

작년의 여름은 내 인생의 최고였는데 ! 지금의 여름은 여름이 어떤지도 모른채 지나가는 것 같아. 벌써 저녁 바람은 시원해졌어. 정말 입추가 지나니까 아직 아무리 한낮에 기온이 높다하더하도 저녁이 되면 바람이 다르다. 부드럽고 시원한 이 바람을 느끼는 것. 이보다 좋은 것은 없을 거야. 몸에 힘이 너무 없다. 그치만 다행이지. 나는 내 모든 걱정들의 합이 아니야. 나는 지금의 여름이야.

가슴이 조금 가벼워진 것을 느낀다. 괜찮아질거야. 나는 또 이야기를 할 수 있어. 나는 또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어. 나는 아름다운 것을 느낄 수 있어. 나는 아름다운 것을 보여줄 수 있어. 내가 바라는 것은 그것이야. 그렇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발견한 아름다운 것들을 세상에 보여주는 것.

이제 가능할 때마다 이 시간에 옥상에 올라와 하늘을 바라보겠어.
무기력이 심한 날. 기분도 함께 가라앉음을 느꼈다. 몸에 기운이 너무 없어서 무얼 먹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사실 먹고 싶은 것도 없어서 그냥 초콜릿 쿠키와 아몬드 우유를 마셨다. 디아블로를 하고 싶어서 아이맥에 설치하는 복잡한 방법을 인터넷에서 찾아서 따라 해 봤는데, 안되는 것 같다. 휴 ! 참말로. 그렇게 낮시간을 좀 보내고, 이런저런 증상과 치료법 등에 대해서 해외 의학 블로그 같은 곳을 보다가 요가를 했다. 그래도 한 30분 정도 집중하여 요가를 하고 다시 자리에 앉아 일기를 쓰기로 했다. 신기하게도 몇 가지 동작만 가끔 하는데도 요가 아사나가 점점 순조롭게 되는 것을 느낀다. 특히 우르두바 다누라사나. 아치형으로 일어서는 순간 양쪽 어깨와 가슴 중간에서 소리가 난다. 너무너무 시원해. 가장 시원하고 개운해지는 동작이다. 운동의 효과가 항우울제보다도 더 좋은 약이라고 하는데, 움직이는 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아. 그렇다고 커피로 몸을 억지로 깨울 순 없다. 흠냐. 아무튼 다행히 힘겨운 오늘 요가를 했으니 뿌듯함을 느껴야지.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모르겠다. 오늘 일어나서 고양이들을 보러 가려고 했는데, 오늘 잠을 잘 못자서 더 그런 건지 힘이 없다. 아니 사실 어제는 커피를 오랜만에 내려 먹어서 그나마 조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는데, 다시 매일 커피에 의존하는 생활로 돌아가고 싶진 않아서 오늘은 디카페인 커피를 마셨다. 후후하하. 지량 보고싶다. 

화요일, 8월 01, 2023

놀랍게도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요가수트라 필사 명상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처음 3일이 지날 때, 일주일이 지날 때, 195일이라는 긴 여정이 어떻게 흘러갈까 싶었는데, 아마 순식간에 마지막 장을 필사하는 순간이 다가올 것 같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요가수트라를 한장 한장 써왔다. 많이 귀찮고 힘이 없고... 힘이 드는 7월이었지만, 어떤 날은 억지로라도 이 필사 명상을 하곤 했다. 내가 빠짐없이 매일 하고 싶은 일은 많지만, 그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이건 같은 목표로 매일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와 서로가 쓴 글씨를 나누고 같은 구절을 써 내려가는 공동의 수행이라 왠지 더 포기하지 않고 꼭 해내고 있는 것 같다. 매일 매일 밴드에 들어가서 내가 쓴 오늘의 장을 찍어 올린다. 아무도 검사를 하지 않지만, 누가 오늘 빠뜨렸는지도 알 수 없지만 그 간단한 루틴이 우리를 이 일을 지속할 수 있게 도와준다. 1일 차, 2일 차, 3일차... 이 숫자들을 빠뜨리기 싫은 강박이 있는 듯도 하지만, 어쨌거나 그 강박으로 인해 하고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뿌듯하다.
보르헤스의 갈림길에 대한 이야기를 찾다가 블로그에 썼던 일기 중에 글이 있을까 하고 검색해 보았는데, 없다. 블로그에 검색하는 위젯을 하나 추가했다. 그리고 온 김에 일기를 쓰고 있다. 얼마나 오랜만에 쓰는 일기지. 필사 명상을 하면서 기록해 두기 위해 7월에 몇 번 오기는 했지만 이렇게 일기를 써 내려가는 일은 정말 오랜만이다. 사실 써 내려갈 힘이 정말 없었다. 말이 전혀 이어지지가 않았다. 구름이 잔뜩 낀 것 같았다. 아까 검색을 해보니 내가 이 전에 아주 길게 하루를 풀어 쓴 일기들을 발견했는데 그게 참 신기하다. 그래도 오늘 이렇게 일기를 쓰는 걸 보니, 그것이 다시 가능해지지 않을까 싶다. 말이 안 나오는 것과 글이 안 나오는 것은 항상 별개의 문제였는데, 이번엔 그게 같이 일어났다. 왤까. 마음이 슬프고 말은 잘 나오지 않더라도, 글로는 복잡한 마음이 더 잘 쓰여지는 때가 있었는데. 이번엔 모든 것이 함께였다. 알 수가 없다. 정말. 아무튼 오늘은 그래도 조금 안개가 걷힌 듯하다. 여전히 글을 쓰다가 다른 인터넷창을 들락날락하는 것은 그대로지만 말이다. 근데 그러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나는 늘 도중에 여기에서 빠져나가지 않기 위해서 같은 음악을 하염없이 듣곤 했다.

수요일, 7월 26, 2023

guru

구루

어둠을 몰아내고 빛을 주는 이

월요일, 7월 17, 2023

요가수트라 필사 명상을 시작한 지 17일째.

하루도 빼먹지 않고, 매일 매일 한 장씩 써 내려가고 있다. 내가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던 아니던 간에 무언가를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매일 해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내게 큰 의미가 있다. 소소하지만 큰 일이다. 195일간 매일 행할 일이니까. 

이걸 7월 1일부터 시작한 이래로 사실 매일 매일 그 한 장을 곱씹으며, 써 내려가고 있었는데, 딱 하루는 정말 엉망이었던 날이 있다. 내 마음이 정말 어지러웠던 날인데, 그러면 안 되는데, 아주 짜증스럽게 글자를 대충 써 내려갔던 기억이 있다. 내 마음을 추스르기가 힘들었던 날. 정말. 그런 날도 있었다. 단 한 장을 써 내려가는 일이 나의 하루를 온전히 말해준다. 하지만 그날의 구절을 지금 다시 꺼내어 보니, 짜증스러웠지만서도 내 마음에 너무나 와닿았던 구절이었다. 아주 중요하기도 하고.

수행의 실천은 헌신의 마음으로 끊이지 않고 오랜 기간 했을 때 확고하게 자리 잡는다.

몰입. 헌신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한다. 그것은 그만큼의 시간을 들이는 것이다. '믿음과 지혜를 가지고 꾸준하게 정화해 나감으로써 확고한 헌신의 기초가 자리잡히게 된다.'

이 구절을 보며 요가의 길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오늘은 내 가족과의 관계를 떠올리게 된다. 헌신. 몰입. 믿음과 지혜를 갖고 쌓는 관계.

바가다드기타 2장 50절에 나온 대로, 요가라는 것은 정말 행동의 기술이다.


비타르카비차라난다스미타루파누가마트삼프라그야타흐

비타르카 vitarka - 분석하고 판별하는 것. 마음이 거친 상태에서 일어난다. 

비차라 vicara - 판별하는 것을 넘어 더욱 예리하고 명상적인 상태에서 바라보는 것. 분석적이고 이지적인 상태에서 좀 더 발전된, 그런 분석적인 상태를 관조하고 바라보는 상태. 
이것은 마음의 상태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더욱 섬세하고 정교한 사물의 관찰력을 말한다.

아난다 ananda - 비타르카와 비차라를 넘어서 찾아오는 희열. 분석적이고 이지적이고 예리한 관찰력을 넘어서 오는 내면의 행복한 상태.

아스미타루파 asmitarupa - 분석적인 것과 이지적인, 내면의 희열을 넘어서 나라고 하는 존재가 강하게 자각되는 상태.

삼프라그야타 sampragyata - 이러한 나라는 생각이 강하게 남아있는 개인적인 유상삼매. 내면으로 깊이 몰입된 상태이나, 개인적인 성향은 아직 남아있는 상태. 

금요일, 7월 07, 2023

어떤 가족에게 하는 말. 죽지 않고 살길 잘했어. 거 봐. 그 얼굴에 내가 있지. 요즘은 조합이 되지 않는 말들을 늘어놓는다. 깨달은 것이 아니라면 어차피 마음의 상태라는 것은 그렇다. 순서랄 것도 온전한 구성이랄 것도 없지.

하지만, 지식을 얻는 일에는 순서가 있다. 

"두료다나 왕은 판다바 군대가 전열을 펼친 것을 보고 스승인 드로나차리아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루티
스므리티
프라나남 

토요일, 7월 01, 2023

아타 요가누사사삼

오늘 <요가수트라> 필사 명상을 시작했다. 정확한 시작이다. ‘정확한 시작 없이는 언제나 처음으로 되돌아와야만 한다.’
열심히 글자를 꾹꾹 따라 써 내려가다가.. 요가의 의미를
제대로 처음으로 이해하자, 예술가들이 하는 일들도 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발생시키고 작품을 만들어 내는 과정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상태에, 다른 세상에 닿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사실 모든 작업과 작업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내가 하는 작업은 그렇다. 어쩌면 이것은 나만의 요가였던 것이다. 발견한 것을 지속적으로 바라보고 질문하며 그 의미를 알게 되는 것. 그로부터 이어져 있는 우주를 보는 것.
개인적인 것으로부터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것으로 확장하고 그것과 합일되는 것. 그것이 요가라는 단어의 어원 유즈 Yuj의 의미라고 한다. 그리하여 요가는 ‘절대’이기도 ‘하나’이기도 하지만, 절대와 하나가 되는 모든 과정과 수단이기도 하다. 그러니 내가 느낀 예술가의 일이 요가라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닌 것이지. 각자의 자리에서 하는 요가가 있을 것이다. 최근에 너무나도 멋진 예술가들을 보며 닮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들은 모두 그런 예술을 하고 있었다. 

화요일, 5월 16, 2023

the meaning of love

이 모든 여정의 노래

목요일, 4월 27, 2023

뜨거운 기운이 너무 많아질 때에는 글을 잘 쓰지 않게 된다는 칼리의 말이 많이 공감되었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밖으로 많이 나가는 3월과 4월을 보냈는데, 글을 정말 써질 않았네. 쓰려고 해도 잘 써 내려가지지 않는.

바탕화면이 너무 어지러워서 정리를 하는데 지량과 강원도 여행을 갔던 사진 폴더가 있어 오랜만에 들춰보았다. 이 시간을 들여다보는 것도 이제 '오랜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재밌네. 다시 들여다본 지난여름의 사진은 더욱 아름다워졌다. 시간이 쌓일수록 사진은 더욱 아름다워지는 것이구나. 사진을 찍고 나서 시간이 훌쩍 지나고 다시 들여다보았을 때 지난 시간만큼, 사진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과 그 사진의 시간 사이가 더 복잡하고 두꺼워질수록 그 시선은 더욱 애틋하고 소중해진다. 귀엽다. 사진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짓는 일은 정말 아름다운 일이야. 정말 정말.

사람들을 많이 만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많이 어지럽고 그래서 글을 쓰지 못한 만큼, 사진도 많이 찍지 못한 것 같아. 내 바탕화면은 정말 많이 어질러져 있었다. 언제 이렇게 또 많은 것들이 쌓였고, 나는 왜 이렇게까지 내버려 두었을까. 여행을 가기 전에 많은 것들을 정리해야겠다. 글을 쓰다가 또 생각나는 것들이 있어, 또 수많은 탭이 쌓여있는 인터넷 창에 또 새로운 탭을 열려고 했다. 우우. 아아. 너무 복잡스러워. 차근차근. 하고 싶어.

일요일, 4월 09, 2023

매일 모두에게 빚을 지고 살아. 산다는 것은 그런 건가 봐. 매일의 빚과 짐. 그렇게 매일 더 복잡하게 얽히는 카르마. 얼마나 많은 생에까지 우리가 서로 이어져 있을까. 매일 사랑으로 갚아도 항상 그보다 더 큰 사랑이 필요하다. 매일같이. 사랑으로 갚는 일이 기쁘게 여겨지는 날도 있지만 대부분의 날은 내가 지는 빚이 더욱 크고 무겁게 느껴진다. 그것을 갚을 생각보다는 그냥 포기해버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마는 - 거의 대부분의 날들. 흠냐뤼. 이유 없는 슬픔은 이제 다 사라졌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명확해져 버려서 이제 '이유는 알지 못하지만 일단 건네고 보는 위로' 같은 것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씁쓸하고 외로운 일이구나. 다 내가 견딜 수 있는 일이 되어버렸다. 애초에 견딜 수 없는 일이란 것도 없었지만, 이제는 더더욱 그렇다.

인스타 스토리를 보는데 친구가 셀피를 올려놓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코멘트를 적어두었다. 지금껏 한 번도 나 자신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음을 깨달았어. 이런ㅎ. 나 자신을 사랑하세요 ~ ~ 나 자신을 용서하세요 ~ ~ 지킨 적이 없네 ㅜ

화요일, 3월 07, 2023





그저께 뽑은 사비안 오라클 물고기자리29도, 프리즘. 

SEEING GOD IN EVERYTHING
​There are two directions that concern us deeply, whether we are looking for God or looking as if through God's eyes
"Simultaneously looking for God and looking through God's eyes"
The white light is divided into a diversity of rainbow colours by a raindrop or a prism and shows clearly the allegory of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One and the many. Isn’t this what we’ve been seeking for – the understanding of our relationship with God? God chose to express itself as diversity, the Creator created a multiplicity of facets of itself. We cannot therefore ever expect to end our evolutionary journey – since God itself is not static, The Creator is creative and so always changing its expression like a kaleidoscope. Life itself therefore requires differentiation. We do not know God only by surrendering the self, we need also to express the self creatively.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것과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에는 두 가지 방향이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을 찾는 동시에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보기"
흰 빛은 빗방울이나 프리즘에 의해 다양한 무지개 색으로 나뉘며 하나와 다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우화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던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이해가 아닐까요? 신은 자신을 다양성으로 표현하기로 선택했고, 창조주는 자신의 다양한 측면을 창조했습니다. 신은 정적인 존재가 아니며 창조주는 창조적이기 때문에 만화경처럼 항상 그 표현을 바꾸기 때문에 우리는 진화의 여정이 끝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생명 자체는 분화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자아를 포기해야만 신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아를 창조적으로 표현해야만 신을 알 수 있습니다.


결코 우리는 정적인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매 순간 변모하는 존재임을...

불안한 마음도 나를 힘들게 하는 상황도 언제나 내가 보는 그 하나의 단편적인 모습이 아니라, 일곱빛깔 무지개처럼 층층이 펼쳐지는 색깔일 수 있겠지. 펼쳐지는 그 빛이 마구잡이가 아닌 그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일정한 색깔의 층계를 보여주는 것처럼 인생에서 마주하는 모든 일들 또한 모두 그런 패턴과 겹들을 가지고 있는 거야.

사비안 오라클을 뽑고, 잠들었다가... 어제 일어나 인스타를 보는데, 크리스탈을 다루고, 그 크리스탈로 아름다운 장식들을 만드는 분의 인스타 계정에서 새로 올라온 글을 보았다. 크나큰 충격과 트라우마로 만들어진 균열. 수정들의 그 균열에 빛이 비추자 무지개가 보였고, 그때부터 수정이 그의 스승이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수정의 균열 사이에서 무지개를 발견한 (혹은... 그것은 자신의 내부에 발생한 균열에서 발견한 무지개일 수도) 그 순간, 느껴졌을 안도가.. 전해졌다.

균열과 빛, 무지개.

그렇게 분명히 나에게 다가오는 것들.

고군분투하는 것은 지겹지만 나는 또 그러고 있다. 나의 외부에서 일어나는 상황은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알아. 아무리 소중하고 아름다운 영혼들을 내 가족으로 맞이하고, 곁에 두고 살아도, 내 내면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균열들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은 나뿐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순수한 행복과 안정만이 있던 그 순간에 어쩌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여겼던 것은, 정말로 그런 때에 죽고 싶다는 마음이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순간들이 지나고 나면 내가 다시 마주해야 할 작고 큰 어려움들이 무언지 알았기 때문에. 뭐가 뭔지도 모르겠는데 정말 정말 참으로 견디기 힘든 매일의 감정과 갈등들. 요동치는 마음을, 그리고 그 균열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그 균열에 빛을 비추어주는 것이 참으로 힘들지만, 겨우 하나씩 하나씩 다시 다스려 봐. 

수요일, 2월 22, 2023

아이구 졸려라. 빙글빙글. 분주하고 꽉 찬 하루가 계속된다. 당장 내 눈 앞에, 내 손에 잡히는 일들을 해나가는 나날만 보내다보니 하루를 정리하는 것도, 찬찬히 뒤를 돌아보는 일도 못하고 있지만은 이런 모양도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그러함을 배운다. 완전히 흘러가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는 것. 그러느라 다치기도 하지만 그만큼 내 몸의 무게가 느껴지는 때. 지금 당장 바로 이 순간에 존재하기만 한다. 계속 지금에만 사는 것. 실은 그조차 인지하고 있지 않게 되는 생생함. 돌아보는 것이 항상 중요다고 생각했지만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것은 아무 것도 없지. 어떤 흐름 덩어리를 뭉텅하여 지나보자. 

수요일, 2월 01, 2023

화요일, 1월 31, 2023





천천히,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삶을 느끼고 살아야지. 흘러가야지. 내가 받아들여야만 하는 매일이 후회스럽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매일 내게 가장 진실한 마음으로 살아야 함을. 

1월 31일의 색.

어린싹색 




수요일, 1월 25, 2023

정신없이 지나가는 1월

정성스럽게 정리하고 정돈할 시간이 필요한데 말이야. 어떻게 하루가 지나가는지 모르겠어. 요 며칠 무리를 했던 것인지, 배가 아프다. 역시 한번 탈이 나면 쉽게 무너져 버리는 여러가지 몸의 리듬. 오랜만에 배가 차갑다. 

오늘은 지량과 집을 보러다녔다. 크게 기대하거나 예상한 것 없이 둘러보았는데 재밌었고 수확도 있었다. 하지만 아주 덕분에 피곤해지기도 했고. 이상하고 소름돋는 파트도 있었고. 아무튼 모든 것이 그래도 감사한 하루다. 돌이켜보면. 그치. 우리의 보금자리 마련의 과정이 수월하게 지나갔으면 좋겠다. 정신없이 지나가지만 그래도 길어진 과정... 아무튼 계속 마음을 잘 다듬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몸이 아프고 힘들어지면 자연스럽게 어떤 과정도 더 지난하게 느껴지는 법이니. 

이상하게도 일기를 쓰는데 여러가지 브레이크가 많이 걸린다. 머리속에서. 써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썼다가도 다시 지워버리는 것이 많은... 더 좋은 말을 더 괜찮은 생각을 꺼내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크다보니 꺼내는 작업 자체가 부자연스러워지는 것일까. 그런 일기를 쓰고 싶은 것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다시 아무렇게나 틀린 말이든 후회스러운 말이든 내뱉는 일기를 쓰고 싶어진다. 좋은 것 하나는 오랜만에 일기를 쓰다가 아주 졸음이 몰려오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 자야지.

목요일, 1월 19, 2023

이제 더 이상 혼자는 시렁 ~ ~ 

오늘은 내 사랑이 칭얼거리던 말들이 생각이 났다. 갑자기 그게 너무 어여쁘고 가엽고 그래서 얼른 닿고 싶어 전화를 걸었다. 사랑해요. 혼자서 이리저리 멀리 가까이 다녔을 모습이 그려지는데 그게 너무 가여웠어. 나도 마찬가지야. 우리는 그동안 혼자 해왔던 것들을 함께하기로 했다. 사랑해요. 

수요일, 1월 18, 2023

월경이 시작되자마자 맑아지는 머리. 
정말 너무 어이가 없어. pms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억울할 정도로... 한달의 반절 이상을 멍한 상태로 보낸 것 같다. 한의원에 가서 물어봐야지. 항상 맑게 깨어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몸이 아직 컨디션을 되찾는 중이라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걸까. 아니면 늘 이런가. 늘 이랬던가 ? 아무튼 오늘은 유난히 더 심히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 들어 거의 아주 많이 들떠있는 상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갈비뼈 덜덜.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 역시 가장 어려운 일이야. 
아무리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평생 질문하고, 여러개의 답을 찾아도, 마음이 울렁거리거나 걱정이 드는 것을 멈추는 일은 어려워. 울렁이는 마음을 안고 사는 것이 나의 본질이라고 받아들여야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화요일, 1월 17, 2023


frederick h. evans

월요일, 12월 26, 2022



머리에 총을 맞고도 사람을 마주치면 그 사람이 너무 반가워 인사를 하는 어떤 코끼리.
어떤 인과율을 발견하려고 했던거지.
저 문장을 써놓고 보니 웃기네. 
총을 맞고도...라니
겪고 있는 고통의 상태와 언제나의 사랑은 사실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었네. 

i'm with you

비디오 속 너랑 나
나는 그 안의 너를 보고 있어
너의 눈이 꼭 지금 나의 눈을 보고 있는 것 같아서 한참 그 눈을 보았어
우리를 바라보는 눈빛이 말이야
지금의 나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아

너무 너무 사랑해

명료한 - 
그 언젠가 내가 말했던 그 상태처럼
그 무엇도 첨가되지 않은
단지 깨끗하고 편안한 -

월요일, 12월 12, 2022

월요일, 11월 21, 2022

Yo vengo a ofrecer mi corazón

너무 아름다운 멜로디와 가사. 근데 넘 넘 슬퍼.

작은 책자 하나를 만들고 싶어져서 예전에 쓴 글들을 돌아보다가 see only love라는 메시지가 담긴 카드를 보았다. 깨달았다가도 다시 괴로워지고 안개가 쌓이는 마음. 내가 사는 동안 잊지말아야 할 단 한가지. 오직 사랑. 방을 깨끗이 치워도 다시 먼지가 쌓이는 것처럼 다 알았다가도 다 깨달았다가도 안개 속에 묻히고 마는 것이 당연하대요. 계속 다시 돌아가서 보아야 하는 메시지. 거듭하여 안개를 걷을 것. 그렇지 않으면 곤란하네. 고뇌하는 영혼. 고뇌를 하지 않으면 병원엘 가야해요-라고 말하는 사마리아가 너무 웃겼는데ㅠ 이제보니 고뇌라는 것이 그런 것이네. 거듭 잘 사는 일에 골몰하는 것. 나는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래요. 고뇌하기 위해. 고뇌하러 온 사람. 다시 거듭 돌아가 깨달아야하는 사람. 다시 오직 사랑만을 보아야만 하는 사람. 

수술을 한 이후에 몸의 전체적 컨디션이 많이 안 좋아졌다. 힘이 많이 없어서 산책하는 것 외에는 며칠 동안은 집에서 편히 놀고 밥을 챙겨 먹고 시시껄렁한 것들을 들여다보고 그랬다. 계속 쉬는 것에 아주 익숙해지고, 계속 쉬고 싶고 다른 것들은 약간은 부담스럽게 느껴지고 - 그러다가 다시 우울 삽화가 오는 것은 아닐까 약간 걱정이 되었다. 수술하고 컨디션이 많이 떨어져서 그런 것일까 추측도 해보았다가, 겨울이라 그런 것일까 의심도 해보고. 걱정도 걱정이지만, 건강검진을 하듯이 내 자율신경계든 무어든 정신건강에 관해서도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사실상 약간 그런 걱정이 들만한 증상들이 있기도 하다. 불안이 일고, 이런저런 사소한 모든 것들이 걱정스럽게 느껴지고, 슬금슬금 자책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그렇고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는 것도 그렇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도 - 이건 정말 오랜만이다. 예전엔 이런 증상들이 너무 만성적이라 나의 성격적 특징인 줄만 알았다. 이런 증상들을 경계할 수 있게 된 것은 - 치료를 통해 그렇지 않은 상태를 경험했기 때문. 그것이 내가 타고난 성격이 아니라 건강하지 않을 때에 나타나는 증상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되고 나니...! 약간의 조짐이 보이자 두려워진 것이다. 가장 두려운 것은 그런 상태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상황이다. 내 불안을 전달하거나, 혹은 전달했다고 여겨서 나를 자책하게 되는 것. 아무튼 그런 순환이 있다. 좋은 순환만 있었음 좋겠는데 말이다.

다음에 혹시 다시 치료가 필요하게 되면, 한의원에서 진료받아보고 싶다고 생각하곤 했다. 지난겨울 두통으로 한의원에 갔을 때, 한의원에서 뇌파검사를 해주시면서, 항정신성 약물로 인해 내 것이 아닌 상태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했던 것이 인상 깊어서. 잠시 그런 것들을 잊고 살다가 요 근래 왠지 마음이 불안정한 것 같아 다시 떠올랐다. 정신건강의학 진료를 하는 한의원을 검색해보다가 멀지 않은 곳을 찾아냈다. 허해진 몸의 이곳저곳을 보충해야지. 모든 것이 더 버거워지기 전에 얼른얼른 ~ ~ ~ 가볍게 가볍게 가볍게 둥 둥... 그렇게 하고 싶다.

월요일, 11월 14, 2022

파괴와 재생의 별 명왕성이 2023년 3월 물병자리에 들어서고, 명왕성은 10년간 그 자리에 머무른다. 새로운 주기가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고, 그 시작인 2023년 우리는 격변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격동의 시기를 준비하고 나아가는 이들에게 행운이 펼쳐질 것이다. 그래서 11월은 새로운 꿈에 재도전하거나 2022년에 새로 시작한 일, 착수한 일을 재검토하기에 적절한 시기다. 자신에게 질문할 것. 12월부터는 본격적으로 그것들을 위해 행동하고, 시작해야 한다. 1월에는 역행하던 별들이 모두 순행하게 될 것이고, 그때는 이미 새로운 시기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니 1월이 오기 전에 준비하고 시작할 것.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들, 무엇이든 리스트를 적어보기.

윤슬이가 2023년 격변의 시기를 맞이하기에 앞서 준비해야 할 것들을 다룬 영상을 보내주었다. 오지를 비롯하여 주변에 지금껏 하던 일들을 마무리하고 아주 새로운 것을 준비하고, 계획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어렴풋이 그런 움직임이 있는 시기인 걸까 짐작만 했는데...! 정말 명왕성이 물병자리에 들어서는 시기라고...! 올해 초부터 준비하고 있던 작업을 재개할 시기가 온 것이다. 안 그래도 8~9월부터 작업을 잠시 멈추고 있던 터였다. 전시 일정과 공간이 바뀌게 되면서 준비하고 있던 전시를 다시 재정비할 필요를 느꼈기에. 그리고 사실 그 변동으로 인해 10월에 있을 큰 이벤트들을 준비할 시간이 생기기도 했다. 덕분에 10월에 있던 큰 행사들을 집중해서 준비할 수 있었다. 지량과 결혼식을 올렸고, 책 3권을 완성했고, 수술을 했다. 이것들이 모두 10월에 일어난 일이라니 ! 새삼스럽게 놀랍다.

그 때문에 사실 10월 말에 수술을 끝내고 11월부터는 아주 쉬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슬슬 다시 작업도 하고, 전시를 위한 재정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더군다나 이찬혁의 새 앨범을 들으며, 오랜만에 '버킷리스트'라는 것을 다시 떠올리기도 했고 말이다. (찬혁이는 너무 지금의 흐름에 맞는 앨범을 만들었네.) 수술 전날, 지량은 내게 병원에 있는 동안 버킷리스트를 적어보라고 했다. 나는 요즘은 생각나는 것들이 없다고 했지만, 지량은 수술을 앞두고 걱정하는 날 위해, 그런 숙제를 내줬던 것 같다. 실제로 잠이 잘 오지 않았고, 그렇다고 해도 버킷리스트에 대한 생각에 집중할 수도 없어서 지량과 페트라에 가고 싶다는 리스트 하나만 간신히 떠올렸다. 그리고, 사실 수술을 한 날부터는 너무 힘들어서 버킷리스트 숙제를 아예 잊어버렸다. 

집에 돌아와 쉬면서 동생이 해준 밥을 먹고, 지량과 부산에도 다녀왔다. 버킷리스트라면 버킷리스트일까.. 다시 내 소망, 내가 하고싶은 일들, 내가 준비해야할 것들을 돌아보고 정리할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하며 약간 꿈틀거리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내 몸도 그러는 중이다. 흐트러진 몸의 균형을 다시 맞추기 위해 몸은 질병을 만들어낸다. 자궁보다 큰 혹이 떼어져 나왔고, 혹과 함께 살아가느라 눌렸던 주변 장기들이 제자리를 찾고 적응하느라 이런저런 불편함들이 느껴진다. 변화된 상태에서 다시 또 변화하는 과정이니 혼란과 고통이 수반될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 (명왕성이 물병자리에 입궁하는 것처럼....!) 그것들에 신경이 많이 집중되는 것이 힘들긴 했다. 많은 것들을 게워내야만 했다. 힘이 없고 아프고... 그래도 이 고통들이 내 몸의 균형을 찾기 위한 과정이고, 내 일상의 일부라고 여기니 조금 마음이 편안해졌다. 작년부터, 아니 어쩌면 수년 전부터 시작된 내 쇄신 작업은 그래도 많이 안정되었고, 어떤 부분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오래된 혹을 떼어냈고, 나와 새로운 생을 함께 할 파트너가 생겼다는 것. 내 반쪽이 내 곁에 있다. 정말 정말 새로운 생의 시작인 거구나. 

이와 맞물려 신기하게도 오지에게도 쇄신작업이 시작되었다. 나는 지량이 내게 했던 것처럼, 오지에게 버킷리스트를 적어보라고 했다. 오지에게도 그것이 필요해 보였다. 우리의 모든 생의 순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때. 그리고 오늘 본 별자리 영상도 우리에게 리스트를 작성하라고 말한다. 소원의 크기는 상관이 없다. 실현 가능성을 계산하지도, 다른 사람의 욕망과 비교하지도 말고. 새롭게 펼쳐지는 파노라마 앞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상태와 소망들을 다시 재점검하는 때. 11월과 12월에는 그렇게 준비하고, 무엇이라도 시작을 하기로 했다. 새로운 집을 찾는 일도 본격적으로 시작을 해야 할 때인가 보다. 내 반쪽과 맞이하는 새로운 시기. 잘 준비해야지. 재밌겠다...! 11월에는 내가 원하는 것, 나에게 중요한 것들,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들을 정리하고 떠올려봐야지.

토요일, 11월 12, 2022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다. 원래 목표는 9시쯤 일어나는 것이었지만 7시에 깨서 더 잠이 올 것 같지는 않아 일어났다. 미셸이 내 다리 위에서 열심히 꾹꾹이를 하고 있었다.
일어나 속이 아파서 따뜻하게 쑥차를 내려 마셨다. 자리에 앉아 며칠 전 받은 이메일에 답장을 보냈다. 한동안 아침마다 사과를 챙겨 먹곤 했는데, 다시 그 습관을 기르고 싶어 사과를 주문했다. 다시 건강한 루틴을 하나씩 만들고 싶어. 건강한 몸으로 살며, 차곡차곡할 일들을 해나가고 싶다.
머릿속이 약간은 어지러운 느낌이야. 수술하고 나서부터는 일단은 편히 쉬고 있다. 다시 곧 작업을 재개해야 하는데 늘 다시 새롭게 뭔가를 시작하기 전에는 두렴을 느낀다. 내가 그것을 해낼 수 있을까. 그전에는 어떻게 그 일들을 해냈지. 어떻게 다시 이런 과정이 가능한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시작하면 무언가 이루어지기는 한다. 이상하게 왜 늘 항상 새로운 두려움이 생길까.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게 된다.
동생은 그동안에 불편했던 삶을 나아지게 할 어떤 치료를 시작했다. 이야기를 같이 나누면서, 서로의 모습을 돌아보았다. 내게서도 그런 비슷한 불편함이 느껴지는데... 어찌어찌 잘 살아온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뛰어난 통제력으로 유지해온 생활일까. 그렇다면 그것은 치료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모르겠어.

화요일, 11월 01, 2022

틸란드시아

틸란드시아를 사 왔다. 잎이 붉어진 이오난사 틸란드시아와 길게 늘어진 수염 틸란드시아가 함께 붙어있는 것으로 사 왔다. 오지는 틸란드시아가 기르기 쉽다고 알려진 식물이지만, 자신은 가장 어려운 아이라고 했다.

틸란드시아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 정보를 찾아보니, 파인애플과에 속하는 식물이었다. 너무 귀여워. 사막에서 자라는 아이들이라 건조한 곳에서 잘 살지만, 그래도 충분한 수분도 필요로 한다. 사막에 내리는 소낙비처럼 흠뻑 젖었다가도, 아주 금방 말라버리고 마는 환경처럼, 물을 주어야 한다고. 귀여워 귀여워 귀여워. 씨앗을 따로 만들지 않고, 작은 아이를 몸체에 만들면서 번식한다. 그리고 원래 몸체는 새로 만들어진 그 아기 몸체를 위해 모든 에너지를 준다. 귀여운 틸란드시아 잘 자랐으면 좋겠네. 햇빛도 많이 받고, 집안을 떠돌아다니는 습기와 먼지들을 먹으며 잘 자라렴.

틸란드시아를 데려온 기념으로 일기를 쓰러 왔더니, 마지막으로 남겨진 일기의 제목이 손바닥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오난사 틸란드시아가 생긴 모양이 손바닥 같기도 하네. 

금요일, 10월 21, 2022

손바닥

누군가의 존재로 인하여 산다는 것. 어떤 존재가 곁에 있기 때문에 살 수 있다는 것. 오지에게 그런 말을 했다가 그 말이 화근이 되어 싸우고 운 적이 있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말인지 아느냐고, 그게 좋은 건 줄 아느냐고. 그래서 그런 말은 하지 않아야겠다 약간의 다짐 아닌 다짐을 했다. 함부로 하는 말이 아니구나. 나는 너의 존재가 나를 얼마나 다시 살게 했는지, 그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아무튼 고맙다는 말의 다른 말이었는데.

내 사랑을 아주 많이 생각하는 날이다. 눈물이 나. 애틋해. 애틋하다는 것이 무언지 올해 나는 처음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애틋하다. 5월부터 생각한 말이다. 모든 것이 새롭고 크다. 한마디 말을 가지고도 천개의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 나의 존재가 당신을 살아있게 한다는 말을 듣고. 나는 어느 눈물 가득한 날을 떠올렸다. 그 눈물과 화가 떠올랐지만 금방 나는 사랑의 생각으로 그것을 전환한다. 어떤 존재로 인해, 그 존재가 내 생의 이유가 되어 내가 살아있다는 것. 그것은 사실 너무 당연한 말이잖아 ! 결코 짐일 수가 없는 것. 너가 없으면 나는 없고, 내가 없으면 너가 없지. 우리가 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 땅이 없으면 하늘이 없고, 하늘이 없으면 땅이 없고, 죽음이 없으면 생이 없는 것, 생이 없으면 죽음이 없는 것. 슬픔이 없으면 행복이 없는 것, 행복이 없으면, 슬픔도 없는 것. 내 사랑이 내게 이런 말을 해준 것이구나. 내 사랑이 없으면 내가 없지. 내 거울.

우리가 서로를 만나기 전 겪었던 시간. 우리의 만남. 결혼식과 이런저런 복잡한 모든 것들을 준비하던 시간. 결혼하는 순간. 그리고 다시 쌓여있는 숙제를 들여다보고, 피로한 시간. 잠시 행복한 가을을 느끼고, 생일을 축하하는 시간. 그리고 다시 또... 그러나 또다시 ! 이게 다 그것이야.

오늘 밤에 조금 슬퍼하다가 - 다시 곰곰이 생각을 했다. 어느 것도 나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슬픔이 사라진다. 어느 것도 나의 것이 아니라고 여길 때 신기한 것은 슬픔은 사라지는 대신에 행복은 더 크게 다가온다. 내게 다가온 행복과 행운이 나에게 당연한 것이 아님을 깨달을 때 - 다시금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얼마나 감사한 일이지 !

또 다행스러운 것 하나는, 이런 모든 깨달음의 작은 순간들을 지나오면서 내 삶의 패턴이 조금씩 변한다는 것. 행복의 순간은 더 길고 - 더 충만해지고, 견뎌야 하는 고통의 순간들은 점점 작아진다는 것. 그것들이 없어지지는 않을 테지만, 나름대로 내가 잘 운용할 수 있는 패턴이 생겨나며, 생이 이어진다는 것. 아름다운 균형을 이루는 것. 인생이란 것은 그것을 찾는 것이구나 ~ ~

어쩐지 오늘은 슬펐지만 - 슬픔을 그냥 삼키지 않고 왠지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다행스럽게 돌아봄으로 깨닫는 것들. 여러 가지 손바닥의 형상을 본다. 파티마의 손.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비닐장갑. 떨어지는 꽃잎을 받은 나의 손바닥. 기도하는 손바닥. 연인의 목을 감싸 안는 손바닥. 반지를 낀 손.

손가락이 손바닥과 모두 이어져 있는 것처럼 우리 모두 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 당신의 존재로 내가 살아있다는 것.

목요일, 9월 29, 2022

수요일, 9월 28, 2022

오늘은 일어나서 컴퓨터를 켜지 않았다. 간단히 청소를 하고 밥을 먹었다. 해야 할 일들을 곧장 시작할까 머리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시 바닥에 누워서 몸을 똑바로 폈다. 몸을 똑바로 펴고, 산책하기로 했다. 볕이 아름다운 오후에 나가서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오랜만에 산책을 했다. 다른 위중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사방을 둘러보며 천천히 내 동네를 걷는다. 잎의 모양, 꽃잎, 그림자의 모양들, 벽에 비친 햇살의 색깔, 그런 것들을 바라보는 일처럼 아름답고 여유로운 일은 없다. 산책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다. 모든 것은 그곳에 있다. 모든 아름다움이 그곳에 늘 있다. 늘 그곳에, 그러나 모양과 색깔은 늘 새롭게. 산책을 하는 것은 사람뿐이다. 산책하기를 선택하는 것은 사람이다. 그것을 선택하지 않는 것도 사람. 아름다운 것을 보는 일은 오늘의 내 선택이었다. 하늘과 빛이 아주 온화하여 마음이 부드러워졌다. 오늘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이라고 생각했다. 내일은 또 새로운 가장 아름다운 날일 것이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아름다운 시간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때 친구들의 이름을 떠올렸다. 이처럼 선명하고 희망적인 마음이 가득할 때에 기도를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힘들고 괴로울 때에 하는 기도도 너무나 소중하고 간절하겠지만, 내 마음이 사랑과 희망으로 가득한 때에 하는 기도가 얼마나 큰 힘을 가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걸으며 친구들의 이름을 떠올리고 기도를 했다. 감사하는 모든 마음이 모두를 위한 기도가 된다.

월요일, 9월 26, 2022

많이 졸렸다가 - 말끔해졌다가 - 를 반복하는 새벽. 이제 잠을 자야지, 하고 마음을 먹으니 그래. 
하루를 돌아보는 일기를 쓰지 않은지 오래된 것 같네.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발견을 할 수 있는 하루하룬데 말이야. 
열심히 책을 만들고 있다. 이리 저리 글자를 고치고, 사진을 넣었다가 뺐다가, 모양새를 바꾸다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가고 만다. 너무 피곤하기도 하고, 압박과 스트레스를 느끼기도 하는데, 그런 와중에 내 곁에 한결같은 사랑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인지 - 
그 전반이 고통과 괴로움이고, 그 가운데에 한줄기 빛같은 즐거움과 행복이 반짝하고 지나가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이제까지의 내가 인식하는 삶은 정말 그랬다. 
근데, 이제는 그런 통각이 기억나지 않을 만큼 - 삶의 전반을 행복으로 느껴. (특히나 요즘같은 나날들은..) 너무 힘들고, 피곤한 순간이 많은데 - 그것들도 결국에 다 가볍게 지나가는 것을 느낄 때에 스스로 놀라곤 한다. 이 모든 짜증과 피로가 내 삶의 아주 아주 아주 작은 부분이구나 - 이렇게도 금방 지나가고 마는 것이구나 - 나의 날카로움과 예민함까지도. 그런 모습이 때로는 여전하더라도, 그것이 그리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이제 안다. 그것에 집중하느라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 몰라. 내 사랑이 내 삶의 전반을 행복으로 만들어. 결국엔 사랑이 상태의 전환을 가능케 한다. 
상태의 전환
다른 차원으로의 전환
자신의 결점에 너무 몰두하다 보면 신에게 다가갈 수가 없다고 - 그 단계가 단번에 이해가 되는 순간이다. 얼마전, 마캄에 대한 간략한 내용을 읽었거든. 신을 향해 가는 그 하나하나의 단계가 결국에는 나로부터 벗어나는 단계네. 머리 속에서 많은 것들을 통과하는 중인데(바쁘지는 않게), 말로 쓰여지지는 않는다. 오늘은 이어지지 않는 일기를 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