रि ॐ
목요일, 8월 13, 2026
화요일, 8월 04, 2026
일요일, 8월 02, 2026
언제나처럼 모든 상징성이 동시에 나타난다. 서점에 가기 전에 새로 입주한 일본인 중년 작가분을 마주쳤다. 대표님이 인사시켜 주셨는데, 그 일본 분은 영어를 못한다고 하셨다. 그것이 물론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그게 중요치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에게는 이상한 식민성을 주입한다. 뭔가 모터가 달린 것처럼 빠르게 자기 생각을 쏟아내는 사람들 앞에서 나도 모르게 나도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을 느낀다. 그것이 맞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 행동과 내 말이 내 작품처럼 어떤 일관성과 맥락을 지녀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내가 먹는 것, 내가 입는 것 등과 같이 모든 것들을 갑자기 검열하려는 충동을 발견하고 어이가 없다. 안에서부터 너무 많은 것들이 올라와 정리가 되지 않는다. 어쩌겠는가 그냥 올라오도록 두어야지. 올라오는 것들을 바라봐야지.
쓰다 보니 조금은 정리가 된다. 작품에 나타나는 일관성과 맥락을 나 자신의 존재 방식에도 똑같이 요구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그게 당연한 건가 싶다가도, 그래야만 하는가 싶어진다. 더듬거림, 침묵, 느림, 이 모든 것들도 그 자체로 언어인데 말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건 내 작업 방식으로 이어진다. 맞아. 그게 내가 작업을 하는 이유였지. 필름과 판화 프로세스에서 일어나는 실수와 통제할 수 없음, 어쩌면 실패라고 할 수 있는 결과물들, 나는 그것들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내가 내 삶 속에서 그런 것들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용인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껴서 그런 작업을 마치 수행처럼 하고 있기도 했다. 억지스러운 과정은 아니었고, 정말 그 일들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그게 어떤 형태가 되었든 간에 말이다. 과정에서 나타나는 흠집과 얼룩들은 제거되거나 수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 속에 속한 장면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떤 것을 아카이브 할 것인가-에 대한 오늘 토론의 화두에도 어울리는 이야기다. 어쩌다 보니 오늘 토론에서 아카이빙에 대해서 깊게 이야기하게 되었던 것 같다. 모든 것이 아카이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정당성은 누가 정할 것이며, 무엇이 적절하고, 올바른 것인지 누가 정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시간을 경험한 모두가 아카이브 될 수 있다. 사진과 판화 작업을 통해서 수행해 오고 있던 것을 이제 내 개인적인 삶으로 더 확장하고 싶다. 많이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멀었다. 체화된 식민성이란 이런 것이구나 정말로.
토요일, 8월 01, 2026
내 방이 하나 더 생겼다. 가장 뜨거운 계절에 가장 뜨거운 곳에 왔다. 광주는 언제 와도 따뜻하다. 지량과 오랜만에 머나먼 길을 차로 달렸고, 낯선 곳에서 잠을 자고, 짐을 풀고, 새로운 사람들을 잔뜩 만났다. 같은 시간을 사는 땅이지만서도, 시차와 멀미를 느끼며 한껏 어지러웠다. 어제는 마침 호랑가시에서 아트페어가 열린 날이라 아주 많은 사람을 한자리에서 만났다. 조용히 스르륵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 드는 한편, 반가운 마음이 들어 아는 이들에게, 알고 싶은 이들에게 말을 붙였다. 잔뜩 어지럽고 신이 나고 설렜다. 집으로(창작소지만 내가 결국 돌아갈 곳은 언제나 기꺼이 집이라 부르게 된다.) 돌아올 때는 정말로 균형감각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오늘은 홀로 밥을 먹고, 홀로 걸어 다녔다. 입이 꾸욱 닫히는 날. 어제 매주 금요일마다 묵언 수행을 하는 인도인 작가를 만났다. 나도 꼭 해보고 싶었던 수행이라고 하니, 그는 묵언 수행이 스스로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수행이자 명상이라고 했다. 나도 어쩌면 묵언수행을 하는 나날들이 종종 생길 것 같다. 오늘같이 그냥 나 홀로 보내는 날은 딱히 노력할 것도 없이 묵언을 유지하지만, 그것을 수행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홀로 있기 때문에 말을 안 하는 것이라면, 묵언 수행의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 갖가지 소리와 생각, 관계가 가득한 곳에서 해야 그게 수행이 되겠구나. 반응하고 싶은 마음, 반박하고 싶은 마음들을 삼키는 것은 어쩌면 그것들을 꾸욱 눌러담거나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올라오는 소리와 감정을 내 안의 공간에서 고스란히 듣고 느낄 수 있는 일일 것 같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떠들다 보면, 신이 나서 말이 마구 튀어나올 때가 있는데, 오늘같이 홀로 있는 날이 되면 그 말들이 가끔 지우고 싶거나, 정정하고 싶어진다. 거 참. 오랜만에 느끼는 마음이었다. 그런 반추가 요즘은 잘 없었는데 말이다. 역시, 연을 맺는다는 것은 업이 계속 쌓이는 것일까. 사는 동안에는 그것이 소중하고 귀중한 일이란 걸 알면서도 한편으로 버겁다. 정화해야 할 것들이 생긴다.
오늘 들렀던 로이스 커피의 사장님이 생각난다. 엄밀히 말하자면 장사를 하시는 것은 아니라서 사장님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사람들을 마주하고, 대응하는 것이 많이 힘들어서 장사를 못하겠다고 하셨다. 내게도 본인을 피곤하게 하지 않으면 커피를 마시고 가도 된다고 허락해주셨다. 감사하게도 맛있는 커피를 두 잔이나 주셨다. 오늘은 잠을 일찍 자고 싶어서 한 잔만 마시고 싶었는데 말이다. 좋아하는 색이 뭐냐고 물으셔서 파랑이라고 하니, 파란색 잔에 라떼를 또 만들어주셔서 마실 수밖에 없었다. 아주 맛있었다. 이렇게 또 연은, 업은 내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그분은 사람들이 싫다고, 장사를 해야 하지만 못하겠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반려인과 함께 식사하고, 떠드는 시간이 가장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하셨다. 이래서 어찌하느냐고, 불편해서 어쩌느냐고 푸념하듯 말씀하셨지만, 나는 그것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게 제일 좋은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나도 똑같다. 오지와 살 때는 오지와 떠들고 오지와 밥을 먹고 웃고 그렇게 우리 둘 그리고 고양이들과 사는 집에서 가장 행복했다. 그리고 이제는 지량과 함께 있는 시간이, 우리 집이 가장 편안하다. 너무나 편안하고 고요하고 즐거운 우리집. 세상에서 제일 포근한 우리집 침대와 이불. 내가 길에서, 상점에서, 때론 바다에서 모은 수정의 빛깔이 가득한 내 방. 그리고 그 빛깔 속에 배어있는 향기로움. 그 안락함이 주는 행복이 커서 지량과 나는 집을 떠나 아무리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가더라도 집이 그립다. 로이스 커피의 사장님이 느끼는 것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겠지.
그 모든 안락함과 익숙함, 평온함으로부터 멀어진다. 이번에는 여행이 아니라, 조금 더 길게 그 안락함으로부터 떨어져 지내게 된다. 오늘 하루를 홀로 보내고 내가 이곳에서 집이라고 부를 이 낯선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조금 슬펐다. 안락함에서 벗어나니 새로운 풍경과 관계 속에서 내게 익숙하지 않은 방식의 말들이 하나씩 튀어나오고, 그것들이 날 불편하게 한다. 안락함을 그리워하는 것은 슬픈 마음인 것 같다. 슬픔도 물론 때로 필요하다. 그래서 기대한 것도 있지만 역시나 조금은 서글프다. 마르세유에서 지냈던 때가 떠오른다. 그때랑 정말로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마르세유에 막 도착해서 집을 구하고, 나만의 새로운 방을 다시 내 향기와 색깔로 채웠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도 나는 홀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날이 많아서 어떤 날엔 누굴 오랜만에 만나면 입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기도 했다. 그치만 그 슬픔과 그리움, 불편함 속에서 나는 그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자유를 찾았다. 어쩌면 낯선 곳에 다시 떨어지게 되는 것은 새로운 업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업을 풀어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익숙해지는 것이, 편안해지는 것이 어쩌면 업을 만드는 것일까. 업이 축복인 걸까. 그것을 정화하고 풀어내면 더 큰 자유를, 더 큰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니까. 그치? 내게 그런 시간이 다시 찾아온 것 같아서 기쁘다. 낯선 것들이 다시 익숙해지고, 내 것이라고 여겨지게 될 때쯤 나는 이곳을 떠나겠지. 8월 1일의 일기가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모든 시간을 벌써 살아버리는 것처럼. 하루는 영원이니까 괜찮아.
고요가 주는 것이 어쩌면 영원인가. 아침부터 낮 동안에는 매미 소리가 주변을 가득 채운다. 꽉 차있는 여름의 소리와 열기. 밤이 되니까 아주 고요하다. 풀벌레 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한낮의 높은 소리와는 전혀 다르다. 모든 것이 추욱 가라앉아있다. 소리도 아래에서 난다. 광주에서는 많이 쓰고 싶다.
월요일, 7월 13, 2026
화요일, 7월 07, 2026
금요일, 7월 03, 2026
아무튼, 이래저래 몸에 무리가 갔는지 이번 주초에는 배탈이 나서 시름시름 앓다가 한의원에 가서 침도 맞고 왔다. 이제 괜찮아졌다. 주말엔 집에서라도 요가를 해야지.
외부 이벤트가 많다 보니, 일기를 쓸 여유가 없었다. 에너지의 흐름이 내면에서부터 밖으로 뻗어 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그럴수록 무언가를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문장 하나 완성하기. 그냥 쏟아내는 어떤 정보나 이미지가 아니라, 말을 하고, 문장을 만들어내기. 그런 것이 어려워지곤 한다. 컴퓨터로 이런저런 이미지들 속에서 헤매다 보면 문장이 사라지는 것 같다. 마침표를 하나 찍는 데까지 너무 멀게 느껴진다. 8월 광주에 가서는 글을 많이 쓰고 싶다. 책도 읽고, 옛날 영화들도 보고, 프랑스에서 홀로 지내던 때처럼 지낼거야.
목요일, 6월 18, 2026
월요일, 6월 15, 2026
목요일, 5월 21, 2026
오랜만에 비행기 창가 자리에 앉아 이륙하는 순간과 점점 멀어지는 땅 위의 불빛들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와라. 까만 세상에 밝게 켜진 불빛들이 마치 은하수 같았다. 하늘에도 땅에도 모두 은하수가 있구나. 그리고 붉은 손톱달이 뜨는 순간을 보았다. 내 눈을 의심했지만 맞았다! 정말 잊을 수 없는 풍경이 될 것 같아.
불빛이 복잡하게 켜진 지상의 밤과, 아주 얇은 하얀 구름층과 붉은 얇은 손톱달. 오랜만에 비행기 창밖의 모습을 촬영했다. 자리는 지량과 떨어졌다. 지량은 나와 반대편 창가에 앉게 되었다. 내가 본 풍경은 못 봤겠지만, 반대편의 은하수도 아름다웠길.
이 여행이 내게 어떤 의미가 될까, 난 또 피곤하기만 하겠지-했지만 떠나는 날 느껴지는 것은 서울을 떠나오기 전과는 정말 사뭇 다른 충만함이다. 여행 막바지에 다다라서는 컨디션 난조로 힘들고, 쉬어야 하는 날도 많았지만 풍족해진 마음이다. 또 내가 너무 큰 불안과 걱정들로 이 여행이 끝나고 우울증이 찾아오면 어쩌지-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역시 언제나 같은 일이 반복되지는 않는다. 어떤 패턴들은 생에서 반복되지만, 그 안에서 계속 변주가 일어난다. 같은 패턴 안에서 새로운 것들이 계속 생성된다. 그걸 배우고 있다.
그 언젠가의 여정에서는 불안과 걱정을 그저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면, 이제는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흘려보내는 법을 배운다. 또다시 분명 걱정과 불안은 올라오겠지만, 그것이 실제로 우리를 다치게 하는 일은 없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내 걱정거리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내 현실과 내 우주를 믿는다. 내 사랑을 믿는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 나를 사로잡고, 잡아먹을 것 같았던 그런 어둠과 불안을 붙잡지 않고 흘려보낸다. 뜨거운 햇살 아래서 모두 태웠고, 부드럽고 미지근하고 포근한 안다만 해에 모두 씻겨냈다. 파도에 넘실넘실 따라 모두 지나갔다. 퍼붓는 비에 모두 씻겨 내렸다.
지금 듣고 있는 이 노래가 이 여행을 마무리하는 제목이자 음악이 된다. long life. 비행기 타기 전, 내가 급히 애플뮤직에 내려받은 앨범이 wishful thinking이라니 !
나는 용감해지길 선택했다. 그 생각만으로 나는 용감해졌다 ! 그리고 그 용감함은 내 삶으로, 내 행동으로 드러날 거야. 지량도 그 안에서 더 든든함을 느꼈으면, 내 사랑이 내 안에서 안식을 얻었으면 !
나의 위시풀 띵킹 - !
홍섬에 가기 전날, 나는 날씨가 걱정되어 열심히 자연의 정령에게, 대지의 신에게 기도했다. 우리의 여행이 안전할 수 있게, 비가 오지 말라고까진 못하겠으니, 바다가 안전하기만을 기도했다. 그리고 홍섬 가는 날. 섬 투어를 하는 내내 비는 억수로 내렸는데, 바다는 정말 온화해서 배를 타는 것이 하나도 무섭지가 않았다. 우주는 정말 내 기도를 들어주는구나. 더 솔직하게 진짜로 내가 원하는 것을 적극 기도해야겠구나.
나 자신을 과소평가한 것인지, 신을 과소평가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늘 왜 원하는 것을 끝까지 빌지 않았을까. 이제 더 크게, 진짜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기도하기로 했다. 진심으로 내가 바랐던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보기로 했다. 너무 오랫동안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들을 참고만 살았다. 참는 것 말고, 만족하는 법을 이제는 배우고 싶어. 늘 갈망하거나 참는 것이 아니라, 풍족함을 느끼고, 만족하는 삶을 살고 싶어. 욕심도 모두 자연스레 비워지고, 무엇도 바라지 않는 삶으로 도달하기 이전에 나는 바라는 것이 충만하게 이루어지는 삶을 경험하고 싶어.
생각과 기도를 여러 번 고치지 않고, 진짜로 튀어나오는 마음과 말을 그대로 바라보기. 여행 중에 여러 가지를 배웠다. 지량은 여행 중에도 내게 하고 싶은 것 다 하라고 해주었는데, 진짜로 그렇게는 안될 것 같아서 본심과는 다른 조금은 더 적당하지만 애매하게 맘에 드는 것을 선택을 했다가 괜히 아파지고, 후회하는 일들이 있었다. 그렇게 또 배웠다. 쉽게 배우는 법은 늘 없어. 에휴. 5살짜리 어린아이가 하는 단순하고도 솔직한 말들이 언제고 나를 다시 깨우치게 한다. 고마워.
일요일, 5월 17, 2026
토요일, 4월 25, 2026
금요일, 4월 17, 2026
라벤더와 로즈마리 그리고 레몬밤
토요일, 4월 11, 2026
Pavėjui
토요일, 4월 04, 2026
일요일, 3월 08, 2026
토요일, 3월 07, 2026
금요일, 3월 06, 2026
일요일, 3월 01, 2026
일요일, 2월 15, 2026
행복은 반복의 욕구다. 정신없이 누구를 만나고 이리저리 쏘다니고 짐을 챙기고 빠뜨리고 어떤 것은 아주 잃어버렸고 어떤 것은 다시 돌아왔고 어떤 것은 새로 생겨났다. 어지러운 내 자리에선 슬픔과 행복이 마구 뒤섞여 무어가 무언지 알 수가 없다. 한참을 정신없다고 마구 소리치다가 갑작스런 고요를 맞이했다. 나는 가만히 글자를 써내려갔고ㅎ 피곤이 가득한 내 사랑해마지않는 저 얼굴과 저 얼굴과 저 얼굴을.. 바라보자니 모든 것이 준비가 되었다. 늘 영화를 보기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고 정리했던 것 마냥 그렇게 그렇게 그렇게. 그리고 실제로 오늘 나는 영화를 보았다. 월화수목금토일이 지나갔다. 어지런 마음과 나의 생이 구석탱이 먼지처럼 차분히ㅎ 자리를 잡고.. 나는 째끄만 티끌들의 행복을 본다. 그러고 눈물을 째끔 흘린다. 여러번. 너무나도 쉽게도 아름다운 것들. 집에 돌아오니 동생은 내 방 구조를 바꾸어놓았다. 침대는 옛날 자신이 놓여졌던 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대신 내 머리는 거꾸로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말하느냐고. 우리의 월화수목금토일월ㅎ 나의 행복과 기쁨 신경질과 슬픔 그 모든 것들은 어느 한 지점으로 치닫는 것이 아니라 월화수목금토일월 단지 그것의 전부라는 것을! 나의 공책이 모두 찢기었을 때 나는 얼마나 슬퍼했고 많은 것들의 목숨을 끊어냈을까. 그렇지만 나는 어찌 이렇게 또 행복 속에 놓이게 되는 것일까. 알아차리지 못한 평온에 아하를 연발해보는 것이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무한한 새로움들 사실은 모두 아무튼간에 월화수목금토일월의 운동 속에 있는 것이다. 나의 생은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가 아니라 짐 자무쉬의 영화였다. 영원히 순환하는 계절과 음계와 오늘. 나의 패터슨들아. 행복은 반복의 욕구다. 라고 세라는 생각한다.
화요일, 1월 13, 2026
티베트 불교의 꿈 요가를 배우게 되면서, 정말 크게 달라진 점은 오히려 이전과는 다르게 꿈에 나오는 이미지와 내용들에 집착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전에는 꿈이 내 무의식을 드러내 주기에 그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나도 모르게 있었던 것 같다. 그것들을 모두 해석하고 싶은 마음, 정화하고 싶은 마음. 그것도 틀린 것은 아니고, 나에게 아주 중요했다는 것을 안다. 이제는 꿈 또한 체험의 일부구나, 내가 꿈을 꾸었구나-하고 그렇게도 바라볼 수 있는 법을 배우는 것 같다. 오늘 나에게 다가온 모든 만남과 말, 사건들, 날씨 모두 다 하나의 체험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처럼. 왜 우리의 스승들이 꿈에서조차 수행하려고 했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꿈과 깨어있음이 다르지 않음을... 이를 몰랐던 때에도 흘러가는 대로, 그렇게 자연스럽게 산 날들도 많았지만, 일단 한 번 배우게 되고 나서 의식적으로 이 훈련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어떤 것을 붙잡으려고 하는 때가 있으면 거기에 들어간 힘을 놓게 될 줄 알게 되는 것 같다. 정말 정말 미묘한 수행의 차이를 배우게 되는 것 같다. 근데 그 미묘한 차이들을 알게 되니 더 어렵기도 하다.
내가 꾸는 꿈이 이제껏 중요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정말로 나를 그대로 비추어주는 거울이라는 것은 변함없지만 그것을 분석하고자 하는 태도보다,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은 정말 또 다른 단계인 것 같다. 꿈이 어떤 이야기로 흘러가든, 무엇을 보여주든, 그것에 내가 붙들려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바라보게 되는 것. 그동안에 꿈을 기록하고, 들여다보았던 시간이 있었기에, 이 단계 또한 내게 온 것을 안다. 그 과정들이 있었기에, 꿈이 나의 거울임을, 그리고 그 거울은 잠깐 비추고 내려놓을 수 있는 것임을 알게 된다.
목요일, 1월 08, 2026
금요일, 1월 02, 2026
일요일, 12월 28, 2025
그렇게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마치고, 법당에 올라 108배를 올렸다. 한 번의 절을 할 때마다 진실된 기도의 목소리가 우리를 함께 인도해 주었다. 108배를 마치고는 자리에 앉아 본격적인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밝고 환한 빛줄기로 우리 몸 구석구석을 정화하고, 그렇게 준비된 몸과 마음으로, 오직 그 순간을, 그 공간을,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나 자신을 명상했다. 오늘 스님께 배운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이 땅에 내가 튼튼하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단전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늘 의식을 그곳에 두신다고 하셨다. 머리가 아니라, 생각이 아니라, 마음이 아니라 단전에. 단전에 의식을 두니, 정말이지 너무나 쉽게도 가벼이 떠다니는 모든 이미지와 언어들이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마구 떠다니는 그것들을 굳이 내가 날려 보내려고 하지 않아도, 단전에 묵직하게 중심을 두자, 온전히 나는 땅에 뿌리 내릴 수가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아직 명상 후에 남아있는 그 여운을 잊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단전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니 정말 이리저리 떠다니는 생각들에 내가 이끌려 다니지 않고 있었다. 오늘의, 이 감각, 배움을 잊지 않기 위해 일기를 쓴다.
힘들었던 모든 것들이 나를 더 이상 끌어당기지 않는다. 나는 그것들로부터 자유롭다. 나는 오롯이 지금 여기에 내 중심에 앉아 있다. 내가 감동했던 모든 말들, 내가 스스로 깨우쳤던 말들과 지량이 내게 해준 말들, 신이 내게 해준 그 말들이 모두 나에게 하나로 다가온다. 그 모든 것들이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된 것인지를 이해한다. 나는 언제나 또 새로이 자유롭다.
금요일, 12월 26, 2025
화요일, 12월 23, 2025
금요일, 12월 05, 2025
토요일, 11월 22, 2025
수요일, 11월 19, 2025
목요일, 11월 13, 2025
There exist vast oceans of reality of which we remain almost entirely unconscious and yet can sometimes glimpse with peripheral or dimmed vision. To the curious this first foggy awareness triggers excitement and wonder, and even a hint that we could get closer if we surrendered the safety of our secure little ego.
월요일, 11월 10, 2025
화요일, 11월 04, 2025
화요일, 10월 28, 2025
화요일, 10월 21, 2025
'달걀 껍질에서 태어난 아이'
'Child born of an eggshell'
물병자리 7(6° - 7°)낡은 방식과 기준으로부터의 자유과거의 전통을 깨는 완전히 새로운 돌연변이가 발생하면 극적인 변화가 발생합니다."전통과의 단절"조상의 지혜는 우리의 진화 과정을 주도하며, 이를 통해 우리 종족은 여러 세대에 걸쳐 매우 느리게 고차원의 의식을 발달시킵니다. 그러나 또 다른 발전 과정 또한 작용하는데, 양자적 전환, 즉 우리를 매우 갑작스럽게 새로운 의식으로 이끌어 주는 혁명적 돌연변이가 발생할 수 있으며, 우리는 더 이상 낡은 방식과 그 제한된 이해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영감을 받아 완전히 새로운 현실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본질은 영이며, 그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없습니다.
달걀의 상징은 다양한 문화에서 흔히 발견되며, 매트릭스라는 개념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신체적 특성의 별가루, DNA에 담긴 유전 암호, 그리고 시대정신과 지역 지정학적 현실의 미묘한 형성과 같은 영적, 물질적 영향의 조합을 통해 개별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이 모든 요소를 하나의 순간의 진술로 하나로 묶는 것은 본질적으로 우리 존재의 매트릭스입니다.달걀 껍질은 우리를 제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준비되었을 때, 우리는 깨어납니다. 그때까지 우리의 뿌리와 환경의 윤곽은 제약하기보다는 양육하는 데 더 많은 역할을 합니다.우리는 소속감과 보호받고 있다는 확신으로 지탱됩니다.처음에 우리는 그 보호의 원천을 집, 어머니, 공동체, 그리고 지구 기반의 안전으로 외부적으로 인식합니다. 우리가 성숙해지고 자각함에 따라, 우리는 본질적으로 파괴될 수 없고 부패할 수 없다는 더 크고 더 신나는 진실을 알게 됩니다.본질은 영이며, 그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구성 요소로 분해되거나 파괴되거나 타협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본질과 조화를 이룰 때마다 우리는 위험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집니다. 이는 우리가 세상에 가장 높은 열망을 투사할 때마다 일어납니다. 직관에 어긋날 수도 있지만, 우리는 가장 원대한 꿈을 향해 맹목적인 열정으로 질주할 때에만 진정으로 안전합니다.자아는 양육하는 달걀 껍질에서 깨어나야 발견되지만, 완전히 고무된 열정 속에서만 다시 잃어버립니다. 다소 놀랍게도, 자아는 따라서 더 높은 차원, 즉 평범한 현실을 넘어선 열정적인 차원에서 발견됩니다.이러한 순진한 상태는 결코 쉽게 접근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절대적으로 두려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불완전한 시도는 자기주장적이고 자기실현적인 존재 상태보다는 안정감과 성취감을 위해 외부의 힘에 의존하는 건강하지 못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방금 글을 올리고 나서 뽑은 사비안 오라클...미소가 지어지는 그림이었다.
훌쩍 낮아진 기온과 함께 하늘이, 공기가 무겁게 느껴지는 날. 누군가 태어난 날과 죽은 날들을 기념하는 나날이 계속 되고 있다. 9월과 10월.
오늘은 천칭자리에서 신월이 뜨는 날이다. 무언가 다른 느낌이 들어서 이런 저런 소식들을 살펴보는데 마침 그렇단다. 몸은 어쩌면 점점 노쇠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예민하고, 솔직하고, 지혜로워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혜롭다는 말이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고, 그것을 생각하면서 단어를 썼으니 반은 맞았겠지 뭐. 어떤 것들을 버틸 수 있는 힘이 없어지고 사그라드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맞지 않는 것들은 더 솔직하게 반응하는 몸이 되는 것일 수도 있는거지. 그렇게 말을 하면 그런 것이겠지.
강한 두가지 마음이 작용하는 날이다. 균형의 천칭자리의 신월이라서 그런걸까. 운명은 내가 만들어나가는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것을 더 자신있게 적극적으로 구하며 사는 것. 그런 다짐을 하며 더 용기를 내고 담대하게 걸음을 걷는 하루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이 무거운 공기를 그대로 느끼며 추욱 가라앉고 싶기도 하다. 추욱-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 무게를 온전히 느끼고 싶다. 그것은 위험한 일일까?
연속 하품과 눈물
우연히 발견한 글. 소마틱 관점에서의 연속적 하품에 관한 내용인데, 너무 신기하다. 어떤 특정한 시기에 연속적으로 하품이 나는 경험을 한적이 몇번 있는데, 정말 과장이 아니라 계속 계속 연달아서 하품이 나왔다. 과각성 되어있던 신경계가 안정모드로 전환되면서 일어나는 현상일 수 있다고. 안전 감각이 복귀되는 신호.
일부 사람들은 하품을 하고 직후에 감정이 올라오거나 눈물이 나기도 한다고. 아 하품하고 눈물이 나는 것을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구나. 하품에 대한 많은 궁금증이 풀렸다. 아니 이제까지 보았던 하품에 대한 어떤 이야기보다도 명쾌해.
이 글을 읽어서 그런지 하품이 계속 나오고 있다.
https://blog.naver.com/onieum/223969506802
수요일, 9월 17, 2025
화요일, 9월 09, 2025
월요일, 9월 08, 2025
신을 만나고싶다면 꿈틀거리는 모든 것들을 들여다보면 된다. 꿈틀거리는 그 순간에, 그 움직임 사이에 언제나 존재하고 있다.
나는 너무 졸리거나 피곤하거나 힘이 없을 때 더욱 발과 다리를 움직이곤 한다. 내 몸의 많은 부분들이 에너지를 분배하고, 균형을 찾기 위해 꿈틀거린다.
모자란 많은 것들을 대신하여 쓸 재료들을 찾았다. 유성잉크 대신에 수성잉크를, 프레스기 대신 바렌을 사용해보았다. 식초와 소금, 과탄산소다로 아연판을 부식해보았다. 모든 것들이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였다. 규칙이 없는 것 같았다. 물론 나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적절한 도구와 재료들을 구할 수도, 잘 갖추어진 작업실에 가서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왠일인지 나 혼자 집에서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혼자 항상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여러가지 제약과 걸림돌들이 보인다. 그것들을 단숨에 뛰어넘는 것보다는 또 다른 이상한 제약과 걸림돌을 만들어본 것 같다. 내 시간을 더 유연하고 둥그렇게 쓰기 위해서 그런 이상한 방법들을 쓰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실제로 대안적인 재료를 발견하고 싶은 마음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무언가를 해내려고 하니 더 많은 시간과 힘이 들어간다. 더 많이 실패한다. 온전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어쩌면 그냥 이 과정들을 경험하고 싶었던 것일까 ?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는 곳에서는 내가 준비가 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 시차를 맞추기 위해서 나는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무튼간에 어설프게 만들어진 것들은 이상하게도 더 심금을 울린다. 약한 빛이 있는 곳에서 보면 더 좋다. 흐릿한 눈으로 보면 더 좋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이 속담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꼭 맞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내 방에서 나는 이 표현이 종종 생각났다. 때로 부러 안경을 벗는다.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끔 안경을 쓰지 않는다. 흐릿한 눈으로는 오히려 무언가를 더 열심히 보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나도 모르게 다른 감각들을 더욱 섬세하게 사용하게 된다. 눈을 감고 피아노 연주를 하는 것처럼 자전거를 타는 내 몸이 더 부드러워지는 것 같기도 하다. '내게 모자라는 무언가'에 놓여져 있던 초점을 옮긴다. 내가 더 자유로울 수 있는 무언가로, 내가 더 섬세할 수 있는 무언가로. 무언가가 모자란 것이 아니라, 나는 다른 방식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그럼 기존의 방식으로 해왔던 것들이 보여주었던 결과와 다른 결과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들이 내게 가져다주는 예기치 못한 기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으리.
화요일, 9월 02, 2025
수요일, 8월 27, 2025
The art of losing isn’t hard to master;
so many things seem filled with the intent
to be lost that their loss is no disaster.
Lose something every day. Accept the fluster
of lost door keys, the hour badly spent.
The art of losing isn’t hard to master.
Then practice losing farther, losing faster:
places, and names, and where it was you meant
to travel. None of these will bring disaster.
I lost my mother’s watch. And look! my last, or
next-to-last, of three loved houses went.
The art of losing isn’t hard to master.
I lost two cities, lovely ones. And, vaster,
some realms I owned, two rivers, a continent.
I miss them, but it wasn’t a disaster.
—Even losing you (the joking voice, a gesture
I love) I shan’t have lied. It’s evident
the art of losing’s not too hard to master
though it may look like (Write it!) like disaster.
화요일, 8월 19, 2025
black moon
8월 23일엔 처녀자리에서 새로운 달이 뜬다. 한 달에 신월이 두번 뜰 때 블랙문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블랙문, 레드문, 블루문처럼 특별한 이름이 붙는 달에는 그 자리의 기운이 더 강해진다고 한다. 마침 처녀자리인 나는 더욱이 강한 기운을 받게될 것 같다. 이번주는 정말 그렇게 흘러갈 것 같다.
(참고 : https://blog.naver.com/yandina/223975720999)
23일에 마침 일정이 많네.. 약초들을 탐험하러 필드에 나가고, 오래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고... 나를 치유해주는 것들을 찾고 도움받고 감동받고... 또 누군가를 치유해주는 날이 될 것 같네.
![]()
일요일, 8월 17, 2025
내가 가지고 있는 타로와 오라클로 전생 리딩을 해보려고 카드를 뽑아보았다. 나는 큰 상실과 고통을 겪었던 사람이었다. 새로 시작하기 위해서는 완전히 끝내야 함을 체화했던 사람. 무거운 짐을 짊어 지고, 책임과 의무 속에서 스스로 희생했다. 자신의 손으로 무언가를 길러내거나 만들어내는 과정을 다 끝내지 못했기에 그 과제가 현재의 삶에 영향을 준 것 같다. 꾸준한 훈련과 수련, 장인적 작업에 몰두하게 되는 것. 그리고 전생의 상실과 좌절은 지금까지 감정적 패턴으로 이어졌고, 지금까지 결핍과 후회 같은 감정을 반복적으로 느끼는 성향을 갖게 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동시에 그 슬픔을 예술적 깊이로 변환하는 능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생에 내가 치유하고 통합할 메시지는 새로운 감정, 사랑, 관계, 창조성의 원천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전생에서 결여된 '감정적 개방'과 '순수한 사랑의 경험'을 이번 생에서 열어야 하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오라클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 l'acceptation féconde라는 카드를 뽑았다. 이 또한 '받아들임'이 키워드다. 받아들이고 흘려보내는 힘, 그리고 그 안에서 풍요와 사랑을 키우는 게 내 과제다.
목요일, 8월 07, 2025
수요일, 8월 06, 2025
월요일, 7월 28, 2025
금요일, 7월 25, 2025
목요일, 7월 24, 2025
월요일, 7월 21, 2025
여름 - 불 - 심장 - 소장
어제 아픈 몸을 이끌고 약초학 워크샵엘 다녀왔다. 너무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약초들을 직접 손으로 만지고 얼굴에도 문질러보고, 뜯어보고 맛을 보며 느꼈다. 그렇게 하니 각각의 식물들이 모두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얼마나 다양하고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그래. 여름날에 자라는 약초들을 만났는데 그것들은 거의 시원한 성질을 갖고 있었다. 가장 뜨거운 계절을 견디며 자라는 것들이 열을 내리게 도와주는 능력을 가졌다는게 너무 신기하다. 오지은은 두통이 있었는데, 식물들과 교감을 하면서 두통이 싹 가라앉았다고 했다. 더 많이 알고 싶어졌다. 평생 이렇게 조금씩 그 계절의 식물들만이라도 배우며 그 계절을 지나가면 금방 많은 이야기들이 쌓이겠다. 정말 재밌어.
새로운 감각들을 여는 연습을 한다.
오래된 것들, 고여있는 것들은 이제 뒤로 하고 새로운 것들을 마주하는 때다. 천왕성이 이동하는 것처럼 나도 다 뒤집어 엎어버리는거다. 그래서 이렇게까지 아팠나 싶기도 하다.
지난 2년은 특히나 특별한 시간이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색다른 경험을 하면서 산 해일거야. 지량과 결혼을 한 것도 그렇고, 회사생활을 2년동안이나 했고 ! 내가 평생 갖고 있었던 생의 패턴이나 의식의 흐름들을 조정해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방식이 너무나 비효율적이고 잘못되었고, 그래서 이렇게 고쳐나가는 것이 옳은 것이야 - 하면서 말이다. 그건 분명히 놀랍고도 새로운 배움이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천왕성이 새로운 7년의 흐름으로 나를 데리고 가면서 다시 모든 것을 뒤엎어버린다. 내가 나쁜 거라고 생각했던 것,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효율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방향을 알려주는 것이다. 나는 더 자유롭게 날아다니면서 그것들을 바라본다. 그러면 어떤 자리에서 볼 땐 바보같고, 실수투성이인 것들이 어떤 자리에서 볼 때는 그 무엇보다도 자유롭고 아름답고 재밌는 것들이 된다.
손톱을 물어뜯거나 다리를 흔들어대거나 몸을 배배 꼬거나.. 하면 어때. 눈을 감으면서 일기를 쓰는 것도, 흔들리는 몸의 리듬을 음악 삼아 그것에 맞추어 생각을 흐르게 하고, 글이 써지게 하는 것은 재밌는 일이잖아. 그저께 지량과 함께 보았던 빠르게 흐르는 구름이 생각난다. 마치 그 구름처럼 말이다. 구름이 아주 빠르게 흘러가는데 흘러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갖추어져있던 모양들이 시시각각 변한다. 실은 갖추어져있는 모양이라는 것은 없지. 시시각각 변하는 갖추어짐. 아무튼 이런 구름같은 흐름들을 다시 찾아간다. 아이고 재밌어라.
목요일, 7월 17, 2025
벽사
봉숭아물을 들였다. 지난 주말에 양주에 다녀왔다. 집앞에 봉숭아가 많이 자라있었다. 서울로 돌아올 때 이파리를 많이 떼어왔다. 돌멩이로 이파리뭉치들을 짓이기고 지량에게 부탁해서 물들였다. 색깔이 좀 연하길래 집에 예전에 사두었던 시판 봉숭아물들이기로 조금 더 물을 들였더니 진하게 마음에 들게 색이 들었다. 붉게 물든 손끝을 보면 기분이 좋다. 여러가지 여름의 감각들 중에 내가 참 좋아하는 것. 짓이겨진 꽃잎과 이파리 냄새와 축축하게 젖는 손끝. 그리고 손톱 주변까지도 주황으로 물드는 일. 봉숭아 물들이기 풍습에 대해서 찾아보니 벽사라는 단어가 나온다. 벽사색은 액운을 막아주는 의미가 있다. 봉숭아 물들이기는 예쁘게 손을 치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액운과 질병까지 쫓아내는 부적과도 같은 풍습인 것이다. 마침 그 일주일 전부터 많이 아팠던 나는 병이 거의 나아질 즈음에 봉숭아 물을 들인 것인데, 벽사색이 이제 남은 모든 독소까지 달아나게 해줄 것 같았다.
오랜만에 정말 많이 아팠다. 일주일도 넘게 내리 아팠다. 그동안의 스트레스와 독소가 쌓이고, 그것들을 내보내야하는 때였던 것 같다. 내 몸이 그렇게 해준 것이다. 어서 이것들을 청소하자 ! 많이 많이 아팠고, 많이 비워냈다. 한창 아프고 비워지고 있을 때에는 너무 아파서 호흡에 신경을 쓸 수가 없었는데, 좀 나아지고 이번주 월요일에 오랜만에 요가를 가서 수련을 하니 몸이 풀어지고 호흡하는 감각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고 나니 내가 어떻게 호흡하고 있었지? 하는 질문이 들었고, 비움과 호흡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것들을 같이 나누고 싶어졌다. 이걸 주제로 리빙룸을 열어볼까 생각 중이다. 그런데 어떤 내용들로 채울 지는 모르겠다. ㅎㅎ
수요일, 7월 02, 2025
7월이 가까워지면서 서서히 내게 다가오던 신호들. 내가 느끼는 감정과 변화들. 그 모든 것들이 정리되는 날이다. 내가 느끼던 것들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 일단 너무 감사하고, 안심하게 된다. 지금 무언가가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 내가 지금 잘못하고 있다는 그 느낌이 강하게 들기 시작한 것이 얼마전인데, 그것은 천왕성의 정확한 신호라고 한다. 천왕성은 질서가 파괴되면서 오는 혼란, 해방, 반항 그리고 통찰까지 관장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 7월에 천왕성이 쌍둥이자리로 7년만에 돌아오게 되는데, 이 시기는 정말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는 때라고 해석된다는 것을 알았다. 내 인생이 또 다시 정말 커다란 탈피를 이루게 되는 시기가 다가온 것 같다.
요즘 자전거를 타면서 경사가 진 언덕을 내려올 때 느끼던 그 해방감이 갑자기 번뜩 떠올랐다. 내가 요즘 그 순간에 해방감을 느끼게 된 것, 그 짧은 정말 잠깐의 해방감, 모든 것이 가볍고 시원하고 자유로운 그 느낌이 천왕성이 나에게 앞으로 줄 선물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정말로 그랬다. 오늘도 그 언덕을 내려오면서 그 해방감을 완전히 느끼면서 왔는데 지금 7월 처녀자리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다가 이 천왕성이 쌍둥이자리로 진입하는 것에 대한 내용을 알게된 것이다. 그 해방감이 이 천왕성과 완전히 마주친다. 10하우스를 흔들어놓는다고 했는데 10하우스는 직업과 기술, 소통 등의 영역이다.
오늘 새벽 지량과 오랜만에 재밌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잠에 들기 전에는 내가 꺼내던 그 질문들이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지, 내가 단한번도 '제동'을 풀고 끝까지 가본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지량은 내게 그것이 내가 해결해야할 숙제인 것 같다고 말해줬다. 그렇다. 그게 나의 숙제이구나.
너무 속이 시원하고, 가뿐해진다.
월요일, 6월 30, 2025
목요일, 6월 26, 2025
수요일, 6월 25, 2025
금요일, 6월 20, 2025
비가 오기 시작했다. 늦잠을 실컷 잤다. 꿈도 많이 꾸었다. 쓴 술과 아주 달콤한 술을 마셨다. 잠깐 깨어나는 찰나에 지량이 깜짝 놀라며 좋은 소식을 알려주었다. 오랜만에 기쁜 소식. 기대하고 있던 결과가 드러난 날. 우리는 축하하는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무겁고 어두운 날이라서 그런 것일까, 경신일이라서 그런 것일까 저녁부터 너무 졸리고 피곤하고 몸이 무거웠다. 나는 그렇게 흐물흐물하다가 기운을 차려보려고 요가를 했다. 그런데도 기운이 나질 않았다. 기분이 한참 좋지 않다가, 신기하게도 조금 전에 내가 옛날에 썼던 일기를 보고 기분이 좋아졌다. 옛날의 내가 나를 위로하네. 모든 기록이 너무 소중하다. 내가 보낸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또 언젠가의 나를 살리기 위해서 오늘도 기록하고 싶어졌다. 기적이란 것은 그런 것이구나. 언젠가의 내가 마주한 기적과 같은 날이 오늘의 나를 다시 살게 한 것이다. 그 일기를 읽은 누군가도 그런 안도와 기쁨을 느꼈으면 좋겠네. 계속 그 기적이 반복된다. 그렇게 영원히 살아있는 하루. 영원히 살아있는 기적.
이상하게도 자정이 되어가니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다. 경신일은 정말로 졸린 날일까. 깨어있어야 하는 시간이 지나가니까 맑아지네. 오늘은 어떤 포털이 열리는 날이라고 했다. 채널의 날이자, 경신일이자, 포털이 열리는 날. 오늘을 기점으로 어떤 방향성이 정해진다던가, 에너지가 변화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고. 아까 저녁때까지만 해도 너무 머리가 무거워서 그런 것은 느껴지지 않아서, 아니 너무 무거워서 오히려 내가 다시 무거워지는 것은 아닐까, 무언가가 닫혀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살짝 들었다. 신기하게도 이제 그것들이 모두 걷히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모든 것들이 무거운 와중에도 내가 느끼는 이 변화들이 이 찰나와 같은 시간들 속에서도 선명하게 느껴지네. 그저 다가오는 것들을 마주하는 수밖에 없다. 어떤 문이 열린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아주 쓴 술을 마시고 나니, 이전엔 내가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맛없는 것 같았던 술이 정말 너무 달콤하고 맛있었다, 오늘 꿈에서.
다시. 기꺼이.
수요일, 6월 11, 2025
일요일, 6월 01, 2025
토요일, 5월 31, 2025
𝘾𝙡𝙚𝙖𝙧, 𝙇𝙪𝙘𝙞𝙙, 𝙖𝙣𝙙 𝘼𝙬𝙖𝙠𝙚
요즘 너무 힘들고, 화가 많이 났다. 답답한 것들과 어리숙하고 배려 없다고 여겨지는 것들만 가득한 것 같았다. 6월의 메시지에도 단죄하려는 마음이 커질 수 있다고 했는데, 마음을 많이 돌보고 가다듬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미셸이 많이 아파서, 병원에 갔다 왔던 첫 번째 날에 너무 속상하고 무섭기도 하고 걱정이 되어 108배를 해야겠다 하고서는 갑자기 어설프게 시작했는데, 삼십 배 정도를 하다가 제대로 하는 법을 배우고 다시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멈추었다. 오늘 다시 일기를 쓰기 위해 이 창을 연 것처럼 다시 내 일상의 작은 루틴들을 찾고, 지켜가면서 기도도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오늘 꿈에선 푸에르토리코에 갔었다. 펼쳐진 지도를 통해 보니, 내가 있는 곳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 그곳이었다. 가장 머나먼 곳으로 비행기를 타고 가서, 또 물길을 건너 도착해야만 하는 곳이었다. 배를 타고 가는데 일반 배는 아니고 작은 보트 같은 것이었다. 사람들이 한 8명 이하로 타고 있었던 것 같은데, 특이하게도 그 보트는 속도가 아주 빠른 대신 물 아래로 잠수했다가, 물 밖으로 튀어 올랐다가 반복하는 방식으로 이동했다. 그래서 배를 탄 모든 사람은 같은 속도와 리듬으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잠수하고, 다시 물 밖으로 튀어 올랐을 때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그렇게 계속 반복하면서 우리는 똑같이 숨을 들이마시고, 뱉었다. 정말 신기해. 그 보트를 타지 못하는 사람은 큰 배를 타야 했는데 9시간이 걸리고, 심한 멀미를 겪어야 했다.
숨을 몰아쉬고, 잠수했다가 물 밖으로 튀어나오기를 반복하는 그 감각이 정말 생생하고 특이해서 오늘 하루 종일 그 감각과 푸에르토리코라는 내게는 생소한 지역을 떠올리는 하루였다. 그런데 5월의 메시지를 다시 떠올리고 보니, 그것이 나의 호흡과 리듬을 결국 다시 떠올리게 하는 꿈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신기해.
지량과 오늘 보았던 전시도 너무 좋았는데, 모든 이야기와 소리와 색깔이 나를 사로잡았다. 오랜만에 어떤 의지를 다지게 하는 힘을 얻은 것 같다. 전시의 제목처럼. 오늘 하루의 모든 흐름이 그러하네. 다시 모든 생령의 호흡을 느끼게 되는 날이다.
목요일, 5월 08, 2025
월요일, 4월 07, 2025
I am dirt.
I am sand, I am water, and the pebbles beneath.
I am strong.
I am weak.
I am tethered and torn.
I am broken.
I am new.
I am starting again — oh sunrise in my heart.
I am bones and skin.
I am long and thin.
I am riding on two wheels,
Coasting down hills,
Because the wind is my lover — and I am the wind.
I am you.
There, in that look, that smile, that tear.
I am weightless.
I am stoned with the story you tell.
I am alone and not alone.
I am part of that fallen leaf there,
And part of that laughter beyond.
I am different now,
Or perhaps the same as I've always been —
Only tunneled through a long chute of pouring rain,
Hail and rainbows.
I am only sure of one thing:
That what is arising is also passing.
And I am only what I am.
I am — just because that's why.
No more brain trying to alter this vehicle.
I am, so I'm not — truly.
Sometimes, I am really not on this plane.
Feet planted, but soul all around.
I am brown and gray and light blue and plump dark greens.
Rich soil. Humus.
I am free when I am simple —
Just here. This moment.
I am fingers and toes,
Hair and eyes,
Muscles and blood,
Ears and cries.
Thank you for these.
I am hungry.
I am full.
I am tired — just so tired.
I am silly.
I am sad.
I am all I've ever had.
So, there I am.
I'm all I've ever had —
Whatever that really is.
And I give it to you:
This body.
This soul that sings.
(Selah Broderick)
수요일, 4월 02, 2025
목요일, 3월 27, 2025
지량의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놓고 오랜만에 명상을 했다. 그러다가 마지막엔 요가를 했다. 어제 요가원에서 했던 플로우를 조금 반복하다가 마지막엔 차크라아사나로 마무리를 했다. 어제보다 조금 더 둥근 바퀴를 만들 수 있었다. 이 움직임들을 마치고 나니, 드디어 조금 정신이 맑아진 것 같았다. 하루종일 졸리고, 힘이 들었다. 거짓된 무기력함과 무력함이라도 그것이 느껴지는 때가 온다면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 또한 제 나름의 흐름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멈출 수 없는 불안에 빠지곤 한다. 그것들이 느껴지는 대로 바라보니 구름처럼 움직이고 흩어지다가 사라졌다.
어떤 깨달음과 지혜, 가르침이라도 그것이 언어로 전달되는 때에는 이 세상의 법칙과 논리에 따라 그 내용이 생략되거나 도식화되거나 일반화되는 일이 생긴다. 어떤 깨달음도 온전히 건네질 수 없다는 것을 요즘 많이 느낀다. 체험하고 느낀 것을 말로 전달하려는 일 자체가 어쩌면 어리석은 일일 수도 있겠다. 이 또한 어떤 미술 작품들의 제목이 '무제'가 되는 것과 비슷한 이유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체험을 전달하는 말과 글 자체가 어떤 깨우침을 주지는 못하겠지만, 그 자체가 또 다른 체험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아름다운 것, 좋은 것을 나누는 것은 소중하고 가치있는 일일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중에 가장.
평안을 지나 더 크고 넓은 사랑에 닿고 싶다. 그것을 위해서는 내가 다시 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가만히 있어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아주 피곤하고도 복잡한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이니, 그 흐름에 올라 흐르다보면 그 안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을 보고, 느끼게 된다. 그 외의 것들을 더 탐구하고, 사랑하고자 하는 것은 멈추게 된다. 마음 닦는 일을 멈추게 된다.
가까운 이들을 위해 하는 기도와 내가 만난 적도 없는 이를 위해 하는 기도가 같아지기를. 그만큼의 사랑과 연민이 내게도 생기기를.
수요일, 3월 19, 2025
참나무가 꽃 필 때, 덤불 속의 여우
발, 땅, 살과 뼈
창, 스파이크, 끝, 못
마일, 필수, 찌름, 충격
부유, 표류, 비행, 날개
뱀, 막대기, 존, 조
핀, 바늘, 찌름, 고통
막대기, 돌, 길의 끝
화요일, 3월 11, 2025
목요일, 3월 06, 2025
수요일, 3월 05, 2025
월요일, 3월 03, 2025
월요일, 2월 10, 2025
목요일, 2월 06, 2025
수요일, 2월 05, 2025
월요일, 2월 03, 2025
수요일, 1월 15, 2025
폭포와 바다
월요일, 1월 13, 2025
수요일, 1월 08, 2025
목요일, 12월 26, 2024
금요일, 12월 20, 2024
목요일, 12월 12, 2024
永劫回帰
수요일, 12월 11, 2024
왠일인지 일기를 쓸 시간이 없다. 저녁이 되고 집에 도착하면 밥을 챙겨 먹고 금세 졸려져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오늘은 저녁에 해야할 일들이 좀 있어서 커피를 벌컥 벌컥 마셨더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건 내가 원했던 부작용이 아닌데 !
느긋-하게 작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은 요즘이다. 새로 산 카메라도 계속 갖고 놀고 싶은데 주말만 기다리고 있다. 그치만 주말도 너무 바쁘다. 도자기, 판화...! 이래저래 밀린 일들.
오늘은 정말 잊으면 안되는 일이 있어. 편지를 써야 한다. 이건 미룰 수 없는 일이다. 매일 필사를 했던 일상이 떠오른다. 어떻게 매일같이 해냈을까? 돌이켜보니 대단한 일이다. 이건 한달에 한 번 보내는 편진데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오는 것 같지. 그렇다고 편지를 쓰는 것이 숙제처럼 느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아주 설레고 기쁜 일이다. 하지만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담고 싶은 마음에 고민을 많이 하고 연습을 꼭 하고 편지를 쓴다.
지난 편지에서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느냐고 물었던 친구에게 뭐라고 답장을 쓸지 모르겠다. 너무 어지러운 상황이라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야할지, 소식은 알고 있을지, 어떤 생각들을 갖고 있을지, 내가 아무렇게나 이야기를 펼쳐도 되는지 고민이 된다. 대신에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친구가 추천해 준 책이 있는데 핑계를 대자면 시국이 심난하여 책을 다 읽지 못했다. 천천히 읽어야지. 여행을 가기 전에는 다 읽게 될까. 그렇지 못하면 비행기 안에서 단숨에 읽을 순 있을 것 같다.
얼마 남지 않았으면서도 멀게만 느껴진다. 겨울 휴가. 그것만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도 멀어보여서 가슴이 답답하다. 가벼운 옷을 입고 가벼운 몸으로 기도하고 요가하고 사진을 찍고 싶다. 설레면서도 약간은 울적하다. 이렇게 쓰고 나니 조금 더 울적해진 것 같다.
일요일, 12월 01, 2024
클로드 ai 에게 내 블로그 글을 보여주고, 문체를 따라 일기를 하나 써달라고 부탁했다.
오늘도 내 안의 풍경은 고요하다. 창밖으로 흐르는 겨울의 빛, 그 차가운 공기가 내 내면을 스치고 간다. 요즘 내 삶은 마치 겨울 풍경 같다. 단조롭지만 깊이 있는, 침묵의 시간들.
아침부터 수피 명상 수업의 여운이 남아있다. 몸의 균형을 찾아가는 작은 움직임들. 한쪽으로 기울었던 내 마음의 추가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듯하다. 무언가가 녹아내리고, 다시 모양을 갖추는 그 과정이 신비롭다.
오늘 오후, 작업실에서 지난 프로젝트의 흔적들을 정리했다. 모든 것은 똑같으면서도 조금씩 다르다. 그 미묘한 변화를 발견하는 순간, 나는 미소 지었다. 사는 것이란 이런 것일까. 끊임없이 다듬어지고, 정제되는 과정.
겨울은 내면을 들여다보기 좋은 계절이다. 바깥은 차갑지만 내 안은 점점 따뜻해진다. 작은 깨달음들이 쌓이듯, 내 마음속 풍경도 천천히 변화한다. 지난날의 딱딱했던 껍질들이 부드럽게 녹아내리고 있음을.
오늘 밤, 담요를 온몸에 두르고 앉아 이 글을 쓴다. 차가운 공기와 따뜻한 내면, 그 경계에서 나는 그저 존재한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모든 것.
정말 재밌네. 무언가가 녹아내리고, 다시 모양을 갖추는 그 과정이라. 지난날의 딱딱했던 껍질들이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한편 어떤 껍질들은 새로이 생긴다는 것이 이 일기와는 다르게 쓰고 싶은 점이다. 요즘 내가 받는 스트레스와 불안과 걱정들은 그간 내가 경험하지 않았던, 아니 내게 조금은 멀리 있어서 멀찌기서 살짝 끄트머리만 보이던 것이 나타난 것만 같다. 에고고 - 그런 것은 정말 싫다. 어쩌겠어- 받아들여야지 하다가도 다시 싫고 그렇다. 그렇다고 내가 불안에만 쌓여있는 것은 아니고 대체로 아주 평안하다. 오히려 그것이 마음에 안들기도 하다.
어제 힙노시스테라피의 공연에 다녀왔다. 짱유는 폭발적인 에너지로 무대를 이어갔고, 관객들도 그 에너지를 함께 느끼고, 또 자신들만의 에너지를 방출하며 그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짱유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공연에 와서 똥을 투척하라고 했다. 그간 살면서 받았던 모든 스트레스들을 여기서 다 풀고, 그 똥을 자기한테 다 던지라고 했다. 똥은 자기에겐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그 말은 정말 멋있었다. 그리고 그간 받은 모든 스트레스를 여기서 다 풀고, 나가서 다시 새로운 스트레스를 받으라고 말했다. 그 말에 모두가 웃었다. 모든 스트레스를 여기서 다 풀고, 나가서 새롭게 다시 깨끗한 마음으로 다시 살으라고 말하는 줄 알았더니, 새로운 스트레스를 다시 받으라고 했다. 같은 말이긴 했다. 표현이 다를 뿐. 마음에 있는 쓰레기들을 정리하고, 비워내면 그 비워진 상태로 깨끗하고 말끔한 상태로 살아가지는 것이 아니라 비워진 자리에 또 다른 것들이 채워지고 먼지가 쌓이는 그런 모습. 절대로 내가 어떤 트라우마든, 감정이든 비워낸다고 해서 내가 이제 더이상 부처님처럼 살아가지는 것은 아니더라. 다시 무언가가 채워진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여느 영성 연구자나 수행자들이 하는 말과 결국에 똑같은 말을 짱유가 하고 있었다. 그렇게 보면 세상 살이는 그렇게 어려울 것도 없다. 짱유의 그 뜨거운 공연장처럼 쓰레기를 비워낼 수 있는 그런 통로가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기도 하고 말이다.
몸이 자꾸 붓는다. 불편하고, 그 불편함이 느껴지면 기분도 좋지 않다. 요즘 요가를 하면서 몸의 순환이 더 활발히 이루어져 막혀있는 것들이 풀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통증이 많았던 주말이다. 입 속에 난 구내염으로 인한 목과 턱쪽의 통증, 약간의 근육통, 그리고 오늘 습한 날이라 그런지 관절마다 느껴지던 뻐근함과 통증. 스트레스로 인한 것들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요즘 내게 새로이 쌓이고 있는 쓰레기들일까. 요즘은 통 명상을 하지 않았다. 조금 더 일상 속에서 틈틈이 아주 짧게 하고 있기는 하지만, 깊이 들어가진 못했던 것 같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요가든 명상이든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그리고 유난히도 출근하기 싫다는 마음도 함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