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9월 26, 2019

이삭줍기

오늘 내가 돼지들을 생각하며 알아낸 몇가지 끔찍한 사실들이 있다. 잔반사육이 돼지열병과 같은 전염병의 주요 발생원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우리나라에 돼지열병이 퍼지기 전에 이미 초토화되었던 중국의 경우에도, 잔반사육을 하던 농가가 상당수였다고 한다). 우리가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음식물 쓰레기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에 따라 처리공정이 다르다고 하는데, 크게는 퇴비, 비료, 사료, 연료로 사용된다고 한다. 이렇게 말로만 글로만 보면 나름의 적합하고 올바른 과정이 이루어지겠지 지레짐작하게 되지만, 우리가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를 생각해보자. 사실 그건 그냥 쓰레기다. 너무 끔찍하게도 거기에 뭐가 들었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고,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참을 수 없는 악취가 나는, 정말 누구에게도 먹이고 싶지 않은 쓰레기다.

돼지열병이 발생하고, 올 7월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돼지에게 음식물쓰레기를 사료로 주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런데 식용개에게는 여전히 가능하다고 한다. 여기서 또 끔찍한 사실은, 보통 음식물쓰레기를 사료로 줄 때에, 80도 이상 가열하는 과정을 거쳐야하는데, 영세 농가에서는 그 조차도 지키지 않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일찌기 조류독감이 퍼졌을 때에도 그제야 오리, 닭에게 음식물쓰레기를 급여하는게 금지되었다. 이미 우리가 많이 경험했고, 무엇이 위험한지, 무엇이 우리에게 해가 되는지를 알고 있는데도 늘 이런 끔찍한 재난이 터진후에야 뭔가를 금지시키고, 변화하려는 모습들을 보면 사실 너무 화가나고, 우리 스스로가 창피하다.

ㅠ 너무나 더 나아지고 싶어.

허울만 남은 것 같던 내 비거니즘... 요즘 다시 내 꼴로 나디르가 나를 깨우쳐준다. 나디르랑 나디르 여자친구는 내가 그려왔던, 히피의 삶(현대사회에 더이상 히피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지 오래지만)을 살고 있는 커플이다. 덕분에 내가 자그맣게 해오던 일들도, 이집에서는 이제 더 큰 행동으로, 습관으로, 태도로 자리잡아간다. 거창하게 이야기해보자면 나는 아나키즘 공동체의 희망을 여기서 찾는다ㅎ 우리는 불필요한 소비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고(나디르는 이미 그게 습관이 된 사람같지만, 나는 아직 노력하는 사람), 필요한 것도 거의 누군가가 무료로 나누어주는 것이나, 운좋게 길에서 찾은 것들, 중고품가게에서 저렴하게 사온 것들을 사용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요즘 내가 정말 즐거운 것은 우리의 장보기다. 이 새로운 장보기는 버려진 음식물들을 회수해오는 것! 내가 정말 좋아하는 아녜스 바르다의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에 나올법한 모습 그대로다. 물론 우리가 주워오는 것은 거의 다 포장이 제대로 되어있고, 썩지도 않고, 대부분 온전하다. 보통, 마트에서는 조금이라도 찌그러졌거나, 아주 일부가 손상됐거나, 날짜가 하루만 지나도 그 상품들을 모두 버려야한다. 그럼 우리는 그 앞에 가서 버려진 것들을 가져오는 것이다. 단순히 우리가 돈이 많이 없기 때문에, 나름 유익한 활동이기도 했지만, 내가 고민해온 비거니즘과 환경문제 등을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정말 흥미롭다. 세상에 버려지는 쓰레기들을 줄이는 일에 일조한 셈이다.

당연히 모두가 이럴 필요도 없고, 이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우리의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이 행동들이 의미하는 바를, 상징하는 바를 함께 생각해볼 순 있을 것 같다. 별 의미없는 일 같지만, 우리는 음식은 물론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물건들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고, 더 나아가 자연스럽게, 세상에 버려지는 쓰레기들을 줄일 방법과 음식을 남기지 않고 먹는 일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우정이가 참여하고 나에게 소개해준 캠페인을 보고 큰일로 여기지 않았지만, 오늘 돼지들을 생각하다가 갑자기 이런 모든 생각들이 이어졌다. 너무 끔찍하고 슬프고, 가슴이 아픈 와중에, 내가 다시 이 인간으로서의 업보와 악행을 인지하고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더 좋은 세상을 살기 위해서는 고통 앞에서 고통스러워하고, 슬픔 앞에서는 눈물을 흘려야하는 것 같다. 요즈음 내가 너무나 무감했던 것 같아서 말이다.. ㅎ

일요일, 9월 22, 2019

별같은 바다

별같은 바다. 오늘도 우울하고 서운하고 허무해하던 중에 저멀리 떨어져있는 지인과 정말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우리가 만났던 때를 서로 잘 기억못했는데 (나는 원래 과거를 자주 회상하지 않기에 더욱) 통화 중에 자연스레 변하는 내 목소리를 보며 문득 그 때의 우리가 떠올랐다. 나는 화를 내고 있었고, 갑자기 그 목소리와 말투가 참 익숙하다고 느껴지던 참에 알았다. 그 때도 나는 그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나는 계속 화를 내고 그는 그때도 오늘도 이런 것들이 재밌지 않냐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참. 웃기기는 했다. 격양된 감정으로부터 이어진 기억은 희미하게 그리 깊지 않은 곳을 여기저기 쑤셔댔다. 어두컴컴한 복도. 우울한 목소리로 낭독했던 아라공의 시. 유통기한이 지난 약. 모두와의 다툼. 이내 곧 내게 최승자 시인과 빈센트 밀레이를 알려준 장본인이 그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기억이 났다. 나는 급히 그에게 감사해했다. 여전히 내가 그 시인 둘을 너무나 사랑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그리고 요즈음 마침 읽을거리가 필요하던 참이라 몇가지 나눠야할 것을 약속했다.

사실 오늘 내가 화를 낸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오늘 내 우울한 마음에다가 그가 내가 이미 너무나 잘알고 있는, 책 속에 쓰여진 것 같은 그런 말들을 연거푸 내뱉어대기에 정말 하나도 위로가 안된다고 쏘아붙였던 것이다. 사실이다. 하나도 위로가 안되는 말이었고 분명 그는 그런 일에 소질이 영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내가 그 모범적인 답들을 이미 알고있다고 말하고 나니 상황은 우스워졌다. 그도 웃으며 알아요? 되물었다. 그러게 말이야. 내가 다 알고 있었다니 말이야. 불안은 종종 그렇게 한순간에 우스워지곤 한다. 그는 이제 알았다며 앞으로는 그냥 ‘오세라 화이팅’하면 되겠구나하고 즐거워하더라. 나도 즐거워졌다. 정말.

이상하고 우스운 통화를 끝내고 나는 생각을 한다ㅎ 누구도 혼자여서는 안된다고. 누구도. 여기에 와서 새로 배운 것들이 많다. 내가 정말 바라는 일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여기에 오면 한국의 지긋지긋한 관계들로부터 도망칠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실제로 떠나오기 직전에는 너무나 지쳐서 도망치듯 비행기에 올랐고 조금 후련하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선 정말 나 혼자 해왕성에 와있는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고 그 해왕성에서 지독하게 고요한 때에 비로소 배우는 한가지가 그것이다. 누구도 혼자여선 안된다는 것. 별을 넘어서 배우는 것. 애드 아스트라, 그리고 대서양 건너편 친구와의 통화 끝에 느끼는 그것ㅎ

수요일, 9월 18, 2019

생일

나는 29살이 되어버렸다. 한국나이론 이미 30살이지만 여기에선 만나이로 세니까 28살에서 오늘 29살이 된 것이다. 참으로 특별할 것 없는 생일이었다. 생일이 생일같으려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야 한다.
작년에도 오늘도 나는 혼자서 9월 18일을 보냈다. 무얼해야할지 몰라서 어영부영하다가 오후는 모두 다 지나갔다. 힘만 들었다. 어제 커피를 마신 탓에 오늘은 몸이 너무 무겁고 기분도 그리 좋지 않았다. 전시를 보려고 friche belle de mai에 갈 참이었는데, 너무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어제 갔던 쿠지 카페에 또 가서 커피를 마셨다. 오늘은 모카를 마셔봤다. 그런데 커피를 마셨는데도 어제처럼 정신이 또렷해지지 않았다. 기분도 그대로였고, 몸이 무거운 것도 그대로였다. 갈등을 좀 하다가 길을 나섰지만 막상 앞에 가자 보고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바다에나 가고싶었다. 그래서 바로 앞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도 고민이 되더라. 이런 날이 가끔 있다. 모든게 맞물리지 않는 느낌. 엇갈리는 느낌. 그럴 때는 사실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하는데, 집에 있기는 싫었다. 너무 심심했다. 그래서 결국 자전거를 타고 바다로 향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내가 고른 자전거는 고장난 자전거였다. 정말 오늘은 아무 것도 제대로 된 것이 없는 날인가 했다. 가는 길 내내 바다에 가는 것이 망설여졌다. 날씨도 시원했다. 바다에 들어갈 수 있을까 걱정도 되고. 그렇지만 그렇게 내 생일날을 아무 것도 안한채로 보내버릴 순 없었다. 바다에 도착했다. 

나는 망설임없이 바다로 들어갔다. 하나도 춥지가 않았다. 오히려 따뜻했다. 8월에 갔을 때보다 더 따뜻한 것 같았다. 오후 여섯시쯤이었는데 나는 한참을 놀았다. 물 속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 열명도 채 되지 않았다. 넓고 넓은 바다에서 나 혼자 떠다니는 느낌이 좋다. 물론 나 혼자는 아니지만. 수영도 잘 못하지만은 내가 할 수 있는대로 열심히 해본다. 바다에 간 것은 절대 후회스럽지 않은 선택이었다. 정말 너무 좋았다. 언제나처럼. 그렇게 놀다가 조금 추워질랑 말랑 할 때, 뭍으로 나왔다. 추워서 바로 몸을 닦고 옷을 갈아입었다. 물 속이 더 따뜻했다. 

오늘 미역국은 먹지 않았다. 그렇지만 바다에 갔으니 됐다. 사람은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간다지만, 사실 우린 물에서 왔다. 그러니 태어난 날에 물에 들어가는 것은 꽤 상징적인 일이었다. 물에서 왔고, 물로 돌아간다. 물로 돌아간다. 엄마 뱃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때가 있었다. 지금은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 것에 감사하긴 하지만, 엄마 냄새가 맡고싶다. 왜 우리 엄마한테는 너무 좋은 냄새가 날까? 아무한테도 그런 냄새는 나지 않는다. 천사같은 우리 엄마. 바다같은 우리 엄마. 

창피한 두려움

나의 두려움을 이제 누구한테 말하기가 창피해. 창피해서 어디에도 쓸 수가 없다.

토요일, 9월 14, 2019

사랑의 블랙홀

드디어 보았다. 사랑의 블랙홀ㅎ
오랫동안 보기를 미뤄왔던 영화를 드디어 찾게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나도 블랙홀에 빠져있었던거야. 사실 별다를 것 없이 흘러가는 하루를 보내다보면은 그런 지독한 블랙홀에 빠지고 만다. 어두컴컴하고, 무섭고, 어쩔 때는 정말 내가 스스로 나를 해치기도 하고, 어떤 날은 또 괜찮은 것도 같았다가 그래도 다시 똑같은 돌아가는 하루에 다시 절망하고 마는 그런 블랙홀.
사실 이 고리타분해보이는 영화에 기대를 크게 하지는 않았다. 대충은 익히 들어알고 있는 스토리구성이니.. 그러나 정말 즐거웠다. 그가 블랙홀을 빠져나오는 그 과정과 빠져나왔을 때의 그 표정을 보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다 보고 발코니에 나가서는, 오늘 저녁 내가 억지로 달을 보며 했던 다짐을, 나도 모르게 정말 신이나서 다시 되내게 된 것이다.
어쩔 때는 나도 그냥 나의 하루가 여기서 끝나버렸으면 하곤 했다. 내일이 없었으면. 그렇지만 늘 어김없이 내일이 오고, 그것은 오늘이다. 내가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매일같이 똑같은 하루 하루를 나의 삶으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의 삶을 사랑스럽게 만들 것이다. 빌 머레이가 내일을 맞이하여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어쩌면 나도 정말 저런 변화를 맞이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다시 가져본다. 어쩌면이 아니라, 반드시. 내일도 나는 똑같이 이 침대에서 눈을 뜨고 일어나 별다를 것 없는 하루를 맞이하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한하잖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최선을 다해 할 것. 사랑을 다해 할 것.

카스퍼 하우저







몸을 갈라 내장을 다 헤집으면서까지 발견하고 싶은 합리적 믿음의 증거. 나조차도 실은 베르너 헤어조크의 영화를 보기 전까진 카스퍼의 뇌가 어떻다는 둥, 편지가 어떻다는 둥의 미스테리에 매료되었다ㅠ
그렇지만 정말 단 하나의 답만을 가진 문제가 존재할 수 있는가?
완벽한 보고서를 위해 난도질 당하는 몸뚱아리들

그게 가장 쉬운 일이었으니까.

화요일, 9월 10, 2019

일년

막세이에 온 지 일년이 딱 되었다. 일년은 정말 짧은 시간이구나. 정말 순식간에 지나가버리고 말았다. 인생의 모든 것은 늘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간다. 생각보다 짧았던 일년. 생각보다 길었던 하루. 생각보다 힘들었던 날. 생각보다 괜찮았던 날. 그렇게 생각치 못했던 슬픔과 예기치 못한 기쁨들을 맞이하며 지나가는 일년. 그 시간을 또 생각보다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보내고 있었다. 특별할 것도 없었고, 그저 여느 날들과 다르지 않았던 날. 다만 요즈음, 이 생각치도 못하게 빨리 지나가버린 일년이라는 시간에 대해 생각을 해보다가, 다짐해보는 일은 있었다. 앞으로의 일년은 또 더 열심히 해보자는 다짐.
일년 동안 아무 것도 안하고 정신없이 시간을 보낸 것 같아.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런 저런 시도를 해볼 수 있었던 걸 생각해보면 아주 수확이 없는 시간도 아니었다. 이래저래 좀 엎어보기도 했지만, 그래도 사진 작업들이랑 비디오도 몇개 만들구, 설치도 해보고, 필름 현상이랑 인화도 배워서 열심히 해보는 중이고 (이건 정말 재밌고, 매력적인 작업이다. 앞으로 더 숙련할테야)... 내 친구들 몇명은 나를 보러 막세이까지 왔다! 이건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들이었다.. 나도 프랑스 다른 도시들에도 다녀와보고, 또 더 먼 나라들도 가보았고, 그 도시들의 어떤 벽과 나무들을 그리워할 줄도 알게 되었다.
완전히 다른 삶 속에 들어와서는 미셸을 그리워하며, 오지를 그리워하며 지내던 날들도 길었지만, 이제는 나도 미셸처럼 조금은 의젓해지기도 했다. 사실, 내가 울기만 하면서 일년을 보낸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나를 달래준 노래들이 많았다. 어떤 노래는 몇백번씩이나 반복해서 들었다. 그 숫자는 내가 좌절하며 질질 짜낸 눈물의 증거다ㅎ 그리고 또 내 의젓함의 증거라고 말하고 싶다. ‘의젓할’ 나이는 이미 지났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언제나 더 의젓해지고 싶다. 그 노래들이 흘러나오는 동안 나는 하염없이 막세이를 걸어다녔다. 내 종착지는 늘 바다 혹은 풀밭ㅎ 나는 거기 누워서 나에게 달려드는 파도와 모래를 또 하염없이 바라보고, 그러느라 감기도 몇번 걸려보고, 파이프도 많이 피웠구(이제는 간헐적 흡연자가 되었지만), 아무튼 진짜 청승을 많이 떨었다.
사실 오랜시간 동안 열등감은 나에게 큰 동력이 되곤 했다. 더 나아지고 싶은 마음, 그 욕망이 너무 큰 나머지, 나는 스스로를 계속해서 깎아내고 저 바닥에 내팽겨치므로써 뭔가를 해내려고 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게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안다. 그건 결국 내 영혼을 스스로 좀먹는 일이고, 실제로 나를 열등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렇게 세상의 그 누구도 열등하지 않다는 것을 늘 피력해왔으면서도. 내가 그랬다. 그래서, 얼마전에도 내가 블로그에 썼던 글에도 등장하는 말이지만, 나에게는 ‘믿음’이 필요하다. 소원이 무지무지 많았던 예전의 나에 비해, 이제는 바라는 것이 적어졌는데, 그것도 별루인 것 같다. 많은 것을 바라고, 많은 것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외마디 비명에 그쳐버리고 마는 기도는 이제 그만해야한다. 그게 내가 타고난 복이 되었든, 별들의 움직임에 따른 흐름이 되었든, 운명이 되었든, 숙명이 되었든, 내가 정말 믿고 싶었던 그것들을, 믿어야지. 그것들이 사실이 된다면 정말 엄청난 것이니까 !

일요일, 9월 01, 2019

기도하는 법

언제나 양극성이 문제지. 소생불가한 지경으로 치달아버린 삶을 그려보았다가 금새 몸을 튼튼하게 하는 약들을 챙겨먹고, 요가를 하고, 명상을 하고, 기도를 해본다. 건강하게 해주세요. 등이 굽지 않게 해주세요.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런 주문들도 외워본다. 이렇게라도 해야 그 문제로부터 나를 구할 수 있으니까. 좋은 삶을 살고 싶은 욕망이 너무나 큰 나머지 어쩔 때는 삶을 망가뜨려버리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나쁜 말을 많이 했다. 그치만 치사하게도 삶은 단순하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그래서 단순한 주문을 외워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단순한 문장들을 온 맘 다해 믿으면 되는 것이다. 근데 그 믿음이라는 것이 또 문제다. 
나에게는 믿음이 부족했다. (물론 내 믿음이 이렇게 희미해진 데에는 이유가 다 있다.) 사실 생각해보면 내가 그토록 머리를 이리저리로 굴려가며 시도했던 것 ㅡ 이 세상에 대해,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어떤 해답이라도 찾으려 했던 노력 ㅡ 은, 적어도 나에게는, 참 무의미했다. 물론 그 탐구는 재미있긴 했다. 매번 내가 새로운 법칙을 발견할 때마다 느꼈던 새로운 감동이 있었으니까. 그치만 내 이십대를 가득채웠던 그 궁금증은 시들기 마련인 것이었고, 나는 새로이 깨달을 것을 찾는 것이 힘들어졌다. 나를 누르는 허무함이 하는 일인지, 내가 변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 발견들은 나를 계속 다시 일어나게 하는 것이었는데, 결국에 그 발견들에 내 생의 가치를 맡기는 것은 어리석고 때로는 위험한 일이었다.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그 속에 어떤 법칙이 있든지, 숙명이라는 것이 있든, 운명이란 것이 있든, 혹은 그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든 간에, 나는 적어도 믿음이란 것을 가질 수 있었는데 말이다. 나 자신에 대해. 이 세상에 어떤 법칙이 있다하더라도, 어떤 경우에도 생존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었다. 
그러고보니 기도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다. 창피하게도 사실 내가 요즘 기도라 이름붙였던 것들은 불안할 때에 내가 외치는 외마디 비명에 불과할 뿐이었다. 내가 소망하는 것은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늘에다가 땅에다가 깽판을 쳐보기도 했지만, 지금 돌아보니 어떤 것은 이미 이루어져있네. 어릴 때 내가 간절히 손모아, 무릎을 꿇고 빌었던 기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