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를 배우기 위해서, 핍박받고 차별당하는 현실을 체험했어.
요즈음 그런 생각을 했다. 핍박받고 차별당하며 느낀 두려움과 분노의 감정들, 그것들을 해소하고 정화하기 위해서 그런 현실을 체험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용서를 배우고 양보를 배우기 위해, 자비를 배우기 위해 그런 현실을 창조한 것이라고.
지나가는 차들이 걸어가는 사람들과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꼭 차로 받을 것처럼 지나가고, 꼭 위협하는 것처럼,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너무나 화가 나는 한편, 얼마나 조급하고 좁은 마음들이 저런 행동을 하게 하는 것일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내가 지나온 모든 화가 나는 현실들이 어쩌면 내가 진정으로 이 생에서 용서를 배우기 위해서 창조된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감정을 느끼는 것이 가장 큰 목표가 아니라 말이다. 감정을 느끼고, 온전히 그것을 느끼고 분노가 사라지고 나면 그때 우린 용서를 하게 될 거야. 그것이 어쩌면 결국에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인 거야.
기쁜 것도 슬픈 것도 느끼지 않는 상태란, 모든 것에 무감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일어난 그대로 받아들이고, 떠나보낼 수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겠지.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 바가바드기타에서 일어나는 일. 그것이 그런 말일 거야. 지겨웠던 구절들이 지나가고 밭과 밭을 아는 것에 대해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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