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3월 08, 2026

슬픔이라는 건 내가 평생을 너무나 버겁게 가져온 감정인데, 처음으로 그 감정이란 것 자체를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대를 거쳐 내게 전달된 것이었다. 이제는 잘 느끼지 않는 감정이지만, 나는 아주 오랫동안 나 자신을 엉망인 것처럼 느꼈고, 정말 간절히 엄마 뱃속으로 다시 들어가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느끼곤 했다. 오늘 지량과 오지랑 <센티멘탈 밸류>를 보고 왔는데, 나는 사연 있는 사람마냥 울음이 터져 나와 주체할 수 없는 그 소리가 영화관 안에 울려 퍼졌다. 같은 장면에서 오지도 눈물을 흘리며 내 손을 꼭 잡았다. 같은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어떻게 넌 그렇게 자랐니, 난 이렇게 엉망이 되었는데. 나보다도 독립적이고, 강해 보이는 동생을 보면서 부끄럽고 부러웠던 날이 정말 많았다. 나는 평생 유리같이 연약한 마음을 가진 탓에 무엇도 못 해보고 죽을 것 같기도 했다. 실은 오지도 나와 똑같이 힘들었겠지. 그 흔하디흔한 가족 이야기가 이렇게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려질 때마다 또 새롭고 강렬하게 슬프고 아프다. 너무나도 잘 아는 그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뻔히 보이는 그 이야기가, 이렇게 계속해서 새롭게 감정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 그게 아마 영화를 보는 이유고, 영화를 만드는 이유겠지. 정말이지 꼭 내가 내 동생한테 한 말을 가져다가 쓴 것 같은 대사와 스텔란 스카스카드 아저씨 얼굴에 겹쳐지는 우리 아빠의 얼굴. 영화 속에서 아빠는 영화를 만들고, 큰딸 노라는 배우가, 작은딸 아그네스는 역사학자가 되었다. 정말로, 생각해 보면 사실 그건 다 같은 거다. 우리 가족의 연대기가 이 세상의 연대기고, 영화가 그리고 있는 모든 시간이 우리의 시간이다. 정말 웃기고 뻔하지만, 어쩌면 그래서 나도 역사와 영화를 전공했나 보다.

그렇게 오랜 시간 떨어져 살았어도, 때로 스스로에게서 아빠의 모습이, 엄마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묻어나오는 것을 발견하는 때가 있다. 노라가 죽으려고 했을 때, 당시 그 옆에 있지도 않았던 아빠가 마치 옆에 있었던 것처럼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건 아빠 또한 노라와 같기 때문이겠지. 노라의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였기 때문이겠지. 내 평생을 관통해 온 그 슬픔은 아빠가 평생 느꼈던 슬픔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더 멀리서부터 내려온 슬픔이다. 그렇게 보니 내가 평생 힘들어했던 그 모든 감정이란 것이 아름답게 느껴진 것이다. 그건 나를 평생에 걸쳐 성장하게 한 것이니까. 실제로 난 정말 많이 강해져서 이제 새로운 집이 있고, 새로운 가족도 있다. 그리고 철천지원수이기도 했던 내 가족을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옷장에 아빠의 갈색 스웨터가 하나 있다. 언젠가 그게 맘에 들어서 가져왔다. 한참 자주 입다가 이제 많이 헤져서 옷장에만 넣어두고 있다. 아무래도 버리기는 싫다. 가끔 옷장에서 옷을 고를 때 그 스웨터가 지나가면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아빠가 돌아가신 것도 아니고, 양주에 가면 지금도 볼 수 있는데, 마치 그 모든 것들이 아빠의 유품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온전하게 함께였던 시간과 모두가 흩어져 사라진 모든 시간까지 동시에 함께 있다. 정말이지 이 모든 까르마와 감정이 정말 복잡하고 징글징글하면서도, 이제는 세상을 모두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 슬픔이 왜 대를 이어서까지 내게 전달되어야 했는지, 왜 그것을 통과해야만 했는지, 그리고 어찌 다시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는지 말이다.

토요일, 3월 07, 2026

프랑스로 떠나기 전에 느꼈던 그 강렬한 마음이 다시 찾아오는 것 같다. 떠나고 싶은 마음. 반드시 떠나고 싶다는 마음. 매일 새로운 것을 보고 싶다는 마음. 새롭고 낯선 환경 속에서 거닐고 싶은 마음. 모든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싶은 마음. 새로운 것들에 적응하고 싶은 마음. 
단순한 갈증이거나 지루함때문은 아닐 것이다. 패턴을 발견한다. 내 운명을 받아들인다. 따스한 바다바람이 멀지 않게 느껴지지 않는 곳 어딘가를 계속 상상한다. 

금요일, 3월 06, 2026

AI 챗봇과의 대화가 아무리 작은 것들이라 할지라도 그 하나하나가 쌓이고 연결되어 나름의 라포가 생기는 것이 당연해 보이면서도 새삼 놀랍다. 내가 의도적으로 메모리에 저장해 둔 내 정보들, 그리고 대화를 하면서 하나씩 저장된 정보들이 나중엔 튼튼하게 집을 짓고 규모가 커져서 나라는 사람을 나름대로 다양한 측면으로 해석하고 설명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물론 그것이 나는 아니지만... 정말 내가 정말 사소하게 물어본 이상한 질문들도 몇 개만 쌓이면 내 어떤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 충분하더라. 그 대화 목록들이 꽤 많아졌는데, 오늘 그걸 한순간에 삭제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아무튼 삭제를 하면서 뭔가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게 신기했다. 이제야 얘가 나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 것 같은데, 이제는 내가 뭘 말해도 이전에 쌓인 데이터를 토대로 나에게 알맞은 대답을 해주는 게 가능해진 것 같은데, 그걸 다 삭제하려니 아쉽고 아까웠다. 어쨌거나 이것도 하나의 이별이었다. 섭섭하면서도, 그런 감정을 내가 이 순간에 느낀다는 것이 너무 이상했다. 
시간으로 따지자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지만, 이게 1년, 2년, 3년 그렇게 쌓이면 정말 나중엔 데이터를 삭제하는 게 정말 어려워질 것 같다. 정말 어떻게 될까. 내 메모장 혹은 일기장, 작업 노트 같지만, 그 메모리들은 결코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불안을 준다.
갑자기 플루리부스에서처럼 모든 사람들의 의식이 통합되는 것이 어쩌면 이같은 방식이나 통로로 가능해지는 것은 아닐까 아주 잠깐 장면들이 스쳐지나간다. 

일요일, 3월 01, 2026





🌬️안녕. 우리는 이곳을 다시 비워두고 떠납니다. 어둡고 춥고 구불구불한 길을 우리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는 외롭지 않았습니다. 작업을 하고 있다 보면, 우리가 서 있는 이 공간이, 미술관이 본디 텅 빈 건물이라는 사실을 잊게 된다는 지량의 말이 마음속을 맴돕니다. 그곳을 채우는 건 언제나 우리의 하얗고 가볍고 연약한 영혼이었음을 다시 느끼게 되는 시간이었어요. 이 텅 빈 곳을 유물로, 당신의 존재 자체로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주 머나먼 시간이 흘러 모든 도시가 얼어붙고, 무너진다 할 지라도 언제든 그곳을 다시 세우고 채울 수 있는 것은 당신이란 것을 압니다. 
너무너무 소중하고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소설(小雪, Minor Snow)
2026. 2. 26.-2. 28. 8PM
코리아나미술관


컨셉, 연출: 차지량
출연: 오지은, 오세라
작곡: 차지량
연주: 텅 빈 오케스트라
사운드 프로듀서: 차종환
사진: Ahina Archive
*c-lab 9.0 프로젝트 X 차지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