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9월 22, 2019

별같은 바다

별같은 바다. 오늘도 우울하고 서운하고 허무해하던 중에 저멀리 떨어져있는 지인과 정말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우리가 만났던 때를 서로 잘 기억못했는데 (나는 원래 과거를 자주 회상하지 않기에 더욱) 통화 중에 자연스레 변하는 내 목소리를 보며 문득 그 때의 우리가 떠올랐다. 나는 화를 내고 있었고, 갑자기 그 목소리와 말투가 참 익숙하다고 느껴지던 참에 알았다. 그 때도 나는 그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나는 계속 화를 내고 그는 그때도 오늘도 이런 것들이 재밌지 않냐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참. 웃기기는 했다. 격양된 감정으로부터 이어진 기억은 희미하게 그리 깊지 않은 곳을 여기저기 쑤셔댔다. 어두컴컴한 복도. 우울한 목소리로 낭독했던 아라공의 시. 유통기한이 지난 약. 모두와의 다툼. 이내 곧 내게 최승자 시인과 빈센트 밀레이를 알려준 장본인이 그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기억이 났다. 나는 급히 그에게 감사해했다. 여전히 내가 그 시인 둘을 너무나 사랑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그리고 요즈음 마침 읽을거리가 필요하던 참이라 몇가지 나눠야할 것을 약속했다.

사실 오늘 내가 화를 낸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오늘 내 우울한 마음에다가 그가 내가 이미 너무나 잘알고 있는, 책 속에 쓰여진 것 같은 그런 말들을 연거푸 내뱉어대기에 정말 하나도 위로가 안된다고 쏘아붙였던 것이다. 사실이다. 하나도 위로가 안되는 말이었고 분명 그는 그런 일에 소질이 영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내가 그 모범적인 답들을 이미 알고있다고 말하고 나니 상황은 우스워졌다. 그도 웃으며 알아요? 되물었다. 그러게 말이야. 내가 다 알고 있었다니 말이야. 불안은 종종 그렇게 한순간에 우스워지곤 한다. 그는 이제 알았다며 앞으로는 그냥 ‘오세라 화이팅’하면 되겠구나하고 즐거워하더라. 나도 즐거워졌다. 정말.

이상하고 우스운 통화를 끝내고 나는 생각을 한다ㅎ 누구도 혼자여서는 안된다고. 누구도. 여기에 와서 새로 배운 것들이 많다. 내가 정말 바라는 일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여기에 오면 한국의 지긋지긋한 관계들로부터 도망칠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실제로 떠나오기 직전에는 너무나 지쳐서 도망치듯 비행기에 올랐고 조금 후련하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선 정말 나 혼자 해왕성에 와있는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고 그 해왕성에서 지독하게 고요한 때에 비로소 배우는 한가지가 그것이다. 누구도 혼자여선 안된다는 것. 별을 넘어서 배우는 것. 애드 아스트라, 그리고 대서양 건너편 친구와의 통화 끝에 느끼는 그것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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