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6월 28, 2021

신의 가호를 !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위로의 말임을 알았다.
순수도 없다.


투명한 것.
확실한 것.
투명한 것은 확실한 것인가 ?


낯선이들 사이에 앉은 나. 착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은 정말 복잡하구나.

더 이상 내 존재에 대한 정당성을 따지지 않았다. 

목요일, 6월 24, 2021

fledge

연세가 지긋하신 여성 사진 작가분을 만났다. 내 사진들을 들고 가서 그분 앞에 펼쳐놓고 보여드렸다. 예전에 친구가 내게 참 소개해주고 싶어 했던 작가분이었는데(실제로) 내가 우연히 만나 뵙게 된 것이다. 내 사진을 보고 이런저런 피드백을 해주셨다. 사진 한 장 한 장을 볼 때마다 정말 생생하고 신나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어찌 저런 감상을 하실 수 있을까 감탄스러웠다. 정말 정말 밝고 맑으신 분이었다. 나는 계속 장루이쌤이랑 막스선생님을 생각했다. 사진을 계속 보시다가 내게 갑자기 제2의 플레쥬를 아느냐고 물어보셨다. 그걸 지원하라고 하셨다. 제2의 플레쥬..

깨어나서 바로 플레쥬의 뜻이 뭘까 검색해보았더니 실제로 존재하는 단어였다.



정확하게 스펠을 맞췄다. 그런데 꿈에선 불어 발음으로 나왔다. 플레쥬..



'다 자란'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정말 신기한 게 꼭 꿈의 내용을 보니 너무나 명료한 상징과도 같은 단어인 것이다. 전혀 내가 뜻을 모르는 단어였던 것 같은데, 사실은 언젠가 배워서 알고 있던 것일까 ? 너무 너무 신기해.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니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Fledging is the stage in a flying animal's life between hatching or birth and becoming capable of flight.


나는 정말 지금 이 단계에 온 것만 같아. strawberry 달이 뜨는 날에 이런 꿈을 꾸어서 더 신난다. 너무 소중해서 꼭 꼭 숨겨두어야 할까, 블로거에 남기는게 좋을까 고민하다가 남긴다. 오늘은 채널의 날이었고, 글을 쓰라고 하셨으니, 오늘 나의 이 꿈이, 그리고 이 일기가 기도문이 되는 것이다.

화요일, 6월 08, 2021

균형


느슨해진 기록의 습관. 그래도 오늘은 생각이 나서 들어와 봤다.

오지와 오지 친구 둘, 이렇게 넷이서 함께 요가를 하기로 했다. 오늘 첫 번째 수업을 들었다. 시작하면서 요가에 대한 개괄적 설명, 기와 차크라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짧지만 지금껏 다른 곳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중요하고 핵심적인 설명이었다), 그 설명이 참 시각적으로 다가왔다. 사실 설명을 듣던 도중에 오늘 아침에 내가 꿈에서 겪은 일과 연결되는 부분이 나와서 이걸 기록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충이라도 일기를 쓰고 있다.

꿈을 오늘 정말 많이 꾸긴 했는데, 그중 한 장면에서 내가 몸의 어떤 중심에 아주 집중하여 힘을 주었다. 그러자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어떤 에너지장이 형성된 것인지 내가 거의 공중부양을 하듯이 서 있을 수 있었다. 그 동작을 하면서 나는 직관적으로 이것을 더 발전시키면, 다른 형태로 발전시킨다면, 실제로 공중부양이 가능해지겠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오늘 선생님은 그 기라는 것을 설명하며, 단전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셨고, 바로 그 단전이라는 것이 요가를 하는 데 있어서 정말 공중부양과도 같은 자세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부위라고 알려주셨다. 그 설명을 듣는 순간 내 꿈의 이미지가 바로 떠올랐고, 새삼스레 그 인연이 그리고, 이 투시의 경험이 신기했다.

선생님은 정말 정확하게 몸을 움직이는 방식을 알려주시고, 우리의 몸을 봐주셨다. 어렵지 않아 보이는 동작들이었지만 때문에 더 새롭고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주 만족스럽고 이완이 되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단 한 번 제대로 요가를 하기만 해도 몸이 달라짐을 느끼는데, 지속적으로 하면 정말 내가 평소에 잘못 쓰고 있던 근육들이 제자리에서 제 기능을 하도록 변화할 것 같다. 그 변화와 힘을 믿는다.

균형.

모든 에너지들의 흐름의 균형을 찾는 것. 그것들이 제자리를 찾는 것. 요가.

다시 또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요가는 꼭 배워야지. 아니 해야 할 모든 것들은 내가 하고 싶은 모든 것들은 꼭 어떻게 해서든지 해내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그것 또한 내 생의 균형이 되겠지.

자기 전에 영화를 보려고 목록을 보고 있다. 다시 영화를 조금씩 다시 보기 시작한다. 모든 것들에 감흥을, 재미를 잃었던 것이, 내가 이제는 너무나 많은 영화를 보아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난 정말 잠시 기력을 잃었던 것 같다. 다시 궁금한 이야기들과 궁금한 장면들이 생겼다. 볼 것들이 많아졌다. 기복이 조금 있기는 하지만 정말 나는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이제서야, 그것을 느낀다.

세상에 재밌는 것이 너무 많고, 할 것이 너무 많고, 가야 할 곳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될 거야. 사실 내 평생은 이 말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말이다 늘.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재미있는 것이 너무 많아'.

파랑은 가장 아름답고 순수하지만, 그만큼 무서운 것이다. 모든 것을 잠식시키는 색.

파랑은 파랑으로 간직한 채, 다른 색을 발견해야 한다.

월요일, 6월 07, 2021

강릉



뜨거운 태양 아래 느끼는 반가움과 유감. 얼굴은 이미 가려져 있지만 그래도 눈물을 겨우 훔치고 그저 그의 고통이 덜어지기만을 기도한다. 복수는 왜 차오르는거야 ? 대답은 너무나도 간단하지만, 너무 서운하고 서글프다. 순수의 순간에는 더욱 미안해지는 마음과 아른거리는 마른 몸. ‘오늘이 우리가 가장 어린 날이야’라며 계속 슬픈 것은 가슴 한 켠에 두고 이 아름다운 것들을 즐겨보자며 장난처럼 이야기했지만.. 정말 정말 우리는 펼쳐진 내일을 알 수가 없거든요. 슬픔과 이별의 순간은 정해져 있고, 기쁨의 순간은 늘 기약이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예기치 못하게 찾아오는 순간의 기쁨에 마음을 놓아야 합니다.

“눈물은 30분만 흘리세요.”

구름이 가득해지고 나니 완벽한 날씨가 되었다. 파도는 잔잔하고 아주 부드러운 솔향과 바다내음이 우리를 감싼다. 부끄러운 일 슬픈 일 많아도 같이 있으니 모든 것이 즐겁지. 어제의 일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서로의 지난날은 계속 추억했다. 우리 좁은 방 하나에 같이 누워 잤던 어린이 적. 피아노와 넥스트 테이프. 무서운 팔팔 열차. 언제나 들어도 웃음이 나오는 말투들.

🤍🌊dans la paix🧚🏻🤍

수요일, 6월 02, 2021

incens

고요한 밤. 모두가 떠나고 더 어둡고 더 고요해진 우리 동네
설거지를 마치고 이제야 다시 휴식을 취하는 중이다. 설거지를 하면서 한참을 혼자 떠들었다. 화가 나지는 않지만 나는 화가 난 사람처럼 중얼중얼 욕지거리와 원망이 섞인 말들을 아주 작게 읖조렸다. 그 동안에 고양이들은 열심히 뛰어다니고 열심히 싸웠다.

나름의 명상을 하는 방식으로 나는, 오랜만에 고요한 밤에 향을 피우고 차분한 브라이언 이노의 음악을 작게 틀었다. 은은한 향이 나를 차분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는데, 내 바로 옆에 있는 공기청정기가 열심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참으로 낭만이 없는 현대문명. 공기청정기가 내는 소음은 음악을 지우고 고요함을 지우고... 나는 피우던 향을 껐다. 

향 연기에 열심히 작동하는 공기청정기 소리를 들으면서 인도를 생각한다. 타들어가는 인센스 스틱을 들고 공간을 돌며 그 구석 구석의 에너지를 정화하는 사람들. 각종 마살라의 향기가 가득한 공간들. 그 속에서 떠들고 밥을 먹고 기도하는 사람들. 이 장면에 공기청정기가 있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조금 당황스러워진다. 

갑자기 눈을 뜨니 이런 세상이었다. 미아동에서 살 때를 떠올려보면 그래도 파란 하늘을 자주 보았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 프랑스를 다녀온 그 고작 2년이라는 시간동안 더 많은 것들이 바뀐 것 같다. 가끔은 진절머리가 나기도 한다. 설거지를 하면서도 다시 라면을 끊어보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런 작은 쓰레기들이 너무 지겹다. 이런 쓰레기들을 처리하겠다고 내가 쓰고 있는 이 어마어마한 양의 물도 너무 아까웠다. 그리고 이 일을 하겠다고, 혹은 이 일에 소홀했다고 다툼이 나는 것도, 노이로제에 걸린 사람처럼 서로를 노려보는 것도, 미워하는 것도, 다 너무 싫다.

어제 본 나탐의 영상에서.. 지금까지 역사가 카르마를 생성하는 모습으로 진행되어왔다면, 이제는 그 쌓인 카르마를 해소하는 시대로 들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끔찍한 전쟁과 살육의 시대를 지나고, 질병과 환경오염.. 종차별은 시대를 막론하고 지속되어왔다. 이제는 더이상의 해악은 없지 않을까.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업이 쌓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이제 그것을 풀어나가는 아주 정말 처음의 단계에 해당하는 세대라 더 히스테리적인 말과 행동들이 나오는 것일까. 이 히스테리와의 싸움이 힘들어. 원망도 할 수가 없으니, 나는 다시 나와 다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