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들을 보고 왔다. 미셸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나를 반겨준다. 그것이 참 감사하다. 감동적인 고양이. 까미유를 만나는 것은 매일이 다르고 새롭다. 까미유는 어릴 때 나랑 헤어지게 된 것이니까 나랑 충분하게 애착형성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까미유랑 어떨 때는 참 가까운 것 같다가도 어떨 때는 아주 멀다. 그게 항상 가슴이 아프다. 지난 번만 해도 까미유가 내 머리와 얼굴을 핥아주었는데 오늘은 내게서 거리를 유지하는게 느껴져서 서운하고 서글펐다. 미안해. 아른거리는 까미유의 얼굴. 보고싶은 고양이들. 모든 순간 우리 고양이들이 그립다.
고양이들이랑 놀고 있는데 편지가 도착했다. 월말이 되면 받는 편지가 있다. 한달에 한번씩 편지를 주고 받는 친구가 생겼다. 지난 편지보다 글씨가 더 예뻐졌다. 내게 보내는 말들에 관심과 애정이 생긴 것 같아 괜히 뿌듯하고 기쁘다. 편지 마지막에는 내가 항상 '세라 드림'이라고 남기듯이 똑같이 '00 드림'이라고 써 있었다. 원래 마지막에 그런 걸 남기는 친구가 아니었는데, 내가 쓴 편지들에 영향을 받는 것일까. 모든 사람들에겐 좋은 어른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들에겐 어머니가 필요해-라는 노래가 있는데 그게 어쩌면 이와 같은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쓰는 말투와 글씨체가 누군가에게 보고 배울만 한 것이 된다는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생각한다. 그런 어른이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 모든 어린 시절에는 그게 필요하다.
내가 맺고 있는 모든 관계 속 내 역할에 대해서 떠올려보게 된다. 까미유에게, 새로 사귄 친구에게, 오래된 친구에게 나는 어떤 모습과 어떤 역할을 하고 있지. 점차 내가 관계 속에서 나눌 수 있는 것들이 내가 살아온 시간만큼 많아지고, 풍성해지는 것 같은데, 얼마 전에 그런 것들도 결국엔 내 마음과 몸이 건강하고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있었다. 너무 피곤했던 날에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누군가가 있었는데 말이 하나도 나오질 않았다. 다른 날의 나였다면 해주고 싶은 말과 질문들이 많았을 것 같은데 말이다. 어쩌면 이것을 위해서라도 내가 계속 건강하게 에너지를 유지하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직 그것을 위해서만이라도. 글을 쓰면서는 이런 말이 튀어나온다. 사실 아무런 동기나 이유없이 나를 건강하게 가꾸고, 나를 사랑하는 일은 쉽지는 않다. 적어도 나에겐 말이다.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조금 더 친절하기 위해서 나는 내 건강을 신경쓴다. 그런데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는 단순히 내가 아프지 않은 상태를 넘어서서 건강해야 한다.
이런 저런 마음들이 약간 바빠진 것일까 하는 질문이 들기도 한다. 또 그냥 알아차리고 바라보는 수밖에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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