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도 오지에게 황홀경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트랜스상태에 대한 글들을 읽으며 말이다.
황홀경과 트랜스상태를 직접적으로 연결지어 생각하거나 말해본 적은 없었지만.
갑자기 그 날 깨달은 바로는, 트랜스상태가 바로 내가 수없이 느꼈던 황홀경이란 것이었다.
나는 수없이 황홀경에 빠져 벅차오르는 그 현재의 상태를 글로 남기곤 했다.
요즈음 그로부터 잠시 멀어져있었다.
나의 감각이 모두 막혀버린 것일까, 혹은 내가 모든 것들로부터 단절되어 버린 것일까. 이런 생각에 빠져버려서는 아마 그날 나는 그렇게 트랜스상태에 대한 연구들을 찾아 읽었던 것 같다.
오늘 내가 마틸드정원에서 부는 바람 속에 존재하며 본 것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선들.
그것들이 순식간에 그려졌다.
어쩌면 다시 세상과 내가 이어지는 순간이었을까 ?
내가 오늘 확실히 알아낸 것이 하나 있다.
황홀경을 느끼는 순간이 과연 어떤 순간인지를 알았다.
그건, 내가 현존하는 순간이었다.
현재에 존재하는 순간.
평소에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순간은 과거와 미래 사이의 어떤 한 지점일 뿐이다.
모든 생각과 행동은 나의 과거와 미래 사이를 잇는 현재라는 지점에서 이뤄지는 것이므로, 누구도 현재를 생각할 수가 없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에겐 이미 과거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반합으로 향하는 이 직선 위에 놓여진 시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만 존재하는 순간
나에게 현재만 존재할 때에
그 때에 나는 황홀경을 느끼는 것이었다.
아아.
이제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그렇기에 앙팡테리블이 더이상 놀이에 빠지기 어려워졌던 것이다.
집에 황홀한 체험이라는 책이 있는데, 예전에 예전에 그 책을 우연히 발견하고는, 그 책을 통해, 벅차오르는 어떤 감동의 순간, 설명할 수 없는 큰 기쁨과 행복의 순간을 황홀경이라고 말한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지금껏 느껴왔던 그 알 수 없고, 놀라운 순간들이 황홀경이란 것을 그 때에 처음 알았다. 그 책에서도 저자는 황홀경에 대해서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만 사람들의 다양한 체험을 옮겨놓으며, 어떤 상황에서 사람들이 황홀경을 자주 느끼는지, 그 순간은 어떤 날씨였는지, 어떤 시간이었는지..
대체로 자연 속에서나, 종교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어떤 물질적인 것들을 섭취함으로써 느끼는 경우도 있고..
아무튼 나는 이제 그 트랜스상태, 황홀경이 어떤 상태인지 명확히 말해줄 수 있다. 누군가가 궁금하다면.
명상이나 수행을 통해서도 이 상태에 오를 수 있다고 한다. 불교의 수행에서는 이 순수한 극도의 쾌락상태도 초월하여 무아의 지경으로 오르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한다는데...ㅎ
나는 사실 이 황홀경이 내게 궁극적인 상태인데 말이다. 이걸 살면서 이렇게나 자주 느낄 수 있었던 것에 이미 내 인생에 크나큰 감사를 하고싶은 지경이다. 아. 오늘 너무 오랜만에 느껴서 마음이 충만해졌다. 내가 너무 삶이란 것에 매몰되어 있었던 것 같다. 내 정신에 매몰되어 있었다.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짓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도 내가 마주했어야 할 시간이었겠지.
그러나 진정한 무아의 지경이 무엇인지 궁금하기는 하다.
화요일, 1월 28, 2020
황홀경
내가 이 세상과 연결되어 있음을 강하게 느낀다.
갑자기 순식간에 우리를 둘러싼 모든 선들이 그려졌다.
정말 빠르게.
진한 색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황홀경.
아. 너무나 슬펐지만 같은 이유로 나는 너무나 행복하다.
모두가 연결되어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커다란 형벌이자 축복이었다.
일요일 아침처럼 편안하다는 노랫말이 내 귀로 쏙 하고 들어온다.
찬바람이 내 온몸 구석구석을 스쳐지나갔고 나는 정말 일요일 아침처럼 편안했다.
그 가벼움에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집에 고양이가 새로 왔다. 이름은 사라.
사라와 세라.
어젯밤 멜리나에게 사라 이야기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말했다.
마틸드 정원을 거닐으며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빛을 보다가 그의 말이 번뜩했다.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었다.
여기에 와서 나는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이곳에 온 것은 정말 우연이 아니었어.
내가 마르세유에 온 것은.
저 커다란 햇살이 아니었으면 내가 쓰지 못했을 말들이.
담아내지 못했을 무수한 물결이.
마틸드 정원은 별 특별할 것도, 대단한 것도 없는데, 이곳에만 오면 나는 평범한 그 풍경 속에서 이상하리만치 큰 감동을 받는다.
나무가지가 세게 흔들린다.
나는 또 몸을 바르르 떨고.
행복한 눈물이 나온다.
내게서 황홀경이 완전히 떠나간 줄 알았어.
금요일, 1월 17, 2020
부드러운 영혼
중학교 때 매일 아침마다 알람 삼아 틀어놓았던 라디오.
아침 7시가 되면 자동으로 라디오가 켜지도록 설정해놓고는, 학교 갈 준비를 하는 내내 라디오를 들었다.
황정민 아나운서의 웃긴 실수들이랑, 새로 알게 되는 노래들ㅎ
유난히 그 아침 시간 황정민의 FM대행진에서 자주 들었던 것 같은 노래가 하나 있다.
이상은의 비밀의 화원.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이상하게 가슴 아래가 울렁거리면서 오묘한 기분이 들곤 했는데, 지금도 그렇다.
오늘 우연히 아는 친구 덕분에 이상은님 최근 앨범도 찾아듣고, 인터뷰 기사도 읽어보았다. 오늘 이 재회는 어쩌면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되찾아야만 했던 목소리가, 말들이 있었다. 내가 정말 감동받았던 것은, 데뷔 30주년을 맞은 그가, 새로 낸 앨범 속에서도 언제나처럼 깨끗하고, 밝고, 맑은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어쩜 이렇게 자신의 모습을 잘 지키며 살아왔을까. 그렇게 계속해서 시를 쓰고, 소리를 낼 수 있도록, 얼마나 마음을 다잡았을지, 그리고 혼자 연습을 했을지. 그는 어린 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 말했다. 그러고보니 내게 감동을 주는 아티스트들은 모두 한결같이 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은 사람들이다ㅎ 장 루이 선생님도 그렇잖아. 네모난 파트리스 선생님도 그런 것 같고 말이야..
아이의 모습,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변치 않을 나 자신의 본질일 것이다.
나 자신을 지킬 수 없을 때에, 삶은 살아낼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갑자기 요즈음 내가 얼마나 징그럽도록, 내 삶을 나 자신과 분리시키려고 했는지를 생각했다. 삶이란 것이, 혹은 죽음이란 것이... 아무렴 아무 것이란 것이 나를 쫓아오는 것 마냥. 혹은 쫓아내는 것 마냥.
나의 것은 내가 하는 것이다. 나의 시는 내가 쓰는 것이고, 내 사진은 내가 찍는 것이고, 나의 말은 내가 하는 것이다. 사는 것도 그렇다. 그러니, 삶이란 것은 지극히도 자연스러운 것이어야 한다. 왜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늘 싸워야만 하는 걸까. 어제는 오지에게 그런 말을 했다. 나의 영혼이 강했으면 좋겠다고ㅎ 나는 신약한 사주를 가졌던데, 어쩌면 그게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지금 듣고 있는 노래가 말한다. 강하다는 것은 부드러운 것이라고ㅎ 정말. 나의 영혼이 강했으면 좋겠다. 나의 영혼이 부드러웠으면 좋겠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편안하고 그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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