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10월 19, 2026

작업을 하지 않는 자신은 차마 떠올릴 수 없는, 예술가가 아닌 자신의 모습은 떠올릴 수 없는 친구들을 떠올리며.... '그래야만 한다'는 것은 없다고, 그런 두려움을 붙잡지 않고 놓아준다면, 결국 작업을 하지 않아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 더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라고 말하고 싶지만, 갑자기 그 마음들을 떠올리니 그냥 그렇게 내버려두면은 또 어떤가 싶어진다. 그 마음이 참으로 연약하면서도 그 자체로 얼마나 귀여운지, 소중한 지를 떠올린다. 동료들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 함께 모여 작품을 만드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는 그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벌도 들어오고 모기도 들어오고 

귀여운 우리집

화요일, 10월 06, 2026

월요일, 9월 28, 2026

오랜만에 한참 불안했다. 뒷머리에서 느껴지는 윙윙거림과 열기. 말이 잘 나오지 않거나, 혹은 말이 허투루 튀어나오곤 해서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내가 감히 예상한 것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갱년기의 여성들이 느끼는 것이 이런 것일까 혼자 속으로 가늠해 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얼마나 힘들까 덜컥 겁도 났다가. 두근두근 불안하고 뜨겁고 무섭고. 9월에 한참 솟아올랐다가, 8월에 아팠던 것처럼 아니 어쩌면 더 심하게 아파져서 앓다가 병원도 갔다가 서울에 올라가서 생일 주간과 추석 주간을 보냈다. 너무 아파서 약을 열심히 챙겨 먹었다. 약 때문에 잠을 평소보다 더 많이 잤고, 입맛도 없었고, 자율신경계가 흐트러지는 게 느껴졌다. 기운이 솟아오르던 나날 중에 느껴지던 어렴풋한 불안이 증폭되는 시기였다. 그러고선 요 며칠간은 그 증폭된 불안이 아주 커져서 내가 많이 흔들렸다.
 
어제는 아침에 말이 마구 튀어나오고 생각의 전환이 너무 빨라서 무서울 지경이었다. 보름달 효과인 건지 무언지 정말 알 수가 없었다. 밖에 나가서 그래서 한참 걷다가 집에 돌아왔다. 이게 혹시 조증에피소드는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정말로 내가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다. 기껏 2년간 우울증 치료를 잘 마치고 나서, 1년을 잘 보내고서는 다른 삽화를 마주하게 되는 것일까 두려웠다. 지량이 온전히 내가 걷는 길과 음악만 들으며 다녀오라 했지만, 그런 생각들이 멈추지 않는 산책길이었다. 오랜만에 좋아하는 빵집까지 걸어가서 빵을 사고,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식당에 들러 밥을 먹었다. 생각보다 길어진 산책길이었다. 약간은 땀도 났다. 에너지가 조금은 빠졌는지, 집에 돌아와서는 나가기 전보다는 차분하게 있을 수 있었다. 지량과 함께 거실 테이블에 앉아서 그림을 그렸다. 많이 불안한 나를 보고 지난 밤에 지량이 내렸던 특별한 조치 같은 것이 있었다. 세라 맞춤 치유 프로그램. 묵언수행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묵언수행을 하겠다고 선언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앉아서 그림 그리는 동안 최대한 말을 아꼈다. 차분히 세 장의 그림을 그려냈다. 생각보다 맘에 들었다. 콩테로 드로잉을 하는 감각이 좋았다. 손으로 콩테 가루를 문지르는 것도, 손가락 끝에 그 색깔이 물드는 것도.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도 많이 불안했다. 이리저리 뒤척이고, 또 생각이 튀어 나가고, 손이 뜨겁고, 뒷머리가 두근두근했다. 지량과 어제 사 온 남은 빵과 커피를 먹으며, 오늘도 함께 드로잉을 했다. 지량이 요즘 많이 좋아한다는 음악을 들으며. 지량과 그 시간을 함께하는 것이 너무 좋았다. 집을 떠나기가 싫었다. 광주에 가기 싫은 맘과 가고 싶은 맘이 계속 시소를 타듯이 서로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래도 결국 광주에 왔다. 이번 주에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해야지. 그래도 이전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왔다. 돌아오자마자 짐을 놓고 요가원을 향했다. 9월 한 달 동안 요가원에 등록해 두고는 아파서 몇 주간 수련을 쉬었다. 불안한 마음이 커질수록 요가 수련이 그리웠다. 수련하는 것을 무언가 부정적인 마음의 작용이나 불안을 잠재울 방도로 생각하면 그 또한 강박과 불안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함정이 되기도 하지만, 지금 내가 중심을 다시 찾기 위해 많이 필요하긴 했다. 중심이 상반신으로 쏠려있는 것이 느껴지는 나날이었다. 뿌리내리는 힘이 많이 약해져 있었다. 브륵샤사나를 하는데 이렇게나 흔들릴 줄이야. 내게 정말 안정적인 아사나였는데 말이다. 어쩌면 그래서 많이 불안했나 보다. 발이 땅에 단단히 깊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오늘 오랜만에 수련하고 나니 많이 이완된 것 같다. 창작소로 돌아오니 힘이 추욱 빠져있는 내 몸이 느껴진다. 내일도 더 편안하게 수련해야지. 아직 많이 흔들거려서 그런지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말이 잘 이어지지 않아 멈칫하거나 주저하는 순간이 많아진다.
 
아, 오늘 요가하면서 정말 인상 깊은 선생님의 말씀이 있었다. 아사나를 하면서 에너지의 흐름이 어느 부분에 멈춰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동하게 하라고 하셨다. 머리에서 천골로, 천골에서 다리로, 다리에서 다시 머리로 그렇게 계속 에너지가 이동하는 것을 느끼는 것이지, 어딘가에 무언가를 고정시키고, 멈추어두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고 알려주셨다. 내 몸을 계속 펜으로 그려보는 것처럼 느껴보라고 하셨다. 펜촉을 어딘가에 멈추지 말고, 계속 내 몸을 그리는 것이라고. 이 말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앞으로 수련하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마침 지량과 어제와 오늘 함께 드로잉하는 시간을 가져서 그런지 더 와닿는 가르침이었다. 지량도 내게 오늘 비슷한 말을 했었는데 말이다. 그게 중요한 것이었다. 내일도 그렇게 해야지.

금요일, 9월 11, 2026

무등일기

어제는 무등산에 다녀왔다.

자전거 타고 창작소에서 출발해 증심사 지구 입구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무등산은 확실히 쉬운 산은 아닌 것 같아서 어제는 가볍게 당산나무까지만 천천히 가려고 했다. 날이 많이 시원해져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무등산의 기운인 건지, 바뀌어버린 계절 때문인 건지 머리가 단번에 맑아지는 것 같았다. 곧 만나게 될 당산나무의 모습을 상상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갔다. 가는 길은 그리 어렵진 않았다. 다람쥐를 정말 많이 봤다. 나비도. 새도. 우리나라에서도 해외에서도 청설모는 최근까지도 많이 봤던 것 같은데, 다람쥐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정말 너무 작고 귀여웠다.

당산나무까지는 그래도 금방 도착했다. 커다란 기둥과 굵게 땅으로, 하늘로 뻗어있는 가지들이 너무 튼튼했다. 나는 당산나무 주위를 빙 돌며 인사를 했다. 나무가 있는 곳은 그래도 평평한 쉼터처럼 너른 자리가 펼쳐져 있었고, 벤치와 큰 평상들도 있었다. 나는 평상에 홀로 앉아 김밥을 먹었다. 그래도 산에서 밥을 먹을 땐 고수레해야지 않겠어. 아주 작고 얇은 오이 조각 하나를 바쳤다. 아무래도 요즘은 아무렇게나 안전하게 자연에 바칠만한 공물이 찾기 어려우니 그냥 기분만 내기. 커다란 나무 앞에서 따스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김밥을 꼭꼭 씹어 다 먹었다.

다음번에 또 올 테니 오늘은 이렇게 가볍게 돌아가려고 했지만, 왠지 아쉬웠다. 날씨도 좋고, 이렇게 여기까지 올라온 것이 약간은 아깝기도 하니까 중머리재까지 가보자. 지도를 보면서 체크해 둔 몇 포인트 중의 하나다. 당산나무에서 가까우면서도 너른 풍경을 그래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30분 정도 더 가면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내 걸음이 그렇게 빠르지 않은 점도 있고, 그리고 사실 그렇게까지 가까운 거리는 아니어서 거의 1시간이 더 걸렸던 것 같다. 올라가면서 약간 후회하기도 했다. 하나도 힘들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힘이 들었다. 땀도 꽤 났지만, 남들처럼 줄줄 흘리며 오히려 열을 배출해 내는 체질이 아니라, 얼굴이 역시나 나는 아주 벌게졌다. 그치만 어쩌겠어. 되돌아갈 순 없었다. 끝까지 가야지. 생각해 보니 정말 오랜만의 등산이다. 최근에 지량과 인왕산에 다녀오긴 했지만, 뭔가 이렇게 큰 산은 오랜만이었다. 내가 가는 코스가 아마 그랬던 것 같은데 풍경이 그렇게 다이나믹하게 펼쳐지진 않았다. 그래서 더 중머리재까지 가는 길이 멀게 느껴졌던 것 같다. 무등산은 생각보다 훨씬 더 규모가 큰 산인 것 같았다. 수많은 바위 조각을 밟으며 계속 올라갔다. 분명 계속 다른 모양들을 보고 있지만, 커다란 풍경 속에 있으니 쉬이 내가 보는 장면들이 변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도 가면서 계속 새와 다람쥐들을 잔뜩 만났고, 산의 정령 같은 나무들을 많이 봤다. 확실히 무등산은 커다랗다. 그곳에 발을 딛게 되는 순간 그걸 느낄 수 있는 산이다. 무등산이 품고 있는 모든 것이 느껴진다. 그렇게 오르다가 딱 중머리재에 도착하기 직전에 약간 길이 가팔라진다. 그 끝에 중머리재의 너른 풍경이 펼쳐진다. 너무너무 아름다웠다. 탁 트인 하늘이 보이고, 고갯마루가 아주 넓다. 그래서 그게 스님의 머리와 같다고 해서 이름이 중머리재라고 한다. 사진을 찍고, 벤치에 앉아 목을 축이고 휴식을 취했다. 잠깐 누워서 머리의 열도 식히고, 다리도 풀어주고... 

그렇게 쉬다가 다시 왔던 길로 내려갔다. 올라갈 때는 음악을 들으며 올라갔는데 내려오면서는 이어폰을 빼고 산의 소리를 들으며 내려왔다. 정말 정말 조용했다. 도시의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분명 모든 산속의 생명들의 소리로 가득 차 있지만 정말 정말 고요하고 깊은 평안이 있었다. 사람보다 다람쥐를 더 많이 마주친 것 같다. 나는 아주 작은 소리로 모두에게 안녕-하고 인사를 했다. 내가 꽤 가까이 있었지만 열심히 도토리를 까먹는 다람쥐가 있었다. 완전히 가까이 다가갈 순 없지만 이 낯설고 커다란 몸뚱이의 다른 동물도, 함께 그 공간과 시간을 공유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 그 순간이 너무 소중하고 귀엽다. 감사하다. 산에게 감사한다. 나를 받아들여 줘서, 나를 들여보내 줘서 감사합니다. 이 세상과 가장 쉽게 연결되는 방법은 자연에 들어가는 것이다. 도시에서는 모두가 가까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어느 곳에도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기가 때로 힘들다. 산에 들어서는 순간 혹은 바다에 들어가는 순간, 본디 내가 그 거대한 땅과 물의 일부라는 것을 그제야 알아차릴 수 있다. 내가 그 땅의 한숨이라는 것을, 바다의 물거품 하나라는 것을 깨우친다.

내려가는 길에 증심사에 들렀다. 대웅전을 빙 둘러 걸었다. 대웅전에 외벽에 그려진 벽화를 보며. 그리고 대웅전에 들어가 잠시 머물렀다. 삼배를 올렸다. 정말 고요하고 편안했다. 사원에 들어와 있으면 그 모든 신성이 우리를 감싸안는 기운이 강하게 느껴진다. 압도하는 기운이 아니라, 모두를 감싸안는 그런 기운 말이다. 지난해 타이베이에서 갔던 지산암 혜제궁에서의 순간이 떠올랐다. 아마 내가 잊을 수 없는 기도의 순간 중 하나다. 기다란 향 일곱 개를 들고 사원에 있는 각각의 일곱 신 앞에 찾아가 향을 올리고 기도를 했다. 거긴 꼭 또 찾아가 보고 싶은 곳이다. 아무튼, 잠깐 증심사 대웅전에 앉아 있는 동안 그 기억이 겹쳐졌다. 잠깐 나무 마룻바닥에 앉아 쉬었다가 나왔다. 산에서 거의 네다섯 시간을 보냈다. 중간중간 쉬기도 했고, 사진도 찍고 하니 시간이 금방 간다.

무등산에 다녀온 여운을 충분히 느낄 새도 없이 창작소에 도착해서 바로 사람들과 어제 새로 열린 전시 오프닝에 가기로 했다. 광주에 와서 사실 너무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많이 만나고, 인사하고 하느라 힘들기도 했는데 어제는 아주 재밌게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새로 레지던시에 들어온 작가들이 있는데 브라질에서 온 타이스와 스페인에서 온 에나르와 이야기가 하는 것이 웬일인지 편안하고 재미있다. 어쩌구 저쩌구 나도 모르게 엄청 많이 떠들었다. 있는 동안 사람들을 마주하는 것이 버겁기만 한 것은 아닐까 걱정했었는데... 그래서 늦게까지 같이 떠들고, 식사하고... 우리 셋은 밤거리를 함께 걸으며 창작소로 돌아왔다. 나름 뿌듯한 하루였다. 여러 가지 기운들이 한데 뭉쳤다. 내 몸에. 전날 양림요가원에서 했던 수련의 여운과 근육통이 몸에 계속 남아 있었고, 무등산의 기운도, 그리고 새로 만난 친구들과의 대화와 웃음소리도 다 한데 어우러졌다. 웬일인지 목소리가 잘 나오는 날이었다. 몸은 아주 피곤하지만서도 상승하는 기운이 느껴지는 날이었다. 그리고 일찍 잠에 들었다.

알람을 맞춰놓고 오늘 아침 8시 15분 수련에 가기로 했다. 더 자고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벌떡 일어나 요가원으로 향했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 그래도 2년간 꾸준히 요가를 했는데도 아사나 이름들은 모르겠다. 늘 새로운 마음으로 수련한다. 새로운 아사나를 마주하며 아직도 여긴 열리려면 멀었구나-하고 생각되는 몸의 구석구석을 발견한다. 그래도 그 하나하나에 너무 괴로워하거나 집착하지 말자. 그 과정에서 편안하게 호흡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깨달으며 수련한다. 몸이든 마음이든 몰아붙이지 말고, 편안하게 호흡할 공간을 찾는 것이다.

오늘은 그렇게 아침 수련을 하고 집에서 하루 종일 쉬었다. 해가 많이 내려오니 그제야 몸이 좀 깨는 것 같았다. 내 방으로 들어오는 오후 다섯 시 반의 햇살이 너무 아름다워서 벽에 비친 햇살을 한참 사진 찍었다. 폴라로이드로, 문주가 빌려준 똑딱이 필름 카메라로, 그리고 내 후지필름 카메라로…. 필름엔 어떤 모습으로 담겼을지 아직 알 수 없지만, 폴라로이드 사진 중 하나 아주 맘에 드는 것이 생겼다. 요즘 내가 매일같이 찍고 있는 순간이 있다. 아마 나중에 이 사진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질 것 같다. 잠들기 전에 늘 그 순간들을 상상해본다 요즘은. 이다음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꾸미고 싶은 공간과 시간. 내가 무등산에 올라 느꼈던 감각, 혜제궁 안의 신들을 마주하며 느꼈던 감각같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어딘가를, 무언가를 만드는 상상한다. 각자의 사원에 들어서는 순간을..

화요일, 9월 08, 2026

간은 분노의 장기다. (분노는 침범당한 경계를 회복하기 위해 올라오는 감정이다.) 동시에 비전과 성장, 창조성의 원천이기도. 간을 주관하는 원소는 목(木)이다.

균형잡힌 목 원소의 예시로 버드나무가 있다. 목 원소의 회복에 좋은 것. 


나무가 자라면 공간이 필요하고 방향이 생긴다. 

시간이 생겨났다.

화요일, 8월 18, 2026

그러고도 더 아팠다. 아마 이런저런 약들의 부작용이었던 것 같다. 염증들을 치료하느라 몸에 있는 다른 유익균들도 같이 사라진 건지 뭔지 속이 울렁거리고, 온몸이 팅팅 부었다. 아픈 게 제일 힘들다. 불편한 감각과 통증으로 계속 의식이 이동하다 보니, 마음이 같이 괴로워지곤 한다. 뭐 순서는 중요치 않을 수도 있겠다. 마음으로 괴로워해야 할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몸이 아팠을 수도 있지. 그 둘은 연결되어 있으니까. 

요즘 재밌게 읽고 있는 책이 있는데, 그저께 읽었던 부분이 생각난다. 본능과 원형의 연결이 발생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다. 나도 정말 종종 경험하는 일인데, 예를 들어 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이유 없이 본래 가려던 경로에서 벗어나 갑자기 방향을 틀어 다른 길로 간다. 알고 보니 본래 가려던 그 길에서 사고가 일어나 있거나, 공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지만, 본능이 자신을 구해준다. 내 몸이 나보다 더 똑똑하다면, 그게 신체적으로 일어나는 것이고, 또 어떤 경우에는 생각으로 온다. 아무튼 그래서 심리적 측면을 통과해야 할 것이 육체적 측면으로 바뀌거나, 육체적 측면을 통과해야 할 것이 심리적 측면으로 바뀌기도 하는 것이다. 아무튼 둘 다 막히는 경우는 없는 것이다. 

몸이 아플 때는 분명히 잠시 멈추고, 그 통증이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 보아야 한다. 하긴, 8월을 맞이하며 나의 물리적 환경이 완전히 바뀌었는데, 그 변화를 고요히 바라볼 새도 없이 다가오는 모든 것들에 표면적으로 반응하고, 대꾸하느라 에너지를 온통 써버린 것 같다. 이제 와서 떠오르는 게 묵언수행이다. 묵언수행이 필요했던 것인데 말이다. 너무 많은 감정이 올라왔던 것 같다. 그게 너무 빠른 속도로 올라와서 엉킨 것 같다. 어제 속이 너무 울렁거려서 한의원에 다녀왔다. 다래끼에서부터 목 염증까지 그리고 항생제와 소염제 등 약을 먹고 위장이 불편해진 이 최종 상황까지 선생님께 와다다 쏟아냈다. 음식 체한 것처럼 약이 체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어떤 것들의 작용인지, 순환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서였는지 침 치료를 하기 전까지 머릿속이 아주 바쁘고 어지러웠다. 모든 기운이 머리로 향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침 치료를 하고 조금씩 시간이 지나니 정말 신기하게 그 시끄러운 것들이 가라앉았다. 체한 것들이 풀어지는 과정이었나보다. 막혀있는 어떤 통로들을 다시 풀어주고, 기의 흐름이 원활하게 저마다 갈 곳을 찾아가는 것이다. 머리로 다 몰렸던 것들이...그래 여기저기로 가야지 말이야, 비장으로, 천골로, 다리로도, 어디든지. 아무튼, 그래서 오늘은 속이 한결 나았다. 그래도 여파가 있었는지 머리랑 어깨가 하루 종일 아팠다. 내일은 더 낫겠지.

그래서 본격적으로 이제 내 작업에 집중하기 전에 끝내야 할 프로젝트가 하나 있었는데, 어제까지 다 끝냈다. 사실 그걸 빨리 끝내고 싶어서 한 주 동안 아프면서도 쉬지 않고 일했다. 끝나서 후련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힘들었나 보다. 모레 서울에 갈 거다. 내일은 광주에서 알게 된 친구 한 명이 창작소에 오기로 했다. 차분히 내일은 창작소에서 머무르다가, 저녁에 요가도 해야지. 

토요일, 8월 15, 2026

목요일, 8월 13, 2026

매해 가장 뜨거운 달에 아픈 것이 패턴이다. 작년에도 7월 내내 아팠는데, 가장 뜨거운 해, 가장 뜨거운 나날에 아픈 주간을 보내고 있다. 며칠 전 입추를 기점으로 열기가 조금은 사그라들었지만, 입추 바로 직전의 일주일이 아마 올해 가장 뜨거웠던 주간이었다. 한낮 기온은 거의 40도에 육박했다. 날씨와 더불어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상의 기운도 양기로 가득 차 있었다. 몇 달에 걸쳐 만날 사람들을 일주일도 안 되는 사이에 만났던 것 같다. 여기가 어디야. 모든 말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고, 그것들이 정리가 안 되고, 가라앉질 않아 나는 말이 이상하게 튀어나오거나, 혹은 말이 나오질 않아 삐그덕대고 있었다. 그렇게 모든 것이 꽉 찬 약 일주일을 보내고, 양림동을 누릴 새도 없이 서울에 볼일이 있어 올라갔다. 서울에 올라간 날 다래끼가 올라왔다. 항생제 엔딩은 싫어서 열심히 자연치유를 위해 온찜질을 했다. 위대한 온찜질의 효과로 자연스럽게 곪은 것이 터졌지만, 가라앉는 데는 장장 일주일이 걸렸다. 다래끼 때문인지, 누적된 피로 때문인지 몸은 힘들었지만, 서울에서는 오랜만에 여름방학 같은 시간을 보냈다.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의 공연도 보고, 고양이들도 보고, 지량과 영화관도 가고, 전시도 보고 핑핑 놀았다. 아, 엄청난 동시성이 내내 나타나기도 했다. 어느 밤의 여정. 아무튼 그렇게 핑핑 노는데도 에너지가 필요했다. 에너지는 이미 바닥났지만 그래도 즐거운 마음 하나로 보낸 여름방학. 그 시간을 보내고 나니 많은 것들이 차분히 내려왔다. 정확하게 입추를 기점으로 날씨도 한 꺼풀 꺾였고, 내 머릿속도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광주로 돌아오기 전날부터는 기침이 조금씩 나더니, 목이 아파졌다. 열병의 마지막 단계였다. 보아하니 통증이 심해질 것 같아서 병원에 갔다. 열심히 다래끼는 자연치유로 이겨낸 듯했으나, 다른 곳에서도 염증이 올라오고야 말았다. 의사 선생님의 말투가 매우 상냥하면서도 구수했다. 선생님께 항생제 부작용으로 배탈이 심하게 나곤 한다고 하니, 선생님은 제일 약한 항생제로 그래도 챙겨주시며, 먹어보고 설사를 하고 배탈이 나면 그냥 항생제는 빼고 나머지 약을 먹으라고 하셨다. 부작용이 심하면 안 먹는 게 낫다고, 처방된 일수의 항생제를 다 먹지 않아도 된다고 한 선생님은 처음이었다. 아무튼, 약을 먹으니, 어제오늘은 완전히 멍하고 졸린 상태가 되어버렸다. 항생제뿐만 아니라 진해거담제 등 내가 부작용을 겪을 만한 약이 꽤 있었고, 오늘은 그 부작용에 잔뜩 시달린 날이다. 주경야독 아니고 주독야경. 낮에 공부하고, 밤에 일하려고 했건만, 오늘 낮 동안에는 도서관에서 잔뜩 졸며 책을 읽고 이것저것 들여다보다가 저녁이 되어 밥을 먹고 약을 챙겨 먹고 나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오늘은 깨끗이 포기하고 쉬어야지 하고 침대에 기대어 앉아 일기를 쓴다. 

왠지 모르겠는데, 최근에 두 번이나 꿈속에서 라자카포타를 시도했다. 실제론 내가 아직 하지 못하는 아사나지만, 오늘의 꿈에서는 엄청나게 잘됐다. 완벽한 후굴로 발끝과 머리끝이 닿을 수 있었다. 목이 아픈 것과 연관이 있을까. 재밌는 연결들이 보인다. 몸의 왼쪽이 아픈 것도 그렇고. 해소해야 할 감정들이 터져 나오는 것 같다. 오늘 아침엔 예기치 않게 어떤 기억이 떠올라 시원하게 소화가 되는 일이 있었다. 정말 실제로 소화가 됐다. 정말로. 가장 뜨거울 때 꼭 통과의례처럼 이렇게 아프게 비워내며 지난다. 그러고 나면 몸이 잠깐 많이 약해지긴 하지만, 그 후엔 새로운 것들이 느껴진다. 휴우 그래도 내년부터는 아프지 말고, 뜨거워지기 전에 미리미리 조금씩 식힐 수 있도록 해야지. 분명히 작년에도 그렇게 다짐했었는데 올해 마침 광주에 도착한 때가 그때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기후 위기로 여름이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으니 더 걱정이다. 어찌 이 고된 계절들을 우리 헤쳐나갈까.. 내일은 방에서 일 많이 하고, 쉬어야지.

일요일, 8월 02, 2026

서점 테이블 앞에 둥글게 모여 앉아 오랜만에 사람들과 대화했다. 일상적인 대화가 아닌 어떤 의제를 갖고 한 대화이자 토론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여러 언어와 이야기가 오가는 와중에 나는 여러 가지 조각난 생각과 소리가 정리가 잘되지 않는 것 같아 답답하고 피로했다. 무언가가 정리되어 발화되어야 한다는 압박을 오랜만에 느꼈다. 아니, 요 며칠은 사실 계속 그런 압박을 느끼는 중이었고, 오늘 특히 그 자리에서 그 이슈가 크게 드러난 것이다.

마침, 이 탁상 토론의 주제가 체화된 식민성에 대한 것이었는데 나는 그 이야기들의 한가운데서 내 개인적인 식민성을 마주해버린 것이다. 말로 명료하게 표현되지 않는 생각이 침묵 된 채로 폄하될까 하는 두려움, 더듬거리면 생각도 더듬거리는 걸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한국어로는 조금 더 잘할 수 있어-라는 생각 뒤에 외국어로 잘 소통하지 못하면 뭔가 뒤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 여긴 한국이고 내가 한국어로 말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인데도 스스로에게 어떤 위계를 씌우고 있는 것이었다. 며칠간 느낀 두려움과 장벽들이 하나로 똘똘 뭉쳐서 내게로 다가왔다. 예전에 내가 많이 위축되었던 시절이 떠올랐다. 모든 사람과 재치 있게 잘 이야기하는 사람, 모두를 웃게 만드는 쾌활함과 유머를 가진 사람, 조리 있게 말하는 사람들 앞에서 종종 내가 작아지는 것 같았고, 그런 사람들이 많이 부러웠다. 한동안은 이런 위축과 불편함이 없이 살았는데 며칠간 이것들을 마주하고 있다. 바로바로 내 생각을 표현해야 할 것만 같은, 올바른 말을 해야 할 것만 같은, 사람들이 잘 이해할 수 있게 잘 이야기해야 할 것 같은 그런 부담과 조급함이 밀려오는 게 당황스럽다. 그게 나에게 내재해 있던 식민성이었다.

언제나처럼 모든 상징성이 동시에 나타난다. 서점에 가기 전에 새로 입주한 일본인 중년 작가분을 마주쳤다. 대표님이 인사시켜 주셨는데, 그 일본 분은 영어를 못한다고 하셨다. 그것이 물론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그게 중요치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에게는 이상한 식민성을 주입한다. 뭔가 모터가 달린 것처럼 빠르게 자기 생각을 쏟아내는 사람들 앞에서 나도 모르게 나도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을 느낀다. 그것이 맞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 행동과 내 말이 내 작품처럼 어떤 일관성과 맥락을 지녀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내가 먹는 것, 내가 입는 것 등과 같이 모든 것들을 갑자기 검열하려는 충동을 발견하고 어이가 없다. 안에서부터 너무 많은 것들이 올라와 정리가 되지 않는다. 어쩌겠는가 그냥 올라오도록 두어야지. 올라오는 것들을 바라봐야지.

쓰다 보니 조금은 정리가 된다. 작품에 나타나는 일관성과 맥락을 나 자신의 존재 방식에도 똑같이 요구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그게 당연한 건가 싶다가도, 그래야만 하는가 싶어진다. 더듬거림, 침묵, 느림, 이 모든 것들도 그 자체로 언어인데 말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건 내 작업 방식으로 이어진다. 맞아. 그게 내가 작업을 하는 이유였지. 필름과 판화 프로세스에서 일어나는 실수와 통제할 수 없음, 어쩌면 실패라고 할 수 있는 결과물들, 나는 그것들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내가 내 삶 속에서 그런 것들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용인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껴서 그런 작업을 마치 수행처럼 하고 있기도 했다. 억지스러운 과정은 아니었고, 정말 그 일들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그게 어떤 형태가 되었든 간에 말이다. 과정에서 나타나는 흠집과 얼룩들은 제거되거나 수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 속에 속한 장면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떤 것을 아카이브 할 것인가-에 대한 오늘 토론의 화두에도 어울리는 이야기다. 어쩌다 보니 오늘 토론에서 아카이빙에 대해서 깊게 이야기하게 되었던 것 같다. 모든 것이 아카이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정당성은 누가 정할 것이며, 무엇이 적절하고, 올바른 것인지 누가 정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시간을 경험한 모두가 아카이브 될 수 있다. 사진과 판화 작업을 통해서 수행해 오고 있던 것을 이제 내 개인적인 삶으로 더 확장하고 싶다. 많이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멀었다. 체화된 식민성이란 이런 것이구나 정말로.

토요일, 8월 01, 2026



내 방이 하나 더 생겼다. 가장 뜨거운 계절에 가장 뜨거운 곳에 왔다. 광주는 언제 와도 따뜻하다. 지량과 오랜만에 머나먼 길을 차로 달렸고, 낯선 곳에서 잠을 자고, 짐을 풀고, 새로운 사람들을 잔뜩 만났다. 같은 시간을 사는 땅이지만서도, 시차와 멀미를 느끼며 한껏 어지러웠다. 어제는 마침 호랑가시에서 아트페어가 열린 날이라 아주 많은 사람을 한자리에서 만났다. 조용히 스르륵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 드는 한편, 반가운 마음이 들어 아는 이들에게, 알고 싶은 이들에게 말을 붙였다. 잔뜩 어지럽고 신이 나고 설렜다. 집으로(창작소지만 내가 결국 돌아갈 곳은 언제나 기꺼이 집이라 부르게 된다.) 돌아올 때는 정말로 균형감각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오늘은 홀로 밥을 먹고, 홀로 걸어 다녔다. 입이 꾸욱 닫히는 날. 어제 매주 금요일마다 묵언 수행을 하는 인도인 작가를 만났다. 나도 꼭 해보고 싶었던 수행이라고 하니, 그는 묵언 수행이 스스로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수행이자 명상이라고 했다. 나도 어쩌면 묵언수행을 하는 나날들이 종종 생길 것 같다. 오늘같이 그냥 나 홀로 보내는 날은 딱히 노력할 것도 없이 묵언을 유지하지만, 그것을 수행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홀로 있기 때문에 말을 안 하는 것이라면, 묵언 수행의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 갖가지 소리와 생각, 관계가 가득한 곳에서 해야 그게 수행이 되겠구나. 반응하고 싶은 마음, 반박하고 싶은 마음들을 삼키는 것은 어쩌면 그것들을 꾸욱 눌러담거나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올라오는 소리와 감정을 내 안의 공간에서 고스란히 듣고 느낄 수 있는 일일 것 같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떠들다 보면, 신이 나서 말이 마구 튀어나올 때가 있는데, 오늘같이 홀로 있는 날이 되면 그 말들이 가끔 지우고 싶거나, 정정하고 싶어진다. 거 참. 오랜만에 느끼는 마음이었다. 그런 반추가 요즘은 잘 없었는데 말이다. 역시, 연을 맺는다는 것은 업이 계속 쌓이는 것일까. 사는 동안에는 그것이 소중하고 귀중한 일이란 걸 알면서도 한편으로 버겁다. 정화해야 할 것들이 생긴다.

오늘 들렀던 로이스 커피의 사장님이 생각난다. 엄밀히 말하자면 장사를 하시는 것은 아니라서 사장님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사람들을 마주하고, 대응하는 것이 많이 힘들어서 장사를 못하겠다고 하셨다. 내게도 본인을 피곤하게 하지 않으면 커피를 마시고 가도 된다고 허락해주셨다. 감사하게도 맛있는 커피를 두 잔이나 주셨다. 오늘은 잠을 일찍 자고 싶어서 한 잔만 마시고 싶었는데 말이다. 좋아하는 색이 뭐냐고 물으셔서 파랑이라고 하니, 파란색 잔에 라떼를 또 만들어주셔서 마실 수밖에 없었다. 아주 맛있었다. 이렇게 또 연은, 업은 내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그분은 사람들이 싫다고, 장사를 해야 하지만 못하겠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반려인과 함께 식사하고, 떠드는 시간이 가장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하셨다. 이래서 어찌하느냐고, 불편해서 어쩌느냐고 푸념하듯 말씀하셨지만, 나는 그것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게 제일 좋은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나도 똑같다. 오지와 살 때는 오지와 떠들고 오지와 밥을 먹고 웃고 그렇게 우리 둘 그리고 고양이들과 사는 집에서 가장 행복했다. 그리고 이제는 지량과 함께 있는 시간이, 우리 집이 가장 편안하다. 너무나 편안하고 고요하고 즐거운 우리집. 세상에서 제일 포근한 우리집 침대와 이불. 내가 길에서, 상점에서, 때론 바다에서 모은 수정의 빛깔이 가득한 내 방. 그리고 그 빛깔 속에 배어있는 향기로움. 그 안락함이 주는 행복이 커서 지량과 나는 집을 떠나 아무리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가더라도 집이 그립다. 로이스 커피의 사장님이 느끼는 것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겠지.

그 모든 안락함과 익숙함, 평온함으로부터 멀어진다. 이번에는 여행이 아니라, 조금 더 길게 그 안락함으로부터 떨어져 지내게 된다. 오늘 하루를 홀로 보내고 내가 이곳에서 집이라고 부를 이 낯선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조금 슬펐다. 안락함에서 벗어나니 새로운 풍경과 관계 속에서 내게 익숙하지 않은 방식의 말들이 하나씩 튀어나오고, 그것들이 날 불편하게 한다. 안락함을 그리워하는 것은 슬픈 마음인 것 같다. 슬픔도 물론 때로 필요하다. 그래서 기대한 것도 있지만 역시나 조금은 서글프다. 마르세유에서 지냈던 때가 떠오른다. 그때랑 정말로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마르세유에 막 도착해서 집을 구하고, 나만의 새로운 방을 다시 내 향기와 색깔로 채웠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도 나는 홀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날이 많아서 어떤 날엔 누굴 오랜만에 만나면 입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기도 했다. 그치만 그 슬픔과 그리움, 불편함 속에서 나는 그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자유를 찾았다. 어쩌면 낯선 곳에 다시 떨어지게 되는 것은 새로운 업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업을 풀어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익숙해지는 것이, 편안해지는 것이 어쩌면 업을 만드는 것일까. 업이 축복인 걸까. 그것을 정화하고 풀어내면 더 큰 자유를, 더 큰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니까. 그치? 내게 그런 시간이 다시 찾아온 것 같아서 기쁘다. 낯선 것들이 다시 익숙해지고, 내 것이라고 여겨지게 될 때쯤 나는 이곳을 떠나겠지. 8월 1일의 일기가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모든 시간을 벌써 살아버리는 것처럼. 하루는 영원이니까 괜찮아.

고요가 주는 것이 어쩌면 영원인가. 아침부터 낮 동안에는 매미 소리가 주변을 가득 채운다. 꽉 차있는 여름의 소리와 열기. 밤이 되니까 아주 고요하다. 풀벌레 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한낮의 높은 소리와는 전혀 다르다. 모든 것이 추욱 가라앉아있다. 소리도 아래에서 난다. 광주에서는 많이 쓰고 싶다.







월요일, 7월 13, 2026

초발심시변정각

화요일, 7월 07, 2026

금요일, 7월 03, 2026

정신없는 몇 주를 보냈다. 할 일도 많았고, 이런저런 소식들도 있었고, 지난 주말에 뭔가 그 모든 것들의 끝판 왕격인 이슈가 있었다. 좋은 일이었는데, 또 너무 좋은 것을 받아들일 때에도 몸이 밸런스를 잘 잡아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좋은 것을 곧이곧대로 느끼다 보면 에너지의 흐름이 중심으로부터 좀 흐트러진다. 좋은 일이 있어도 너무 들뜨지 않고, 좋지 않은 일이 있다고 해서 너무 가라앉지도 않게 늘 균형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아무튼, 이래저래 몸에 무리가 갔는지 이번 주초에는 배탈이 나서 시름시름 앓다가 한의원에 가서 침도 맞고 왔다. 이제 괜찮아졌다. 주말엔 집에서라도 요가를 해야지. 

그리고 다시 주말이 다가왔다. 7월이 되었다. 7월에는 또 나름의 이벤트들이 있다. 레지던시로 떠날 준비도 해야 하고, 마무리해야 할 프로젝트도 있고, 리빙룸도 열고...!
 
외부 이벤트가 많다 보니, 일기를 쓸 여유가 없었다. 에너지의 흐름이 내면에서부터 밖으로 뻗어 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그럴수록 무언가를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문장 하나 완성하기. 그냥 쏟아내는 어떤 정보나 이미지가 아니라, 말을 하고, 문장을 만들어내기. 그런 것이 어려워지곤 한다. 컴퓨터로 이런저런 이미지들 속에서 헤매다 보면 문장이 사라지는 것 같다. 마침표를 하나 찍는 데까지 너무 멀게 느껴진다. 8월 광주에 가서는 글을 많이 쓰고 싶다. 책도 읽고, 옛날 영화들도 보고, 프랑스에서 홀로 지내던 때처럼 지낼거야.

목요일, 6월 18, 2026

"얻는 법 중의 하나는 찾지 않는 것이며, 소유하는 법 가운데 하나는 구하지 않고 그저 믿는 것이다. 내 안에 있으리라 믿고 있는 정적이야말로 내게 주어진 수수께끼의 답일 거라는 믿음."

월요일, 6월 15, 2026

목요일, 5월 21, 2026

오랜만에 비행기 창가 자리에 앉아 이륙하는 순간과 점점 멀어지는 땅 위의 불빛들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와라. 까만 세상에 밝게 켜진 불빛들이 마치 은하수 같았다. 하늘에도 땅에도 모두 은하수가 있구나. 그리고 붉은 손톱달이 뜨는 순간을 보았다. 내 눈을 의심했지만 맞았다! 정말 잊을 수 없는 풍경이 될 것 같아.


불빛이 복잡하게 켜진 지상의 밤과, 아주 얇은 하얀 구름층과 붉은 얇은 손톱달. 오랜만에 비행기 창밖의 모습을 촬영했다. 자리는 지량과 떨어졌다. 지량은 나와 반대편 창가에 앉게 되었다. 내가 본 풍경은 못 봤겠지만, 반대편의 은하수도 아름다웠길. 

이 여행이 내게 어떤 의미가 될까, 난 또 피곤하기만 하겠지-했지만 떠나는 날 느껴지는 것은 서울을 떠나오기 전과는 정말 사뭇 다른 충만함이다. 여행 막바지에 다다라서는 컨디션 난조로 힘들고, 쉬어야 하는 날도 많았지만 풍족해진 마음이다. 또 내가 너무 큰 불안과 걱정들로 이 여행이 끝나고 우울증이 찾아오면 어쩌지-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역시 언제나 같은 일이 반복되지는 않는다. 어떤 패턴들은 생에서 반복되지만, 그 안에서 계속 변주가 일어난다. 같은 패턴 안에서 새로운 것들이 계속 생성된다. 그걸 배우고 있다. 

그 언젠가의 여정에서는 불안과 걱정을 그저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면, 이제는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흘려보내는 법을 배운다. 또다시 분명 걱정과 불안은 올라오겠지만, 그것이 실제로 우리를 다치게 하는 일은 없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내 걱정거리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내 현실과 내 우주를 믿는다. 내 사랑을 믿는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 나를 사로잡고, 잡아먹을 것 같았던 그런 어둠과 불안을 붙잡지 않고 흘려보낸다. 뜨거운 햇살 아래서 모두 태웠고, 부드럽고 미지근하고 포근한 안다만 해에 모두 씻겨냈다. 파도에 넘실넘실 따라 모두 지나갔다. 퍼붓는 비에 모두 씻겨 내렸다. 

지금 듣고 있는 이 노래가 이 여행을 마무리하는 제목이자 음악이 된다. long life. 비행기 타기 전, 내가 급히 애플뮤직에 내려받은 앨범이 wishful thinking이라니 ! 

나는 용감해지길 선택했다. 그 생각만으로 나는 용감해졌다 ! 그리고 그 용감함은 내 삶으로, 내 행동으로 드러날 거야. 지량도 그 안에서 더 든든함을 느꼈으면, 내 사랑이 내 안에서 안식을 얻었으면 ! 

나의 위시풀 띵킹 - !

홍섬에 가기 전날, 나는 날씨가 걱정되어 열심히 자연의 정령에게, 대지의 신에게 기도했다. 우리의 여행이 안전할 수 있게, 비가 오지 말라고까진 못하겠으니, 바다가 안전하기만을 기도했다. 그리고 홍섬 가는 날. 섬 투어를 하는 내내 비는 억수로 내렸는데, 바다는 정말 온화해서 배를 타는 것이 하나도 무섭지가 않았다. 우주는 정말 내 기도를 들어주는구나. 더 솔직하게 진짜로 내가 원하는 것을 적극 기도해야겠구나. 

나 자신을 과소평가한 것인지, 신을 과소평가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늘 왜 원하는 것을 끝까지 빌지 않았을까. 이제 더 크게, 진짜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기도하기로 했다. 진심으로 내가 바랐던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보기로 했다. 너무 오랫동안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들을 참고만 살았다. 참는 것 말고, 만족하는 법을 이제는 배우고 싶어. 늘 갈망하거나 참는 것이 아니라, 풍족함을 느끼고, 만족하는 삶을 살고 싶어. 욕심도 모두 자연스레 비워지고, 무엇도 바라지 않는 삶으로 도달하기 이전에 나는 바라는 것이 충만하게 이루어지는 삶을 경험하고 싶어.

생각과 기도를 여러 번 고치지 않고, 진짜로 튀어나오는 마음과 말을 그대로 바라보기. 여행 중에 여러 가지를 배웠다. 지량은 여행 중에도 내게 하고 싶은 것 다 하라고 해주었는데, 진짜로 그렇게는 안될 것 같아서 본심과는 다른 조금은 더 적당하지만 애매하게 맘에 드는 것을 선택을 했다가 괜히 아파지고, 후회하는 일들이 있었다. 그렇게 또 배웠다. 쉽게 배우는 법은 늘 없어. 에휴. 5살짜리 어린아이가 하는 단순하고도 솔직한 말들이 언제고 나를 다시 깨우치게 한다. 고마워.

일요일, 5월 17, 2026

코코넛 크림이 올라간 옥수수 푸딩을 한참 바라보다가 샀다. 먹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으면 지량은 늘 주저 없이 먹으라고 말해준다. 나는 혹시나 맛이 없으면 어떡하지. 수천 번 고민하다가 결국 사지 않는다. 실패하는 것이 두려워. '맛없으면 안 먹으면 되지' 지량은 늘 쉽게 말한다.
맞아 ! 하다가도, 안먹으면 내가 또 세상에 쓰레기를 하나 만드는 거잖아, 이 모든 업을 어찌하면 좋아.. 하면서 업을 쌓는 게 두려워 당장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할 때가 많다. 어떤 선택을 해도 좋다는 나탐의 이야기를 종종 떠올린다.
그런 나를 받아들이자, 그냥- 하면서 일기를 쓰고 쓴다. 그러려고 일기를 쓴다. 그래도 다 괜찮아. 다 괜찮아. 모든 것은 다 우릴 위해 펼쳐져 있어. 우주는 우리 모두에게 최고의 것을 주고 있어. 앞으로도 그렇고. 이렇게 모든 경험이 나를 가르친다. 모두가 나의 스승이 된다. 망설임과 후회의 순간조차도.

토요일, 4월 25, 2026

어떤 프로그램인지는 모르겠으나, 교실에서 각각의 사람들이 발표 형식으로 교단 쪽에 나와서 이야기를 돌아가면서 하고 있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그 발표를 준비하느라 며칠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어떤 분께서 불교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차례였다. 그분은 그 강연과 관련하여 사람들에게 돌아가면서 공양을 받는다고 하셨다. 나는 처음에 의미를 잘 못 알아듣고 내 주머니에 있던 동전들을 모두 모아서 드리려고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아 내 뒷자리에 앉아 있던 현서에게 다시 설명을 들으니, 자기가 소중하게 가지고 있던 법구나 호신구 같은 것을 공양드리는 것이었다. 소중한 기도와 공덕이 쌓인 것을 바치는 것이었고, 실제론 그 뜻이 아니지만 그것을 '발우공양'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 발우공양을 하기 위해서 내 가방을 뒤졌다. 딱 내가 드릴 수 있는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내가 늘 핸드폰 고리로 달고 다니던 것이 있었다. 지금 떠올려보니 조금 더 캐주얼하게 만들어진 금강저였던 것 같다. 텍스타일 같은 부드러운 재질로 유연하고 일상적으로 만들어져서 내가 늘 가지고 다녔던 것 같다. 재질과 모양새가 좀 다르긴 하지만 본질은 금강저였을 것이다. 그걸 찾기 위해서 가방을 뒤지는데 가방 안에서 온갖 작은 장식들이 뭉치로 나왔다. 발표를 준비하느라 한동안 정신이 없어서 내 모든 잡동사니가 정리가 안 된 채 가방 속에 그렇게 뭉쳐져 있었던 것 같다. 몇 차례에 걸쳐 그것들을 꺼냈는데,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반짝이는 것들이었던 것 같다. 목걸이, 브로치…. 등등. 고양이 모양의 귀여운 브로치도 있었고…. 한 번씩 손을 넣어서 그것들을 꺼낼 때마다 한 뭉텅이였다. 근데 그것들은 모두 다 내가 스님께 드릴만큼의 내 공덕이 들어간 것들이 아니어서 내가 늘 지니고 있던 그 금강저 같은 법구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가 꺼내서 드렸던 것 같은데, 내가 늘 지갑 속에 끼워놓고 다니던 탱화 카드가 번뜩 떠올라서 그걸 드렸던 것 같다. 


깨어나서 이 의미심장한 꿈을 기록했는데, 얼마전에도 비슷한 느낌의 꿈을 꿨던 것이 떠올랐다. 

작은 스푼 두개의 꿈.
도자기로 만들어졌던 것 같은데 매끈하고 반짝이는 유약이 발라져 있어서 아주 예뻤다. 하나는 온전하게 도자기로 만들어졌던 것 같고, 다른 하나는 그 매끈한 재료에 구리인지 황동인지 모를 다른 재료가 섞여있었다. 그 두 재료가 섞인 스푼은 표면의 결이 너무 러프하고 정돈이 되어있지 않아서 내 친구가 다듬어줬다. 내 친구 두명이서 그걸 다듬는 작업을 해줬는데, 다시 내게 돌려주면서 그 중 하나는 내 옆에 있는 짝꿍에게 나눠주라고 했다. 그 매끈한 수저를. 내 짝꿍은 정말 그냥 짝꿍일 뿐, 나랑 어떤 깊은 인연이 있는 친밀감이 강한 친구가 아니었기 때문에 너무 고민이 됐다. 이렇게 예쁜 스푼 두개를 나누라고? 근데 그렇게 하는 것이 내게 어떤 수행이 될 거라는 식으로 친구가 내게 말하며 나누라고 했다. 나는 마음 속으로 솔직하게는 이걸 지량이나 지은이랑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하긴 그러면 그건 아무에게도 베푸는게 아니라 그냥 내가 혼자 가지고 싶다는 욕망 혹은 욕심이겠거니하는 생각을 했다. 정말 그래서 솔직하게는 내키지 않았지만 나누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4월 한 달 동안에 이런 선명한 꿈들을 꾼 것이 신기해서, 다시 그 장면들을 떠올리며 지금 카드를 뽑아봤다. 

이조차도 메시지는 선명하다. 신기하게도 은둔자 카드와 수피 오라클의 determination 카드가 너무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무언가를 끝내고, 밝아지고, 조용히 혼자 걸어가는 여정. 수피 오라클은 인내가 행운으로 이끈다고 말하고 있다. 근데 정확히 이 꿈들과 이 카드의 메시지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아직은 모르겠다. 

그리고 마지막 저 탱화 카드는 내가 꿈에서 공양하려고 떠올렸던 지갑 속에 늘 가지고 다니는 그 카드다. 실제로 늘 내가 지니고 있는 카드다. 관음보살과 뒷면은 반야심경이 적혀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형태가 있는 것이 곧 비어 있음이고, 비어 있음이 곧 형태. 꿈의 마지막에 갑자기 번뜩 떠올랐던 탱화 카드의 이미지가 반야심경의 내용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내가 꿈속 가방에서 꺼낸 반짝이는 것들 - 그게다 '색'이고, 내가 찾고 있던 것은 그 안에 공이 담긴 것, 기도가 담긴 것이었다. 그러나 다시 반야심경 자체가 말하는 게 뭔지 보면, 그 구분 자체도 결국 공이라는 것이다. 
내가 꿈속에서 더 아름답고 귀한 것을 누군가와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어려우면서도 그것이 내게 필요한 일이고, 수행이라고 여겼던 것. 그래서 스님에게 주려고 열심히 찾은 그 소중한 기도가 들어간 금강저와 카드. 결국 내가 그렇게 저울질하고, 고민하던 그 가치들도 결국 다 공이라는 이야기를 어쩌면 관음보살이 내게 하고 싶었던 것일까? 꿈속에서 내가 어렵게 느껴졌던 그 나눔과 공양의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 내 기도와 소망과 신성한 마음이 들어간 것들과 그렇지 않은 다른 반짝이는 것들 혹은 예쁜 수저 한 쌍 그 모든 것들이 내가 그렇게 아까워할 것도, 반드시 지켜야 할 것도 아니라는 것…. 그렇다면 진정한 공양이 가능하겠구나. 그 어떤 것이라도 다 내어주고, 바칠 수 있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