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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세상에 가져올 수 있는 도움. 나 자신이 올바르게 설 것. 나 자신을 위로하고, 나 자신에 가장 관대할 것. 왜 지금 관대함을 떠올리는 순간에 그 생각이 날까? 그때의 나를 용서해 주라는 의미일까? 왜 그렇게 나를 미워하고 벌줬을까? 내게 일어나는 모든 불행과 고통은 내가 지은 죄에 대한 벌이라 여겼던 지난날들이 믿어지지 않는다. 지금은 죄와 벌 따위는 생각지 않는다.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알았다.
세상에 보이는 아픔들, 두려움, 고통, 모두 내가 내 내면의 마음이 보여주는 거울이었음을 안다. 나 스스로에게 더 관대해지자 세상이 비극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해결해야 할 일들은 물론 있지만 그것이 이 세상을 정의하지는 않는다.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은 언제나 존재한다. 밝은 면만 보는 것도 방법은 아니다. 그냥 그 밝음과 어둠이 혼재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 된다.
내게 일어나는 나쁜 일이 내 삶을 그대로 고정하지 않는다. 그것이 나를 정의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모든 것이다. 나는 빛이고, 그림자다. 그림자는 그림자다. 무언가를 더 크게 생각할 것도 없지. 너무 모든 빛에 압도될 필요도, 과분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아주 평안했다. 이번 여행은. (2024.9.22)
여행 마지막 날 뽑았던 오라클과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썼던 메모. La druidesse de la générosité . 관대함을 떠올리는 순간에 함께 떠오른 기억. 신기하게도 여행이 끝나자 떠올렸던 그 기억과 연관된 인연과 연락이 닿았고, 나는 다시 오랜만에 올라오는 감정에 휩싸이다가, 이제 그걸 다시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뽑았던 카드가 하려던 말이 그것이었을까. 나는 아직 더 나를 사랑하고 더 용서해야 하는가 보다. 아마 그런 과제가 내게 남아있었던 것 같다. 참 이 우주의 원리가 신기해.
오늘은 꿈에 엘로디 집을 가는 버스를 잘못 탔다. 더 지도를 살펴보면서 맞는 버스를 기다리면 되는 것이었는데 웬일인지 마음이 급하여 정류장으로 오는 버스를 대충 탄 것 같다. 나는 무임승차를 했다. 핸드폰으로 구글맵을 보는데 표시해 둔 엘로디네 집에서 멀어져서 나는 황급히 버스를 내렸다. 내리니 엘로디집에서 한참 멀어졌고, 그 동네는 마르세유에서 내가 절대 가지 않는 동네였다. 북부 쪽. 치안이 좋지 않기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나는 겁이 났다. 그런데 예상외로 동네가 좋아 보였다. 날씨가 좋았고, 밝은 느낌이었다. 왠지 팬시한 가게들이 많았다. 멋진 서점, 귀엽고 맛있는 빵집들. 나는 빵집 한곳에 들러 바게트도 하나 샀다. 긴 바게트였다. 그 빵집엔 한국인들도 오곤 했는지 한국어도 쓰여 있었다. 모든 게 의외였다. 그래도 길에 집이 없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였는데, 내가 실제로 마르세유에서 종종 보았던 누군가와 참 닮은 사람이 있었고, 그는 칼을 들고 있었다. 왕좌의 게임에 나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스스로에게도 위협이 되고, 남들에게도 위협이 되는 칼의 모습이었다. 나는 걸어서 엘로디네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꿈을 쓰다 보니, 날씨가 좋았고 밝은 느낌이 났는데, 그 전에 비가 왔었다는 사실이 생각이 났다. 그 전에 비가 내렸고, 나는 내가 쓰고 있던 우산을 상점에 잠시 내려놓았을 때 누군가가 훔쳐 가는 현장을 발견했다. 나는 소리를 쳤다. 나는 그 사람이 들었던 우산인지, 내가 전에 쓰던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비슷한 우산 하나를 들었고, 그걸 펼쳤는데 우산은 고장이 난 것 같았다. 잘 고정이 되지 않았다. 도로는 침수되었고, 땅이 푹 꺼져서 모두 모래에 몸이 빠져버린 것처럼 젖은 도로에 빠져버렸다. 목만 동동. 인도는 대신 딱딱하게 남아있었다. 길을 걸을 수 있었다. 나는 인도로 걸었다. 그러다가 아마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탄 것 같다.
오늘 이 꿈 이야기를 지량에게 하면서 내 무의식 속의 두려움들에 대해 이야길 나눴다. 내 안에 있는 두려움들. 내가 잘못 내려서 가게 된 막세이의 무서운 동네처럼, 막상 그 두려움에 들어서서 보면 사실은 별것 아니었던 것들일 수도 있어. 아마 그런 이야기를 보여주는 여정이었던 것 같다. 오늘의 꿈은. 그리고 나서 일기를 쓰려는데 여행에서 돌아오기 전에 썼던 메모와 뽑았던 오라클이 여기까지 이어지는 것 같았다. 내 무의식 속에 있는 두려움을 직면하고, 그 두려운 상황의 한가운데에 들어서는 것.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한 관용과도 이어지는 이야기였다. 적어도 내가 발견한 이야기로는 그렇다. 내가 깨달은 관용이란 그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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