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돌아와 금방 만났던 쩡니를 오랜만에 오늘 또 만났다. 우리 전시를 보러오겠다고 서툰 솜씨로 차를 끌고 온 쩡니. 아기 엄마가 된 쩡니는 일찍부터 나와서 일찍 집으로 돌아갔다. 나도 덕분에 오랜만에 정오가 되기 전에 집에서 나서 약속 장소에 갔다. 몇 년 전부터 가고 싶었던 가타쯔무리에 드디어 다녀왔다. 열한 시 반에 도착했는데 줄이 꽤 많이 있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팬데믹 시대에도 이렇게 줄이 길거라고 예상은 못 했던 것 같다. 역시 한결같이 인기가 많은 곳인가보다. 기다리고 있으니 쩡니가 도착을 했다. 함께 기다리며 메뉴를 골랐다. 우리는 둘 다 냉우동을 골랐다. 쩡니는 차가운 국물에 따뜻한 면의 우동, 나는 차가운 국물에 차가운 면의 우동. 쫄깃하고 시원한 우동이 먹고 싶었다. 오키나와에 갔을 때 먹었던 그 맛을 떠올리며. 30분을 기다리고 나니 들어갈 수 있었다. 내부는 작았지만 깔끔하고 심플하고 귀여웠다. 노란색 벽과 나무 테이블들.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 네 팀이 들어갈 수 있는 내부였다. 오키나와 말고 일본에 가본 적은 없지만, 일본에 온 것 같기도 하고, 로마에서 갔던 식당이 떠오르기도 했다. 노란색 벽이 있는 식당이었다. 미리 주문해두었던 음식이 나왔다. 내려주신 우동에서 김이 나고 있었다. 그래서 난 이게 쩡니 것인가 했는데 이게 내 것이라고 했다. 나는 갸우뚱했지만 차가운 국물일 거야 하고 한 숟갈 떠서 먹었는데 따뜻한 국물이었다. 이상하구나 하고 쩡니와 말했다. 분명 잘못 주신 것 같아서 그냥 먹을까 하다가 궁금해서 여쭈어보았다. 내가 잘못 알았던 것일까 하고. 그런데 내가 손을 들고 이야기하니 우리 바로 앞에 왔던 팀이 우리랑 바뀐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두 분은 모두 따뜻한 우동을 시키셨고 우리는 모두 차가운 우동을 시켰는데 완전히 뒤바뀌어 버린 메뉴였다. 이미 손을 댔으니 어쩔 수 없어서 그냥 먹기로 했다. 처음 방문한 가타쯔무리에서의 혼동. 아쉬었지만 맛있게 먹었다. 분명 이 혼동과 만남에도 어떤 인연들이 얽혀있던 것이겠지. 쩡니는 먹을수록 더 맛있고 더 먹고 싶어지는 맛이라고 했다. 우리는 금세 다 먹었다. 다음에 와서 다시 냉우동을 먹어볼 생각에 또 설렌다. 예전엔 명지대가 참 나에게 먼 곳이고 나랑 인연이 없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연희동으로 이사 오게 되니, 우리집에서 가타쯔무리에 털레털레 걸어서 올 수도 있게 된 것이 신기하고 왠지 우쭐하다. 예전에 알던 누군가가 계속 떠오르기도 하고..
식사를 마치고는 카페에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스태픽스가 생각나서 쩡니에게 말했다. 쩡니는 운전이 아직 서툴다며 먼저 길을 살펴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차를 타고 이동했다. 많이 헤맸다. 돌아 돌아 스태픽스에 도착했고, 주차하는데도 아주 조금 헤매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스태픽스에서 커피와 파운드케익을 주문해서 먹었다. 갑자기 바람이 불고 날이 서늘해져서 옷을 여미고 안에 들어갔다. 우리는 쉴새 없이 이야기했다.
쩡니랑 나랑은 아주 비슷하면서도 다른 부분을 가진 친구다. 우리는 처녀자리다. 공통점이 나오면 '처녀자리가 그런가 봐'하고 서로 웃고 신기해하곤 한다. 무언가 그런 점에서 위로를 받기도 하는 것 같고, 처녀자리라서 그런 거구나 하고 안심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쩡니는 나윤이 이야기를 많이 했다. 쩡니의 세상은 많이 변했다. 박물관에서 일하던 쩡니의 모습도 여전히 있지만 나윤이와 함께하는 쩡니 엄마의 모습도 새로 생겨났다. 그 모습을 보는 것이 나로서는 신기하고 재미있다. 결혼과 육아는 나의 삶과는 거리가 먼 편이지만,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의 삶을 듣고 나누는 것은 재밌다. 때로 오지와 내가 고양이 둘과 사는 것이 아기를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낄 때도 있다. 거의 같은 것 같았다. 한참 이야기를 하다 보면 금방 시간이 지나가 있다. 오늘 나윤이는 쩡니 어머니께서 잠시 돌봐주신다고 해서 쩡니는 일찍 들어갈 계획이었다.
우리는 마지막 코스 1984로 향했다. 전시를 보러 온 것이니까. 거창한 전시는 아니지만 찾아와주는 친구들에게 너무나 감사했다. 사실 나는 내가 하는 것들이 참 보잘것없다고 느낄 때가 많은 편이라 찾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많이 부끄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쩡니는 언제나의 쩡니처럼 차분하게 쩡니만의 시선으로 우리의 작업을 살펴보았다. 그런 쩡니 옆에 서 있으니 마음이 든든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내 작업에 대해서 쩡니에게도 들려주었다. 쩡니는 우리 책을 모두 사주었다. 오지와 나에게 전시를 축하한다며 와인도 선물해주었다. 나는 항상 쩡니를 만나면 받기만 하는 느낌이 든다. 함께 대학을 다닐 때부터 늘 그랬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벌써 십 년도 넘은 친구 사이가 된 것이네. 참 새삼스럽게 놀랍다. 그때에도 쩡니는 늘 마음이 넓고 재미있고 따뜻한 친구였다. 나는 많이 힘들어하고 많이 기뻐하고 그렇게 청승을 많이 떠는 편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많이 차분해진 것 같다. 비로소 처녀자리가 된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쩡니는 금방 집으로 돌아갔다. 너무 사랑하는 쩡니. 내가 받은 사랑과 따스함을 갚으려면 더 열심히 작업을 해야 한다.
집에 돌아가 잠시 쉬었다. 오지는 이불 위에 미셸과 누워서 자고, 나는 오지 이불 위에 까미유와 함께 누웠다. 까미유는 추욱 늘어져서 편안하게 잠을 잤다. 양치질을 해주려고 시도했지만, 소리에 깨어나서 실패했다. 대신 까미유는 치약을 맛있게 먹었다. 금방 또 나갈 시간이 되어서 다시 채비를 하고 나섰다. 해는 많이 내려왔고 기분 좋게 가좌역으로 갔다.
정말 오랜만에 압구정엘 갔다. 본디 잘 찾지 않는 동네기도 했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처음 가는 것이었으니 정말 오랜만이었다. 준형이랑 케빈을 만났다. 케빈이랑은 프랑스에 갔던 초기 때만해도 대화를 자주 하곤 했는데, 요즈음은 인스타에서도 보이질 않고 대화가 끊겼었다. 일부러 인스타그램을 떠난 것 같기는 했다. 나도 늘 sns는 우리를 괴롭고 슬프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케빈은 그렇게 자신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들을 떠나 자신만의 차분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니 너무 반갑고 즐거웠다. 야채 튀김들도 너무 맛있었고 말이다. 잊을 수 없는 커다란 나무 테이블, 튀김을 모두 세 등분으로 똑같이 잘라주시던 셰프님이 계시던 식당이었다. 하이볼도 마시고 기분이 좋아졌다. 적게 먹었는데도 배가 부른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맛있고 좋았다. 아직 이른 저녁이었기 때문에 근처 바에 가서 한 잔씩 더 하고 돌아가기로 했다. 화이트와인을 마셨다. 음악이 아주 크게 나오는 바였는데 그런 곳에 정말 정말 오랜만에 가보는 것이라 우리는 모두 신나있었다. 크게 음악을 듣는 것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얼마나 우리가 놀고 싶은지,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지를 이야기했다. 바다가 생각나기도 하고, 여름이 생각나기도 하고 그랬다. 우리는 음악에 대해서, 소비에 대해서 또 디스토피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나는 계속해서 참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 것이었지 멋진 하는 생각했다. 몇 달 동안 칩거하며 지내왔는데, 이런 것이 인간에게는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팬데믹을 맞이하면서 생활방식이 많이 변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인간은 다른 인간을 만나서 마음을 나누는 것이 그의 존재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오늘은 많이 기분이 좋았다. 선생님을 만나러 가면 이 기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이번 주는 내가 참 기분이 좋았다고. 다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즐거워졌다고. 다음 만남이 기대가 된다고.
하루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고 재미있는 것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일기를 쓰기 시작하니까 더 하루가 재밌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분명 일기를 쓰기 전까지는 내 하루가 어두웠던 것 같은데 말이다. 아니면 정말 칼리가 말했던 것처럼 지난주에 죽음을 거치고 이번 주에 새로 태어나는 시기를 겪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정말 그런 가보다. 정성스럽게 먹고, 정성스럽게 잠을 자고, 정성스럽게 사람들을 사랑한다. 막연한 두려움들이 작아질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해본다. 오늘은 아무튼 그렇다. 어제의 나는 죽고 싶었을지라도 오늘은 모든 것이 즐겁다.
오늘 일기를 쓰면서 듣는 노래는 panorama다. 글을 쓸 때에는 같은 곡을 반복해서 듣는다. 그래서 오늘의 제목은 panorama라고 적어보았다.
말은 언제나 마음을 보태니까요.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