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4월 09, 2020

망우리집

지겹지도 않은지.
평생의 꿈 속에서 나는 그 집에서 이사나갈 수 없을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다.
그러나 어쩌면 그러는 편이 낫다.

금순이이모 오지 엄마 나
엄마는 저녁 내내 내가 자고 있는 그 저녁 내내 부엌일을 하고 있었다.
달그락달그락 설거지 소리.
중간에 엘로디가 자꾸 내 방에 와서 뭘 물어봤다. 물건을 찾는 것인지, 물건 사용법을 묻는 것인지.
꿈인지, 생신지 알 수 없는 소음들과 방문들(visites)
이래 저래 정리하고, 수선을 하다보니 아침이 되었고 다들 제각각 집을 나서게 되었다.
나만 혼자 집에 남아야 했다.
이모가 제일 먼저 나갔다.
이모가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에 낯선 흑인 꼬마아이가 무척이나 천진한 표정으로 신발장 앞까지 들어와버렸다. 그를 밖으로 내보내고 금순이 이모는 문을 잠그는 시늉을 계속 했다. 실제로 잠그지는 못했고, 낯선이들을 속이기 위한 행동이었다. 이내 곧 그 꼬마보다는 더 큰 아이가 나타나서 이번엔 이모 콧구멍을 살짝 찌르는 장난을 쳤다. 여전히 천진한 얼굴.
그러나 너무 섬뜩했다.
항상 나는 이 집의 이 허술하고 허약한 유리문이 너무 싫다.
이윽고 오지와 엄마가 나갔다. 그 순간에 나는 문을 잽싸게 잠그기 위해 필사적으로 힘을 썼다. 그 작고 보잘 것 없는 문고리를 잠그는 일이 이렇게나 힘든 일일 줄이야. 항상 그 문은 아주 잠깐이라도 열려있는 틈을 타고 누군가가 침입한다. 그래서 늘 꿈 속에선 현관문을 잠그는 것이 나의 주된 임무다.
그 유리문의 재질이 무엇인가하고 찾아보니, 워터큐브 유리란다. 그 울퉁불퉁하고 불투명한 유리는 낯선이가 그 앞에 서면 단박에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릴 수 있도록 그의 실루엣이 고스란히 보이지만, 우리를 그저 그 이상하고 무섭고 소름끼치는 상황에서 벗어나게 하는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유리문 앞에 검은 몸이 움직이고, 나는 문을 잠가야하지만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꿈을 수없이 꿨다. 등에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당장이라도 죽고싶은 그런 두렴.
게다가 그 불투명한 유리는, 누구라도 주먹을 휘두른다면 허무하게 깨질 수 있을 정도로 허술하고, 튼튼하지 못했다. 실제로 누군가 던진 계란에 유리문은 깨져 구멍이 나버렸다. 왜 아무도 유리문을 고칠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 그 깨어진 부분에 종이를 붙여 바람만 막아놓았다.
유리는 고사하고, 문고리는 그 존재조차 있으나 마나 한 것이었다. 어떤 열쇠로도, 문을 열 수 있는 그런 고리였다. 심지어 동전을 이용해서 열 수도 있었다. 열쇠를 잃어버려 집에 못들어갈 걱정은 안해도 되는 문이었지만, 누구라도 침입할 수 있는 문이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내 악몽에 언제나 망우리집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았다.
누구라도 침입할 수 있는 집.
누구도 안전할 수 없는 집.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집.
그 집을 다시 만날 일이 꿈 속 말고는 없을 것이란 사실이 차라리 안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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