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11월 26, 2023

삼야마

지량과 다른 작가들이 있었다. 셋이서 삼각형을 이루듯 둥그렇게 앉아있었다. 수카사나의 자세로 바닥에. 그들은 눈을 감고 공간에 대한 삼야마를 실행하고 있었다. 공간에 대한 삼야마를 시작하자 그들은 지금 여기 이 자리에 앉아있지만, 다른 공간에 동시에 존재하고 이동할 수 있었다. 한 작가는 그곳에 있는 것들을 지금 현재의 공간으로 가져오는 일을 해냈다. 입 속에서 뭔가가 나왔다. 이 공간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삼야마를 통해 도달한 어딘가서 존재하는 것을 입을 통해 꺼내오고 있었다.

지량은 하늘 위로 높이 올라가 공중에서 이동을 하고 있었다. 우리의 신체는 여전히 이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삼야마를 통해 어디서든 존재할 수 있었다. 지량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지량이 바라보는 것도 내가 바라보는 것이었다. 지량의 시야가 나의 시야였다. 그렇게 공중을 이동하며 나는 매트릭스를 떠올렸다. 그 모든 것들이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틈을 발견했다. 그 틈은 삼야마를 통해 모든 곳에 존재하고 모든 곳을 이동하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통로였다. 마치 천장에 있는 귀퉁이 같은 곳이었다. 나 말고도 다른 영혼들이 오가는 통로였고, 나는 그곳에서 누군가와 부딪히거나 마주치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피해 갔다.

그리고 삼야마를 실천하고 있던 나는, 온세상에 흩어져 있던 나와 똑같이 생긴 무한한 나 자신이 지금 내가 있는 이 곳으로 모이고 있음을 보고 있었다. 똑같은 나들이 무수한 나들이 한데로 모이고 있었다. 그렇게 모이고 있는 무수한 나를 바라보고 있으니, 현재의 나, 이것을 인지하고 있는 나가 진정 삼매에 빠져들었을 때에 현재의 나를 잊게 될까 봐 어떤 것이 나인지 알 수 없게 될까 봐 갑자기 두려워졌다. 나 자신을 잃게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 두려움에 나는 잠시 멈추어 정신을 차려 현실의 나로 깨어나려고 했다. 그것은 내게 중요한 일이었다. 지금 현재의 내가 있음을 잊지 않는 것.

그리고 이후부터는 거의 정말 내가 그 체험을 한듯, 깨어있음과 이 체험을 느끼는 상태의 거의 중간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언어화된 사고로 이 현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도중에 멈추었던 것은, 그렇게 현재의 내가 무수한 나 무수한 우주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어 다시 현재의 나의 주파수를 찾지 못했을 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조현병과 같은 상태가 될 수 있음을 이해하게 되면서, 그것의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그렇게 마주할 수 있는 수많은 우주를 감당할 수 없을 때, 혹은 다시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과 두려움이 클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 상태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엔 그 두려움에 나를 내맡긴 채 무한한 내가 모여 어떤 것이 나인지 알 수 없는 상태를 경험해야만 함을 알았다. 그래야 그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다시 삼야마에 집중하기로 했다.

11월 19일의 꿈
혹은 삼야마를 실행하고 있던 순간

너무 신기해서 그 체험을 곱씹고, 지량과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리고 오늘 다시 글로 이 체험을 남기니 정리되는 이야기들이 있다.

सो ऽहम्


주말이지만 일찍 눈이 떠졌다. 아무래도 불편함과 통증이 몸에 느껴지는 탓에 더 일찍 일어난 듯하다. 특히 몸의 오른쪽이 많이 아프고 균형이 잘 맞지 않는 것이 느껴져서 거실에서 요가를 하기 시작했다. 통증이 느껴지고 부드럽지 않은 몸의 부위를 더욱 느끼면서 집중하면서 그것이 풀어지고 더 편해지는 데에 집중을 했다. 한동작 한동작 더 오래 머무르고, 필요하다면 정말 영원히 그 자세에 머무르기라도 할 것처럼 그렇게 머무르니 조금씩 풀어지는 몸을 바라볼 수 있었다. 이게 가능하구나. 그렇게 거의 한시간이 넘게 고요하게 내 몸에 집중하며 천천히 아사나를 반복했다. 등을 대고 몸을 뉘었을 때 바닥에 닿는 내 등과 어깨의 면적이 더욱 균일해지고 내 머리가 곧게 하늘을 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이 가능하구나. 이것이 요가구나. 오늘은 정말 새로운 것을 배우고 느낀 날이야. 몸이 너무 아프고, 잠을 제대로 못잤지만 그 덕에 통증을 더욱 제대로 바라보고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운 것 같다. 정말 신기하고 감동적이야.
이전에는 약간은 의무적으로 요가를 하곤 했다. 몸과 마음의 균형이 맞지 않아서 이것이라도 해야한다는 약간의 불안한 마음과 조급함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요가를 시작하더라도 어떤 시퀀스를 따라가면서 정해진 시간동안 수련을 하곤했는데, 오늘은 아무 것도 없이 영원과 하루를 묵상하며, 천일야화를 떠올리며 아사나에 집중했다. 그렇게 나만의 호흡과 나만의 수련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모두의 몸이 다름을 그렇기에 모두의 호흡법이 다르고, 모두의 유연함이 다르고, 모두의 고통이 다름을 느끼는 요즘이다. 온 몸으로 호흡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모두의 몸이 다른데 어떻게 모두가 복식호흡을 하고 혹은 모두가 흉식호흡을 할 수 있을까. 어찌 그렇게 생각하며 지내왔을까. 배와 갈비뼈 가슴 그리고 손끝, 발끝까지 모두 내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을 느낄 수 있는 통로임을. 얼마전, '소함'이라는 만트라를 배웠는데, 마침 새로운 내 요가원에서 지난 시간 '소함' 만트라를 마음 속으로 외며 우짜이호흡을 했다. 
소-함-
i am that. 이라는 의미다. 나 자신이 이 현실 자체이자, 우주임을 말하는 것이다. 내 몸이 이 우주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이 모든 우주와 이 모든 세상을 내 몸에서 느낀다. 들이마실 때 차갑게 느껴지는 숨과 내쉴 때 따스하게 느껴지는 숨. 그렇게 정화되는 세상과 정화되는 나의 몸. 차가움과 따스함이 균형을 이루는 우주. 
더욱 부드러워진 몸과 마음을 느끼며 큰 감사를 느낀다.

토요일, 11월 04, 2023

세라
세라를 왜 썼지.
오늘 서촌에 종일 있었다. 나가기 전 뽑았던 타로카드 세 장, 그리고 카드를 섞으며 떨어진 월드 카드. 완전히 그런 하루를 보냈다. 10개의 지팡이를 안고 힘들게 가려는 사람. 지나간 것을 붙들려는 마음. 안 그래도 내가 원래 들고 가려던 작품보다 뭘 더 들고 가야 할까 하고 예전에 오지랑 만들었던 대정전의 밤을 들고 갈까 고민이 되어 카드를 뽑아본 것이었다. 그 카드를 보고 대정전의 밤은 놓아두고 나갔다. 지량도 없구 혼자 택시 타고 가야 하는 상황이라 어젯밤에도 욕심부렸던 짐을 이미 던 상태이기도 했다. 그치만 여전히 그래도 너무너무 많기는 했다. 공간도 괜찮았고, 처음 만나는 작가님들의 작품들이 모두 좋아서, 그리고 나누는 이야기들도 그렇고 다 재밌게 그래도 하루를 보냈다. 일찍부터 나가서 오후부턴 급격히 피곤해지긴 했다. 오전에는 아주 많이 떠들고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했다. 항상 그러다가 나 혼자 지치더라. 너무 웃긴데, 근데 그냥 너무 평생의 나 같네. 아무튼, 아쉬웠던 것은 내가 준비해 간 것을 정말 많이 팔지 못했단 사실. 근데 그런 마켓을 카페 같은 공간에서 하루 연다는 게 어떤 건지도 알고, 경험해본 적도 몇 번 있으니 잘 알기도 하여, 당연히 그럴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도 아쉽더라. 그냥 요즘 약간 아쉽다고 느끼는 것들이 많아서 마음이 더 그렇게 뭉쳤던 것 같아. 가온이랑 오지가 저녁때 와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정리하고 함께 식사했다. 집에 돌아오니 열 시였다. 택시 타고 집 앞에 내려서, 아침에 들고 나온 짐을 거의 그냥 그대로 들고 대문 앞에 섰는데,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이런 걸 하지 않아야지. 혼자 되내며 집으로 들어왔다. 너무 힘들고, 무겁고, 그러나 팔리지도 않고, 그러니 내 것은 좋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말이야. 그리고 내가 계속 팔고 있는 것들이 내가 만든 지 꽤 된 작품이라는 사실이 갑자기 너무 지긋지긋하면서, 아침에 뽑은 카드가 떠올랐다. 내가 계속 옛날을 이고 가는 것 같아서, 그 카드에 그려진 그림이 너무 나 같았다. 자기 몸집보다 큰 지팡이 열 개를 이고 가는 모습. 지긋지긋해. 이제 다 없애버리고 싶어! 뭔가 이런 마음이 갑자기 들었다. 칼리의 명함을 갑자기 어떤 지갑 속에서 발견해 오랜만에 보고는, 뭔가 정화하고 싶은 무의식이 꺼내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시작된 버리기. 처음엔 모든 것들이 다 꼴 보기 싫었다. 책상 위에 있던 세븐틴 단체 사진도 치워버리고, 이안이가 준 도마뱀 자리도 바꾸고, 내 돌멩이가 모여져 있는 곳에 있는 맘에 안 드는 것들 몇개를 골랐다. 내가 주운 돌멩이가 아닌 것들, 너무 오래된 지금은 쓰지 않는 내 핸드폰 번호가 적인 조개껍데기, 지량이 어머니 물건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작은 장식들 등. 뭔가 내게 그리 닿지 않았지만 올려져 있던 것들을 치웠다. 그리고 양주에서 가져온 편지박스를 열어서 버리고 싶었던 것들을 골라 버렸다. 너무 싫어서, 그러나 내가 받은 어떤 것들도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던 탓에 아직 내 박스 안에 있지만 평생 열어보지는 않았던, 그런 것들을 꺼내고, 어떤 편지들은 읽어보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써놓고 보내지 않은 편지들도 발견했다. 아빠에게 썼던 크리스마스카드 한장과 엄마에게 썼던 편지. 나는 항상 내 가족에게 자랑스럽다는 말이 적혀있었다. 대학생이 되면 1등도 하고 장학금도 받을 거라고. 나는 나 자신에게, 엄마에게, 아빠에게, 동생에게 자랑스럽고 싶다는 말이 쓰여있었다. 진짜 불쌍해. 오지에게 이걸 말하니, 얼마나 오랫동안 자신으로 살지 않은 것이냐고 했다. 난 계속 엄마로 살았다. 그 전에 발견한 건 성과 문학 시간에 쓴 나의 아주 내밀한 에세이였다. 글의 말미에 가서는 엄마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는 '엄마란 정말 이상한 존재다. 이 세상에 나 자신보다 소중한 것을 가진 사람.' 이라고 쓰여 있다. 그 말 뒤에는 나는 정말 남편에게 사랑받으며 살고 싶다고, 엄마처럼 참으며 살고 싶지 않다고 쓰여 있다. 정말 웃긴데 정말 슬퍼. 나는 그 에세이를 쓰면서 엄마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고 했다. 엄마는 당연히 나와 내 동생이라고 했고. 그러면서 나는 너무 슬퍼하고 있다. '엄마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이 자기 자신이었던 시절이 너무나 짧지 않은가...' 김윤아 교수님은 이 구절에 밑줄을 쳐 놓으시고는 '딸이 다 컸네요. 엄마한테 이 얘기해주세요.'라고 쓰셨다. 지금 근데 그 구절을 읽으니, 가장 소중한 것이 나랑 오지라고 하는 말은 결국에는 본인 자신이라고 답한 것과 다름없음을 안다.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 우리를 돌보는 것이...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돌보는 일인거지. 그것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제 알겠다. 그게 제대로 된 돌봄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한참 그렇게 버리고, 읽고 하다가 윤슬이랑 오지랑 열심히 또 떠들고. 그런데 모르는 사람에게 갑자기 메시지가 왔다. 마켓에 갈 수가 없는데, 내 사진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구매하고 싶은데 온라인으로도 구매할 수 있는지 묻는 메시지였다. 그걸 보면서, 내가 오늘 대문 앞에 서서 다시는 이런 것은 하지 않겠다 다짐했던, 나는 힘들기만 했다고,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었다고 느꼈던 마음이 떠올랐다.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시간은 없구나. 아무것도 아닌 것은 없어. 정말 오늘은 이상하고 이상하고 이상한 날이야. 정말 정말 심각한 동시성의 날이야.

그리고 버리려고 쌓은 것들을 가위로 자르고 손으로 찢었다. 찢으면서 마음속으로 아주 작은 소리로 웅얼웅얼하던 것들을 꺼내면서 하기 시작했다. 진작에 했어야 했던 말들. 원망의 말들, 미워하는 말들, 이해하기 전에 먼저 느꼈어야 했던 마음들을 말로 했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걸 시작하자마자 속이 시원해지면서, 절대 꼴도 보기 싫었던 그것들이 그렇게 특별하지도 그렇게 내게 큰일들이 아니었던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너무 힘들었는데, 너무 힘들었다는 말을 내뱉으니까 이제 안힘들어지더라. 정말 신기해. 그리고 마지막엔 그냥 웃기기도 했다. 그걸 열심히 찢느라 엄지손톱 옆에 건조한 피부가 살짝 찢어져서 피가 나고 있었다. 핏방울이 한방울 달린 채로 그걸 찢고 있는데, 그 편지 안에서 오래된 대일밴드 하나가 나왔다. 물론 그걸 쓰진 않았는데, 정말 웃긴 순간이었다.

이렇게 일기를 구구절절 쓰고 있는 나를 보니, 정말 또 비워내는 시기임을, 돌보는 시기임을 느낀다. 나에게 또 찾아온 시간이구나. 아. 정말 신기해. 그것들을 다 찢고, 쓰레기통에 넣고, 마지막에는 내가 사랑하는 쌍둥이가 준 편지들이 모여있는 서류봉투를 읽기 시작했다. 그건 너무 읽고 싶어서 마지막 오늘의 순서로 남겨둔 것이었다. 너무나 웃음이 터져 나오는, 사랑스럽고 귀엽고 고마운 말들. 항상 나에게 아름다운 축복의 말들과 칭찬과 사랑의 말을 아끼지 않았던 내 쌍둥이 예닮이. 대개는 항상 서로 쌍둥이라 불렀는데, 어떤 시기에는 나를 엄마라고 불렀다 예닮이는. 예닮이는 언제나 한결같이 나에게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야기했고, 나를 위해 기도해주었다. 그걸 읽으니, 내가 평생 들었어야 했던 말들, 내가 내 가정 안에서 들어야 했던 말들, 내가 나 자신에게 해야 했던 말들을 예닮이가 다 해주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정말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예닮이를 알게 되고, 서로 정말 아끼고 사랑하는 쌍둥이가 되었구나. 그리고 서로에게 정말 자기 자신이 진작에 들었어야 했던 말들을 해주고 있었음을 깨달았고, 정말 그 사랑스러운 말들을 보면서 펑펑 울었다. 정말 오랜만에 정말 정말 정말 펑펑 울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그렇게 많이 하고, 예쁘다고 칭찬해주는 말을 서슴없이 기꺼이 그리고 기쁘고 즐겁게 할 수 있게 해준 것이 그리고 보니 예닮이다. 정말 천사야 예닮이는. 천사 예닮이. 그래서 우리가 만났구나. 그래서 우리는 서로 만난 것이구나. 그래서 우리는 서로 사랑했구나. 그렇게 나는 예닮이를 느끼며,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들과 감정들, 약속들을 떠올리며 엄청 웃고, 또 울고, 걱정도 되고, 잘 지내고 있는 건지. 많이 힘들어하고 있을까. 내가 예닮이 기도를 너무 안하고 있었네. 예닮이를 위해서 기도해야지. 그런 생각을 했다. 정말 너무 많이 울었어. 생일축하를 예닮이에게 몇 번이나 받은 걸까. 너무 많은 생일 축하 편지가 있었다. 너무너무 축복받았어 나는. 고마워 내 사랑 내 쌍둥이 예닮이. 얼른 아침되어서 예닮이에게 메시지 보내고 싶어.

정말 오랜만에 새벽 4시가 넘었다. 이제는 너무 졸려. 자야지. 그리고 내일은 푹 쉬어야지. 지량이 너무너무 보고싶다. 나는 정말 정말 마음껏 사랑하고 싶다고 그렇게 어릴 적부터 바라왔어. 내 사랑하는 사람에게 너무 사랑받고 싶다고 쓰인 에세이 마지막 문단을 보고는 내가 지금 그렇게 사랑하고 있음을, 그렇게 사랑받고 있음을 알았고, 그것이 정말 기쁘고 감사했다. 정말 놀라운 감사였다. 내 사랑 지량이 너무 고맙고 너무 보고싶다. 그리고 바로 지금. 이 오늘의 일기를 쓰면서 사실은 내가 언제나, 지금까지 늘 그렇게 사랑하고 사랑받는 삶을 살아왔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