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9월 28, 2026

오랜만에 한참 불안했다. 뒷머리에서 느껴지는 윙윙거림과 열기. 말이 잘 나오지 않거나, 혹은 말이 허투루 튀어나오곤 해서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내가 감히 예상한 것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갱년기의 여성들이 느끼는 것이 이런 것일까 혼자 속으로 가늠해 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얼마나 힘들까 덜컥 겁도 났다가. 두근두근 불안하고 뜨겁고 무섭고. 9월에 한참 솟아올랐다가, 8월에 아팠던 것처럼 아니 어쩌면 더 심하게 아파져서 앓다가 병원도 갔다가 서울에 올라가서 생일 주간과 추석 주간을 보냈다. 너무 아파서 약을 열심히 챙겨 먹었다. 약 때문에 잠을 평소보다 더 많이 잤고, 입맛도 없었고, 자율신경계가 흐트러지는 게 느껴졌다. 기운이 솟아오르던 나날 중에 느껴지던 어렴풋한 불안이 증폭되는 시기였다. 그러고선 요 며칠간은 그 증폭된 불안이 아주 커져서 내가 많이 흔들렸다.
 
어제는 아침에 말이 마구 튀어나오고 생각의 전환이 너무 빨라서 무서울 지경이었다. 보름달 효과인 건지 무언지 정말 알 수가 없었다. 밖에 나가서 그래서 한참 걷다가 집에 돌아왔다. 이게 혹시 조증에피소드는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정말로 내가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다. 기껏 2년간 우울증 치료를 잘 마치고 나서, 1년을 잘 보내고서는 다른 삽화를 마주하게 되는 것일까 두려웠다. 지량이 온전히 내가 걷는 길과 음악만 들으며 다녀오라 했지만, 그런 생각들이 멈추지 않는 산책길이었다. 오랜만에 좋아하는 빵집까지 걸어가서 빵을 사고,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식당에 들러 밥을 먹었다. 생각보다 길어진 산책길이었다. 약간은 땀도 났다. 에너지가 조금은 빠졌는지, 집에 돌아와서는 나가기 전보다는 차분하게 있을 수 있었다. 지량과 함께 거실 테이블에 앉아서 그림을 그렸다. 많이 불안한 나를 보고 지난 밤에 지량이 내렸던 특별한 조치 같은 것이 있었다. 세라 맞춤 치유 프로그램. 묵언수행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묵언수행을 하겠다고 선언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앉아서 그림 그리는 동안 최대한 말을 아꼈다. 차분히 세 장의 그림을 그려냈다. 생각보다 맘에 들었다. 콩테로 드로잉을 하는 감각이 좋았다. 손으로 콩테 가루를 문지르는 것도, 손가락 끝에 그 색깔이 물드는 것도.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도 많이 불안했다. 이리저리 뒤척이고, 또 생각이 튀어 나가고, 손이 뜨겁고, 뒷머리가 두근두근했다. 지량과 어제 사 온 남은 빵과 커피를 먹으며, 오늘도 함께 드로잉을 했다. 지량이 요즘 많이 좋아한다는 음악을 들으며. 지량과 그 시간을 함께하는 것이 너무 좋았다. 집을 떠나기가 싫었다. 광주에 가기 싫은 맘과 가고 싶은 맘이 계속 시소를 타듯이 서로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래도 결국 광주에 왔다. 이번 주에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해야지. 그래도 이전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왔다. 돌아오자마자 짐을 놓고 요가원을 향했다. 9월 한 달 동안 요가원에 등록해 두고는 아파서 몇 주간 수련을 쉬었다. 불안한 마음이 커질수록 요가 수련이 그리웠다. 수련하는 것을 무언가 부정적인 마음의 작용이나 불안을 잠재울 방도로 생각하면 그 또한 강박과 불안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함정이 되기도 하지만, 지금 내가 중심을 다시 찾기 위해 많이 필요하긴 했다. 중심이 상반신으로 쏠려있는 것이 느껴지는 나날이었다. 뿌리내리는 힘이 많이 약해져 있었다. 브륵샤사나를 하는데 이렇게나 흔들릴 줄이야. 내게 정말 안정적인 아사나였는데 말이다. 어쩌면 그래서 많이 불안했나 보다. 발이 땅에 단단히 깊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오늘 오랜만에 수련하고 나니 많이 이완된 것 같다. 창작소로 돌아오니 힘이 추욱 빠져있는 내 몸이 느껴진다. 내일도 더 편안하게 수련해야지. 아직 많이 흔들거려서 그런지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말이 잘 이어지지 않아 멈칫하거나 주저하는 순간이 많아진다.
 
아, 오늘 요가하면서 정말 인상 깊은 선생님의 말씀이 있었다. 아사나를 하면서 에너지의 흐름이 어느 부분에 멈춰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동하게 하라고 하셨다. 머리에서 천골로, 천골에서 다리로, 다리에서 다시 머리로 그렇게 계속 에너지가 이동하는 것을 느끼는 것이지, 어딘가에 무언가를 고정시키고, 멈추어두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고 알려주셨다. 내 몸을 계속 펜으로 그려보는 것처럼 느껴보라고 하셨다. 펜촉을 어딘가에 멈추지 말고, 계속 내 몸을 그리는 것이라고. 이 말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앞으로 수련하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마침 지량과 어제와 오늘 함께 드로잉하는 시간을 가져서 그런지 더 와닿는 가르침이었다. 지량도 내게 오늘 비슷한 말을 했었는데 말이다. 그게 중요한 것이었다. 내일도 그렇게 해야지.

금요일, 9월 11, 2026

무등일기

어제는 무등산에 다녀왔다.

자전거 타고 창작소에서 출발해 증심사 지구 입구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무등산은 확실히 쉬운 산은 아닌 것 같아서 어제는 가볍게 당산나무까지만 천천히 가려고 했다. 날이 많이 시원해져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무등산의 기운인 건지, 바뀌어버린 계절 때문인 건지 머리가 단번에 맑아지는 것 같았다. 곧 만나게 될 당산나무의 모습을 상상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갔다. 가는 길은 그리 어렵진 않았다. 다람쥐를 정말 많이 봤다. 나비도. 새도. 우리나라에서도 해외에서도 청설모는 최근까지도 많이 봤던 것 같은데, 다람쥐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정말 너무 작고 귀여웠다.

당산나무까지는 그래도 금방 도착했다. 커다란 기둥과 굵게 땅으로, 하늘로 뻗어있는 가지들이 너무 튼튼했다. 나는 당산나무 주위를 빙 돌며 인사를 했다. 나무가 있는 곳은 그래도 평평한 쉼터처럼 너른 자리가 펼쳐져 있었고, 벤치와 큰 평상들도 있었다. 나는 평상에 홀로 앉아 김밥을 먹었다. 그래도 산에서 밥을 먹을 땐 고수레해야지 않겠어. 아주 작고 얇은 오이 조각 하나를 바쳤다. 아무래도 요즘은 아무렇게나 안전하게 자연에 바칠만한 공물이 찾기 어려우니 그냥 기분만 내기. 커다란 나무 앞에서 따스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김밥을 꼭꼭 씹어 다 먹었다.

다음번에 또 올 테니 오늘은 이렇게 가볍게 돌아가려고 했지만, 왠지 아쉬웠다. 날씨도 좋고, 이렇게 여기까지 올라온 것이 약간은 아깝기도 하니까 중머리재까지 가보자. 지도를 보면서 체크해 둔 몇 포인트 중의 하나다. 당산나무에서 가까우면서도 너른 풍경을 그래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30분 정도 더 가면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내 걸음이 그렇게 빠르지 않은 점도 있고, 그리고 사실 그렇게까지 가까운 거리는 아니어서 거의 1시간이 더 걸렸던 것 같다. 올라가면서 약간 후회하기도 했다. 하나도 힘들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힘이 들었다. 땀도 꽤 났지만, 남들처럼 줄줄 흘리며 오히려 열을 배출해 내는 체질이 아니라, 얼굴이 역시나 나는 아주 벌게졌다. 그치만 어쩌겠어. 되돌아갈 순 없었다. 끝까지 가야지. 생각해 보니 정말 오랜만의 등산이다. 최근에 지량과 인왕산에 다녀오긴 했지만, 뭔가 이렇게 큰 산은 오랜만이었다. 내가 가는 코스가 아마 그랬던 것 같은데 풍경이 그렇게 다이나믹하게 펼쳐지진 않았다. 그래서 더 중머리재까지 가는 길이 멀게 느껴졌던 것 같다. 무등산은 생각보다 훨씬 더 규모가 큰 산인 것 같았다. 수많은 바위 조각을 밟으며 계속 올라갔다. 분명 계속 다른 모양들을 보고 있지만, 커다란 풍경 속에 있으니 쉬이 내가 보는 장면들이 변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도 가면서 계속 새와 다람쥐들을 잔뜩 만났고, 산의 정령 같은 나무들을 많이 봤다. 확실히 무등산은 커다랗다. 그곳에 발을 딛게 되는 순간 그걸 느낄 수 있는 산이다. 무등산이 품고 있는 모든 것이 느껴진다. 그렇게 오르다가 딱 중머리재에 도착하기 직전에 약간 길이 가팔라진다. 그 끝에 중머리재의 너른 풍경이 펼쳐진다. 너무너무 아름다웠다. 탁 트인 하늘이 보이고, 고갯마루가 아주 넓다. 그래서 그게 스님의 머리와 같다고 해서 이름이 중머리재라고 한다. 사진을 찍고, 벤치에 앉아 목을 축이고 휴식을 취했다. 잠깐 누워서 머리의 열도 식히고, 다리도 풀어주고... 

그렇게 쉬다가 다시 왔던 길로 내려갔다. 올라갈 때는 음악을 들으며 올라갔는데 내려오면서는 이어폰을 빼고 산의 소리를 들으며 내려왔다. 정말 정말 조용했다. 도시의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분명 모든 산속의 생명들의 소리로 가득 차 있지만 정말 정말 고요하고 깊은 평안이 있었다. 사람보다 다람쥐를 더 많이 마주친 것 같다. 나는 아주 작은 소리로 모두에게 안녕-하고 인사를 했다. 내가 꽤 가까이 있었지만 열심히 도토리를 까먹는 다람쥐가 있었다. 완전히 가까이 다가갈 순 없지만 이 낯설고 커다란 몸뚱이의 다른 동물도, 함께 그 공간과 시간을 공유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 그 순간이 너무 소중하고 귀엽다. 감사하다. 산에게 감사한다. 나를 받아들여 줘서, 나를 들여보내 줘서 감사합니다. 이 세상과 가장 쉽게 연결되는 방법은 자연에 들어가는 것이다. 도시에서는 모두가 가까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어느 곳에도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기가 때로 힘들다. 산에 들어서는 순간 혹은 바다에 들어가는 순간, 본디 내가 그 거대한 땅과 물의 일부라는 것을 그제야 알아차릴 수 있다. 내가 그 땅의 한숨이라는 것을, 바다의 물거품 하나라는 것을 깨우친다.

내려가는 길에 증심사에 들렀다. 대웅전을 빙 둘러 걸었다. 대웅전에 외벽에 그려진 벽화를 보며. 그리고 대웅전에 들어가 잠시 머물렀다. 삼배를 올렸다. 정말 고요하고 편안했다. 사원에 들어와 있으면 그 모든 신성이 우리를 감싸안는 기운이 강하게 느껴진다. 압도하는 기운이 아니라, 모두를 감싸안는 그런 기운 말이다. 지난해 타이베이에서 갔던 지산암 혜제궁에서의 순간이 떠올랐다. 아마 내가 잊을 수 없는 기도의 순간 중 하나다. 기다란 향 일곱 개를 들고 사원에 있는 각각의 일곱 신 앞에 찾아가 향을 올리고 기도를 했다. 거긴 꼭 또 찾아가 보고 싶은 곳이다. 아무튼, 잠깐 증심사 대웅전에 앉아 있는 동안 그 기억이 겹쳐졌다. 잠깐 나무 마룻바닥에 앉아 쉬었다가 나왔다. 산에서 거의 네다섯 시간을 보냈다. 중간중간 쉬기도 했고, 사진도 찍고 하니 시간이 금방 간다.

무등산에 다녀온 여운을 충분히 느낄 새도 없이 창작소에 도착해서 바로 사람들과 어제 새로 열린 전시 오프닝에 가기로 했다. 광주에 와서 사실 너무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많이 만나고, 인사하고 하느라 힘들기도 했는데 어제는 아주 재밌게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새로 레지던시에 들어온 작가들이 있는데 브라질에서 온 타이스와 스페인에서 온 에나르와 이야기가 하는 것이 웬일인지 편안하고 재미있다. 어쩌구 저쩌구 나도 모르게 엄청 많이 떠들었다. 있는 동안 사람들을 마주하는 것이 버겁기만 한 것은 아닐까 걱정했었는데... 그래서 늦게까지 같이 떠들고, 식사하고... 우리 셋은 밤거리를 함께 걸으며 창작소로 돌아왔다. 나름 뿌듯한 하루였다. 여러 가지 기운들이 한데 뭉쳤다. 내 몸에. 전날 양림요가원에서 했던 수련의 여운과 근육통이 몸에 계속 남아 있었고, 무등산의 기운도, 그리고 새로 만난 친구들과의 대화와 웃음소리도 다 한데 어우러졌다. 웬일인지 목소리가 잘 나오는 날이었다. 몸은 아주 피곤하지만서도 상승하는 기운이 느껴지는 날이었다. 그리고 일찍 잠에 들었다.

알람을 맞춰놓고 오늘 아침 8시 15분 수련에 가기로 했다. 더 자고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벌떡 일어나 요가원으로 향했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 그래도 2년간 꾸준히 요가를 했는데도 아사나 이름들은 모르겠다. 늘 새로운 마음으로 수련한다. 새로운 아사나를 마주하며 아직도 여긴 열리려면 멀었구나-하고 생각되는 몸의 구석구석을 발견한다. 그래도 그 하나하나에 너무 괴로워하거나 집착하지 말자. 그 과정에서 편안하게 호흡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깨달으며 수련한다. 몸이든 마음이든 몰아붙이지 말고, 편안하게 호흡할 공간을 찾는 것이다.

오늘은 그렇게 아침 수련을 하고 집에서 하루 종일 쉬었다. 해가 많이 내려오니 그제야 몸이 좀 깨는 것 같았다. 내 방으로 들어오는 오후 다섯 시 반의 햇살이 너무 아름다워서 벽에 비친 햇살을 한참 사진 찍었다. 폴라로이드로, 문주가 빌려준 똑딱이 필름 카메라로, 그리고 내 후지필름 카메라로…. 필름엔 어떤 모습으로 담겼을지 아직 알 수 없지만, 폴라로이드 사진 중 하나 아주 맘에 드는 것이 생겼다. 요즘 내가 매일같이 찍고 있는 순간이 있다. 아마 나중에 이 사진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질 것 같다. 잠들기 전에 늘 그 순간들을 상상해본다 요즘은. 이다음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꾸미고 싶은 공간과 시간. 내가 무등산에 올라 느꼈던 감각, 혜제궁 안의 신들을 마주하며 느꼈던 감각같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어딘가를, 무언가를 만드는 상상한다. 각자의 사원에 들어서는 순간을..

화요일, 9월 08, 2026

간은 분노의 장기다. (분노는 침범당한 경계를 회복하기 위해 올라오는 감정이다.) 동시에 비전과 성장, 창조성의 원천이기도. 간을 주관하는 원소는 목(木)이다.

균형잡힌 목 원소의 예시로 버드나무가 있다. 목 원소의 회복에 좋은 것. 


나무가 자라면 공간이 필요하고 방향이 생긴다. 

시간이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