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금 모두 같은 채널 속에 들어온 것 같다. 어제 지컨의 글을 보면서 가슴이 너무 아팠는데.. 도처에서 그와 비슷한 패턴의 혼란과 고통들이 보인다. 아주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는 지컨의 이야기와 플로이드의 이야기 속에서도 나는 또 같은 모양을 본다. 이 패턴이 이렇게나 선명해졌다는 것은 어쩌면, 해결할 길, 이 지긋지긋하고 징그러운 함정 속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해답이 머지 않았다는 증거일 수도 있을까 ?
가장 처음 우리가 모였던 이유는 희미해졌고, 남아있는 것은 분노밖에 없는 것 같았다. 결국에 왜 우리가 해체하고자 했던 그 모든 것들은 그대로 남아있는데, 계속 사라지는 것은 내 친구들 뿐인걸까.
살면서, 그리고 또 이곳에 나와 살면서 별의 별 일을 많이 겪었다. 내가 아시아인이기 때문에,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일들. 왜 인종에 따라, 성별에 따라 그의 세상살이가 달라지는거지.
나는 정말 아직도 밖에 걸어다니면 지나가는 저 외국인이 나를 해코지 하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문득 들곤 한다. 길가다가 욕하면서 소리지른 적도 있고, 정말 무지 많이 울었다. 진짜 서럽고 더럽고. 내가 하고싶은 공부하러 왔고 내가 좋아하는 풍경 속에서, 또 좋은 선생님들과 좋은 친구들 사이에서 지낼 수 있었기에 정말 너무 소중한 경험이었지만 이 모든 시간동안 외국인으로서의(엄밀히 말하자면 ‘서양’에 온 ‘동양인’으로서의) 삶은 정말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다른 나라가서 살거면 견뎌내야 할 부분이겠지라고 절대로 말할 수 없는 문제다. 왜 누군가는 그런걸 견뎌내야 하는데 ? 다 똑같은 인간인데, 왜 다른 대우를, 다른 시선을 받아야하는거지. 같은 인간이면서 왜 어느 곳에서의 나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없는 것이지.
미국을 보면서 정말 암담했던 것은, 심지어 내가 속해있는 내 나라에서도, 특정 인종으로 구분된다고 해서 다르게 대우받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여성혐오와 맞서싸우는 우리들이 느끼는 고통과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동일범죄 동일처벌’을 피나는 목소리로 외치던 것이 생각났다. 차별 속에서 살아온 그 고통의 시간들이 모두 그러하겠지. 고통과 분노만 남은 상태. 뿌리뽑고 싶은 그 악의 근원은 사라지지 않은 채, 그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권위주의가 그대로 나를 내리누르고 있는 상태. 나는 계속 여기에 존재했고, 다른 곳으로 물러날 곳도 없는데 말이다.
그 오랜시간 기득권이었고, 세상의 ‘기준’이었고, ‘다수’였던 사람들한테 침묵할 마음 전혀 없고. 그들한테 핍박받고 차별당하는 사람들 편에 설거다 무조건. 명백히 보이는 고통 앞에서 침묵하는 것은 결국에 내가 겪었던 고통을 다시 외면하는 것이고, 우리는 그 고통의 고리를 끊어낼 기회를 놓치고 마는 것이다.
정말로 이 모든 것들이 결국엔 해결되지 않은 채 극으로 치달아, 모든 것이 파괴되는 상태까지도 머리 속에 그려졌다. 그 순간에 칼리의 마방진 이야기가 다시금 내 머리 속에 떠올랐다. 이 사방이 벽으로 가로막힌 퍼즐 속에서, 이 유한한 패턴 속에서.... 우리가 9에 갇혀있는 상태라면, 어쩌면 우리는 10으로 나갈 방법을 찾기 일보직전인 것이 아닐까. 그 때에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1. 1이었다. 하나. 결국엔 너가 나고, 나가 너인 상태. 모든 것의 경계를 나누고, 구분하고, 차별하는 일을 멈추는 것. 그것은 이 모든 고통들 속에서 빠져나가 10으로, 즉 새로이 0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길이었다. 일시무시일 일종무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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