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11월 19, 2025

요가가기 전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요즘 특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데, 오늘은 퇴근 하기 직전에 너무 큰 압박감과 스트레스에 휩싸여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무언가 여러가지가 한꺼번에 휘몰아치는 것 같아서 정신이 없었는데, 마치 그 흐름의 정상에 올라선 마냥 ! 
와구와구 친구들과 현님, 지량에게 쏟아내고 조금은 마음을 다듬고 요가원에 갔다. 
만뜨라를 함께 외고, 오늘은 우리 몸통 안의 에너지 통로, 수슘나를 느끼며 그 통로를 통해 호흡을 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마음이 많이 움직였던 날이라 유난히 더 호흡 중간 중간 여러 생각과 감정이 떠올랐다. 다시 수슘나를 마음으로 그리며 호흡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깊이 집중하며 몸을 열었다. 평소 하던 아사나들도 더욱 깊게 할 수 있었다. 몸을 더 열기로 마음을 먹고, 용기를 내기 시작하니 더 깊은  아사나가 가능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요즘 그런 변화를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특히 더욱 그 집중이 가능한 것 같았다. 수련을 시작하면서는 마음이 이리저리 많이 움직였지만, 점점 아사나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더 깊게 비틀고, 더 활짝 열고.. 모든 동작들을 마치고 사바아사나로 누웠다. 무거운 담요를 몸에 덮고 포근함과 안전함, 무거움을 느끼며 몸을 추욱 바닥에 가라앉혔다. 바닥에 닿아있는 내 몸을 느끼며 나는 이렇게 내가 땅에 편안히 누울 수 있고 기댈 수 있음에 새삼 감동스러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감격과 울컥함에 너무 머무르지는 않고 다시 이 무게감과 동시에 텅 비어있는 내 몸의 안쪽을 느꼈다. 다시 그 텅 비어있음으로 돌아오는 것은 온전히 현존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꿈을 알아채는 방식이었다. 결국에는 모두 이 텅 빈 몸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임을, 나는 그 상태를 지금 여기에서 느끼며, 다시금 이 깨어있음 조차도 모두 텅 비어있음이라는 것을, 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계속 비어있음을 느끼며 거듭 꿈에서 깨어났다.. 

목요일, 11월 13, 2025

There exist vast oceans of reality of which we remain almost entirely unconscious and yet can sometimes glimpse with peripheral or dimmed vision. To the curious this first foggy awareness triggers excitement and wonder, and even a hint that we could get closer if we surrendered the safety of our secure little ego.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가다가, 갑자기 내가 어제 있었던 일과 훌쩍 지나버린 어떤 시간들에 한참 머무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알아차림과 동시에, 나는 그 정체로부터 빠져나와 시간의 속성을 다시 떠올렸다. 그건 자전거를 타는 일과 같았다. 쉼없이 바람과 풍경이 내 몸을 스쳐 지나간다. 지나온 길을 뒤돌아가더라도 이제 내가 보았던 풍경은 이미 달라져 있다. 그렇다면 나는 그 길을 되돌아 간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새로운 길과 시간으로 간 것이다. 모든 일은 일어남과 동시에 흩어진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을 통해 어렴풋이 새로운 수행을 시작했다. 깨어있는 지금 이 모든 순간들이 꿈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가며 지나가는 모든 풍경과 순간이 얼마나 빠르게 지나가는지, 내가 느끼자마자 바로 사라지는지를 알아차렸다. 어쩌면 내가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깨어난 것이다. 깨어날 때, 우리는 꿈이 꿈이라는 것을 안다. 모두 꿈이구나. 마주치는 동시에 흩어지는 그 모든 순간을 알아차리며 나는 계속 현재에 존재할 수 있었다. 

월요일, 11월 10, 2025

쌀쌀하게 잤다. 피로한 월요일이다. 오랜만에 아주 늦게 자기도 했고, 미셸이 내 다리 위에서 한참 누워있다가 갔다. 오랜만에 미셸의 묵직한 무게감을 느끼며 불편하게 잤다. 행복한 불편함. 피로함 너머 어렴풋이 느껴지는 이 안정감과 만족감이 그로 인한 것일까. 너무 사랑스러운 우리 미셸. 
내가 너무 좋아하는 드라마 '은중과 상연'을 드디어 오지가 보기 시작했다. 내가 계속 보라고 추천했는데, 이번 주말을 우리가 함께 보내면서, 오랜만에 같이 살았을 때의 느낌도 나고... 그 익숙함과 편안함에 추억의 루틴을 함께 다시 찾은 것 같아서 좋았다. 난 얼마전에 본 드라마인데도 왜이리 몰입이 잘 되고, 재미있던지 정말로 어쩌면 이건 내가 본 드라마 중에 내가 제일 아끼는 작품이다. 나는 3시 쯤에 자고 오지는 조금 더 보다가 잤는데 펑펑 울다가 잤다고 했다. 정말 펑펑 눈물이 나는 작품이다. 근데 그게 나를 슬픔에 머물게 하는게 아니라, 내가 잊고 있던, 혹은 내가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던 그 감정들을 마주하고 해소하게 하는 거라 엄청 개운해진다. 너무 소중하고 순수한 감정들과 창피해서 들여다보기 싫은 감정들이 모두 꺼내어진다. 오지도 그 과정을 지나며 은중과 상연을 보면 좋겠다. 

화요일, 11월 04, 2025


 

꿈과 생시 모두 꿈이다. 이 세상이 모두 환상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머리로 이해할 수는 있지만 진정으로 받아들이기 가장 어려운 부분인 것 같다. 평안하게 살다가도, 어떤 대상에 집착하게 되는 마음을 발견하게 되고, 질투하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 두려워하는 마음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대상을 내것이라고 여기게 되면 일어나는 현상이다. 내 물건, 내 돈, 내 사랑, 내 몸... 
악몽을 꾸고서 깨어났을 때, 그것이 꿈이었음을 알아차리는 그 순간, 얼마나 나는 안도하였던가. 나에게 일어났던 지옥같은 그 상황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님에 안도하였던 순간. 그 때에 우리는 깨어난다. 분명 꿈 속에서는 그 두려움은 내가 느끼는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깨어나면 그 모든 복잡스럽고 무거운 감정들 모두 공-이다. 깨어나며 그것이 모두 꿈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다시 생시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지금 깨어있다고 알고 있는 이 세상 또한 꿈과 동일하게 생각하니, 더 가까워진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 내가 감각하는 것들 모두 환상이구나. 내가 두려워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 전쟁이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나에게 일어날 어떤 일도 사실은 두려워 할 필요도 없구나. 진실로 진실로. 그리고 그것을 정말 온전히 깨닫게 되는 순간이 정말로 깨어나는 순간이겠구나.

화요일, 10월 28, 2025

Cornucopia


열린 창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코르누코피아처럼 부푸는 커튼



The ability to take meaning from something seemingly shapeless and amorphous, be it an experience or a wound. How extraordinary is that to have a scar in the shape of something beautiful.


화요일, 10월 21, 2025

'달걀 껍질에서 태어난 아이'


'Child born of an eggshell'



물병자리 7(6° - 7°)
낡은 방식과 기준으로부터의 자유
과거의 전통을 깨는 완전히 새로운 돌연변이가 발생하면 극적인 변화가 발생합니다.
"전통과의 단절"

조상의 지혜는 우리의 진화 과정을 주도하며, 이를 통해 우리 종족은 여러 세대에 걸쳐 매우 느리게 고차원의 의식을 발달시킵니다. 그러나 또 다른 발전 과정 또한 작용하는데, 양자적 전환, 즉 우리를 매우 갑작스럽게 새로운 의식으로 이끌어 주는 혁명적 돌연변이가 발생할 수 있으며, 우리는 더 이상 낡은 방식과 그 제한된 이해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영감을 받아 완전히 새로운 현실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본질은 영이며, 그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없습니다.

 

달걀의 상징은 다양한 문화에서 흔히 발견되며, 매트릭스라는 개념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신체적 특성의 별가루, DNA에 담긴 유전 암호, 그리고 시대정신과 지역 지정학적 현실의 미묘한 형성과 같은 영적, 물질적 영향의 조합을 통해 개별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이 모든 요소를 ​​하나의 순간의 진술로 하나로 묶는 것은 본질적으로 우리 존재의 매트릭스입니다.
달걀 껍질은 우리를 제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준비되었을 때, 우리는 깨어납니다. 그때까지 우리의 뿌리와 환경의 윤곽은 제약하기보다는 양육하는 데 더 많은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소속감과 보호받고 있다는 확신으로 지탱됩니다.

처음에 우리는 그 보호의 원천을 집, 어머니, 공동체, 그리고 지구 기반의 안전으로 외부적으로 인식합니다. 우리가 성숙해지고 자각함에 따라, 우리는 본질적으로 파괴될 수 없고 부패할 수 없다는 더 크고 더 신나는 진실을 알게 됩니다.

본질은 영이며, 그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구성 요소로 분해되거나 파괴되거나 타협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본질과 조화를 이룰 때마다 우리는 위험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집니다. 이는 우리가 세상에 가장 높은 열망을 투사할 때마다 일어납니다. 직관에 어긋날 수도 있지만, 우리는 가장 원대한 꿈을 향해 맹목적인 열정으로 질주할 때에만 진정으로 안전합니다.

자아는 양육하는 달걀 껍질에서 깨어나야 발견되지만, 완전히 고무된 열정 속에서만 다시 잃어버립니다. 다소 놀랍게도, 자아는 따라서 더 높은 차원, 즉 평범한 현실을 넘어선 열정적인 차원에서 발견됩니다.


이러한 순진한 상태는 결코 쉽게 접근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절대적으로 두려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불완전한 시도는 자기주장적이고 자기실현적인 존재 상태보다는 안정감과 성취감을 위해 외부의 힘에 의존하는 건강하지 못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방금 글을 올리고 나서 뽑은 사비안 오라클...미소가 지어지는 그림이었다. 

 

훌쩍 낮아진 기온과 함께 하늘이, 공기가 무겁게 느껴지는 날. 누군가 태어난 날과 죽은 날들을 기념하는 나날이 계속 되고 있다. 9월과 10월. 

오늘은 천칭자리에서 신월이 뜨는 날이다. 무언가 다른 느낌이 들어서 이런 저런 소식들을 살펴보는데 마침 그렇단다. 몸은 어쩌면 점점 노쇠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예민하고, 솔직하고, 지혜로워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혜롭다는 말이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고, 그것을 생각하면서 단어를 썼으니 반은 맞았겠지 뭐. 어떤 것들을 버틸 수 있는 힘이 없어지고 사그라드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맞지 않는 것들은 더 솔직하게 반응하는 몸이 되는 것일 수도 있는거지. 그렇게 말을 하면 그런 것이겠지. 

강한 두가지 마음이 작용하는 날이다. 균형의 천칭자리의 신월이라서 그런걸까. 운명은 내가 만들어나가는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것을 더 자신있게 적극적으로 구하며 사는 것. 그런 다짐을 하며 더 용기를 내고 담대하게 걸음을 걷는 하루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이 무거운 공기를 그대로 느끼며 추욱 가라앉고 싶기도 하다. 추욱-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 무게를 온전히 느끼고 싶다. 그것은 위험한 일일까? 

화요일 부처님



화요일 부처님의 자세
parinirvāṇa

연속 하품과 눈물

우연히 발견한 글. 소마틱 관점에서의 연속적 하품에 관한 내용인데, 너무 신기하다. 어떤 특정한 시기에 연속적으로 하품이 나는 경험을 한적이 몇번 있는데, 정말 과장이 아니라 계속 계속 연달아서 하품이 나왔다. 과각성 되어있던 신경계가 안정모드로 전환되면서 일어나는 현상일 수 있다고. 안전 감각이 복귀되는 신호. 

일부 사람들은 하품을 하고 직후에 감정이 올라오거나 눈물이 나기도 한다고. 아 하품하고 눈물이 나는 것을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구나. 하품에 대한 많은 궁금증이 풀렸다. 아니 이제까지 보았던 하품에 대한 어떤 이야기보다도 명쾌해. 

이 글을 읽어서 그런지 하품이 계속 나오고 있다.


 https://blog.naver.com/onieum/223969506802



일요일, 9월 28, 2025

수요일, 9월 17, 2025

월요일, 9월 08, 2025

잠시 쉬고 있었던 것들이 너무 딱딱해지기 전에 주물럭 주물럭. 물론 그것은 나의 작은 불안으로 인한 주물럭이겠지만 조금씩 꿈틀거리는 것은 언제나 희망을 가져다 준다. 누구에게나.
신을 만나고싶다면 꿈틀거리는 모든 것들을 들여다보면 된다. 꿈틀거리는 그 순간에, 그 움직임 사이에 언제나 존재하고 있다.
나는 너무 졸리거나 피곤하거나 힘이 없을 때 더욱 발과 다리를 움직이곤 한다. 내 몸의 많은 부분들이 에너지를 분배하고, 균형을 찾기 위해 꿈틀거린다.
 
모자란 많은 것들을 대신하여 쓸 재료들을 찾았다. 유성잉크 대신에 수성잉크를, 프레스기 대신 바렌을 사용해보았다. 식초와 소금, 과탄산소다로 아연판을 부식해보았다. 모든 것들이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였다. 규칙이 없는 것 같았다. 물론 나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적절한 도구와 재료들을 구할 수도, 잘 갖추어진 작업실에 가서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왠일인지 나 혼자 집에서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혼자 항상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여러가지 제약과 걸림돌들이 보인다. 그것들을 단숨에 뛰어넘는 것보다는 또 다른 이상한 제약과 걸림돌을 만들어본 것 같다. 내 시간을 더 유연하고 둥그렇게 쓰기 위해서 그런 이상한 방법들을 쓰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실제로 대안적인 재료를 발견하고 싶은 마음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무언가를 해내려고 하니 더 많은 시간과 힘이 들어간다. 더 많이 실패한다. 온전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어쩌면 그냥 이 과정들을 경험하고 싶었던 것일까 ?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는 곳에서는 내가 준비가 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 시차를 맞추기 위해서 나는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무튼간에 어설프게 만들어진 것들은 이상하게도 더 심금을 울린다. 약한 빛이 있는 곳에서 보면 더 좋다. 흐릿한 눈으로 보면 더 좋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이 속담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꼭 맞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내 방에서 나는 이 표현이 종종 생각났다. 때로 부러 안경을 벗는다.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끔 안경을 쓰지 않는다. 흐릿한 눈으로는 오히려 무언가를 더 열심히 보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나도 모르게 다른 감각들을 더욱 섬세하게 사용하게 된다. 눈을 감고 피아노 연주를 하는 것처럼 자전거를 타는 내 몸이 더 부드러워지는 것 같기도 하다. '내게 모자라는 무언가'에 놓여져 있던 초점을 옮긴다. 내가 더 자유로울 수 있는 무언가로, 내가 더 섬세할 수 있는 무언가로. 무언가가 모자란 것이 아니라, 나는 다른 방식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그럼 기존의 방식으로 해왔던 것들이 보여주었던 결과와 다른 결과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들이 내게 가져다주는 예기치 못한 기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으리. 

화요일, 9월 02, 2025

나는 내면의 깊은 꿈을 품고 있습니다.
우주의 직관이 나를 인도합니다.
나는 새로운 하늘길을 걷습니다.
경계를 넘어, 꿈을 현실에서도 완성합니다.
풍요가 나와 함께 흐릅니다.

수요일, 8월 27, 2025

One Art

Elizabeth Bishop



The art of losing isn’t hard to master;
so many things seem filled with the intent
to be lost that their loss is no disaster.

Lose something every day. Accept the fluster
of lost door keys, the hour badly spent.
The art of losing isn’t hard to master.

Then practice losing farther, losing faster:
places, and names, and where it was you meant
to travel. None of these will bring disaster.

I lost my mother’s watch. And look! my last, or
next-to-last, of three loved houses went.
The art of losing isn’t hard to master.

I lost two cities, lovely ones. And, vaster,
some realms I owned, two rivers, a continent.
I miss them, but it wasn’t a disaster.

—Even losing you (the joking voice, a gesture
I love) I shan’t have lied. It’s evident
the art of losing’s not too hard to master
though it may look like (Write it!) like disaster.

화요일, 8월 19, 2025

black moon

8월 23일엔 처녀자리에서 새로운 달이 뜬다. 한 달에 신월이 두번 뜰 때 블랙문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블랙문, 레드문, 블루문처럼 특별한 이름이 붙는 달에는 그 자리의 기운이 더 강해진다고 한다. 마침 처녀자리인 나는 더욱이 강한 기운을 받게될 것 같다. 이번주는 정말 그렇게 흘러갈 것 같다. 

(참고 : https://blog.naver.com/yandina/223975720999)

23일에 마침 일정이 많네.. 약초들을 탐험하러 필드에 나가고, 오래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고... 나를 치유해주는 것들을 찾고 도움받고 감동받고... 또 누군가를 치유해주는 날이 될 것 같네.  

일요일, 8월 17, 2025

내가 가지고 있는 타로와 오라클로 전생 리딩을 해보려고 카드를 뽑아보았다. 나는 큰 상실과 고통을 겪었던 사람이었다. 새로 시작하기 위해서는 완전히 끝내야 함을 체화했던 사람. 무거운 짐을 짊어 지고, 책임과 의무 속에서 스스로 희생했다. 자신의 손으로 무언가를 길러내거나 만들어내는 과정을 다 끝내지 못했기에 그 과제가 현재의 삶에 영향을 준 것 같다. 꾸준한 훈련과 수련, 장인적 작업에 몰두하게 되는 것. 그리고 전생의 상실과 좌절은 지금까지 감정적 패턴으로 이어졌고, 지금까지 결핍과 후회 같은 감정을 반복적으로 느끼는 성향을 갖게 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동시에 그 슬픔을 예술적 깊이로 변환하는 능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생에 내가 치유하고 통합할 메시지는 새로운 감정, 사랑, 관계, 창조성의 원천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전생에서 결여된 '감정적 개방'과 '순수한 사랑의 경험'을 이번 생에서 열어야 하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오라클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 l'acceptation féconde라는 카드를 뽑았다. 이 또한 '받아들임'이 키워드다. 받아들이고 흘려보내는 힘, 그리고 그 안에서 풍요와 사랑을 키우는 게 내 과제다. 

목요일, 8월 07, 2025

수요일, 8월 06, 2025

점이 아니라 길을 생각하면 된다. 무엇이든. 그것이 인생의 여정이든, 여행의 여정이든, 관계의 여정이든 간에. 어떤 지점에 도착하려고 하거나, 그 지점에서의 상태를 떠올리고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길을 세심하게 바라보면 된다. 길은 언제나 펼쳐져 있고, 그 위의 시간도 모두 펼쳐져 있다. 그 길 가운데 사건들이 일어나지만 그 사건들이 그 길을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다. 
돌아온 모든 시간들과 여행지들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어떤 기억 때문에 끔찍하게 여겨지는 시기, 도시가 있다. 그 도시와 그 시간이 특정 사건으로 모두 뒤덮여있는 것은 아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모든 다른 아름다운 시간들과 이어진다, 그것들 조차도. 펼쳐진 길로 모두 다 그려보면 경계가 사라진다. 감사합니다. 모든 길이 계속해서 정화된다. 

월요일, 7월 28, 2025


보호하고, 질서를 회복하는 두르가
파괴를 통한 정화와 변화를 가져오는 칼리 

악마들과의 전쟁 중이었던 두르가.
악마가 흘리는 피 한방울 한방울이 모두 다 적이 되었고, 무수한 적들 앞에서 분노하게 된 두르가 여신은 자신의 이마에서 칼리를 탄생시킨다. 칼리는 그 핏방울들을 모두 받아먹고 적들을 해치운다.
두르가와 칼리 신화가 너무 매력적이면서도 감동적이다.

정신과적 질환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때로 인간이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이나 충격으로 인해 그 상처가 너무 클 때 인격을 분리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찾는... 해리성 정체성 장애(다중인격)가 떠오르기도 했다. 

오늘 hey ma라는 만트라를 듣다가 들여다보고 있는 이야기다. 

두르가를 통해 나는 모든 나뉘어진 여성성을 바라보고, 수용합니다.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서 왔습니다. 
모든 것이 나입니다. 

금요일, 7월 25, 2025

“Living life as an artist is a practice. You’re either engaging in the practice or you’re not. It makes no sense to say you’re not good at it. It’s like saying, “I’m not good at being a monk.” You’re either living as a monk, or you’re not. We tend to think of the artist’s work as the output. The real work of the artist is a way of being in the world."

목요일, 7월 24, 2025

천왕성이 하는 말이 듣게 된 날부터, 그리고 내 노드들이 말해주는 내 지난 생의 흐름과 앞으로의 방향성을 이해하게 된 날들부터, 나는 어쩌면 내가 스스로 '나답다'고 느끼는 그런 상태로 돌아온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산뜻해지는 기분! 7월은 내내 아팠다. 또 새로운 탈피를 위한 통증이었다고 보면 될까. 아파서 이상한 군것질들도 안하게 되니 오장육부가 깨끗해진 기분이 든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 전생이라고 해서 지금의 생과 이별한 생이 아니었다. 전생과 이생은 연결된 흐름 안에서 흘러가고, 그 다음 생과 그 다다음 생까지 모두 다 우리가 연결된 생이라면 슬플 것도 없는 것이었다. 무엇이든 분절시키는 것은 인간의 언어와 의식일 뿐이니, 다시 돌아가야지. 언제든 다시 돌아갈 수 있어. 
낡은 것들은 부수고, 계속해서 새롭게 살아가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야. 그런 일들을 할 때 나는 생생해진다. 

월요일, 7월 21, 2025

이렇게 오랫동안 아픈 것은 처음이야. 아마도. 돌이켜 보니 늘 제일 뜨거운 여름날에 아프곤 했다.
여름 - 불 - 심장 - 소장
어제 아픈 몸을 이끌고 약초학 워크샵엘 다녀왔다. 너무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약초들을 직접 손으로 만지고 얼굴에도 문질러보고, 뜯어보고 맛을 보며 느꼈다. 그렇게 하니 각각의 식물들이 모두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얼마나 다양하고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그래. 여름날에 자라는 약초들을 만났는데 그것들은 거의 시원한 성질을 갖고 있었다. 가장 뜨거운 계절을 견디며 자라는 것들이 열을 내리게 도와주는 능력을 가졌다는게 너무 신기하다. 오지은은 두통이 있었는데, 식물들과 교감을 하면서 두통이 싹 가라앉았다고 했다. 더 많이 알고 싶어졌다. 평생 이렇게 조금씩 그 계절의 식물들만이라도 배우며 그 계절을 지나가면 금방 많은 이야기들이 쌓이겠다. 정말 재밌어.
새로운 감각들을 여는 연습을 한다.
오래된 것들, 고여있는 것들은 이제 뒤로 하고 새로운 것들을 마주하는 때다. 천왕성이 이동하는 것처럼 나도 다 뒤집어 엎어버리는거다. 그래서 이렇게까지 아팠나 싶기도 하다.
지난 2년은 특히나 특별한 시간이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색다른 경험을 하면서 산 해일거야. 지량과 결혼을 한 것도 그렇고, 회사생활을 2년동안이나 했고 ! 내가 평생 갖고 있었던 생의 패턴이나 의식의 흐름들을 조정해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방식이 너무나 비효율적이고 잘못되었고, 그래서 이렇게 고쳐나가는 것이 옳은 것이야 - 하면서 말이다. 그건 분명히 놀랍고도 새로운 배움이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천왕성이 새로운 7년의 흐름으로 나를 데리고 가면서 다시 모든 것을 뒤엎어버린다. 내가 나쁜 거라고 생각했던 것,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효율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방향을 알려주는 것이다. 나는 더 자유롭게 날아다니면서 그것들을 바라본다. 그러면 어떤 자리에서 볼 땐 바보같고, 실수투성이인 것들이 어떤 자리에서 볼 때는 그 무엇보다도 자유롭고 아름답고 재밌는 것들이 된다.
손톱을 물어뜯거나 다리를 흔들어대거나 몸을 배배 꼬거나.. 하면 어때. 눈을 감으면서 일기를 쓰는 것도, 흔들리는 몸의 리듬을 음악 삼아 그것에 맞추어 생각을 흐르게 하고, 글이 써지게 하는 것은 재밌는 일이잖아. 그저께 지량과 함께 보았던 빠르게 흐르는 구름이 생각난다. 마치 그 구름처럼 말이다. 구름이 아주 빠르게 흘러가는데 흘러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갖추어져있던 모양들이 시시각각 변한다. 실은 갖추어져있는 모양이라는 것은 없지. 시시각각 변하는 갖추어짐. 아무튼 이런 구름같은 흐름들을 다시 찾아간다. 아이고 재밌어라.

목요일, 7월 17, 2025

벽사


봉숭아물을 들였다. 지난 주말에 양주에 다녀왔다. 집앞에 봉숭아가 많이 자라있었다. 서울로 돌아올 때 이파리를 많이 떼어왔다. 돌멩이로 이파리뭉치들을 짓이기고 지량에게 부탁해서 물들였다. 색깔이 좀 연하길래 집에 예전에 사두었던 시판 봉숭아물들이기로 조금 더 물을 들였더니 진하게 마음에 들게 색이 들었다. 붉게 물든 손끝을 보면 기분이 좋다. 여러가지 여름의 감각들 중에 내가 참 좋아하는 것. 짓이겨진 꽃잎과 이파리 냄새와 축축하게 젖는 손끝. 그리고 손톱 주변까지도 주황으로 물드는 일. 봉숭아 물들이기 풍습에 대해서 찾아보니 벽사라는 단어가 나온다. 벽사색은 액운을 막아주는 의미가 있다. 봉숭아 물들이기는 예쁘게 손을 치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액운과 질병까지 쫓아내는 부적과도 같은 풍습인 것이다. 마침 그 일주일 전부터 많이 아팠던 나는 병이 거의 나아질 즈음에 봉숭아 물을 들인 것인데, 벽사색이 이제 남은 모든 독소까지 달아나게 해줄 것 같았다. 

오랜만에 정말 많이 아팠다. 일주일도 넘게 내리 아팠다. 그동안의 스트레스와 독소가 쌓이고, 그것들을 내보내야하는 때였던 것 같다. 내 몸이 그렇게 해준 것이다. 어서 이것들을 청소하자 ! 많이 많이 아팠고, 많이 비워냈다. 한창 아프고 비워지고 있을 때에는 너무 아파서 호흡에 신경을 쓸 수가 없었는데, 좀 나아지고 이번주 월요일에 오랜만에 요가를 가서 수련을 하니 몸이 풀어지고 호흡하는 감각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고 나니 내가 어떻게 호흡하고 있었지? 하는 질문이 들었고, 비움과 호흡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것들을 같이 나누고 싶어졌다. 이걸 주제로 리빙룸을 열어볼까 생각 중이다. 그런데 어떤 내용들로 채울 지는 모르겠다. ㅎㅎ

수요일, 7월 02, 2025

7월이 가까워지면서 서서히 내게 다가오던 신호들. 내가 느끼는 감정과 변화들. 그 모든 것들이 정리되는 날이다. 내가 느끼던 것들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 일단 너무 감사하고, 안심하게 된다. 지금 무언가가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 내가 지금 잘못하고 있다는 그 느낌이 강하게 들기 시작한 것이 얼마전인데, 그것은 천왕성의 정확한 신호라고 한다. 천왕성은 질서가 파괴되면서 오는 혼란, 해방, 반항 그리고 통찰까지 관장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 7월에 천왕성이 쌍둥이자리로 7년만에 돌아오게 되는데, 이 시기는 정말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는 때라고 해석된다는 것을 알았다. 내 인생이 또 다시 정말 커다란 탈피를 이루게 되는 시기가 다가온 것 같다. 

요즘 자전거를 타면서 경사가 진 언덕을 내려올 때 느끼던 그 해방감이 갑자기 번뜩 떠올랐다. 내가 요즘 그 순간에 해방감을 느끼게 된 것, 그 짧은 정말 잠깐의 해방감, 모든 것이 가볍고 시원하고 자유로운 그 느낌이 천왕성이 나에게 앞으로 줄 선물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정말로 그랬다. 오늘도 그 언덕을 내려오면서 그 해방감을 완전히 느끼면서 왔는데 지금 7월 처녀자리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다가 이 천왕성이 쌍둥이자리로 진입하는 것에 대한 내용을 알게된 것이다. 그 해방감이 이 천왕성과 완전히 마주친다. 10하우스를 흔들어놓는다고 했는데 10하우스는 직업과 기술, 소통 등의 영역이다. 

오늘 새벽 지량과 오랜만에 재밌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잠에 들기 전에는 내가 꺼내던 그 질문들이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지, 내가 단한번도 '제동'을 풀고 끝까지 가본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지량은 내게 그것이 내가 해결해야할 숙제인 것 같다고 말해줬다. 그렇다. 그게 나의 숙제이구나.

너무 속이 시원하고, 가뿐해진다. 

목요일, 6월 26, 2025





행여 좌절을 느낀다면, 지금 나에게 휴식이 필요한 때라고 알아차리면 된다. 사는 것이 쉽고 단순하기만 했던 적이 있던가요. 어떤 것도 가지려 하지 않을 때 비로소 평화롭고 자유롭다. 무언가를 달성해야만 한다고 느껴질 때에는 오히려 더 쉬고, 더 핑핑 놀기. 

수요일, 6월 25, 2025

수련을 마치고 사바아사나로 휴식을 취하는데 오랜만에 이마 가운데가 간지러운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밝은 빛이 나를 감싸는 것 같았다. 이마 한가운데와 머리끝까지 기분좋은 자극이 느껴졌다. 일어났는데 한층 맑아진 몸과 마음을 느꼈다. 많이 침체되었던 요즘이었는데 오랜만에 느끼는 이 감각 안에서 나는 다시금 어떠한 상태도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어떤 것도 그대로 멈추어 고정되는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닫는다. 이미 수차례 깨달았던 것들이지만 늘 다시 깨닫는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는 늘 한결같이 깨달은 상태일 수는 없을테니까. 어두워졌다가 디시 밝아진다. 밝아졌다가 다시 어두워진다. 
이 감각을 잊고싶지 않아서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글을 님긴다. 

금요일, 6월 20, 2025

비가 오기 시작했다. 늦잠을 실컷 잤다. 꿈도 많이 꾸었다. 쓴 술과 아주 달콤한 술을 마셨다. 잠깐 깨어나는 찰나에 지량이 깜짝 놀라며 좋은 소식을 알려주었다. 오랜만에 기쁜 소식. 기대하고 있던 결과가 드러난 날. 우리는 축하하는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무겁고 어두운 날이라서 그런 것일까, 경신일이라서 그런 것일까 저녁부터 너무 졸리고 피곤하고 몸이 무거웠다. 나는 그렇게 흐물흐물하다가 기운을 차려보려고 요가를 했다. 그런데도 기운이 나질 않았다. 기분이 한참 좋지 않다가, 신기하게도 조금 전에 내가 옛날에 썼던 일기를 보고 기분이 좋아졌다. 옛날의 내가 나를 위로하네. 모든 기록이 너무 소중하다. 내가 보낸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또 언젠가의 나를 살리기 위해서 오늘도 기록하고 싶어졌다. 기적이란 것은 그런 것이구나. 언젠가의 내가 마주한 기적과 같은 날이 오늘의 나를 다시 살게 한 것이다. 그 일기를 읽은 누군가도 그런 안도와 기쁨을 느꼈으면 좋겠네. 계속 그 기적이 반복된다. 그렇게 영원히 살아있는 하루. 영원히 살아있는 기적. 

이상하게도 자정이 되어가니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다. 경신일은 정말로 졸린 날일까. 깨어있어야 하는 시간이 지나가니까 맑아지네. 오늘은 어떤 포털이 열리는 날이라고 했다. 채널의 날이자, 경신일이자, 포털이 열리는 날. 오늘을 기점으로 어떤 방향성이 정해진다던가, 에너지가 변화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고. 아까 저녁때까지만 해도 너무 머리가 무거워서 그런 것은 느껴지지 않아서, 아니 너무 무거워서 오히려 내가 다시 무거워지는 것은 아닐까, 무언가가 닫혀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살짝 들었다. 신기하게도 이제 그것들이 모두 걷히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모든 것들이 무거운 와중에도 내가 느끼는 이 변화들이 이 찰나와 같은 시간들 속에서도 선명하게 느껴지네. 그저 다가오는 것들을 마주하는 수밖에 없다. 어떤 문이 열린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아주 쓴 술을 마시고 나니, 이전엔 내가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맛없는 것 같았던 술이 정말 너무 달콤하고 맛있었다, 오늘 꿈에서. 

다시. 기꺼이.


 


수요일, 6월 11, 2025

June Mantra : Return

 


엄청 커다란 민들레 씨앗이 날아왔다. 정말 컸다. 마치 고양이들 털을 뭉친 것처럼 컸는데 그걸 잡았다. 그리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던가, 이동해야하는데 이 씨앗을 어딘가에 심어야하는데 생각을 하다가 바닥을 보는데 벽돌로 된 바닥에 그 딱딱한 바닥들 사이에 풀이 자라고 있는 자리가 하나 있었다. 가끔 길을 가다 보면 콘크리트 사이에도 작은 틈 사이에서 풀이 자라고 있는 그 모습 말이다. 그 부분에 작은 세잎클로버들이 귀엽게 잔뜩 올라와 있었다. 나는 그 세잎클로버들을 보면서 네잎클로버 없나 살펴보았다. 없는 것 같았다. 그래 다 세잎클로버일거야 이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떠나면서 내가 잡고 있던 그 민들레 씨앗을 그 정말 작디 작은 풀잎들이 난 그 흙이 있는 자리에 씨앗을 급하게 구겨넣었다. 어떻게든 꽃은 그렇게 해서 자리를 잡고 자라니까. 

다른 장면들도 있었는데 가장 선명한 것은 이 세잎클로버들을 마주친 장면이다. 너무 귀엽고 특별하네. 작은 행복들을 찾는다. 오늘의 꿈을 적으면서 사람들에게 매일 매일 꿈일기를 작성해서 이메일로 보내볼까 생각을 해보았다. 재밌을 것 같네. 

월요일, 6월 09, 2025

진실은 편파적일 수 없다. 그것은 모두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요일, 6월 01, 2025

잠깐, 
무거운 공기가 잠시 나를 완전히 짓눌렀다. 얼마만에 느끼는 감정인지 모르겠다. 내가 잘못된 곳에 와있다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지. 내가 어쩌다가 이곳에 서 있게 된 것이지. 내가 간절하게 바랐던 모습이 갑자기 떠오르면서, 내가 지금 그 모습으로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흠칫 놀란 것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살지 않았는데도, 만족하고 행복해하며 살았던 것일까. 동시에 그 생각을 같이 했다. 위대한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가 되는 것,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 그런 일들과 그 날의 저녁을 정성스럽게 만들어 먹는 일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사실은 그것이 결코 다른 가치를 가진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치만 내가 바랐던 것도 있어- 하는 그런 소리가 나온 것이다. 갑자기 모든 것이 너무 막막해지는 것 같았다. 내가 원하는 것에 온통 시간을 쏟고 싶어. 넉넉하게 시간을 들여서 고민하고 골몰하고 뚫어져라 바라보고 싶어. 내가 바라는 것은 그것뿐이긴 했다. 늘. 
많은 것들이 요동치는 때인 것 같다. 여행을 떠나야하는 때가 다가오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 

토요일, 5월 31, 2025

𝘾𝙡𝙚𝙖𝙧, 𝙇𝙪𝙘𝙞𝙙, 𝙖𝙣𝙙 𝘼𝙬𝙖𝙠𝙚

5월의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5월에 내가 묵상하여야 했던 메시지를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기존 사회의 리듬에 휩쓸리지 않고, 내 감각을 믿고 나아가기. 정신없이 5월을 보내면서 나도 모르게 내 호흡과 리듬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 같네. 6월을 맞이하며 다시 깨우치기.

요즘 너무 힘들고, 화가 많이 났다. 답답한 것들과 어리숙하고 배려 없다고 여겨지는 것들만 가득한 것 같았다. 6월의 메시지에도 단죄하려는 마음이 커질 수 있다고 했는데, 마음을 많이 돌보고 가다듬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미셸이 많이 아파서, 병원에 갔다 왔던 첫 번째 날에 너무 속상하고 무섭기도 하고 걱정이 되어 108배를 해야겠다 하고서는 갑자기 어설프게 시작했는데, 삼십 배 정도를 하다가 제대로 하는 법을 배우고 다시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멈추었다. 오늘 다시 일기를 쓰기 위해 이 창을 연 것처럼 다시 내 일상의 작은 루틴들을 찾고, 지켜가면서 기도도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오늘 꿈에선 푸에르토리코에 갔었다. 펼쳐진 지도를 통해 보니, 내가 있는 곳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 그곳이었다. 가장 머나먼 곳으로 비행기를 타고 가서, 또 물길을 건너 도착해야만 하는 곳이었다. 배를 타고 가는데 일반 배는 아니고 작은 보트 같은 것이었다. 사람들이 한 8명 이하로 타고 있었던 것 같은데, 특이하게도 그 보트는 속도가 아주 빠른 대신 물 아래로 잠수했다가, 물 밖으로 튀어 올랐다가 반복하는 방식으로 이동했다. 그래서 배를 탄 모든 사람은 같은 속도와 리듬으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잠수하고, 다시 물 밖으로 튀어 올랐을 때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그렇게 계속 반복하면서 우리는 똑같이 숨을 들이마시고, 뱉었다. 정말 신기해. 그 보트를 타지 못하는 사람은 큰 배를 타야 했는데 9시간이 걸리고, 심한 멀미를 겪어야 했다.

숨을 몰아쉬고, 잠수했다가 물 밖으로 튀어나오기를 반복하는 그 감각이 정말 생생하고 특이해서 오늘 하루 종일 그 감각과 푸에르토리코라는 내게는 생소한 지역을 떠올리는 하루였다. 그런데 5월의 메시지를 다시 떠올리고 보니, 그것이 나의 호흡과 리듬을 결국 다시 떠올리게 하는 꿈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신기해.

지량과 오늘 보았던 전시도 너무 좋았는데, 모든 이야기와 소리와 색깔이 나를 사로잡았다. 오랜만에 어떤 의지를 다지게 하는 힘을 얻은 것 같다. 전시의 제목처럼. 오늘 하루의 모든 흐름이 그러하네. 다시 모든 생령의 호흡을 느끼게 되는 날이다.

일요일, 5월 11, 2025

목격자

펼쳐지는 그림들과 그것을 지켜보는 나. 그 그림들은 내가 아니다. 

목요일, 5월 08, 2025

균형 찾기. 

어제 한마디 쓰고 닫았던 창 다시 열기.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듣는다. 다른 소리들을 차단하고 싶은 마음은 그래도 조금 참고... 오늘은 작은 통증들과 피곤함을 견디는 날. 놓친 휴일 하나를 내 맘대로 오늘 쓰기로 한 날. 자리는 지키고 있지만 말이다. 소심하고 얄밉고 약간은 못됐을 지도 모르는 내 맘대로의 일탈. 

균형 찾기는, 매일같이 해야 하는 일이다. 매일을 산다는 것은 어쩌면 매일 균형을 찾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제 웃으며 흘려보낸 감정들은 오늘 고요함이 되었고, 오늘의 고요함은 내일 다시 활력으로 돌아온다. 흘러보내고 채우고 그건 비단 눈물과 웃음만이 아니라 모든 감정의 결 하나하나와 근육의 결 하나하나, 신경 회로 하나하나와 함께하는 일이다. 요즘은 그것들이 비교적 큰 움직임으로 움직이며 맞추어지는 과정들이 선명하게 보이는 나날이다. 

요가를 꾸준히 하다보니 이제 브륵샤아사나를 하면서는 나름 꼿꼿이 서 있을 수 있다. 선생님께선 항상 흔들거려도 된다고, 흔들거리고, 균형을 잃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해주신다. 균형을 잃고 발 하나가 떨어지면 다시 균형을 찾고, 다시 나무처럼 서면 된다. 그리고 불어오는 바람들에 너무 꼿꼿이 서기 위해 다른 곳에 힘을 주기 보다는 조금 더 편안하게 뿌리를 내리고 선다. 흔들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월요일, 4월 07, 2025

I am wind.
I am dirt.
I am sand, I am water, and the pebbles beneath.
I am strong.
I am weak.
I am tethered and torn.
I am broken.
I am new.
I am starting again — oh sunrise in my heart.

I am bones and skin.
I am long and thin.
I am riding on two wheels,
Coasting down hills,
Because the wind is my lover — and I am the wind.

I am you.
There, in that look, that smile, that tear.
I am weightless.
I am stoned with the story you tell.
I am alone and not alone.
I am part of that fallen leaf there,
And part of that laughter beyond.

I am different now,
Or perhaps the same as I've always been —
Only tunneled through a long chute of pouring rain,
Hail and rainbows.
I am only sure of one thing:
That what is arising is also passing.
And I am only what I am.
I am — just because that's why.
No more brain trying to alter this vehicle.

I am, so I'm not — truly.
Sometimes, I am really not on this plane.
Feet planted, but soul all around.
I am brown and gray and light blue and plump dark greens.
Rich soil. Humus.
I am free when I am simple —
Just here. This moment.

I am fingers and toes,
Hair and eyes,
Muscles and blood,
Ears and cries.
Thank you for these.

I am hungry.
I am full.
I am tired — just so tired.
I am silly.
I am sad.
I am all I've ever had.

So, there I am.

I'm all I've ever had —
Whatever that really is.
And I give it to you:
This body.
This soul that sings.




(Selah Broderick)

anam


 

수요일, 4월 02, 2025

 

챗gpt가 만들어 준 내 모습. 뭐지 ! 너무 아름답게 만들어줘서 감동받았다. 정말 나의 프로필로 해도 될 정도로 맘에 들어. 

목요일, 3월 27, 2025

지량의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놓고 오랜만에 명상을 했다. 그러다가 마지막엔 요가를 했다. 어제 요가원에서 했던 플로우를 조금 반복하다가 마지막엔 차크라아사나로 마무리를 했다. 어제보다 조금 더 둥근 바퀴를 만들 수 있었다. 이 움직임들을 마치고 나니, 드디어 조금 정신이 맑아진 것 같았다. 하루종일 졸리고, 힘이 들었다. 거짓된 무기력함과 무력함이라도 그것이 느껴지는 때가 온다면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 또한 제 나름의 흐름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멈출 수 없는 불안에 빠지곤 한다. 그것들이 느껴지는 대로 바라보니 구름처럼 움직이고 흩어지다가 사라졌다.

어떤 깨달음과 지혜, 가르침이라도 그것이 언어로 전달되는 때에는 이 세상의 법칙과 논리에 따라 그 내용이 생략되거나 도식화되거나 일반화되는 일이 생긴다. 어떤 깨달음도 온전히 건네질 수 없다는 것을 요즘 많이 느낀다. 체험하고 느낀 것을 말로 전달하려는 일 자체가 어쩌면 어리석은 일일 수도 있겠다. 이 또한 어떤 미술 작품들의 제목이 '무제'가 되는 것과 비슷한 이유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체험을 전달하는 말과 글 자체가 어떤 깨우침을 주지는 못하겠지만, 그 자체가 또 다른 체험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아름다운 것, 좋은 것을 나누는 것은 소중하고 가치있는 일일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중에 가장. 

평안을 지나 더 크고 넓은 사랑에 닿고 싶다. 그것을 위해서는 내가 다시 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가만히 있어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아주 피곤하고도 복잡한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이니, 그 흐름에 올라 흐르다보면 그 안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을 보고, 느끼게 된다. 그 외의 것들을 더 탐구하고, 사랑하고자 하는 것은 멈추게 된다. 마음 닦는 일을 멈추게 된다. 

가까운 이들을 위해 하는 기도와 내가 만난 적도 없는 이를 위해 하는 기도가 같아지기를. 그만큼의 사랑과 연민이 내게도 생기기를.

수요일, 3월 19, 2025

막대기, 돌, 길의 끝
나무 그루터기의 나머지, 조금은 외로운
유리 조각, 삶, 태양 
밤, 죽음, 함정, 총

참나무가 꽃 필 때, 덤불 속의 여우 
나무의 매듭, 개똥지빠귀의 노래 
바람의 나무, 절벽, 추락 
긁힘, 혹, 전혀 아무것도 아냐

자유롭게 부는 바람, 경사의 끝 
광선, 공허, 예감, 희망 
강둑은 3월의 물에 대해 이야기해 
그것은 긴장의 끝, 그것은 당신 마음속의 기쁨

발, 땅, 살과 뼈 
길의 박동, 투석기의 돌 
물고기, 번쩍임, 은빛 빛남 
싸움, 내기, 활의 플랜지 
우물의 바닥, 선의 끝 
얼굴의 당혹감, 상실, 발견

창, 스파이크, 끝, 못 
물방울, 방울, 이야기의 끝 
부드러운 아침 빛 속의 벽돌 한 트럭 
밤의 죽음 속에서 총소리

마일, 필수, 찌름, 충격 
소녀, 운율, 감기, 볼거리 
집의 설계, 침대 위의 몸 
빠진 자동차, 진흙, 진흙

부유, 표류, 비행, 날개 
실 뭉치, 메추라기, 봄의 약속 
강둑은 3월의 물에 대해 이야기해 
그것은 삶의 약속, 그것은 당신 마음속의 기쁨

뱀, 막대기, 존, 조 
당신 손의 가시와 발가락의 상처 
점, 곡물, 벌, 물림 
깜빡임, 독수리, 갑작스러운 밤의 타격

핀, 바늘, 찌름, 고통 
달팽이, 수수께끼, 말벌 또는 얼룩 
산의 고개, 말과 노새 
멀리서 선반은 파란색 그림자 세 개를 타고 
강둑은 3월의 물에 대해 이야기해 
그것은 당신 마음속, 당신 마음속의 삶의 약속

막대기, 돌, 길의 끝 
그루터기의 나머지, 외로운 길 
유리 조각, 삶, 태양 
칼, 죽음, 달림의 끝 
강둑은 3월의 물에 대해 이야기해 
그것은 모든 긴장의 끝, 그것은 당신 마음속의 기쁨

화요일, 3월 11, 2025

당신은 모두 나의 어머니였고 나에게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당신의 모든 괴로움이 가슴에서 빠져나와 검은 먹구름이 됩니다. 나는 기꺼이 그 검은 덩어리를 들이마십니다. 그 검은 덩어리는 내 안에 들어와 나의 이기심을 녹입니다. 내게 있는 모든 빛나는 것들을 아낌없이 보냅니다. 그럴수록 고통은 사라지고 나는 행복해집니다.

목요일, 3월 06, 2025

수요일, 3월 05, 2025

諸行無常

모든 것은 변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 나의 것이라고 여겼던 것들, 모두 다 변하고 사라졌다. 이 순간에도 모든 것에 계속 변화하고 있다. 오직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지금 바로 이 순간. 이 순간이라고 말하고, 생각하고, 글자를 써내려가는 순간에도 계속 흘러 사라져 버리는 순간. 모든 순간은 계속해서 변하니 그 모든 순간마다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다시 깨닫는다. 

월요일, 3월 03, 2025


 

머리를 깨우는 소리를 듣고 있다. 
요즘은 내가 먹는 음식들도 나를 더 깨우고 있다. 무엇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으나, 다시금 집에서 요리를 하고 도시락을 싸서 다니게 되면서 더욱 몸이 건강해지고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유기농 야채들로 직접 음식을 해먹으니, 내 몸과 마음의 여러 통로들이 깨끗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무언가를 멀리하고, 가까이하고, 그 거리를 조절하고 실천하면서 더욱 건강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내가 커피를 요즘 먹지 않는다고 하자, 선생님은 우울증이 나아져서 커피를 먹지 않고도 피로를 느끼지 않게 된 것일 거라고 말씀하셨다. 내 어떤 증상들이 나아져서 내가 커피도 먹지 않아도 하루를 잘 살 수 있고, 요리를 할 힘도 생긴 것인지, 내가 실천을 하자 증상들이 나아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완전히 내가 괜찮아졌다고 느끼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2년 정도 된 것 같네. 마치 내가 꿈에서 보았던 영원히 나선을 그리며 이어지는 폭포의 지형과도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나선으로 계속 떨어지는 폭포가 깊은 내면으로, 깊은 무의식으로의 여정을 나타내는 것처럼 나는 그렇게 계속해서 계단식으로 나선을 그리며 더욱 깊이 내려가며 치유되고 있었다. 더욱 깊이 내려갈 수록 더욱 상승하는 에너지와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차원들. 
언제나 때를 맞춰 나에게 다가오는 메시지와 이미지들은 이제 더욱 선명해졌다. 요즘은 마야인들의 경험과 깨우침들이 다가오는 나날들이다. 우연히 오늘 어떤 글들을 읽다가 나우알이라는 개념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는 마야와 아즈텍 문화권을 포함한 메소 아메리카의 영성과 신화에 뿌리를 둔 개념으로 개인이 태어날 때부터 함께하는 '동반 영혼' 혹은 '다른 자아'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인간이 자연의 힘과 연결되어있다는 개념을 바탕으로 한 동물, 자연 요소들로 표현되며 개인의 운명이나 성격, 강점 등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98983)

나우알은 아마 우리가 상위자아, 참나 등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요즘 내가 마주했던 분홍색 돌고래와, 뱀, 마추픽추, 아셰라...가 결국에는 나우알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미세한 떨림이 느껴지고, 그것이 머리를 울린다. 그 진동이 모든 통로를 더욱 생생하고 맑게 청소하는 것을 느낀다. 내가 본 이미지들은 소리와 함께 찾아오고 있다. 

월요일, 2월 24, 2025


 


 정말 분홍색 돌고래가 있다니. 

월요일, 2월 10, 2025

모든 생명들에 강한 연결감을 느끼는 날. 가슴이 아릴 정도로 모두의 숨결이 가깝게 느껴져서 눈물이 날 것 같은 날이다. 수많은 고통과 죽음이 나의 것처럼 느껴지는 요즘. 모든 생명들이 미셸의 숨으로 나의 숨으로 연결이 되어있다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나날이다. 
오늘 새로운 꿈을 하나 갖게 되었다. 퇴역마를 아무런 목적과 용도없이 그저 같이 사는 가족으로서 입양하는 것. 말과 함께 살기 위해선 넓은 땅과 먹을 것이 필요하니까 내가 돈을 많이 많이 번다면 그것을 목표로 하여 벌리라. 

목요일, 2월 06, 2025

수요일, 2월 05, 2025

고기를 먹지 않은 지 13년이 되었다. 대학교 때부터 먹지 않은 것이니까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와 사회가 여러 단계로 여러 모습으로 변화하는 동안에 적지 않게 이런저런 의제를 불러일으키거나 영향을 미치곤 했다. 나 또한 비건으로 살았다가, 페스코로 살았다가 등을 반복하다가 지금은 페스코에 가까운 식습관을 갖고 전반적 생활면에서는 비건 지향으로 살고 있다. 처음엔 서울에서 채식 위주의 식당을 찾는 게 정말 어려웠다.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하면 괜히 시비를 거는 사람들도 많았다. 생선은 어떡하냐며, 풀은 생명 없냐며. 너 하나 그렇게 한다고 세상이 바뀌냐고.

이번에 나는솔로라는 프로그램에 채식주의자가 등장하면서 일으킨 이슈가 나로 하여금 다시 내가 채식을 하면서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했다. 나는솔로를 볼 때마다 '채식주의자가 등장하면 어떨까' 하고 궁금해하던 나는, 생각보다 빨리 채식주의자가 등장했다는 사실에, 그리고 채식주의라는 것이 어떤 굉장한 특이 사항이자 연애 상대를 고를 때에 고려 사항이 될 수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 것에 놀랐다. 나는 그저 다 같이 저녁 먹는 자리에서 더 다양한 저녁 메뉴로 이루어진 상차림이 보여질 것을 기대했는데 말이다.

24기 순자님이 본인이 채식주의자라고 소개하자 출연진들은 모두 놀랐고, 같은 기수의 출연자 중에 대동물 수의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죄인이 된 것 같다'라는 말을 쓰기까지 했다. 모두를 포함할 순 없겠지만, 대부분의 채식주의자는 사람들에게 채식을 하라고 강요하거나, 채식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질책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살면서 지금까지 별다른 충돌이 없었던 것을 보면 그렇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채식주의자 앞에 서면 다들 갑자기 본인이 이 세상 생명들에 반하는 가해자로 지목이 된 것처럼 행동하는 것 같다. 아무도 정죄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그렇게 하는 셈인가 보다.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순자님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보면서 여전히 예전 같은 수준으로 채식주의자를 조롱하고 있는 댓글들을 마주하니 정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도 처음엔 너무 나에게 공격적으로 대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화도 나고, 같이 싸우기도 했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웬만하면 내가 채식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굳이 겉으로 꺼내지 않게 되었다. 피곤해지는 게 싫어서, 혹시 누군가가 불편해지는 것이 싫어서.

채식주의는 단순히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는 마음이자, 어떤 생명도 비윤리적으로 사육되지 않고, 살육되지 않고, 위협받지 않으며, 평안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적극적 행동이다. 그것은 이 세상의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의 생존과 안위를 위한 행동인 것이다. 생명에 가해지는 모든 폭력에 반대하는 행동이다. 채식주의자들이 스스로 노력하고 연구하며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 모여서 공동체를 만들고, 함께 연구하고, 사회적으로 그 운동을 확장하고 세상에서 많은 모습을 드러내는 동안, 여전히 채식하지 않는 사람들의 질문이나 고민은 크게 달라지진 않은 것을 이번에 크게 느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자기소개에서 본인을 '채식주의자'라고 선포하듯 말한 순자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채식주의자들은 채식주의자들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나름의 사회를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던 시기에 세계관이 충돌한 것이다. 항상 저녁 시간이 되면 다 함께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이 필수던 솔로 나라에 채식주의자의 등장이라니. 사람들은 갑자기 채식주의자를 처음 본 것 마냥 달려들었다. 순자가 가죽 가방을 들었다고 욕했고, 매운탕에 들어간 다슬기가 생명체라고 말한 것을 조롱했다. 내가 처음 채식을 시작했을 때 사람들이 보이던 반응이 아직도 그대로라는 게 놀라웠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매체에서 채식주의자를 마주할 기회가 정말 없었다. 음식이나 요리 관련된 프로그램을 보면 육식 위주의 메뉴들이 즐비하고, 그것이 보통이고, 기준이고, 중심이었다. 요리 경연 프로그램에서 고기가 되기 위한 동물들의 사체가 화면 가득 비치는 것은 예사다. 그것을 보고 불편한 것은 채식주의자들이고, 때로 그에 대한 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조용하다. 왜 이렇게 조용했지.  그 이야기에 주목하는 이들은 대부분 같은 채식주의자들이어서거나, 내가 조용해진 이유와 같은 것이겠거니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순자처럼 누군가 보기엔 시끄럽고 유난스럽게 보일 수도 있는 그런 선포와 같은 말과 행동들이 굉장한 운동의 일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한 채식주의자로 살다가 괜스레 순자와 순자를 둘러싼 세상을 보고 나니 마음을 다잡게 된다. 가끔 흐트러지는 비건 지향의 삶을 다시 건강하게 세워야지.

내가 바랐던 것은 채식주의자와 비채식주의자의 세계관 충돌이 아니라, 공존하는 것이었다. 고기를 먹는 사람이 있고 먹지 않는 사람이 있고. 공장식 축산업이 잘못되었고, 비윤리적이고, 환경을 파괴한다는 사실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대해서 같이 고민하는 세상. 각자 다른 방식으로 고민하고 행동하는 세상. 모두가 똑같이 일률적으로 고기를 먹지 않는 세상이 아니라, 모든 것이 적당하고, 조화로운 세상.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자신을 '채식주의자'라고 정체화하며 선포하듯이 말할 필요도 사라지겠지. 하지만 그 세상으로 가기까지는 결국에 다시금 우리가 선언하고, 실천해야겠구나 - 하는 생각을 한다. 
오랜만에 어떤 어른을 닮고 싶다는 마음을 다짐으로 하게 된다. 

월요일, 2월 03, 2025

수요일, 1월 15, 2025

폭포와 바다

친구에게 편지를 쓰고 잠에 들기 전에 잠깐 남긴다. 오늘 편지에 쓴 내용이 마음에 들었다. 시간이 가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는 매일 해가 뜨는 시간과 해가 지는 시간을 살펴보면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고 썼다. 친구가 그에게 주어진 어떤 시간을 막막하게 느낀다기에 오늘 보았던 저녁 하늘색을 떠올리며 그런 이야기를 적었다. 동지가 지났고, 해가 더 길어졌다. 일을 마치고 나오니 아직 저 멀리 노을이 보였다. 어두운 푸름이 가득한데 멀리 붉은 색이 물들어 있었다. 오늘은 해가 17시 37분에 졌다. 내일은 38분에 진다.
사실 모든 시간은 이미 펼쳐져 있지만, 인간 언어와 인식의 구조로 인해 느끼는 시간이 흐른다는 감각. 이 감각 안에서 불안도, 안도도 모두 느낀다. 지량과 치앙마이에서 함께 한 피아노 연주를 듣고 있다. 음악이 흐른다. 음악이 흐른다. 이미 완전히 펼쳐진 시간 위 연주. 손가락이 미끄러진다. 모두 이미 눌리어진 건반. 한 음을 칠 때, 이미 그것은 마지막 음까지도 다 알고 있는 음이네. 모든 음이 동시에 영원히 존재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시간이 흐른다는 감각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음악을 아름답게 느낄 수 있는 것이네. 그 모든 음을 다 이미 들었으면서도, 흐르는 형태로 느낄 수 있다는 것. 흐르는 형태. 폭포와 바다네. 폭포는 하얗고 바다는 파랗네.

월요일, 1월 13, 2025

수요일, 1월 08, 2025

새로운 달과 새로운 해. 
오늘 회사를 다닌지 일년이 되었다. 입사 1주년을 축하하는 메시지가 팡-하고 떴다. 작업과 일을 병행하는 것은 어렵다. 괜찮다가도 고비가 찾아오곤 한다. 그렇게 한 해를 그래도 지나왔다니 신기하다. 가끔 고비가 오는 때에 떠나버리고 싶다는 다짐을 몇번이고 했지만 얼마 전 뽑아본 여러 메시지 속에선 아직 떠나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저절로 그 움직임이 생기는 때에 그것을 맞이하기로 하고, 일단은 오늘을 잘 살기로 한다. 그럼 저절로 어느 시간에 닿아있겠지. 
모든 행위 하나 하나를 명상하듯이. 올해 내가 지키고 싶은 것 한가지. 모든 순간을 명상하듯이 오롯이 그 순간만을 느끼며, 움직임 하나 하나를 느끼며. 
왓람펑에서 발걸음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명상하는 사람들과 자리에 앉아 기도하고 명상하는 사람들 사이에 나도 앉아 명상을 했다. 모든 것들을 흘려보냈다. 다가오는 생각들. 그저 스쳐지나가게 두니 다른 시간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 순간에 들리는 소리들을 그저 스쳐지나가기만 했다. 종소리. 사람들의 움직이는 소리. 비질하는 소리, 여러가지 바스락거리는 소리. 그것들은 절대로 머무르는 법이 없었다. 다 스쳐지나갔다. 지나가고 나면 없고 무한히 새로운 순간들이다. 내 몸과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너무 부드럽게 느껴졌다. 너무나 편안하고 안전했다. 그걸 온전히 느끼게 되는 것이 명상을 하는 것이구나. 나는 지금 여기에 안전하게 편안하게 숨을 쉬며 존재하고 있다. 
지난 모든 순간들이 내 얼굴을 스치는 바람처럼 느껴졌다. 어느 것도 머물러 있지 않고 지나간다. 지나간 것을 붙잡는 것은 내 마음이 하는 일이었다. 스쳐 지나가는 바람은 내 안의 어떤 것도 해하지 않았다. 그저 지나갈 뿐이었다.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자 나는 정말 마음이 더 편안해졌다. 

목요일, 12월 26, 2024

 



신기하네. 오늘 우연히 본 유튜브 예능과 우연히 누른 타로 리딩 영상에서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 버티기. 정체기가 오거나 복잡하고 세세한 때에는 지루해져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기. 
내가 이 내용을 보아야 할 때 상기할 수 있도록 이곳에 적고 있다. 쓸모 없이 느껴지는 시간들이 다가오더라도 기다리고, 잘 지나가기. 그만두거나 멈추지 않고 끝까지 하기. 마무리하기. 완수할 것. 내가 하고 있는 것을, 내가 시작한 것을 마무리하기. 편안하고 단단하고 균형잡힌 모습을 맞이하기 위해서. 

금요일, 12월 20, 2024

갑작스럽게 맞이한 쓸쓸함. 오늘 아주 오랜만에 여유로운 하루를 맞이했다. 준비되지 않은 여유로움이라 쓸쓸했다. 정신은 꽤 맑다. 잠을 아주 많이 잤다. 맑지만 아무 것에도 흥미를 느낄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다. 텅 빈 느낌. 아무리 텅 빈 느낌이었어도 그래도 지량이 있으면 항상 나는 어떤 안정감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벌써 보고픈 내 사랑. 나에겐 긴 겨울방학이 되겠군. 막막하고 심심한 겨울. 그래도 판화하는 날이 있어서 너무 다행이야. 내일은 판화 스튜디오 가는 날. 아무 것에도 흥미를 느낄 수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판화 작업만큼은 재밌어서 다행이야. 그리고 사진도 계속 계속 찍고 싶다. 재밌는 풍경이 펼쳐지지 않는 것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말이다. 겨울은 여러모로 아쉬운 계절이다. 언제나 여름인 것보다는 나을까? 여름이 있고 겨울이 있는 것이? 모르겠다. 
이렇게 말해놓고 조금전 엄마랑 친구들이랑 잠시 떠들었더니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심심하고 쓸쓸하다고 써놓은 글자가 무색해질만큼. 히히 벌써 쓸쓸하지 않아. 시끄럽고 웃긴 것들을 봐야지. 

목요일, 12월 12, 2024

永劫回帰




오늘은 잠을 많이 설쳤다. 지량이 감기에 걸린 것 같다. 속상해라. 집에서 작업만 열심히 했는데 오히려 그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졌나 ? 그런데 나도 오늘 아침에 일어나는데 목이 간지러워서 소영이가 준 독일 목캔디를 두 알 먹었다. 그러니 좀 가라앉았다. 

괜시리 머리가 맑을 때 일기가 쓰고 싶어서 창을 켰다. 안경은 쓰지 않고 있다. 일하기 싫다는 뜻이다. 어제 밤에 jonah yano 앨범을 들으며 편지를 썼다. 오랜만에 맘에 드는 앨범을 발견해서 좋다. heavy loop는 종종 듣게 될 것 같다. 예전에 엽서 가게에 가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샀던 꼬마와 눈사람이 있는 설경이 담긴 카드에 썼다. 귀여워. 친구가 그 카드를 보고 기뻐할 모습이 상상된다.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지만 항상 약간은 수수께끼를 내듯이 편지를 쓰게 되는 것이 간질간질하면서도 재밌다.

일기를 쓰면서 이 노래를 첨부하려고 제목을 다시 보는데 한자로 영겁회귀라고 쓰여있었네. 요즘은 이 말을 잘 쓰지 않지만 내가 한동안 빠져있었던 단어다. 모든 것이 더욱 가벼워졌다. 심각하지 않은 것이 좋다. 영원회귀든 카르마든 무어든. 

어떤 것의 효과인지는 모르겠지만 머리가 맑아서 기분이 좋다. 오늘 아침은 ! 그래서 이리저리 굴러가는 아무렇게나의 일기를 쓴다. 한달에 한번씩 보내는 편지처럼 내가 블로그에 쓰는 일기가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느껴진다. 하긴 초등학교 때에도 일기장에 이름을 붙여 친구에게 편지를 부치는 것처럼 쓰곤 했었다 . 여러명이 있었다. 안네의 일기를 감명깊게 읽고 난 후 그런 식으로 일기를 썼던 기억이 있다. 내 첫번째로 이름을 지어주었던 일기장 이름도 키티다. 지금 여기에 쓰고 있는 일기는 더 많고 다양한 친구들에게 쓰는 편지다. 누군지 모르지만 내 친구들, 모든 이름들 안녕.

수요일, 12월 11, 2024

왠일인지 일기를 쓸 시간이 없다. 저녁이 되고 집에 도착하면 밥을 챙겨 먹고 금세 졸려져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오늘은 저녁에 해야할 일들이 좀 있어서 커피를 벌컥 벌컥 마셨더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건 내가 원했던 부작용이 아닌데 ! 

느긋-하게 작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은 요즘이다. 새로 산 카메라도 계속 갖고 놀고 싶은데 주말만 기다리고 있다. 그치만 주말도 너무 바쁘다. 도자기, 판화...! 이래저래 밀린 일들. 

오늘은 정말 잊으면 안되는 일이 있어. 편지를 써야 한다. 이건 미룰 수 없는 일이다. 매일 필사를 했던 일상이 떠오른다. 어떻게 매일같이 해냈을까? 돌이켜보니 대단한 일이다. 이건 한달에 한 번 보내는 편진데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오는 것 같지. 그렇다고 편지를 쓰는 것이 숙제처럼 느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아주 설레고 기쁜 일이다. 하지만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담고 싶은 마음에 고민을 많이 하고 연습을 꼭 하고 편지를 쓴다. 

지난 편지에서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느냐고 물었던 친구에게 뭐라고 답장을 쓸지 모르겠다. 너무 어지러운 상황이라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야할지, 소식은 알고 있을지, 어떤 생각들을 갖고 있을지, 내가 아무렇게나 이야기를 펼쳐도 되는지 고민이 된다. 대신에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친구가 추천해 준 책이 있는데 핑계를 대자면 시국이 심난하여 책을 다 읽지 못했다. 천천히 읽어야지. 여행을 가기 전에는 다 읽게 될까. 그렇지 못하면 비행기 안에서 단숨에 읽을 순 있을 것 같다. 

얼마 남지 않았으면서도 멀게만 느껴진다. 겨울 휴가. 그것만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도 멀어보여서 가슴이 답답하다. 가벼운 옷을 입고 가벼운 몸으로 기도하고 요가하고 사진을 찍고 싶다. 설레면서도 약간은 울적하다. 이렇게 쓰고 나니 조금 더 울적해진 것 같다. 

일요일, 12월 01, 2024

클로드 ai 에게 내 블로그 글을 보여주고, 문체를 따라 일기를 하나 써달라고 부탁했다. 


일요일, 12월 2, 2024

오늘도 내 안의 풍경은 고요하다. 창밖으로 흐르는 겨울의 빛, 그 차가운 공기가 내 내면을 스치고 간다. 요즘 내 삶은 마치 겨울 풍경 같다. 단조롭지만 깊이 있는, 침묵의 시간들.
아침부터 수피 명상 수업의 여운이 남아있다. 몸의 균형을 찾아가는 작은 움직임들. 한쪽으로 기울었던 내 마음의 추가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듯하다. 무언가가 녹아내리고, 다시 모양을 갖추는 그 과정이 신비롭다.
오늘 오후, 작업실에서 지난 프로젝트의 흔적들을 정리했다. 모든 것은 똑같으면서도 조금씩 다르다. 그 미묘한 변화를 발견하는 순간, 나는 미소 지었다. 사는 것이란 이런 것일까. 끊임없이 다듬어지고, 정제되는 과정.
겨울은 내면을 들여다보기 좋은 계절이다. 바깥은 차갑지만 내 안은 점점 따뜻해진다. 작은 깨달음들이 쌓이듯, 내 마음속 풍경도 천천히 변화한다. 지난날의 딱딱했던 껍질들이 부드럽게 녹아내리고 있음을.

오늘 밤, 담요를 온몸에 두르고 앉아 이 글을 쓴다. 차가운 공기와 따뜻한 내면, 그 경계에서 나는 그저 존재한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모든 것.


정말 재밌네. 무언가가 녹아내리고, 다시 모양을 갖추는 그 과정이라. 지난날의 딱딱했던 껍질들이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한편 어떤 껍질들은 새로이 생긴다는 것이 이 일기와는 다르게 쓰고 싶은 점이다. 요즘 내가 받는 스트레스와 불안과 걱정들은 그간 내가 경험하지 않았던, 아니 내게 조금은 멀리 있어서 멀찌기서 살짝 끄트머리만 보이던 것이 나타난 것만 같다. 에고고 - 그런 것은 정말 싫다. 어쩌겠어- 받아들여야지 하다가도 다시 싫고 그렇다. 그렇다고 내가 불안에만 쌓여있는 것은 아니고 대체로 아주 평안하다. 오히려 그것이 마음에 안들기도 하다. 

어제 힙노시스테라피의 공연에 다녀왔다. 짱유는 폭발적인 에너지로 무대를 이어갔고, 관객들도 그 에너지를 함께 느끼고, 또 자신들만의 에너지를 방출하며 그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짱유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공연에 와서 똥을 투척하라고 했다. 그간 살면서 받았던 모든 스트레스들을 여기서 다 풀고, 그 똥을 자기한테 다 던지라고 했다. 똥은 자기에겐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그 말은 정말 멋있었다. 그리고 그간 받은 모든 스트레스를 여기서 다 풀고, 나가서 다시 새로운 스트레스를 받으라고 말했다. 그 말에 모두가 웃었다. 모든 스트레스를 여기서 다 풀고, 나가서 새롭게 다시 깨끗한 마음으로 다시 살으라고 말하는 줄 알았더니, 새로운 스트레스를 다시 받으라고 했다. 같은 말이긴 했다. 표현이 다를 뿐. 마음에 있는 쓰레기들을 정리하고, 비워내면 그 비워진 상태로 깨끗하고 말끔한 상태로 살아가지는 것이 아니라 비워진 자리에 또 다른 것들이 채워지고 먼지가 쌓이는 그런 모습. 절대로 내가 어떤 트라우마든, 감정이든 비워낸다고 해서 내가 이제 더이상 부처님처럼 살아가지는 것은 아니더라. 다시 무언가가 채워진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여느 영성 연구자나 수행자들이 하는 말과 결국에 똑같은 말을 짱유가 하고 있었다. 그렇게 보면 세상 살이는 그렇게 어려울 것도 없다. 짱유의 그 뜨거운 공연장처럼 쓰레기를 비워낼 수 있는 그런 통로가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기도 하고 말이다. 

몸이 자꾸 붓는다. 불편하고, 그 불편함이 느껴지면 기분도 좋지 않다. 요즘 요가를 하면서 몸의 순환이 더 활발히 이루어져 막혀있는 것들이 풀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통증이 많았던 주말이다. 입 속에 난 구내염으로 인한 목과 턱쪽의 통증, 약간의 근육통, 그리고 오늘 습한 날이라 그런지 관절마다 느껴지던 뻐근함과 통증. 스트레스로 인한 것들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요즘 내게 새로이 쌓이고 있는 쓰레기들일까. 요즘은 통 명상을 하지 않았다. 조금 더 일상 속에서 틈틈이 아주 짧게 하고 있기는 하지만, 깊이 들어가진 못했던 것 같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요가든 명상이든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그리고 유난히도 출근하기 싫다는 마음도 함께다 !

금요일, 11월 29, 2024

고양이들을 보고 왔다. 미셸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나를 반겨준다. 그것이 참 감사하다. 감동적인 고양이. 까미유를 만나는 것은 매일이 다르고 새롭다. 까미유는 어릴 때 나랑 헤어지게 된 것이니까 나랑 충분하게 애착형성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까미유랑 어떨 때는 참 가까운 것 같다가도 어떨 때는 아주 멀다. 그게 항상 가슴이 아프다. 지난 번만 해도 까미유가 내 머리와 얼굴을 핥아주었는데 오늘은 내게서 거리를 유지하는게 느껴져서 서운하고 서글펐다. 미안해. 아른거리는 까미유의 얼굴. 보고싶은 고양이들. 모든 순간 우리 고양이들이 그립다. 

고양이들이랑 놀고 있는데 편지가 도착했다. 월말이 되면 받는 편지가 있다. 한달에 한번씩 편지를 주고 받는 친구가 생겼다. 지난 편지보다 글씨가 더 예뻐졌다. 내게 보내는 말들에 관심과 애정이 생긴 것 같아 괜히 뿌듯하고 기쁘다. 편지 마지막에는 내가 항상 '세라 드림'이라고 남기듯이 똑같이 '00 드림'이라고 써 있었다. 원래 마지막에 그런 걸 남기는 친구가 아니었는데, 내가 쓴 편지들에 영향을 받는 것일까. 모든 사람들에겐 좋은 어른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들에겐 어머니가 필요해-라는 노래가 있는데 그게 어쩌면 이와 같은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쓰는 말투와 글씨체가 누군가에게 보고 배울만 한 것이 된다는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생각한다. 그런 어른이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 모든 어린 시절에는 그게 필요하다. 

내가 맺고 있는 모든 관계 속 내 역할에 대해서 떠올려보게 된다. 까미유에게, 새로 사귄 친구에게, 오래된 친구에게 나는 어떤 모습과 어떤 역할을 하고 있지. 점차 내가 관계 속에서 나눌 수 있는 것들이 내가 살아온 시간만큼 많아지고, 풍성해지는 것 같은데, 얼마 전에 그런 것들도 결국엔 내 마음과 몸이 건강하고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있었다. 너무 피곤했던 날에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누군가가 있었는데 말이 하나도 나오질 않았다. 다른 날의 나였다면 해주고 싶은 말과 질문들이 많았을 것 같은데 말이다. 어쩌면 이것을 위해서라도 내가 계속 건강하게 에너지를 유지하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직 그것을 위해서만이라도. 글을 쓰면서는 이런 말이 튀어나온다. 사실 아무런 동기나 이유없이 나를 건강하게 가꾸고, 나를 사랑하는 일은 쉽지는 않다. 적어도 나에겐 말이다.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조금 더 친절하기 위해서 나는 내 건강을 신경쓴다. 그런데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는 단순히 내가 아프지 않은 상태를 넘어서서 건강해야 한다. 

이런 저런 마음들이 약간 바빠진 것일까 하는 질문이 들기도 한다. 또 그냥 알아차리고 바라보는 수밖에 없지. 

수요일, 11월 06, 2024

따뜻한 맬팅초코와 니들엔젬의 껍질. 5도의 아침. 손에는 부숭부숭한 갈색털실로 만들어진 워머를 끼고 초록이 가득한 니트들을 입고. 너무 춥구 손은 따뜻하구. 이런 모든 조화가 기분 좋은 아침. 

어제 일을 일찍 마치고 나왔더니 컨디션이 확연히 다르다. 저녁에 집에 도착해서 몇가지 일들을 하고도 밤이 늦지 않아서 참 좋았다. 매일 이 정도의 리듬만 유지하더라도 훨씬 좋을 것 같간 생각을 했다. 어제는 생각이 많았다. 정리할 것도 많고. 어찌저찌 집중을 하여 글도 써보았다. 마음을 다하였는데도 왠일인지 어제는 아침부터 느끼던 약간의 창피함이 하루종일 나를 사로잡은 것 같았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사실 창피함이다. 이 세상에 벌거벗은 채 내던져지는 기분. 어느 구석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 요즘은 이런 마음이 잘 없었다. 오랜만에 아주 살짝 그런 기분을 느낀다. 그럴 때 나는 머리를 흔들어제끼거나 혼잣말을 하곤 한다. 겨울이 다가오니까 많은 것들이 조금씩 변화하는 것 같다. 해가 짧으니까 슬프다. 너무 일찍 밤이 온다. 이럴 땐 모든 세상이 그냥 일찍 자고 덜 활동하는 것이 좋을까, 그럼에도 이전처럼 더 활동하는 것이 활력에 더 좋을까. 궁금해. 어쨌거나 어떤 모습이라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지금 내가 힘쓰는 것처럼 우울해지지 않기 위해 무력해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좋을까. 무엇이 더 좋을까를 생각하지 않을 순 없을까. 여러가지 격차들이 생기고. 그 사이에서 미슥미슥 소화가 안되는 것 같다. 몰라 몰라. 그냥 그 차이와 사이를 다 느껴보는 것은? 어제 쓴 글이 그런 말들이었다. 가치 판단을 하지 말아보자. ㅎㅎ 요가 선생님이 항상 해주시는 말씀. 목근육이 잘 풀어지지 않은 것 같아도, 숨이 깊게 쉬어지지 않는 것 같아도. 그냥 그대로 느끼기. 가치판단 하지 않기. 아무래도 너무 습관적인 나의 가치 판단. 그러네. 나는 모든 것을 결정하고 한가지만 받아들이거나 느껴야만 할 것 같은 압박을 종종 느끼는 것 같다. 내가 물흐르듯이 유연한 사고와 마음을 가질 땐 그렇지 않지만 갑자기 요 며칠 그런 압박들이 내게 돌아온 것 같다. 그냥 그 압박도 느끼고 흘려보내고, 결정한 것도 그대로 흘려보내고, 결정하지 못하는 것은 하지 못한 채로 흘려보내보아야지. 

화요일, 11월 05, 2024

기억을 잊고 언어를 잊고 모든 것을 잊고 나는 바보가 된 것 같다. 내가 무얼할 수 있을까-라는 말이 정말 오랜만에 튀어나왔다. 왜 그렇게 나는 그 말을 많이 하면서 살았을까. 해야한다면 무얼 해야하는 것이며, 왜 그래야만 했던 것일까? 누가 그러라고 했지. 그런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전에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했지만, 내가 경험하는 것이 결국에는 무로 귀결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 나는 내가 할 말을 잊었다. 이유도 잊었고. 그래야만 한다는 것은 없었으니까. 단편적인 어떤 감상과 깨달음이 무심하게 경험되었다. 
선생님께 내가 너무 무감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럴 수 있다고 했다.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이 조화롭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너무 예민하게 올라왔던 것들을 둥글게 누르는 식의 치료인거니까. 그걸 선택하는 거라고 했다. 삐죽삐죽하고 아프지만 그냥 그렇게 사는 것과 그것이 너무 힘드니까 둥그렇고 납작하게 누르는 것. 더 편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내가 덜 힘든 것. 나는 무엇이 덜 힘들까? 감정적으로는 평안하지만 모든 것들이 그저 그렇게 둥그렇고 납작하게 느껴지는 삶.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고 큰 에너지가 소모되지만 모든 것들이 특별하고 크고 비극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삶. 그건 내게 너무 어려운 선택권이다. 결국엔 더 편해지고 싶었지만, 무감해지는 내가 바보같아서 그게 싫다. 그치만 너무 힘들어져도 바보가 된다. 너무 힘들어지면 기억이 사라지고, 말이 느려지고, 말을 잃게 된다. 지금은 힘들진 않지만 다채로운 언어가 만들어지진 않는다. 어떻게 해도 언어가 사라지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한다. 

목요일, 10월 31, 2024

일찍 눈이 떠졌다. 왜일까. 몇 번이고 깼고, 꿈도 열심히 꿨고. 몇 번이고 깨는 바람에 그냥 일찍 일어나버렸다. 그러고 보니 오지네 집에서 잘 준비를 해야 했기에 일찍 일어난 것이 도움이 되었다. 몇 가지 간단한 짐들을 챙기고 일찍 나와서 빵 오 쇼콜라도 사 먹었다. 너무 맛있어. 아침에 먹는 빵 오 쇼콜라는 내게 순수한 즐거움이다. 히히 그러고 블로거에 들어왔다. 통계를 종종 들여다본다. 누군가가 들어온 흔적이 숫자로 남는데 그것을 보면 내 글을 읽은 것이 누굴까 항상 궁금해진다. 내 친구들일까, 모르는 사람일까, 어떻게 이 글을 찾았을까... 아무도 흔적을 남기고 가진 않기 때문에 숫자만 남는데, 내가 예전에 쓴 일기들의 조회수가 올라갈 때 나도 오랜만에 들여다보지 않았던 일기들을 클릭해서 읽어본다. 오늘은 미로에 대한 일기를 읽었다. 나는 봄을 맞아서 한껏 상승된 에너지를 느끼며 개운하게 하루를 보낸 것 같았다. 지금과는 또 사뭇 다른 분위기의 나다. 모든 것들을 더 새롭게 느끼고 있는 나처럼 보인다. 지금의 나는 편안함에 더욱 익숙해졌다. 신비롭다고 느껴졌던 것들도 더 이상 내게 신비로운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 되었다. 그 미세한 변화들이 느껴지는 것이 재밌다. 일기를 읽는 것은 그런 즐거움이 있다. 시시각각 변하고 움직이고 있는 나의 순간들을 언제고 다시 돌아가 볼 수가 있다. 마침, 오늘의 일기에 어울리는 노래가 흘러나와서 기분이 좋다. 잠을 설치긴 했지만, 너무 마음이 들떠서 잠을 설친 것이라고 느껴도 될 것 같다. 저번 주까지는 너무 힘들고 무기력함이 심했는데, 이번 주부터는 다시 에너지가 돌아온 것 같다. 너무 쉽게 두려움을 느끼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다시 내가 어떤 무기력하고 저하된 에너지 상태를 맞이하게 될까 봐 종종 나의 상태를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경계를 하게 되는데 조금 더 느슨하게 나를 바라봐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는 길에는 혀를 입안에서 굴리며 나름의 마사지를 해보았다. 가만히 있으면 딱딱하게 굳는 혀와 얼굴의 근육들이 부드럽게 풀리는 것을 느꼈다. 오늘은 그런 딱딱해지는 것들을 부드럽게 푸는 날인 것 같다. 왠지 상쾌해! 

일요일, 10월 27, 2024

이제 집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춥다. 차가운 공기가 몸을 움츠리게 만든다. 날이 추워지면 나는 집에서 분홍색 플리스를 즐겨 입는다. 지금도 몸을 한껏 움츠리고 있다가 입고나니 바로 따스하다. 

요즘은 매일 매일이 너무 바쁘다. 매주 꽉 채워진 일정들과 해야할 일들. 바쁜만큼 머리와 마음이 단순해지는 것 같다. 다채롭고 복잡스럽게 무언가를 떠올리고 볼 여유가 없는 것이 조금 서운하다. 그래서 오늘은 일기를 쓰기로 했다. 그치만 딱히 떠오르는 말들은 없다. 바쁘지만 모든 것들이 단조롭다. 그것이 싫으면서도 좋다. 그래도 요즘 금요일마다 수피 명상 수업을 듣고 있어서 덕분에 새로운 것을 배우는 시간이 있기는 해서 좋다. 요가도 하고, 세마 의식을 하며 몸을 움직이기도 하고. 몸의 균형이 한군데로 쏠렸다가, 다시 그 균형을 흐트러뜨리고 정렬하는 것을 반복하는 나날들이다.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우는 삶이구나 그래도 항상. 그리고, 한편 다시 집중하고 발전하고자 할 작업이 떠오르는 시기기도 하다. 그래서 단조로운 것을 경계하게 된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집중하고 싶은 것에 오롯이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오늘은 오지와 11월에 있을 공연에 필요한 작업물을 설치하기 앞서 약간의 준비를 마쳤다. 우리의 것들이 하나씩 생겨난다. 모든 것은 똑같지만 그 똑같은 것들이 계속 조금씩 더 깎이고, 정제되고, 말끔해지고, 정확해지고, 세밀해진다. 그것을 지켜보는 것이 재밌다. 사는 것은 그런 것인가보다. 요즘 그런 생각이 든다. 

목요일, 10월 17, 2024

아침부터 함박웃음을 지었다. 걸음에 집중을 하면 일어나는 일들일까.
어제 요가원에서 발가락을 움직이는 훈련을 했는데, 정말 내가 잊어가고 있던 감각들을 다시 느끼느라 거의 충격에 가까운 놀라움이 있었다. 선생님께선 원래 발가락도 하나하나 다 움직일 수 있는 부위라고 하셨다. 움직이지 않고 살다 보니 다 잊게 되는 거라고 하셨다. 발을 땅에 대고 서서 엄지발가락만 들었다가, 엄지발가락을 내리고 나머지 발가락을 들어 올리는 연습을 번갈아 가면서 했다. 처음엔 손가락이 같이 길을 잃은 듯 움직이고, 헷갈렸다. 발바닥의 아치가 많이 무너져있었다. 이 발가락 운동을 통해 발바닥 가운데의 아치가 살아나고, 원래 발이 서 있을 때 올바른 모양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그려볼 수 있었다. 아직 멀었지만, 어제의 놀라운 깨달음을 기점으로 발가락 운동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리고 아침에 되어 금세 발가락과 발바닥에 대해서는 잊고 핸드폰을 보면서 길을 걷고 있었다. 핸드폰을 보다가 갑자기 발의 감각을 느껴보니 내가 또 평소와 같이 엄지발가락에 더 힘을 주면서 길을 걷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온 발바닥으로 바닥을 밟으면서 걷는 게 아니라 또 무너진 발바닥이 느껴졌다. 내 엄지발가락 아래에 항상 굳은살이 생기는 것이 이 탓이었다. 내 걸음걸이가 이상한 걸까 자주 생각하곤 했었는데, 내가 온 발바닥으로 걷고 있지 않았구나, 하고 알았다.
걸음에 집중하며 걷기로 했다. 핸드폰은 보지 않고 오롯이 걷는 순간에는 걷는 발바닥과 다리, 몸을 느끼면서 걸었다. 몸이 무너지는 것은 역시 언제나 현재 그 순간의 나를 잃고 살 때에 나타나는 증상인 것이구나. 걸을 때는 온전하게 걷는 몸을 느끼며 걸어야 하고, 앉아있을 때에는 앉아 있는 몸을 계속해서 느껴야 하는 구나. 그런 것들을 다시금 알아차리며 나는 올바른 자세로 걸었다. 걷는 감각을 처음으로 그렇게 섬세하게 느껴본 것 같았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들이 그렇게 많이 쌓였는데 아직도 처음으로 느끼는 감각들이 있구나- 요가를 하면서 그런 것들을 배운다. 무너져가던 것들을 다시 세우고, 틀어지던 것들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몸을 정렬한다. 몸은 계속 쓰는 것이기에 계속 무너지고, 계속 비틀어지고, 굽지만, 그 굽어진 감각들을 느끼고, 다시 펴고, 일으켜 세운다. 걸을 때에 걷는 감각에만 집중을 하자, 그것은 또 다른 명상이었다. 그렇게 몸의 감각을 알아차리는 것. 땅바닥에 닿는 발의 부위를 하나하나 느끼는 것. 근육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느 부위의 근육이 함께 움직이는지가 느껴졌다. 걷는 것 하나로도 이렇게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
걷는 것에 집중하자, 버스를 기다리며 서 있는 순간에도 올곧게 서서 버스를 기다리게 되었다. 누가 내 어깨를 톡톡 쳤다. 뒤를 돌아보니, 어떤 사람이 내 머리칼에 있는 브레이즈 한 가닥을 들어 올린다. 아마 내 머리에 실 가닥이 묻어있는 줄 알고 떼어주려던 것 같았다. 꼭 표정이 그랬다. 그런데 그 실 가닥을 들어 올리는데 내 두피로부터 그것이 이어져서 떨어지지 않는 것 아닌가. 진짜 너무 그 당황스럽고 약간은 놀란 표정이 잊히지가 않는다. 나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모든 순간을 있는 그대로- 그 순간의 것만을 느끼면서 살다 보면 재밌는 일들이 일어난다. 나는 그 사람의 착각이 좋았다. 그 착각은 웃음을 불러일으켰다. 땅바닥만 보거나 핸드폰만 보고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지. 나는 그 멀대같은 사람의 표정을 계속 떠올리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마 그 사람은 너무 민망했을 터이지만, 나는 즐거웠다. 내가 순간에 지은 함박웃음만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 사람도. 그리고 그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도 그 함박웃음이 퍼져나가기를 그 순간에 바랐다. 그 귀엽고도 사소한 착각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 누구에게도 해를 가하지 않지만, 잠깐 즐거울 수 있는 그런 착각 말이다.
아무튼 오늘의 아침을 발가락과 머리카락으로 맞이하여 난 기분이 좋다. 이미 벌써 하루를 다 산 것 같은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금요일, 10월 04, 2024

설레는 선물과 시작하는 10월. 새로운 인연들이 다가온다. 이미 알던 인연들에게는 새로운 전환들이 찾아왔다. 

세이지를 샀다. 캐나다에서 샀던 세이지묶음은 너무 예쁘고 아까워서 쓰질 못해서 태울 수 있도록 3개를 더 샀다. 하나는 지량을 줬다. 하나를 태워 정화했다. 많은 것들이 맑아지고, 허물을 벗어 또 새로운 겹들로 세상을 마주하길. 새로운 인연들을 더 진심을 다해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지. 몸과 마음을 정돈하고, 머리를 맑게 깨우고 싶다.

10월을 시작하는 주간에 휴일이 많다. 오랜만에 우리집으로 들어오는 오전과 낮의 햇살을 느낄 수 있어서 너무 좋다. 포근하고 따스하고 예쁜 우리집. 지량과도 오랜만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일을 다니기 이전에는 정말 자주했던 일이었는데, 오늘 오랜만에 열띤 토론을 벌였네. 나의 상태에 대해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것.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대해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것. 그런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이야기들은 어디로까지 뻗어나갈 수 있을까. 

일요일, 9월 29, 2024

La druidesse de la générosité

Donnez de votre temps et apportez votre aide pour un monde meilleur.

내가 이 세상에 가져올 수 있는 도움. 나 자신이 올바르게 설 것. 나 자신을 위로하고, 나 자신에 가장 관대할 것. 왜 지금 관대함을 떠올리는 순간에 그 생각이 날까? 그때의 나를 용서해 주라는 의미일까? 왜 그렇게 나를 미워하고 벌줬을까? 내게 일어나는 모든 불행과 고통은 내가 지은 죄에 대한 벌이라 여겼던 지난날들이 믿어지지 않는다. 지금은 죄와 벌 따위는 생각지 않는다.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알았다.
세상에 보이는 아픔들, 두려움, 고통, 모두 내가 내 내면의 마음이 보여주는 거울이었음을 안다. 나 스스로에게 더 관대해지자 세상이 비극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해결해야 할 일들은 물론 있지만 그것이 이 세상을 정의하지는 않는다.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은 언제나 존재한다. 밝은 면만 보는 것도 방법은 아니다. 그냥 그 밝음과 어둠이 혼재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 된다.
내게 일어나는 나쁜 일이 내 삶을 그대로 고정하지 않는다. 그것이 나를 정의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모든 것이다. 나는 빛이고, 그림자다. 그림자는 그림자다. 무언가를 더 크게 생각할 것도 없지. 너무 모든 빛에 압도될 필요도, 과분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아주 평안했다. 이번 여행은. (2024.9.22)

여행 마지막 날 뽑았던 오라클과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썼던 메모. La druidesse de la générosité . 관대함을 떠올리는 순간에 함께 떠오른 기억. 신기하게도 여행이 끝나자 떠올렸던 그 기억과 연관된 인연과 연락이 닿았고, 나는 다시 오랜만에 올라오는 감정에 휩싸이다가, 이제 그걸 다시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뽑았던 카드가 하려던 말이 그것이었을까. 나는 아직 더 나를 사랑하고 더 용서해야 하는가 보다. 아마 그런 과제가 내게 남아있었던 것 같다. 참 이 우주의 원리가 신기해.

오늘은 꿈에 엘로디 집을 가는 버스를 잘못 탔다. 더 지도를 살펴보면서 맞는 버스를 기다리면 되는 것이었는데 웬일인지 마음이 급하여 정류장으로 오는 버스를 대충 탄 것 같다. 나는 무임승차를 했다. 핸드폰으로 구글맵을 보는데 표시해 둔 엘로디네 집에서 멀어져서 나는 황급히 버스를 내렸다. 내리니 엘로디집에서 한참 멀어졌고, 그 동네는 마르세유에서 내가 절대 가지 않는 동네였다. 북부 쪽. 치안이 좋지 않기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나는 겁이 났다. 그런데 예상외로 동네가 좋아 보였다. 날씨가 좋았고, 밝은 느낌이었다. 왠지 팬시한 가게들이 많았다. 멋진 서점, 귀엽고 맛있는 빵집들. 나는 빵집 한곳에 들러 바게트도 하나 샀다. 긴 바게트였다. 그 빵집엔 한국인들도 오곤 했는지 한국어도 쓰여 있었다. 모든 게 의외였다. 그래도 길에 집이 없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였는데, 내가 실제로 마르세유에서 종종 보았던 누군가와 참 닮은 사람이 있었고, 그는 칼을 들고 있었다. 왕좌의 게임에 나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스스로에게도 위협이 되고, 남들에게도 위협이 되는 칼의 모습이었다. 나는 걸어서 엘로디네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꿈을 쓰다 보니, 날씨가 좋았고 밝은 느낌이 났는데, 그 전에 비가 왔었다는 사실이 생각이 났다. 그 전에 비가 내렸고, 나는 내가 쓰고 있던 우산을 상점에 잠시 내려놓았을 때 누군가가 훔쳐 가는 현장을 발견했다. 나는 소리를 쳤다. 나는 그 사람이 들었던 우산인지, 내가 전에 쓰던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비슷한 우산 하나를 들었고, 그걸 펼쳤는데 우산은 고장이 난 것 같았다. 잘 고정이 되지 않았다. 도로는 침수되었고, 땅이 푹 꺼져서 모두 모래에 몸이 빠져버린 것처럼 젖은 도로에 빠져버렸다. 목만 동동. 인도는 대신 딱딱하게 남아있었다. 길을 걸을 수 있었다. 나는 인도로 걸었다. 그러다가 아마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탄 것 같다.

오늘 이 꿈 이야기를 지량에게 하면서 내 무의식 속의 두려움들에 대해 이야길 나눴다. 내 안에 있는 두려움들. 내가 잘못 내려서 가게 된 막세이의 무서운 동네처럼, 막상 그 두려움에 들어서서 보면 사실은 별것 아니었던 것들일 수도 있어. 아마 그런 이야기를 보여주는 여정이었던 것 같다. 오늘의 꿈은. 그리고 나서 일기를 쓰려는데 여행에서 돌아오기 전에 썼던 메모와 뽑았던 오라클이 여기까지 이어지는 것 같았다. 내 무의식 속에 있는 두려움을 직면하고, 그 두려운 상황의 한가운데에 들어서는 것.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한 관용과도 이어지는 이야기였다. 적어도 내가 발견한 이야기로는 그렇다. 내가 깨달은 관용이란 그런 것이었다.

금요일, 9월 20, 2024


안시를 떠나 다시 파리로 돌아왔다. 오늘은 소영의 생일이고 파리에 도착해 소영을 만났다. 이틀 동안 파리에서 함께다. 하루는 지나가고 있다. 피곤하여라. 파리에 와서 혼자 사운드배스를 들었던 요가원에서 오늘 애들이랑 같이 또 다른 사운드배스 수업을 들었다. 오늘은 북과 입으로 내는 소리를 들으며 몸의 균형을 찾았다. 싱잉볼을 들었던 날보다는 집중이 덜 했지만.. 이런 저런 걱정이 드는 까닭도 있었기에.. 하지만 마지막엔 차분해지며 고개가 양쪽으로 돌아갔다가 중심을 찾았다. 내가 있는 자리를 계속 인지하는 것이 오늘은 조금 힘들었지만, 새로운 연습이기도 했다. 북의 리듬이 내 몸의 리듬을 서서히 안정화하는 과정을 바라보는 것은 또 다른 새로운 경험이었다. 


목요일, 9월 19, 2024



완전한 빛 안에 존재하며, 조금 더 차분해지고 조금 더 겸허해진다. 완전한 빛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제는 꼭 황홀경처럼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일까 생각을 하며 걷다가 dream이라는 글자를 길에서 마주쳤다. 그리고나선 계속 꿈결을 그리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이 모든 것은 꿈처럼 가볍고, 깨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인 거야-하고 생각을 한다. 아무리 내가 수백번 죽어도 나는 한번을 살아 있다. 완전한 빛 안에서. 황홀하지 않아도 부드러우면서 살아있는 꿈. 호수에서 수영을 하다가 뭍으로 나와 땅을 밟았다. 완전한 빛을 내뿜는 태양이 위치를 바꾸는 동안 나는 그 변화하는 모든 빛을 느끼며 수면의 안과 밖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음을, 언제나 우리는 완전한 빛 안에 존재하는 꿈이자 살아있음을, 다시 본다.




월요일, 9월 16, 2024

파리에서 매일같이 일기를 쓰다가 막세이에 와서는 완전히 잊었다. 편안하고 느긋하다. 

엘로디 집에 도착하여 빵과 치즈와 와인을 많이 먹었다. 와인은 많이라고 하기엔 하루에 한잔이지만 말이다. 오랜만에 만난 엘로디와 다미안은 더 얼굴이 좋아보인다. 쁠랜느 근처에 새로 이사 온 둘의 집은 너무 귀엽고 알록달록하다. 두 사람이 좋아하는 것들이 곳곳에 붙어있어 즐겁다. 해골바가지와 세리그라피, 사진들. 재밌어. 

그토록 가고싶었던 까시에도 다녀왔다. 엘로디 차를 타고 코코라는 친구도 함께. 즐거운 여름의 끝자락이다. 물에는 정말 잠깐 들어갔다가 나왔다. 해는 뜨겁지만 물은 너무 차가웠다. 내일은 해변에 들어가봐야지. 

4년만에 온 막세이는 조금 변해있었다. 조금은 더 정돈된 것 같았고, 관광객도 더 많은 것 같았다. 조금 더 평화로워진 느낌이었다. 내가 조금 더 편안해져서 인건지, 막세이가 변한 것인지 모르겠다. 아름다운 이 곳에 얼른 지량과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이다. 보고싶은 내 사랑. 

목요일, 9월 12, 2024

So Ham.

언제 이 세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더 초연해질까. 원리와 방법을 이해해가고는 있지만 아직 과정에 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식당 줄을 서 있었다. 귀여운 막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기특하고 현명하고 용감한 막내.

나도 더 용감하고 잔잔해지고 싶다. 나는 그런 소망을 가지고 있다. 여러가지를 해내고 여러가지를 보면서 하루를 보냈다. 유채님도 만났다. 먼 타국에서 만나는 친구들은 더욱 반갑다. 함께 오늘 저녁까지의 순간을 나누었고 우리는 모두 완전히 지친 채로 집에 돌아왔다. 

내일은 조금 더 따뜻한 남쪽으로 이동한다. 조금 더 편안하고 따뜻하게 지내야지. 

수요일, 9월 11, 2024

 



아름다운 빛깔의 날. 습기와 햇살이 많은 날의 색. 구름과 텅빈 하늘의 색. 들꽃의 색. 공원의 색. 고양이의 색. 

옆집의 고양이와 아침에 빵을 사오는 길에 마주치곤 인사를 나누었다. 에펠탑 근처에서는 검은 고양이를 만나서 한참을 쓰다듬으며 놀았다. 항상 충만함을 주는 고양이. 사랑과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고양이.

오늘은 명소를 찾아다니는 날이었다. 몽마르뜨 언덕은 여러번 가보았지만 오늘은 처음으로 몽마르뜨 뮤제에 갔다. 정원이 참 예쁘거든. 한참 앉아서 오랜만에 누아제뜨도 마시고 키슈도 먹고 사진도 찍으며 정원에서의 시간을 보냈다.

쉴새 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예쁘고 바쁜 것들을 마주했다. 추억이 계속해서 새로운 시간과 만나고 겹쳐진다. 한참을 즐겁다보면 나는 어느샌가 모든 에너지가 추욱 빠져 있다. 그럴 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지. 로저 이노의 노래와 아이들의 말소리 웃음소리 양치하는 소리와 겹쳐지고 나는 거의 잠에 들었다. 

화요일, 9월 10, 2024

애들이 드디어 파리에 왔다. 공항에도 마중을 나갔다. 내가 좋아하는 빵집의 빵오쇼콜라를 맛보여주고 새로운 숙소에 왔다. 새로운 동네. 내가 좋아하는 공원이 바로 코앞에 있다. 오늘 설렁 설렁 동네를 돌아다니고자 했지만 걷고 걷다보면 항상 더 멀어져 있다. 파리에선 항상 그렇다. 조금만 더 가면 무언가 있고, 또 조금만 더 가면 무언가 있으니까. 계속 계속 걷다가 또 재밌는 것들을 발견하고 그러다가 어느새 센에 와있고 그렇다.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보고 돌아다니느라 많이 피곤해졌다. 막내는 바로 곤히 잠들었다. 

월요일, 9월 09, 2024

새벽에 통 잠을 제대로 못잤다. 오늘은 더욱 흐리고 비가 아침부터 내렸다. 새벽부터 내내 깨어있다가 아침이 되고 빵집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부슬비가 점점 많이 내려서 공원에 가려던 계획은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빵을 먹고 쉬었다.

쉬다가 다시 외출을 했다. 빈티지샵에도 갔다가 차도 한 잔 마셨다. 아무래도 근데 너무 릴랙싱이 되는 차를 마신 것 같았다. 안그래도 날씨처럼 추욱 쳐지는 날이었는데 내 에너지는 더 땅으로 낮게 가라앉은 것 같았다. 혹은 어제 너무나 큰 상승을 경험했기 때문인 걸까. 내가 왜 이럴까 생각을 하다가, 다시 돌아와 그냥 내 상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상기해냈다. 힘이 없고 말이 잘 안나오면 뭐 어때. 오늘은 그런 날인거지. 그런 내가 나는 가끔 창피하다. 어제 뽑은 오라클을 생각했다. 나는 나 자신을 버리지 않을만큼 나를 사랑한다. 

어제 뽑은 오라클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걸 사려고 좀 오늘 고생을 해버렸다. 왠지 모르게 예상했던 상황이긴 했다. 헤매임과 피로, 창피함, 두려움 등을 느끼기 위한 또 다른 간단한 수행이었으리라. 

내가 6년 전 처음으로 타로덱을 산 곳이 파리에 있다. 그 가게를 오랜만에 찾아 갔는데, 가게가 정리 중이었다. 오라클은 물론 사지 못했지만 그곳이 사라지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이미 나는 피로했지만 왠지 모를 오기가 생겨, 더 먼 동네로 신비한 책들과 크리스털을 판매하는 상점엘 갔는데 거기서도 내가 원하는 오라클을 찾진 못했다. 그리고 그곳에선 아주 약간 기분이 이상해지는 상황이 하나 있었다. 

가게를 나와서 그 일이 머릿 속을 떠나질 않았다. 오늘은 이상한 날이었다. 오랜만에 반복적으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래도 오라클은 금방 그 근처에 있던 프낙에서 살 수 있었다. 나는 그 오라클을 발견하고는 정말 감사하다고 입밖으로 소리를 내서 인사했다. 마음을 다하여서 말이다. 이미 다리도 너무 아프고 너무 지쳐있었다.
 
밥을 먹으러 이제 또 다시 머나먼 우리 동네쪽으로 돌아오기로 했다. 옆동네에 도착했는데 내 숙소가 있는 동네와는 또 분위기가 다른 것 같았다. 오늘 나의 상태가 모든 사소한 부분들을 극대화하여 받아들이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근방에 꽤 유명한 공원이 있어서 홀로 길을 가는데 너무 길도 휑하고 날씨도 별로여서 그런지 가슴을 졸였다. 길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은 거의 이민자들이고 남성이었다. 나는 괜히 무서워서 공원에 들어가지 못했다. 공원을 들어서는 문 앞에도 가는 길도 왠지 다 두려웠다. 나는 두려움을 한참 마주하다가 숙소가 있는 동네쪽으로 가기로 했다. 무섭지 않은 길로. 그러면서 나는 다시 한번 어제의 오라클을 떠올렸다.

자기 존재감. 다른 사람의 사랑 혹은 미움으로 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나 자체로 존재하며, 사랑이라는 것을 다시 떠올렸다. 내가 마주했던 두려움들을 다시 들여다보니 그것은 그들이 나와 다르다는 생각으로부터 오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들이 슬프고 그런 생각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슬펐다.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과도 같다. 나는 길을 걸어가며 내가 그들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다. 그는 나다. 그들은 나다. 나는 그들이다. 나는 그들이다.

이 세상을 진정 나의 거울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그 상태에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다. 온전한 그 상태에. 모든 두려움을 벗고 자유로이 말하고 자유로이 존재하는 상태에. 




일요일, 9월 08, 2024

기분 좋게 일어나 흐린 아침의 하늘을 맞았다. 깨고 나서도 조금 더 누워있었다. 그러고보니 어딘가를 가기 위해서, 무언가를 하기위해서 벌떡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아주 달콤하네. 

아침으로 맛있는 빵오쇼콜라를 먹고 싶어서 지도를 살펴보다가 기대가 되는 빵집 하나를 발견했다. 인기가 많은 빵집이었다. 사랑스러운 빠띠셰가 사람들을 맞이했다. 나는 빵오쇼콜라 하나와 카페 알롱제를 주문했다. 사랑스러운 빠띠셰는 고맙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c’est moi라고 연신 대답했다. De rien 대신 쓸 수 있는 말인데 그 표현은 내게 익숙한 표현이 아니었다. 

Merci. 
C’est moi.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내가 그걸 하는 일이 당연해’ 혹은 ‘(그런 일을 하는게) 그게 바로 나야’ 하는 뜻이 아닐까 하고 넘겨 짚어보았다. 나도 이제부터 이 표현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 파리에 있는 준호랑 메시지를 주고 받다가 그 이야길 했는데 준호는 그게 ‘내가 할 말이야’ 같은 뜻이라고 했다. 

Pardon. 
C’est moi. 

이렇게도 쓸 수 있다고 했다. 누군가 죄송하다고 해도 ‘내가 죄송해요’하고 말하는 것이다. 고맙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고마워.’ 사소한 말들에서 세상에 대한 사랑을 느낀다. 





카페인과 달콤함으로 인해 들뜬 마음으로 거닐다 작은 공원에 들러 햇살 아래에 앉아 있었다. 




미래언니를 만났다. 막세이에서 함께였던 우리는 오늘 파리에서 서로를 만났다. 언니가 참여하고 있는 재불한인작가들의 전시도 보고 같이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셨다. 들른 카페에선 내가 정말 예전에 아주 잠깐 알았던 사람을 마주쳤다. 미래언니와 아는 사이였는데, 심지어 오늘 내가 본 전시에도 그의 작품이 있었다고 했다. 아주 잊은 누군가였는데, 이름과 얼굴을 보자마자 알았다. 너무 신기하고 반가운 잠시였다. 그는 날 기억하지 못했다. 그것도 그 나름대로 좋았다. 시간이 얼굴에 보였는데 그게 멋졌다. 

그러고보니 오늘 미래언니와 이야기를 하면서도 미래언니의 얼굴을 가까이서 들여다보았다. 언니의 말과 생각들 언니의 시간들이 얼굴에 들어 있었다. 그래서 언니의 말하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계속 언니의 얼굴을 쳐다보게 되었다. 

언니랑 헤어지고는 오늘 오후 일정으로 생각해둔 한 요가원의 사운드 배스 세션을 예약했다.



집에서 잠시 쉬다가 나오니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다. 비를 맞으며 요가원에 도착했고 아주 차분하고 평온한 분위기의 공간에 들어섰다. 나는 바로 안도했다. 세션 시작 전에 오라클카드 하나를 뽑았다. 

나는 나 스스로를 버리거나,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만큼 나 자신을 사랑한다. 나는 다른 이들의 사랑을 느끼고 환영한다.

나는 이미 충만함을 느끼며 자리에 누웠다. 머리에 수많은 말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 모든 것들도 이제는 그저 지나가도록 내버려둘 수 있다. 계속 지나가는 말들과 두근거리는 머리. 각각의 차크라를 정돈해주는 싱잉볼의 진동을 지날 때마다 내 머리속 말들이 조금씩 고요해지고, 떠오르는 문장들보다도 현재의 진동을 오롯이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머리가 고요해지고 가슴이 고요해지고 배가 고요해지고 다리가 고요해졌다. 내 상승하는 에너지가 조금씩 균형을 잡았다. 얼마전 희수작가님이 우리집에 와서 해주셨던 레이키가 생각났다. 물처럼 흐늘거리는 형태로 존재하는 내 오라가 잔잔하고 균형을 잡아가는 그 과정을 다시 오늘 더욱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세션의 마지막즘엔 정말 놀라울 정도로 내 몸의 에너지가 고요하게 정렬하는 과정을 물리적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정말 깨끗하고 맑아진 몸을 느낄 수 있었다. 가볍고 행복하게 밖으로 나왔는데 회색 고양이가 정원에 앉아있었다. 너무 사랑스러워 잠시 인사를 나누었다.

밖으로 나와 république 광장을 지나는데 모든 것들이 사랑과 충만으로 가득한 것 같았다. 비는 그쳐있었다. 모든 것이 씻겨내려간듯 시원하고 가벼웠다. 사실 레퓌블리크 광장을 지나갈 때면 여러가지 감정이 든다. 어쩔 땐 투지가 느껴지는데, 가장 큰 것은 두려움이다. 길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좀 있다. 거기에 대해서라면 여러가지 두려움이 있다. 세션을 끝내고 나오는 길에 여전히 누워있는 누군가를 보며 나는 이전에 느꼈던 불안과 두려움 대신 사랑을 느꼈다. 그 누구도 버리지 않는 사랑. 어디에 있어도 어떤 형태로 있어도 우리는 사랑 그 자체야.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느꼈다. 그들도 내가 지나갈 때 사랑을 느끼길 바랐다. 모두가 안도를 느끼길 바라며 내 충만한 마음을 더욱 부풀렸다. C’est moi. 




토요일, 9월 07, 2024


열심히 무빙워크 위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내 팔을 잡아당겼다. 지퍼락같은 것을 주섬주섬하는데 순간 이상한 것일까봐 겁이 났다. 그런데 그가 내게 쥐어준 것은 antifasciste 스티커. 내 가방에 달린 종차별반대 뱃지를 보고 준 것이었다.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일어난 일이 이렇게나 아름답고 귀엽다니. 그 친구는 스티커를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금요일, 9월 06, 2024

일어나 사과 하나를 지량과 나누어먹었다. 귀여운 곰돌이 밤꿀도 맛을 보았는데 너무 맛있었다. 아주 살짝 쌉싸름하면서 달콤하고 진한 맛이 좋았다. 아까워서 못먹겠는 그런 꿀이다.









나머지 짐들을 싸고, 금방 우리는 집을 나섰다. 가타쯔무리에 들려 우동을 먹었다. 언제나의 나는 냉우동을 먹지만 오늘은 왠지 날이 흐리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서 찬면에 뜨거운 국물 조합으로 가케우동을 먹었다. 오늘따라 어찌나 맛있던지 우리는 게눈 감추듯 순식간에 그릇을 비웠다. 싹싹. 운이 좋게도 우리는 오늘의 마지막 손님이었다.










가타쯔무리 근처에 바로 지량이 좋아하는 로스팅 카페가 있다. 증가로커피공방. 지량은 원두와 따뜻한 커피 한잔을 샀다. 베리류의 산미가 그득한 커피를 마시며 우리는 공항으로 떠났다.

공항으로 가는 길 동안에 우리는 서로를 미리 그리워했다. 공항에는 금방 도착했다. 나는 짐을 부치고 지량과 잠시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서로를 계속 부둥켜 안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지량은 내가 없는 집을 정말 서운하게 여긴다. 그런 모습이 정말 사랑스럽고 귀엽고 고맙다. 우리가 점점 시간이 갈 수록 곁에 있는 서로의 존재에 익숙해지고, 길들여져 가는 것이 좋다. 서로가 곁에 있음이 얼마나 즐거운지를 안다.

지량과 헤어지고 나는 탑승구로 향했고, 금방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노이즈캔슬링이 되는 이어폰을 귀에다가 꼽으니 편안했다. 가끔 나는 예전엔 어떻게 살았나 싶을 정도로 이 기능에 감사하곤 한다. 종종 끝없는 소음에 지칠 때가 있는데 그것들로부터 조금은 떨어져 공간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신기하다. 없던 거리가 생긴다.



















비행기 안에서는 할 것이 별로 없다. 좁은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잠을 자거나 음악을 듣거나 비행기에 있는 게임을 한다. 나는 오색 크리스탈들이 무작위로 펼쳐져 있는 퍼즐판에서 같은 색의 크리스탈 세개를 일렬로 맞추는 고전 게임을 좋아한다. 이 비행기에서 기록된 최고 점수를 내가 갱신했다. 더 큰 점수를 내고 싶었지만 시간에 쫓기다가 끝나고 말았다.











난기류도 조금 만났다. 비행기를 타는 일은, 아니 어쩌면 사는 일은 내가 지금 당장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일과도 같다. 그것은 두려운 일이 아니라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생의 한 부분이다. 언제 어떻게 일어나도 사실 이상할 것은 없는. 나는 난기류를 만날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죽음의 순간을 상상한다. 언젠가는 두려워했던 적도 있었지만 이제 두렵지 않다.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나도 두렵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생에서 마주하는 다른 모든 일들과 다를 것이 없는 하나의 일. 무엇이 좋고 나쁘다고 여기지 않아도 되는. 그냥 낮과 밤 같은 것. 음과 양.










이런 생각을 하면서 비행기 안에서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기를 쓴다. 9530m의 고도에서 쓰는 일기다. 이번에 여행을 하는 동안 매일 그날의 일기를 쓰기로 마음 먹었다. 여행이 끝난 후에 다시 읽어보면 너무 재미있을 것 같다.
곧 하노이에 도착한다. 하노이에서 파리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탄다. 내일부턴 파리에서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화요일, 8월 06, 2024

act
라는 단어를 cat으로 잘 못 봤다.

일요일, 7월 21, 2024

마지막으로 남긴 일기를 읽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어쩌면 잠에 드는 것은 한꺼풀 더 깨어나는 일이다.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일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일이다. 더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는 일은 더 밝은 곳으로 나가는 일이다.

떠오르는 마음들을 달래주기 위해 전보다 덜 복잡한 단계를 거친다. 조금 더 빨리 나는 떠오르는 마음을 마주하고, 그들의 근원에 가 닿고, 해소하는 법에 익숙해졌다. 지난 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나는 다른 방법이 필요치 않아졌다. 훨씬 간단하다.

일요일, 7월 07, 2024

피로하고 평화로운 주말을 보냈다. 끈적끈적 노곤노곤한 몸을 개운하게 씻었다. 로리의 새 앨범을 틀어놓고는. 아주 좋더군. 기분이 좋아서 씻고 나가면 평화로이 일기를 써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오랜만에 일랑일랑의 향도 온몸에 묻히고 책상에 앉아 일기를 쓴다. 약간은 붕 떠있었을 몸과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크게 도움이 되는 듯하다. 책상 위에 올려져있던 백수정을 잠시 바라보았다. 무지개빛이 보였다. 깨어진 수정의 단면으로 보이는 무지개. 컴퓨터 배경화면-꿈을 꾸고 있는 크리슈나 그림-의 빛이 비추었다. 파랑과 노랑, 분홍. 예뻐라. 꿈을 꾸는 듯이 살고 싶어라. 파랑과 노랑 그리고 분홍의 빛으로. 꿈 속에서처럼 우리의 말들은 앞뒤가 맞지 않지만, 모두가 이해하는 것처럼 그렇게 말하고 싶어라. 모든 규칙과 법칙이 무력화되는. 우리에겐 아주 여러겹의 삶이 있어. 깨어있다고 여겨지는 삶이 선명한 만큼, 내 유체가 자유로이 떠다니는 삶도 더 선명하면 좋겠네.

일요일, 6월 30, 2024

a word of wisdom

으음~ ~ ~ 따라다라라라. 흥얼거리는 소리. 비오고 난 다음날의 공기. 시원하고 촉촉한 바람. 모기장도 열고 창문을 활짝 열어 모든 것을 받아들이자.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응원을 하고 응원을 받고. 상쾌한 일요일 아침을 보냈네! 감기에 들어 컨디션이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상쾌하다. 너른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야지. 너른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사랑해야지.

오늘은 6월의 마지막 날이네. 7월이다. 7월 8일은 마야력에서 새해다. 또 다른 새해가 다가온다. 또 다른 연말을 맞이하는 지금. 지나온 꿈들을 돌아보고 정리해야지. 올해 상반기를 돌아보는 일이자, 또 다른 한 해를 돌아보는 일이 되겠구나. 계속해서 오늘은 정말 그런 날이다. 이 바람이 너무 시원하고 맑게 느껴진다. 내 살결을 감싸는 이 촉감이 참 좋네.

금요일, 6월 28, 2024

팽팽한 줄다리기 같은 것. 오래된 습관은 계속 같은 방향에서 줄을 당기고 있고, 이제 그곳으로만 따라가지 않으려고 반대편에서 그를 잡아당긴다. 어느날에는 힘을 주지 않아도, 끌려가지 않는다.  

화요일, 6월 25, 2024

토요일, 6월 22, 2024

물 속의 생에선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지? 물 속의 생에선 해가 지고, 해가 뜨는 일이 없잖아. 내가 만약에 물 속에 살고 있었다면 해는 수면 위에서만 뜨고 지는 것이었겠네. 하지만 땅에 있다고 해서 해가 땅으로 지고, 땅에서 뜨는 것도 아니다. 사실 해는 이 땅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있지. 우리 사이의 공간은 무한히 멀다. 하지만 그 무한함으로부터 조금만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는 우리는 하나의 몸이다. 무한함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 수록, 우리 밀도는 더 높은 단단한 하나의 점이다. 우리 사이에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하나의 몸덩이다. 그치만 하나의 몸덩이 안에 무한한 공간이 있다. 무한한 거리가 있다. 무한히 팽창하는 사랑들이. 혹은 하나의 묵직한 사랑. 뭉쳐진 사랑.

yestermorrow

우리의 삶은 매일같이 더 자연스럽다. 모든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면서도 당연한 것이다. 우리가 서로 만나게 된 것은 너무나도 기적같은 일이지만 또한 그래야만 했던 일이다. 우리의 삶이 서로 만났을 때 우리는 우리의 삶을 서로에게 적응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다투고, 포기하고, 배웠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만나기 전에 우리는 이미 서로의 삶을 살고 있었다. 우리는 이미 우리였다. 우리는 이미 배웠으며, 이미 다투었고, 이미 모두 배웠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당신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공간에 가득한 소리를 느끼다가 나는 문득 이 공간에 가득찬 당연함을 인지한다. 그리고 그것을 생각한다. 이 자연스러움을. 내가 들이마시는 숨은 당신이 내뱉은 숨이며, 당신이 들이마시는 숨은 내가 내뱉은 숨이다. 우리는 서로의 숨 속에서 자신을 이룬다. 우리는 서로를 통해 자신을 이룬다. 이 공간에 당신이 만드는 소리가 가득하다. 몸을 움직일 때 나는 소리, 웃을 때 나는 소리와 코에서 나는 숨소리, 당신의 컴퓨터에서 나는 소리도. 그 모든 소리 안에 내가 있다. 나는 언제나 그 소리 안에 존재하고 있다. 나는 그 소리다. 

공간을 느끼자, 당신을 느낀다. 오늘은 이미 자연스러워져 있었고, 내일은 이것이 더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오늘은 내일이에요. 어제 누군가에게 '오늘은 내일이예요'하고 말했다. 그는 나에게 당연하게 '오늘은 내일인가요?'하고 물었다. 그것은 그냥 흘러가는 날짜를 말하는 것과 같았다. 오늘은 23일이에요. 오늘은 23일인가요? 어제는 내일이에요. 

this is tomorrow.

일요일, 6월 09, 2024

어제는 아침부터 비가 거세게 내렸다. 비를 뚫고 판화 작업실에 가서 작업을 하고,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도 마쳤다. 아직 끝마치지 못한 어제의 판화 작업이 약간 아쉬웠지만 그렇기에 다음주를 또 다시 기대하며... 작업을 끝내고 오지와 만나 밥을 먹었다. 건강한 밥을 먹구, 인사동에 도착해 수많은 인파 속에서 약간은 피로를 느꼈지만, 이내 곧 친구들을 만나 즐거워졌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우리는 밖을 걸으며 그 날씨를 만끽하고 멋진 상점을 우연히 발견해 들러 각자가 발견한 귀중한 것들을 샀다. 윤슬이는 사진집을 사고, 혜빈이는 멋진 원피스를 사고, 나는 귀여운 헤어핀과 팔찌를 샀다. 너무 각자의 것들이 각자에게 잘 어울리고 사랑스러웠네. 
우연히 만난 친구들과 반갑게 길에서 인사를 하고, 어제의 가장 커다란 이벤트 강백수 아티스트의 공연을 보러 이들스에 갔다. 우리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과 감정에 휩싸여 행복했다. 음식과 술을 마시며 듣는 라이브 공연이라니. 강백수님의 음악은 너무나도 일상적이고도 소소한 표현들로 이루어져있어 모두에게 웃음과 감동을 안겨주었다. 나는 눈물도 찔끔 흘렸다. 그의 음악을 들으니 문주와 그의 형제가 살아왔을 시간들이 너무나도 느껴져서 나는 온전히 그에 공명했다. 그리고 문주를 따뜻하게 너무나 꼬옥 안아주고 싶었다. 오지와 함께 문주를 힘껏 안아주었는데 문주는 그 사랑을 느꼈는지 아침에 우리에게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감동스러운 메시지를 남겨주었다. 정말 귀여워. 
아침부터 기분이 너무 좋아. 날씨도 좋고. 어제 새로 산 수정들을 꺼내어 정화하기로 했다. 정화하는 김에 오랜만에 모든 수정들도 꺼내어 창문 앞에서 은은한 햇살과 바람을 함께 쐬어주며 팔로산토를 태워 정화해주었다. 수정을 정화하니 나의 몸과 에너지가 개운해지는 기분이 들어 이 넘치는 사랑과 감정을 어찌할 수가 없어 일기를 쓴다. 오늘 내게 다가온 수정들을 앞에 두고 일기를 쓰고 있다. 
우리의 어제와 오늘에 사랑과 순수함이 넘쳐흐른다. 어찌 그렇게도 모두가 사랑스럽고 아름다울까. 모든 것은 그것을 느낄 수 있는 때에 만끽해야지. 이 감정이 사라지지 않기를 계속해서 느낄 수 있기만을 바라지만, 그런 바람과 소망 혹은 집착이 될 수도 있는 그런 마음보다는 겸손하게 현재 내 앞에 나타난 것들에 감사하고 그것들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느껴야지. 

수요일, 5월 29, 2024

요즘은 거의 매일같이 큰 에너지를 들이고, 마주하며 지낸다. 오늘 일을 끝내고 나서 너무 힘이 없었는데, 저녁을 먹고나니 힘이 조금 났다. 별 것 없는 탄수화물 폭탄ㅎ 
힘을 많이 써선지 기분도 약간은 가라앉고, 기력이 쇠한 것 같은 오후 시간을 쭉 보냈는데, 별안간 이런 저런 갈래로 갈라지는 길을 수없이 가다가 방금 전에 막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죽기 전에 꼭 읽어야겠다는 다짐이랄까 목표를 마음에 새겼다. 그걸 적으러 왔다. 그냥 그렇게 거대한 체험 자체를 한다는 것 자체가 갑자기 재밌게 느껴졌다. 살아 있는 동안의 무언가를 해내고 싶다는 마음을 갖는 일이 내겐 드문데, 좋네. 그렇게 사람들은 사는 걸까 ㅎ ㅎ ㅎ 
물론, 살아 있다는 것, 살아야 한다는 것, 죽고 싶다는 것, 죽을 것 같은 마음... 이러한 균형을 잡지 못한 의식, 자아에 치우친 의식들이 우리를 늘 사로잡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그럴 수도 있으니까. 때때로 힘들 수도 있으니까...! 그럴 때에 반짝이고 떠오르는 무언가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어야 해!"

토요일, 5월 25, 2024

오랜만에 기가 쪽! 빠진 날. 이번주가 유난히 피곤하고 고되긴 했지만, 오늘은 그 고됨의 끝에 온 것 마냥 쭈욱 힘이 빠져버렸다. 집에 도착하기를 간절히 바랐네 오랜만에. 주말의 홍대는 정말 모든 것들로 가득하다. 소리도 너무 많고, 너무나 많은 에너지들과 접촉하느라 기가 잔뜩 쓰였네. 

덕분에 집에 와서 일기를 쓰게 되었네. 우리집의 고요함이 너무나 그리웠다. 감사해라. 고요함을 느끼기 위해 지나온 소란스러움. 요즘 내 머리 속이 포화상태가 되어가는 것 같다. 다시 또 비워지기 위해서... 나에게 또 모든 것들이 들어오고 지나가고 통과하는구나. 힘들지만 어쩔 수 없지. 받아들여야지. 그리고 또 비워내야지. 게워내야지. 

금요일, 5월 10, 2024

return to joy

빛과 바람이 완벽한 시간. 지량의 피아노 소리도 너무 아름다워. 모든 아름다운 순간들은 그 즉시 만끽해야 해. 모든 것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이동하고 있는 중이니까. 아름답다고 한마디 던졌던 순간과 지금의 빛과 소리는 또 달라져 있다. 새들이 날아간다. 세상은 조금 더 어두워졌다. 해는 막 산 뒤로 넘어갔다. 아직 산너머 동네는 아름다운 빛이 가득하겠지. 오늘 낮까지만 해도 너무 졸리고 피곤했는데, 집을 청소하고 쓰레기도 버리고, 할 일들을 하고 나서 그런 것일까, 마음도 아주 편안하고 기분이 좋다. 마음도 정돈이 되었는가보다. 어제 뽑은 카드가 계속 생각난다. return to joy. 기쁨으로 계속 돌아가야지. 

금요일, 4월 26, 2024

the rhythm changes

오늘은 친구의 프리 웨딩 촬영을 해주었다. 아침부터 모여서 뚝딱거리는 몸을 천천히 풀고, 점점 우리는 즐겁고 편안해졌다. 사랑과 웃음이 넘쳐났네. 누군가의 모습을 찍어주면서 오랜만에 느낀 행복과 뿌듯함. 이건 정말 소중하고 감사한 일이구나. 누군가의 소중한 시간을 계속해서 꺼내볼 수 있는 무언가로 기록을 해준다는 것이! 즐겁고 감사했다. 날씨도 너무 아름다웠고...! 정신없고 조금 피곤하기도 했지만 그 모든 것이 즐거웠다네. 시간은 유형의 것이구나.
집에 돌아오는 길에 정말 오랜만에 카마시 워싱턴의 the rhythm changes가 나왔는데, 재작년 4월이 떠오르면서 상쾌하고 기뻤다. 사랑하는 지량을 만났던 시간이 떠오르기도 했고, 오늘 친구와 친구의 연인을 보면서 큰 사랑과 편안함을 느끼고, 믿음을 느끼고, 두 얼굴에 서로의 얼굴을 담고 있는 것을, 서로의 시간을 담고 있는 것을 보면서 즐거웠네. 촬영을 하면서 하나둘씩 모인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너무 즐거웠어. 귀여워. 모두 사랑해. 우리 혜빈이와 용우 너무 축복해. 지은이, 문주, 윤슬, 가현이, 세희. 모두 사랑해.

수요일, 4월 24, 2024

갑자기 일기를 쓰는 일이 신성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일기를 쓰는 일이 아니라, 쓴 일기를 다시 읽는 일. 일기를 쓰고 있는 다른 날의 나를 그대로 만날 수 있는 시간이다. 시간은 직선이라는 착각 속에서 희미해지는 감각이 다시 보드랍고 유연한 공간에서 생생해진다.

밤 열한 시. 이즈음에 꼭 새벽녘에 꾸었던 꿈이 잘 떠오른다. 오늘은 버스에 앉아서 버스의 승객들을 찍는 사진작가를 만난 꿈을 꾸었다. 꽤 나이가 있고, 작품 활동을 많이 해온 유명한 작가였어서, 그 작업이 이제는 약간 허울만 남은 작업이 아닐까 하고 혼자 짐작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내가 탄 버스에 그 작가가 있었다. 나는 그 사람보다 앞에 앉아있었다. 아마 나도 사진에 찍힐 수 있는 자리였다. 나는 가운데 자리에 앉아있었다. 살짝 그가 어떻게 작업을 하는지, 어떻게 그 동네를 사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는 동네 친구인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다가 울었다. 그 눈물을 보자, 언제나 그 마을버스를 타고 마을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 모습을 찍는 그 작업이 순수하게 느껴졌다. 나는 내가 지레짐작하던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아 졸려. 잠이 쏟아지려고 할 때, 지난 꿈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이 시간이 아닌 저 시간에 닿고 있어서 겹쳐지는 현상인 걸까. 재밌다.

일요일, 4월 21, 2024

나는 이제 죽는다. 온몸에 힘이 빠진다. 숨이 빠져나가고, 모든 긴장이 덜어지고. 아아. 사실 난 언제나 죽는 것이 두렵지 않았어. 죽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던 나날도 있었고, 혹은 죽어도 이제 여한이 없을 만큼 행복한 순간에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지. 그런데 이제 내가 정말로 죽는구나. 마음이 가벼워지고, 몸이 점점 가벼워진다. 나는 이렇게 가벼워지고 싶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었나 봐. 이런 마음을 읽을 내 가족들에게 미안하지만,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크기도 했던 것 같아. 그렇게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숨이 모두 빠져나가자 나는 이제 죽었다.

나의 장례식이 열린다. 우리 엄마가 보인다. 엄마는 온몸으로 울고 있다. 너무나 가엽고 불쌍하고 귀엽게 울고 있다. 내가 많이 보아왔던 모습이다. 가여운 우리 엄마는 나에게 연신 미안하다고 내가 불쌍하다고 말을 한다. 내가 아픈 것을 잘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한다. 나는 엄마의 귀에다가 대고 ‘엄마 이제 다 괜찮아, 다 괜찮아. 정말 괜찮아.’라고 말한다. 아빠가 다가온다. 아빠는 뜨거운 얼굴로 눈물을 흘리며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모든 말들도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미안하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눈물을 흘린다. 나는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 아빠. 나는 아빠의 귀에다가 대고 말한다. “아빠, 나는 이제 괜찮아. 고마워 말해주어서.” 나는 마음이 편안하다. 그리고 내 동생들이 들어온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내 동생 오지은. 지은이도 눈물을 흘리며 정말 너무나도 슬픈 표정으로 내 앞에 선다. 나는 같이 눈물이 나온다. 너무너무 눈물이 난다. 내 사랑하는 동생 지은이. 너무너무 사랑하는 내 동생 지은이. 지은이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몇 번이고 다시 살 수 있었고, 너무나 재미있고, 언제나 위안이 되었다. 지은아 고마워. 나는 지은이에게 말한다. 너무너무 사랑한다고, 너무너무 고마웠다고, 정말 정말 보고 싶다고. 그리고 그 옆에는 쪼르르 우리 귀여운 고양이들이 함께 있다. 미셸과 까미유. 나는 고양이들을 보며 가장 눈물이 많이 흐른다. 가여운 우리 아기들, 내가 우리 아기들보다 먼저 죽었네. 미안해. 더 많이 놀아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너무너무 사랑해. 너희들 덕분에 나는 사랑을 배웠어. 정말 정말 그 귀엽고 보드라운 털을 수천 번 더 쓰다듬고 싶고, 안아주고 싶고, 사랑스러운 향기를 맡고 싶다. 내가 다시 살 수만 있다면 미셸 몸에 내 얼굴을 파묻고 미셸과 함께 서로를 느끼고, 사랑을 느끼던, 내 몸과 마음이 온전해짐을 느끼던 그 어느날의 풍경으로 다시 가고 싶다. 하지만 이제 그럴 수가 없다는 사실이 가장 슬프구나.
그리고 이제 나의 반려자, 지량이 보인다. 지량은 너무나 슬퍼하고 있어. 나는 가슴이 너무 아프다. 지량에게 너무 미안하다. 하지만 지량도 내게 미안해한다. 지량은 내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운다. 우리가 함께 있는 시간이 이렇게 짧을 줄 몰랐다. 나는 지량을 안아주고 지량에게 괜찮다고 말을 한다. 지량이 너무 심하게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너무너무 사랑해.

가족들과 친구들을 모두 만났다. 모두 나에게 생전에 내가 듣기 좋아했던 말을 해주었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쏟아내기도 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듣는 것이 좋았다. 그 모든 것을 듣자 나는 편안해졌다.

관 속에 뉘인 나는 이제 화장터로 왔다. 이제 곧 불이 켜질 것이고, 나의 육체는 정말로 사라진다. 우리 엄마가 너무 심하게 울고 있다. 가여운 우리 엄마. 가족들이 우리 엄마를 안아주고 있다. 고양이들은 영문을 모른채 함께 있다. 하지만 함께 있어서 나는 더 행복하다. 이제 불이 켜진다. 내 몸이 서서히 사라진다. 나의 머리카락이 다 사라지고, 살결이 모두 사라지고. 이제 나는 뼈만 남았다. 그리고 이제 이 뼈들도 가루가 되었다. 나는 이제 가루가 되어 예쁜 그릇에 담긴다.

가루가 된 나를 가족들이 물이 있고, 풀도 있는 아름다운 풍경에 데리고 가서 뿌려준다. 나는 공기 중에 흩어진다. 나는 이제 정말 모든 먼지들과 바람과 하나가 되어 세상을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나는 너무나 자유롭다. 편안하다. 나는 더 멀리 멀리 날아 태양에 가 닿는다. 너무나 밝고 뜨거운 태양에 가 닿는다. 나는 태양의 한 조각이었다. 그게 본디 나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모두 다 본디 이 태양의 이 따스함의 한 조각이었음을 안다. 우리 엄마, 아빠, 지은이, 지량, 미셸, 까미유…. 모두가 결국에는 태양의 조각들로 돌아와 나와 하나가 됨을, 나와 원래 하나였음을 우리는 하나임을 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자 나는 이제 정말로 이 세상에 조금이나마 남겨둘 뻔한 아쉬움과 미안함이 모두 덜어진다. 아쉬울 것이 없었고, 슬퍼할 일도 아니었구나. 모든 존재가 다 나였고, 다 우리였다. 내가 너무 사랑하던 존재들도, 내가 미워하던 존재와 내가 용서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존재까지도.

나는 완전하게 죽고, 태양의 한 조각이 되자, 내가 이 모든 것을 깨닫게 되자 태양은 나에게 또다시 돌아갈 기회를 준다. 나는 다시 내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나는 그러자 본디 태양의 한 조각인 내가, 이 뜨겁고도 밝은 존재인 내가 이 세상에서 다시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알았다. 나는 이 밝음과 뜨거움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전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태어난다. 다시 내 몸이 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고, 내 몸에 숨이 가득해진다. 나는 다시 태어났다. 나는 태양의 한 조각임을 기억한 채로 다시 돌아왔다. 나는 더 밝고 더 아름답고 사랑이 가득한 존재임을 안다. 나는 다시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