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10월 06, 2021

우리는 벌써 시월.

오늘은 특히나 날이 쌀쌀하다. 일어나니 공기가 아주 달랐다. 입속은 자기 전보다 더 아팠다. 입병이 났다. 느긋하게 일어나 밥을 먹으려고 그저께 만든 카레와 밥을 차렸는데, 입이 아파서 먹질 못하고 오지에게 줬다. 나는 고구마를 구워 한 개를 겨우 먹었다. 우체국에 들러 볼 일을 보고, 빵집에도 오랜만에 들러 빵을 사 왔다. 아티초크가 들어간 지중해식 빵이 어찌나 맛있던지, 오지에게 남기지 못하고 다 먹어버릴 뻔한 것을 참았다. 다음엔 그걸 두개 사야겠다. 또 한참 누워있다가 오늘 사 온 커피를 겨우 해 먹었다. 커피를 마시고 또 겨우 일어나 고양이들 밥을 주러 잠깐 집 앞에 나갔다 왔다.

사실 이건 내 새로운 일상 중 하나가 되었다. 지난주 저녁에 집 앞에 늘 있는 깜냥이와 깡패를 데리고 놀고 있는데, 1층 이웃을 만났다. 나는 늘 그분을 알아봤는데, 그분은 날 늘 못 알아보신다. 우리 고양이들이 잘 지내냐고 물어보셨다. 잠깐 그렇게 인사를 하다가 갑자기 내게 고양이들한테 밥도 주고 그러냐고 그래서.. 깜냥이랑 깡패한테만 아주 가끔씩 준다고 했다. 그랬더니 갑자기 너무나 간절한 말투와 목소리로 내게 우리 동네 고양이들 밥 주는 일을 도와줄 수 있냐고 물어보시는 것이다. 나는 조금 당황했다. 사실 내 밥 챙겨 먹기와 우리 고양이들 밥 챙겨주는 것만으로도 내 삶이 벅차다고 늘 느끼곤 했는데, 내가 다른 생명에게 밥을 주는 일을 한다고 ? 모두가 이사하고 텅 빈 우리 동네 그 골목길 곳곳에 고양이들 밥을 주는 스팟들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다 그 분이 열 군데가 넘는 곳을 다 매일같이 챙겨주시고 계셨던 것이다. 매일같이 하다 보니, 오후에 일을 아예 못하신다고 하시면서, 체력적으로도 너무 힘들어서 내게 도움을 요청하셨다. 언젠가부터 누군가 내게 하는 부탁들을 다 경계하던 나는... 간곡한 그 부탁에 차마 거절할 수도 없었고, 사실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내가 하기 싫은 일도 아니고, 어쩌면 정말로 정말로 나도 하고 싶은 일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얼떨결에 알겠다고 대답을 하고 나니, 일사천리로 바로 그 아래 골목에 다섯 군데를 나를 데리고 다니시며 알려주셨다. 내게 주어진 임무는 매일 이 밥그릇들에 밥을 챙겨주는 것이다. 아이들이 늘 와서 밥을 먹는다고 했다. 나는 계속 얼떨떨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

그렇게 아이들이 밥을 먹는 장소들을 훑고 우리는 번호를 교환했다. 오지는 이 건물에 산지 거진 4년이 되었을 것이고, 나는 이제 이곳에 산 지 1년이 되었는데, 처음으로 이웃 누군가와 제대로 안면을 튼 것이다. 최 언니라고 부르라고 했다. 그렇게 번호를 저장하고 나는 집에 돌아왔다. 오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갑작스럽게 당장 내일부터 내가 이 일을 해야 한다고 하니 오지도 약간은 당황해했다. 다행히 우리 집에 우리 아이들이 먹지 않는 사료 한 봉지가 있어서 당분간은 이걸로 버틸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알바를 하는 주말 이틀은 빼고, 평일에만 내가 주기로 했다.

그저께였던가.. 밥을 주러 나갔다가 최 언니를 마주쳤는데, 내게 햄을 주겠다고 하셨다. 나는 햄을 먹지 않는다고 했다. 빼빼 마른 몸으로, 동네를 이곳저곳을 다니시는 최 언니. 걸음도 빠르시다. 

정말 나의 인생에 주어진 어떤 작은 사명인 것일까. 이게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를 위한 것이 아닌 정말 다른 존재를 위해서 무언가를 직접 몸을 쓰는 일은 아마 처음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사실 이 일을 하면, 내가 수없이 다시 죽고 다시 태어나면서 갚아야 할 업을, 이렇게나마 아주 조금씩 갚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 참으로 알량한 인간의 마음이지. 그 와중에도 카르마를 생각한다. 무한히 죽고 다시 태어나야만 하는 인간으로서의 운명은 언제쯤 내게 고된 일이 아닌 것처럼 여겨지게 될까. 아직도 나는 견습생인 것이 사실인가 봐. 윤슬이가 알려줘서 알게 된 사비안 점성학. 나는 처녀자리 26도에 해당되었고, 그에 대한 설명에 따르면, 나는 향로를 들고 제단에서 신부를 돕는 소년이라고 한다. 어떤 영적인 가르침을 얻기 위해 그 옆에서 열심히 수련하는 어린이인가보다. 어떤 날에는 지극히도 영적이고, 무언가를 깨달아가는 것처럼 보이다가, 다시 세상의 것들에 즐거워하고, 모든 것을 놓아버릴 것처럼 노는 나의 모습을 보며 이해가 안 가는 부분들이 좀 있었는데, 견습생이라고 생각하니 이해가 간다. 나만의 정도를 걷고는 있지만 견습생의 신분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지. 아직도 견습생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것이 나의 운명인가 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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