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10월 25, 2021
웃기고 싱거운 댓글 하나를 읽고는,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이며 그 댓글을 곱씹다가 생각했다.
요즘 우리가 빠져있는 아티스트를 생각하다가.. 무언가를 시작하게 하고,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 이 사람들을 보면서 그 긍정적이고 놀라운 에너지에 감동하는 동시에, 그 에너지가 뻗어나가는 다른 방향성도 그려본 것이다. 그들의 이미지를 송출하는 방송국과 그에 관계된 사람들, 기관들로 생각이 뻗치자, 누군가는 내가 받은 그 에너지를 이용해서 번 돈으로 온갖 악한 짓들을 일삼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은 것이다. 사실 너무나 당연한 구조이긴 했으나, 갑자기 하나의 원이 머리 속에서 형상화되면서 새삼 놀란 것이었다.
결국에 세상을 이루는 모든 일은 하나구나. 우리가 선하다고 말하는 것과 악하다고 말하는 것 그 모든 것은 결국에 하나로 이어져있구나.
그렇다고 허무감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세상의 이치라는 것은 늘상 당연하지만, 새삼 깨달을 때마다 놀라게 되는 것이다.
일시무시일 일종무종일
어쩌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일도 가치를 매길 수는 없는 일이겠거니 - 내가 한 일도 나의 것, 남이 한 일도 나의 것. 이안이가 오늘 유영철에 대한 끔찍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는데.. 그것도 결국엔 내가 한 일일 수 있다는 것. 비약이 아니라, 결국에 전체론적 관점에서 본다면.. 세상에 일어난 모든 일은 하나인 것이고, 하나에서 나온 것이기에..
내가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일.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는 끔찍한 일. 다 결국엔 하나의 일이고, 하나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아주 심플한 깨달음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내가 도출해낸 결론이 아주 맘에 들었다. 내가 하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 내가 바꿀 수 있는 능력은 없으니, 결국에 내가 할 수 있는 좋은 일들을 더 많이 하는 수밖에 없는 노릇이라는 것. 이것도 당연한 이치다. 전체론적 관점이 이렇게도 낙천적이다ㅎ
일요일, 10월 17, 2021
10월
토요일, 10월 16, 2021
수요일, 10월 13, 2021
수요일, 10월 06, 2021
우리는 벌써 시월.
오늘은 특히나 날이 쌀쌀하다. 일어나니 공기가 아주 달랐다. 입속은 자기 전보다 더 아팠다. 입병이 났다. 느긋하게 일어나 밥을 먹으려고 그저께 만든 카레와 밥을 차렸는데, 입이 아파서 먹질 못하고 오지에게 줬다. 나는 고구마를 구워 한 개를 겨우 먹었다. 우체국에 들러 볼 일을 보고, 빵집에도 오랜만에 들러 빵을 사 왔다. 아티초크가 들어간 지중해식 빵이 어찌나 맛있던지, 오지에게 남기지 못하고 다 먹어버릴 뻔한 것을 참았다. 다음엔 그걸 두개 사야겠다. 또 한참 누워있다가 오늘 사 온 커피를 겨우 해 먹었다. 커피를 마시고 또 겨우 일어나 고양이들 밥을 주러 잠깐 집 앞에 나갔다 왔다.
사실 이건 내 새로운 일상 중 하나가 되었다. 지난주 저녁에 집 앞에 늘 있는 깜냥이와 깡패를 데리고 놀고 있는데, 1층 이웃을 만났다. 나는 늘 그분을 알아봤는데, 그분은 날 늘 못 알아보신다. 우리 고양이들이 잘 지내냐고 물어보셨다. 잠깐 그렇게 인사를 하다가 갑자기 내게 고양이들한테 밥도 주고 그러냐고 그래서.. 깜냥이랑 깡패한테만 아주 가끔씩 준다고 했다. 그랬더니 갑자기 너무나 간절한 말투와 목소리로 내게 우리 동네 고양이들 밥 주는 일을 도와줄 수 있냐고 물어보시는 것이다. 나는 조금 당황했다. 사실 내 밥 챙겨 먹기와 우리 고양이들 밥 챙겨주는 것만으로도 내 삶이 벅차다고 늘 느끼곤 했는데, 내가 다른 생명에게 밥을 주는 일을 한다고 ? 모두가 이사하고 텅 빈 우리 동네 그 골목길 곳곳에 고양이들 밥을 주는 스팟들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다 그 분이 열 군데가 넘는 곳을 다 매일같이 챙겨주시고 계셨던 것이다. 매일같이 하다 보니, 오후에 일을 아예 못하신다고 하시면서, 체력적으로도 너무 힘들어서 내게 도움을 요청하셨다. 언젠가부터 누군가 내게 하는 부탁들을 다 경계하던 나는... 간곡한 그 부탁에 차마 거절할 수도 없었고, 사실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내가 하기 싫은 일도 아니고, 어쩌면 정말로 정말로 나도 하고 싶은 일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얼떨결에 알겠다고 대답을 하고 나니, 일사천리로 바로 그 아래 골목에 다섯 군데를 나를 데리고 다니시며 알려주셨다. 내게 주어진 임무는 매일 이 밥그릇들에 밥을 챙겨주는 것이다. 아이들이 늘 와서 밥을 먹는다고 했다. 나는 계속 얼떨떨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
그렇게 아이들이 밥을 먹는 장소들을 훑고 우리는 번호를 교환했다. 오지는 이 건물에 산지 거진 4년이 되었을 것이고, 나는 이제 이곳에 산 지 1년이 되었는데, 처음으로 이웃 누군가와 제대로 안면을 튼 것이다. 최 언니라고 부르라고 했다. 그렇게 번호를 저장하고 나는 집에 돌아왔다. 오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갑작스럽게 당장 내일부터 내가 이 일을 해야 한다고 하니 오지도 약간은 당황해했다. 다행히 우리 집에 우리 아이들이 먹지 않는 사료 한 봉지가 있어서 당분간은 이걸로 버틸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알바를 하는 주말 이틀은 빼고, 평일에만 내가 주기로 했다.
그저께였던가.. 밥을 주러 나갔다가 최 언니를 마주쳤는데, 내게 햄을 주겠다고 하셨다. 나는 햄을 먹지 않는다고 했다. 빼빼 마른 몸으로, 동네를 이곳저곳을 다니시는 최 언니. 걸음도 빠르시다.
정말 나의 인생에 주어진 어떤 작은 사명인 것일까. 이게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를 위한 것이 아닌 정말 다른 존재를 위해서 무언가를 직접 몸을 쓰는 일은 아마 처음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사실 이 일을 하면, 내가 수없이 다시 죽고 다시 태어나면서 갚아야 할 업을, 이렇게나마 아주 조금씩 갚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 참으로 알량한 인간의 마음이지. 그 와중에도 카르마를 생각한다. 무한히 죽고 다시 태어나야만 하는 인간으로서의 운명은 언제쯤 내게 고된 일이 아닌 것처럼 여겨지게 될까. 아직도 나는 견습생인 것이 사실인가 봐. 윤슬이가 알려줘서 알게 된 사비안 점성학. 나는 처녀자리 26도에 해당되었고, 그에 대한 설명에 따르면, 나는 향로를 들고 제단에서 신부를 돕는 소년이라고 한다. 어떤 영적인 가르침을 얻기 위해 그 옆에서 열심히 수련하는 어린이인가보다. 어떤 날에는 지극히도 영적이고, 무언가를 깨달아가는 것처럼 보이다가, 다시 세상의 것들에 즐거워하고, 모든 것을 놓아버릴 것처럼 노는 나의 모습을 보며 이해가 안 가는 부분들이 좀 있었는데, 견습생이라고 생각하니 이해가 간다. 나만의 정도를 걷고는 있지만 견습생의 신분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지. 아직도 견습생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것이 나의 운명인가 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