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8월 13, 2018

옥상에 올라가 파이프를 피우는데 저 앞에 하늘에 직선의 빛줄기 몇개가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보았다. 내 눈이 잘못됐나하고 똑똑히 보려고 했는데 정말로 그 빛줄기들은 사라졌다가 나타났다가를 반복했다. 저 동네는 뭐 반짝반짝 재미난 일이 일어날 곳이 아닌데 하면서 혹시 드디어 나에게 이제 새로운 것을 보는 능력이 생긴 걸까하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졌다. 개나 고양이처럼 자기장을 본다던가 다른 차원의 어떤 물질을 볼 수 있게 되는 것 말이다. 하늘에 피어나는 아지랑이들과 빛줄기들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는 그런 생각도 이내 그만두었다. 사실 그건 분명히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보일 만한 빛줄기였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한번 거창한 생각을 해보았다.

스물에는 넘치는 행복을 내 몸으로 다 담을 수가 없어 어쩔 줄을 몰랐는데, 스물 다섯 쯤이 되었을 때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불안을 느꼈다. 왜 나에겐 늘 중간이 없는 것일까, 좀 편안해질 수는 없을까하는 둥의 생각을 매일 했던 것 같다. 이제는 그 모든 에너지의 흐름들이 축. 하고 가라앉아서는 올라설 기미를 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혹시 이게 내가 어떤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표시는 아니었을까하고는 그런 허무맹랑한 생각을 해본 것이었다. 그 허연 빛줄기들. 그냥 모두가 이런 나이들과 이런 감정을 거쳐서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고, 쉰이 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일까 ? 삶이란 것은 어딘가로 향하는 과정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어쩌면 삶이란게 정말 순차적으로 어떤 단계를 밟고 밟아 죽음으로, 그저 늙은 상태로 나아가는 과정이면 어쩌지하는 생각이 들어 두려워졌다. 아무 것에도 크게 감동하거나, 기뻐하거나, 슬퍼하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일 것 같다.

그러다가 갑자기 제임스 블레이크 노래가 나왔다. 얼마전에 현대 대중음악 시장이 제임스 블레이크를 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글을 보았던게 생각이 났다. 정확히 어떤 글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부분만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나는 여느 때처럼 다음 곡으로 넘기지 않고 그대로 제임스 블레이크가 입을 떼기를 기다렸다. 심지어 나는 내 플레이리스트에 그의 노래가 아직까지 남아있는지도 몰랐다. 빌헬름 스크림이 나오고 있었고, 그가 드디어 말했다. 아뿔싸. 그것은 지금 내가 마음 속으로 되내고 있는 말이었다. 그는 내 마음을 정확히도 말하고 있었다. 울고 싶었다.

어제, 어제도 목에 울음이 가득차 있었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하루종일 멍한 상태로 일을 하고 하루를 보내다가 겨우 오늘을 맞이했다. 목에 걸린 울음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나는 울고 싶었다. 며칠 전엔 그림을 그려보려 했지만 잘 되질 않았다. 끄적거린 종이들을 그냥 전부 찢어버리고는 고양이만 남겨놓았다. 고양이는 찢어버리기 좀 그러니까.

나에게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 하고 싶은 것도 해야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나를 집어삼켜 두려움만이 남아 있었다. 계속 운명이 어쩌니 저쩌니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질 않았다. 나에게 운명이란 것이 있다면 그것을 내가 받아들이기 힘들 때에, 그것이 전혀 내가 원한 것이 아닐 때에, 나는 그럼에도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두려움이 나를 집어삼켜버렸다. 그치만 으레 내가 해왔듯이 그 와중에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이다. 아무 것도 없다는 두려움을 느낄 때에, 나에게 두려움이란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실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나는 두려움이란 것을 갖게 된 것이다. 이것으로 무엇을 할까 생각했다. 그래서 일단 글을 먼저 썼다. 파이프를 다 피우고 들어간 후에는 다 연기처럼 사라질까봐 핸드폰을 열어 메모에 일단 빛줄기의 이야기며, 제임스 블레이크의 노래며 다 적었다. 그리고 다시 그것을 여기에 옮겨적고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때에, 나에겐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아무 것도 없을 때에도 나는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 두려움은 어떤 형식으로라도 세상에 제 모습을 남기려고 애를 쓸 것이다. 괴상한 붓질이라던가, 작은 메모라던가, 작은 비디오라던가, 사진이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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