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량과 다른 작가들이 있었다. 셋이서 삼각형을 이루듯 둥그렇게 앉아있었다. 수카사나의 자세로 바닥에. 그들은 눈을 감고 공간에 대한 삼야마를 실행하고 있었다. 공간에 대한 삼야마를 시작하자 그들은 지금 여기 이 자리에 앉아있지만, 다른 공간에 동시에 존재하고 이동할 수 있었다. 한 작가는 그곳에 있는 것들을 지금 현재의 공간으로 가져오는 일을 해냈다. 입 속에서 뭔가가 나왔다. 이 공간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삼야마를 통해 도달한 어딘가서 존재하는 것을 입을 통해 꺼내오고 있었다.
지량은 하늘 위로 높이 올라가 공중에서 이동을 하고 있었다. 우리의 신체는 여전히 이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삼야마를 통해 어디서든 존재할 수 있었다. 지량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지량이 바라보는 것도 내가 바라보는 것이었다. 지량의 시야가 나의 시야였다. 그렇게 공중을 이동하며 나는 매트릭스를 떠올렸다. 그 모든 것들이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틈을 발견했다. 그 틈은 삼야마를 통해 모든 곳에 존재하고 모든 곳을 이동하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통로였다. 마치 천장에 있는 귀퉁이 같은 곳이었다. 나 말고도 다른 영혼들이 오가는 통로였고, 나는 그곳에서 누군가와 부딪히거나 마주치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피해 갔다.
그리고 삼야마를 실천하고 있던 나는, 온세상에 흩어져 있던 나와 똑같이 생긴 무한한 나 자신이 지금 내가 있는 이 곳으로 모이고 있음을 보고 있었다. 똑같은 나들이 무수한 나들이 한데로 모이고 있었다. 그렇게 모이고 있는 무수한 나를 바라보고 있으니, 현재의 나, 이것을 인지하고 있는 나가 진정 삼매에 빠져들었을 때에 현재의 나를 잊게 될까 봐 어떤 것이 나인지 알 수 없게 될까 봐 갑자기 두려워졌다. 나 자신을 잃게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 두려움에 나는 잠시 멈추어 정신을 차려 현실의 나로 깨어나려고 했다. 그것은 내게 중요한 일이었다. 지금 현재의 내가 있음을 잊지 않는 것.
그리고 이후부터는 거의 정말 내가 그 체험을 한듯, 깨어있음과 이 체험을 느끼는 상태의 거의 중간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언어화된 사고로 이 현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도중에 멈추었던 것은, 그렇게 현재의 내가 무수한 나 무수한 우주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어 다시 현재의 나의 주파수를 찾지 못했을 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조현병과 같은 상태가 될 수 있음을 이해하게 되면서, 그것의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그렇게 마주할 수 있는 수많은 우주를 감당할 수 없을 때, 혹은 다시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과 두려움이 클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 상태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엔 그 두려움에 나를 내맡긴 채 무한한 내가 모여 어떤 것이 나인지 알 수 없는 상태를 경험해야만 함을 알았다. 그래야 그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다시 삼야마에 집중하기로 했다.
11월 19일의 꿈
혹은 삼야마를 실행하고 있던 순간
너무 신기해서 그 체험을 곱씹고, 지량과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리고 오늘 다시 글로 이 체험을 남기니 정리되는 이야기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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