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midbrow.org/oh-sera-visual-art-gwangju-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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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비행기 창가 자리에 앉아 이륙하는 순간과 점점 멀어지는 땅 위의 불빛들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와라. 까만 세상에 밝게 켜진 불빛들이 마치 은하수 같았다. 하늘에도 땅에도 모두 은하수가 있구나. 그리고 붉은 손톱달이 뜨는 순간을 보았다. 내 눈을 의심했지만 맞았다! 정말 잊을 수 없는 풍경이 될 것 같아.
불빛이 복잡하게 켜진 지상의 밤과, 아주 얇은 하얀 구름층과 붉은 얇은 손톱달. 오랜만에 비행기 창밖의 모습을 촬영했다. 자리는 지량과 떨어졌다. 지량은 나와 반대편 창가에 앉게 되었다. 내가 본 풍경은 못 봤겠지만, 반대편의 은하수도 아름다웠길.
이 여행이 내게 어떤 의미가 될까, 난 또 피곤하기만 하겠지-했지만 떠나는 날 느껴지는 것은 서울을 떠나오기 전과는 정말 사뭇 다른 충만함이다. 여행 막바지에 다다라서는 컨디션 난조로 힘들고, 쉬어야 하는 날도 많았지만 풍족해진 마음이다. 또 내가 너무 큰 불안과 걱정들로 이 여행이 끝나고 우울증이 찾아오면 어쩌지-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역시 언제나 같은 일이 반복되지는 않는다. 어떤 패턴들은 생에서 반복되지만, 그 안에서 계속 변주가 일어난다. 같은 패턴 안에서 새로운 것들이 계속 생성된다. 그걸 배우고 있다.
그 언젠가의 여정에서는 불안과 걱정을 그저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면, 이제는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흘려보내는 법을 배운다. 또다시 분명 걱정과 불안은 올라오겠지만, 그것이 실제로 우리를 다치게 하는 일은 없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내 걱정거리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내 현실과 내 우주를 믿는다. 내 사랑을 믿는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 나를 사로잡고, 잡아먹을 것 같았던 그런 어둠과 불안을 붙잡지 않고 흘려보낸다. 뜨거운 햇살 아래서 모두 태웠고, 부드럽고 미지근하고 포근한 안다만 해에 모두 씻겨냈다. 파도에 넘실넘실 따라 모두 지나갔다. 퍼붓는 비에 모두 씻겨 내렸다.
지금 듣고 있는 이 노래가 이 여행을 마무리하는 제목이자 음악이 된다. long life. 비행기 타기 전, 내가 급히 애플뮤직에 내려받은 앨범이 wishful thinking이라니 !
나는 용감해지길 선택했다. 그 생각만으로 나는 용감해졌다 ! 그리고 그 용감함은 내 삶으로, 내 행동으로 드러날 거야. 지량도 그 안에서 더 든든함을 느꼈으면, 내 사랑이 내 안에서 안식을 얻었으면 !
나의 위시풀 띵킹 - !
홍섬에 가기 전날, 나는 날씨가 걱정되어 열심히 자연의 정령에게, 대지의 신에게 기도했다. 우리의 여행이 안전할 수 있게, 비가 오지 말라고까진 못하겠으니, 바다가 안전하기만을 기도했다. 그리고 홍섬 가는 날. 섬 투어를 하는 내내 비는 억수로 내렸는데, 바다는 정말 온화해서 배를 타는 것이 하나도 무섭지가 않았다. 우주는 정말 내 기도를 들어주는구나. 더 솔직하게 진짜로 내가 원하는 것을 적극 기도해야겠구나.
나 자신을 과소평가한 것인지, 신을 과소평가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늘 왜 원하는 것을 끝까지 빌지 않았을까. 이제 더 크게, 진짜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기도하기로 했다. 진심으로 내가 바랐던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보기로 했다. 너무 오랫동안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들을 참고만 살았다. 참는 것 말고, 만족하는 법을 이제는 배우고 싶어. 늘 갈망하거나 참는 것이 아니라, 풍족함을 느끼고, 만족하는 삶을 살고 싶어. 욕심도 모두 자연스레 비워지고, 무엇도 바라지 않는 삶으로 도달하기 이전에 나는 바라는 것이 충만하게 이루어지는 삶을 경험하고 싶어.
생각과 기도를 여러 번 고치지 않고, 진짜로 튀어나오는 마음과 말을 그대로 바라보기. 여행 중에 여러 가지를 배웠다. 지량은 여행 중에도 내게 하고 싶은 것 다 하라고 해주었는데, 진짜로 그렇게는 안될 것 같아서 본심과는 다른 조금은 더 적당하지만 애매하게 맘에 드는 것을 선택을 했다가 괜히 아파지고, 후회하는 일들이 있었다. 그렇게 또 배웠다. 쉽게 배우는 법은 늘 없어. 에휴. 5살짜리 어린아이가 하는 단순하고도 솔직한 말들이 언제고 나를 다시 깨우치게 한다. 고마워.
There exist vast oceans of reality of which we remain almost entirely unconscious and yet can sometimes glimpse with peripheral or dimmed vision. To the curious this first foggy awareness triggers excitement and wonder, and even a hint that we could get closer if we surrendered the safety of our secure little ego.
'Child born of an eggshell'
물병자리 7(6° - 7°)낡은 방식과 기준으로부터의 자유과거의 전통을 깨는 완전히 새로운 돌연변이가 발생하면 극적인 변화가 발생합니다."전통과의 단절"조상의 지혜는 우리의 진화 과정을 주도하며, 이를 통해 우리 종족은 여러 세대에 걸쳐 매우 느리게 고차원의 의식을 발달시킵니다. 그러나 또 다른 발전 과정 또한 작용하는데, 양자적 전환, 즉 우리를 매우 갑작스럽게 새로운 의식으로 이끌어 주는 혁명적 돌연변이가 발생할 수 있으며, 우리는 더 이상 낡은 방식과 그 제한된 이해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영감을 받아 완전히 새로운 현실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본질은 영이며, 그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없습니다.
달걀의 상징은 다양한 문화에서 흔히 발견되며, 매트릭스라는 개념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신체적 특성의 별가루, DNA에 담긴 유전 암호, 그리고 시대정신과 지역 지정학적 현실의 미묘한 형성과 같은 영적, 물질적 영향의 조합을 통해 개별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이 모든 요소를 하나의 순간의 진술로 하나로 묶는 것은 본질적으로 우리 존재의 매트릭스입니다.달걀 껍질은 우리를 제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준비되었을 때, 우리는 깨어납니다. 그때까지 우리의 뿌리와 환경의 윤곽은 제약하기보다는 양육하는 데 더 많은 역할을 합니다.우리는 소속감과 보호받고 있다는 확신으로 지탱됩니다.처음에 우리는 그 보호의 원천을 집, 어머니, 공동체, 그리고 지구 기반의 안전으로 외부적으로 인식합니다. 우리가 성숙해지고 자각함에 따라, 우리는 본질적으로 파괴될 수 없고 부패할 수 없다는 더 크고 더 신나는 진실을 알게 됩니다.본질은 영이며, 그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구성 요소로 분해되거나 파괴되거나 타협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본질과 조화를 이룰 때마다 우리는 위험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집니다. 이는 우리가 세상에 가장 높은 열망을 투사할 때마다 일어납니다. 직관에 어긋날 수도 있지만, 우리는 가장 원대한 꿈을 향해 맹목적인 열정으로 질주할 때에만 진정으로 안전합니다.자아는 양육하는 달걀 껍질에서 깨어나야 발견되지만, 완전히 고무된 열정 속에서만 다시 잃어버립니다. 다소 놀랍게도, 자아는 따라서 더 높은 차원, 즉 평범한 현실을 넘어선 열정적인 차원에서 발견됩니다.이러한 순진한 상태는 결코 쉽게 접근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절대적으로 두려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불완전한 시도는 자기주장적이고 자기실현적인 존재 상태보다는 안정감과 성취감을 위해 외부의 힘에 의존하는 건강하지 못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방금 글을 올리고 나서 뽑은 사비안 오라클...미소가 지어지는 그림이었다.
훌쩍 낮아진 기온과 함께 하늘이, 공기가 무겁게 느껴지는 날. 누군가 태어난 날과 죽은 날들을 기념하는 나날이 계속 되고 있다. 9월과 10월.
오늘은 천칭자리에서 신월이 뜨는 날이다. 무언가 다른 느낌이 들어서 이런 저런 소식들을 살펴보는데 마침 그렇단다. 몸은 어쩌면 점점 노쇠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예민하고, 솔직하고, 지혜로워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혜롭다는 말이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고, 그것을 생각하면서 단어를 썼으니 반은 맞았겠지 뭐. 어떤 것들을 버틸 수 있는 힘이 없어지고 사그라드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맞지 않는 것들은 더 솔직하게 반응하는 몸이 되는 것일 수도 있는거지. 그렇게 말을 하면 그런 것이겠지.
강한 두가지 마음이 작용하는 날이다. 균형의 천칭자리의 신월이라서 그런걸까. 운명은 내가 만들어나가는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것을 더 자신있게 적극적으로 구하며 사는 것. 그런 다짐을 하며 더 용기를 내고 담대하게 걸음을 걷는 하루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이 무거운 공기를 그대로 느끼며 추욱 가라앉고 싶기도 하다. 추욱-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 무게를 온전히 느끼고 싶다. 그것은 위험한 일일까?
우연히 발견한 글. 소마틱 관점에서의 연속적 하품에 관한 내용인데, 너무 신기하다. 어떤 특정한 시기에 연속적으로 하품이 나는 경험을 한적이 몇번 있는데, 정말 과장이 아니라 계속 계속 연달아서 하품이 나왔다. 과각성 되어있던 신경계가 안정모드로 전환되면서 일어나는 현상일 수 있다고. 안전 감각이 복귀되는 신호.
일부 사람들은 하품을 하고 직후에 감정이 올라오거나 눈물이 나기도 한다고. 아 하품하고 눈물이 나는 것을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구나. 하품에 대한 많은 궁금증이 풀렸다. 아니 이제까지 보았던 하품에 대한 어떤 이야기보다도 명쾌해.
이 글을 읽어서 그런지 하품이 계속 나오고 있다.
https://blog.naver.com/onieum/223969506802
8월 23일엔 처녀자리에서 새로운 달이 뜬다. 한 달에 신월이 두번 뜰 때 블랙문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블랙문, 레드문, 블루문처럼 특별한 이름이 붙는 달에는 그 자리의 기운이 더 강해진다고 한다. 마침 처녀자리인 나는 더욱이 강한 기운을 받게될 것 같다. 이번주는 정말 그렇게 흘러갈 것 같다.
(참고 : https://blog.naver.com/yandina/223975720999)
23일에 마침 일정이 많네.. 약초들을 탐험하러 필드에 나가고, 오래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고... 나를 치유해주는 것들을 찾고 도움받고 감동받고... 또 누군가를 치유해주는 날이 될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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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지고 있는 타로와 오라클로 전생 리딩을 해보려고 카드를 뽑아보았다. 나는 큰 상실과 고통을 겪었던 사람이었다. 새로 시작하기 위해서는 완전히 끝내야 함을 체화했던 사람. 무거운 짐을 짊어 지고, 책임과 의무 속에서 스스로 희생했다. 자신의 손으로 무언가를 길러내거나 만들어내는 과정을 다 끝내지 못했기에 그 과제가 현재의 삶에 영향을 준 것 같다. 꾸준한 훈련과 수련, 장인적 작업에 몰두하게 되는 것. 그리고 전생의 상실과 좌절은 지금까지 감정적 패턴으로 이어졌고, 지금까지 결핍과 후회 같은 감정을 반복적으로 느끼는 성향을 갖게 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동시에 그 슬픔을 예술적 깊이로 변환하는 능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생에 내가 치유하고 통합할 메시지는 새로운 감정, 사랑, 관계, 창조성의 원천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전생에서 결여된 '감정적 개방'과 '순수한 사랑의 경험'을 이번 생에서 열어야 하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오라클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 l'acceptation féconde라는 카드를 뽑았다. 이 또한 '받아들임'이 키워드다. 받아들이고 흘려보내는 힘, 그리고 그 안에서 풍요와 사랑을 키우는 게 내 과제다.
오랜만에 정말 많이 아팠다. 일주일도 넘게 내리 아팠다. 그동안의 스트레스와 독소가 쌓이고, 그것들을 내보내야하는 때였던 것 같다. 내 몸이 그렇게 해준 것이다. 어서 이것들을 청소하자 ! 많이 많이 아팠고, 많이 비워냈다. 한창 아프고 비워지고 있을 때에는 너무 아파서 호흡에 신경을 쓸 수가 없었는데, 좀 나아지고 이번주 월요일에 오랜만에 요가를 가서 수련을 하니 몸이 풀어지고 호흡하는 감각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고 나니 내가 어떻게 호흡하고 있었지? 하는 질문이 들었고, 비움과 호흡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것들을 같이 나누고 싶어졌다. 이걸 주제로 리빙룸을 열어볼까 생각 중이다. 그런데 어떤 내용들로 채울 지는 모르겠다. ㅎㅎ
7월이 가까워지면서 서서히 내게 다가오던 신호들. 내가 느끼는 감정과 변화들. 그 모든 것들이 정리되는 날이다. 내가 느끼던 것들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 일단 너무 감사하고, 안심하게 된다. 지금 무언가가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 내가 지금 잘못하고 있다는 그 느낌이 강하게 들기 시작한 것이 얼마전인데, 그것은 천왕성의 정확한 신호라고 한다. 천왕성은 질서가 파괴되면서 오는 혼란, 해방, 반항 그리고 통찰까지 관장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 7월에 천왕성이 쌍둥이자리로 7년만에 돌아오게 되는데, 이 시기는 정말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는 때라고 해석된다는 것을 알았다. 내 인생이 또 다시 정말 커다란 탈피를 이루게 되는 시기가 다가온 것 같다.
요즘 자전거를 타면서 경사가 진 언덕을 내려올 때 느끼던 그 해방감이 갑자기 번뜩 떠올랐다. 내가 요즘 그 순간에 해방감을 느끼게 된 것, 그 짧은 정말 잠깐의 해방감, 모든 것이 가볍고 시원하고 자유로운 그 느낌이 천왕성이 나에게 앞으로 줄 선물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정말로 그랬다. 오늘도 그 언덕을 내려오면서 그 해방감을 완전히 느끼면서 왔는데 지금 7월 처녀자리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다가 이 천왕성이 쌍둥이자리로 진입하는 것에 대한 내용을 알게된 것이다. 그 해방감이 이 천왕성과 완전히 마주친다. 10하우스를 흔들어놓는다고 했는데 10하우스는 직업과 기술, 소통 등의 영역이다.
오늘 새벽 지량과 오랜만에 재밌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잠에 들기 전에는 내가 꺼내던 그 질문들이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지, 내가 단한번도 '제동'을 풀고 끝까지 가본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지량은 내게 그것이 내가 해결해야할 숙제인 것 같다고 말해줬다. 그렇다. 그게 나의 숙제이구나.
너무 속이 시원하고, 가뿐해진다.
비가 오기 시작했다. 늦잠을 실컷 잤다. 꿈도 많이 꾸었다. 쓴 술과 아주 달콤한 술을 마셨다. 잠깐 깨어나는 찰나에 지량이 깜짝 놀라며 좋은 소식을 알려주었다. 오랜만에 기쁜 소식. 기대하고 있던 결과가 드러난 날. 우리는 축하하는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무겁고 어두운 날이라서 그런 것일까, 경신일이라서 그런 것일까 저녁부터 너무 졸리고 피곤하고 몸이 무거웠다. 나는 그렇게 흐물흐물하다가 기운을 차려보려고 요가를 했다. 그런데도 기운이 나질 않았다. 기분이 한참 좋지 않다가, 신기하게도 조금 전에 내가 옛날에 썼던 일기를 보고 기분이 좋아졌다. 옛날의 내가 나를 위로하네. 모든 기록이 너무 소중하다. 내가 보낸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또 언젠가의 나를 살리기 위해서 오늘도 기록하고 싶어졌다. 기적이란 것은 그런 것이구나. 언젠가의 내가 마주한 기적과 같은 날이 오늘의 나를 다시 살게 한 것이다. 그 일기를 읽은 누군가도 그런 안도와 기쁨을 느꼈으면 좋겠네. 계속 그 기적이 반복된다. 그렇게 영원히 살아있는 하루. 영원히 살아있는 기적.
이상하게도 자정이 되어가니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다. 경신일은 정말로 졸린 날일까. 깨어있어야 하는 시간이 지나가니까 맑아지네. 오늘은 어떤 포털이 열리는 날이라고 했다. 채널의 날이자, 경신일이자, 포털이 열리는 날. 오늘을 기점으로 어떤 방향성이 정해진다던가, 에너지가 변화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고. 아까 저녁때까지만 해도 너무 머리가 무거워서 그런 것은 느껴지지 않아서, 아니 너무 무거워서 오히려 내가 다시 무거워지는 것은 아닐까, 무언가가 닫혀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살짝 들었다. 신기하게도 이제 그것들이 모두 걷히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모든 것들이 무거운 와중에도 내가 느끼는 이 변화들이 이 찰나와 같은 시간들 속에서도 선명하게 느껴지네. 그저 다가오는 것들을 마주하는 수밖에 없다. 어떤 문이 열린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아주 쓴 술을 마시고 나니, 이전엔 내가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맛없는 것 같았던 술이 정말 너무 달콤하고 맛있었다, 오늘 꿈에서.
다시. 기꺼이.
지량의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놓고 오랜만에 명상을 했다. 그러다가 마지막엔 요가를 했다. 어제 요가원에서 했던 플로우를 조금 반복하다가 마지막엔 차크라아사나로 마무리를 했다. 어제보다 조금 더 둥근 바퀴를 만들 수 있었다. 이 움직임들을 마치고 나니, 드디어 조금 정신이 맑아진 것 같았다. 하루종일 졸리고, 힘이 들었다. 거짓된 무기력함과 무력함이라도 그것이 느껴지는 때가 온다면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 또한 제 나름의 흐름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멈출 수 없는 불안에 빠지곤 한다. 그것들이 느껴지는 대로 바라보니 구름처럼 움직이고 흩어지다가 사라졌다.
어떤 깨달음과 지혜, 가르침이라도 그것이 언어로 전달되는 때에는 이 세상의 법칙과 논리에 따라 그 내용이 생략되거나 도식화되거나 일반화되는 일이 생긴다. 어떤 깨달음도 온전히 건네질 수 없다는 것을 요즘 많이 느낀다. 체험하고 느낀 것을 말로 전달하려는 일 자체가 어쩌면 어리석은 일일 수도 있겠다. 이 또한 어떤 미술 작품들의 제목이 '무제'가 되는 것과 비슷한 이유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체험을 전달하는 말과 글 자체가 어떤 깨우침을 주지는 못하겠지만, 그 자체가 또 다른 체험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아름다운 것, 좋은 것을 나누는 것은 소중하고 가치있는 일일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중에 가장.
평안을 지나 더 크고 넓은 사랑에 닿고 싶다. 그것을 위해서는 내가 다시 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가만히 있어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아주 피곤하고도 복잡한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이니, 그 흐름에 올라 흐르다보면 그 안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을 보고, 느끼게 된다. 그 외의 것들을 더 탐구하고, 사랑하고자 하는 것은 멈추게 된다. 마음 닦는 일을 멈추게 된다.
가까운 이들을 위해 하는 기도와 내가 만난 적도 없는 이를 위해 하는 기도가 같아지기를. 그만큼의 사랑과 연민이 내게도 생기기를.
왠일인지 일기를 쓸 시간이 없다. 저녁이 되고 집에 도착하면 밥을 챙겨 먹고 금세 졸려져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오늘은 저녁에 해야할 일들이 좀 있어서 커피를 벌컥 벌컥 마셨더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건 내가 원했던 부작용이 아닌데 !
느긋-하게 작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은 요즘이다. 새로 산 카메라도 계속 갖고 놀고 싶은데 주말만 기다리고 있다. 그치만 주말도 너무 바쁘다. 도자기, 판화...! 이래저래 밀린 일들.
오늘은 정말 잊으면 안되는 일이 있어. 편지를 써야 한다. 이건 미룰 수 없는 일이다. 매일 필사를 했던 일상이 떠오른다. 어떻게 매일같이 해냈을까? 돌이켜보니 대단한 일이다. 이건 한달에 한 번 보내는 편진데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오는 것 같지. 그렇다고 편지를 쓰는 것이 숙제처럼 느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아주 설레고 기쁜 일이다. 하지만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담고 싶은 마음에 고민을 많이 하고 연습을 꼭 하고 편지를 쓴다.
지난 편지에서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느냐고 물었던 친구에게 뭐라고 답장을 쓸지 모르겠다. 너무 어지러운 상황이라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야할지, 소식은 알고 있을지, 어떤 생각들을 갖고 있을지, 내가 아무렇게나 이야기를 펼쳐도 되는지 고민이 된다. 대신에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친구가 추천해 준 책이 있는데 핑계를 대자면 시국이 심난하여 책을 다 읽지 못했다. 천천히 읽어야지. 여행을 가기 전에는 다 읽게 될까. 그렇지 못하면 비행기 안에서 단숨에 읽을 순 있을 것 같다.
얼마 남지 않았으면서도 멀게만 느껴진다. 겨울 휴가. 그것만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도 멀어보여서 가슴이 답답하다. 가벼운 옷을 입고 가벼운 몸으로 기도하고 요가하고 사진을 찍고 싶다. 설레면서도 약간은 울적하다. 이렇게 쓰고 나니 조금 더 울적해진 것 같다.
클로드 ai 에게 내 블로그 글을 보여주고, 문체를 따라 일기를 하나 써달라고 부탁했다.
오늘 밤, 담요를 온몸에 두르고 앉아 이 글을 쓴다. 차가운 공기와 따뜻한 내면, 그 경계에서 나는 그저 존재한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모든 것.
정말 재밌네. 무언가가 녹아내리고, 다시 모양을 갖추는 그 과정이라. 지난날의 딱딱했던 껍질들이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한편 어떤 껍질들은 새로이 생긴다는 것이 이 일기와는 다르게 쓰고 싶은 점이다. 요즘 내가 받는 스트레스와 불안과 걱정들은 그간 내가 경험하지 않았던, 아니 내게 조금은 멀리 있어서 멀찌기서 살짝 끄트머리만 보이던 것이 나타난 것만 같다. 에고고 - 그런 것은 정말 싫다. 어쩌겠어- 받아들여야지 하다가도 다시 싫고 그렇다. 그렇다고 내가 불안에만 쌓여있는 것은 아니고 대체로 아주 평안하다. 오히려 그것이 마음에 안들기도 하다.
어제 힙노시스테라피의 공연에 다녀왔다. 짱유는 폭발적인 에너지로 무대를 이어갔고, 관객들도 그 에너지를 함께 느끼고, 또 자신들만의 에너지를 방출하며 그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짱유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공연에 와서 똥을 투척하라고 했다. 그간 살면서 받았던 모든 스트레스들을 여기서 다 풀고, 그 똥을 자기한테 다 던지라고 했다. 똥은 자기에겐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그 말은 정말 멋있었다. 그리고 그간 받은 모든 스트레스를 여기서 다 풀고, 나가서 다시 새로운 스트레스를 받으라고 말했다. 그 말에 모두가 웃었다. 모든 스트레스를 여기서 다 풀고, 나가서 새롭게 다시 깨끗한 마음으로 다시 살으라고 말하는 줄 알았더니, 새로운 스트레스를 다시 받으라고 했다. 같은 말이긴 했다. 표현이 다를 뿐. 마음에 있는 쓰레기들을 정리하고, 비워내면 그 비워진 상태로 깨끗하고 말끔한 상태로 살아가지는 것이 아니라 비워진 자리에 또 다른 것들이 채워지고 먼지가 쌓이는 그런 모습. 절대로 내가 어떤 트라우마든, 감정이든 비워낸다고 해서 내가 이제 더이상 부처님처럼 살아가지는 것은 아니더라. 다시 무언가가 채워진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여느 영성 연구자나 수행자들이 하는 말과 결국에 똑같은 말을 짱유가 하고 있었다. 그렇게 보면 세상 살이는 그렇게 어려울 것도 없다. 짱유의 그 뜨거운 공연장처럼 쓰레기를 비워낼 수 있는 그런 통로가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기도 하고 말이다.
몸이 자꾸 붓는다. 불편하고, 그 불편함이 느껴지면 기분도 좋지 않다. 요즘 요가를 하면서 몸의 순환이 더 활발히 이루어져 막혀있는 것들이 풀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통증이 많았던 주말이다. 입 속에 난 구내염으로 인한 목과 턱쪽의 통증, 약간의 근육통, 그리고 오늘 습한 날이라 그런지 관절마다 느껴지던 뻐근함과 통증. 스트레스로 인한 것들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요즘 내게 새로이 쌓이고 있는 쓰레기들일까. 요즘은 통 명상을 하지 않았다. 조금 더 일상 속에서 틈틈이 아주 짧게 하고 있기는 하지만, 깊이 들어가진 못했던 것 같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요가든 명상이든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그리고 유난히도 출근하기 싫다는 마음도 함께다 !
고양이들을 보고 왔다. 미셸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나를 반겨준다. 그것이 참 감사하다. 감동적인 고양이. 까미유를 만나는 것은 매일이 다르고 새롭다. 까미유는 어릴 때 나랑 헤어지게 된 것이니까 나랑 충분하게 애착형성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까미유랑 어떨 때는 참 가까운 것 같다가도 어떨 때는 아주 멀다. 그게 항상 가슴이 아프다. 지난 번만 해도 까미유가 내 머리와 얼굴을 핥아주었는데 오늘은 내게서 거리를 유지하는게 느껴져서 서운하고 서글펐다. 미안해. 아른거리는 까미유의 얼굴. 보고싶은 고양이들. 모든 순간 우리 고양이들이 그립다.
고양이들이랑 놀고 있는데 편지가 도착했다. 월말이 되면 받는 편지가 있다. 한달에 한번씩 편지를 주고 받는 친구가 생겼다. 지난 편지보다 글씨가 더 예뻐졌다. 내게 보내는 말들에 관심과 애정이 생긴 것 같아 괜히 뿌듯하고 기쁘다. 편지 마지막에는 내가 항상 '세라 드림'이라고 남기듯이 똑같이 '00 드림'이라고 써 있었다. 원래 마지막에 그런 걸 남기는 친구가 아니었는데, 내가 쓴 편지들에 영향을 받는 것일까. 모든 사람들에겐 좋은 어른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들에겐 어머니가 필요해-라는 노래가 있는데 그게 어쩌면 이와 같은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쓰는 말투와 글씨체가 누군가에게 보고 배울만 한 것이 된다는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생각한다. 그런 어른이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 모든 어린 시절에는 그게 필요하다.
내가 맺고 있는 모든 관계 속 내 역할에 대해서 떠올려보게 된다. 까미유에게, 새로 사귄 친구에게, 오래된 친구에게 나는 어떤 모습과 어떤 역할을 하고 있지. 점차 내가 관계 속에서 나눌 수 있는 것들이 내가 살아온 시간만큼 많아지고, 풍성해지는 것 같은데, 얼마 전에 그런 것들도 결국엔 내 마음과 몸이 건강하고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있었다. 너무 피곤했던 날에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누군가가 있었는데 말이 하나도 나오질 않았다. 다른 날의 나였다면 해주고 싶은 말과 질문들이 많았을 것 같은데 말이다. 어쩌면 이것을 위해서라도 내가 계속 건강하게 에너지를 유지하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직 그것을 위해서만이라도. 글을 쓰면서는 이런 말이 튀어나온다. 사실 아무런 동기나 이유없이 나를 건강하게 가꾸고, 나를 사랑하는 일은 쉽지는 않다. 적어도 나에겐 말이다.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조금 더 친절하기 위해서 나는 내 건강을 신경쓴다. 그런데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는 단순히 내가 아프지 않은 상태를 넘어서서 건강해야 한다.
이런 저런 마음들이 약간 바빠진 것일까 하는 질문이 들기도 한다. 또 그냥 알아차리고 바라보는 수밖에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