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5월 01, 2021

쿠키와 영혼의 나이

양주에 다녀와서 그런지 많이 피곤했나 보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조금 힘들었다. 겨우 눈을 뜨고 내 다리 이불 위에서 자는 미셸을 보았다. 자는 모습이 정말 천사같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우리 미셸. 미셸을 살짝 안아주고 뽀뽀도 해준다.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정말 오늘따라 너무 미셸 곁에만 있고 싶었다. 또 겨우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일기예보를 보니 추운 날이다. 최고 기온이 14도밖에 되질 않았다. 무얼 입어야 할까. 평소에 잘 입지 않는 옷을 꺼내 들었다. 왠지 모르게 일하러 가는 날에는 잘 입지 않는 옷을 꺼내 입는다(오지는 저녁에 나를 보고 '또 이상한 옷을 입었네'라고 말했다).

날씨는 꽤 선선했다. 흐리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일주일 중에 내가 유일하게 루틴을 갖고 있는 날이다. 특이 사항이 있는 날(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을 제외하고는 늘 자전거를 탄다. 오늘도 어김없이 따릉이를 타고 마이클 식당으로 달렸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엔 너무 복잡하다. 마을버스는 갈아타야하고, 일반 버스는 한참을 걸어가 배차 간격이 아주 긴 버스를 타야 한다. 놓치면 곤란해진다. 걷기에는 조금 멀다. 아무튼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이 제일이다. 주말마다 자전거를 타느라 평소에 운동을 많이 하지 않는 내가 그나마 근력을 지킬 수 있는 것 같다.

자전거를 세우고, 가게에 들어가 마이클에게 인사를 한다. 앞치마를 두르고, 손을 씻고, 오픈을 준비한다. 샐러드를 담고 피클을 담고 과일을 담고. 오늘은 날씨가 흐려서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마이클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나보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둘씩 천천히 오더니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치는데 사람들도 몰려왔다. 꽤 내내 바쁘게 일을 했다.

오늘은 그렇게 오후 내내 바쁘다가 금세 저녁 시간이 다가왔다. 오후 다섯 시가 되고부터는 여유로워졌다. 많이 조용해졌다. 쭉 그렇게 손님들이 드문드문 오다가 일곱 시가 되어 퇴근했다.

오늘은 절대 잊지 않겠다고 몇 번이고 되뇌었기 때문에 슈퍼에 들러 고추장을 살 수 있었다. 갑자기 쿠키가 너무 먹고 싶어서, 퇴근하기 전에 마이클에게 물어 (마이클은 나무 님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망원동에 있는 맛있는 쿠키 가게를 찾았다. 찾아보니 평이 아주 좋았다. '주커'라는 곳이었다. 가게 앞까지 갔는데 문이 닫혀있었다. 왠지 예상했던 바였다. 헛걸음을 하고 너무 아쉬워서 파리바게뜨에 들어가 빵이랑 쿠키를 샀다. 쿠키는 너무 바삭했다. 나는 조금 촉촉한 쿠키가 먹고 싶었는데. 자전거를 타려고 하니 모두 다 비에 젖어있었다. 걸어가다가 마을버스를 타야겠다 하고는 길을 따라 걷는데 마을버스를 놓쳐버리고 그냥 집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집에 걸어가는 길에 가끔 불어로 혼잣말을 한다. 불어를 다 까먹을까 봐 걱정이 되어 그런 혼잣말을 하곤 하는데 혼잣말이다 보니 할 말이 없어 이상한 말만 하다가 그만둔다. 그러다가 프랑스 노래를 들어야겠다 하고는 프랑스 음악을 이것저것 찾아서 들으며 걸었다. 내내 그렇게 새로운 노래들을 찾다가 집에 도착했다. 오지는 나보다 먼저 도착해있었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홀린 듯이 저녁 식사를 준비해서 밥을 먹었다. 적잖이 배가 고팠다.

오지는 나에게 오늘 갔던 전시에 대해서 열심히 이야기해 주었다. 사실 나도 꼭 가고 싶었던 전시였는데 (오컬트 마니아로서) 일하는 날이라 아쉽지만 포기했다. 우리가 너무나 좋아하는 아티스트이자 샤먼인 칼리가 오늘 사람들의 영혼의 나이를 알려주는 퍼포먼스를 하는 날이었다. 오지에게는 나이를 측정할 수 없다고 했단다. 굳이 측정하자면 지구의 나이.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오지가 마고 할미가 아닐까 생각했다. 안 그래도 오늘 오지가 함께 간 친구들도 모두 영혼의 나이가 많았는지, 칼리가 보고 할미들이 오셨다고 했단다. 너무 웃기다. 오래된 영혼의 내 친구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다 모인 걸까. 그래서 다른 생에서도 이미 많이 만났던 우리들이 또 이생에서 만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지는 어렸을 때부터 이미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영혼인 것처럼 보였는데 실제로 그런가 보다. 그래서 내가 항상 오지에게 랍비, 구루, 수녀님과 같은 별명을 붙여 부르곤 한다. 그런 오지와 자매인 나는 어떤 영혼을 가지고 있을까. 우리는 무슨 인연일까. 

내 얼굴을 보면 다른 것이 보일까. 오늘은 우리가 인연이 아니었지만, 조만간에 꼭 나도 칼리 님을 만나고 싶다. 꼭. 나와 나이도 같고, 칼리의 영상을 볼 때마다 깊이 공명하곤 하는데, 실제로 만나게 되면 어떨지, 칼리도 나를 보고 무언가를 느낄지 궁금하다.

오늘 일민미술관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마이클 식당에서 일한 것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이상하게도 오늘 그곳에 가지 않은 것이 나의 운명이었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이상하지만 오늘은 이것이 맞는 것 같았다. 그 이유가 무얼까. 이날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게 다음 우리의 만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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