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11월 29, 2024

고양이들을 보고 왔다. 미셸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나를 반겨준다. 그것이 참 감사하다. 감동적인 고양이. 까미유를 만나는 것은 매일이 다르고 새롭다. 까미유는 어릴 때 나랑 헤어지게 된 것이니까 나랑 충분하게 애착형성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까미유랑 어떨 때는 참 가까운 것 같다가도 어떨 때는 아주 멀다. 그게 항상 가슴이 아프다. 지난 번만 해도 까미유가 내 머리와 얼굴을 핥아주었는데 오늘은 내게서 거리를 유지하는게 느껴져서 서운하고 서글펐다. 미안해. 아른거리는 까미유의 얼굴. 보고싶은 고양이들. 모든 순간 우리 고양이들이 그립다. 

고양이들이랑 놀고 있는데 편지가 도착했다. 월말이 되면 받는 편지가 있다. 한달에 한번씩 편지를 주고 받는 친구가 생겼다. 지난 편지보다 글씨가 더 예뻐졌다. 내게 보내는 말들에 관심과 애정이 생긴 것 같아 괜히 뿌듯하고 기쁘다. 편지 마지막에는 내가 항상 '세라 드림'이라고 남기듯이 똑같이 '00 드림'이라고 써 있었다. 원래 마지막에 그런 걸 남기는 친구가 아니었는데, 내가 쓴 편지들에 영향을 받는 것일까. 모든 사람들에겐 좋은 어른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들에겐 어머니가 필요해-라는 노래가 있는데 그게 어쩌면 이와 같은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쓰는 말투와 글씨체가 누군가에게 보고 배울만 한 것이 된다는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생각한다. 그런 어른이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 모든 어린 시절에는 그게 필요하다. 

내가 맺고 있는 모든 관계 속 내 역할에 대해서 떠올려보게 된다. 까미유에게, 새로 사귄 친구에게, 오래된 친구에게 나는 어떤 모습과 어떤 역할을 하고 있지. 점차 내가 관계 속에서 나눌 수 있는 것들이 내가 살아온 시간만큼 많아지고, 풍성해지는 것 같은데, 얼마 전에 그런 것들도 결국엔 내 마음과 몸이 건강하고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있었다. 너무 피곤했던 날에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누군가가 있었는데 말이 하나도 나오질 않았다. 다른 날의 나였다면 해주고 싶은 말과 질문들이 많았을 것 같은데 말이다. 어쩌면 이것을 위해서라도 내가 계속 건강하게 에너지를 유지하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직 그것을 위해서만이라도. 글을 쓰면서는 이런 말이 튀어나온다. 사실 아무런 동기나 이유없이 나를 건강하게 가꾸고, 나를 사랑하는 일은 쉽지는 않다. 적어도 나에겐 말이다.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조금 더 친절하기 위해서 나는 내 건강을 신경쓴다. 그런데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는 단순히 내가 아프지 않은 상태를 넘어서서 건강해야 한다. 

이런 저런 마음들이 약간 바빠진 것일까 하는 질문이 들기도 한다. 또 그냥 알아차리고 바라보는 수밖에 없지. 

수요일, 11월 06, 2024

따뜻한 맬팅초코와 니들엔젬의 껍질. 5도의 아침. 손에는 부숭부숭한 갈색털실로 만들어진 워머를 끼고 초록이 가득한 니트들을 입고. 너무 춥구 손은 따뜻하구. 이런 모든 조화가 기분 좋은 아침. 

어제 일을 일찍 마치고 나왔더니 컨디션이 확연히 다르다. 저녁에 집에 도착해서 몇가지 일들을 하고도 밤이 늦지 않아서 참 좋았다. 매일 이 정도의 리듬만 유지하더라도 훨씬 좋을 것 같간 생각을 했다. 어제는 생각이 많았다. 정리할 것도 많고. 어찌저찌 집중을 하여 글도 써보았다. 마음을 다하였는데도 왠일인지 어제는 아침부터 느끼던 약간의 창피함이 하루종일 나를 사로잡은 것 같았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사실 창피함이다. 이 세상에 벌거벗은 채 내던져지는 기분. 어느 구석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 요즘은 이런 마음이 잘 없었다. 오랜만에 아주 살짝 그런 기분을 느낀다. 그럴 때 나는 머리를 흔들어제끼거나 혼잣말을 하곤 한다. 겨울이 다가오니까 많은 것들이 조금씩 변화하는 것 같다. 해가 짧으니까 슬프다. 너무 일찍 밤이 온다. 이럴 땐 모든 세상이 그냥 일찍 자고 덜 활동하는 것이 좋을까, 그럼에도 이전처럼 더 활동하는 것이 활력에 더 좋을까. 궁금해. 어쨌거나 어떤 모습이라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지금 내가 힘쓰는 것처럼 우울해지지 않기 위해 무력해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좋을까. 무엇이 더 좋을까를 생각하지 않을 순 없을까. 여러가지 격차들이 생기고. 그 사이에서 미슥미슥 소화가 안되는 것 같다. 몰라 몰라. 그냥 그 차이와 사이를 다 느껴보는 것은? 어제 쓴 글이 그런 말들이었다. 가치 판단을 하지 말아보자. ㅎㅎ 요가 선생님이 항상 해주시는 말씀. 목근육이 잘 풀어지지 않은 것 같아도, 숨이 깊게 쉬어지지 않는 것 같아도. 그냥 그대로 느끼기. 가치판단 하지 않기. 아무래도 너무 습관적인 나의 가치 판단. 그러네. 나는 모든 것을 결정하고 한가지만 받아들이거나 느껴야만 할 것 같은 압박을 종종 느끼는 것 같다. 내가 물흐르듯이 유연한 사고와 마음을 가질 땐 그렇지 않지만 갑자기 요 며칠 그런 압박들이 내게 돌아온 것 같다. 그냥 그 압박도 느끼고 흘려보내고, 결정한 것도 그대로 흘려보내고, 결정하지 못하는 것은 하지 못한 채로 흘려보내보아야지. 

화요일, 11월 05, 2024

기억을 잊고 언어를 잊고 모든 것을 잊고 나는 바보가 된 것 같다. 내가 무얼할 수 있을까-라는 말이 정말 오랜만에 튀어나왔다. 왜 그렇게 나는 그 말을 많이 하면서 살았을까. 해야한다면 무얼 해야하는 것이며, 왜 그래야만 했던 것일까? 누가 그러라고 했지. 그런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전에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했지만, 내가 경험하는 것이 결국에는 무로 귀결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 나는 내가 할 말을 잊었다. 이유도 잊었고. 그래야만 한다는 것은 없었으니까. 단편적인 어떤 감상과 깨달음이 무심하게 경험되었다. 
선생님께 내가 너무 무감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럴 수 있다고 했다.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이 조화롭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너무 예민하게 올라왔던 것들을 둥글게 누르는 식의 치료인거니까. 그걸 선택하는 거라고 했다. 삐죽삐죽하고 아프지만 그냥 그렇게 사는 것과 그것이 너무 힘드니까 둥그렇고 납작하게 누르는 것. 더 편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내가 덜 힘든 것. 나는 무엇이 덜 힘들까? 감정적으로는 평안하지만 모든 것들이 그저 그렇게 둥그렇고 납작하게 느껴지는 삶.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고 큰 에너지가 소모되지만 모든 것들이 특별하고 크고 비극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삶. 그건 내게 너무 어려운 선택권이다. 결국엔 더 편해지고 싶었지만, 무감해지는 내가 바보같아서 그게 싫다. 그치만 너무 힘들어져도 바보가 된다. 너무 힘들어지면 기억이 사라지고, 말이 느려지고, 말을 잃게 된다. 지금은 힘들진 않지만 다채로운 언어가 만들어지진 않는다. 어떻게 해도 언어가 사라지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