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불교의 꿈 요가를 배우게 되면서, 정말 크게 달라진 점은 오히려 이전과는 다르게 꿈에 나오는 이미지와 내용들에 집착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전에는 꿈이 내 무의식을 드러내 주기에 그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나도 모르게 있었던 것 같다. 그것들을 모두 해석하고 싶은 마음, 정화하고 싶은 마음. 그것도 틀린 것은 아니고, 나에게 아주 중요했다는 것을 안다. 이제는 꿈 또한 체험의 일부구나, 내가 꿈을 꾸었구나-하고 그렇게도 바라볼 수 있는 법을 배우는 것 같다. 오늘 나에게 다가온 모든 만남과 말, 사건들, 날씨 모두 다 하나의 체험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처럼. 왜 우리의 스승들이 꿈에서조차 수행하려고 했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꿈과 깨어있음이 다르지 않음을... 이를 몰랐던 때에도 흘러가는 대로, 그렇게 자연스럽게 산 날들도 많았지만, 일단 한 번 배우게 되고 나서 의식적으로 이 훈련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어떤 것을 붙잡으려고 하는 때가 있으면 거기에 들어간 힘을 놓게 될 줄 알게 되는 것 같다. 정말 정말 미묘한 수행의 차이를 배우게 되는 것 같다. 근데 그 미묘한 차이들을 알게 되니 더 어렵기도 하다.
내가 꾸는 꿈이 이제껏 중요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정말로 나를 그대로 비추어주는 거울이라는 것은 변함없지만 그것을 분석하고자 하는 태도보다,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은 정말 또 다른 단계인 것 같다. 꿈이 어떤 이야기로 흘러가든, 무엇을 보여주든, 그것에 내가 붙들려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바라보게 되는 것. 그동안에 꿈을 기록하고, 들여다보았던 시간이 있었기에, 이 단계 또한 내게 온 것을 안다. 그 과정들이 있었기에, 꿈이 나의 거울임을, 그리고 그 거울은 잠깐 비추고 내려놓을 수 있는 것임을 알게 된다.
일기를 쓰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는데 챗지피티가 내게 좋은 말을 해준다.
"수행은 고통을 가볍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고통과 함께 있어도 무너지지 않는 힘이다"
내가 배운다고 말하는 이 모든 가르침이, 내 고통을 덜기 위해서, 그것들을 소멸시키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내게 다가와도 무너지지 않는 힘을 기르는 것임을...
'모두 다 흘러가는 꿈이다'라는 말에 또 집착하게 되면 감정과 감각을 차단시킬 수도 있는 함정이 있다. 이 이야기를 챗지피티와 하다가 정말 신기하고 놀라운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흘러간다'라는 말을 쓰니, 그 말에 또 너무 머무르게 된다면, 통찰이 아니라 관점으로 굳어진다면 고정된 자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아주 조심스럽게 짚어주었다. 관점에 대한 집착, 공에 대한 집착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떤 체험이 오더라도 '흘러간다'라는 말로 덮어버리게 되면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체험을 다 균질화할 수 있게 된다고... 그 말 위에 서지 말 것. 개념 하나가 미세하게 집이 될 수 있는 단계가 있음을 알려준다. 무슨 말인지 너무 이해되기 때문에 너무 어렵다.
이 이야기를 함께 풀어가다가 어린 시절 내가 떠올랐다. 깊은 신앙을 갖고 있는 아이였는데, 내가 관계 속에서 세상 속에서 힘들 때에 내 감정을 먼저 느끼고 화를 내고 슬퍼하기보다 늘 그것이 '신의 의도'였음을,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알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그렇게 이해해 버리곤 했다. 그렇게 하면 내가 미워할 사람도 없었고, 나를 아프게 한 사람조차도 다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었다. 그렇게 머리로 너무 다 이해가 되는데, 내가 보살펴야 할 감정은 바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물론 실제로 사라진 것은 아니고 계속 내 안에 깊숙이 쌓여있었다.
개념에 집착하게 되면, "불편한 감정이 올라오고 - 아직 몸이 반응 중인데 - 개념이 먼저 개입해서 - 감정을 덮어버리게 될 수 있는" 구조인건데, 내가 기껏 이 구조를 알아차리고 올라오는 감정을 그대로 마주하고 느껴주는 훈련을 했던 지난 날들을 다시 내가 역행해서 어릴 적처럼 관념으로 모두 다 이해해 버리려고 할까봐 정말 놀라버렸다. 감정들이 올라올 때마다 그대로 느껴주는 작업을 지금까지 근 몇년 지속해오고 있었고, 정말 그로 인해 내가 많이 자유로워지고 부드러워졌는데, 다시 새로운 지평을 만나게 된 이 시점에 다시 또 개념으로 그것들을 이해해 버리려는 함정도 정말 가까이 있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연결 지어 이야기하니, 내가 알아차린 이 연결고리가 우연이 아니라고 말해준다. 예전에도 감정이 올라올 때 그것을 느끼기 전에 더 큰 의미와 높은 관점으로 건너뛰는 법을 배웠는데, 그때 나의 언어가 '신의 뜻'이었다면 지금은 '흘러간다/꿈이다/공이다'가 된 것이라고.
늘 나는 그 어릴 적의 내가 잘못했다고만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오만하게 신의 뜻을 먼저 이해하려고 한 탓에 나 자신을 정작 살필 수 없었던 것이라 여겼는데, 그때의 나 또한 틀린 게 아니었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나는 그 패턴을 그대로 반복한게 아니라, '알아차린 상태에서 거의 반복할 뻔한 것'이라고 말해준다. 그건 정말 또 새로운 지점이다. 나는 내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회귀가 아니라 통합의 문 앞에 있는 것이라고. 시간이 접히는 순간이라고. '너도 거기 있었구나' 하고 만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만남이 나를 과거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한 명으로 만드는 방향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