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만나고싶다면 꿈틀거리는 모든 것들을 들여다보면 된다. 꿈틀거리는 그 순간에, 그 움직임 사이에 언제나 존재하고 있다.
나는 너무 졸리거나 피곤하거나 힘이 없을 때 더욱 발과 다리를 움직이곤 한다. 내 몸의 많은 부분들이 에너지를 분배하고, 균형을 찾기 위해 꿈틀거린다.
모자란 많은 것들을 대신하여 쓸 재료들을 찾았다. 유성잉크 대신에 수성잉크를, 프레스기 대신 바렌을 사용해보았다. 식초와 소금, 과탄산소다로 아연판을 부식해보았다. 모든 것들이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였다. 규칙이 없는 것 같았다. 물론 나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적절한 도구와 재료들을 구할 수도, 잘 갖추어진 작업실에 가서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왠일인지 나 혼자 집에서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혼자 항상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여러가지 제약과 걸림돌들이 보인다. 그것들을 단숨에 뛰어넘는 것보다는 또 다른 이상한 제약과 걸림돌을 만들어본 것 같다. 내 시간을 더 유연하고 둥그렇게 쓰기 위해서 그런 이상한 방법들을 쓰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실제로 대안적인 재료를 발견하고 싶은 마음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무언가를 해내려고 하니 더 많은 시간과 힘이 들어간다. 더 많이 실패한다. 온전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어쩌면 그냥 이 과정들을 경험하고 싶었던 것일까 ?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는 곳에서는 내가 준비가 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 시차를 맞추기 위해서 나는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무튼간에 어설프게 만들어진 것들은 이상하게도 더 심금을 울린다. 약한 빛이 있는 곳에서 보면 더 좋다. 흐릿한 눈으로 보면 더 좋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이 속담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꼭 맞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내 방에서 나는 이 표현이 종종 생각났다. 때로 부러 안경을 벗는다.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끔 안경을 쓰지 않는다. 흐릿한 눈으로는 오히려 무언가를 더 열심히 보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나도 모르게 다른 감각들을 더욱 섬세하게 사용하게 된다. 눈을 감고 피아노 연주를 하는 것처럼 자전거를 타는 내 몸이 더 부드러워지는 것 같기도 하다. '내게 모자라는 무언가'에 놓여져 있던 초점을 옮긴다. 내가 더 자유로울 수 있는 무언가로, 내가 더 섬세할 수 있는 무언가로. 무언가가 모자란 것이 아니라, 나는 다른 방식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그럼 기존의 방식으로 해왔던 것들이 보여주었던 결과와 다른 결과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들이 내게 가져다주는 예기치 못한 기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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