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일기를 쓰는 일이 신성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일기를 쓰는 일이 아니라, 쓴 일기를 다시 읽는 일. 일기를 쓰고 있는 다른 날의 나를 그대로 만날 수 있는 시간이다. 시간은 직선이라는 착각 속에서 희미해지는 감각이 다시 보드랍고 유연한 공간에서 생생해진다.
밤 열한 시. 이즈음에 꼭 새벽녘에 꾸었던 꿈이 잘 떠오른다. 오늘은 버스에 앉아서 버스의 승객들을 찍는 사진작가를 만난 꿈을 꾸었다. 꽤 나이가 있고, 작품 활동을 많이 해온 유명한 작가였어서, 그 작업이 이제는 약간 허울만 남은 작업이 아닐까 하고 혼자 짐작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내가 탄 버스에 그 작가가 있었다. 나는 그 사람보다 앞에 앉아있었다. 아마 나도 사진에 찍힐 수 있는 자리였다. 나는 가운데 자리에 앉아있었다. 살짝 그가 어떻게 작업을 하는지, 어떻게 그 동네를 사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는 동네 친구인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다가 울었다. 그 눈물을 보자, 언제나 그 마을버스를 타고 마을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 모습을 찍는 그 작업이 순수하게 느껴졌다. 나는 내가 지레짐작하던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아 졸려. 잠이 쏟아지려고 할 때, 지난 꿈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이 시간이 아닌 저 시간에 닿고 있어서 겹쳐지는 현상인 걸까.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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