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6월 19, 2018
킥보드
킥보드가 있길래 타고 놀아봤다. 내가 초등학교 때 아빠가 사준 건데 아직도 있다. 엄청 오래됐지. 안버리고 있는 것도 참 신기했다. 아무도 안탔을텐데. 근데 생각보다 이 킥보드는 참 튼튼해서 오늘 내가 비록 몇년만에 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몇바퀴를 돌고 돌아도 아주 멀쩡히 잘 굴러갔고 꽤 재밌기까지 했다. 트럭이 자꾸 왔다갔다 하길래 그냥 아빠가 포장해버린 마당에서 둥그랗고 크게 빙빙 돌아보았다. 짧은 지름의 원이라 마당 앞의 풍경들이랑은 빨리 만나지고 헤어지고 그랬다. 아빠가 집 앞에 쌓아둔 잡동사니들이 보였다. 어디서 나온 것들인지 어떻게 만들어낸 것들인지 그게 냉장고가 됐든 식탁이 됐든 고양이가 됐든 병아리가 됐든 아빠는 한번도 말한 적이 없었지만 모두 이 곳에선 아빠의 생태계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녹이 슬어있거나 거미줄이 쳐져있거나 하지만 자세히 보면 잘 정리가 되어있기도 하다. 토끼에게 사람이 먹는 밥을 주기도 하고 고양이랑 토끼를 한 우리에 넣어 기르고 개들은 아주 얕은 산 속에서 지낸다. 오지랑 나는 늘 질겁을 하곤 한다. 모두가 참 이상하게 불쌍하고 안쓰럽고. 아빠가 또 뭔가를 데려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우리는 불쌍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아빠가). 사실 그 동안에 수없이 아이들이 지나가기도 했다. 이렇게도 허접한 보살핌에, 살림에. 그래도 아빠는 꿋꿋이 아빠의 방식대로 밀고 나간다. 집도 아빠 방식대로 만들어주고 밥도 아빠 방식대로 주고. 그런데도 이 토끼들이 포동포동하게 잘 크는 것이 새끼고양이들이 토끼 등에 기대어 잘도 잠드는 것이 개들도 나름 잘 지내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며 어쩌면 아빠가 하는게 맞는 부분도 있을거라며 엄마는 가만히 내버려두라고 했다. 이 공간을 가득 가득 채우고 있는 아빠의 숨이랑 질서에 나는 이제 들어와 어우러질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어쩌면 그를 이렇게 방문할 수는 있을 것이다. 오늘은 나 혼자 토끼에게 민들레를 꺾어다주고 고양이에게 물을 떠다주었다. 아무도 없는 마당을 빙글빙글 돌면서는 모든 것이 다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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