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8월 18, 2026

그러고도 더 아팠다. 아마 이런저런 약들의 부작용이었던 것 같다. 염증들을 치료하느라 몸에 있는 다른 유익균들도 같이 사라진 건지 뭔지 속이 울렁거리고, 온몸이 팅팅 부었다. 아픈 게 제일 힘들다. 불편한 감각과 통증으로 계속 의식이 이동하다 보니, 마음이 같이 괴로워지곤 한다. 뭐 순서는 중요치 않을 수도 있겠다. 마음으로 괴로워해야 할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몸이 아팠을 수도 있지. 그 둘은 연결되어 있으니까. 

요즘 재밌게 읽고 있는 책이 있는데, 그저께 읽었던 부분이 생각난다. 본능과 원형의 연결이 발생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다. 나도 정말 종종 경험하는 일인데, 예를 들어 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이유 없이 본래 가려던 경로에서 벗어나 갑자기 방향을 틀어 다른 길로 간다. 알고 보니 본래 가려던 그 길에서 사고가 일어나 있거나, 공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지만, 본능이 자신을 구해준다. 내 몸이 나보다 더 똑똑하다면, 그게 신체적으로 일어나는 것이고, 또 어떤 경우에는 생각으로 온다. 아무튼 그래서 심리적 측면을 통과해야 할 것이 육체적 측면으로 바뀌거나, 육체적 측면을 통과해야 할 것이 심리적 측면으로 바뀌기도 하는 것이다. 아무튼 둘 다 막히는 경우는 없는 것이다. 

몸이 아플 때는 분명히 잠시 멈추고, 그 통증이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 보아야 한다. 하긴, 8월을 맞이하며 나의 물리적 환경이 완전히 바뀌었는데, 그 변화를 고요히 바라볼 새도 없이 다가오는 모든 것들에 표면적으로 반응하고, 대꾸하느라 에너지를 온통 써버린 것 같다. 이제 와서 떠오르는 게 묵언수행이다. 묵언수행이 필요했던 것인데 말이다. 너무 많은 감정이 올라왔던 것 같다. 그게 너무 빠른 속도로 올라와서 엉킨 것 같다. 어제 속이 너무 울렁거려서 한의원에 다녀왔다. 다래끼에서부터 목 염증까지 그리고 항생제와 소염제 등 약을 먹고 위장이 불편해진 이 최종 상황까지 선생님께 와다다 쏟아냈다. 음식 체한 것처럼 약이 체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어떤 것들의 작용인지, 순환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서였는지 침 치료를 하기 전까지 머릿속이 아주 바쁘고 어지러웠다. 모든 기운이 머리로 향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침 치료를 하고 조금씩 시간이 지나니 정말 신기하게 그 시끄러운 것들이 가라앉았다. 체한 것들이 풀어지는 과정이었나보다. 막혀있는 어떤 통로들을 다시 풀어주고, 기의 흐름이 원활하게 저마다 갈 곳을 찾아가는 것이다. 머리로 다 몰렸던 것들이...그래 여기저기로 가야지 말이야, 비장으로, 천골로, 다리로도, 어디든지. 아무튼, 그래서 오늘은 속이 한결 나았다. 그래도 여파가 있었는지 머리랑 어깨가 하루 종일 아팠다. 내일은 더 낫겠지.

그래서 본격적으로 이제 내 작업에 집중하기 전에 끝내야 할 프로젝트가 하나 있었는데, 어제까지 다 끝냈다. 사실 그걸 빨리 끝내고 싶어서 한 주 동안 아프면서도 쉬지 않고 일했다. 끝나서 후련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힘들었나 보다. 모레 서울에 갈 거다. 내일은 광주에서 알게 된 친구 한 명이 창작소에 오기로 했다. 차분히 내일은 창작소에서 머무르다가, 저녁에 요가도 해야지. 

토요일, 8월 15, 2026

목요일, 8월 13, 2026

매해 가장 뜨거운 달에 아픈 것이 패턴이다. 작년에도 7월 내내 아팠는데, 가장 뜨거운 해, 가장 뜨거운 나날에 아픈 주간을 보내고 있다. 며칠 전 입추를 기점으로 열기가 조금은 사그라들었지만, 입추 바로 직전의 일주일이 아마 올해 가장 뜨거웠던 주간이었다. 한낮 기온은 거의 40도에 육박했다. 날씨와 더불어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상의 기운도 양기로 가득 차 있었다. 몇 달에 걸쳐 만날 사람들을 일주일도 안 되는 사이에 만났던 것 같다. 여기가 어디야. 모든 말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고, 그것들이 정리가 안 되고, 가라앉질 않아 나는 말이 이상하게 튀어나오거나, 혹은 말이 나오질 않아 삐그덕대고 있었다. 그렇게 모든 것이 꽉 찬 약 일주일을 보내고, 양림동을 누릴 새도 없이 서울에 볼일이 있어 올라갔다. 서울에 올라간 날 다래끼가 올라왔다. 항생제 엔딩은 싫어서 열심히 자연치유를 위해 온찜질을 했다. 위대한 온찜질의 효과로 자연스럽게 곪은 것이 터졌지만, 가라앉는 데는 장장 일주일이 걸렸다. 다래끼 때문인지, 누적된 피로 때문인지 몸은 힘들었지만, 서울에서는 오랜만에 여름방학 같은 시간을 보냈다.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의 공연도 보고, 고양이들도 보고, 지량과 영화관도 가고, 전시도 보고 핑핑 놀았다. 아, 엄청난 동시성이 내내 나타나기도 했다. 어느 밤의 여정. 아무튼 그렇게 핑핑 노는데도 에너지가 필요했다. 에너지는 이미 바닥났지만 그래도 즐거운 마음 하나로 보낸 여름방학. 그 시간을 보내고 나니 많은 것들이 차분히 내려왔다. 정확하게 입추를 기점으로 날씨도 한 꺼풀 꺾였고, 내 머릿속도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광주로 돌아오기 전날부터는 기침이 조금씩 나더니, 목이 아파졌다. 열병의 마지막 단계였다. 보아하니 통증이 심해질 것 같아서 병원에 갔다. 열심히 다래끼는 자연치유로 이겨낸 듯했으나, 다른 곳에서도 염증이 올라오고야 말았다. 의사 선생님의 말투가 매우 상냥하면서도 구수했다. 선생님께 항생제 부작용으로 배탈이 심하게 나곤 한다고 하니, 선생님은 제일 약한 항생제로 그래도 챙겨주시며, 먹어보고 설사를 하고 배탈이 나면 그냥 항생제는 빼고 나머지 약을 먹으라고 하셨다. 부작용이 심하면 안 먹는 게 낫다고, 처방된 일수의 항생제를 다 먹지 않아도 된다고 한 선생님은 처음이었다. 아무튼, 약을 먹으니, 어제오늘은 완전히 멍하고 졸린 상태가 되어버렸다. 항생제뿐만 아니라 진해거담제 등 내가 부작용을 겪을 만한 약이 꽤 있었고, 오늘은 그 부작용에 잔뜩 시달린 날이다. 주경야독 아니고 주독야경. 낮에 공부하고, 밤에 일하려고 했건만, 오늘 낮 동안에는 도서관에서 잔뜩 졸며 책을 읽고 이것저것 들여다보다가 저녁이 되어 밥을 먹고 약을 챙겨 먹고 나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오늘은 깨끗이 포기하고 쉬어야지 하고 침대에 기대어 앉아 일기를 쓴다. 

왠지 모르겠는데, 최근에 두 번이나 꿈속에서 라자카포타를 시도했다. 실제론 내가 아직 하지 못하는 아사나지만, 오늘의 꿈에서는 엄청나게 잘됐다. 완벽한 후굴로 발끝과 머리끝이 닿을 수 있었다. 목이 아픈 것과 연관이 있을까. 재밌는 연결들이 보인다. 몸의 왼쪽이 아픈 것도 그렇고. 해소해야 할 감정들이 터져 나오는 것 같다. 오늘 아침엔 예기치 않게 어떤 기억이 떠올라 시원하게 소화가 되는 일이 있었다. 정말 실제로 소화가 됐다. 정말로. 가장 뜨거울 때 꼭 통과의례처럼 이렇게 아프게 비워내며 지난다. 그러고 나면 몸이 잠깐 많이 약해지긴 하지만, 그 후엔 새로운 것들이 느껴진다. 휴우 그래도 내년부터는 아프지 말고, 뜨거워지기 전에 미리미리 조금씩 식힐 수 있도록 해야지. 분명히 작년에도 그렇게 다짐했었는데 올해 마침 광주에 도착한 때가 그때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기후 위기로 여름이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으니 더 걱정이다. 어찌 이 고된 계절들을 우리 헤쳐나갈까.. 내일은 방에서 일 많이 하고, 쉬어야지.

일요일, 8월 02, 2026

서점 테이블 앞에 둥글게 모여 앉아 오랜만에 사람들과 대화했다. 일상적인 대화가 아닌 어떤 의제를 갖고 한 대화이자 토론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여러 언어와 이야기가 오가는 와중에 나는 여러 가지 조각난 생각과 소리가 정리가 잘되지 않는 것 같아 답답하고 피로했다. 무언가가 정리되어 발화되어야 한다는 압박을 오랜만에 느꼈다. 아니, 요 며칠은 사실 계속 그런 압박을 느끼는 중이었고, 오늘 특히 그 자리에서 그 이슈가 크게 드러난 것이다.

마침, 이 탁상 토론의 주제가 체화된 식민성에 대한 것이었는데 나는 그 이야기들의 한가운데서 내 개인적인 식민성을 마주해버린 것이다. 말로 명료하게 표현되지 않는 생각이 침묵 된 채로 폄하될까 하는 두려움, 더듬거리면 생각도 더듬거리는 걸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한국어로는 조금 더 잘할 수 있어-라는 생각 뒤에 외국어로 잘 소통하지 못하면 뭔가 뒤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 여긴 한국이고 내가 한국어로 말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인데도 스스로에게 어떤 위계를 씌우고 있는 것이었다. 며칠간 느낀 두려움과 장벽들이 하나로 똘똘 뭉쳐서 내게로 다가왔다. 예전에 내가 많이 위축되었던 시절이 떠올랐다. 모든 사람과 재치 있게 잘 이야기하는 사람, 모두를 웃게 만드는 쾌활함과 유머를 가진 사람, 조리 있게 말하는 사람들 앞에서 종종 내가 작아지는 것 같았고, 그런 사람들이 많이 부러웠다. 한동안은 이런 위축과 불편함이 없이 살았는데 며칠간 이것들을 마주하고 있다. 바로바로 내 생각을 표현해야 할 것만 같은, 올바른 말을 해야 할 것만 같은, 사람들이 잘 이해할 수 있게 잘 이야기해야 할 것 같은 그런 부담과 조급함이 밀려오는 게 당황스럽다. 그게 나에게 내재해 있던 식민성이었다.

언제나처럼 모든 상징성이 동시에 나타난다. 서점에 가기 전에 새로 입주한 일본인 중년 작가분을 마주쳤다. 대표님이 인사시켜 주셨는데, 그 일본 분은 영어를 못한다고 하셨다. 그것이 물론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그게 중요치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에게는 이상한 식민성을 주입한다. 뭔가 모터가 달린 것처럼 빠르게 자기 생각을 쏟아내는 사람들 앞에서 나도 모르게 나도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을 느낀다. 그것이 맞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 행동과 내 말이 내 작품처럼 어떤 일관성과 맥락을 지녀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내가 먹는 것, 내가 입는 것 등과 같이 모든 것들을 갑자기 검열하려는 충동을 발견하고 어이가 없다. 안에서부터 너무 많은 것들이 올라와 정리가 되지 않는다. 어쩌겠는가 그냥 올라오도록 두어야지. 올라오는 것들을 바라봐야지.

쓰다 보니 조금은 정리가 된다. 작품에 나타나는 일관성과 맥락을 나 자신의 존재 방식에도 똑같이 요구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그게 당연한 건가 싶다가도, 그래야만 하는가 싶어진다. 더듬거림, 침묵, 느림, 이 모든 것들도 그 자체로 언어인데 말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건 내 작업 방식으로 이어진다. 맞아. 그게 내가 작업을 하는 이유였지. 필름과 판화 프로세스에서 일어나는 실수와 통제할 수 없음, 어쩌면 실패라고 할 수 있는 결과물들, 나는 그것들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내가 내 삶 속에서 그런 것들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용인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껴서 그런 작업을 마치 수행처럼 하고 있기도 했다. 억지스러운 과정은 아니었고, 정말 그 일들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그게 어떤 형태가 되었든 간에 말이다. 과정에서 나타나는 흠집과 얼룩들은 제거되거나 수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 속에 속한 장면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떤 것을 아카이브 할 것인가-에 대한 오늘 토론의 화두에도 어울리는 이야기다. 어쩌다 보니 오늘 토론에서 아카이빙에 대해서 깊게 이야기하게 되었던 것 같다. 모든 것이 아카이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정당성은 누가 정할 것이며, 무엇이 적절하고, 올바른 것인지 누가 정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시간을 경험한 모두가 아카이브 될 수 있다. 사진과 판화 작업을 통해서 수행해 오고 있던 것을 이제 내 개인적인 삶으로 더 확장하고 싶다. 많이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멀었다. 체화된 식민성이란 이런 것이구나 정말로.

토요일, 8월 01, 2026



내 방이 하나 더 생겼다. 가장 뜨거운 계절에 가장 뜨거운 곳에 왔다. 광주는 언제 와도 따뜻하다. 지량과 오랜만에 머나먼 길을 차로 달렸고, 낯선 곳에서 잠을 자고, 짐을 풀고, 새로운 사람들을 잔뜩 만났다. 같은 시간을 사는 땅이지만서도, 시차와 멀미를 느끼며 한껏 어지러웠다. 어제는 마침 호랑가시에서 아트페어가 열린 날이라 아주 많은 사람을 한자리에서 만났다. 조용히 스르륵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 드는 한편, 반가운 마음이 들어 아는 이들에게, 알고 싶은 이들에게 말을 붙였다. 잔뜩 어지럽고 신이 나고 설렜다. 집으로(창작소지만 내가 결국 돌아갈 곳은 언제나 기꺼이 집이라 부르게 된다.) 돌아올 때는 정말로 균형감각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오늘은 홀로 밥을 먹고, 홀로 걸어 다녔다. 입이 꾸욱 닫히는 날. 어제 매주 금요일마다 묵언 수행을 하는 인도인 작가를 만났다. 나도 꼭 해보고 싶었던 수행이라고 하니, 그는 묵언 수행이 스스로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수행이자 명상이라고 했다. 나도 어쩌면 묵언수행을 하는 나날들이 종종 생길 것 같다. 오늘같이 그냥 나 홀로 보내는 날은 딱히 노력할 것도 없이 묵언을 유지하지만, 그것을 수행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홀로 있기 때문에 말을 안 하는 것이라면, 묵언 수행의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 갖가지 소리와 생각, 관계가 가득한 곳에서 해야 그게 수행이 되겠구나. 반응하고 싶은 마음, 반박하고 싶은 마음들을 삼키는 것은 어쩌면 그것들을 꾸욱 눌러담거나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올라오는 소리와 감정을 내 안의 공간에서 고스란히 듣고 느낄 수 있는 일일 것 같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떠들다 보면, 신이 나서 말이 마구 튀어나올 때가 있는데, 오늘같이 홀로 있는 날이 되면 그 말들이 가끔 지우고 싶거나, 정정하고 싶어진다. 거 참. 오랜만에 느끼는 마음이었다. 그런 반추가 요즘은 잘 없었는데 말이다. 역시, 연을 맺는다는 것은 업이 계속 쌓이는 것일까. 사는 동안에는 그것이 소중하고 귀중한 일이란 걸 알면서도 한편으로 버겁다. 정화해야 할 것들이 생긴다.

오늘 들렀던 로이스 커피의 사장님이 생각난다. 엄밀히 말하자면 장사를 하시는 것은 아니라서 사장님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사람들을 마주하고, 대응하는 것이 많이 힘들어서 장사를 못하겠다고 하셨다. 내게도 본인을 피곤하게 하지 않으면 커피를 마시고 가도 된다고 허락해주셨다. 감사하게도 맛있는 커피를 두 잔이나 주셨다. 오늘은 잠을 일찍 자고 싶어서 한 잔만 마시고 싶었는데 말이다. 좋아하는 색이 뭐냐고 물으셔서 파랑이라고 하니, 파란색 잔에 라떼를 또 만들어주셔서 마실 수밖에 없었다. 아주 맛있었다. 이렇게 또 연은, 업은 내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그분은 사람들이 싫다고, 장사를 해야 하지만 못하겠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반려인과 함께 식사하고, 떠드는 시간이 가장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하셨다. 이래서 어찌하느냐고, 불편해서 어쩌느냐고 푸념하듯 말씀하셨지만, 나는 그것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게 제일 좋은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나도 똑같다. 오지와 살 때는 오지와 떠들고 오지와 밥을 먹고 웃고 그렇게 우리 둘 그리고 고양이들과 사는 집에서 가장 행복했다. 그리고 이제는 지량과 함께 있는 시간이, 우리 집이 가장 편안하다. 너무나 편안하고 고요하고 즐거운 우리집. 세상에서 제일 포근한 우리집 침대와 이불. 내가 길에서, 상점에서, 때론 바다에서 모은 수정의 빛깔이 가득한 내 방. 그리고 그 빛깔 속에 배어있는 향기로움. 그 안락함이 주는 행복이 커서 지량과 나는 집을 떠나 아무리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가더라도 집이 그립다. 로이스 커피의 사장님이 느끼는 것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겠지.

그 모든 안락함과 익숙함, 평온함으로부터 멀어진다. 이번에는 여행이 아니라, 조금 더 길게 그 안락함으로부터 떨어져 지내게 된다. 오늘 하루를 홀로 보내고 내가 이곳에서 집이라고 부를 이 낯선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조금 슬펐다. 안락함에서 벗어나니 새로운 풍경과 관계 속에서 내게 익숙하지 않은 방식의 말들이 하나씩 튀어나오고, 그것들이 날 불편하게 한다. 안락함을 그리워하는 것은 슬픈 마음인 것 같다. 슬픔도 물론 때로 필요하다. 그래서 기대한 것도 있지만 역시나 조금은 서글프다. 마르세유에서 지냈던 때가 떠오른다. 그때랑 정말로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마르세유에 막 도착해서 집을 구하고, 나만의 새로운 방을 다시 내 향기와 색깔로 채웠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도 나는 홀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날이 많아서 어떤 날엔 누굴 오랜만에 만나면 입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기도 했다. 그치만 그 슬픔과 그리움, 불편함 속에서 나는 그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자유를 찾았다. 어쩌면 낯선 곳에 다시 떨어지게 되는 것은 새로운 업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업을 풀어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익숙해지는 것이, 편안해지는 것이 어쩌면 업을 만드는 것일까. 업이 축복인 걸까. 그것을 정화하고 풀어내면 더 큰 자유를, 더 큰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니까. 그치? 내게 그런 시간이 다시 찾아온 것 같아서 기쁘다. 낯선 것들이 다시 익숙해지고, 내 것이라고 여겨지게 될 때쯤 나는 이곳을 떠나겠지. 8월 1일의 일기가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모든 시간을 벌써 살아버리는 것처럼. 하루는 영원이니까 괜찮아.

고요가 주는 것이 어쩌면 영원인가. 아침부터 낮 동안에는 매미 소리가 주변을 가득 채운다. 꽉 차있는 여름의 소리와 열기. 밤이 되니까 아주 고요하다. 풀벌레 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한낮의 높은 소리와는 전혀 다르다. 모든 것이 추욱 가라앉아있다. 소리도 아래에서 난다. 광주에서는 많이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