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10월 19, 2026
화요일, 10월 06, 2026
월요일, 9월 28, 2026
어제는 아침에 말이 마구 튀어나오고 생각의 전환이 너무 빨라서 무서울 지경이었다. 보름달 효과인 건지 무언지 정말 알 수가 없었다. 밖에 나가서 그래서 한참 걷다가 집에 돌아왔다. 이게 혹시 조증에피소드는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정말로 내가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다. 기껏 2년간 우울증 치료를 잘 마치고 나서, 1년을 잘 보내고서는 다른 삽화를 마주하게 되는 것일까 두려웠다. 지량이 온전히 내가 걷는 길과 음악만 들으며 다녀오라 했지만, 그런 생각들이 멈추지 않는 산책길이었다. 오랜만에 좋아하는 빵집까지 걸어가서 빵을 사고,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식당에 들러 밥을 먹었다. 생각보다 길어진 산책길이었다. 약간은 땀도 났다. 에너지가 조금은 빠졌는지, 집에 돌아와서는 나가기 전보다는 차분하게 있을 수 있었다. 지량과 함께 거실 테이블에 앉아서 그림을 그렸다. 많이 불안한 나를 보고 지난 밤에 지량이 내렸던 특별한 조치 같은 것이 있었다. 세라 맞춤 치유 프로그램. 묵언수행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묵언수행을 하겠다고 선언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앉아서 그림 그리는 동안 최대한 말을 아꼈다. 차분히 세 장의 그림을 그려냈다. 생각보다 맘에 들었다. 콩테로 드로잉을 하는 감각이 좋았다. 손으로 콩테 가루를 문지르는 것도, 손가락 끝에 그 색깔이 물드는 것도.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도 많이 불안했다. 이리저리 뒤척이고, 또 생각이 튀어 나가고, 손이 뜨겁고, 뒷머리가 두근두근했다. 지량과 어제 사 온 남은 빵과 커피를 먹으며, 오늘도 함께 드로잉을 했다. 지량이 요즘 많이 좋아한다는 음악을 들으며. 지량과 그 시간을 함께하는 것이 너무 좋았다. 집을 떠나기가 싫었다. 광주에 가기 싫은 맘과 가고 싶은 맘이 계속 시소를 타듯이 서로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래도 결국 광주에 왔다. 이번 주에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해야지. 그래도 이전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왔다. 돌아오자마자 짐을 놓고 요가원을 향했다. 9월 한 달 동안 요가원에 등록해 두고는 아파서 몇 주간 수련을 쉬었다. 불안한 마음이 커질수록 요가 수련이 그리웠다. 수련하는 것을 무언가 부정적인 마음의 작용이나 불안을 잠재울 방도로 생각하면 그 또한 강박과 불안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함정이 되기도 하지만, 지금 내가 중심을 다시 찾기 위해 많이 필요하긴 했다. 중심이 상반신으로 쏠려있는 것이 느껴지는 나날이었다. 뿌리내리는 힘이 많이 약해져 있었다. 브륵샤사나를 하는데 이렇게나 흔들릴 줄이야. 내게 정말 안정적인 아사나였는데 말이다. 어쩌면 그래서 많이 불안했나 보다. 발이 땅에 단단히 깊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오늘 오랜만에 수련하고 나니 많이 이완된 것 같다. 창작소로 돌아오니 힘이 추욱 빠져있는 내 몸이 느껴진다. 내일도 더 편안하게 수련해야지. 아직 많이 흔들거려서 그런지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말이 잘 이어지지 않아 멈칫하거나 주저하는 순간이 많아진다.
아, 오늘 요가하면서 정말 인상 깊은 선생님의 말씀이 있었다. 아사나를 하면서 에너지의 흐름이 어느 부분에 멈춰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동하게 하라고 하셨다. 머리에서 천골로, 천골에서 다리로, 다리에서 다시 머리로 그렇게 계속 에너지가 이동하는 것을 느끼는 것이지, 어딘가에 무언가를 고정시키고, 멈추어두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고 알려주셨다. 내 몸을 계속 펜으로 그려보는 것처럼 느껴보라고 하셨다. 펜촉을 어딘가에 멈추지 말고, 계속 내 몸을 그리는 것이라고. 이 말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앞으로 수련하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마침 지량과 어제와 오늘 함께 드로잉하는 시간을 가져서 그런지 더 와닿는 가르침이었다. 지량도 내게 오늘 비슷한 말을 했었는데 말이다. 그게 중요한 것이었다. 내일도 그렇게 해야지.
금요일, 9월 11, 2026
무등일기
자전거 타고 창작소에서 출발해 증심사 지구 입구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무등산은 확실히 쉬운 산은 아닌 것 같아서 어제는 가볍게 당산나무까지만 천천히 가려고 했다. 날이 많이 시원해져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무등산의 기운인 건지, 바뀌어버린 계절 때문인 건지 머리가 단번에 맑아지는 것 같았다. 곧 만나게 될 당산나무의 모습을 상상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갔다. 가는 길은 그리 어렵진 않았다. 다람쥐를 정말 많이 봤다. 나비도. 새도. 우리나라에서도 해외에서도 청설모는 최근까지도 많이 봤던 것 같은데, 다람쥐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정말 너무 작고 귀여웠다.
당산나무까지는 그래도 금방 도착했다. 커다란 기둥과 굵게 땅으로, 하늘로 뻗어있는 가지들이 너무 튼튼했다. 나는 당산나무 주위를 빙 돌며 인사를 했다. 나무가 있는 곳은 그래도 평평한 쉼터처럼 너른 자리가 펼쳐져 있었고, 벤치와 큰 평상들도 있었다. 나는 평상에 홀로 앉아 김밥을 먹었다. 그래도 산에서 밥을 먹을 땐 고수레해야지 않겠어. 아주 작고 얇은 오이 조각 하나를 바쳤다. 아무래도 요즘은 아무렇게나 안전하게 자연에 바칠만한 공물이 찾기 어려우니 그냥 기분만 내기. 커다란 나무 앞에서 따스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김밥을 꼭꼭 씹어 다 먹었다.
다음번에 또 올 테니 오늘은 이렇게 가볍게 돌아가려고 했지만, 왠지 아쉬웠다. 날씨도 좋고, 이렇게 여기까지 올라온 것이 약간은 아깝기도 하니까 중머리재까지 가보자. 지도를 보면서 체크해 둔 몇 포인트 중의 하나다. 당산나무에서 가까우면서도 너른 풍경을 그래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30분 정도 더 가면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내 걸음이 그렇게 빠르지 않은 점도 있고, 그리고 사실 그렇게까지 가까운 거리는 아니어서 거의 1시간이 더 걸렸던 것 같다. 올라가면서 약간 후회하기도 했다. 하나도 힘들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힘이 들었다. 땀도 꽤 났지만, 남들처럼 줄줄 흘리며 오히려 열을 배출해 내는 체질이 아니라, 얼굴이 역시나 나는 아주 벌게졌다. 그치만 어쩌겠어. 되돌아갈 순 없었다. 끝까지 가야지. 생각해 보니 정말 오랜만의 등산이다. 최근에 지량과 인왕산에 다녀오긴 했지만, 뭔가 이렇게 큰 산은 오랜만이었다. 내가 가는 코스가 아마 그랬던 것 같은데 풍경이 그렇게 다이나믹하게 펼쳐지진 않았다. 그래서 더 중머리재까지 가는 길이 멀게 느껴졌던 것 같다. 무등산은 생각보다 훨씬 더 규모가 큰 산인 것 같았다. 수많은 바위 조각을 밟으며 계속 올라갔다. 분명 계속 다른 모양들을 보고 있지만, 커다란 풍경 속에 있으니 쉬이 내가 보는 장면들이 변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도 가면서 계속 새와 다람쥐들을 잔뜩 만났고, 산의 정령 같은 나무들을 많이 봤다. 확실히 무등산은 커다랗다. 그곳에 발을 딛게 되는 순간 그걸 느낄 수 있는 산이다. 무등산이 품고 있는 모든 것이 느껴진다. 그렇게 오르다가 딱 중머리재에 도착하기 직전에 약간 길이 가팔라진다. 그 끝에 중머리재의 너른 풍경이 펼쳐진다. 너무너무 아름다웠다. 탁 트인 하늘이 보이고, 고갯마루가 아주 넓다. 그래서 그게 스님의 머리와 같다고 해서 이름이 중머리재라고 한다. 사진을 찍고, 벤치에 앉아 목을 축이고 휴식을 취했다. 잠깐 누워서 머리의 열도 식히고, 다리도 풀어주고...
내려가는 길에 증심사에 들렀다. 대웅전을 빙 둘러 걸었다. 대웅전에 외벽에 그려진 벽화를 보며. 그리고 대웅전에 들어가 잠시 머물렀다. 삼배를 올렸다. 정말 고요하고 편안했다. 사원에 들어와 있으면 그 모든 신성이 우리를 감싸안는 기운이 강하게 느껴진다. 압도하는 기운이 아니라, 모두를 감싸안는 그런 기운 말이다. 지난해 타이베이에서 갔던 지산암 혜제궁에서의 순간이 떠올랐다. 아마 내가 잊을 수 없는 기도의 순간 중 하나다. 기다란 향 일곱 개를 들고 사원에 있는 각각의 일곱 신 앞에 찾아가 향을 올리고 기도를 했다. 거긴 꼭 또 찾아가 보고 싶은 곳이다. 아무튼, 잠깐 증심사 대웅전에 앉아 있는 동안 그 기억이 겹쳐졌다. 잠깐 나무 마룻바닥에 앉아 쉬었다가 나왔다. 산에서 거의 네다섯 시간을 보냈다. 중간중간 쉬기도 했고, 사진도 찍고 하니 시간이 금방 간다.
무등산에 다녀온 여운을 충분히 느낄 새도 없이 창작소에 도착해서 바로 사람들과 어제 새로 열린 전시 오프닝에 가기로 했다. 광주에 와서 사실 너무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많이 만나고, 인사하고 하느라 힘들기도 했는데 어제는 아주 재밌게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새로 레지던시에 들어온 작가들이 있는데 브라질에서 온 타이스와 스페인에서 온 에나르와 이야기가 하는 것이 웬일인지 편안하고 재미있다. 어쩌구 저쩌구 나도 모르게 엄청 많이 떠들었다. 있는 동안 사람들을 마주하는 것이 버겁기만 한 것은 아닐까 걱정했었는데... 그래서 늦게까지 같이 떠들고, 식사하고... 우리 셋은 밤거리를 함께 걸으며 창작소로 돌아왔다. 나름 뿌듯한 하루였다. 여러 가지 기운들이 한데 뭉쳤다. 내 몸에. 전날 양림요가원에서 했던 수련의 여운과 근육통이 몸에 계속 남아 있었고, 무등산의 기운도, 그리고 새로 만난 친구들과의 대화와 웃음소리도 다 한데 어우러졌다. 웬일인지 목소리가 잘 나오는 날이었다. 몸은 아주 피곤하지만서도 상승하는 기운이 느껴지는 날이었다. 그리고 일찍 잠에 들었다.
알람을 맞춰놓고 오늘 아침 8시 15분 수련에 가기로 했다. 더 자고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벌떡 일어나 요가원으로 향했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 그래도 2년간 꾸준히 요가를 했는데도 아사나 이름들은 모르겠다. 늘 새로운 마음으로 수련한다. 새로운 아사나를 마주하며 아직도 여긴 열리려면 멀었구나-하고 생각되는 몸의 구석구석을 발견한다. 그래도 그 하나하나에 너무 괴로워하거나 집착하지 말자. 그 과정에서 편안하게 호흡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깨달으며 수련한다. 몸이든 마음이든 몰아붙이지 말고, 편안하게 호흡할 공간을 찾는 것이다.
오늘은 그렇게 아침 수련을 하고 집에서 하루 종일 쉬었다. 해가 많이 내려오니 그제야 몸이 좀 깨는 것 같았다. 내 방으로 들어오는 오후 다섯 시 반의 햇살이 너무 아름다워서 벽에 비친 햇살을 한참 사진 찍었다. 폴라로이드로, 문주가 빌려준 똑딱이 필름 카메라로, 그리고 내 후지필름 카메라로…. 필름엔 어떤 모습으로 담겼을지 아직 알 수 없지만, 폴라로이드 사진 중 하나 아주 맘에 드는 것이 생겼다. 요즘 내가 매일같이 찍고 있는 순간이 있다. 아마 나중에 이 사진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질 것 같다. 잠들기 전에 늘 그 순간들을 상상해본다 요즘은. 이다음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꾸미고 싶은 공간과 시간. 내가 무등산에 올라 느꼈던 감각, 혜제궁 안의 신들을 마주하며 느꼈던 감각같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어딘가를, 무언가를 만드는 상상한다. 각자의 사원에 들어서는 순간을..
화요일, 9월 08, 2026
화요일, 8월 18, 2026
토요일, 8월 15, 2026
목요일, 8월 13, 2026
화요일, 8월 04, 2026
일요일, 8월 02, 2026
언제나처럼 모든 상징성이 동시에 나타난다. 서점에 가기 전에 새로 입주한 일본인 중년 작가분을 마주쳤다. 대표님이 인사시켜 주셨는데, 그 일본 분은 영어를 못한다고 하셨다. 그것이 물론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그게 중요치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에게는 이상한 식민성을 주입한다. 뭔가 모터가 달린 것처럼 빠르게 자기 생각을 쏟아내는 사람들 앞에서 나도 모르게 나도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을 느낀다. 그것이 맞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 행동과 내 말이 내 작품처럼 어떤 일관성과 맥락을 지녀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내가 먹는 것, 내가 입는 것 등과 같이 모든 것들을 갑자기 검열하려는 충동을 발견하고 어이가 없다. 안에서부터 너무 많은 것들이 올라와 정리가 되지 않는다. 어쩌겠는가 그냥 올라오도록 두어야지. 올라오는 것들을 바라봐야지.
쓰다 보니 조금은 정리가 된다. 작품에 나타나는 일관성과 맥락을 나 자신의 존재 방식에도 똑같이 요구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그게 당연한 건가 싶다가도, 그래야만 하는가 싶어진다. 더듬거림, 침묵, 느림, 이 모든 것들도 그 자체로 언어인데 말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건 내 작업 방식으로 이어진다. 맞아. 그게 내가 작업을 하는 이유였지. 필름과 판화 프로세스에서 일어나는 실수와 통제할 수 없음, 어쩌면 실패라고 할 수 있는 결과물들, 나는 그것들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내가 내 삶 속에서 그런 것들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용인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껴서 그런 작업을 마치 수행처럼 하고 있기도 했다. 억지스러운 과정은 아니었고, 정말 그 일들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그게 어떤 형태가 되었든 간에 말이다. 과정에서 나타나는 흠집과 얼룩들은 제거되거나 수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 속에 속한 장면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떤 것을 아카이브 할 것인가-에 대한 오늘 토론의 화두에도 어울리는 이야기다. 어쩌다 보니 오늘 토론에서 아카이빙에 대해서 깊게 이야기하게 되었던 것 같다. 모든 것이 아카이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정당성은 누가 정할 것이며, 무엇이 적절하고, 올바른 것인지 누가 정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시간을 경험한 모두가 아카이브 될 수 있다. 사진과 판화 작업을 통해서 수행해 오고 있던 것을 이제 내 개인적인 삶으로 더 확장하고 싶다. 많이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멀었다. 체화된 식민성이란 이런 것이구나 정말로.
토요일, 8월 01, 2026
내 방이 하나 더 생겼다. 가장 뜨거운 계절에 가장 뜨거운 곳에 왔다. 광주는 언제 와도 따뜻하다. 지량과 오랜만에 머나먼 길을 차로 달렸고, 낯선 곳에서 잠을 자고, 짐을 풀고, 새로운 사람들을 잔뜩 만났다. 같은 시간을 사는 땅이지만서도, 시차와 멀미를 느끼며 한껏 어지러웠다. 어제는 마침 호랑가시에서 아트페어가 열린 날이라 아주 많은 사람을 한자리에서 만났다. 조용히 스르륵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 드는 한편, 반가운 마음이 들어 아는 이들에게, 알고 싶은 이들에게 말을 붙였다. 잔뜩 어지럽고 신이 나고 설렜다. 집으로(창작소지만 내가 결국 돌아갈 곳은 언제나 기꺼이 집이라 부르게 된다.) 돌아올 때는 정말로 균형감각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오늘은 홀로 밥을 먹고, 홀로 걸어 다녔다. 입이 꾸욱 닫히는 날. 어제 매주 금요일마다 묵언 수행을 하는 인도인 작가를 만났다. 나도 꼭 해보고 싶었던 수행이라고 하니, 그는 묵언 수행이 스스로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수행이자 명상이라고 했다. 나도 어쩌면 묵언수행을 하는 나날들이 종종 생길 것 같다. 오늘같이 그냥 나 홀로 보내는 날은 딱히 노력할 것도 없이 묵언을 유지하지만, 그것을 수행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홀로 있기 때문에 말을 안 하는 것이라면, 묵언 수행의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 갖가지 소리와 생각, 관계가 가득한 곳에서 해야 그게 수행이 되겠구나. 반응하고 싶은 마음, 반박하고 싶은 마음들을 삼키는 것은 어쩌면 그것들을 꾸욱 눌러담거나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올라오는 소리와 감정을 내 안의 공간에서 고스란히 듣고 느낄 수 있는 일일 것 같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떠들다 보면, 신이 나서 말이 마구 튀어나올 때가 있는데, 오늘같이 홀로 있는 날이 되면 그 말들이 가끔 지우고 싶거나, 정정하고 싶어진다. 거 참. 오랜만에 느끼는 마음이었다. 그런 반추가 요즘은 잘 없었는데 말이다. 역시, 연을 맺는다는 것은 업이 계속 쌓이는 것일까. 사는 동안에는 그것이 소중하고 귀중한 일이란 걸 알면서도 한편으로 버겁다. 정화해야 할 것들이 생긴다.
오늘 들렀던 로이스 커피의 사장님이 생각난다. 엄밀히 말하자면 장사를 하시는 것은 아니라서 사장님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사람들을 마주하고, 대응하는 것이 많이 힘들어서 장사를 못하겠다고 하셨다. 내게도 본인을 피곤하게 하지 않으면 커피를 마시고 가도 된다고 허락해주셨다. 감사하게도 맛있는 커피를 두 잔이나 주셨다. 오늘은 잠을 일찍 자고 싶어서 한 잔만 마시고 싶었는데 말이다. 좋아하는 색이 뭐냐고 물으셔서 파랑이라고 하니, 파란색 잔에 라떼를 또 만들어주셔서 마실 수밖에 없었다. 아주 맛있었다. 이렇게 또 연은, 업은 내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그분은 사람들이 싫다고, 장사를 해야 하지만 못하겠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반려인과 함께 식사하고, 떠드는 시간이 가장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하셨다. 이래서 어찌하느냐고, 불편해서 어쩌느냐고 푸념하듯 말씀하셨지만, 나는 그것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게 제일 좋은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나도 똑같다. 오지와 살 때는 오지와 떠들고 오지와 밥을 먹고 웃고 그렇게 우리 둘 그리고 고양이들과 사는 집에서 가장 행복했다. 그리고 이제는 지량과 함께 있는 시간이, 우리 집이 가장 편안하다. 너무나 편안하고 고요하고 즐거운 우리집. 세상에서 제일 포근한 우리집 침대와 이불. 내가 길에서, 상점에서, 때론 바다에서 모은 수정의 빛깔이 가득한 내 방. 그리고 그 빛깔 속에 배어있는 향기로움. 그 안락함이 주는 행복이 커서 지량과 나는 집을 떠나 아무리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가더라도 집이 그립다. 로이스 커피의 사장님이 느끼는 것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겠지.
그 모든 안락함과 익숙함, 평온함으로부터 멀어진다. 이번에는 여행이 아니라, 조금 더 길게 그 안락함으로부터 떨어져 지내게 된다. 오늘 하루를 홀로 보내고 내가 이곳에서 집이라고 부를 이 낯선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조금 슬펐다. 안락함에서 벗어나니 새로운 풍경과 관계 속에서 내게 익숙하지 않은 방식의 말들이 하나씩 튀어나오고, 그것들이 날 불편하게 한다. 안락함을 그리워하는 것은 슬픈 마음인 것 같다. 슬픔도 물론 때로 필요하다. 그래서 기대한 것도 있지만 역시나 조금은 서글프다. 마르세유에서 지냈던 때가 떠오른다. 그때랑 정말로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마르세유에 막 도착해서 집을 구하고, 나만의 새로운 방을 다시 내 향기와 색깔로 채웠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도 나는 홀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날이 많아서 어떤 날엔 누굴 오랜만에 만나면 입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기도 했다. 그치만 그 슬픔과 그리움, 불편함 속에서 나는 그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자유를 찾았다. 어쩌면 낯선 곳에 다시 떨어지게 되는 것은 새로운 업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업을 풀어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익숙해지는 것이, 편안해지는 것이 어쩌면 업을 만드는 것일까. 업이 축복인 걸까. 그것을 정화하고 풀어내면 더 큰 자유를, 더 큰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니까. 그치? 내게 그런 시간이 다시 찾아온 것 같아서 기쁘다. 낯선 것들이 다시 익숙해지고, 내 것이라고 여겨지게 될 때쯤 나는 이곳을 떠나겠지. 8월 1일의 일기가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모든 시간을 벌써 살아버리는 것처럼. 하루는 영원이니까 괜찮아.
고요가 주는 것이 어쩌면 영원인가. 아침부터 낮 동안에는 매미 소리가 주변을 가득 채운다. 꽉 차있는 여름의 소리와 열기. 밤이 되니까 아주 고요하다. 풀벌레 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한낮의 높은 소리와는 전혀 다르다. 모든 것이 추욱 가라앉아있다. 소리도 아래에서 난다. 광주에서는 많이 쓰고 싶다.
월요일, 7월 13, 2026
화요일, 7월 07, 2026
금요일, 7월 03, 2026
아무튼, 이래저래 몸에 무리가 갔는지 이번 주초에는 배탈이 나서 시름시름 앓다가 한의원에 가서 침도 맞고 왔다. 이제 괜찮아졌다. 주말엔 집에서라도 요가를 해야지.
외부 이벤트가 많다 보니, 일기를 쓸 여유가 없었다. 에너지의 흐름이 내면에서부터 밖으로 뻗어 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그럴수록 무언가를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문장 하나 완성하기. 그냥 쏟아내는 어떤 정보나 이미지가 아니라, 말을 하고, 문장을 만들어내기. 그런 것이 어려워지곤 한다. 컴퓨터로 이런저런 이미지들 속에서 헤매다 보면 문장이 사라지는 것 같다. 마침표를 하나 찍는 데까지 너무 멀게 느껴진다. 8월 광주에 가서는 글을 많이 쓰고 싶다. 책도 읽고, 옛날 영화들도 보고, 프랑스에서 홀로 지내던 때처럼 지낼거야.
목요일, 6월 18, 2026
월요일, 6월 15, 2026
목요일, 5월 21, 2026
오랜만에 비행기 창가 자리에 앉아 이륙하는 순간과 점점 멀어지는 땅 위의 불빛들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와라. 까만 세상에 밝게 켜진 불빛들이 마치 은하수 같았다. 하늘에도 땅에도 모두 은하수가 있구나. 그리고 붉은 손톱달이 뜨는 순간을 보았다. 내 눈을 의심했지만 맞았다! 정말 잊을 수 없는 풍경이 될 것 같아.
불빛이 복잡하게 켜진 지상의 밤과, 아주 얇은 하얀 구름층과 붉은 얇은 손톱달. 오랜만에 비행기 창밖의 모습을 촬영했다. 자리는 지량과 떨어졌다. 지량은 나와 반대편 창가에 앉게 되었다. 내가 본 풍경은 못 봤겠지만, 반대편의 은하수도 아름다웠길.
이 여행이 내게 어떤 의미가 될까, 난 또 피곤하기만 하겠지-했지만 떠나는 날 느껴지는 것은 서울을 떠나오기 전과는 정말 사뭇 다른 충만함이다. 여행 막바지에 다다라서는 컨디션 난조로 힘들고, 쉬어야 하는 날도 많았지만 풍족해진 마음이다. 또 내가 너무 큰 불안과 걱정들로 이 여행이 끝나고 우울증이 찾아오면 어쩌지-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역시 언제나 같은 일이 반복되지는 않는다. 어떤 패턴들은 생에서 반복되지만, 그 안에서 계속 변주가 일어난다. 같은 패턴 안에서 새로운 것들이 계속 생성된다. 그걸 배우고 있다.
그 언젠가의 여정에서는 불안과 걱정을 그저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면, 이제는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흘려보내는 법을 배운다. 또다시 분명 걱정과 불안은 올라오겠지만, 그것이 실제로 우리를 다치게 하는 일은 없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내 걱정거리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내 현실과 내 우주를 믿는다. 내 사랑을 믿는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 나를 사로잡고, 잡아먹을 것 같았던 그런 어둠과 불안을 붙잡지 않고 흘려보낸다. 뜨거운 햇살 아래서 모두 태웠고, 부드럽고 미지근하고 포근한 안다만 해에 모두 씻겨냈다. 파도에 넘실넘실 따라 모두 지나갔다. 퍼붓는 비에 모두 씻겨 내렸다.
지금 듣고 있는 이 노래가 이 여행을 마무리하는 제목이자 음악이 된다. long life. 비행기 타기 전, 내가 급히 애플뮤직에 내려받은 앨범이 wishful thinking이라니 !
나는 용감해지길 선택했다. 그 생각만으로 나는 용감해졌다 ! 그리고 그 용감함은 내 삶으로, 내 행동으로 드러날 거야. 지량도 그 안에서 더 든든함을 느꼈으면, 내 사랑이 내 안에서 안식을 얻었으면 !
나의 위시풀 띵킹 - !
홍섬에 가기 전날, 나는 날씨가 걱정되어 열심히 자연의 정령에게, 대지의 신에게 기도했다. 우리의 여행이 안전할 수 있게, 비가 오지 말라고까진 못하겠으니, 바다가 안전하기만을 기도했다. 그리고 홍섬 가는 날. 섬 투어를 하는 내내 비는 억수로 내렸는데, 바다는 정말 온화해서 배를 타는 것이 하나도 무섭지가 않았다. 우주는 정말 내 기도를 들어주는구나. 더 솔직하게 진짜로 내가 원하는 것을 적극 기도해야겠구나.
나 자신을 과소평가한 것인지, 신을 과소평가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늘 왜 원하는 것을 끝까지 빌지 않았을까. 이제 더 크게, 진짜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기도하기로 했다. 진심으로 내가 바랐던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보기로 했다. 너무 오랫동안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들을 참고만 살았다. 참는 것 말고, 만족하는 법을 이제는 배우고 싶어. 늘 갈망하거나 참는 것이 아니라, 풍족함을 느끼고, 만족하는 삶을 살고 싶어. 욕심도 모두 자연스레 비워지고, 무엇도 바라지 않는 삶으로 도달하기 이전에 나는 바라는 것이 충만하게 이루어지는 삶을 경험하고 싶어.
생각과 기도를 여러 번 고치지 않고, 진짜로 튀어나오는 마음과 말을 그대로 바라보기. 여행 중에 여러 가지를 배웠다. 지량은 여행 중에도 내게 하고 싶은 것 다 하라고 해주었는데, 진짜로 그렇게는 안될 것 같아서 본심과는 다른 조금은 더 적당하지만 애매하게 맘에 드는 것을 선택을 했다가 괜히 아파지고, 후회하는 일들이 있었다. 그렇게 또 배웠다. 쉽게 배우는 법은 늘 없어. 에휴. 5살짜리 어린아이가 하는 단순하고도 솔직한 말들이 언제고 나를 다시 깨우치게 한다.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