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타고 창작소에서 출발해 증심사 지구 입구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무등산은 확실히 쉬운 산은 아닌 것 같아서 어제는 가볍게 당산나무까지만 천천히 가려고 했다. 날이 많이 시원해져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무등산의 기운인 건지, 바뀌어버린 계절 때문인 건지 머리가 단번에 맑아지는 것 같았다. 곧 만나게 될 당산나무의 모습을 상상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갔다. 가는 길은 그리 어렵진 않았다. 다람쥐를 정말 많이 봤다. 나비도. 새도. 우리나라에서도 해외에서도 청설모는 최근까지도 많이 봤던 것 같은데, 다람쥐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정말 너무 작고 귀여웠다.
당산나무까지는 그래도 금방 도착했다. 커다란 기둥과 굵게 땅으로, 하늘로 뻗어있는 가지들이 너무 튼튼했다. 나는 당산나무 주위를 빙 돌며 인사를 했다. 나무가 있는 곳은 그래도 평평한 쉼터처럼 너른 자리가 펼쳐져 있었고, 벤치와 큰 평상들도 있었다. 나는 평상에 홀로 앉아 김밥을 먹었다. 그래도 산에서 밥을 먹을 땐 고수레해야지 않겠어. 아주 작고 얇은 오이 조각 하나를 바쳤다. 아무래도 요즘은 아무렇게나 안전하게 자연에 바칠만한 공물이 찾기 어려우니 그냥 기분만 내기. 커다란 나무 앞에서 따스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김밥을 꼭꼭 씹어 다 먹었다.
다음번에 또 올 테니 오늘은 이렇게 가볍게 돌아가려고 했지만, 왠지 아쉬웠다. 날씨도 좋고, 이렇게 여기까지 올라온 것이 약간은 아깝기도 하니까 중머리재까지 가보자. 지도를 보면서 체크해 둔 몇 포인트 중의 하나다. 당산나무에서 가까우면서도 너른 풍경을 그래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30분 정도 더 가면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내 걸음이 그렇게 빠르지 않은 점도 있고, 그리고 사실 그렇게까지 가까운 거리는 아니어서 거의 1시간이 더 걸렸던 것 같다. 올라가면서 약간 후회하기도 했다. 하나도 힘들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힘이 들었다. 땀도 꽤 났지만, 남들처럼 줄줄 흘리며 오히려 열을 배출해 내는 체질이 아니라, 얼굴이 역시나 나는 아주 벌게졌다. 그치만 어쩌겠어. 되돌아갈 순 없었다. 끝까지 가야지. 생각해 보니 정말 오랜만의 등산이다. 최근에 지량과 인왕산에 다녀오긴 했지만, 뭔가 이렇게 큰 산은 오랜만이었다. 내가 가는 코스가 아마 그랬던 것 같은데 풍경이 그렇게 다이나믹하게 펼쳐지진 않았다. 그래서 더 중머리재까지 가는 길이 멀게 느껴졌던 것 같다. 무등산은 생각보다 훨씬 더 규모가 큰 산인 것 같았다. 수많은 바위 조각을 밟으며 계속 올라갔다. 분명 계속 다른 모양들을 보고 있지만, 커다란 풍경 속에 있으니 쉬이 내가 보는 장면들이 변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도 가면서 계속 새와 다람쥐들을 잔뜩 만났고, 산의 정령 같은 나무들을 많이 봤다. 확실히 무등산은 커다랗다. 그곳에 발을 딛게 되는 순간 그걸 느낄 수 있는 산이다. 무등산이 품고 있는 모든 것이 느껴진다. 그렇게 오르다가 딱 중머리재에 도착하기 직전에 약간 길이 가팔라진다. 그 끝에 중머리재의 너른 풍경이 펼쳐진다. 너무너무 아름다웠다. 탁 트인 하늘이 보이고, 고갯마루가 아주 넓다. 그래서 그게 스님의 머리와 같다고 해서 이름이 중머리재라고 한다. 사진을 찍고, 벤치에 앉아 목을 축이고 휴식을 취했다. 잠깐 누워서 머리의 열도 식히고, 다리도 풀어주고...
내려가는 길에 증심사에 들렀다. 대웅전을 빙 둘러 걸었다. 대웅전에 외벽에 그려진 벽화를 보며. 그리고 대웅전에 들어가 잠시 머물렀다. 삼배를 올렸다. 정말 고요하고 편안했다. 사원에 들어와 있으면 그 모든 신성이 우리를 감싸안는 기운이 강하게 느껴진다. 압도하는 기운이 아니라, 모두를 감싸안는 그런 기운 말이다. 지난해 타이베이에서 갔던 지산암 혜제궁에서의 순간이 떠올랐다. 아마 내가 잊을 수 없는 기도의 순간 중 하나다. 기다란 향 일곱 개를 들고 사원에 있는 각각의 일곱 신 앞에 찾아가 향을 올리고 기도를 했다. 거긴 꼭 또 찾아가 보고 싶은 곳이다. 아무튼, 잠깐 증심사 대웅전에 앉아 있는 동안 그 기억이 겹쳐졌다. 잠깐 나무 마룻바닥에 앉아 쉬었다가 나왔다. 산에서 거의 네다섯 시간을 보냈다. 중간중간 쉬기도 했고, 사진도 찍고 하니 시간이 금방 간다.
무등산에 다녀온 여운을 충분히 느낄 새도 없이 창작소에 도착해서 바로 사람들과 어제 새로 열린 전시 오프닝에 가기로 했다. 광주에 와서 사실 너무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많이 만나고, 인사하고 하느라 힘들기도 했는데 어제는 아주 재밌게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새로 레지던시에 들어온 작가들이 있는데 브라질에서 온 타이스와 스페인에서 온 에나르와 이야기가 하는 것이 웬일인지 편안하고 재미있다. 어쩌구 저쩌구 나도 모르게 엄청 많이 떠들었다. 있는 동안 사람들을 마주하는 것이 버겁기만 한 것은 아닐까 걱정했었는데... 그래서 늦게까지 같이 떠들고, 식사하고... 우리 셋은 밤거리를 함께 걸으며 창작소로 돌아왔다. 나름 뿌듯한 하루였다. 여러 가지 기운들이 한데 뭉쳤다. 내 몸에. 전날 양림요가원에서 했던 수련의 여운과 근육통이 몸에 계속 남아 있었고, 무등산의 기운도, 그리고 새로 만난 친구들과의 대화와 웃음소리도 다 한데 어우러졌다. 웬일인지 목소리가 잘 나오는 날이었다. 몸은 아주 피곤하지만서도 상승하는 기운이 느껴지는 날이었다. 그리고 일찍 잠에 들었다.
알람을 맞춰놓고 오늘 아침 8시 15분 수련에 가기로 했다. 더 자고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벌떡 일어나 요가원으로 향했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 그래도 2년간 꾸준히 요가를 했는데도 아사나 이름들은 모르겠다. 늘 새로운 마음으로 수련한다. 새로운 아사나를 마주하며 아직도 여긴 열리려면 멀었구나-하고 생각되는 몸의 구석구석을 발견한다. 그래도 그 하나하나에 너무 괴로워하거나 집착하지 말자. 그 과정에서 편안하게 호흡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깨달으며 수련한다. 몸이든 마음이든 몰아붙이지 말고, 편안하게 호흡할 공간을 찾는 것이다.
오늘은 그렇게 아침 수련을 하고 집에서 하루 종일 쉬었다. 해가 많이 내려오니 그제야 몸이 좀 깨는 것 같았다. 내 방으로 들어오는 오후 다섯 시 반의 햇살이 너무 아름다워서 벽에 비친 햇살을 한참 사진 찍었다. 폴라로이드로, 문주가 빌려준 똑딱이 필름 카메라로, 그리고 내 후지필름 카메라로…. 필름엔 어떤 모습으로 담겼을지 아직 알 수 없지만, 폴라로이드 사진 중 하나 아주 맘에 드는 것이 생겼다. 요즘 내가 매일같이 찍고 있는 순간이 있다. 아마 나중에 이 사진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질 것 같다. 잠들기 전에 늘 그 순간들을 상상해본다 요즘은. 이다음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꾸미고 싶은 공간과 시간. 내가 무등산에 올라 느꼈던 감각, 혜제궁 안의 신들을 마주하며 느꼈던 감각같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어딘가를, 무언가를 만드는 상상한다. 각자의 사원에 들어서는 순간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