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11월 14, 2019

기적

기적이 일어났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정말 오랜만에 경험하는 놀라움과 슬픔과 기쁨이었다.
전말은 이렇다.

나디르가 오늘 저녁에 바나나와 사과를 정말 잔뜩 주워왔다. 이걸 가지고 무얼만들까 하다가 우리는 크럼블을 만들고, 잼을 만들기로 했다. 잼을 보관하기 위해 유리병 두개를 준비해놓았다. 열심히 잼을 만들고 보니, 병이 하나 모자라서 우리는 여기저기 구석을 둘러보던 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디르가 냉장고 위를 보더니 놀라 즐거워하는 것이었다. 나는 커다란 병을 찾았구나하고 생각했다. 나디르는 내게 빨리 저기 보라며 웃고 있었지만 내가 키가 작아서 그런지 나는 아무리 봐도 아무 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그래서 나디르가 나를 들어줬다. 순간 내 눈 앞에 보인 것은...
6월에 사라졌던 달팽이었다.. 정말 나는 아무 말이 나오질 않았다. 냉장고 위에 있는 벽 모서리에 달팽이가 붙어있던 것이다. 한번도 그곳은 쳐다보지도 않았던 것 같다. 달팽이를 찾는답시고 매일 여기저기 서랍장 아래 어두컴컴한 곳은 살펴보았지만 말이다...
나는 정말 당연히 죽었다고 생각했다. 수개월이 지났고, 달팽이가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었을텐데 분명 말라죽었을거라고 생각하고 이따금씩 그 말라죽었을 달팽이의 몸을 생각하며 슬퍼했다. 나디르가 달팽이를 벽에서 떼어냈다.
죽었을거야. 라고 나는 말했다.
나디르는 달팽이를 떼어내 들여다보았다. 나는 너무나 슬퍼져서, 거기에서 죽었을 달팽이에게 너무 미안해서 말없이 놀란 가슴만 부여잡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나디르는 몸이 보이지 않는다며, 안 속에 들어가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물을 얕게 받아놓고 싱크대에 달팽이 몸이 계속 물에 닿도록 해주었다.
달팽이 몸이 조금 나왔다.
나는 그때까지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정말 달팽이는 아주 조금씩 나오고 있었다. 나는 정말 숨을 죽이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고, 너무나 큰 감동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죽었을거라고 생각했던 달팽이가 살아있었다니. 먹을게 무어가 있었을까. 달팽이는 6월에 없어졌는데, 지금은 11월이란 말이다. 참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오만가지 생각이 지나가는 중에 나는 달팽이를 통해 내 생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이렇게 작고 약해보이는 것도 이렇게 살 수 있구나. 나는 너가 죽었을 거라고 단언했건만 이렇게 살아있었구나. 나는 왜 그렇게 그의 죽음을 확신했지. 사라졌을 때, 그를 응원하지도 않았고, 그저 죽음의 길로 갔다고만 여겼던 것이 참 바보같고, 나빴다는 생각을 했다. 그건 내가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래서 참 내가 놀랐던 것이다. 가슴이 철렁했다. 나는 내 자신이 생을 살아낼 수 없다고 은연 중에 생각하는거야. 저 달팽이처럼, 아무 것도 없는 곳에 ,먹을 것도, 마실 것도, 나를 구해줄 이도 없는 그런 곳에 혼자 내팽겨 쳐져 있다고..
그러나 너는 살아있었다. 먹은게 없으니 몸도 자라지 않았고, 집은 튼튼해보이지 않았고, 활발한 성격도 약간 바뀐 것 같았지만. 살아있었다. 잠을 자고 있었다. 계속 그를 쳐다보는 것이 신기하고 안쓰럽고 귀엽고. 정말 기적같다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어쩌면 그에겐 당연한 생의 법칙이었을 것이다. 달팽이에 대해서 알아보니, 물과 음식이 없이도 수개월을 살 수 있다고 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동면에 들어가기도 하고 말이다.
그치만 나는 너무나 놀라 계속해서 이건 기적이야 하고 계속 생각했다. 그렇다면 기적은 생의 법칙이구나. 어쩌면 너무나 당연했던 사실이었을 수도. 달팽이를 바라보는 내게 나디르가 그랬다.
“봐. 그는 그렇게 약하지 않아.”
정말로. 약하지 않았다. 너무 강한 아이였다. 기특해. 나는 너무 놀라버렸어. 너무 행복해. 너무 고마워. 그 작은 달팽이를 보고 나는, 나도 살 수 있겠구나하고 생각해버렸다. 우리 살 수 있는 세상이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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