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4월 30, 2021

미자 미셸 미유

사랑하는 우리 미자 생일 축하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어제 끓여 놓은 미역국을 한 그릇 엄마에게 퍼주고, 케익에 촛불을 켜고 생일을 축하했다. 오직 건강하기를 우리 엄마. 사랑해요.

엄마는 밥을 먹고 바로 출근을 했다. 우리는 식사를 마저 했고, 계속해서 병아리를 살폈다. 새벽부터 엄마랑 아빠는 병아리를 보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병아리 셋 중의 하나가 세상을 떠났다. 사실 많이 힘이 없어 보이던 한 명이었다. 그리고 간밤에 아이들 삐악삐악 소리가 너무나 컸는데 무슨 일은 아니겠지 하고 그냥 잠에 들었는데, 혹시 우리를 계속 불렀던 걸까? 너무 미안하다. 너무 추웠나 보다. 양주 집은 아직도 너무 춥다. 다들 옷을 두껍게 입고 있어야 할 정도로 냉기가 가득한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갓 태어난 병아리들은 30도가 넘는 온도 속에서 지내야 한다고 했다. 엄마 닭 품속은 41도라고 한다. 정말 뜨겁다. 약간 회색빛의 털을 가진 병아리가 물그릇에 빠졌는지 몸이 푹 젖어 있었다. 제일 활발한 아이였는데, 너무 비실비실하고 있어서 걱정이 되었다. 난로 앞에 병아리들을 두었다. 스티로폼 박스에서 꺼내 폭신한 담요에 아이들을 올려주고 따뜻한 난로 앞에다 두니 난로 앞으로 계속 걸어가 서 있었다. 온기가 너무나 필요했나 보다. 우리는 계속 아이들을 지켜보았다. 밥그릇이랑 물그릇도 담요에 놓아주고, 삶은 달걀노른자를 부숴서 놓아주었다. 그래도 되나 싶었지만, 생각해보면 달걀 속에서 병아리들이 자라날 때 양분으로 섭취하는 것이 노른자 부분이라고 하니 말이 된다. 실제로 노른자를 먹이는 것은 정석적인 방식이라고 한다. 아무튼.. 그렇게 따뜻하게 두니 점차 아이들은 안정을 찾아갔다. 밥도 잘 먹고 물도 잘 먹었다. 너무 다행이야.

우리도 한시름 놓고 밥도 먹고 생일 케익도 먹었다. 평소와 다르게 아침 일찍 일어난 탓에 밥을 먹고 나니 참을 수 없는 졸음이 밀려왔다. 오지랑 나는 다시 한숨 잤다. 꿈도 열심히 꿨다. 잠이 계속 밀려왔지만, 집에 가야 하기에 일어나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집에 가져갈 음식들을 챙기고, 병아리들 자리를 잘 만들어주고 나왔다. 고양이가 있을까 ? 현관을 나와서 고양이를 불렀다. 없는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는데 고양이를 발견했다. 너무 귀엽고 예쁜 자세로 앉아있었다. 보자마자 반가워 다가가니 야옹야옹. 나무 기둥을 스크래쳐 삼아 열심히 긁으며 반가운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마을버스를 탈 시간을 염두에 두고 나온 탓에 고양이랑 더 놀아주지 못해서 너무 슬펐다. 고양이는 여전히 건강하고 귀엽고 우리를 좋아했다. 지난번 아빠 생일 때는 얼굴도 못 봤는데, 오늘은 우리에게 인사를 하러 온 것인지. 또 올게. 귀여운 털북숭이 친구들을 보니 우리 고양이들이 더욱 보고 싶어졌다.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또 마을버스를 타면 우리 집이다. 단 하루의 여행이지만 며칠은 지난 것 같이 피곤했다. 돌아오니 아이들 밥은 다행히 조금 남아 있었다. 하루 동안 우리 없이 잘 지냈니. 아가들.

저녁에 오기로 한 손님이 있어서 바닥을 쓸고 얼른 밥을 챙겨 먹었다. 우리 까미유를 구조해주고, 돌보아주신 너무나도 고마운 이웃 두 명이 가끔 미유를 보러 우리 집에 놀러 온다. 그새 훌쩍 자라난 미유를 보고 모두 기함을 질렀다. 무지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우리 까미유. 놀라울 정도의 속도로 자라나고 있다. 우리도 매일같이 놀란다. 우리는 함께 미셸, 미유를 열심히 놀아주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고양이 가족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두시간이 훌쩍 넘어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인사를 했다. 우리 미유는 또 많이 커져 있을 거예요. 우리 미셸은 늘 그렇듯 점잖고, 귀엽고, 조용합니다.

집안일을 조금 하고, 우리는 너무나 피곤하여 일찍 자리에 누웠다. 미셸이 너무나 사랑하는 내 따뜻하고 부드러운 겨울 이불을 아직 덮는다. 요즘 날씨가 다시 추워져서 이 이불이 딱 맞긴 하지만, 사실 미셸이 너무 좋아해서 집어넣질 못하고 있기도 하다. 이불을 덮고 앉아 일기를 쓰고 있다. 우리 미셸은 온종일 약간 거리 두기를 하더니 밥을 먹고 이제야 내 다리 위에 올라왔다. 우리가 늦게 와서 조금 기분이 안 좋았던 걸까? 오지는 아니라고 하지만 나는 미셸이 조금은 삐진 것 같기도 했다. 미안해 미셸. 사랑해 미셸. 그래도 내 다리 위에 올라와서 잠을 자고 있으니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사랑하는 우리 미셸. 오늘은 종일 미자 돌림의 우리 가족을 위한 날인가 봐.

우리 미자. 우리 미셸. 우리 미유. 

목요일, 4월 29, 2021

양주

양주에 왔다. 내일이 엄마 생일이라 미역국도 끓여주고 같이 케익도 먹으려고 오지와 함께 왔다. 양주를 오는 길은 언제나 그렇듯 피곤하고 멀고 복잡하다. 의정부역에 내려서 아빠 생일 때도 샀던 케익집에서 케익을 샀다.

우리 엄마가 벌써 57살이라구 ? 믿어지지 않는다 사실. 우리 엄마 안 아프게 해주세요. 건강하게 행복하게 우리 가족 모두 잘 살고 싶어요. 이 세상의 모든 신에게 기도하는 말.

사실 지금 잠들려고 했지만 일기를 쓰지 않은 것이 생각나 졸린 눈을 하고 가까스로 글을 쓰고 있다. 어제는 술에 취해있었고 오늘은 잠에 취해있다. 취한 채로 쓰는 일기들. 사실 어제는 일기 말고도 카톡이랑 인스타에서도 내가 술 냄새를 풍겼던 것 같다. 정상적이지만 쓸데없이 이상하게 정상적인 말들을 늘어놓았다. 일어나서 창피했다. 나 몰라라 하는 중이다. 오지는 내가 한 모든 말이 취해 보였다고 한다. 휴. 쓰려고 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쓰고 말았다.

다시 양주. 집에 오니 엄마가 준비해놓은 저녁 식사를 바로 할 수 있었다. 밥을 다 먹어가던 중에 집 안에서 들리는 병아리 소리를 인지했다. 가보니 거실에 스티로폼 박스에 너무나 귀엽고 작은 병아리 3명이 있었다. 여기서 닭이 낳는 달걀을 부화 시켜 나온 병아리들이다. 엄마는 너무 행복해했다. 고양이가 좋으냐 병아리가 좋으냐는 질문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병아리라고 대답을 했다. 우리는 병아리를 보자마자 어릴 적 기르던 병아리들을 떠올렸다. 졸졸 쫓아오던 병아리들. 어렸을 때는 꽤 흔한 일이었다. 학교 앞에서 박스에 넣어진 채로 팔리던 병아리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고 가엽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지. 휴

식사를 마치곤 미리 미역국을 끓였다. 엄마가 소고기를 넣고 끓이고 싶어 해서 나는 정말 너무나 오랜만에 고기를 손질했다. 그 살덩어리의 핏물을 닦아내며 나는 기도를 했다. 적어도. 그리곤 백인분은 될 것 같은 양의 미역국을 만들었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엄마 출근하기 전에 함께 식사한다. 모두가 자고 있다. 늦은 밤 나 혼자 양주에서의 반나절을 기록한다. 너무 졸린 탓에 사실 오늘은 정말 정말 의무적으로 일기를 썼다. 이런 식으로 일기를 마무리 짓던 일이 많았던 것 같은데 오랜만이다. 그리고 나는 잔다.


수요일, 4월 28, 2021

panorama

한국에 돌아와 금방 만났던 쩡니를 오랜만에 오늘 또 만났다. 우리 전시를 보러오겠다고 서툰 솜씨로 차를 끌고 온 쩡니. 아기 엄마가 된 쩡니는 일찍부터 나와서 일찍 집으로 돌아갔다. 나도 덕분에 오랜만에 정오가 되기 전에 집에서 나서 약속 장소에 갔다. 몇 년 전부터 가고 싶었던 가타쯔무리에 드디어 다녀왔다. 열한 시 반에 도착했는데 줄이 꽤 많이 있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팬데믹 시대에도 이렇게 줄이 길거라고 예상은 못 했던 것 같다. 역시 한결같이 인기가 많은 곳인가보다. 기다리고 있으니 쩡니가 도착을 했다. 함께 기다리며 메뉴를 골랐다. 우리는 둘 다 냉우동을 골랐다. 쩡니는 차가운 국물에 따뜻한 면의 우동, 나는 차가운 국물에 차가운 면의 우동. 쫄깃하고 시원한 우동이 먹고 싶었다. 오키나와에 갔을 때 먹었던 그 맛을 떠올리며. 30분을 기다리고 나니 들어갈 수 있었다. 내부는 작았지만 깔끔하고 심플하고 귀여웠다. 노란색 벽과 나무 테이블들.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 네 팀이 들어갈 수 있는 내부였다. 오키나와 말고 일본에 가본 적은 없지만, 일본에 온 것 같기도 하고, 로마에서 갔던 식당이 떠오르기도 했다. 노란색 벽이 있는 식당이었다. 미리 주문해두었던 음식이 나왔다. 내려주신 우동에서 김이 나고 있었다. 그래서 난 이게 쩡니 것인가 했는데 이게 내 것이라고 했다. 나는 갸우뚱했지만 차가운 국물일 거야 하고 한 숟갈 떠서 먹었는데 따뜻한 국물이었다. 이상하구나 하고 쩡니와 말했다. 분명 잘못 주신 것 같아서 그냥 먹을까 하다가 궁금해서 여쭈어보았다. 내가 잘못 알았던 것일까 하고. 그런데 내가 손을 들고 이야기하니 우리 바로 앞에 왔던 팀이 우리랑 바뀐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두 분은 모두 따뜻한 우동을 시키셨고 우리는 모두 차가운 우동을 시켰는데 완전히 뒤바뀌어 버린 메뉴였다. 이미 손을 댔으니 어쩔 수 없어서 그냥 먹기로 했다. 처음 방문한 가타쯔무리에서의 혼동. 아쉬었지만 맛있게 먹었다. 분명 이 혼동과 만남에도 어떤 인연들이 얽혀있던 것이겠지. 쩡니는 먹을수록 더 맛있고 더 먹고 싶어지는 맛이라고 했다. 우리는 금세 다 먹었다. 다음에 와서 다시 냉우동을 먹어볼 생각에 또 설렌다. 예전엔 명지대가 참 나에게 먼 곳이고 나랑 인연이 없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연희동으로 이사 오게 되니, 우리집에서 가타쯔무리에 털레털레 걸어서 올 수도 있게 된 것이 신기하고 왠지 우쭐하다. 예전에 알던 누군가가 계속 떠오르기도 하고.. 

식사를 마치고는 카페에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스태픽스가 생각나서 쩡니에게 말했다. 쩡니는 운전이 아직 서툴다며 먼저 길을 살펴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차를 타고 이동했다. 많이 헤맸다. 돌아 돌아 스태픽스에 도착했고, 주차하는데도 아주 조금 헤매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스태픽스에서 커피와 파운드케익을 주문해서 먹었다. 갑자기 바람이 불고 날이 서늘해져서 옷을 여미고 안에 들어갔다. 우리는 쉴새 없이 이야기했다. 

쩡니랑 나랑은 아주 비슷하면서도 다른 부분을 가진 친구다. 우리는 처녀자리다. 공통점이 나오면 '처녀자리가 그런가 봐'하고 서로 웃고 신기해하곤 한다. 무언가 그런 점에서 위로를 받기도 하는 것 같고, 처녀자리라서 그런 거구나 하고 안심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쩡니는 나윤이 이야기를 많이 했다. 쩡니의 세상은 많이 변했다. 박물관에서 일하던 쩡니의 모습도 여전히 있지만 나윤이와 함께하는 쩡니 엄마의 모습도 새로 생겨났다. 그 모습을 보는 것이 나로서는 신기하고 재미있다. 결혼과 육아는 나의 삶과는 거리가 먼 편이지만,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의 삶을 듣고 나누는 것은 재밌다. 때로 오지와 내가 고양이 둘과 사는 것이 아기를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낄 때도 있다. 거의 같은 것 같았다. 한참 이야기를 하다 보면 금방 시간이 지나가 있다. 오늘 나윤이는 쩡니 어머니께서 잠시 돌봐주신다고 해서 쩡니는 일찍 들어갈 계획이었다. 

우리는 마지막 코스 1984로 향했다. 전시를 보러 온 것이니까. 거창한 전시는 아니지만 찾아와주는 친구들에게 너무나 감사했다. 사실 나는 내가 하는 것들이 참 보잘것없다고 느낄 때가 많은 편이라 찾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많이 부끄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쩡니는 언제나의 쩡니처럼 차분하게 쩡니만의 시선으로 우리의 작업을 살펴보았다. 그런 쩡니 옆에 서 있으니 마음이 든든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내 작업에 대해서 쩡니에게도 들려주었다. 쩡니는 우리 책을 모두 사주었다. 오지와 나에게 전시를 축하한다며 와인도 선물해주었다. 나는 항상 쩡니를 만나면 받기만 하는 느낌이 든다. 함께 대학을 다닐 때부터 늘 그랬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벌써 십 년도 넘은 친구 사이가 된 것이네. 참 새삼스럽게 놀랍다. 그때에도 쩡니는 늘 마음이 넓고 재미있고 따뜻한 친구였다. 나는 많이 힘들어하고 많이 기뻐하고 그렇게 청승을 많이 떠는 편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많이 차분해진 것 같다. 비로소 처녀자리가 된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쩡니는 금방 집으로 돌아갔다. 너무 사랑하는 쩡니. 내가 받은 사랑과 따스함을 갚으려면 더 열심히 작업을 해야 한다.

집에 돌아가 잠시 쉬었다. 오지는 이불 위에 미셸과 누워서 자고, 나는 오지 이불 위에 까미유와 함께 누웠다. 까미유는 추욱 늘어져서 편안하게 잠을 잤다. 양치질을 해주려고 시도했지만, 소리에 깨어나서 실패했다. 대신 까미유는 치약을 맛있게 먹었다. 금방 또 나갈 시간이 되어서 다시 채비를 하고 나섰다. 해는 많이 내려왔고 기분 좋게 가좌역으로 갔다.

정말 오랜만에 압구정엘 갔다. 본디 잘 찾지 않는 동네기도 했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처음 가는 것이었으니 정말 오랜만이었다. 준형이랑 케빈을 만났다. 케빈이랑은 프랑스에 갔던 초기 때만해도 대화를 자주 하곤 했는데, 요즈음은 인스타에서도 보이질 않고 대화가 끊겼었다. 일부러 인스타그램을 떠난 것 같기는 했다. 나도 늘 sns는 우리를 괴롭고 슬프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케빈은 그렇게 자신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들을 떠나 자신만의 차분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니 너무 반갑고 즐거웠다. 야채 튀김들도 너무 맛있었고 말이다. 잊을 수 없는 커다란 나무 테이블, 튀김을 모두 세 등분으로 똑같이 잘라주시던 셰프님이 계시던 식당이었다. 하이볼도 마시고 기분이 좋아졌다. 적게 먹었는데도 배가 부른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맛있고 좋았다. 아직 이른 저녁이었기 때문에 근처 바에 가서 한 잔씩 더 하고 돌아가기로 했다. 화이트와인을 마셨다. 음악이 아주 크게 나오는 바였는데 그런 곳에 정말 정말 오랜만에 가보는 것이라 우리는 모두 신나있었다. 크게 음악을 듣는 것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얼마나 우리가 놀고 싶은지,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지를 이야기했다. 바다가 생각나기도 하고, 여름이 생각나기도 하고 그랬다. 우리는 음악에 대해서, 소비에 대해서 또 디스토피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나는 계속해서 참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 것이었지 멋진 하는 생각했다. 몇 달 동안 칩거하며 지내왔는데, 이런 것이 인간에게는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팬데믹을 맞이하면서 생활방식이 많이 변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인간은 다른 인간을 만나서 마음을 나누는 것이 그의 존재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오늘은 많이 기분이 좋았다. 선생님을 만나러 가면 이 기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이번 주는 내가 참 기분이 좋았다고. 다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즐거워졌다고. 다음 만남이 기대가 된다고.

하루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고 재미있는 것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일기를 쓰기 시작하니까 더 하루가 재밌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분명 일기를 쓰기 전까지는 내 하루가 어두웠던 것 같은데 말이다. 아니면 정말 칼리가 말했던 것처럼 지난주에 죽음을 거치고 이번 주에 새로 태어나는 시기를 겪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정말 그런 가보다. 정성스럽게 먹고, 정성스럽게 잠을 자고, 정성스럽게 사람들을 사랑한다. 막연한 두려움들이 작아질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해본다. 오늘은 아무튼 그렇다. 어제의 나는 죽고 싶었을지라도 오늘은 모든 것이 즐겁다.

오늘 일기를 쓰면서 듣는 노래는 panorama다. 글을 쓸 때에는 같은 곡을 반복해서 듣는다. 그래서 오늘의 제목은 panorama라고 적어보았다.

말은 언제나 마음을 보태니까요.







화요일, 4월 27, 2021

just before dawn


바다가 있는 도시들에 있는 보자르들에 지원했다. 고민 끝에 마르세유 보자르를 선택했다. 이 선택들이 있기 전, 파리에서 지내는 동안 샀던 마르세유 타로 카드는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오늘 젬마가 참 내가 영적인 도시에서 지내다 왔다며 신기해하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그 선택이, 내가 산 마르세유 타로가, 그리고 마르세유에서 내가 느낀 황홀경들이, 모두 다 정말이지 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마르세유는 영적인 곳일까.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내가 수피의식을 했던 밤을 다시 읽었다. 어찌 나는 눈물을 흘렸을까. 어찌 그곳에서 나는 그렇게 빙빙 돌았을까. 어찌 마르세유에서 나는 강강술래를 다시 생각했을까. 어찌 배꼽을 보았을까.

그래서 spirituel 이라는 단어를 검색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에 흘러나오고 있던 음악에 드디어 감각이 열렸다.

espoir

어제 너무 알찬 하루를 보낸 덕인지 조금 늦잠을 잤다. 꿈도 무지 많이 꿨다. 오늘도 아주 화려하고 바쁜 꿈을 꿨다. 잠결에 메모를 해두었는데 알아볼 수 없는 말들이다. 그나마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남색 코르덴 치마 괴물이 쫓아왔다는 것과 핑크색 하늘이 나왔다는 것. 모든 것이 조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았던 것 같다. 나는 종종 이렇게 시각적으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곤 한다. 그 외 이런 저런 내용이 적혀있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느긋하게 일어나서는 요리를 했다. 냉장고에 채소가 가득하다. 엄마가 보내 준 두릅과 명이나물이 한가득, 우리가 2주에 한 번씩 어글리어스에서 받는 유기농 채소들도 가득하다. 부지런히 먹어야 한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몇 가지 동력 중 하나다. 두릅과 파프리카 가지를 함께 볶았다. 예쁘고 맛있는 야채 볶음을 만들어 오지와 열심히 먹고 오지는 다복이를 보러, 나는 윤슬이를 만나러 1984로 향했다.

자전거를 타고 1984에 도착했다. 고맙게도 윤슬이는 1984에서 하는 우리의 전시를 보러 타로 스승과 동행한 것이었다. 젬마님께서 가장 먼저 1984에 도착해계셨다. 나와는 처음 만나는 자리였기 때문에, 아직 도착하지 않은 윤슬이에게 물어 인상착의를 확인한 뒤 젬마님을 찾아 인사했다. 서로를 대충 짐작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만나서 젬마님이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어오셔서 열심히 답을 하고 있었다. 6 8이라는 이름의 기원에 대하여, 1984에 전시하고 있는 작업에 대하여, 우리가 하는 활동들에 대하여. 그리고 윤슬이와는 어떤 인연으로 만났는지 등에 대한 수다를 떨다 보니 오지가 도착을 했고, 뒤이어 윤슬이도 도착을 했다. 테라스 자리에 넷이 앉아 당연스럽게 우리는 공통의 관심사에 대해서 신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카식레코드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하다가 윤슬이와 젬마님은 타로 카드를 꺼냈다. 내가 며칠 전에 우연히 알게 되어 갖고 싶었던 집시 타로를 젬마님이 가져오셨다. 너무 신기했다. 윤슬이가 가져온 카드들은 그림이 너무 예뻤다. 사실 전에 윤슬이가 우리에게 속성으로 카드의 의미를 가르쳐주었는데 적어둔 메모를 보지 않으면 아직도 리딩은 불가능이다. 막상 혼자서는 카드를 잘 뽑게 되지 않았다.

우리는 카드를 뽑아보기로 했다. 질문이 막상 생각나지는 않았다. 질문 없이 그냥 카드를 뽑았다. 내가 뽑은 카드는 신기하게도 새로운 시작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별자리 운세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보아왔기에 신기했다. 나에게 커리어 적인 면에 있어서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길에는 희망이 있고, 어쩌면 감사할 무언가-누군가가 생길 것이라는 것. 처음 카드를 뽑은 이후부터는 이야기와 키워드를 발견하는 과정이 너무나 재미있어서 우리는 계속 카드를 뽑아가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내 내면에서 일어나는 두려움과 괴로움 또한 마주했다. 나를 의심하지 않고 믿으라는 이야기. 내가 실제로 끊임없이 나 자신과 싸우고 있는 내용이다.

전에 별자리운세를 블로그에 올려주시는 한 수행자에게 영혼의 나이를 물어본 적이 있다. 나의 영혼은 오래된 영혼이라고 했다. 무던히도 애쓰던 시간을 통해 하나의 카르마를 완성한 것으로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의 생에 내가 가진 과제에 대해서도 덧붙여주셨다. 나 자신을 제외한 어떤 장애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 말인즉슨 모든 것은 나의 선택에 달렸다는 것이다. 모든 도전을 선택할 수도, 어떤 도전도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 참 안심이 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무서웠다. 정말이지 나는 늘 나 자신과 씨름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또 뽑은 타로카드에서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내 생의 사명은 나 자신을 구제하는 것이란다. 나는 조금 더 거시적이거나 거창한 미션이 나오진 않을까 기대했지만 결국에 나에게 그 거창한 우주에 관한 이야기는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인가보다. 언제나 나의 내면으로 귀결되는 이야기들. 외부에서 겪는 이슈들도 결국엔 모두 나를 반추하는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된다. 적어도 나의 생에서는 말이다. 내 내면을 정화하는 일, 끝없이 피어나는 나 자신에 대한 의심을 걷어내는 것. 사실 이번 주에 들어서면서 이를 위해 수행을 시작하기도 했다. 매일 같이 일기를 쓰는 것. 그것이 나의 새로운 작업이자, 내 생의 사명을 위한 작업 중에 하나인가보다. 매일 밤 오늘 있었던 일들을 반추하며 내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무엇을 느꼈는지, 내 곁에는 누가 있었는지를 선명하게 다시 바라보는 것이다. 사실 그렇게 하다 보면 좋았던 일도 좋지 않았던 일도 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기록이 되어있었다. 내가 해결하지 못했던 이야기도, 혹은 참았던 감정도 다시 정리하고 정화할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것이겠지.

몇 시간 동안이나 타로카드를 뽑고 이야기를 나누고 왔더니 적잖이 피곤하긴 한 것 같다. 정말 너무너무 즐겁고 신기한 시간이었다. 이미 많은 에너지를 나누고 와서 그런지 오늘은 글쓰기에 집중이 잘 되질 않는다. 하품 쩍 쩍. 일찍 자야겠다. 내일도 만남이 많다.

월요일, 4월 26, 2021

월암

일어나서 고양이들 구경하다가 어제 사온 꽈배기를 먹었다. 그리고 이안이에게 줄 액자를 잘 챙겨서 이안이네 집으로 향했다. 집에 무사히 액자를 전달했다. 나의 거꾸로 된 야자수 사진이다.



이안이 생일 선물로 크게 프린트해서 액자에 넣어 줬다. 마르세유에서 집 근처 공원에서 산책하다가 찍은 사진이다. 어쩌다가 필름을 스캔하고 보니 방향이 뒤집어져 있었는데 그 모양이 마음에 들어 그냥 거꾸로 된 야자수로 만들어버렸다. 아무튼 우리는 이안이에게 선물들을 전달하고 이안이가 내려 준 커피를 마셨다. 꿀과 아몬드브리즈를 넣어서 달달하게. 어쩐 일인지 아침부터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준비를 마치곤 성혜 작업실로 갔다. 조금 지각했다. 오늘은 마지막 수업이었다. 완전한 끝은 아니고 잠시 한 달 혹은 두 달 정도의 방학 기간을 가지기로 했다. 성혜와 함께 하는 도자기 워크숍은 내가 규칙적으로 누릴 수 있는 큰 즐거움이었다. 재밌는 일이 도무지 생기지 않고 무기력 하던 때에도 일주일에 한 번은 뿌듯하고 즐거울 수 있었다. 오늘은 또 새롭게 만들어 낸 작업물들을 채색했다. 나의 호수 괴물 같은 물병은 연보라색과 흰색 등의 유약들을 섞어서 칠해봤는데 어떻게 나올지 전혀 예상할 수가 없다. 두 개의 파이프들에는 청동 유약을 써보았다. 그리고 드디어 내게도 생긴 그릇에는 베르베르족의 문양을 넣어서 만들었다. 빨리 완성된 모습을 보고 싶다. 도자기 작업이 이렇게 성취감이 클 줄은 몰랐다. 

기물들을 다 색칠하느라 시간이 오늘은 더 오래 걸렸다. 항상 성혜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느리고 우왕좌왕한 우리들을 성혜는 항상 차분하게 이해해주고 기다려준다. 

도자기 수업을 마치고 나면 항상 미칠듯한 배고픔에 우리는 이성을 잃고 만다. 오늘도 우리는 주린 배를 움켜잡고 식당을 찾기 시작했다. 제1의 희망 메뉴는 피자였다. 가는 길에 날씨가 너무 좋아서 테라스가 있는 식당을 갑자기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서촌에 있는 한옥으로 된 피자집을 가게 되었다. 메뉴가 참 많았다. 메뉴가 너무 많은 집은 경계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인간은 항상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역시나 만족스럽지 못한 식사를 우리는 하고 그저 배고픔만 면했다. 

다시 이안이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하늘이 아름답게 변하고 있었다. 구름들이 뭉게뭉게 피어있었고 붉고 큰 달이 보였다가 사라졌다가 했다. 올해 가장 큰 슈퍼문이 뜨는 날이다. 달을 보면서 이안이가 월암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백사실 계곡에 있는 월암에서 달을 보지 않고서는 달을 보았다고 할 수가 없다나. 어두워지면 백사실 계곡으로 가서 달을 보기로 했다. 너무 깜깜하고 무서울 것 같았지만 우리는 셋이니까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이안이네 집에 돌아가서 우리는 아침에 내려둔 액자를 어디에 걸어야 할까 한바탕 집을 뒤집었다. 당장 못질을 할 수도 없고 액자가 워낙에 커서 결국에 오늘 걸지는 못했지만 사진으로 그 남기고 싶은 마음에 우리는 액자를 들고 방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소파에 앉은 액자. 창문 아래에 선 액자. 화분들 뒤로 선 액자... 침대 머리맡 벽에 걸린 모습이 가장 잘 어울렸다. 우리는 어수선한 집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치우거나 더 헝클어트리면서 이 일을 했다. 결국엔 사진을 찍기 위하여 침대 머리맡 위에 내가 손수 액자를 들고 서 있어야 했다. 인스타에 올릴 사진은 일단 마련했다. 너무 너무 너무 웃기고 힘들었다.

그렇게 수선을 떨다 보니 시간이 지나고 밤이 왔다. 밤이 되니 날씨가 서늘해져서 이안이가 따뜻한 옷들을 꺼내주었다. 따뜻하고 두꺼운 바지와 티셔츠를 입고선 채비를 마쳤다. 무엇이 그렇게 웃긴지 우리는 서로의 옷을 입은 꼴을 보면서도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산에서 이상한 사람이 나타날까 봐 무서워서 무기도 준비했다. 흉기를 들까 고민을 하다가 이안이가 그런 것보다는 뭔가를 뿌려야 한다면서 분무기에 락스물을 담아서 챙겼다. 정말이지 웃겼다. 

따가운 물(탄산수)도 챙기고 몰티져스도 챙기고 달을 잘 보기 위해 안경도 챙기고 그렇게 집을 나섰다. 이안이의 두꺼운 옷들을 입고 나오니 차가운 밤에도 참 포근하고 좋았다. 전에도 한 번 이안이와 갔던 길을 따라 백사실 계곡으로 향했다. 절이 나오고 예쁜 조명이 켜진 계단을 지나면 산을 향하는 길이 나온다. 거기서 부터는 아무런 불빛이 없다. 어두운 길을 우리는 핸드폰 플래시만 사용하며 걸어갔다. 막상 많이 무서웠다. 오늘은 하늘에 구름이 많아서 달이 흐릿하게 빛나고만 있었다. 달을 찾아서 달을 따라서 앞으로 나아갔다. 호기롭게 월암에 가서 만월을 보자고 말하던 이안이는 우리 중 가장 겁을 먹었다. 길을 가다가 우리는 멈추어 섰고, 큰 바위 위에서 사진을 찍다가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좀 많이 아쉬워서 더 들어가 보기로 했다. 정말 더 어둡고 무서웠다. 다음엔 꼭 더 많은 사람을 데리고 오기로 했다. 더 용감하고 센 친구들을.. 아무튼 길을 따라서 가다 보니 구름이 걷혔다가 다시 나타났다가 하면서 달이 모습을 나타냈다. 구름이 지나가면 정말 선명하고 밝고 큰 달이 나타났다. 달에 있는 분화구들이 너무 잘 보였다. 우리는 한참 동안 하늘을 올려다보고 나뭇가지들 사이 하늘로 보이는 달을 바라보았다. 달 사진을 이백 개는 찍은 것 같다. 무서워서 더 올라가지는 못하고 진짜로 돌아가기로 했다. 돌아가는 길에 계속 뒤를 돌아보면 더 구름이 지나가 더 선명해진 달을 구경하느라 내려가는 길이 정말 길었다. 

다시 산이 시작되는 길에 있는 절에 도착하니 하늘은 더 밝아져 있었다. 구름이 한차례 다 지나가고 있었다. 라일락 향기가 가득한 계곡 앞에 서서 우리는 계속해서 달구경을 했다. 산에서 (두려움에) 덜덜 떨며 달을 보던 것과는 달리 환한 동네의 불빛이 보이고, 절이 있고, 계곡물 흐르는 소리로 가득 찬 자리에서 안심하여 달구경에 심취했다. 구름이 다 지나갔다. 계곡 물이 흐르는 웅덩이 앞에 가니 물 위에 달빛이 비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우리는 그 웅덩이가 있는 바위에 앉아서 한참동안 물에 비친 달과 하늘에 밝게 뜬 달을 구경했다. 세상이 정말 밝았다. 어떤 장면에서 달은 꼭 태양 같았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보고 있던 달도 더 옛날의 달이었겠구나. 물에 비친 달은 또 더 옛날의 달. 그렇게 우리는 계속해서 달의 뒤꽁무니를 쫓는 아이들. 오지는 우리 자신을 보며 영화 '쏘아 올린 불꽃 아래서 볼까 옆에서 볼까'를 떠올렸다. 더 둥글고 밝은 달을 보기 위해 모험을 하는 아이들. 언제까지고 이렇게 유치하고 재미있는 모험을 하고 싶어. 오밤중에 따뜻한 옷들을 차려입고 물과 초콜릿, 무기를 챙겨서 월암에 오르는 일. (월암에서 달을 보아야 한다고 가르쳐 주신 그 백사실 계곡 지킴이 할아버지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정말 정말 많이 웃었어. 슈퍼문과 우리들. 그리고 월암. 



일요일, 4월 25, 2021

매일같이 일기를 쓰기로 다시 다짐했다.

어제와 오늘은 평소보다 좀 일찍 일어났다. 이런 저런 처방들의 효과가 나타나는 걸까? 열두시가 넘을 때까지 눈뜨기가 힘들고 몸을 일으키기가 힘들었는데 이번주는 조금 더 쉬워진 것 같다. 일어나서 약을 먹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다리가 아플까봐 정맥순환에 좋은 약도 오랜만에 챙겨먹었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다리가 많이 뻐근하고 아플 것 같다. 약을 꾸준히 먹어봐야겠다. 점점 먹는 약이 많아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가 들 수록 약을 더 많이 먹게 되는 걸까. 우리 엄마만 봐도 말이다. 나도 그렇게 될까? 지금도 이미 이렇게 피곤한데 그 많은 것들을 챙겨먹을 생각을 하면 머리가 아프다.

마이클 식당은 오늘도 바빴다.
다시 일일 확진자수가 많이 늘었지만, 날씨도 좋아졌고, 어느 정도 일상을 회복했으니 사람들이 예전처럼 집에만 머무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다들 많이들 나와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친구들을 만난다. 나만 봐도 4월 들어 외출이 정말 잦았다. 친구들도 꽤 많이 만난 것 같다. 어제도 오늘도 좀 바빠서 힘들고 지쳤다. 집에 가는 길에는 조금이라도 힘을 내려고 씨앗호떡을 사 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콩고물을 묻혀주는 가게. 오지에게 줄 씨앗호떡과 꽈배기도 샀다. 주인 아저씨는 내가 고맙다고 하니까 자기가 고맙다고 하면서 웃어주었고 떠날 때도 남은 주말 즐겁게 보내라며 인사해주셨다. 참 그 가게는 주인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좋다. 그래서 그곳이 좋아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 콩고물이 가장 큰 매력이긴하다.

저녁엔 갑자기 전에 당근마켓에서 옷을 사겠다고 연락을 주고 받았던 어떤 사람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오늘 사천교에 오겠다고 했다. 8시에 약속을 잡았다.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는 길에 오지에게 그 사람에게 팔 옷을 찾아달라고 미리 부탁했는데 참 싫어하는 눈치였다. 그러고 집에 와서도 나는 옷도 너무 더럽고 피곤하니 장롱 위에서 옷 좀 꺼내달라고 부탁했는데 동생도 피곤한 하루를 보낸터라 짜증을 부렸다. 그 반응에 순간 너무 짜증이 났다. 그래서 물론 나도 짜증을 냈다. 그게 그렇게까지 화가 날 일이냐고. 그게 그렇게까지 짜증이 날 일이냐고. 그 말들이 오지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결국엔 내가 다른 곳에 두었던 옷들을 찾아냈고 들고 나갔다. 나오자 오지는 내게 카톡으로 할 말을 보냈다. 나는 기분이 안좋아도 할 말이 없다. 내 말이 맞는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사천교까지 걸어가는 길이 많이 고통스러웠다. 몸도 아프고 피곤했고… 짜증을 내던 그 에너지가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아마 그 어둠 자체였을 것이다. 그래서 성수슈퍼의 깡패가 날 피했던 것일까? 평소같으면 내게 먼저 아는 척을 하고 내 다리를 빙그르르 돌며 애교를 부렸을 텐데 내가 아는 척하면서 손을 뻗자 깡패는 도망갔다. 순간 나는 직감적으로 그게 나의 이 어두운 오라때문인 것 같았다. 그런 적이 없는 깡팬데 말이다. 가는 내내 나는 죽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왜 사는 지는 더이상 묻지 않는다. 하지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자주 한다. 그러다가 든 생각은 정말로 그건 안좋은 생각일까? 자살을 하는 영혼은 다음 생에도 또 자살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말로 그러면 내 영혼은 구제받지 못하고 계속 자살만 하게 될까? 그 구렁 속에 빠질까? 그런데 억울하다. 이미 생이 지옥이기에 떠난 사람들이 다시 또 지옥을 겪어야 하는 것이 말이 되는걸까?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떠나간 친구들이 떠오른다. 고통에 사로잡혀 있었을 그 마음이 안쓰럽고 불쌍해. 그냥 무조건 행복했으면 좋겠어. 더이상 힘든 것은 겪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들을 떠올릴 때면 카르마라는 것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윤회라는 것도. 그냥 죽으면 아무 것도 없는 ‘무’의 상태였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우리가 지옥처럼 느끼는 생의 부분들도 모두 카르마로 인해 겪는 경험이겠지.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가끔 아니 자주 내 말과 생각들에는 어폐가 있다. 그리고 나는 무의식적으로도 의식적으로도 우리 모두의 카르마와 겹겹이 쌓인 생들을 느끼고 보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실은 그런 모든게 없다고 해도 서운할 일도 전혀 없을 것이다) 아무튼 이런 생각을 게속 하다가 사천교에 도착했다. 사천교에 도착하기 전에 나는 오지에게 내가 잘못했다는 말만 짧게 보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만나서 옷을 전달해주고 아주 느린 걸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일기를 쓰기까지는 시간이 엄청 오래 걸렸다. 집에 들어와서 씻고 밥을 먹을 생각이 없었는데 오지가 달래장을 만들었다기에 집에 쌓인 저 야채들을 다 먹어야할 것 같아서 밥을 먹었다. 시금치된장국도 먹었고 파프리카와 가지를 가볍게 볶아서 달래장과 함께 비벼먹었다. 밥을 다 먹고 오지가 사온 마카롱도 먹었다. 참 맛있더라. 초코 마카롱 하나는 내일 먹으려고 남겨두었다. 오늘 이상하게 배가 계속 부른 것 같다. 그러고 앉아서 까미유랑 같이 멍 좀 때리고.. 약도 챙겨먹고. 일기를 쓰겠다고 컴퓨터를 켜고 자리에 앉기는 했는데, 오랫동안 뭘 한 것은 없었다. 인터넷으로 이런 저런 잡다한 이야기들을 홀린듯이 둘러보았다. 소향의 보컬이 전세계 보컬커뮤니티를 장악했다는 이야기를 보고는 참 관심도 없었지만 소향의 노래를 들었다. 막상 보고나니 너무나 놀랍고 신기했다. 그 노래는 내가 어렸을 적에 많이 불렀던 노랜데, 내가 그 때 그렇게 밥도 안먹고 노래를 했던 시절부터 주욱 노래를 했다면 나도 그런 실력을 갖게 되었을까 궁금해졌다. 오랜만에 그 시절을 생각했고, 지금 이렇게 그 시간을 짧게나마 일기로 쓰니까 그 지나온 시간이 참 길게 느껴진다. 내가 너무나 많이 변한 것 같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너무나 다른 삶. 나는 밝았지만 시궁창같았던 삶. 이제 삶이 시궁창같지는 않지만 내가 어둡다. 무엇이 더 낫지? 또 이런 쓸데 없는 생각 ㅎ 결국엔 이 고리가 하나라도 없으면 내가 안되는 구조인가. 아무튼.. 그것들을 다 보고 나서 겨우 일기쓰기를 시작했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연결하는데 애를 좀 먹다가 결국 그냥 포기하고 맥북스피커로 음악을 틀어놓고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Rock bottom riser. 지금까지 제목이 rock bottom river인줄 알고 있었는데 riser였네. 아무 것도 쓸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나 길게 쓰고 있다. 오늘 나의 주파수는 이 음악인가보다. 매일같이 이렇게 일기를 쓴다면 참 좋겠네. 오늘 하루를 돌아보니 이상하게 참 하루가 길었다는 생각이 드네. 한 것 없이 지나간 하루에도 수많은 회상이 수많은 괴로움이 있었네. 즐거움은 무엇이었지. 까미유와 미셸. 흠 아무 생각없이 온 몸으로 따스하고 깨끗한 햇빛을 듬 뿍 ! 받고 싶다. 그러면 정말이지 너무 너무 너무 너무 행복할 것 같다.

목요일, 4월 22,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