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9월 29, 2024

La druidesse de la générosité

Donnez de votre temps et apportez votre aide pour un monde meilleur.

내가 이 세상에 가져올 수 있는 도움. 나 자신이 올바르게 설 것. 나 자신을 위로하고, 나 자신에 가장 관대할 것. 왜 지금 관대함을 떠올리는 순간에 그 생각이 날까? 그때의 나를 용서해 주라는 의미일까? 왜 그렇게 나를 미워하고 벌줬을까? 내게 일어나는 모든 불행과 고통은 내가 지은 죄에 대한 벌이라 여겼던 지난날들이 믿어지지 않는다. 지금은 죄와 벌 따위는 생각지 않는다.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알았다.
세상에 보이는 아픔들, 두려움, 고통, 모두 내가 내 내면의 마음이 보여주는 거울이었음을 안다. 나 스스로에게 더 관대해지자 세상이 비극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해결해야 할 일들은 물론 있지만 그것이 이 세상을 정의하지는 않는다.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은 언제나 존재한다. 밝은 면만 보는 것도 방법은 아니다. 그냥 그 밝음과 어둠이 혼재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 된다.
내게 일어나는 나쁜 일이 내 삶을 그대로 고정하지 않는다. 그것이 나를 정의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모든 것이다. 나는 빛이고, 그림자다. 그림자는 그림자다. 무언가를 더 크게 생각할 것도 없지. 너무 모든 빛에 압도될 필요도, 과분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아주 평안했다. 이번 여행은. (2024.9.22)

여행 마지막 날 뽑았던 오라클과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썼던 메모. La druidesse de la générosité . 관대함을 떠올리는 순간에 함께 떠오른 기억. 신기하게도 여행이 끝나자 떠올렸던 그 기억과 연관된 인연과 연락이 닿았고, 나는 다시 오랜만에 올라오는 감정에 휩싸이다가, 이제 그걸 다시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뽑았던 카드가 하려던 말이 그것이었을까. 나는 아직 더 나를 사랑하고 더 용서해야 하는가 보다. 아마 그런 과제가 내게 남아있었던 것 같다. 참 이 우주의 원리가 신기해.

오늘은 꿈에 엘로디 집을 가는 버스를 잘못 탔다. 더 지도를 살펴보면서 맞는 버스를 기다리면 되는 것이었는데 웬일인지 마음이 급하여 정류장으로 오는 버스를 대충 탄 것 같다. 나는 무임승차를 했다. 핸드폰으로 구글맵을 보는데 표시해 둔 엘로디네 집에서 멀어져서 나는 황급히 버스를 내렸다. 내리니 엘로디집에서 한참 멀어졌고, 그 동네는 마르세유에서 내가 절대 가지 않는 동네였다. 북부 쪽. 치안이 좋지 않기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나는 겁이 났다. 그런데 예상외로 동네가 좋아 보였다. 날씨가 좋았고, 밝은 느낌이었다. 왠지 팬시한 가게들이 많았다. 멋진 서점, 귀엽고 맛있는 빵집들. 나는 빵집 한곳에 들러 바게트도 하나 샀다. 긴 바게트였다. 그 빵집엔 한국인들도 오곤 했는지 한국어도 쓰여 있었다. 모든 게 의외였다. 그래도 길에 집이 없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였는데, 내가 실제로 마르세유에서 종종 보았던 누군가와 참 닮은 사람이 있었고, 그는 칼을 들고 있었다. 왕좌의 게임에 나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스스로에게도 위협이 되고, 남들에게도 위협이 되는 칼의 모습이었다. 나는 걸어서 엘로디네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꿈을 쓰다 보니, 날씨가 좋았고 밝은 느낌이 났는데, 그 전에 비가 왔었다는 사실이 생각이 났다. 그 전에 비가 내렸고, 나는 내가 쓰고 있던 우산을 상점에 잠시 내려놓았을 때 누군가가 훔쳐 가는 현장을 발견했다. 나는 소리를 쳤다. 나는 그 사람이 들었던 우산인지, 내가 전에 쓰던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비슷한 우산 하나를 들었고, 그걸 펼쳤는데 우산은 고장이 난 것 같았다. 잘 고정이 되지 않았다. 도로는 침수되었고, 땅이 푹 꺼져서 모두 모래에 몸이 빠져버린 것처럼 젖은 도로에 빠져버렸다. 목만 동동. 인도는 대신 딱딱하게 남아있었다. 길을 걸을 수 있었다. 나는 인도로 걸었다. 그러다가 아마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탄 것 같다.

오늘 이 꿈 이야기를 지량에게 하면서 내 무의식 속의 두려움들에 대해 이야길 나눴다. 내 안에 있는 두려움들. 내가 잘못 내려서 가게 된 막세이의 무서운 동네처럼, 막상 그 두려움에 들어서서 보면 사실은 별것 아니었던 것들일 수도 있어. 아마 그런 이야기를 보여주는 여정이었던 것 같다. 오늘의 꿈은. 그리고 나서 일기를 쓰려는데 여행에서 돌아오기 전에 썼던 메모와 뽑았던 오라클이 여기까지 이어지는 것 같았다. 내 무의식 속에 있는 두려움을 직면하고, 그 두려운 상황의 한가운데에 들어서는 것.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한 관용과도 이어지는 이야기였다. 적어도 내가 발견한 이야기로는 그렇다. 내가 깨달은 관용이란 그런 것이었다.

금요일, 9월 20, 2024


안시를 떠나 다시 파리로 돌아왔다. 오늘은 소영의 생일이고 파리에 도착해 소영을 만났다. 이틀 동안 파리에서 함께다. 하루는 지나가고 있다. 피곤하여라. 파리에 와서 혼자 사운드배스를 들었던 요가원에서 오늘 애들이랑 같이 또 다른 사운드배스 수업을 들었다. 오늘은 북과 입으로 내는 소리를 들으며 몸의 균형을 찾았다. 싱잉볼을 들었던 날보다는 집중이 덜 했지만.. 이런 저런 걱정이 드는 까닭도 있었기에.. 하지만 마지막엔 차분해지며 고개가 양쪽으로 돌아갔다가 중심을 찾았다. 내가 있는 자리를 계속 인지하는 것이 오늘은 조금 힘들었지만, 새로운 연습이기도 했다. 북의 리듬이 내 몸의 리듬을 서서히 안정화하는 과정을 바라보는 것은 또 다른 새로운 경험이었다. 


목요일, 9월 19, 2024



완전한 빛 안에 존재하며, 조금 더 차분해지고 조금 더 겸허해진다. 완전한 빛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제는 꼭 황홀경처럼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일까 생각을 하며 걷다가 dream이라는 글자를 길에서 마주쳤다. 그리고나선 계속 꿈결을 그리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이 모든 것은 꿈처럼 가볍고, 깨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인 거야-하고 생각을 한다. 아무리 내가 수백번 죽어도 나는 한번을 살아 있다. 완전한 빛 안에서. 황홀하지 않아도 부드러우면서 살아있는 꿈. 호수에서 수영을 하다가 뭍으로 나와 땅을 밟았다. 완전한 빛을 내뿜는 태양이 위치를 바꾸는 동안 나는 그 변화하는 모든 빛을 느끼며 수면의 안과 밖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음을, 언제나 우리는 완전한 빛 안에 존재하는 꿈이자 살아있음을, 다시 본다.




월요일, 9월 16, 2024

파리에서 매일같이 일기를 쓰다가 막세이에 와서는 완전히 잊었다. 편안하고 느긋하다. 

엘로디 집에 도착하여 빵과 치즈와 와인을 많이 먹었다. 와인은 많이라고 하기엔 하루에 한잔이지만 말이다. 오랜만에 만난 엘로디와 다미안은 더 얼굴이 좋아보인다. 쁠랜느 근처에 새로 이사 온 둘의 집은 너무 귀엽고 알록달록하다. 두 사람이 좋아하는 것들이 곳곳에 붙어있어 즐겁다. 해골바가지와 세리그라피, 사진들. 재밌어. 

그토록 가고싶었던 까시에도 다녀왔다. 엘로디 차를 타고 코코라는 친구도 함께. 즐거운 여름의 끝자락이다. 물에는 정말 잠깐 들어갔다가 나왔다. 해는 뜨겁지만 물은 너무 차가웠다. 내일은 해변에 들어가봐야지. 

4년만에 온 막세이는 조금 변해있었다. 조금은 더 정돈된 것 같았고, 관광객도 더 많은 것 같았다. 조금 더 평화로워진 느낌이었다. 내가 조금 더 편안해져서 인건지, 막세이가 변한 것인지 모르겠다. 아름다운 이 곳에 얼른 지량과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이다. 보고싶은 내 사랑. 

목요일, 9월 12, 2024

So Ham.

언제 이 세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더 초연해질까. 원리와 방법을 이해해가고는 있지만 아직 과정에 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식당 줄을 서 있었다. 귀여운 막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기특하고 현명하고 용감한 막내.

나도 더 용감하고 잔잔해지고 싶다. 나는 그런 소망을 가지고 있다. 여러가지를 해내고 여러가지를 보면서 하루를 보냈다. 유채님도 만났다. 먼 타국에서 만나는 친구들은 더욱 반갑다. 함께 오늘 저녁까지의 순간을 나누었고 우리는 모두 완전히 지친 채로 집에 돌아왔다. 

내일은 조금 더 따뜻한 남쪽으로 이동한다. 조금 더 편안하고 따뜻하게 지내야지. 

수요일, 9월 11, 2024

 



아름다운 빛깔의 날. 습기와 햇살이 많은 날의 색. 구름과 텅빈 하늘의 색. 들꽃의 색. 공원의 색. 고양이의 색. 

옆집의 고양이와 아침에 빵을 사오는 길에 마주치곤 인사를 나누었다. 에펠탑 근처에서는 검은 고양이를 만나서 한참을 쓰다듬으며 놀았다. 항상 충만함을 주는 고양이. 사랑과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고양이.

오늘은 명소를 찾아다니는 날이었다. 몽마르뜨 언덕은 여러번 가보았지만 오늘은 처음으로 몽마르뜨 뮤제에 갔다. 정원이 참 예쁘거든. 한참 앉아서 오랜만에 누아제뜨도 마시고 키슈도 먹고 사진도 찍으며 정원에서의 시간을 보냈다.

쉴새 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예쁘고 바쁜 것들을 마주했다. 추억이 계속해서 새로운 시간과 만나고 겹쳐진다. 한참을 즐겁다보면 나는 어느샌가 모든 에너지가 추욱 빠져 있다. 그럴 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지. 로저 이노의 노래와 아이들의 말소리 웃음소리 양치하는 소리와 겹쳐지고 나는 거의 잠에 들었다. 

화요일, 9월 10, 2024

애들이 드디어 파리에 왔다. 공항에도 마중을 나갔다. 내가 좋아하는 빵집의 빵오쇼콜라를 맛보여주고 새로운 숙소에 왔다. 새로운 동네. 내가 좋아하는 공원이 바로 코앞에 있다. 오늘 설렁 설렁 동네를 돌아다니고자 했지만 걷고 걷다보면 항상 더 멀어져 있다. 파리에선 항상 그렇다. 조금만 더 가면 무언가 있고, 또 조금만 더 가면 무언가 있으니까. 계속 계속 걷다가 또 재밌는 것들을 발견하고 그러다가 어느새 센에 와있고 그렇다.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보고 돌아다니느라 많이 피곤해졌다. 막내는 바로 곤히 잠들었다. 

월요일, 9월 09, 2024

새벽에 통 잠을 제대로 못잤다. 오늘은 더욱 흐리고 비가 아침부터 내렸다. 새벽부터 내내 깨어있다가 아침이 되고 빵집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부슬비가 점점 많이 내려서 공원에 가려던 계획은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빵을 먹고 쉬었다.

쉬다가 다시 외출을 했다. 빈티지샵에도 갔다가 차도 한 잔 마셨다. 아무래도 근데 너무 릴랙싱이 되는 차를 마신 것 같았다. 안그래도 날씨처럼 추욱 쳐지는 날이었는데 내 에너지는 더 땅으로 낮게 가라앉은 것 같았다. 혹은 어제 너무나 큰 상승을 경험했기 때문인 걸까. 내가 왜 이럴까 생각을 하다가, 다시 돌아와 그냥 내 상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상기해냈다. 힘이 없고 말이 잘 안나오면 뭐 어때. 오늘은 그런 날인거지. 그런 내가 나는 가끔 창피하다. 어제 뽑은 오라클을 생각했다. 나는 나 자신을 버리지 않을만큼 나를 사랑한다. 

어제 뽑은 오라클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걸 사려고 좀 오늘 고생을 해버렸다. 왠지 모르게 예상했던 상황이긴 했다. 헤매임과 피로, 창피함, 두려움 등을 느끼기 위한 또 다른 간단한 수행이었으리라. 

내가 6년 전 처음으로 타로덱을 산 곳이 파리에 있다. 그 가게를 오랜만에 찾아 갔는데, 가게가 정리 중이었다. 오라클은 물론 사지 못했지만 그곳이 사라지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이미 나는 피로했지만 왠지 모를 오기가 생겨, 더 먼 동네로 신비한 책들과 크리스털을 판매하는 상점엘 갔는데 거기서도 내가 원하는 오라클을 찾진 못했다. 그리고 그곳에선 아주 약간 기분이 이상해지는 상황이 하나 있었다. 

가게를 나와서 그 일이 머릿 속을 떠나질 않았다. 오늘은 이상한 날이었다. 오랜만에 반복적으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래도 오라클은 금방 그 근처에 있던 프낙에서 살 수 있었다. 나는 그 오라클을 발견하고는 정말 감사하다고 입밖으로 소리를 내서 인사했다. 마음을 다하여서 말이다. 이미 다리도 너무 아프고 너무 지쳐있었다.
 
밥을 먹으러 이제 또 다시 머나먼 우리 동네쪽으로 돌아오기로 했다. 옆동네에 도착했는데 내 숙소가 있는 동네와는 또 분위기가 다른 것 같았다. 오늘 나의 상태가 모든 사소한 부분들을 극대화하여 받아들이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근방에 꽤 유명한 공원이 있어서 홀로 길을 가는데 너무 길도 휑하고 날씨도 별로여서 그런지 가슴을 졸였다. 길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은 거의 이민자들이고 남성이었다. 나는 괜히 무서워서 공원에 들어가지 못했다. 공원을 들어서는 문 앞에도 가는 길도 왠지 다 두려웠다. 나는 두려움을 한참 마주하다가 숙소가 있는 동네쪽으로 가기로 했다. 무섭지 않은 길로. 그러면서 나는 다시 한번 어제의 오라클을 떠올렸다.

자기 존재감. 다른 사람의 사랑 혹은 미움으로 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나 자체로 존재하며, 사랑이라는 것을 다시 떠올렸다. 내가 마주했던 두려움들을 다시 들여다보니 그것은 그들이 나와 다르다는 생각으로부터 오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들이 슬프고 그런 생각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슬펐다.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과도 같다. 나는 길을 걸어가며 내가 그들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다. 그는 나다. 그들은 나다. 나는 그들이다. 나는 그들이다.

이 세상을 진정 나의 거울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그 상태에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다. 온전한 그 상태에. 모든 두려움을 벗고 자유로이 말하고 자유로이 존재하는 상태에. 




일요일, 9월 08, 2024

기분 좋게 일어나 흐린 아침의 하늘을 맞았다. 깨고 나서도 조금 더 누워있었다. 그러고보니 어딘가를 가기 위해서, 무언가를 하기위해서 벌떡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아주 달콤하네. 

아침으로 맛있는 빵오쇼콜라를 먹고 싶어서 지도를 살펴보다가 기대가 되는 빵집 하나를 발견했다. 인기가 많은 빵집이었다. 사랑스러운 빠띠셰가 사람들을 맞이했다. 나는 빵오쇼콜라 하나와 카페 알롱제를 주문했다. 사랑스러운 빠띠셰는 고맙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c’est moi라고 연신 대답했다. De rien 대신 쓸 수 있는 말인데 그 표현은 내게 익숙한 표현이 아니었다. 

Merci. 
C’est moi.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내가 그걸 하는 일이 당연해’ 혹은 ‘(그런 일을 하는게) 그게 바로 나야’ 하는 뜻이 아닐까 하고 넘겨 짚어보았다. 나도 이제부터 이 표현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 파리에 있는 준호랑 메시지를 주고 받다가 그 이야길 했는데 준호는 그게 ‘내가 할 말이야’ 같은 뜻이라고 했다. 

Pardon. 
C’est moi. 

이렇게도 쓸 수 있다고 했다. 누군가 죄송하다고 해도 ‘내가 죄송해요’하고 말하는 것이다. 고맙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고마워.’ 사소한 말들에서 세상에 대한 사랑을 느낀다. 





카페인과 달콤함으로 인해 들뜬 마음으로 거닐다 작은 공원에 들러 햇살 아래에 앉아 있었다. 




미래언니를 만났다. 막세이에서 함께였던 우리는 오늘 파리에서 서로를 만났다. 언니가 참여하고 있는 재불한인작가들의 전시도 보고 같이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셨다. 들른 카페에선 내가 정말 예전에 아주 잠깐 알았던 사람을 마주쳤다. 미래언니와 아는 사이였는데, 심지어 오늘 내가 본 전시에도 그의 작품이 있었다고 했다. 아주 잊은 누군가였는데, 이름과 얼굴을 보자마자 알았다. 너무 신기하고 반가운 잠시였다. 그는 날 기억하지 못했다. 그것도 그 나름대로 좋았다. 시간이 얼굴에 보였는데 그게 멋졌다. 

그러고보니 오늘 미래언니와 이야기를 하면서도 미래언니의 얼굴을 가까이서 들여다보았다. 언니의 말과 생각들 언니의 시간들이 얼굴에 들어 있었다. 그래서 언니의 말하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계속 언니의 얼굴을 쳐다보게 되었다. 

언니랑 헤어지고는 오늘 오후 일정으로 생각해둔 한 요가원의 사운드 배스 세션을 예약했다.



집에서 잠시 쉬다가 나오니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다. 비를 맞으며 요가원에 도착했고 아주 차분하고 평온한 분위기의 공간에 들어섰다. 나는 바로 안도했다. 세션 시작 전에 오라클카드 하나를 뽑았다. 

나는 나 스스로를 버리거나,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만큼 나 자신을 사랑한다. 나는 다른 이들의 사랑을 느끼고 환영한다.

나는 이미 충만함을 느끼며 자리에 누웠다. 머리에 수많은 말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 모든 것들도 이제는 그저 지나가도록 내버려둘 수 있다. 계속 지나가는 말들과 두근거리는 머리. 각각의 차크라를 정돈해주는 싱잉볼의 진동을 지날 때마다 내 머리속 말들이 조금씩 고요해지고, 떠오르는 문장들보다도 현재의 진동을 오롯이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머리가 고요해지고 가슴이 고요해지고 배가 고요해지고 다리가 고요해졌다. 내 상승하는 에너지가 조금씩 균형을 잡았다. 얼마전 희수작가님이 우리집에 와서 해주셨던 레이키가 생각났다. 물처럼 흐늘거리는 형태로 존재하는 내 오라가 잔잔하고 균형을 잡아가는 그 과정을 다시 오늘 더욱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세션의 마지막즘엔 정말 놀라울 정도로 내 몸의 에너지가 고요하게 정렬하는 과정을 물리적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정말 깨끗하고 맑아진 몸을 느낄 수 있었다. 가볍고 행복하게 밖으로 나왔는데 회색 고양이가 정원에 앉아있었다. 너무 사랑스러워 잠시 인사를 나누었다.

밖으로 나와 république 광장을 지나는데 모든 것들이 사랑과 충만으로 가득한 것 같았다. 비는 그쳐있었다. 모든 것이 씻겨내려간듯 시원하고 가벼웠다. 사실 레퓌블리크 광장을 지나갈 때면 여러가지 감정이 든다. 어쩔 땐 투지가 느껴지는데, 가장 큰 것은 두려움이다. 길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좀 있다. 거기에 대해서라면 여러가지 두려움이 있다. 세션을 끝내고 나오는 길에 여전히 누워있는 누군가를 보며 나는 이전에 느꼈던 불안과 두려움 대신 사랑을 느꼈다. 그 누구도 버리지 않는 사랑. 어디에 있어도 어떤 형태로 있어도 우리는 사랑 그 자체야.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느꼈다. 그들도 내가 지나갈 때 사랑을 느끼길 바랐다. 모두가 안도를 느끼길 바라며 내 충만한 마음을 더욱 부풀렸다. C’est moi. 




토요일, 9월 07, 2024


열심히 무빙워크 위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내 팔을 잡아당겼다. 지퍼락같은 것을 주섬주섬하는데 순간 이상한 것일까봐 겁이 났다. 그런데 그가 내게 쥐어준 것은 antifasciste 스티커. 내 가방에 달린 종차별반대 뱃지를 보고 준 것이었다.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일어난 일이 이렇게나 아름답고 귀엽다니. 그 친구는 스티커를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금요일, 9월 06, 2024

일어나 사과 하나를 지량과 나누어먹었다. 귀여운 곰돌이 밤꿀도 맛을 보았는데 너무 맛있었다. 아주 살짝 쌉싸름하면서 달콤하고 진한 맛이 좋았다. 아까워서 못먹겠는 그런 꿀이다.









나머지 짐들을 싸고, 금방 우리는 집을 나섰다. 가타쯔무리에 들려 우동을 먹었다. 언제나의 나는 냉우동을 먹지만 오늘은 왠지 날이 흐리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서 찬면에 뜨거운 국물 조합으로 가케우동을 먹었다. 오늘따라 어찌나 맛있던지 우리는 게눈 감추듯 순식간에 그릇을 비웠다. 싹싹. 운이 좋게도 우리는 오늘의 마지막 손님이었다.










가타쯔무리 근처에 바로 지량이 좋아하는 로스팅 카페가 있다. 증가로커피공방. 지량은 원두와 따뜻한 커피 한잔을 샀다. 베리류의 산미가 그득한 커피를 마시며 우리는 공항으로 떠났다.

공항으로 가는 길 동안에 우리는 서로를 미리 그리워했다. 공항에는 금방 도착했다. 나는 짐을 부치고 지량과 잠시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서로를 계속 부둥켜 안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지량은 내가 없는 집을 정말 서운하게 여긴다. 그런 모습이 정말 사랑스럽고 귀엽고 고맙다. 우리가 점점 시간이 갈 수록 곁에 있는 서로의 존재에 익숙해지고, 길들여져 가는 것이 좋다. 서로가 곁에 있음이 얼마나 즐거운지를 안다.

지량과 헤어지고 나는 탑승구로 향했고, 금방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노이즈캔슬링이 되는 이어폰을 귀에다가 꼽으니 편안했다. 가끔 나는 예전엔 어떻게 살았나 싶을 정도로 이 기능에 감사하곤 한다. 종종 끝없는 소음에 지칠 때가 있는데 그것들로부터 조금은 떨어져 공간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신기하다. 없던 거리가 생긴다.



















비행기 안에서는 할 것이 별로 없다. 좁은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잠을 자거나 음악을 듣거나 비행기에 있는 게임을 한다. 나는 오색 크리스탈들이 무작위로 펼쳐져 있는 퍼즐판에서 같은 색의 크리스탈 세개를 일렬로 맞추는 고전 게임을 좋아한다. 이 비행기에서 기록된 최고 점수를 내가 갱신했다. 더 큰 점수를 내고 싶었지만 시간에 쫓기다가 끝나고 말았다.











난기류도 조금 만났다. 비행기를 타는 일은, 아니 어쩌면 사는 일은 내가 지금 당장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일과도 같다. 그것은 두려운 일이 아니라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생의 한 부분이다. 언제 어떻게 일어나도 사실 이상할 것은 없는. 나는 난기류를 만날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죽음의 순간을 상상한다. 언젠가는 두려워했던 적도 있었지만 이제 두렵지 않다.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나도 두렵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생에서 마주하는 다른 모든 일들과 다를 것이 없는 하나의 일. 무엇이 좋고 나쁘다고 여기지 않아도 되는. 그냥 낮과 밤 같은 것. 음과 양.










이런 생각을 하면서 비행기 안에서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기를 쓴다. 9530m의 고도에서 쓰는 일기다. 이번에 여행을 하는 동안 매일 그날의 일기를 쓰기로 마음 먹었다. 여행이 끝난 후에 다시 읽어보면 너무 재미있을 것 같다.
곧 하노이에 도착한다. 하노이에서 파리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탄다. 내일부턴 파리에서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