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8월 02, 2026

서점 테이블 앞에 둥글게 모여 앉아 오랜만에 사람들과 대화했다. 일상적인 대화가 아닌 어떤 의제를 갖고 한 대화이자 토론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여러 언어와 이야기가 오가는 와중에 나는 여러 가지 조각난 생각과 소리가 정리가 잘되지 않는 것 같아 답답하고 피로했다. 무언가가 정리되어 발화되어야 한다는 압박을 오랜만에 느꼈다. 아니, 요 며칠은 사실 계속 그런 압박을 느끼는 중이었고, 오늘 특히 그 자리에서 그 이슈가 크게 드러난 것이다.

마침, 이 탁상 토론의 주제가 체화된 식민성에 대한 것이었는데 나는 그 이야기들의 한가운데서 내 개인적인 식민성을 마주해버린 것이다. 말로 명료하게 표현되지 않는 생각이 침묵 된 채로 폄하될까 하는 두려움, 더듬거리면 생각도 더듬거리는 걸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한국어로는 조금 더 잘할 수 있어-라는 생각 뒤에 외국어로 잘 소통하지 못하면 뭔가 뒤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 여긴 한국이고 내가 한국어로 말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인데도 스스로에게 어떤 위계를 씌우고 있는 것이었다. 며칠간 느낀 두려움과 장벽들이 하나로 똘똘 뭉쳐서 내게로 다가왔다. 예전에 내가 많이 위축되었던 시절이 떠올랐다. 모든 사람과 재치 있게 잘 이야기하는 사람, 모두를 웃게 만드는 쾌활함과 유머를 가진 사람, 조리 있게 말하는 사람들 앞에서 종종 내가 작아지는 것 같았고, 그런 사람들이 많이 부러웠다. 한동안은 이런 위축과 불편함이 없이 살았는데 며칠간 이것들을 마주하고 있다. 바로바로 내 생각을 표현해야 할 것만 같은, 올바른 말을 해야 할 것만 같은, 사람들이 잘 이해할 수 있게 잘 이야기해야 할 것 같은 그런 부담과 조급함이 밀려오는 게 당황스럽다. 그게 나에게 내재해 있던 식민성이었다.

언제나처럼 모든 상징성이 동시에 나타난다. 서점에 가기 전에 새로 입주한 일본인 중년 작가분을 마주쳤다. 대표님이 인사시켜 주셨는데, 그 일본 분은 영어를 못한다고 하셨다. 그것이 물론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그게 중요치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에게는 이상한 식민성을 주입한다. 뭔가 모터가 달린 것처럼 빠르게 자기 생각을 쏟아내는 사람들 앞에서 나도 모르게 나도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을 느낀다. 그것이 맞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 행동과 내 말이 내 작품처럼 어떤 일관성과 맥락을 지녀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내가 먹는 것, 내가 입는 것 등과 같이 모든 것들을 갑자기 검열하려는 충동을 발견하고 어이가 없다. 안에서부터 너무 많은 것들이 올라와 정리가 되지 않는다. 어쩌겠는가 그냥 올라오도록 두어야지. 올라오는 것들을 바라봐야지.

쓰다 보니 조금은 정리가 된다. 작품에 나타나는 일관성과 맥락을 나 자신의 존재 방식에도 똑같이 요구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그게 당연한 건가 싶다가도, 그래야만 하는가 싶어진다. 더듬거림, 침묵, 느림, 이 모든 것들도 그 자체로 언어인데 말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건 내 작업 방식으로 이어진다. 맞아. 그게 내가 작업을 하는 이유였지. 필름과 판화 프로세스에서 일어나는 실수와 통제할 수 없음, 어쩌면 실패라고 할 수 있는 결과물들, 나는 그것들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내가 내 삶 속에서 그런 것들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용인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껴서 그런 작업을 마치 수행처럼 하고 있기도 했다. 억지스러운 과정은 아니었고, 정말 그 일들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그게 어떤 형태가 되었든 간에 말이다. 과정에서 나타나는 흠집과 얼룩들은 제거되거나 수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 속에 속한 장면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떤 것을 아카이브 할 것인가-에 대한 오늘 토론의 화두에도 어울리는 이야기다. 어쩌다 보니 오늘 토론에서 아카이빙에 대해서 깊게 이야기하게 되었던 것 같다. 모든 것이 아카이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정당성은 누가 정할 것이며, 무엇이 적절하고, 올바른 것인지 누가 정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시간을 경험한 모두가 아카이브 될 수 있다. 사진과 판화 작업을 통해서 수행해 오고 있던 것을 이제 내 개인적인 삶으로 더 확장하고 싶다. 많이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멀었다. 체화된 식민성이란 이런 것이구나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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