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슬이는 얼마 전 운전면허증을 갱신하며, 차를 끌고 다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했다. 서울 외곽으로 나들이를 가고 싶어지기도 했고, 운전을 하고 다니면 기운도 좀 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윤슬이가 그런 마음을 갖게 되고, 신기하게도 나도 그저께 운전면허를 따야겠다는 다짐을 드디어 하게 되었다. 그간 운전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어렴풋이 있었지만, 나를 움직이게 한 것은 처음이니 정말 다짐이지. 어떤 우여곡절이 있을지 예상할 수는 없지만, 일단 안전교육 신청을 했고, 아무튼 시작. 매니페스터들이 다짐을 하는 때인가.
그저께, 친구가 힘든 일을 겪었다. 다행히 도움이 필요하던 그 절체절명의 시간에, 친구의 친구가 차를 타고 와서 같이 있어 주었고, 차로 데려다주었다고 했다. 친구와 새벽까지 이야기하다가 마음이 많이 안 좋아졌다. 그런 일은 없어야 하지만, 혹시라도 언젠가 또 내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내가 어떻게 그곳에 달려갈 수 있을까,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상상을 해보다가, 내가 운전은 할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우리를 동하게 하는 것들은 참으로 간단하다.
내가 요즘에 느꼈던 행복과 평안이 참으로 무의미하게 느껴졌던 밤이었다. 그런 생각의 전환은 너무나 슬프지만 말이다. 늦게 잠이 들고, 악몽을 꿨는데... 몸이 아파서 그랬던 건지, 그런 생각들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누군가를 죽였다. 잠결에 쓴 메모를 보니, 희대의 살인자였다고 한다ㅜ 연못에다가 증거물들을 떨어뜨렸다. 힘들게 깨어났는데, 목이 너무 건조하고 칼칼했다.
흐음. 결과적으로는 나에게도 드디어 순서가 온 것이었다. 어제 하루를 생각하면 웃음만 나온다. 피곤한데도 뭐 그리 좋다고, 경복궁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달렸는지... 아, 오늘 결혼식에 가겠다고 작업실 옆에 있는 빈티지 샵에 가서 예쁜 원피스까지 샀더랬다. 벌써 잊었다. 옷은 가지런히 나와 함께 집에 있다ㅎ 너무너무 웃기네. 필름도 한 롤 현상했다. 수세 중에는 4층 이웃을 드디어 마주쳤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했다.
현상한 필름을 스캔하고 있으니, 친구가 작업실에 왔다. 일을 마치고 온 친구는 피곤해 보였다. 사실 우리는 저녁 내내 이상한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목이 칼칼. 고양이털 알러지가 아닐까, 환절기 탓이 아닐까 하고 이런저런 추측을 해보았지만... 장난스레 뱉은 말들은 결국 현실이 되었고, 우리는 코로나 동지가 되었다. 슈퍼항체를 가진 게 아닐까 내심 기대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그래도 격리 전 마지막 식사와 커피는 좋았어요-
이상하고, 재미있는 우연과 만남들 앞에서 다시 나는 즐거워하고 있었네. 지난밤, 무의미하게 느껴졌던 내 행복과 평안은 다시, 행복과 평안이었다. 형식은 슬픔이었고, 내용은 행복이었다는 구절이 떠올랐다. 감사기도를 올리자.
매니페스터의 다짐
매니페스터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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