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4월 28, 2022

honey, silver, gold, frog, head and heart

찻집엔 짜라투스트라가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고요하고 차분한 카오스.

차를 마시고 서점엘 갔다. 각자 마음에 드는 책들을 만지고, 집어들어 읽는다. 그리고 그 세계에 들어가기. 각자 어느 세계에 들어갔다와도 우리는 계속 함께였다. 참으로 포근하지. 

작년에 발걸음 하나를 내딛는 것조차 너무 버겁게 느껴져, 가보고 싶었지만 여태 가보지 못했던 곳에도 갔다. 수많은 장면들이 겹겹이 쌓여있는 곳. 내가 좋아하는 사진작가의 책을 폈다. 처음 보는 작품들이었다. 모든 불가능한 색깔들. 그러나 이미 발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할 수밖에 없는 색깔들. 

눈을 돌리면 곳곳에 메시지가 있었다. 합창이 터져나오는 ! 마음을 보태는 것들 ! 믿을 수 없이 행복하고 안심이 되는 순간들. 어떤 순간에는, 내가 기억할 수 없는 다른 차원 속에 존재했을 사랑을 보았다. 이상하리만치 따스했던 꿈속 볕뉘처럼, 이상하리만치 온전한 마음. 한참이란 것은 없지. 아쉬운 마음에 계속 걸었고 계속 웃었다. 그리고도 더 달리고 ! 더 듣고 ! la nuit pour soigner la mélancolie 아직 나만 듣던 노래. 같이 들으니 그제야 가능해지는 제목. 음악이란 것은 그런 건가봐. 

비가 온다. 토닥토닥하는 노래를 듣고 있었는데 빗소리도 토닥토닥이네. 잠이 솔솔 오는 중.. 나의 일기는 언젠가부터 편지가 되었어 !

화요일, 4월 26, 2022

볕뉘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는데, 꼬마가 쫓아왔다. 그 초등학교에 다니는 꼬마애였는데, 나를 인터뷰하겠다고 끝까지 나를 쫓아오는 것이다. 나는 그저 갈 길을 가려고 했는데, 끝까지 쫓아오는 바람에 이런저런 대답을 해주었던 것 같다.

아주 낡은 집에 들어갔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오래전부터 아무도 살지 않은 것 같이 낡고, 모든 것이 헝클어진 내부를 가진 집이었다. 모두 뒤섞이어 하나의 큰 덩어리가 되어버린 집. 나는 그 안에서 담배를 찾았다. 불을 켜면 왠지 집 전체가 불타버리는 것은 아닐까 마음속에 두렴이 잠시 일었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냥 조용한 곳이었다. 그저 평안하고 낡은 폐허. 집에 햇살이 드리워져 있었다. 이상하리만치 따스한.


일어났는데, 쉴 새 없이 어떤 얼굴들이 떠올랐다. 나는 그 떠오르는 얼굴을 쫓아가다가 일어났다. 갑자기 2년 전에 쓴 하루를 읽었다. qadir와 내가 겪은 이상한 새벽의 이야기. 내 성전인, 친구들을 위해 기도를 하고 싶어져서, 일어나 앉아 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친구들 이름을 마음속으로 하나씩 떠올렸다. 내게 가장 가까운 친구와 가족들 이름부터 떠올랐다 물론. 그런데 이름 하나를 말하면, 자연스럽게 그다음 이름들이 따라왔다. 그렇게 쉴새 없이 이름들이 이어졌다. 평소라면 떠올리지 않았을 이름들마저 떠올랐고, 그건 신비롭고 아름다운 체험이었다. 쉬지 않고 따라오는 이름들을 느끼면서 마음 가득 감사함을 느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단 말이야 ? 세상으로 확장하는 이름들. 확장하는 축복. 단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도, 결국 온 세상을 사랑하는 일이구나.
'같이 살자'고 외치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일요일, 4월 24, 2022

복합적 배탈 ! 병과 그것의 치료약 그리고 들뜬 마음의 복합 ~ ~ ~ 

그런데 이상하게도 배탈약을 먹으니 증상과 함께 축 가라앉은 마음이라니. 오랜만에 느끼는 상태인 것 같다.
오늘 다가온 것은 궤도와 7. 수수께끼 같은 것들. 나도 내가 태어난 해가 제목인 앨범을 만들고 싶다. 나는 가끔 세상을, 사람들의 마음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때로 그것은 순전히 비겁한 마음.

파동을 바라볼 것.

오늘 빨래를 개다가 어떤 마지막 순간을 상상했다. 죽음의 순간에, 평생 내가 사랑했던, 내가 만났던, 내가 미워했던 모든 사람들이 결국엔 다 나였음을 깨닫게 될 때, 마음이 어떨 것 같니. 오지에게 물었다. 오지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미 그렇게 깨닫고 있지 않았느냐고 했다. 응 맞어. 그런데 이상하게 오늘은 그것이 참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서운하다는 생각.. 갑자기 너무 슬펐다.





금요일, 4월 22, 2022

Um ser humano é o meu amor
De músculos, de carne e osso, pele e cor 

수요일, 4월 20, 2022

4월

지난 4월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잠시 둘러보았다. 작년 4월, 엄마 생일에 양주에 다녀온 이야기를 읽었는데 너무 재밌었다. 아주 멀리 있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1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긴 시간이었던가. 어제 엄마의 생일이었다. 많은 말들을, 글을 쏟아내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까 ? 더 많이 써야겠네. 순간들을 더 많이 더 길게 느끼는 것. 그래서 더 멀어지는 시간. 더 길어지는 시간.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한껏 신이 났던 기분을 기록한 날도 있었다. 다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즐겁다고, 기대가 된다고 선생님한테 말하고 싶다고 적어두었다. 결국에 그 다음 주에 선생님을 만났을 때 그런 말은 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는 결국에 하지 않았던 말들이 많았다.

지금 내가 지나고 있는 4월은 아주 다채롭다. 코로나에 걸린 이벤트도 특별하게 느껴진다. 오늘은 드디어 힘들지 않게 침을 삼킬 수 있게 되었다. 낮엔 너무 잠이 쏟아져서 잠을 잤다. 일어나서는 오래전부터 보고 싶었던 피의 연대기를 보면서 조금 울었다. 약을 며칠간 챙겨 먹었더니, 속이 좋지 않다. 내일은 더 나아져있겠지 ? 하루하루 내 몸의 상태를 면밀하게 살펴보는 중이다. 집은 좀 엉망이 되었다. 그러나 아무도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그게 왠지 좋다. 엉망이어도 다들 즐겁게 각자의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는 하루종일 잠을 자는 방에서, 오지는 캣타워와 컴퓨터가 있는 방에서. 저녁엔 똑같은 영상을 각자의 컴퓨터로 각자의 방에서 보았다. 내가 먼저 깔깔대고, 오지가 이어서 깔깔댔다. 집안을 가득 채우는 웃음소리. 아 어제까지만 해도 목이 아파서 말을 하지도, 웃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얼마나 소중한 웃음 소리지. 하하하하.

세상은 언제나 그대로- - - 들여다보면 눈물이 쏟아지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이야기들로 가득해. 그런 이야기들에 가까이 다가가려면, 그 이야기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내가 건강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슬픔과 분노 앞에서 가누지 못했던 마음들이 있었다. 그런 세상을 들여다보면 슬퍼하다가도, 다시 내 앞에 놓인 아름다운 것들을 보면서는 맘껏 기뻐할 줄 알아야 함을 알았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임을...!

하루 종일 집에 있다 보니, 아주 평온한 와중에, 두려움 알맹이를 몇 번 마주쳤다. 알맹이는 정말 많이 작아졌다. 귀엽군.

나 정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 같아.


일요일, 4월 17, 2022

매니페스터의 다짐

윤슬이는 얼마 전 운전면허증을 갱신하며, 차를 끌고 다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했다. 서울 외곽으로 나들이를 가고 싶어지기도 했고, 운전을 하고 다니면 기운도 좀 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윤슬이가 그런 마음을 갖게 되고, 신기하게도 나도 그저께 운전면허를 따야겠다는 다짐을 드디어 하게 되었다. 그간 운전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어렴풋이 있었지만, 나를 움직이게 한 것은 처음이니 정말 다짐이지. 어떤 우여곡절이 있을지 예상할 수는 없지만, 일단 안전교육 신청을 했고, 아무튼 시작. 매니페스터들이 다짐을 하는 때인가.

그저께, 친구가 힘든 일을 겪었다. 다행히 도움이 필요하던 그 절체절명의 시간에, 친구의 친구가 차를 타고 와서 같이 있어 주었고, 차로 데려다주었다고 했다. 친구와 새벽까지 이야기하다가 마음이 많이 안 좋아졌다. 그런 일은 없어야 하지만, 혹시라도 언젠가 또 내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내가 어떻게 그곳에 달려갈 수 있을까,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상상을 해보다가, 내가 운전은 할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우리를 동하게 하는 것들은 참으로 간단하다.

내가 요즘에 느꼈던 행복과 평안이 참으로 무의미하게 느껴졌던 밤이었다. 그런 생각의 전환은 너무나 슬프지만 말이다. 늦게 잠이 들고, 악몽을 꿨는데... 몸이 아파서 그랬던 건지, 그런 생각들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누군가를 죽였다. 잠결에 쓴 메모를 보니, 희대의 살인자였다고 한다ㅜ 연못에다가 증거물들을 떨어뜨렸다. 힘들게 깨어났는데, 목이 너무 건조하고 칼칼했다.

흐음. 결과적으로는 나에게도 드디어 순서가 온 것이었다. 어제 하루를 생각하면 웃음만 나온다. 피곤한데도 뭐 그리 좋다고, 경복궁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달렸는지... 아, 오늘 결혼식에 가겠다고 작업실 옆에 있는 빈티지 샵에 가서 예쁜 원피스까지 샀더랬다. 벌써 잊었다. 옷은 가지런히 나와 함께 집에 있다ㅎ 너무너무 웃기네. 필름도 한 롤 현상했다. 수세 중에는 4층 이웃을 드디어 마주쳤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했다.

현상한 필름을 스캔하고 있으니, 친구가 작업실에 왔다. 일을 마치고 온 친구는 피곤해 보였다. 사실 우리는 저녁 내내 이상한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목이 칼칼. 고양이털 알러지가 아닐까, 환절기 탓이 아닐까 하고 이런저런 추측을 해보았지만... 장난스레 뱉은 말들은 결국 현실이 되었고, 우리는 코로나 동지가 되었다. 슈퍼항체를 가진 게 아닐까 내심 기대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그래도 격리 전 마지막 식사와 커피는 좋았어요-

이상하고, 재미있는 우연과 만남들 앞에서 다시 나는 즐거워하고 있었네. 지난밤, 무의미하게 느껴졌던 내 행복과 평안은 다시, 행복과 평안이었다. 형식은 슬픔이었고, 내용은 행복이었다는 구절이 떠올랐다. 감사기도를 올리자.

매니페스터의 다짐

매니페스터의 평화


목자와 양들 교회

보건소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우리 동네 제일 특이한 명소 목자와 양들 교회 앞을 지나치는데 찬송가 소리가 들렸다. 오늘 일요일이었지. 오지도 나도 이 동네에 살면서 처음으로 듣는 노래 소리였다. 아무도 가지 않는 교회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좁은 입구로 들어간다. 

교회 옥상에서 갑자기 멍멍이가 짖는 소리가 들렸다. 멍멍이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왕왕 소리를 내며, 사람들을 반기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사람들은(이라고 해봤자 한 쌍의 부부였지만) 예배 참석을 위해 교회로 들어갔고, 그러자 멍멍이도 보이지 않았다. 찬송가 소리가 계속 들리는데 그 운율 위로, 멍멍이가 왕왕 다채로운 목소리와 리듬으로 소리를 냈다. 정말로 정말로 찬양을 했다. 

교회 앞에 서서 그 소리와 모습을 담고 있으니, 들어와도 된다고 하셨다. 오늘은 들어가진 못했지만, 내부가 너무 궁금해졌다. 궁금해서 지금 구글에 검색을 해보니, 정말 특별해보이네. 정말 아마 세상에서 제일 특이한 교회. 

그러나 햇빛 아래 들리는 찬송가 소리는 그 무엇보다 평화로웠다. 낡은 나무 계단. 아무렇게나 자라있는 풀들. 귀여운 멍멍이. 오르간 소리. 

연희동의 명물ㅎ 


자다가 혹시라도 숨쉬기가 어려워지면 벽을 두드리자 ! 

2년 전, 어느 날 밤에 엘로디와 굿나잇 인사를 하며 나누었던 대화

본느 뉘 

목요일, 4월 14, 2022

나른한 오후. 넘넘 졸려. 잠시 책상에 머리를 대고 눈을 감았다. 잠이 들진 않았다. 숨을 쉬었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야, 그냥 웃어버리고 말아.'하는 노랫말을 계속 듣는다.

새벽녘, 잠결에 술결에 이름 짓기에 골몰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아무것도 아닌, 싱겁기 짝이 없는 것들이 떠올라 그만두어야 할 때쯤 갑자기 잠이 확 깨버렸다. 잠시 핸드폰을 켜고 친구가 쓴 글을 읽었다. 나는 다시 우쭐했다.

어떤 노래는 한 달 내내 들었다. 좋아하는 성가는 모두 8분의 6박자라고 친구가 외쳤다. 책장에서 바가바드기타가 툭하고 떨어진 날처럼, 소금 커피를 먹고 '소금과 빵'이라는 책을 발견한 날처럼, 깜짝스럽고 재미있는 효과음이 나던 날처럼, 그런 순간들이야-하며 다시 잠이 들었다.

수요일, 4월 13, 2022

favorites !

화요일, 4월 12, 2022

2022년 4월 12일. 

웜홀 여행에 성공한 우리들.


오늘의 나로서는 파악할 수 없었지만 어떤 메시지인가요 ? 


아름다운 회색과 아름다운 소음

지붕 위에 올라간 고양이

두려움을 사라지게 한 봄비

차가운 음식과 아름다운 저녁의 온도

무거운 스웨터

아름다운 하루




월요일, 4월 11, 2022

일요일, 4월 10, 2022

소영과의 일요일

소영이 라임 타르트를 들고 우리 집에 왔다.

따뜻한 날씨에 약간은 녹았지만 정말 정말 맛있는...(살면서 라임 타르트를 많이 먹어본 적은 없지만 아마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타르트를 먹고 한가로이 떠들다가 함께 산책을 나섰다. 함께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오지 작업실에 들러서 드러누웠다. 잠이 솔솔 오는 일요일 오후였다. 오지는 투탕카멘처럼 타투베드 위에 누웠다. 나도 내 작업실에 누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다. 카페트를 깔까, 인조 잔디를 깔아볼까 고민을 하는데 소영이가 해먹을 설치하라고 했다. 해먹이라니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방법을 찾아봐야지.

투탕카멘과 함께 다시 일어나 보틀에 잠시 들렀다가 홍제천을 따라 산책을 하며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소영에게 잠시 요즘 우리가 좋아하는 게임 디아블로를 보여줬다. 오지랑 나랑 서로의 캐릭터가 어떤 방식으로 전투를 하는지, 그게 얼마나 매력이 있는지에 대해서 자랑을 했다. 너무 웃기네. 함께 식사를 하고, 이런저런 음악을 함께 들었다. 우리는 악기 연주하는 일에 대해서 떠들었다. 악기를 연주하는 일은 신체의 고통을 수반한다. 저렇게 멋진 연주가 가능해지기까지 얼마나 아팠을까. 그런데 만수르 브라운은 거의 잠을 자는 것처럼 편안하게 기타를 연주하는데 그 모습이 참 신기하고 재밌다. 오지는 드럼을 치고 싶다고 했다.

순식간에 밤이 되었고, 오늘의 가장 중요한 일인 파이프 전달식이 있었다. 내가 최근에 만든 도자기 파이프를 소영이가 구매하기로 했다. 애정이 듬뿍 들어간 파이프. 소영은 내 파이프를 베를린에 가져갈 예정이다.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소영은 테라스가 딸린 집을 구해서, 그곳에 앉아 하염없이 파이프를 피우는 모습을 상상했다. 내년쯤엔 나도 소영이가 있는 곳에 가서 같이 파이프를 피우기로 했다.

나는 소영에게 파이프 피우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옥상에 올라가 불을 붙이는 법부터 가르쳐주는데 소영은 배우는 자의 자세인 건지, 무릎을 약간 굽히고, 한껏 이상한 자세로 파이프를 들었다. 오지랑 나는 웃느라 여념이 없었다. 소영은 한참을 헤맸고, 소영에게 가르쳐주느라 나는 예상치 못하게 파이프를 많이 피운 날이 되었다. 소영이가 베를린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아마 몇 번 더 강습(?)이 있을 것 같다. 소영의 독일로 돌아가는 준비에 파이프 배우기가 있는 것이 재미있다.

나는 예상치 못하게 담배를 많이 피운 날이 되어 한껏 들떴다가, 소영이가 떠나고 이제는 오히려 더 차분해졌다. 잘 준비를 해야지.

dévouement

그저께 패티 스미스의 '몰입'을 작업실에 가져다 두었다. 다시 읽으려고. 몰입. 그 말은 곧 '헌신'이다. 

오늘 아침 곳간 블로그에 정말 오랜만에 들어갔다가 내가 이 블로거에는 옮겨두지 않은 일기 하나를 발견했다. '헌신'이라는 제목의 일기였다. 

많은 것들을 재회하는 중. 꿈에서도 그렇다. 필연적인 재회인가보다. 정신없이 쌓여진 이것저것-의 더미들을 들추는 일. 다시 탐험가이자 발굴가의 마음으로 사는 일. 다시 헌신을 생각한다. 

2021년 5월 21일

'헌신'



조금 전에 까미유를 위해 새로운 장난감을 꺼냈다. 매일 같은 장난감으로 놀아줬는데 이제 조금 권태로워보이는 듯 해서, 새로운 장난감을 꺼냈더니 아주 환장을 한다. 장난감이 꽤 여러개 있기는한데, 너무 이것 저것 가지고 놀아주는 것은 별로라는 말을 들어서.. 이제 또 한동안 이걸로 놀아주다가 또 다른 것을 꺼내보아야지. 고양이들 장난감이 한 곳에 모여있는데, 거의 다 막대에 길고 얇은 줄이 매달린 형태의 장난감들이라서, 그 안에서 다 엉켜버리고 말았나보다. 나는 정확히 재보진 않았지만 30분이 넘도록 그 타래를 풀었던 것 같다. 절대로 풀어지지 않을 것 같던 타래들이 결국엔 다 풀렸는데, 끝까지 그 자리에 앉아 해결한 내가 신기했다. 웃기네. 별 것도 아닌 것 같은 부분들을 보면서도 나는 또 삶이란 것을 생각한다. 다 풀고나서 다시 까미유를 놀아주는데, 코끝이 붉어질 때까지 신나게 뛰어다닌다. 정말 정말 고양이 같았다. 동화에 나오는 고양이의 모습. 핑크색 나비같은 그 장난감을 바라보는 까미유의 눈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 다른 생각은 절대 없다. 몰입. 그렇게 단 하나에 완전히 몰입했던 적이 언제였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 참. 그러고보니 아까 예전에 쓴 노트를 후루룩 넘기다가 패티 스미스의 '몰입'을 읽고 나서 적어둔 메모를 흘끗 보았던 것이 생각이 난다. 그래서 까미유의 눈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한 것일까.

몰입은 다른 말로 '헌신'이다.

dévouement

devotion

이 책에서 패티 스미스가 마지막장에 쓴 구절을 너무나 공유하고 싶지만 혹시라도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누군가가 내 일기를 보고 서운해질까봐..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대신에 '꿈은 꿈이 아니다'라는 마지막 장에 등장하는 첫번째 문단을 공유하려고 한다.


어째서 글을 쓰지 않고 못 배기는 걸까? 스스로를 격리하고, 고치 속에 파고들어, 타인이 없는데도 고독 속에서 황홀한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 버지니아 울프에게는 자기만의 방이 있었다. 프루스트에게는 셔터를 내린 창문이 있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에게는 음이 소거된 집이 있었다. 딜런 토머스에게는 소박한 헛간이 있었다. 모두가 말들로 채울 허공을 찾는다. 그 말들이 아무도 밟은 적 없는 땅을 꿰뚫고 풀리지 않은 비밀번호를 풀고 무한을 형용할 것이다. (패티 스미스, 몰입, 마음산책, 121p.)



이 주제와 관련하여 나도 작업을 하려고 분명 메모를 해둔 것이었는데, 또 쌓여있기만 한 제목들. 사실 그런 것들을 다시 들추려고 노트들을 한데 꺼내놓은 것이기도 하다. 수성 역행이 다가오는데, 그 시기동안 이것들을 정리해도 좋겠다. 다시 몸이 많이 나른하고 힘이 없는 것 같다. 졸린 눈을 하고 다시 헌신을 생각하는 밤.

타투를 하려고 잉크도 꺼내놓았고 바늘도 꺼내놓았는데 또 고민이 된다. 무언가를 새겨야겠다는 막연한 욕망만으로 펼친 것들인데.. 일기를 쓰면서, 다투면서 다시 또... ~ ~ ~

토요일, 4월 09, 2022

love proceeding



석굴암

이안이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서촌에서 만나기로 했다. 오지와 272번 버스를 타고 사직단으로 향했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반팔만 입고, 가디건을 챙겼는데, 가디건은 바로 벗어버릴 만큼 더운 날이었다. 버스에 타기 전부터 흥얼거리던 노래를 함께 들으며 갔다. 창문이 많이 열려있어서 버스 안에도 바람이 시원하게 불었다. 따뜻하고 시원한 바람.

크게 '행복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오지와 나는 계속 서로를 보며 눈웃음을 지었고, 몸을 흔들거렸다. 순수한 행복의 순간이었다. 이 순간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디 아워스에서 메릴 스트립이 했던 대사가 떠올랐다. 행복이 느껴지던 어떤 순간. 그것이 앞으로 행복한 나날들이 펼쳐질 것이라는 사인같이 느껴졌고,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펼쳐지지 않았다고. 행복은 그저 그 순간이었던 것이라는 말. 나는 오늘 따뜻한 바람을 맞으며 느꼈던 행복을 맘껏 즐겼다. 즐거운 상상들, 즐거운 착각들 모두 펼쳐지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버스 안이 환했다. 사람들도 모두 따뜻한 바람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약속 장소는 서촌의 노부였다. 이안이는 맛있는 소바가 먹고 싶었다고 했다. 기대에 가득 차서 음식을 주문했지만 그만큼 만족스러운 맛은 아니었다. 입맛이 요즘 뚝 떨어진 우리에게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봄이라 그런지 다들 입맛이 없다고 했다. 이안이는 얼른 시원한 음료를 마시고 싶다고 했다. 이안이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디저트를 샀고, 카페에 가서 잠시 티타임을 즐겼다.

우리는 카페를 나와 수성동계곡으로 향했다.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언제 세상이 이렇게 연두색이 되었지. 우리는 정자에 앉아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작고 달콤한 디저트들에 초를 꽂고, 축하를 하고, 이안이는 소원을 빌었다. 우리는 꽤 한참 정자에서 쉬었다. 끝없이 초록을 감탄하기도 하고, 이상하고 징그러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진주는 석굴암에 우리를 데려가기로 했다. 길은 잘 모르겠지만 느낌으로 갈 테니 잘 따라오라고 했다. 다행히 석굴암 가는 길은 잘 표시가 되어있었다. 우리는 끝없이 펼쳐진 계단을 올랐다. 올라가는 길에는 우리밖에 없었다. 계단을 오르다가 중간중간 쉼터에 서서 서울 풍경을 즐겼다. 우리는 점점 높아졌다. 석굴암이 거의 가까워지자 개나리들이 즐비했다. 뒤를 돌아보면 서울의 건물들이 빼곡한 잔디처럼 펼쳐져 있었고, 우리 앞에는 노란 꽃들과 초록 잎들만 가득했다. 우리는 너무너무 행복했다. 다시 이곳에 오기로 거듭 약속했다.

석굴암에 들어갔는데, 그 안은 추울 정도로 시원했다. 나와 오지, 이안이는 부처님 앞에서 절을 했다. 브이로그를 열심히 제작하는 진주는 절을 하는 우리를 찍었다. 삼배를 하기로 했는데, 촬영을 하는 진주를 위해 두어 번 더 절을 했다. 절을 하고 있으니, 한 보살님께서 들어오신다. 이 공간에 와서 기도도 하고, 자리를 지키시는 분이라고 했다. 주말에는 원래 스님이 계시는데 오늘은 다른 곳에 가셨다고 했다. 절을 하고 있는 우리를 정말 예뻐해 주셨다. 어른들이 삼천배를 하는 것보다 우리처럼 어린 친구들이 삼배하는 것에 더 큰 에너지가 있다고 말씀하시며, 커피를 타주셨다. 어쩌다 오늘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몇 살인지, 직장은 다니고 있는지 등 어른들이 으레 하는 질문들을 하셨다. 거듭 우리에게 결혼할 나이가 되었다고 하시며, 이렇게들 몰려다니면 연애는 언제하고 결혼은 언제 하냐고 핀잔을 주셨다. 본인의 아들은 혼기를 놓쳤다며 걱정을 하셨다. 어른들의 말은 가끔 지루하지만 그래도 왠지 그 시간은 재밌었다. 어떤 기도를 하고 계신지 궁금했지만 물어보진 못했다. 다음에 또 만나 뵙게 되면 물어봐야지. 인왕산 이야기가 나와서, 석굴암에는 인왕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 없다고 표지판에 쓰여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자, 보살님께서는 알려지지 않은 길이지만 길이 있다고 알려주셨다. 비밀이니 사람들에겐 퍼뜨리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 일기에는 써도 되겠지 ?

이야기를 마쳐갈 때쯤에 한 아저씨께서 양초 박스를 석굴암에 내려놓으시며 보살님과 인사를 나누셨다. 사실 석굴암을 오르는 초입 계단에 양초 박스가 가득 쌓여있었는데, 박스들에는 석굴암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부탁하는 메시지가 적혀있었다. 이 양초들을 석굴암으로 가져다 달라는 부탁의 말이었다. 그걸 보면서 우리는 웃고 말았는데, 정말 누군가는 들고 올라왔다. 인왕산 정상으로 향하기 위해 나오자, 그 아저씨는 본인도 그 비밀스런 통로로 정상을 가는 길이라고 하셨고, 우리와 동행해주셨다. 보살님은 우리에게 인사를 하며 계속, 복 받은 날이라고 외쳐주셨다. 아저씨를 따라서 길이 아닌 길로 올라갔다. 나는 치마를 입고 있었고, 이안이는 슬리퍼 같은 신발을 신고 있었다. 아무도 산을 오르는 준비를 하진 않았지만 우리는 모두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것도 비밀스러운 산길로 !

아저씨는 정말 친절하셨고, 우리가 외치는 말들 하나하나에 다 공감을 해주셨다. 그게 너무 귀엽고 재밌었다. 우리가 발견하는 것들에 동참하시며 같이 즐거워해 주셨다. 올라가는 길엔 이상한 구조물을 발견했다. 아주 커다란 바위에 기둥을 누가 세운 것인지 동굴처럼 만들어진 희한한 공간이었는데, 우리는 이곳을 우리의 아지트로 삼자고 했다. 다시 산을 올랐고, 곧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공식적인 산행로에 다다랐다. 우리는 이제 그 길을 따라 정상으로 향했다. 정말 얼마 만에 온 인왕산 정상이지? 정상에 오르니 많은 사람들이 바위에 앉아있었다. 저녁이 다 되어가는데도 사람들은 계속 산을 오르고 있었다. 정상에서 아저씨가 우리 네 명의 사진을 찍어주셨다. 아저씨는 내려가는 길도 함께 해주셨는데, 계속 우리랑 같이 까마귀 구경도 하고, 철봉도 하고, 소리도 치고, 나무를 만지기도 했다. 너무 즐거웠다. 우리가 절에 함께 가는 날이면 항상 재미있는 일들이 일어난다. 항상 귀인을 만나는 것 같았다. 이안이와 작년 이맘때쯤 승가사에 갈 때에도 트럭으로 우리를 데려다주던 아저씨를 만났었는데 말이다.

산에서 내려오자, 아직 여전히 세상은 밝았지만 저녁 빛으로 변해있었다. 달이 너무 예쁘게 떠 있었다. 행복에 가득 차서 우리는 헤어졌다.

오랜만에 열심히 활동했는데도 오지와 나는 입맛이 없었다. 신선한 것이 먹고 싶어서, 포케를 주문했고, 다행히 정말 정말 맛있게 식사를 마쳤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오지는 안락의자에서 잠시 졸았고, 나는 차분한 음악을 틀어놓고 일기를 쓰는 중이다. 많이 피곤하다. 푹 잤으면 좋겠네 오늘. 4월은 내가 다시 불의 기운으로 지낼 수 있는 때라고 했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3월 내내 집에 숨어지내다가 4월이 되자마자 바빠졌다. 이번 주에 많은 사람을 만난 것 같네. 이리저리 쏘다니는 말로 돌아온 것 같다. 계속 숨어지내고 싶을 것 같았는데, 이 만남들이 아주 즐겁다. 날씨도 사실 한몫하고 있다. 마음에 사랑이 가득 차는 날씨. 곁에 있는 누구라도 꽉 안아주고 싶어지는 나날들 ~ ~ 행복해라. 행복해. 

금요일, 4월 08, 2022

오랜만에 나는 골몰했다.
너무 골몰한 나머지 남의 집 대문 앞 계단에 앉아서 생각을 하고 싶었다.
꽤 멀리서부터 걸어왔는데 이상하게 힘들지가 않았다. 어쩌면 작업실에서부터 집까지 걸어오는 것도 가능했을 것 같다. 조만간에 그런 여정을 지나올 것 같다. 그 길 사이에는 터널도 언덕도 있는데.. 걸어서 가면 터널에 들어가지 않아도 터널을 지날 수가 있겠지. 날씨가 따뜻해지면 집으로 돌아가는 먼 길도 걸어서 가보겠다 다짐을 하곤 했는데, 정말로 오늘은 오랜만에 신촌역에서부터 집까지 걸어왔다. 걷는 동안 너무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느라 바빴다. 아마 그러느라 배가 아픈 것 같았다. 산타나 노래가사를 떠올린다... 창피하기도, 반갑기도, 신이 나기도, 질투가 나기도..
한솔이가 써 준 편지를 오랜만에 읽었다가 한솔이가 많이 보고 싶어졌다. 장루이 쌤과 새로 사귄 친구를 생각했고, 오랜만에 다른 누군가의 세계를 관심 있게 살펴보고 있다.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마음이 많이 수그러들은 것 같다. 아쉽지만 내려놓아야 하는 것들이 분명 있다. 몇 가지를 내려두면 다른 몇 가지가 다가온다. 모든 것은 역시 질량 보존의 법칙을 지킨다...

노래가 너무 좋아서 집에 들어가기가 싫었다. 배드민턴 네트 아래 쭈그려 앉아서 메시지를 보냈다. 네트 옆에 있는 평상에 사실 앉으려고 했는데, 어떤 아저씨가 앉아 있었거든.

목요일, 4월 07, 2022

근래 배가 고프지 않았다. 이상할 정도로 !

드디어 큰 종이들을 자르기 위한 긴 자를 사왔다. 내가 사고 싶었던 모양은 아니었다.. 다녀와서는 필름 한 롤을 현상했다. 정말 오랜만이군. 필름이 마르는 동안에 벽에 붙어있는 종이들을 떼어내고, 작업실 정리를 조금 했더니 드디어 배가 고팠다. 정말 정말 배가 고파서 아까 점심에 먹고 남겨둔 베이글 샌드위치를 마저 먹었다. 

배가 고프지 않은 것, 잠이 오지 않는 것이 걱정스러운 일이란 것을 요즘 느끼고 있다. 이 생각을 하다가 엄마가 생각이 나서 방금 엄마랑 통화를 했다. 엄마가 요즘 조용한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있나하고 전화를 하니 역시나 축 쳐진 목소리다. 호르몬제를 먹기 시작한지 3일이 됐다고 했다. 갱년기 증상으로 힘들어한지는 꽤 됐는데, 그 동안에 부작용이 걱정되어 먹지 않았던 엄마는 요즘 많이 힘들었는지 처방을 받았다고 말했다.

봄이 되어서 그런가.. 다시 엄마의 기분이 들쑥날쑥하고, 이안이도 요즘 잠을 통 못잔다고 하고.. 나는 배가 고프질 않았고.. 몸이 떨리기도 했다. 며칠간 말이다. 우리 몸 안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중일까. 이 생각을 하니까 또 떨린다.

겨울에서 봄이 되는 과정은 다른 모든 계절의 변화들 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인가보다. 봄에 사람들이 많이들 죽는다고 이안이가 그랬다. 특히 노인들이 말이다.. 따뜻해지려면 큰 에너지가 들긴 하지. 싹을 틔우는데 얼마나 많은 힘이 들어갈까. 

화요일, 4월 05, 2022

내가 블로거에 쓴 글들을 후루룩 살펴봤다. 기억이 나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고, 너무 재미있었다. 그러고보니 작년에 내가 한동안 일기쓰기에 열중을 하겠다며 졸린 밤에도 열심히 일기를 쓰던 때가 있었지. 그조차도 잊었네. 어거지로 쓴 것 같았는데 일년이 지난 지금 보니 너무 소중하고 재미있는 기록들이다. 오지와 싸운 이야기들도 자주 보인다. 내 기분을 달래기 위해 애쓰던 흔적들. 죽고싶었던 마음들. 
그것들이 모두 희미해지니, 무언가를 남겨야만 한다 혹은 기억해야만 한다는 강한 의지도 희미해진 것 같다. 무엇도 좋거나 나쁜 것도 아니다. 그래도 모든 것들이 소중하다.

다시 매일 밤 어거지로 쓰는… 오타가 많은 엉망의 일기일지라도(지난 일기들을 보니 가끔 오타가 있다..) 오늘의 일들을 기록하는 일을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그 자체로 너무 즐거운 일이니ㅎ

다른 시간의 내가 이것들을 읽고 있을 때에 얼마나 또 즐거울까. 호호 나에게 선물을 하는 것만 같네. 
이상하네. 별명이 없다. 
오늘 별명이 있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았다. 모두가 나를 그냥 세라라고 부르네.
수연이는 여전히 나를 ‘오세’라고 부르는 것 같지만 큰 의미는 없다. 그냥 내 이름의 앞 두글자만 부르는 별칭이지. 

세라
세라언니
오세라
세라씨
세라님

사실 내 이름이 너무 좋아서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불러줄 때 기분이 좋다. 그래도 재미있는 별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생존자 오세라씨

회사가 부도가 났다. 모든 것이 엉망이었고, 그 일의 뒷처리는 모두 우리의 몫이었다. 동료들과 다같이 비행기를 타야했다. 반드시 사고가 날 것이고, 죽을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언젠가의 생존자들처럼 우리는 다시 살 수도 있을 것이란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정말로 우리는 죽었고, 다시 살아났다.
다시 살아나서 보니, 우리는 임시 공항에 내려져 있었고, 임시 대피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내 머리에는 털모자가 마구잡이로 엉망이 되어 붙어있었고, 모두의 모습은 엉망이었다. 내가 머리에 붙은 것들을 떼어내며 동료들에게 다가가니 그들은 모두 신이 난 얼굴로 나에게 엄지를 치켜올렸다. 나도 신이 났다. 그리고 모두에게 내가 무슨 상상을 하고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뉴스에 ‘생존자 오세라씨’라고 소개되는 상상을 했다. 그리고 눈을 감고 내가 다시 살아나는 그 순간을 다시 느껴보기로 했다. 온통 세상은 하얬고, 나는 상승하고 추락하고 상승하고 추락하는 것을 반복했다. 


깨어났는데 심장이 너무 두근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