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하루종일 바보를 생각했다. 내가 왜 그동안 예이츠를 읽지 않았을까? 어쩌면 지금 만난 것이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예이츠가 이렇게도 초월적인 것들을 연구하던 사람인 줄 몰랐다. 마야력에 의하면 12일부터 채널의 날이 시작되었는데, 정말 계속해서 동시성을 느끼고 있다. 다시 모든 자연에 감응하게 해주세요.
바삐 단서들을 찾아다니느라 말을 할 정신도 없을 정도이다. 정신을 종잡을 수 없는 바보가 되고 싶다. 뿔피리의 달콤한 선율과 사냥개의 이빨을 마주칠 수 있는 곳에서.
예이츠의 시를 읽고, 예이츠의 '바보'가 의미하는 바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논문을 읽었다. 그가 나눈 달의 위상과 그에 따른 인간의 성격들 중에서도 바보는 도를 깨우치는 단계에 있는 거의 도인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였다. 며칠 전 본 이란의 60년 동안 씻지 않은 할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네오. X. 성경에 나오는 짐을 거부하는 당나귀. 갈색 산토끼. 시에 등장하는 이미지들과 예이츠가 설명하는 세상의 도에 대해서 읽다가 산토끼에 푹 빠져서 산토끼를 열심히 검색했다. hare라는 단어도 오늘 알았다. 그러다가 뒤러가 그린 산토끼를 발견했다. 도대체 그는 그리지 않은 것이 뭘까. 뒤러의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산토끼를 저장하고.. 계속 바라보았다.
산토끼를 보다가 또 발견한 것은, 세 토끼라는 오래된 상징이다. 원형으로 달리는 세 토끼가 그려져 있는데 각자 두 개의 귀 중 하나는 다른 토끼와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 사실상 그 상징에서 귀는 총 세 개가 된다. 토끼 셋과 귀 셋. 불교, 이슬람, 기독교 등 거의 모든 종교와 문화에서 발견된 상징이라 더 신기하다(뒤러의 그림 중에 세 토끼가 등장하는 것이 또 있었다...). 켈트족의 트리퀘트라와도 연결할 수 있는 상징이다. 그리고 이 상징들은 다시 labyrinth로. 신기하게 멀리 떨어진 각각의 문명에서 상징하는 것들이 결국에는 하나로 모이곤 한다. 또다시 전체론적 바보.. 전체론적 미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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