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4월 21, 2024

나는 이제 죽는다. 온몸에 힘이 빠진다. 숨이 빠져나가고, 모든 긴장이 덜어지고. 아아. 사실 난 언제나 죽는 것이 두렵지 않았어. 죽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던 나날도 있었고, 혹은 죽어도 이제 여한이 없을 만큼 행복한 순간에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지. 그런데 이제 내가 정말로 죽는구나. 마음이 가벼워지고, 몸이 점점 가벼워진다. 나는 이렇게 가벼워지고 싶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었나 봐. 이런 마음을 읽을 내 가족들에게 미안하지만,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크기도 했던 것 같아. 그렇게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숨이 모두 빠져나가자 나는 이제 죽었다.

나의 장례식이 열린다. 우리 엄마가 보인다. 엄마는 온몸으로 울고 있다. 너무나 가엽고 불쌍하고 귀엽게 울고 있다. 내가 많이 보아왔던 모습이다. 가여운 우리 엄마는 나에게 연신 미안하다고 내가 불쌍하다고 말을 한다. 내가 아픈 것을 잘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한다. 나는 엄마의 귀에다가 대고 ‘엄마 이제 다 괜찮아, 다 괜찮아. 정말 괜찮아.’라고 말한다. 아빠가 다가온다. 아빠는 뜨거운 얼굴로 눈물을 흘리며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모든 말들도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미안하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눈물을 흘린다. 나는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 아빠. 나는 아빠의 귀에다가 대고 말한다. “아빠, 나는 이제 괜찮아. 고마워 말해주어서.” 나는 마음이 편안하다. 그리고 내 동생들이 들어온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내 동생 오지은. 지은이도 눈물을 흘리며 정말 너무나도 슬픈 표정으로 내 앞에 선다. 나는 같이 눈물이 나온다. 너무너무 눈물이 난다. 내 사랑하는 동생 지은이. 너무너무 사랑하는 내 동생 지은이. 지은이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몇 번이고 다시 살 수 있었고, 너무나 재미있고, 언제나 위안이 되었다. 지은아 고마워. 나는 지은이에게 말한다. 너무너무 사랑한다고, 너무너무 고마웠다고, 정말 정말 보고 싶다고. 그리고 그 옆에는 쪼르르 우리 귀여운 고양이들이 함께 있다. 미셸과 까미유. 나는 고양이들을 보며 가장 눈물이 많이 흐른다. 가여운 우리 아기들, 내가 우리 아기들보다 먼저 죽었네. 미안해. 더 많이 놀아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너무너무 사랑해. 너희들 덕분에 나는 사랑을 배웠어. 정말 정말 그 귀엽고 보드라운 털을 수천 번 더 쓰다듬고 싶고, 안아주고 싶고, 사랑스러운 향기를 맡고 싶다. 내가 다시 살 수만 있다면 미셸 몸에 내 얼굴을 파묻고 미셸과 함께 서로를 느끼고, 사랑을 느끼던, 내 몸과 마음이 온전해짐을 느끼던 그 어느날의 풍경으로 다시 가고 싶다. 하지만 이제 그럴 수가 없다는 사실이 가장 슬프구나.
그리고 이제 나의 반려자, 지량이 보인다. 지량은 너무나 슬퍼하고 있어. 나는 가슴이 너무 아프다. 지량에게 너무 미안하다. 하지만 지량도 내게 미안해한다. 지량은 내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운다. 우리가 함께 있는 시간이 이렇게 짧을 줄 몰랐다. 나는 지량을 안아주고 지량에게 괜찮다고 말을 한다. 지량이 너무 심하게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너무너무 사랑해.

가족들과 친구들을 모두 만났다. 모두 나에게 생전에 내가 듣기 좋아했던 말을 해주었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쏟아내기도 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듣는 것이 좋았다. 그 모든 것을 듣자 나는 편안해졌다.

관 속에 뉘인 나는 이제 화장터로 왔다. 이제 곧 불이 켜질 것이고, 나의 육체는 정말로 사라진다. 우리 엄마가 너무 심하게 울고 있다. 가여운 우리 엄마. 가족들이 우리 엄마를 안아주고 있다. 고양이들은 영문을 모른채 함께 있다. 하지만 함께 있어서 나는 더 행복하다. 이제 불이 켜진다. 내 몸이 서서히 사라진다. 나의 머리카락이 다 사라지고, 살결이 모두 사라지고. 이제 나는 뼈만 남았다. 그리고 이제 이 뼈들도 가루가 되었다. 나는 이제 가루가 되어 예쁜 그릇에 담긴다.

가루가 된 나를 가족들이 물이 있고, 풀도 있는 아름다운 풍경에 데리고 가서 뿌려준다. 나는 공기 중에 흩어진다. 나는 이제 정말 모든 먼지들과 바람과 하나가 되어 세상을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나는 너무나 자유롭다. 편안하다. 나는 더 멀리 멀리 날아 태양에 가 닿는다. 너무나 밝고 뜨거운 태양에 가 닿는다. 나는 태양의 한 조각이었다. 그게 본디 나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모두 다 본디 이 태양의 이 따스함의 한 조각이었음을 안다. 우리 엄마, 아빠, 지은이, 지량, 미셸, 까미유…. 모두가 결국에는 태양의 조각들로 돌아와 나와 하나가 됨을, 나와 원래 하나였음을 우리는 하나임을 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자 나는 이제 정말로 이 세상에 조금이나마 남겨둘 뻔한 아쉬움과 미안함이 모두 덜어진다. 아쉬울 것이 없었고, 슬퍼할 일도 아니었구나. 모든 존재가 다 나였고, 다 우리였다. 내가 너무 사랑하던 존재들도, 내가 미워하던 존재와 내가 용서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존재까지도.

나는 완전하게 죽고, 태양의 한 조각이 되자, 내가 이 모든 것을 깨닫게 되자 태양은 나에게 또다시 돌아갈 기회를 준다. 나는 다시 내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나는 그러자 본디 태양의 한 조각인 내가, 이 뜨겁고도 밝은 존재인 내가 이 세상에서 다시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알았다. 나는 이 밝음과 뜨거움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전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태어난다. 다시 내 몸이 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고, 내 몸에 숨이 가득해진다. 나는 다시 태어났다. 나는 태양의 한 조각임을 기억한 채로 다시 돌아왔다. 나는 더 밝고 더 아름답고 사랑이 가득한 존재임을 안다. 나는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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