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4월 13, 2024

이불 속에 들어갔다. 문득 준비하고 있는 전시와 관련해서 줄 하나를 꼬았다. 이불을 덮는 것. 이불 속의 나를 만나는 것. 작업 생각이 문득 떠오르긴 했지만, 금방 그것을 흘려보내고, 다시 나는 내가 가기로 한 시간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이불 속에 있는 나를 만나러 가는 일은 어렵지 않다. 내가 이불 속에 덩어리진 채로 보이는 것은 그래도 어렵지 않은가 보다. 지난 명상에서 나를 만나러 갔을 때에는 아무런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어떻게 소리가 전달되는지, 어떻게 마음이 전달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무언가 나를 거부하고 밀어내는 느낌은 아니었으나 아직 완전히 닿지 않은 것 같았다. 오늘 다시 그 상태를 느끼다가, 나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여전히 나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나에게 말을 걸기 위해 이런저런 방식들을 고민하다가, 어쩌다 보니 무엇을 원하는지 들을 수 있었다. 내게 '언니가 어떻게 좀 해봐'라고 내가 말했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 이불을 박차고 나와 엄마에게 가서 말했다.

엄마, 지금은 밤이야. 너무 늦었어. 너무 시끄럽고, 무서워. 나는 잠을 자고 싶어. 편안하게.

엄마는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하지만 아빠가 힘들게 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듯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아빠에게도 뭐라고 나는 말을 해야 했다. 하지만 아빠가 만나지지 않는다. 아빠의 얼굴이 나타나지 않는다. 항상 엄마 너머로 어떤 목소리 혹은 어떤 이미지로만 아빠가 존재한다. 그러고 보니 내가 중곡동에 살던 시절에 집에서의 아빠 얼굴이 정말 많이 없다는 것이다. 이 일지를 쓰는 동안 갑자기 몇 가지 기억이 떠오르긴 해서 다행이라 여겨진다. 아무튼, 어떻게 좀 해보라는 말을 건넬 아빠가 명상하는 동안에는 떠오르지 않았고, 만나지지가 않았다. 나는 아빠에게 수화기 너머로 말하듯 말했다. 우리가 너무 힘들다고, 어떻게 좀 해보라고. 어디에 있는 거냐고. 나타나라고. 아무튼 오늘은 내가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었다. 말을 할 수 있었고. 이것이 다른 시간의 나와 대화하는 법인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불 속의 나는 항상 답답하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덥다. 이불 밖 켜진 불빛이 느껴진다. 소리가 들린다. 이불 밖에서 나는 잠들어 있지만, 이불 안에서 나는 깨어있다.

약 30분간 시간을 보냈다. 오늘은 왠지 누워서 온몸의 가지들을 완전히 이완하면서도 명료한 의식으로 명상을 할 수 있었다. 싱잉볼 소리를 듣는 동안에는 나도 모르게 자연스레 목이 꺾이었는데, 아마도 목의 앞부분에서 무언가가 정화되는 것 같았다. 목 근육들이 조금 부드러워진 것 같다. 30분간 시간을 보내고, 오늘 이불 속의 나와의 만남은 여기서 정리되는 것이 느껴졌다. 다음에는 아마 더 많은 것을 말하거나 해낼 것 같다. 그리고 아마 또 다른 시간 속에 존재하게 될 것임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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