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이 하나 더 생겼다. 가장 뜨거운 계절에 가장 뜨거운 곳에 왔다. 광주는 언제 와도 따뜻하다. 지량과 오랜만에 머나먼 길을 차로 달렸고, 낯선 곳에서 잠을 자고, 짐을 풀고, 새로운 사람들을 잔뜩 만났다. 같은 시간을 사는 땅이지만서도, 시차와 멀미를 느끼며 한껏 어지러웠다. 어제는 마침 호랑가시에서 아트페어가 열린 날이라 아주 많은 사람을 한자리에서 만났다. 조용히 스르륵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 드는 한편, 반가운 마음이 들어 아는 이들에게, 알고 싶은 이들에게 말을 붙였다. 잔뜩 어지럽고 신이 나고 설렜다. 집으로(창작소지만 내가 결국 돌아갈 곳은 언제나 기꺼이 집이라 부르게 된다.) 돌아올 때는 정말로 균형감각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오늘은 홀로 밥을 먹고, 홀로 걸어 다녔다. 입이 꾸욱 닫히는 날. 어제 매주 금요일마다 묵언 수행을 하는 인도인 작가를 만났다. 나도 꼭 해보고 싶었던 수행이라고 하니, 그는 묵언 수행이 스스로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수행이자 명상이라고 했다. 나도 어쩌면 묵언수행을 하는 나날들이 종종 생길 것 같다. 오늘같이 그냥 나 홀로 보내는 날은 딱히 노력할 것도 없이 묵언을 유지하지만, 그것을 수행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홀로 있기 때문에 말을 안 하는 것이라면, 묵언 수행의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 갖가지 소리와 생각, 관계가 가득한 곳에서 해야 그게 수행이 되겠구나. 반응하고 싶은 마음, 반박하고 싶은 마음들을 삼키는 것은 어쩌면 그것들을 꾸욱 눌러담거나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올라오는 소리와 감정을 내 안의 공간에서 고스란히 듣고 느낄 수 있는 일일 것 같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떠들다 보면, 신이 나서 말이 마구 튀어나올 때가 있는데, 오늘같이 홀로 있는 날이 되면 그 말들이 가끔 지우고 싶거나, 정정하고 싶어진다. 거 참. 오랜만에 느끼는 마음이었다. 그런 반추가 요즘은 잘 없었는데 말이다. 역시, 연을 맺는다는 것은 업이 계속 쌓이는 것일까. 사는 동안에는 그것이 소중하고 귀중한 일이란 걸 알면서도 한편으로 버겁다. 정화해야 할 것들이 생긴다.
오늘 들렀던 로이스 커피의 사장님이 생각난다. 엄밀히 말하자면 장사를 하시는 것은 아니라서 사장님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사람들을 마주하고, 대응하는 것이 많이 힘들어서 장사를 못하겠다고 하셨다. 내게도 본인을 피곤하게 하지 않으면 커피를 마시고 가도 된다고 허락해주셨다. 감사하게도 맛있는 커피를 두 잔이나 주셨다. 오늘은 잠을 일찍 자고 싶어서 한 잔만 마시고 싶었는데 말이다. 좋아하는 색이 뭐냐고 물으셔서 파랑이라고 하니, 파란색 잔에 라떼를 또 만들어주셔서 마실 수밖에 없었다. 아주 맛있었다. 이렇게 또 연은, 업은 내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그분은 사람들이 싫다고, 장사를 해야 하지만 못하겠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반려인과 함께 식사하고, 떠드는 시간이 가장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하셨다. 이래서 어찌하느냐고, 불편해서 어쩌느냐고 푸념하듯 말씀하셨지만, 나는 그것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게 제일 좋은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나도 똑같다. 오지와 살 때는 오지와 떠들고 오지와 밥을 먹고 웃고 그렇게 우리 둘 그리고 고양이들과 사는 집에서 가장 행복했다. 그리고 이제는 지량과 함께 있는 시간이, 우리 집이 가장 편안하다. 너무나 편안하고 고요하고 즐거운 우리집. 세상에서 제일 포근한 우리집 침대와 이불. 내가 길에서, 상점에서, 때론 바다에서 모은 수정의 빛깔이 가득한 내 방. 그리고 그 빛깔 속에 배어있는 향기로움. 그 안락함이 주는 행복이 커서 지량과 나는 집을 떠나 아무리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가더라도 집이 그립다. 로이스 커피의 사장님이 느끼는 것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겠지.
그 모든 안락함과 익숙함, 평온함으로부터 멀어진다. 이번에는 여행이 아니라, 조금 더 길게 그 안락함으로부터 떨어져 지내게 된다. 오늘 하루를 홀로 보내고 내가 이곳에서 집이라고 부를 이 낯선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조금 슬펐다. 안락함에서 벗어나니 새로운 풍경과 관계 속에서 내게 익숙하지 않은 방식의 말들이 하나씩 튀어나오고, 그것들이 날 불편하게 한다. 안락함을 그리워하는 것은 슬픈 마음인 것 같다. 슬픔도 물론 때로 필요하다. 그래서 기대한 것도 있지만 역시나 조금은 서글프다. 마르세유에서 지냈던 때가 떠오른다. 그때랑 정말로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마르세유에 막 도착해서 집을 구하고, 나만의 새로운 방을 다시 내 향기와 색깔로 채웠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도 나는 홀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날이 많아서 어떤 날엔 누굴 오랜만에 만나면 입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기도 했다. 그치만 그 슬픔과 그리움, 불편함 속에서 나는 그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자유를 찾았다. 어쩌면 낯선 곳에 다시 떨어지게 되는 것은 새로운 업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업을 풀어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익숙해지는 것이, 편안해지는 것이 어쩌면 업을 만드는 것일까. 업이 축복인 걸까. 그것을 정화하고 풀어내면 더 큰 자유를, 더 큰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니까. 그치? 내게 그런 시간이 다시 찾아온 것 같아서 기쁘다. 낯선 것들이 다시 익숙해지고, 내 것이라고 여겨지게 될 때쯤 나는 이곳을 떠나겠지. 8월 1일의 일기가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모든 시간을 벌써 살아버리는 것처럼. 하루는 영원이니까 괜찮아.
고요가 주는 것이 어쩌면 영원인가. 아침부터 낮 동안에는 매미 소리가 주변을 가득 채운다. 꽉 차있는 여름의 소리와 열기. 밤이 되니까 아주 고요하다. 풀벌레 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한낮의 높은 소리와는 전혀 다르다. 모든 것이 추욱 가라앉아있다. 소리도 아래에서 난다. 광주에서는 많이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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