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4월 25, 2026

어떤 프로그램인지는 모르겠으나, 교실에서 각각의 사람들이 발표 형식으로 교단 쪽에 나와서 이야기를 돌아가면서 하고 있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그 발표를 준비하느라 며칠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어떤 분께서 불교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차례였다. 그분은 그 강연과 관련하여 사람들에게 돌아가면서 공양을 받는다고 하셨다. 나는 처음에 의미를 잘 못 알아듣고 내 주머니에 있던 동전들을 모두 모아서 드리려고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아 내 뒷자리에 앉아 있던 현서에게 다시 설명을 들으니, 자기가 소중하게 가지고 있던 법구나 호신구 같은 것을 공양드리는 것이었다. 소중한 기도와 공덕이 쌓인 것을 바치는 것이었고, 실제론 그 뜻이 아니지만 그것을 '발우공양'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 발우공양을 하기 위해서 내 가방을 뒤졌다. 딱 내가 드릴 수 있는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내가 늘 핸드폰 고리로 달고 다니던 것이 있었다. 지금 떠올려보니 조금 더 캐주얼하게 만들어진 금강저였던 것 같다. 텍스타일 같은 부드러운 재질로 유연하고 일상적으로 만들어져서 내가 늘 가지고 다녔던 것 같다. 재질과 모양새가 좀 다르긴 하지만 본질은 금강저였을 것이다. 그걸 찾기 위해서 가방을 뒤지는데 가방 안에서 온갖 작은 장식들이 뭉치로 나왔다. 발표를 준비하느라 한동안 정신이 없어서 내 모든 잡동사니가 정리가 안 된 채 가방 속에 그렇게 뭉쳐져 있었던 것 같다. 몇 차례에 걸쳐 그것들을 꺼냈는데,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반짝이는 것들이었던 것 같다. 목걸이, 브로치…. 등등. 고양이 모양의 귀여운 브로치도 있었고…. 한 번씩 손을 넣어서 그것들을 꺼낼 때마다 한 뭉텅이였다. 근데 그것들은 모두 다 내가 스님께 드릴만큼의 내 공덕이 들어간 것들이 아니어서 내가 늘 지니고 있던 그 금강저 같은 법구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가 꺼내서 드렸던 것 같은데, 내가 늘 지갑 속에 끼워놓고 다니던 탱화 카드가 번뜩 떠올라서 그걸 드렸던 것 같다. 


깨어나서 이 의미심장한 꿈을 기록했는데, 얼마전에도 비슷한 느낌의 꿈을 꿨던 것이 떠올랐다. 

작은 스푼 두개의 꿈.
도자기로 만들어졌던 것 같은데 매끈하고 반짝이는 유약이 발라져 있어서 아주 예뻤다. 하나는 온전하게 도자기로 만들어졌던 것 같고, 다른 하나는 그 매끈한 재료에 구리인지 황동인지 모를 다른 재료가 섞여있었다. 그 두 재료가 섞인 스푼은 표면의 결이 너무 러프하고 정돈이 되어있지 않아서 내 친구가 다듬어줬다. 내 친구 두명이서 그걸 다듬는 작업을 해줬는데, 다시 내게 돌려주면서 그 중 하나는 내 옆에 있는 짝꿍에게 나눠주라고 했다. 그 매끈한 수저를. 내 짝꿍은 정말 그냥 짝꿍일 뿐, 나랑 어떤 깊은 인연이 있는 친밀감이 강한 친구가 아니었기 때문에 너무 고민이 됐다. 이렇게 예쁜 스푼 두개를 나누라고? 근데 그렇게 하는 것이 내게 어떤 수행이 될 거라는 식으로 친구가 내게 말하며 나누라고 했다. 나는 마음 속으로 솔직하게는 이걸 지량이나 지은이랑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하긴 그러면 그건 아무에게도 베푸는게 아니라 그냥 내가 혼자 가지고 싶다는 욕망 혹은 욕심이겠거니하는 생각을 했다. 정말 그래서 솔직하게는 내키지 않았지만 나누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4월 한 달 동안에 이런 선명한 꿈들을 꾼 것이 신기해서, 다시 그 장면들을 떠올리며 지금 카드를 뽑아봤다. 

이조차도 메시지는 선명하다. 신기하게도 은둔자 카드와 수피 오라클의 determination 카드가 너무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무언가를 끝내고, 밝아지고, 조용히 혼자 걸어가는 여정. 수피 오라클은 인내가 행운으로 이끈다고 말하고 있다. 근데 정확히 이 꿈들과 이 카드의 메시지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아직은 모르겠다. 

그리고 마지막 저 탱화 카드는 내가 꿈에서 공양하려고 떠올렸던 지갑 속에 늘 가지고 다니는 그 카드다. 실제로 늘 내가 지니고 있는 카드다. 관음보살과 뒷면은 반야심경이 적혀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형태가 있는 것이 곧 비어 있음이고, 비어 있음이 곧 형태. 꿈의 마지막에 갑자기 번뜩 떠올랐던 탱화 카드의 이미지가 반야심경의 내용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내가 꿈속 가방에서 꺼낸 반짝이는 것들 - 그게다 '색'이고, 내가 찾고 있던 것은 그 안에 공이 담긴 것, 기도가 담긴 것이었다. 그러나 다시 반야심경 자체가 말하는 게 뭔지 보면, 그 구분 자체도 결국 공이라는 것이다. 
내가 꿈속에서 더 아름답고 귀한 것을 누군가와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어려우면서도 그것이 내게 필요한 일이고, 수행이라고 여겼던 것. 그래서 스님에게 주려고 열심히 찾은 그 소중한 기도가 들어간 금강저와 카드. 결국 내가 그렇게 저울질하고, 고민하던 그 가치들도 결국 다 공이라는 이야기를 어쩌면 관음보살이 내게 하고 싶었던 것일까? 꿈속에서 내가 어렵게 느껴졌던 그 나눔과 공양의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 내 기도와 소망과 신성한 마음이 들어간 것들과 그렇지 않은 다른 반짝이는 것들 혹은 예쁜 수저 한 쌍 그 모든 것들이 내가 그렇게 아까워할 것도, 반드시 지켜야 할 것도 아니라는 것…. 그렇다면 진정한 공양이 가능하겠구나. 그 어떤 것이라도 다 내어주고, 바칠 수 있겠구나. 


금요일, 4월 17, 2026

라벤더와 로즈마리 그리고 레몬밤

라벤더와 로즈마리, 레몬밤 화분이 도착했다. 
허브는 키워본 적이 잘 없는데, 이번에 향긋한 허브들을 만나고 싶었다. 잎을 직접 따서 차도 우려먹고, 요리에도 넣어 먹고, 향기만 맡아도 좋지. 오늘 우리 집까지 오느라 고단하고 놀랐겠지만, 미안하다고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인사를 하고 이파리 몇 개를 땄다. 레몬밤 이파리 넉 장과 로즈마리 이파리 석 장을 뜯어 차를 우려 마신다. 생잎이라 진한 맛은 아니지만 향긋하고 부드럽고 좋다.
요즘 마음이 좁아지려고 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식물들을 떠올린다. 식물들의 너그러움을 떠올린다. 그렇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내 마음도 너그러워지겠지? ㅎㅎ

너무나 아름다운 향을 가진, 또 내 맘을 더 편안하고 부드럽게 해주는 식물들을 조금씩 더 알아간다. 천천히. 나는 그들이 주는 유익한 것들, 그 향과 맛, 그리고 심지어 치유까지…! 그것들에 집중하다 보면 또 이것이 너무 인간 중심적인 마음이라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지만, 그런 모든 것들까지도 식물은 다 감싸안는다. 다시 마음이 놓인다. 그냥 그 존재 자체가 모든 것을 설명하고 모든 것을 연결해 준다. 모든 것이 일리가 있다. 가장 뜨거운 날에 자라는 식물들이 우리의 열을 식혀주듯이…. 마치 모두에게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렇게 존재하는 것만 같다. 어떤 욕망과 욕심, 의도도 없겠지만 그 모든 것이 이치에 맞다. 

레몬밤에 대해선 잘 몰랐다. 갑자기 며칠 전에 새롭게 알게 되어 기쁜 마음에 골랐다. 잎은 민트처럼 생겼다. 민트가족들은 그 이파리들이 생긴 것처럼 모두 우리의 신경계와 관련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실제로 레몬밤은 신경성 증상들에 효과가 있다. 우울, 불안, 스트레스 등에 도움이 된다. 그리고 항염 효과도 뛰어나다고 한다. 

로즈마리는 길쭉한 잎을 가졌다. 로즈마리도 기억력에 효과가 좋다고 한다. 로즈마리에 대해서는 내가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허브 중에 유일하게 가장 나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허브다. 마르세유의 깔렁끄에 가면 지척에 로즈마리가 있었다. 정말 지척에. 그래서 그 이파리들을 떼어 손으로 비벼 냄새를 맡으면 정말 그토록 행복할 수가 없었다. 탁 트인 그 자연 속에서 뜨거운 햇살과 지중해의 바람을 맞으며 하얀 바위들 틈에서 자란 로즈마리들. 그 이파리와 향기를 넣은 시를 지은 적도 있다. 지금 검색해 보니 로즈마리의 어원은 '바다의 이슬'이라는 라틴어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Ros Marinus. 내가 가진 기억이 로즈마리의 이름 그 자체였구나. 로즈마리는 또한 '기억의 허브'라고 불린다고 한다. 그 향기를 맡는 것만으로도 뇌의 기능이 좋아진다고…. 

그리고, 라벤더는 사실 내가 살면서 제일 많이 의지하는 허브가 아닐까. 언제나 라벤더가 있어, 안심이야. 불안하거나 잠이 안 올 때면 라벤더 향을 맡곤 한다. 우리나라 기후가 알맞지 않을 것 같아서 직접 키워보겠단 생각은 못 해봤다. 사실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잘 컸으면 좋겠다.

아침 되면 따스한 햇살이 가득한 베란다에 내놔야지. 서울의 햇살과 바람으로도 내 허브들 잘 컸으면…!

토요일, 4월 11, 2026

Pavėjui

한 번도 들어보거나 말해보지 않은 언어로 불린 노래를 듣는다. 문자를 보고도 그 의미를 추측해 보기 어려워 번역해 보니, 리투아니아어였고, 노랫말은 음악처럼 참으로 단순했다. 아아아아아- 아마도 이 문장을 만날 운명이었다.


Kuo garsiau šauki mane
Tuo tyliau girdžiu tave, aa-aaa

네가 나를 더 크게 부를수록
네 목소리는 더 작게 들려, 아-아-아


바깥의 소음이 클수록 내면의 소리는 작게 들린다. 소리가 쌓인 곳에서는 진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최근에 수많은 소리가 나를 너무 둘러싸고 있는 것 같아, 그것들과 나 사이의 공간을 더 넓히고 싶은 순간들이 좀 있었다. 그럴 땐 책을 읽기가 힘들고, 생각에 빠지는 것도 어렵다. 소리는 고독 속에 나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집에 있었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요즘 꺼내어 읽고 있는데, 릴케는 끊임없이 고독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우리는 고독해야 한다고. 젊은 예술가에게 하는 말이지만, 모두에게 필요한 말이다, 분명. 지금은 모든 게 너무나 많다. 모든 것이 너무 많이 만들어지고, 보려 하지 않아도 너무 많이 보이고, 들린다. 그리고 많이 버려진다. 그들과 나 사이의 공간이 충분치 않다고 느껴질 때마다 신경이 곤두선다.

어제 혼자 집에 걸어오는데 상쾌했다. 비가 그치고 맑아진 것 같은 날씨도 한몫했지만 고요한 음악을 틀다가 우연히 찾아낸 이 음악 덕분이기도 했다. 처음 듣는 순간 좋았다. 간단한 피아노 연주 소리와 부드러운 목소리와 반복되는 단순한 가사가 나를 편안하게 만든다. 오늘도, 이 노래를 계속 들으며 편안해진다. 

지금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도 그렇고, 불이 많은 해이기도 해서 아마 올 한 해 동안 많이 계속 시끄러울 것 같다. 여름이 벌써 걱정된다. 너무 뜨겁고 긴장감이 높을 것 같아. 하반기에는 레지던시 생활을 하게 될 테니 그 생활이 기대되고 그 기대감은 안도를 준다. 돌이켜보면, 내가 마르세유에서 혼자 지내며 경험한 그 고독은 정말 너무나 귀중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진정으로 나 자신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여러 가지 외적인 불편함이 있었지만, 나 자신이 그 자체로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느껴진 적은 이전에는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은 더 많이 안정되고 있다. 한번 열린 것들은 결코 다시 닫히지 않는다. 그리고, 2020년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지금까지 수많은 것들로 가득 찬 시간을 보낸 것 같은데, 다시 내가 고독한 시간으로 들어서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너무 귀중한 순간이다. 비어 있는 그 공간을 느끼고 싶을 때, 그 공간이 생겨난다. 내가 그것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순간, 그것이 바로 나타난다. 

토요일, 4월 04, 2026

가끔 어떤 것들이 입력이 되지 않는 때가 있다. 음악이 튕겨나가는 때가 있고, 문장이 흡수되지 않는 때가 있다. 글이 써지지 않는다. 종종 그런 때가 있긴 했는데, 요즘 그렇다. 쓰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나날들이었던 것 같다. 그럴 땐 어떻게 글을 써 내려가야하는지 모르겠다. 하나의 문장으로 시작을 했다가 더이상 무언가가 이어지지 않아서 그 상태로 중단되는 때도 있었다. 그렇게 임시저장된 게시물들이 많다.
모르겠다. 요즘은 무언가를 설명하기 위해, 특히 작업을 소개하기 위해 글을 써야하는 때가 많아지다 보니, 그에 대한 피로도가 쌓이기도 했고 순수하게 어떤 감상이나 생각을 거침없이 써내려가는 감각과 멀어지는 것 같다. 그게 꼭 필요한 것이냐고 누군가는 물을 수도 있겠지만은, 내게 그런 글쓰기는 마치 브륵샤아사나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튼튼하게 땅을 짚고 서는 감각, 곧게 뿌리가 서는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일이다. 둥둥 떠다니는 것들이 차분하게 내려앉고 선명하게 보인다. 둥둥 떠다니는 것들이 잘 가라앉지 않을 때엔 그 움직임을 따라 내 몸도 같이 움직인다. 
오늘은 결정적인 날까지는 아니지만, 무언가 잡히는 날이다. 작은 결심들과 글을 쓰려는 시도가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