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9월 05, 2018

안경을 새로 맞췄다. 내가 보던 세상과는 너무 달라서 사실 하루종일 짜증이 났다. 사람들도 다 짜부된 것 같고 땅이 너무 가까운 것만 같고 나는 너무 못나고 얼굴을 쳐다보기가 싫었다. 원래 그렇게 생겼던 것두 모르고. 그렇담 나는 늘 그렇게 왜곡된 화면을 보고 지냈던 것일까? 다들 피부가 부드럽고 길쭉하고 예쁘고 반짝이는 세상. 무엇이 좋은 것인가 한참 생각을 했다.

안경을 뺐다가 꼈다가 생활을 하다보면, 내 뇌에서는 어느 것이 진짜 시력인지 헷갈려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이 자꾸만 생각이 났다. 그런데 정말이지 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이는 이 눈은 참 너무 잔인했다. 그치만 좋은 것을 찾아보자면, 오늘 밤 나는 맨눈으로는 안보이는 별을 보았다. 안경을 내렸다가 올렸다가 하면서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별을 구경했다. 우리집 언덕길을 오르며 마주치는 버스정류장에 써있는 정류장 이름도 조금 멀리서도 보였다. 그 정류장을 지나면서 고개를 들고 그 또렷하게 보이는 글자들을 계속 쳐다보았다. 

또 하나, 검안을 하고, 그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는 며칠간 이런 생각에 빠져있었다. 내 뇌에서 안경을 쓴 눈의 시력과 안경을 쓰지 않은 눈의 시력 중에 무엇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헷갈려하는 동안에, 조금은 기분이 나아진 나의 모습을 보며.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 어느 것이 진짜 나의 모습인지도 헷갈려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엉망진창이지만 생의 의지가 가득하던 때의 나와, 조금은 안정적이지만 생의 의지가 없는 나. 무엇이 원래의 나일까. 무엇이 더 건강한 나의 모습일까 하는 생각. 

오전부터 낮까지는 기분이 참 안좋았다. (내 짜증과 화를 받아준 내 소중한 사람에게 심심한 사과를 건넨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일까, 안경을 벗어서일까, 안경을 벗은 이후로는 기분이 좀 나아진 것 같다. 아무튼 친구랑 이야기를 나누다가 친구덕에 나도 조금은 좋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전에는 무엇과도 눈을 마주치고 싶지가 않은 기분이었다. 우리는 현존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나는 바로 거기서 내 괴로움의 원인을 찾았다. 내가 현존하지 않음으로 겪는 괴로움. 아직 일어나지 않은, 혹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들에 대해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어찌나 눈이 멀었던지 내가 그러고 있는줄도 몰랐다. 그 바보짓을 하느라 현재의 것을 보지도, 현재의 사람들과 이야기하지도 않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안경을 벗어서 기분이 좋아진 것이 아니었다. 지금은 안경을 다시 썼고, 이제는 시원하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갈비뼈를 부풀렸다가 쪼그라트렸다가를 반복하면서 숨을 쉬었다. 눈을 감고 현존하는 나의 중심으로 돌아오려고 시도해보았다. 그러고보니, 요즘 나는 이 호흡에 아주 집중하고 있었는데, 비록 처음엔 그것이 현존하는 나의 중심으로 돌아오려는 시도는 아니었지만, 그 숨이 바로 오늘 내 현존에 대한 문제와 조우한 것이다. 사실은 내가 어느 순간에 숨을 멈추거나 숨을 아주 얕게 쉬고 있을 때가 많다는 것을 알고는 이 숨쉬기 연습을 시작한 것이었다. 오늘 있던 대화들과 내 숨들을 돌이켜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숨을 제대로 쉬기 위해 시작한 이 연습은, 어쩌면 내가 오늘 다시 깨달은 것, 현존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할 어떤 새로운 시작점이었던 것이다. 제대로 호흡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현존하다라는 말과 같은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어제 오랜만에 비닐봉지가 춤을 추는 것도 두번이나 보았다. 늘 보이던 그것이 요즘엔 한번도 보이지가 않았는데, 갑자기 어제 내 앞에 나타났다. 그것을 보며, 나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려는 것일까 짐작은 했는데, 그것이 오늘인 것 같다. 안경을 새로 쓰고, 새로이 숨을 쉬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