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10월 31, 2024

일찍 눈이 떠졌다. 왜일까. 몇 번이고 깼고, 꿈도 열심히 꿨고. 몇 번이고 깨는 바람에 그냥 일찍 일어나버렸다. 그러고 보니 오지네 집에서 잘 준비를 해야 했기에 일찍 일어난 것이 도움이 되었다. 몇 가지 간단한 짐들을 챙기고 일찍 나와서 빵 오 쇼콜라도 사 먹었다. 너무 맛있어. 아침에 먹는 빵 오 쇼콜라는 내게 순수한 즐거움이다. 히히 그러고 블로거에 들어왔다. 통계를 종종 들여다본다. 누군가가 들어온 흔적이 숫자로 남는데 그것을 보면 내 글을 읽은 것이 누굴까 항상 궁금해진다. 내 친구들일까, 모르는 사람일까, 어떻게 이 글을 찾았을까... 아무도 흔적을 남기고 가진 않기 때문에 숫자만 남는데, 내가 예전에 쓴 일기들의 조회수가 올라갈 때 나도 오랜만에 들여다보지 않았던 일기들을 클릭해서 읽어본다. 오늘은 미로에 대한 일기를 읽었다. 나는 봄을 맞아서 한껏 상승된 에너지를 느끼며 개운하게 하루를 보낸 것 같았다. 지금과는 또 사뭇 다른 분위기의 나다. 모든 것들을 더 새롭게 느끼고 있는 나처럼 보인다. 지금의 나는 편안함에 더욱 익숙해졌다. 신비롭다고 느껴졌던 것들도 더 이상 내게 신비로운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 되었다. 그 미세한 변화들이 느껴지는 것이 재밌다. 일기를 읽는 것은 그런 즐거움이 있다. 시시각각 변하고 움직이고 있는 나의 순간들을 언제고 다시 돌아가 볼 수가 있다. 마침, 오늘의 일기에 어울리는 노래가 흘러나와서 기분이 좋다. 잠을 설치긴 했지만, 너무 마음이 들떠서 잠을 설친 것이라고 느껴도 될 것 같다. 저번 주까지는 너무 힘들고 무기력함이 심했는데, 이번 주부터는 다시 에너지가 돌아온 것 같다. 너무 쉽게 두려움을 느끼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다시 내가 어떤 무기력하고 저하된 에너지 상태를 맞이하게 될까 봐 종종 나의 상태를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경계를 하게 되는데 조금 더 느슨하게 나를 바라봐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는 길에는 혀를 입안에서 굴리며 나름의 마사지를 해보았다. 가만히 있으면 딱딱하게 굳는 혀와 얼굴의 근육들이 부드럽게 풀리는 것을 느꼈다. 오늘은 그런 딱딱해지는 것들을 부드럽게 푸는 날인 것 같다. 왠지 상쾌해! 

일요일, 10월 27, 2024

이제 집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춥다. 차가운 공기가 몸을 움츠리게 만든다. 날이 추워지면 나는 집에서 분홍색 플리스를 즐겨 입는다. 지금도 몸을 한껏 움츠리고 있다가 입고나니 바로 따스하다. 

요즘은 매일 매일이 너무 바쁘다. 매주 꽉 채워진 일정들과 해야할 일들. 바쁜만큼 머리와 마음이 단순해지는 것 같다. 다채롭고 복잡스럽게 무언가를 떠올리고 볼 여유가 없는 것이 조금 서운하다. 그래서 오늘은 일기를 쓰기로 했다. 그치만 딱히 떠오르는 말들은 없다. 바쁘지만 모든 것들이 단조롭다. 그것이 싫으면서도 좋다. 그래도 요즘 금요일마다 수피 명상 수업을 듣고 있어서 덕분에 새로운 것을 배우는 시간이 있기는 해서 좋다. 요가도 하고, 세마 의식을 하며 몸을 움직이기도 하고. 몸의 균형이 한군데로 쏠렸다가, 다시 그 균형을 흐트러뜨리고 정렬하는 것을 반복하는 나날들이다.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우는 삶이구나 그래도 항상. 그리고, 한편 다시 집중하고 발전하고자 할 작업이 떠오르는 시기기도 하다. 그래서 단조로운 것을 경계하게 된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집중하고 싶은 것에 오롯이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오늘은 오지와 11월에 있을 공연에 필요한 작업물을 설치하기 앞서 약간의 준비를 마쳤다. 우리의 것들이 하나씩 생겨난다. 모든 것은 똑같지만 그 똑같은 것들이 계속 조금씩 더 깎이고, 정제되고, 말끔해지고, 정확해지고, 세밀해진다. 그것을 지켜보는 것이 재밌다. 사는 것은 그런 것인가보다. 요즘 그런 생각이 든다. 

목요일, 10월 17, 2024

아침부터 함박웃음을 지었다. 걸음에 집중을 하면 일어나는 일들일까.
어제 요가원에서 발가락을 움직이는 훈련을 했는데, 정말 내가 잊어가고 있던 감각들을 다시 느끼느라 거의 충격에 가까운 놀라움이 있었다. 선생님께선 원래 발가락도 하나하나 다 움직일 수 있는 부위라고 하셨다. 움직이지 않고 살다 보니 다 잊게 되는 거라고 하셨다. 발을 땅에 대고 서서 엄지발가락만 들었다가, 엄지발가락을 내리고 나머지 발가락을 들어 올리는 연습을 번갈아 가면서 했다. 처음엔 손가락이 같이 길을 잃은 듯 움직이고, 헷갈렸다. 발바닥의 아치가 많이 무너져있었다. 이 발가락 운동을 통해 발바닥 가운데의 아치가 살아나고, 원래 발이 서 있을 때 올바른 모양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그려볼 수 있었다. 아직 멀었지만, 어제의 놀라운 깨달음을 기점으로 발가락 운동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리고 아침에 되어 금세 발가락과 발바닥에 대해서는 잊고 핸드폰을 보면서 길을 걷고 있었다. 핸드폰을 보다가 갑자기 발의 감각을 느껴보니 내가 또 평소와 같이 엄지발가락에 더 힘을 주면서 길을 걷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온 발바닥으로 바닥을 밟으면서 걷는 게 아니라 또 무너진 발바닥이 느껴졌다. 내 엄지발가락 아래에 항상 굳은살이 생기는 것이 이 탓이었다. 내 걸음걸이가 이상한 걸까 자주 생각하곤 했었는데, 내가 온 발바닥으로 걷고 있지 않았구나, 하고 알았다.
걸음에 집중하며 걷기로 했다. 핸드폰은 보지 않고 오롯이 걷는 순간에는 걷는 발바닥과 다리, 몸을 느끼면서 걸었다. 몸이 무너지는 것은 역시 언제나 현재 그 순간의 나를 잃고 살 때에 나타나는 증상인 것이구나. 걸을 때는 온전하게 걷는 몸을 느끼며 걸어야 하고, 앉아있을 때에는 앉아 있는 몸을 계속해서 느껴야 하는 구나. 그런 것들을 다시금 알아차리며 나는 올바른 자세로 걸었다. 걷는 감각을 처음으로 그렇게 섬세하게 느껴본 것 같았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들이 그렇게 많이 쌓였는데 아직도 처음으로 느끼는 감각들이 있구나- 요가를 하면서 그런 것들을 배운다. 무너져가던 것들을 다시 세우고, 틀어지던 것들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몸을 정렬한다. 몸은 계속 쓰는 것이기에 계속 무너지고, 계속 비틀어지고, 굽지만, 그 굽어진 감각들을 느끼고, 다시 펴고, 일으켜 세운다. 걸을 때에 걷는 감각에만 집중을 하자, 그것은 또 다른 명상이었다. 그렇게 몸의 감각을 알아차리는 것. 땅바닥에 닿는 발의 부위를 하나하나 느끼는 것. 근육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느 부위의 근육이 함께 움직이는지가 느껴졌다. 걷는 것 하나로도 이렇게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
걷는 것에 집중하자, 버스를 기다리며 서 있는 순간에도 올곧게 서서 버스를 기다리게 되었다. 누가 내 어깨를 톡톡 쳤다. 뒤를 돌아보니, 어떤 사람이 내 머리칼에 있는 브레이즈 한 가닥을 들어 올린다. 아마 내 머리에 실 가닥이 묻어있는 줄 알고 떼어주려던 것 같았다. 꼭 표정이 그랬다. 그런데 그 실 가닥을 들어 올리는데 내 두피로부터 그것이 이어져서 떨어지지 않는 것 아닌가. 진짜 너무 그 당황스럽고 약간은 놀란 표정이 잊히지가 않는다. 나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모든 순간을 있는 그대로- 그 순간의 것만을 느끼면서 살다 보면 재밌는 일들이 일어난다. 나는 그 사람의 착각이 좋았다. 그 착각은 웃음을 불러일으켰다. 땅바닥만 보거나 핸드폰만 보고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지. 나는 그 멀대같은 사람의 표정을 계속 떠올리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마 그 사람은 너무 민망했을 터이지만, 나는 즐거웠다. 내가 순간에 지은 함박웃음만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 사람도. 그리고 그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도 그 함박웃음이 퍼져나가기를 그 순간에 바랐다. 그 귀엽고도 사소한 착각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 누구에게도 해를 가하지 않지만, 잠깐 즐거울 수 있는 그런 착각 말이다.
아무튼 오늘의 아침을 발가락과 머리카락으로 맞이하여 난 기분이 좋다. 이미 벌써 하루를 다 산 것 같은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금요일, 10월 04, 2024

설레는 선물과 시작하는 10월. 새로운 인연들이 다가온다. 이미 알던 인연들에게는 새로운 전환들이 찾아왔다. 

세이지를 샀다. 캐나다에서 샀던 세이지묶음은 너무 예쁘고 아까워서 쓰질 못해서 태울 수 있도록 3개를 더 샀다. 하나는 지량을 줬다. 하나를 태워 정화했다. 많은 것들이 맑아지고, 허물을 벗어 또 새로운 겹들로 세상을 마주하길. 새로운 인연들을 더 진심을 다해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지. 몸과 마음을 정돈하고, 머리를 맑게 깨우고 싶다.

10월을 시작하는 주간에 휴일이 많다. 오랜만에 우리집으로 들어오는 오전과 낮의 햇살을 느낄 수 있어서 너무 좋다. 포근하고 따스하고 예쁜 우리집. 지량과도 오랜만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일을 다니기 이전에는 정말 자주했던 일이었는데, 오늘 오랜만에 열띤 토론을 벌였네. 나의 상태에 대해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것.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대해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것. 그런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이야기들은 어디로까지 뻗어나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