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서 고양이들 구경하다가 어제 사온 꽈배기를 먹었다. 그리고 이안이에게 줄 액자를 잘 챙겨서 이안이네 집으로 향했다. 집에 무사히 액자를 전달했다. 나의 거꾸로 된 야자수 사진이다.
이안이 생일 선물로 크게 프린트해서 액자에 넣어 줬다. 마르세유에서 집 근처 공원에서 산책하다가 찍은 사진이다. 어쩌다가 필름을 스캔하고 보니 방향이 뒤집어져 있었는데 그 모양이 마음에 들어 그냥 거꾸로 된 야자수로 만들어버렸다. 아무튼 우리는 이안이에게 선물들을 전달하고 이안이가 내려 준 커피를 마셨다. 꿀과 아몬드브리즈를 넣어서 달달하게. 어쩐 일인지 아침부터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준비를 마치곤 성혜 작업실로 갔다. 조금 지각했다. 오늘은 마지막 수업이었다. 완전한 끝은 아니고 잠시 한 달 혹은 두 달 정도의 방학 기간을 가지기로 했다. 성혜와 함께 하는 도자기 워크숍은 내가 규칙적으로 누릴 수 있는 큰 즐거움이었다. 재밌는 일이 도무지 생기지 않고 무기력 하던 때에도 일주일에 한 번은 뿌듯하고 즐거울 수 있었다. 오늘은 또 새롭게 만들어 낸 작업물들을 채색했다. 나의 호수 괴물 같은 물병은 연보라색과 흰색 등의 유약들을 섞어서 칠해봤는데 어떻게 나올지 전혀 예상할 수가 없다. 두 개의 파이프들에는 청동 유약을 써보았다. 그리고 드디어 내게도 생긴 그릇에는 베르베르족의 문양을 넣어서 만들었다. 빨리 완성된 모습을 보고 싶다. 도자기 작업이 이렇게 성취감이 클 줄은 몰랐다.
기물들을 다 색칠하느라 시간이 오늘은 더 오래 걸렸다. 항상 성혜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느리고 우왕좌왕한 우리들을 성혜는 항상 차분하게 이해해주고 기다려준다.
도자기 수업을 마치고 나면 항상 미칠듯한 배고픔에 우리는 이성을 잃고 만다. 오늘도 우리는 주린 배를 움켜잡고 식당을 찾기 시작했다. 제1의 희망 메뉴는 피자였다. 가는 길에 날씨가 너무 좋아서 테라스가 있는 식당을 갑자기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서촌에 있는 한옥으로 된 피자집을 가게 되었다. 메뉴가 참 많았다. 메뉴가 너무 많은 집은 경계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인간은 항상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역시나 만족스럽지 못한 식사를 우리는 하고 그저 배고픔만 면했다.
다시 이안이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하늘이 아름답게 변하고 있었다. 구름들이 뭉게뭉게 피어있었고 붉고 큰 달이 보였다가 사라졌다가 했다. 올해 가장 큰 슈퍼문이 뜨는 날이다. 달을 보면서 이안이가 월암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백사실 계곡에 있는 월암에서 달을 보지 않고서는 달을 보았다고 할 수가 없다나. 어두워지면 백사실 계곡으로 가서 달을 보기로 했다. 너무 깜깜하고 무서울 것 같았지만 우리는 셋이니까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이안이네 집에 돌아가서 우리는 아침에 내려둔 액자를 어디에 걸어야 할까 한바탕 집을 뒤집었다. 당장 못질을 할 수도 없고 액자가 워낙에 커서 결국에 오늘 걸지는 못했지만 사진으로 그 남기고 싶은 마음에 우리는 액자를 들고 방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소파에 앉은 액자. 창문 아래에 선 액자. 화분들 뒤로 선 액자... 침대 머리맡 벽에 걸린 모습이 가장 잘 어울렸다. 우리는 어수선한 집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치우거나 더 헝클어트리면서 이 일을 했다. 결국엔 사진을 찍기 위하여 침대 머리맡 위에 내가 손수 액자를 들고 서 있어야 했다. 인스타에 올릴 사진은 일단 마련했다. 너무 너무 너무 웃기고 힘들었다.
그렇게 수선을 떨다 보니 시간이 지나고 밤이 왔다. 밤이 되니 날씨가 서늘해져서 이안이가 따뜻한 옷들을 꺼내주었다. 따뜻하고 두꺼운 바지와 티셔츠를 입고선 채비를 마쳤다. 무엇이 그렇게 웃긴지 우리는 서로의 옷을 입은 꼴을 보면서도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산에서 이상한 사람이 나타날까 봐 무서워서 무기도 준비했다. 흉기를 들까 고민을 하다가 이안이가 그런 것보다는 뭔가를 뿌려야 한다면서 분무기에 락스물을 담아서 챙겼다. 정말이지 웃겼다.
따가운 물(탄산수)도 챙기고 몰티져스도 챙기고 달을 잘 보기 위해 안경도 챙기고 그렇게 집을 나섰다. 이안이의 두꺼운 옷들을 입고 나오니 차가운 밤에도 참 포근하고 좋았다. 전에도 한 번 이안이와 갔던 길을 따라 백사실 계곡으로 향했다. 절이 나오고 예쁜 조명이 켜진 계단을 지나면 산을 향하는 길이 나온다. 거기서 부터는 아무런 불빛이 없다. 어두운 길을 우리는 핸드폰 플래시만 사용하며 걸어갔다. 막상 많이 무서웠다. 오늘은 하늘에 구름이 많아서 달이 흐릿하게 빛나고만 있었다. 달을 찾아서 달을 따라서 앞으로 나아갔다. 호기롭게 월암에 가서 만월을 보자고 말하던 이안이는 우리 중 가장 겁을 먹었다. 길을 가다가 우리는 멈추어 섰고, 큰 바위 위에서 사진을 찍다가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좀 많이 아쉬워서 더 들어가 보기로 했다. 정말 더 어둡고 무서웠다. 다음엔 꼭 더 많은 사람을 데리고 오기로 했다. 더 용감하고 센 친구들을.. 아무튼 길을 따라서 가다 보니 구름이 걷혔다가 다시 나타났다가 하면서 달이 모습을 나타냈다. 구름이 지나가면 정말 선명하고 밝고 큰 달이 나타났다. 달에 있는 분화구들이 너무 잘 보였다. 우리는 한참 동안 하늘을 올려다보고 나뭇가지들 사이 하늘로 보이는 달을 바라보았다. 달 사진을 이백 개는 찍은 것 같다. 무서워서 더 올라가지는 못하고 진짜로 돌아가기로 했다. 돌아가는 길에 계속 뒤를 돌아보면 더 구름이 지나가 더 선명해진 달을 구경하느라 내려가는 길이 정말 길었다.
다시 산이 시작되는 길에 있는 절에 도착하니 하늘은 더 밝아져 있었다. 구름이 한차례 다 지나가고 있었다. 라일락 향기가 가득한 계곡 앞에 서서 우리는 계속해서 달구경을 했다. 산에서 (두려움에) 덜덜 떨며 달을 보던 것과는 달리 환한 동네의 불빛이 보이고, 절이 있고, 계곡물 흐르는 소리로 가득 찬 자리에서 안심하여 달구경에 심취했다. 구름이 다 지나갔다. 계곡 물이 흐르는 웅덩이 앞에 가니 물 위에 달빛이 비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우리는 그 웅덩이가 있는 바위에 앉아서 한참동안 물에 비친 달과 하늘에 밝게 뜬 달을 구경했다. 세상이 정말 밝았다. 어떤 장면에서 달은 꼭 태양 같았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보고 있던 달도 더 옛날의 달이었겠구나. 물에 비친 달은 또 더 옛날의 달. 그렇게 우리는 계속해서 달의 뒤꽁무니를 쫓는 아이들. 오지는 우리 자신을 보며 영화 '쏘아 올린 불꽃 아래서 볼까 옆에서 볼까'를 떠올렸다. 더 둥글고 밝은 달을 보기 위해 모험을 하는 아이들. 언제까지고 이렇게 유치하고 재미있는 모험을 하고 싶어. 오밤중에 따뜻한 옷들을 차려입고 물과 초콜릿, 무기를 챙겨서 월암에 오르는 일. (월암에서 달을 보아야 한다고 가르쳐 주신 그 백사실 계곡 지킴이 할아버지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정말 정말 많이 웃었어. 슈퍼문과 우리들. 그리고 월암.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