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편지를 쓰고 잠에 들기 전에 잠깐 남긴다. 오늘 편지에 쓴 내용이 마음에 들었다. 시간이 가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는 매일 해가 뜨는 시간과 해가 지는 시간을 살펴보면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고 썼다. 친구가 그에게 주어진 어떤 시간을 막막하게 느낀다기에 오늘 보았던 저녁 하늘색을 떠올리며 그런 이야기를 적었다. 동지가 지났고, 해가 더 길어졌다. 일을 마치고 나오니 아직 저 멀리 노을이 보였다. 어두운 푸름이 가득한데 멀리 붉은 색이 물들어 있었다. 오늘은 해가 17시 37분에 졌다. 내일은 38분에 진다.
사실 모든 시간은 이미 펼쳐져 있지만, 인간 언어와 인식의 구조로 인해 느끼는 시간이 흐른다는 감각. 이 감각 안에서 불안도, 안도도 모두 느낀다. 지량과 치앙마이에서 함께 한 피아노 연주를 듣고 있다. 음악이 흐른다. 음악이 흐른다. 이미 완전히 펼쳐진 시간 위 연주. 손가락이 미끄러진다. 모두 이미 눌리어진 건반. 한 음을 칠 때, 이미 그것은 마지막 음까지도 다 알고 있는 음이네. 모든 음이 동시에 영원히 존재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시간이 흐른다는 감각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음악을 아름답게 느낄 수 있는 것이네. 그 모든 음을 다 이미 들었으면서도, 흐르는 형태로 느낄 수 있다는 것. 흐르는 형태. 폭포와 바다네. 폭포는 하얗고 바다는 파랗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