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5월 11, 2021

계절이 이동하는 때

폭신한 이불을 빨았다. 이제 장롱으로 들어간다. 드디어 계절이 이동한다. 정확하게 그것을 느끼는 날이 되어서야 내 침구와 집을 바꾸는 일을 시작하게 된 것 같다. 오늘 은이언니를 만났다. 평내호평에 처음 가보았다. 우리 집에서 두 시간 거리. 은이언니가 어릴 적부터 살던 동네에서 밥을 먹고 디저트와 커피를 사서 언니네 집엘 갔다. 아파트에 가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우리 예전에 살던 현대우성아파트가 생각났다. 내일모레 이사를 한다고 하여 집에 짐과 잡동사니가 가득했다. 언니는 대학 시절에 쓰던 암실 장비들을 내게 챙겨주었다. 전부터 내게 챙겨가라며 연락이 와서 오늘에서야 내가 드디어 언니 집에 방문을 한 것이다. 이사를 떠나기 전이라 다행히 내가 조금이라도 짐을 더는 데 도움이 되었기를.. 정말 많은 장비들을 언니가 챙겨줬다. 갖가지 장비가 많았다. 정말 언니는 암실 작업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 시간과 애정이 담긴 물건들을 받아오니 나는 부자가 된 것 같다. 역시 오덕이 최고야. 오랜만에 풍족함을 느껴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었네. 언니랑 나는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그대로였다. 이상하게 항상 그렇다. 몇 년 만에 만나도 똑같은 우리들. 배가 한참 동안 불렀다. 집에 와서 잔뜩 챙겨온 장비들을 오지에게 자랑하고 오지가 시킨 피자를 함께 먹었다. 나는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아 한 조각만 먹었는데 지금은 배에서 천둥소리가 난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 하던 작업을 마저 이어서 하려니 오지가 옷장을 정리하자고 했고 우리는 새벽 한 시가 되도록 정리를 했다. 기부할 것들과 장터에 나가서 판매할 것들, 인스타 마켓에서 판매할 것들. 큰 할 일을 정리했다. 그리고 또 해야 할 일들이 많아졌다. 오지와 나는 거의 옷을 함께 입기 때문에 옷에 담긴 사연들도 잘 알고 있다. 오늘 옷들을 정리하고 가장 큰 목표였던..정말 오래되고 낡은 옷들을 처분하는 것..을 하면서 떠드느라 한참을 웃고 그랬다. 이상하게 너무 즐겁고 재밌는 작업이었다. 우리가 오랜만에 함께 신나게 웃고 떠든 것 같네. 귀여운 내 동생 오지은. 웃긴 것은 그런 와중에도 정말 낡아 거의 투명할 정도로 얇아진 옷들 몇 개는 영원히 간직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애착 옷이라고 부른다. 내 하늘색 셔츠는 정말이지 언젠가 사라져버릴 것 같다. 절대 버리지 못하는 것. 웃기다. 이것 외에도 나는 아마 정리할 것이 참 많을 텐데 무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콤팩트한 살림살이 만들기. 처녀자리의 올해 숙제. 아 해야 할 일들은 산더미네. 오늘 그래도 내가 오지와 함께 정리를 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많이 내가 괜찮아 진 걸까. 그런 면에서 나를 좀 칭찬해도 되려나. 사실 뭐 나 자신을 칭찬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오늘 은이언니가 했던 말이 생각나서 그런다. 자기 자신을 칭찬하는 글을 써야 하는 숙제가 있었는데 하나도 쓰질 못했다는 이야기. 나는 그래서 오늘 옷 정리를 한 나를 칭찬해보면 어떨까 했다. 사실 도중에는 참 자책하고 부끄러운 순간도 많았지만서도 말이다. 요즘 피곤해서 그런 걸까 무엇 때문일까 다래끼가 나려는 징조가 보인다. 왼쪽 눈 눈꺼풀이 욱신거린다. 요즘 꿈에 시달리다시피 많이 꾸고 많이 잠에서 깬다. 오늘은 연쇄살인범이 등장했다. 정말 많은 사람을 죽이고 아무렇지 않게 잘 살던 남자. 아내와 아이도 죽였다 나중엔. 그 연쇄살인범을 찾기 위해 내가 내 파트너와 엄청 열심히 뛰어다녔다. 오늘은 도대체 어떤 꿈을 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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